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4) – 나의 Mentor 이태석 박사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종종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계획하심의 과정 중에 Moderna가 있을 따름이지 제가 무슨 대운이 있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이미 저의 앞의 글을 읽으셨다면 조금은 이해를 하시지 않을까 기대해 보며 4번째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이태석 박사님은 저를 특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반갑게도 이태석 박사님도 신실한 크리스찬이셨고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성품도 매우 온화하시고 언제 나 웃으셨을뿐만 아니라 아무리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도 조용히 웃으시고 핀잔 한번 없이 조곤조곤 상세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16주간 이태석 박사님과의 만남은 저의 인생에 있어서 평생을 잇는 멘토와의 만남으로 발전하게 되어서 제가 진로를 정하고 커리어 상에 중간 중간 고비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셔서 저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과 격려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태석 박사님과 공부를 하면서 우리는 유기화학에 대해서 배울뿐만 아니라 이태석 박사님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접근방식등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고작 학부 1학년 학생인 저에게 이태석 박사님은 큰 산과 같은 분이었고 평생의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실험의 중요성과 항상 실험실에서 플라스크를 놓치 않고 일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은 저에게도 큰 울림이 되어 제가 지금까지도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저도 중창이나 합창을 좋아했는데 이태석 박사님도 대학 합창반 활동을 하시며 형수님을 만나시는 등 많은 부분에서 저와 이태석 박사님은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한가지 차이점은 제가 가지지 못한 온유함이었는데 차갑고 냉정했던 저에게 이태석 박사님이 한결같이 보여주신 온유함은 큰 위로가 됨과 동시에 정확히 가야하는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르쳐주시는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온유함”이라는 것은 크리스찬의 표현인데요 남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드럽되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단호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태석 박사님을 통해서 KAIST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전액 국비장학금 제도, 식비 등 생활비 지원 제도, 기숙사 생활관, 조기박사제도 (석사입학 1년 후 성적에 따라 바로 박사학위과정으로 진입하여 4년만에 석박사학위를 동시에 끝내는 고속학위과정), 석사입학 병역특례제도 (KAIST 석사과정 입학과 동시에 5년간의 병역특례를 받음으로써 석사과정 이후 기업체에서 3년만 근무하면 병역이 마쳐지는 제도 – 당시 타대학교에는 없어서 기업체에서 5년간 병역특례를 받아야 병역을 마칠 수 있었슴 따라서 KAIST출신은 병역기간이 2년 단축되는 효과로 조기 유학이 가능해짐) 등등 다양한 실생활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상 이 만남을 통해서 제가 KAIST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심지어 조기박사가 될 수 있다면 박사학위까지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미국에 나온 이후에 다니던 바이오텍 회사가 Merck에 인수되면서 전직원이 정리해고가 되었을 때 이태석 박사님이 대표로 계시던 바이오텍 회사의 경영진이 이 박사님과 대치되는 임원을 영입하면서 그 중 사장급 임원이 저에게 조인하기를 제안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절했죠. 나중에 그 사장급 임원이 저와 이태석 박사님의 관계가 그렇게 깊은 줄 몰랐다면서 저에게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만큼 이태석 박사님을 존경했고 평생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태석 박사님께 도움은 되지 못할 지언정 피해를 드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대학교 2학년부터 KAIST를 일찌감치 저의 다음번 진로로 생각하고 준비를 했고요 그 생각은 KAIST가 홍릉에서 대전으로 이전하고 과학기술대학교와 합병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생각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저의 동기들은 KAIST 이전 발표가 나면서 다른 대학원으로 진로를 변경했는데 저만은 시험을 치루었고 좋은 성적으로 KAIST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KAIST에 입학하고 대전 캠퍼스의 기숙사에 살게 되었을 때 한번은 당시 화학연구소 (KRICT)에서 근무하시던 이태석 박사님 연구실에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도 즐겁게 맞이해 주셨고 제가 박사과정을 하는 동안에는 바이오텍을 창업하셔서 KAIST내에 있는 보육센터에 계셨는데 그 때에도 종종 찾아뵈면 언제든지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연구실에 계셨습니다. 진정한 연구자이셨던 것이죠.

KAIST에 입학하고 나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 때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겸손해라. 네가 가장 못났다고 여기고 항상 배우고자 노력해라. 절대로 나대지 마라”

이런 말씀을 해 주셔서 저는 다행히 그 잘난 동기들이나 선배님들 사이에서도 제가 가야할 배움의 길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보다 더 이태석 박사님이 처음 KAIST에 들어오신 후에 겪으셨을 많은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경희대학교에서는 물론 레전드가 되셨지만 막상 KAIST 안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왜 없으셨겠어요? 하지만 그럴 때에도 특유의 낙천적이로 긍정적인 자세로 잘 헤쳐 나시고 동기들하고도 관계를 잘 맺으셨기 때문에 무사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박사학위를 마치셨습니다. 저에게 유기화학을 가르쳐 주시던 때가 벌써 박사님이 마지막 학기를 향해 가는 시기셨어요. 졸업논문 디펜스 등 바쁘셨을 때인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게 여깁니다.

또 하나는 이태석 박사님께 유기화학을 배운 것 때문에 저도 유기화학자가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기화학을 배운 교수님이 계신데 저는 유기화학을 배운 첫번째 교수님이 이태석 박사님이십니다. 물론 이태석 박사님은 그때 그냥 박사과정 학생일뿐 교수 신분은 아니셨지만 제 마음에는 이미 첫번째 교수님이시자 마지막 교수님이시죠.

제가 KAIST에 입학 후 조기박사를 포기하고 석사졸업 결정을 했을 때 아쉬워하셨고요. 제가 대기업을 다니고 나서 다시 KAIST에 박사학위과정에 들어왔을 때는 기뻐해 주셨고 잘한 결정이라고 칭찬해 주셨고요 제가 독일로 나가게 되었을 때에는 격려해 주셨습니다.

항상 모든 면에서 저의 멘토이시면서 큰 산으로 언제나 우뚝 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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