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3) – 여호와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번 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대학에 보내시고 졸업까지 이끄셨는가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목은 “여호와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머니께서 매일밤 저의 대학입학을 위해 하나님을 붙드시고 절규하며 철야기도를 하셨던 것 때문일까? 저는 결국 대학에 기적과 같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담금질하셔서 졸업까지 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길이로 저의 가방끈을 늘이신 것입니다.

제가 고3이 되던 해에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입시를 위한 학부모 100일 철야기도”를 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 발표가 있던 시기는 이미 우리집은 부도와 상실감에 빠져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에게는 대학에 가야한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있던 때이기도 합니다. 이 100일 철야기도에는 수험생이던 우리들의 기도제목을 내야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철야기도를 할 수 있게된 것을 매우 기뻐하시며 상기된 얼굴로 하루는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기도제목을 뭐라고 적으면 좋겠니?”

고등학교 육성회비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대학 등록금이 나올리 없는 저로서는 제가 대학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전액장학금 밖에 없고 대학도 등록금이 비싼 사립대학보다는 등록금이 비교적 저렴한 국립대학을 가야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현재의 상황에서는 기적이 없이는 불가능한 꿈일뿐이었죠. 그래서 어머니께 반 체념한 상태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제가 국립대학 전액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대학에 갈 수 없어요. 입학시험 만점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어머니는 저의 너무나 큰 (?) 기도제목에 너무나 기뻐하시며 저의 대학입시 기도제목을 교회에 내셨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교회성도들은 저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셨고 제가 어떤 성적으로 대학에 가게될지 은근히 기대마저 하게 되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미 여러상황은 제가 공부에 집중하기에 너무나 저의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심지어 입시공부가 막바지이던 시절에는 경찰들과의 출현했던 날 이후로 저는 이미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한 상태로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읽는데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입학시험 만점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었죠.

저는 포기했지만 그러나 저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제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계셨고 매일 기도를 하시고 오셔서는 저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성도들이 너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고 있어!”

포기하지 않으신 분은 어머니 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닛시 (하나님은 승리하신다)나 여호와샬롬 (하나님은 평화를 주신다)와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죠. 나중에 대학부에 가서 배운 단어 중에 저에 대한 하나님을 잘 설명한 단어 하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 하나님은 준비하신다.

시간이 지나 결국 대학입시의 날이 되었고 저는 시험을 무사히 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치른 몇일 후 점수를 받게 되었고 당연히 학력고사 만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점수를 받았지만 그래도 고2때까지 공부는 좀 하는 편이어서 대학을 아주 못 갈 성적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저를 대학에는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셨고 제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담임선생님과 애를 쓰고 계셨습니다.

저희 학교는 강남8학군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3개 대학에 반에서 20-25등까지는 보내려는 교장선생님의 특별한 노력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도 저를 연세대나 고려대 정도는 보내려고 하셨는데 문제는 저의 대입성적이 저조했고 저의 상황이 전액 장학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루는 저를 부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 성적이라면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있는 보건학과에 가면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보건학과를 졸업하면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어. 여기에 지원해 보자!”

하지만 저의 생각은 좀 달랐어요. 아버지의 부도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만약 정말 만약 대학을 갈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필요했고 공부기간이 짧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의미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당시 중풍을 앓고 계셨는데 삼촌이 한의사가 되어서 가업을 잇기를 원하셨지만 한의대에 가지 않고 일반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많이 상심하신 상태였어요. 저는 편찮으신 외할아버지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한의대를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는 너무나 기뻐하셨어요.

당시에는 전국에 한의대가 있는 대학은 5개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중에 전기에 있는 대학은 3개밖에 되지 않았어요. 제일 좋은 대학은 경희대학교 한의대였고 두번째는 원광대학교 한의대였습니다. 그리고 대구한의대라는 단과대학이 있었습니다.

제 머리속에는 조금이라도 입학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에 지원할 필요가 있어서 원광대학교 원서를 얻어야 했어요. 교보문고에서 원광대학교 원서를 교부한다고 해서 두번이나 찾으러 갔지만 어쩐 일인지 2천여장의 원서는 금방 동이 나버려서 저는 원광대학교 원서는 손에 쥐지 못하고 대구한의대 원서만 간신히 얻은 상태였어요. 그날까지 원서를 얻지 못하면 지원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조급해 하며 종로에서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제 마음속에 드는거에요.

