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책을 쓰신 김병수 박사님도 정신과 의사이십니다. 두 책의 차이가 있다면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남성이고 ‘당신이 옳다’는 여성이 저자라는 것 정도랄까요?
정혜신 박사님께서 공감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공감력이 떨어지는 저로서는 어려운 측면이기도 한데 공부를 해야한다는 걸 알았고 배웠습니다.
‘당신이 옳다’를 읽으면서 처음 드는 생각이 바로 열등감이었습니다.
결혼 전에 열등감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브런치북에 자전소설을 쓰기도 해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열등감이 있을 요소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가난, 학벌, 배경 등
오랜 기간 열등감으로 인한 컴플렉스를 안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정혜신 박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열등감이 에너지가 되어서 나를 밀어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모든 감정이 옳다는 생각을 듣고 열등감을 옳다고 인정을 해 보니 컴플렉스가 아니라 원동력이 된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열등감이 없었다면 오히려 성장하려는 이유가 없으니 정체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거죠.
커리어코칭을 하다보면 누구나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모양과 정도가 다를 뿐이죠. 열등감도 있죠 당연히. 한국 사람이 미국에 사는데 없는게 오히려 거짓말이죠.
열등감은 성장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다는 열등감은 배우게 만들고, 몸이 약하거나 병이 들었다고 느끼면 운동을 해서 극복하고, 배경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노력해서 인맥을 늘이더군요.
흔히 퇴근을 하면 즐겁다고 하고 불금 (불타는 금요일)이 가장 행복하다고들 하죠. 저도 직장 초기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몸에 맞지 않는 기성복을 입은 것처럼 직장 생활이 웬지 힘들고 고단했기 때문에 쉽게 지쳤던 것 같은데요.
나이가 들면서 점차 기회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이제는 오히려 퇴근보다는 출근의 기쁨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출근이 주는 활력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첫째, 새로운 과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점으로서 출근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생활에서 매일 어려운 문제와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일과이죠. 문제는 저의 두뇌활동을 빠르게 촉진해 주고 자극을 줍니다. 힘든 느낌도 당연히 있지만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생각과 직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권 (?) 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감정이 스스로 귀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직장은 문제도 주고 월급도 주고 일거양득이죠.
둘째, 사람들과 함께 도전한다는 점입니다.
혼자서 일하지 않죠. 좋은 직장일수록 뛰어난 동료들이 있더군요. 어디에 가서 이런 사람들을 모으라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동료들이 저의 부족한 점이나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알려주고 채워줍니다. 일하는 즐거움에서 똑똑하고 열정적인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은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셋째, 몰입이 주는 힘입니다.
과학자로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데이터를 분석하며 결과를 동료들, 상사, 부하들과 나눕니다. 매일 새로운 데이터가 생기고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데이터의 흐름을 잘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해결책을 찾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논문이나 특허를 찾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시간이라는 목표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저를 충분히 몰입시키도록 도와 줍니다. 글쎄요, 취미 생활만 한다면 이 정도 몰입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넷째, 매일 배우는 것입니다.
기술과 시장은 계속 발전하고 갓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청춘들이 활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당근과 채찍을 주지요. 배우지 않으면 도태하기 쉽습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이고 배운 내용은 현실 과제에서 문제 해결을 더 빨리, 더 정확히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평생 대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섯째, 성장하는 것입니다.
배우고 노력하고 몰입하는 가운데 매일 성장하는 걸 느낍니다. 스스로도 느끼고 동료들로 부터 피드백도 받습니다. 격려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책도 받습니다. 모두 성장통의 과정이라 여깁니다. 매일 1%씩 성장하면 1년이면 37배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복리의 원리때문이죠. 엄청난 기회를 회사는 줍니다.
여섯째, 루틴과 운동을 하게 합니다.
삶의 루틴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전 일찍 글로벌 파트너와 미팅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 마지막에 팀 동료들과 미팅을 하거나 보고서를 쓰며 마무리합니다. 중간 중간 운동도 조금씩 됩니다. 저는 회사가 6층에 있고 15층 건물이어서 계단으로 오르 내리는데 정말 건강과 활력을 줍니다. Gym이 따로 없습니다. 혹시 일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계단을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가운데 문제의 실마리가 찾아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기분전환의 효과이죠.
