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인들이라면 이휘소 박사님에 대해서 존함은 들어봤겠지만 이 분에 대해서는 거의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노벨상 얘기는 많이 들어도 어떤 사람이 어떤 업적으로 받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요. 미국에서는 그 해에 노벨상이 수상되면 자세히 그 업적에 대해 꽤 오랜동안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영어 이름은 Benjamin Whisoh Lee입니다.
이휘소 박사님에 대해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연구에 동조하다가 피살된 것으로 다들 짐작하지만 강주상 교수님의 “이휘소평전”에서는 이휘소 박사님이 군사정권에 매우 반대하셔서 어떤 협조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이 분의 업적에 대해 제가 조사한 대로 나누려고 합니다.
이휘소 박사님은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셔서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오시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재직중 도미하셔서 마이애미 대학교 학사, 피츠버그 대학교 석사 및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전공은 입자물리학이고 Higgs boson, Higgs mechanism이 이휘소 박사님으로 부터 기인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연구내용은 Guage Theory와 Charm Quark에 대한 연구입니다.
Guage Theory는 1964년 “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셔서 “Higgs Mechanism”으로 이어지도록 기여를 하셨습니다. 참고로 Higgs Mechanism은 2013년 Peter Higgs와 François Englert가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업적입니다. 또한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Gerardus ‘t Hooft의 연구방향이 바뀌도록 조언했다고 하고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Hugh David Politzer는 수상소감에서 당시 입자물리학자 커뮤니티는 Benjamin Lee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언급을 했을 정도입니다.
Charm Quark는 1975년 이 입자의 질량을 계산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1977년에는 Cosmology에 대한 무거운 Neutrino 질량에 대한 lower bound에 대한 논문을 내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분의 연구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일리노이주 고속도로에서 대형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것은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 때가 1977년 6월 16일이었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마지막 유고 논문은 1977년 3월말에 제출되어 9월에 출간되었습니다.

1960년대-70년대는 대한민국은 아직 무슨 연구를 할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외국 유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죠. 이휘소 박사님께서 오랜동안 살아계셨더라면 더 많은 과학적 공헌을 하셨을텐데 참 아쉽네요. 아래는 이휘소 박사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