“경희대로 가자! 경희대 한의대에도 가능성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저는 교보문고로 가던 발길을 180도 돌려서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삶이 180도 바뀌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이미 시간이 2시를 넘어서고 경희대학교에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찾는데 애를 먹어서 5시쯤 되어서야 경희대학교에서 마침내 원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밤 경희대와 대구한의대 원서를 가져온 저를 보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깜짝 놀라셔서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하셨어요. 그러더니 아버지께서 갑자기 생각이 나셨는지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래 한번 해보자.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지원을 해보자!”

저의 결정을 들으신 담임선생님은 펄쩍 뛰셨습니다. 안된다는 거에요. 왜 연세대 보건학과를 가면 전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어려운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모험을 거느냐는 거였죠. 그것도 그럴 것이 경희대학교 한의대는 서울대생도 자퇴하고 다시 입학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곳이었고 평생이 보장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예과2년 본과4년 합쳐서 6년만 공부하고 졸업하면 개업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학부모들과 수험생 사이에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보니 담임선생님께서 이렇게 펄쩍 뛰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도 완강하셨어요. 저를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담임선생님과 각을 세우시고 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주셨지요. 지금도 그 날 아버지께서 저를 위해 싸우시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어요. 결국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아신듯 원서를 던져 놓으시고 자리를 비우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와 저는 경희대학교 한의대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지망을 어디로 할 것인지가 문제였어요. 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2지망은 화학과가 어떻겠니? 화학과에 가면 화학회사나 교사도 될 수 있고 제약회사에 다닐 수도 있어.”

아버지는 화공약품회사를 하셨기 때문에 화학전공자가 아니었던 것이 한이셨던 모양이에요. 아마 그래서 화학과로 저를 이끄신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는 사실 화학보다는 물리를 더 좋아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원서를 들고 경희대 접수대로 갔는데 그 접수하는 분이 원서를 가만히 보시더니 저에게 그러시는거에요. 화학과 수원이요? 서울이에요?

알고보니 화학과가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에 있는데 그 사실도 처음 알았지만 저는 당연히 제가 서울캠퍼스에 지원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수원캠퍼스에 있는 화학과로 지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무원의 도움으로 저는 1지망 한의과 2지망 화학과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 발표가 나기 하루 전에 저는 고열이 흐르며 많이 아팠습니다. 지원을 하고 나니 한의과의 경쟁률이 너무 높았습니다. 거의 기적이 있지 않고는 합격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이제 정말 대학은 안되나보다!’라고 생각이 들은 나머지 저는 그날밤 너무나 많이 아팠습니다. 꿈을 잃은 자의 마지막 절규였던 것 같아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교회에는 경희대 한의과 교수이신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 분을 통해 부모님은 제 이름이 한의과 명단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아셨다고 해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는 저로서는 이 시간이 제 평생에 꿀 수 있는 마지막 대학입시의 꿈의 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다음날 아버지와 저는 경희대의 발표장으로 갔고 역시 한의과에는 아무리 몇번을 봐도 제 이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낙심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아버지가 크게 저를 부르시는거에요.

“합격했다! 합격했어! 화학과에 합격했어! 축하한다! 정말 수고가 많았다! 축하한다! 축하해!”

하며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시며 저의 등을 두드리셨습니다. 이게 제가 화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얘기에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화학이라는 학문.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은 무조건 외우라고 이론보다는 암기법만 가르치셔서 저는 그 때까지 화학이라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국사같은 학문일거라고 생각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입학을 하게 된 저는 이제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화학과에 들어왔으니 이 화학과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든지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아니면 다른 식으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야하는 길밖에 없었죠. 아버지는 저에게 이미 재수는 안된다고 말씀을 하시고 현재 입학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종용을 하는 상황이었어요.