일곱째, 재정을 지원받습니다.
직장에서 1년마다 예산을 받고 그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운용됩니다.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경쟁 기업들을 이기는 기술의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 기업은 RSU를 받는데 회사의 실적이 성장함에 따라 주가가 오르고 그 댓가를 주식가치로 환산하여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월급과 보너스 그리고 다양한 베네핏도 받지요. 또한 가족들을 위해 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매일 출근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 갑니다. 아내에게 나이를 잊고 일하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제가 뭔가를 한다면 그건 결국 환자와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제게 묻는다면 “가족의 안녕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만큼 제게 가족은 소중합니다.
오늘을 사는 나는 가장 최고의 자유를 누릴 특권을 가진 자가 아닌가하고 감사합니다. 어쩌면 과거 어느 왕보다 더 자유롭게 사는건 아닐까요?
제게 자유를 가능케 한 건 “성령 (Holy Spirit)”이라는 영입니다. 뜨아하시나요?
얼마전 배덕만 교수님의 교회사 강연을 보았는데, CBS에서 한 20강이었던 것 같아요. 강의 뒷부분에서 성령에 대한 교회사 부분을 말씀하셨는데, 성령이 하신 일로
노예 해방
남녀 평등
민주화
신앙의 자유
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교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요.
성령은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전 소중히 여깁니다.
과학자와 성령
좀 이상할 수 있지만 체험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어쩔 수 없죠. 파스칼의 팡세에서도 비슷한 걸 봅니다. 파스칼은 유명한 물리학자이죠. 그도 체험을 통해 성령체험을 했더군요. 그것이 팡세가 되었죠. 안타깝게도 파스칼은 30대말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후반은 성령체험을 통한 발견으로 이루어 졌더군요.
저의 가족, 특히 자녀들도 성령체험을 하길 바랬습니다.
첫째딸과 사위 모두 성령체험을 했고요. 감사하죠.
이번에 둘째딸이 드디어 체험을 했습니다.
전 유아세례를 나중에 후회하고 50대에 다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딸들은 어렸을 때 유아세례를 주었죠. 아직 잘 모를 때였습니다. 그러나, 유아세례를 스스로 확정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걸 Confirmation이라고 합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막내딸이 중학생일 때 교회를 옮기는 결정을 했죠. 아픈 결정이었지만 해야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가장 걸렸던 것이 막내딸의 신앙문제였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힘들었다고 고백을 하더군요.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이 대학생활 중 그녀를 만나주신 것이 확실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 6시간을 달려서 일요일 예배에서 딸의 간증 (Testimony)와 입교 (Confirmation)을 함께 했습니다. 꽃다발과 함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긴 거리를 다녀왔지만 가장 가볍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임마누엘’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통해 스스로 찾은 성령체험을 한 막내딸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김호연님의 책을 읽으면서 또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배운 것 하나는 “누구나 한편의 소설 정도는 쓸 수 있다. 그러나, 두편, 세편 계속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다시 노력하고 싶어졌습니다. 궁금해 지더군요.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유튜브를 뒤지다가 만난 분이 오늘 소개할 김동식 작가님입니다.
김동식 작가님은 가정 형편으로 중1때 중퇴를 하시고 공장노동자로 일을 하시다가 게시판에 댓글을 달던 중 본인의 글에 반응하는 분들을 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초단편 소설가가 된 이야기였습니다. 초단편소설이란 5,000자 안팍의 글로 쓰는 소설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김동식 작가님이 최초라고 합니다.
