
Antoine Lavoisier (앙투안 라브와지에)는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프랑스의 화학자이십니다. 저는 이 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학자이기도 하죠. Lavoisier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는데요. 그래서 일찍부터 법을 공부하고 군인으로도 근무를 했습니다. 당시 Lavoisier가 살던 당시의 France에서는 아직 상하수도 체계가 지금같지 않고 아주 허술해서 일반인들이 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Lavoisier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 자신의 군부대의 지하실을 화학실험실로 개조해서 여기에서 여러가지 화학실험을 수행하게 됩니다.
Lavoisier의 아내인 Ann은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Lavoisier의 연구실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Lavoisier의 연구내용은 몇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어떻게 깨끗한 물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을 위해서 수소와 산소가 물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하는 여러가지 실험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에 Cavendish라든가 여러 과학자들이 학회에 보고를 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하는 연구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Lavoisier는 이것을 다시 정교한 정량화학실험 (정확한 계량과 측량을 통한 분석)을 통해서 이 실험의 연구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모아서 이것이 바로 연소설의 시초가 돼죠.
둘째 무기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군인이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총알이나 무기를 연구할 때에도 무기 계량을 위해 연구를 했다고 해요.
이러한 연구들을 수행할 때 Lavoisier의 개인자금으로 연구 기자재를 구입하고 실험을 수행했고요. 또 그 조수들도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듀폰 (DuPont) 입니다. 본래 DuPont의 아버지와 친척들은 신문을 내는 편집장이었는데 Lavoisier가 정치적 Message나 과학적 발견을 알리는 데 이 신문을 활용합니다. 그래서 Lavoisier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아들 DuPont이 Lavoisier의 조수로 일하게 된 것 입니다.
Lavoisier를 왜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냐 하면요. Lavoisier가 정량화학을 한 첫번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Lavoisier는 계량을 정확히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인데요. 당시만 해도 유효숫자 개념이 없어서 예를 들면 이렇게 기록을 했다고 합니다.
질량: 12.039845 gram
그 이전에는 이론적인 생각을 하거나 정교하지 못한 실험도구 등으로 다소 과학적인 정확성이 높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Lavoisier는 실험도구를 직접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정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은 실험을 수차례 반복해서 그 재현성을 반드시 확인했다고 합니다.
지금 저도 Biotech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Lavoisier가 했던 개념으로 정량을 하고 재현성을 반드시 확인하고 있죠. Lavoisier의 이전에는 이런 것이 거의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Lavoisier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뛰어났던 것 같아요 바로 Louis16세의 재정장관이 되어서 국가 재정을 관리하게 되는데요. 그 재정에서 다루었던 문제들이 France 대혁명의 원인이 되는 민초들의 분노의 이유가 되어서 결국 Lavoisier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게 됩니다. 당시 DuPont의 친척도 함께 처형당했다고 해요.
Lavoisier가 처형을 당하기 전에 그 처형이 중단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민중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처형이 실행되었고요. 이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한 지식인들이 100년의 과학이 사라졌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France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Frane의 상류층이 미국으로 많이 건너오게 되는데 DuPont의 가족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미국으로 오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식민지 개척시기였기 때문에 총기와 탄약에 대한 수요가 높았는데 당시 미국의 탄약 질이 좋지 않았다고 해요. DuPont이 Lavoisier의 조수로 있으면서 무기 연구를 함께했기 때문에 질좋은 탄약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DuPont이라는 회사가 설립되게 됩니다.
Lavoisier는 화학 교재도 만들었는데요. 그 교재는 일본에서 초기에 번역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조선에는 번역이 한참 늦어서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읽는 사람이 적었고요.
지금 우리가 이런 과학의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된 계기는 Lavoisier와 같은 과학자의 정량화학과 재현성이라는 원리를 구현한 과학자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학 실험을 수행하는 과학자로서 항상 실험을 할 때마다 Lavoisier를 기억합니다. Lavoisier는 Paris Eiffel Tower (에펠탑)에 과학자의 한명으로 당당히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