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꿈의 치유 (1) – 1장-2장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그간 너무 특정 분야의 책만 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크리스찬 도서를 겸해서 읽으려고 생각합니다. 집에 마침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좌절된 꿈의 치유” 데이빗 A. 씨맨즈 지음/이갑만 옮김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Living with your Dream (꿈이 있는 인생/꿈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책 자체도 내용이 긍정적인데 번역서 제목은 좀 다르게 지어진 느낌이 드네요.

이 책은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책입니다. 요셉은 잘 아시다시피 유태인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어서 네번째 족장이죠. 먼저 1장과 2장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다루고자 합니다.

머리말

지은이인 데이빗은 책을 쓰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오랜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이 책이 나오기 20년전에 하나님으로 부터 “책을 쓰기 시작하라”는 마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른 마음의 소리인 “누가 네가 쓴 책을 읽겠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요. 하지만 정말 우연한 순간에 출판사 오너의 딸이 이 분의 설교를 듣고 출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그 첫번째 책이 유명한 “상한 감정의 치유 (Healing for Damaged Emotions), 1981년”입니다. 이 책은 그로부터 9년만인 1990년에 나왔습니다.

1장 큰 꿈을 가져라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어느 한 때, 꿈에 사로잡히고 그 꿈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꿈은 강한 전염성을 갖는다. 꿈이나 환상 (Vision)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핍박에도 견뎌내며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 나간다. 그리고 인내함으로 궁극적인 목표를 추구해 나간다.

요셉의 꿈은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꿈이었으나 요셉은 결코 그 꿈을 잊지도 않앗고 의심하지도 않았으며 버리지도 않았다. 그 꿈이 거의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보일 때 조차도 그 꿈은 그의 앞에 높고도 거룩한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시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 꿈을 성취할 수 있게 일하신다는 확신으로 그를 충만하게 했다. 요셉의 이야기는 곧 하나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꿈이나 환상은 우리의 마음 화면 위에 펼쳐지는 그림이다.

나의 주된 관심은 크리스찬들이 어떻게 자신의 특유한 꿈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삶에서 실현하는가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이 그 꿈을 통해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시는가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꿈을 가지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꿈을 주실 때 염두에 두신 뜻을 성취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하시게 허용할 것이냐?“하는 것이다.

요셉은 너무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요셉의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우리의 삶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일터 중 하나가 우리의 잠재의식 (무의식이 아니라) 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꿈과 영감은 종종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나님은 작정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개성과 재능을 개발하고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나이가 들었다고 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꿈은 전생애 가운데 계속 진행 중인 것이니까요.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의 가정이 야곱의 일부다처제, 근친상간, 형제들간의 알려과 시기질투, 편애, 많은 혼란 등에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상황을 하나님은 능숙하게 다루시며 그것들로도 기적을 행하시기까지 한다는 것을 이해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새로운 전망 (Perspective)를 보여주신다. 이 새로운 전망이 먼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잘못된 상황을 극복하고 살 수 있게 하며 우리 스스로가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이끄신다.

새로운 Perspectives를 갖게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번역자께서는 “Perspectives”를 “전망”이라고 번역을 하셨는데요. 고민의 지점이 느껴집니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관점”이라고 번역을 하는 단어인데 특이하게도 “전망”이라고 번역하신 이유는 이 Perspectives가 현재나 과거의 어떤 일을 보는 관점이 아니라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는 “전망”이라고 저자가 얘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젊고 어린시절의 시절 많은 어려움과 좌절, 가난, 폭력, 실패들이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 제가 그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미리 포기해 버린 저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때 하나님이 저에게도 새로운 Perspectives (전망)을 주셨어요. “지금의 어려움과 난관은 네가 극복하고 나의 아들로 살기 원한다.”는 그런 전망이었는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 순간부터 상황보다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힘이 생겼습니다. 든든한 하나님이 뒤에서 힘차게 밀어주시고 재능과 기술을 주시고 또 좋은 만남 (나쁜 만남도 있었지만)을 주셨거든요. 결국 제 스스로 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해 주셨어요.

요셉의 이야기는 악 가운데서도 선을 이끌어내시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믿어지기 힘든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의 교훈이다. 창세기 39장에서는 네번이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그랬기 때문에 가장 처참한 비극이 가장 찬란한 승리로 바뀌는 것이다.

2장 꿈이 있는가?