역사적 예수연구를 배우고 1세기 고대근동 팔레스타인에 대해 배우면서 ‘역사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단 두가지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
둘째,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죽었다는 사실
이 두가지 이외에는 불가지론이더군요. 전 항상 예수 어머니, 마리아에 비해 적게 나오는 아버지 요셉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요셉을 통해 성장하는 예수의 이야기를 써 보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냥 씁니다. 김동식님 말씀대로. 첫편은 올렸고 두번째 장도 미리 써놓고 예고를 한 상태입니다. 30편까지 어떤 결말이 날 지 저도 모릅니다. 시놉시스, 트리트먼트 없이 그냥 손 가는대로 씁니다. 김호연님 말씀처럼 초고를 쓰고 나서 다시 쓰고 끝까지 쓰면 되지 않을까요?
제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온 우주가 도와주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감사한 밤입니다.
만약 이삼평이 바다를 건너지 않았다면, 이런 세계사 교류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자기 수출을 통해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결국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삼평 잘못이 아니다. 이는 산업을 ‘미천한 일’로 여기고 권력 투쟁에 몰두해 조선의 ‘이삼평’을 육성하지 못한 한국 측에 책임이 있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 도예가 이삼평을 도자기의 조상으로 칭송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정치적 투쟁에 정신이 팔려 여전히 무시당하는 미래의 ‘이삼평’이 나올지도 모른다. 도조 이삼평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연 이 말이 맞을까?
신한균 사기장님은 “신의 그릇”, “우리 사발 이야기”, “고려 다완” 등의 책을 집필하셨고 계속해서 도자기와 책을 짓고 계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냥 소설을 더 좋아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저에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윤태호 작가님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이 분이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만화가와 좀 다른 분이라는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윤태호 작가님을 발견한 건 물론 드라마 ‘미생’ 때문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윤태호님이 그리신 웹툰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는 걸 안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드라마가 2014년에 나왔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윤태호님이 쓰시는 여러 작품들이 세상에 나왔고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편을 히트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계속해서 결과를 낸다는 건 이 분이 뭔가 다르다는 것이기도 하고 아마 새로운 세상인 지금과 어떤 면에서 맛닿아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제가 윤태호 작가님을 좀더 자세히 알았다고 생각한 건 유튜브 장강명 작가님과의 두번의 대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1부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에 대한 얘기에 주목을 했습니다.
윤태호 작가님께서 독일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평생 청춘에 대해 글을 쓰셨다고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씀을 하시네요. 자기는 청춘에 대한 글을 쓰려면 그 나이 대의 사람들을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를 보면서 그 생각이 깨졌다고 해요. 나이와 상관없이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바로 청춘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드신거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는 싯다르타가 어느 여인을 만나서 아이를 갖게 되는데 그 여인은 죽고 아들이 싯다르타에게 와서 같이 살게 되면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여서 그냥 윤태호님이 말씀하신 걸 적고 있는데요 그러면서 싯다르타는 수련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아들에게는 꼰대같은 말을 하며 결국 아들이 떠나게 된다고 하네요.
이 부분은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두번째 책은 니체의 철학소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해설서입니다. 니체의 철학 전체를 알아야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윤태호님은 이 해설서를 찾아서 읽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로 얘기하는 것이 낙타에 대한 얘기입니다. 낙타는 우리 일반인을 말하죠. 관습과 교육으로 우리 일반인들은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낙타가 힘겹게 길을 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돌아보니 정작 짐이 없었다는 것이죠. 결국 낙타는 관습과 교육으로 지어진 사회적 규범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윤태호님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낙타가 되는 것’ 여기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나의 뒤를 돌아볼 수 있다면 그런 낙타라면 행복한 것이다.
2부에서는 책보다는 윤태호 작가님이 유명세에 대한 얘기를 하시고 계시는데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절대 다 알 수 없는데 하도 많은 강연을 하다보면 점점 순화가 되면서 원래 생각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하세요. 한번은 자기가 아주 좋아하는 MC분과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원하는 답을 말하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MC인지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보기엔 손석희 아나운서의 JTBC에 나가서 말씀하신 걸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강연을 하거나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시네요. ‘우물을 파는 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시고 계십니다.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브런치 스토리에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지금 왜 이 글을 쓰고 있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데요. 일단 경험을 하고 싶은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호기심 광이거든요. 해봐야 아는 게 분명히 있다는 주의여서 경험론적으로 잘되든 망하든 간에 해봐야 한다는 지론입니다.