대학입학이 결정된 후 겨울에 대학부의 첫번째 수련회가 있었는데 이 수련회 강사 목사님은 최이우 목사님이라는 분이셨어요. 이번 수련회는 금식 수련회여서 3일간 금식을 하는 것이었는데 수련회가 끝나는 날 목사님께서 새로운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3일간 금식 수련회를 했는데 이 금식기간을 40일로 늘여서 아침만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이렇게 해서 저는 40일간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아침식사를 먹을 돈도 없었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움켜지고 매일 12시가 되기 까지 그 전날 6시부터 금식을 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의 기도제목은 한가지 였습니다.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대학 입학 후 제가 향한 곳은 도서관이었고 도서관은 4년간 제가 보낸 저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저는 일반화학 (General Chemistry) 책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일반 물리 (General Physics)와 일반생물 (General Biology)도 수강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역시 일반물리가 가장 재미있었고요. 일반화학은 그 다음이었어요. 그래도 그나마 공부를 해보니 일반화학이 그동안 알던 암기과목이 아니라 나름의 원리와 이론이 있는 과학이라는 것을 대학에 가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점점 화학이라는 학문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몇개월이 지나고 나서 2학년 선배가 도서관에 처박혀있는 저를 불러서 갑자기 두분의 KAIST선배를 소개시켜 주시는 것이었어요. 그 중 한분은 경희대학교 화학과에서 최초로 KAIST에 가신 이태석 박사님이셨고 다른 한분은 그 분의 후배로 역시 KAIST에서 조기박사로 박사과정을 하시고 계신 김경수 박사님이셨어요. 당시에 KAIST가 경희대 바로 옆 홍릉캠퍼스에 있었기 때문에 그날 마침 학교에 잠깐 들르신 것인데 2학년 선배님이 저를 눈여겨 두셨다가 이 분이 오셨을 때 소개를 해 주신 것이었죠. 사실 그 때 저는 화학과 동기들 9명과 함께 2학년 전공서적인 유기화학 (Organic Chemistry) 원서를 함께 읽으면서 스터디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아마 선배님들이 저를 찾은 이유였던 것 같아요. 그 자리에서 뜻밖에 제안을 해 주셨어요. 이태석 박사님께서 겨울방학 기간동안 우리를 근처 카페에서 데리고 유기화학책 스터디를 해 주시겠다는 것이었어요.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했죠. 영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이 개념이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KAIST에서 조기박사로 박사과정을 하시는 대선배님이 무료로 커피를 사주시면서 스터디를 해 주시겠다니 이 얼마나 든든한 것이겠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1학년 겨울방학동안 매주 1 Chapter씩 16주간에 걸쳐서 스터디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9명으로 시작을 했지만 하나 둘 떨어져 나가서 결국 저와 2명의 친구가 끝까지 남게 되었고 이 친구와 저는 졸업때까지 전액장학금 1명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가 되게 됩니다. 그렇게 이태석 박사님과 즐거운 겨울방학을 지내고 난 후 유기화학 첫 강의를 듣는 순간부터 저의 머리속은 갑자기 유기화학의 모든 원리가 차곡차곡 정돈되기 시작했고 매번 1등을 놓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전공과목에서도 저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특히 물리화학 (Physical Chemistry)를 잘했고 다른 두개의 전공과목도 공부를 잘해서 2학년까지 전체 수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선배님때까지 전통이 하나 있었는데 매년 한명씩 1-2학년 전체수석은 졸업 때까지 전액장학금을 주는 삼의원장학금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당연히 우리 때에는 제가 그 대상자가 되었는데요 무슨 일인지 그 해 부터는 학부생을 주는 대신 대학원생을 주기로 결정이 되어 버려서 저는 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저는 나머지 2년을 더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 때까지 계속해서 수석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돌아보게 되면 “여호와 이레 –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어머니께서 하신 100일간의 철야기도와 수련회와 함께 한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하도록 저를 기도로 준비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KAIST 선배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제가 가장 최상의 조건에서 전공과목을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셔서 대학 졸업까지 무사히 (?) 전액장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준비하신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이 뿐이 아니셨어요. 이후에도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길로 이미 인도하신 큰 계획을 가지고 저를 계속해서 인도해 주셨어요.

고3 시절 1학년때 맞았던 아버지의 부도, 대학입시를 위한 100일 학무모 철야기도회, 경찰과의 극한 대치의 날, 함석헌 선생님의 두권의 책, 40일간의 아침금식기도, 경희대학교 화학과에 2지망으로 입학하고 KAIST 선배님이신 이태석 박사님께 배울 수 있었던 16주간의 즐거웠던 스터디 생활 등등…

너무나 모든 과정이 마치 자로 잰듯이 정확히 계획된 놀라운 하나님의 준비하심..

이 준비하심은 시간이 지날 수록 오히려 점점더 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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