우리가 한번 가졌던 꿈, 나의 삶을 향한 높고 거룩한 환상을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라. 내가 그 목표를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는가? 크리스찬은 누구나 하나님을 향해 “상상을 이루는 자 (Imagineer)“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사용할만한 신성한 상상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칭찬하신다.

요셉이 어머니를 잃었던 12살 때 할아버지 이삭은 163세였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때에 이삭은 168세였고 이삭은 180세에 죽었다. 최소 5년간 할아버지 이삭의 곁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 이삭이 손자 요셉의 영적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엄마 잃은 가련한 십대 손자를 날개 아래 품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할아버지 이삭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요셉이 눈 먼 할아버지 이삭의 발밑에 앉아 이삭의 놀라운 이야기 (이삭의 아버지 요셉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죽이려한 사건)에 넔을 잃고 몇번이고 들려달라고 조르고 귀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바로 이런 이삭과 요셉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요셉에게 약속의 유산을 보여주시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정말 처음 배운 부분입니다. 저는 한번도 이삭과 요셉이 만났을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요 저자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삭과 요셉이 어쩌면 아주 친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종적인 이삭의 성품을 통해서 요셉도 오랫동안 기다릴 줄 아는 좋은 성품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요셉이 오래 참는게 아버지 야곱과 너무 안 어울린다고 그동안 생각했거든요. 이제야 좀 의문이 풀린 것 같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게된 것은 꿈 얘기가 있기 이전에 일어났다. 야곱은 하나님으로 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고 변화되었지만 그의 집안 내력의 파괴적인 요소들 (이삭이 형 애서를 편애한 것) 은 여전히 강력히 남아 있었다. 정서적 영적 치유 이외에도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장기간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방법을 배워 익히는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이 고통은 마치 수술과 같은 것이다. 이 고통 대신 자신의 능력을 선택하면 깨어진 꿈으로 들어가는 길에 다시 서게 된다.

하나님의 방법은 익숙한 방법이 아니죠. 오래 걸리고요 그러니까 꽤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능력을 선택한다는 말은 참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처리해 버리는 걸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요셉이 너무 쉽게 꿈을 얘기함으로써 생긴 문제를 생각하면 꿈은 먼저 침묵에 의해 시험해야 하고 시간에 의해 단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꿈과 환상에는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시간표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꿈과 꿈의 일정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한다. 요셉의 인생 후반부에서 요셉의 꿈의 진정한 의미를 명백하게 볼 수 있다. 요셉의 꿈은 개인적 성취가 아니었다. 요셉에게 개인적 성취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는 처음 꿈을 꾸었을 때 자기와 형들이 주종관계가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꿈이 실현되었을 때에는 진정한 형제와 가족으로서 형제들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꿈을 정련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 모두를 포함한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존재 (Being)으로서 균형잡히길 원하신다.

요셉은 꿈의 의도와 내용 모두를 시간과 단련을 통해 성숙해짐으로서 깊이 있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완전한 상호관계를 시간을 가지고 이루려 하기 보다는 신속한 결과만을 성취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거듭해서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나의 이런 혼란한 동기를 정제되게 하신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하나님은 꿈을 손보신 것이 아니라 꿈꾸는 자를 손보신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속에 계셨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정련의 과정에 함께 계셨다.

여기까지가 2장 얘기입니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관계가 있는거죠. 코로나 기간동안 격리되어 살고 온라인으로 미팅하고 그런 생활을 2년여를 해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정말 작은 한마디 인사조차도 얼굴 보고 하는 것과 온라인으로 화면보고 하는 건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걸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특히 나이 들면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는데요. 하나님 안에서 사는 크리스찬에게 이 말은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바꾸실 나를 기대하고 그에 맡기고 인내하며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1장과 2장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저자가 책을 쓰려는 꿈을 주신데부터 이룬 때까지 10년 단위의 과정이 있었다는 걸 얘기했어요. 2장에서는 저자의 아버지 얘기부터 자신의 얘기까지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까지 꿈과 변화의 과정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크리스찬으로 살기로 결심한 데에는 바로 이런 대를 이어서도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다는 걸 배우고 난 것도 있어요. 요셉은 죽을 때 유언을 하는데요 420년 이후에 있을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때에 자신의 유해를 들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 라고 유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게 신기하게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420년이면요 30년이 1세대라고 하면 14세대가 지난 이후에요. 굉장하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굉장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이상이 2장까지의 내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고요. 다음에는 3장 이후를 읽고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 책은 총 10장까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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