윤태호님의 두편의 인터뷰를 보면서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작품은 5년간 쓰신 적이 있는데 쓰다보니 캐릭터의 나이가 혼동이 되더래요. 그래서 연보를 쓰시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40년대 부터 현재까지 각 캐릭터들은 어떤 사건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이걸 알면 대사가 나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네이버 뉴스 검색을 통해서 일정 시간대의 뉴스를 검색하시고 관심이 가는 주제에 대한 책은 필사를 하시고 또 인터뷰도 하시면서 굉장히 오랜 동안 천착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업으로 하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인터뷰에서는 작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장강명 작가님 자신이 작가이시다보니 대화가 좀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전 글로 인터뷰를 하는 걸 읽으면서 보통 그 분에 대해 판단을 했었는데 이렇게 유튜브를 통해서 인터뷰를 한 걸 보니까 어쩌면 더 날것의 그대로를 조금은 더 가깝게 알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 인터뷰도 자세히 들어보고 찾아보려고 합니다.
요즘은 유튜브에 AI 관련 영상이 엄청나게 알고리즘에 뜨더라구요. 그래서 검색어를 ‘책’으로 했는데도 AI가 글을 쓴다는 둥, 작가가 AI와 협업을 어떻게 한다는 둥,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기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아니, AI는 그냥 도구일 뿐인데 왜 이리 일반화가 많은건지 원…
지금 제대로 뭔가를 하려는 분들은 이런 말을 하기보다는 뭔가 창작을 하고 있으시겠죠.
윤태호님의 영상을 들으며 작가 정신에 대해 배우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윤태호님의 좋은 웹툰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기대를 해 봅니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이제 한달이 되어 가네요. 이번 주는 월요일이 콜롬부스 데이 혹은 인디지너스 데이라는 휴일이었고 목요일에 드디어 아내가 한국에서 귀국을 했습니다. 4주간 한국에 머물렀으니 좀 오랜만에 다시 만났죠. 오자마자 저도 아주 분주해 집니다.
브런치 얘기를 먼저 좀 하려고 합니다. 원래 브런치 작가로 신청을 할 때 제가 7가지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했어요. 그래서인지 바로 승인이 났고 그 약속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그 주제로 7개의 브런치북을 만들고 연재를 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안되겠는거에요.
그래서 두개의 소설만 남기고 모든 글을 다시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의 메거진 북과 하나의 에세이 브런치 북을 또 중간에 시작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니까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먼저 잘 끝을 내야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지금은 ‘비가내리네:복사중창단”글을 일단 쏟아내는 중입니다. 사실 다 써 놨거든요. 그래서 일단 밀어내기식으로 이 소설을 끝을 먼저 내기로 했습니다.
소설쓰기에 매진을 하게된 계기는 사실 생텍쥐페리의 영향이 컸습니다. 생텍쥐페리가 비행조종사이면서 소설가였고 마지막까지 비행조종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고 매료되었습니다. 저도 바이오텍 연구원으로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데 여기에 저의 이야기를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되든 안되는 열심히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또 한분이 저에게 힘을 주시는데요. 오늘 그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바로…
김호연 작가님
이십니다. 우연히 김호연 작가님의 ‘불편한 편의점2’를 아내가 보스턴에 사는 다른 분으로 받았다고 하면서 주는거에요. 그 책을 거의 며칠만에 다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몇번을 더 읽었죠. 처음에는 내용 위주로 읽었다면 두번째 읽을 때는 표현 위주로 읽었고 세번째 읽을 때는 “이 작품을 김호연 작가님이 쓰실 때 어떤 고민과 감정을 가지고 쓰셨을까?”를 질문하면서 책을 읽은 것 같아요.
