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편 아랫배 쪽으로 뭔가 실바늘 같은게 쿡쿡 찌르며 사정없이 후벼대는 것처럼 아려왔다. 깜짝 놀라 분홍색 스커트를 젖혀 올리고 배꼽 쪽으로 눈을 돌려 마치 살인사건 현장을 감식하는 국과수 직원처럼 온몸을 샅샅히 뒤지며 쥐 잡듯 살펴 보았지만 아무런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수연가 단서를 찾았다고 말할만한 거라면 그녀의 복부 주위가 평소보다 팽팽해 보이고 맨살들이 불거져 나온 것처럼 보였을 뿐.
‘점심을 잘못 먹었나? 오늘 뭘 먹었지? 아! 오징어 무침! 그게 좀 시큼하더니 아무래도 상했었나?’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는 듯 옷매무새를 만지고 거울로 화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야 하얀 디올백을 들고 현관문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러다 시간이 늦겠는걸? 조금 있으면 러시아워인데 서둘러야 겠어!’
수연은 왼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며 문 밖으로 나와 아파트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수연은 머리가 빈 것같이 핑 도는 느낌을 받으며 그 자리에서 이내 쓰러졌다.
“정신이 좀 드세요?”
그녀가 눈을 떴을 땐, 침대 맡이었고 그린, 옐로우, 레드, 세 라인의 사인파와 곡선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파도치는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간호사님! 여기 이 분이 눈을 뜨셨어요!” 방금전 정신이 드냐고 물은 젊은 여자의 상냥한 목소리가 봄날처럼 안겨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X-레이를 찍고 초음파를 거쳐서 CT와 MRI까지 모든 검사를 섭렵했다. 그러는 중에 혈액검사와 각종 처음 들어보는 테스트에 몸에 맡긴 것이. 그렇게 한 달여가 되어갈 때 즈음, 아침 일찍 병실을 순회하던 주치의가 수많은 인턴, 레지던트, 간호사를 동원하고 나타나서 근엄하게 말을 했다.
“췌장암 3기입니다. 수술 할 수 있는 부위도 아니고 전이가 이미 복막쪽으로 시작되고 있고요. 하루라도 빨리 항암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수연은 암환자가 되었다.
3개월이라고 했다.
남은 시간이.
길어도.
뭐가 잘못된 것이리라 아니, 의사가 오진한 걸지도.
당황했지만 흰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엄마와 가족들을 챙기기에 더 바빴다고 해야 하나? 나를 가장 걱정해야 하는 그 순간에도 수연은 주위를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의사가 예언한 3개월을 지나 6개월이 흘러갔고 어느새 1년이 지날 때는 이제 마지막일거라고들 수근수근 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녀 앞에서 그런 티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회말 2아웃 주자없이 마지막 타선에 선 하위타자’ LG를 사랑하던 야구광 수연에게 이 상황은 그렇게 다가왔다.
머리는 빠졌고 아니 깎았고 살이 점점 빠지며 등뼈가 고개를 내밀듯이 세상밖으로 자꾸 나왔다. 그 때마다 몸을 어떻게 누워야 할지 왼쪽으로 뒤척이면 오른쪽 아랫배가 아팠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뒤척이면 등뼈가 갈빗벼를 만나 심하게 요동쳤다.
새해가 되었을 때 다시 새벽에 만난 주치의는 쇼펜하우어 같은 인상을 지어 보이며 신약 임상을 제안했다. 어차피 잃을 건 없다. 죽기 아니면 장례식 가기지.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죽기 전에 한다는 항암제 임상시험 대에 오른 수연에게 신약이 기적을 선물해 주는 예수처럼 그녀에게 연장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기적을 주었던 신약 항암제도 더이상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얼마전 CT 결과를 들으니 암세포가 돌아오고 있다는 뉴스였다. 보통 경제가 돌아오거나 탕자가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처럼 돌아오는 뉴스는 좋은 일인 경우가 많은데도 이 경우는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바뀐 건 있었다.
수연은 이제 마냥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는 마치 암 연구자처럼 Google Scholar로 논문을 찾으며 오늘도 그녀의 암세포를 다시 보내버릴 신약을 찾는 중이다. 물론 기약없는 일이다.
하지만 11회말 2아웃에 주자없이 다시 타석에 들어선 수연에게도 3번의 스트라이크가 남아있다.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항상 그녀의 편.

지난 주 출근을 하며 듣던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된 이 뉴스가 저의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이 사연은 Vicky Stinson이라는 췌장암 3기 암환자의 사연을 소설로 각색한 것입니다. Vicky Stinson이 2년여를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daraxonrasib 라는 신약의 공헌이 있었고 mRNA cancer vaccine의 도움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두 신약 모두 아직 FDA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환자와 가족들에게 신약이 주는 가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