그렇게 불편한 편의점2를 먼저 읽고 나니까 이것의 전편인 ‘불편한 편의점’이 대체 어떤 내용이었는지 너~무 궁금한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간 아내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했죠. 드디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쌩하고 다 읽었습니다. 참 쉽게 읽어지게 잘 쓰십니다. 시나리오 작가님이여서 그런지 대사도 엄청 많고요. 그리고 참 뭔가 울림이 있더군요. 독고에 대한 서사를 읽으며 독고가 마치 저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을 바꿀 시나리오를 써라. 그것을 팔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당신의 인생은 바뀌었을 것이다.” 할리우드 유명 스토리 컨설턴트 존 트루비의 말이라고 합니다.
김호연 작가님이 존 트루비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글을 쓰셨다고 하는군요. ‘나의 인생을 바꿀 소설’ – 저는 지금 그것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AI의 도움을 받아서 썼었어요. 그러다가 다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 얘기가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나의 인생 서사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나의 서사.
지금 두개의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하나는 고등학교 때의 저의 서사를 가지고 10년의 서사를 쓰는 중입니다. 그게 바로 ‘비가내리네:복사중창단”이고요. 두번째는 mRNA 백신 연구원이 된 저의 서사를 쓰는데 그것이 “가지 않은 길: mRNA 백신 연구원”입니다.
이걸 써서 브런치북 프로젝트나 나중에 기획출판으로 내려고 생각하고 일단 쓰고 있습니다. 처녀작이니 잘 안되겠죠. 김호연 작가님도 20년간 무명이셨다고 하고요 5권을 쓰셨습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셨다고 하고요. 이 불편한 편의점에도 자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죠.
소설을 직접 써 보니까 배우는 게 있더군요.
과거의 트라우마나 경험들이 희미해져 있었는데 그게 다시 선명하게 정리가 된 것이 가장 좋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일단 글을 쓰니까 글이 나가더군요. 전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악필에 가까운데 3년간 블로그를 쓰다보니 글을 자판으로 이렇게 두들기는게 아주 익숙해 진것 같습니다. 이제는 글을 쓸 때, 특별히 생각을 미리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구조를 잡으면 글은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문제는 저의 어휘력이 상당히 많이 딸린다는 느낌을 가지는 점입니다. 이걸 원래 아주 오래 고민을 했었는데 그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쓰신 송희구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희망을 얻었어요. 그냥 쓰신 느낌이더라고요. 정제된 것이라기 보다는 날 것의 글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 정도의 서사라면 나도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그래서 저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생텍쥐페리, 김호연님, 송희구님께 모두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계속 20-30년을 소설을 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가 사는 매일 매일을 새롭게 해 줍니다. 소설쓰기가 말이죠.
저의 삶이 소설이 되고 소설같은 삶을 제가 산다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어차피 은퇴는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제가 미국 회사에 다니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과 좌절, 어려움, 극복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서사를 남기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최소한 자녀들에게라도 전달이 될 수 있겠죠.
아름다운 밤입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눈이 많이 온다고 하네요. 눈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우와!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군요. 벌써 1월 19일이라니요! 너무 마구 가는 거 아닌가요? 시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늘이 휴일이라서 좀 쉬었어요.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지금부터 이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막내따님에 대한 얘기에요. 대학교 2학년을 이수 중이신 공주님은 이번 학기에 뉴저지에 있는 어느 제약회사에서 6개월간 co-op을 하시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어제 모셔다 드리고 왔습니다. 차와 함께요.
출발 전날까지는 너~무~ 좋았습니다. 큰 사위가 와서 같이 도와주는데 차에 짐을 잘 싣고 편안히 잤습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했죠. 예정 시간이 막내와 저는 기분좋게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출-바-알~~!! 뿌뿌!!
그런데, 차에 기름이 없더군요. 먼저 기름을 넣었어야 했는데 기름 넣는 걸 잊었네?
그래서 근처 주유소로 갔습니다. 충만하게 채웠죠. 음…됐어. 아주 좋아….
하고 돌아서는데 ‘엥?’ 차의 오른쪽 뒷바퀴가 주저앉은 걸 발견하게 됩니다. ‘헐!’
그래서 부랴부랴 – 이 날이 일요일 오전이니 연 곳이 많지가 않았어요 – 어느 autobody shop에 갔는데, 흑인 아저씨 혼자 가게에 앉아있고 타이어는 안한답니다. 아흑. 그래서 다시 5마일 멀리 있는 곳에 먼저 따님께 전화로 오늘 하는지 확인을 해 달라고 하고 컨펌을 받고 출발을 했습니다. 로컬로 천천히 가고 있는데 우리 사정을 모르는 뒷차가 얼마나 빵빵 거리는지 비켜줬죠. 가라 가!!
다행히 잘 찾아갔습니다. 물었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왠걸?? 1시간을 기다렸네요~~!!
앞에 3대가 있더라구요. 평일이었으면 제 성격에 그냥 딴데로 가는데 일요일이라서 갈 데가 없잖아요. 하염없이 기다림….그리고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니까 지금 막 한다고 바퀴를 떼어 냈더군요. 바퀴는 다행히 이상이 없고 너무 오랜동안 운전을 안해서 바퀴에 바람이 빠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70을 지불하고 차를 다시 몰고 이제 정말 출발을 했습니다. 눈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도 어떠겠어요? 2시간 이상을 이미 지체한 상태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달렸습니다. I-90 마지막 휴게소에 가서 빅맥하고 커피 한잔 잽싸게 먹고 다시 걍 달렸죠. 3시 반에 결국 뉴저지 H-Mart에 도착을 합니다. 우리 공주님이 시장을 보셔야 해서요. 그래서 이래 저래 쫓아다니다가 장 본 건 차에 다시 싣고 옆에 있는 돼지쏜데이라는 돼지갈비 집에 갔죠. 여기 참 맛있어요. 이것 저것을 늦은 점심이자 저녁으로 4시에 먹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다시 눈이 오더군요. 이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눈이 오는 날을 택했네요. 고마워요 따님!!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눈이 오고 있기는 했지만 일단 도착은 했으니 얼마나 다행이겠냐구요? 다행히 제가 마지막 선견지명은 있어서 8시반 비행기를 예약해 뒀습니다. 가장 늦은 보스턴 행 비행기인데 아파트에 도착했더니 9시 10분에 오랍니다. 40분 delay. 그래도 짐 내리고 아파트에 따님과 그 분의 차를 내려 놓고 우버를 불러서 출발을 했죠. 스윗한 우리 공주님께서 저에게 멋진 허그를 하사해 주셨습니다. 넘~~! 고맙다고요. 땡큐!
그리고 공항에 도착한게 7시에 들어가서 게이트까지 갔는데 다시 9:26으로 delay하더니 비행기가 안 왔다고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결국 9:46에야 비로소 보딩을 했습니다. 참 비행기가 도착하자 내리던 사람들 표정이 피곤해 보이더군요.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데, 비행기가 안가요. 그러더니 뭐 로터가 수리해야 한다 만다 하면서 비행기에서 거의 2시간을 체류했고 결국 11시반에 비행기가 나르샤~~! 보스턴에 다음날 0시 30분 (대전발 열차도 아니고 원) 에 랜딩을 했습니다. 눈이 많이 왔더군요. 그래도 착지가 끝내줬습니다. 아주 스무스했습니다.
그런데, 착지 한 이후에 또 기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게이트에 눈이 많이 와서 눈을 치워야 해용!!
음…그래서 다시 30분을 게이트에 못가고 활주로에 있었어요. 와. 그 와중에도 밖을 봤는데 그 시간에 일하는 분들이 밖에 나오셔서 전광판 잘 보이게 닦고 계셨고 저 다른 쪽 활주로에는 눈치우는 트럭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길을 닦고 있는데 마치 기차 같아 보였습니다. 이런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 꾸벅.
새벽 1시 넘어서 다행히 짐은 없으니 맨몸으로 그대로 택시를 탔습니다. 평소같으면 우버를 타야 했지만 우버도 이런 날은 팁을 많이 줘야 하니 택시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택시 타고 가는데 또 눈이 오더군요. 택시가 스케이트를 타더라구요. 왼쪽으로도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가운데로 가면 되잖아!!
우리 집은 오르막이 있어요. 그래서 옆으로 다른 낮은 길로 해서 나가시라고 하고 저는 좀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