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7) – 독일에서 만난 선교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손은 정말 오묘합니다. 오묘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저의 삶의 여정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죠. 저의 삶의 계획 가운데에는 하나 없는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의 시작이 “독일”이라는 나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2년정도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들었는데요 당시 문법대로 정확히 딱딱 들어맞는 독일어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제가 독일에 가서 살게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특히 이것이 저를 어떤 삶으로 인도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이제 그 이야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샬롬~

마가복음 10장 29절 – 30절 말씀을 통해서 집을 다시 산다는 의지와 결별하고 해외유학의 길도 포기하고 따라서 당연히 박사학위에 대해서도 포기하고 선교에 대해 열심히 살던 어느날 저는 뜻밖의 전화를 받고 지도교수님의 권유하에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마저 받게 됩니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여정이었죠. 어찌 되었든 마침내 유기화학 박사가 되었어요. 그것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Nucleoside Chemistry로 말이죠. 그리고 저는 연구원의 생활을 접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투자자로서 돈을 많이 벌기로 계획을 잡게 돼요. 그래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2년간의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요 하지 않던 술을 마시고 방탕한 삶에 들어갑니다. 마치 과거에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신기하게도 저도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저의 삶에서 갔는 의미는 몇가지가 있는데요.

  •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삶은 과학자의 길이다.
  • 돈을 쫓지 말고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입니다. 결국 저는 2년만에 다시 과학자의 길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마침 선배님이 계신 바이오텍 회사에서 신약개발 책임연구원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이오텍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대표이사와의 면접에서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게 됩니다.

독일에 가서 일해 보지 않겠는가?

독일??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죠. 당장 답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대표이사께는 몇일간의 말미를 주십사하고 아내와 상의를 했습니다. 아내는 중학교 교사였는데요 매우 지친 상태여서 휴직을 하고 싶어했어요. 이 학교가 사립학교여서 휴직을 받으려면 유일하게 해외에 남편이 나가면 3년까지 휴직이 가능했는데요 제가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내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대표이사의 이야기도 3년간 독일 근무였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독일로 가게 됩니다. 독일 생활은 나쁘지 않았어요. 이미 나가 있는 연구원이 독일에서 우리 회사와 공동연구하는 교수 아래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고 대표이사의 누이가 당시 독일 법원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저는 독일 법인 연구소장 직함으로 사실상은 비지니스 사업개발을 맡아서 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하던 일도 잘 되어서 마침 독일의 대기업과 몇차례 미팅을 해서 상당히 사업이 진전이 되어 가고 있고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습니다.

독일에 가자 교회를 찾는 것이 가장 문제였는데요. 독일교회 자체가 활성화가 안되어 있고 영어로 예배하는 젊은이들 교회가 있어서 몇달간 가 보았지만 그것도 결국 오래 다니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래 저래 수소문한 끝에 어떤 선교사 한분을 만나게 됩니다.

이 분은 군인이셨던 남편과 사별한 여자 선교사이셨는데요 아들과 함께 외롭게 교회를 개척해서 선교하시면서 독일 대학교에서 학위과정을 하시고 계셨어요. 교회에 가보니 한국에서 온 파견 직원들 몇가정과 교환학생들 몇명과 함께 그 선교사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선교사님과 교제를 하면서 이 분이 정말 신실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많은 지혜를 배우게 되었어요.

사실상 저희로서는 선교사를 통한 선교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아요. 이 분의 삶 자체가 Faith Mission이셨고요 그 삶을 오게 된 얘기라든지 살고 계신 삶의 모습, 기도 생활, 그리고 섬기시는 것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이 분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시내에 있는 한 교회 건물을 빌려서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참 귀한 일이었고요. 나중에는 근처의 다른 한인 목사님이 하시는 교회와 하나로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독일 바이오텍 회사의 약속은 원래 3년이었는데 회사의 경영상황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6월경에 대표이사가 오더니 사직을 권고하더군요. 그래서 담판을 하고 8월말까지만 월급을 받되 한국으로 전가족의 이사 및 귀국비용은 지원받도록 사인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한두달 안에 다음에 일할 곳으로 가야할 상황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한국에 있는 회사들에 연락을 해 봤지만 여름 휴가 기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9월이 지나서 새해가 되어야 뭔가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구요.

당신 이제까지 돈 때문에 항상 공부를 즐기지도 못하고 했는데 이번에 미국에 가서 2년간 우리 돈을 쓰고 포스닥을 하는게 어때요? 대신 좋은 대학교로만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이래서 저는 다시 미국의 명문대학교 연구실에 이메일을 마구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일간은 유기화학 연구실에만 집중적으로 보냈는데 당시 유기화학 연구 Grant 사정이 좋지 않아서 답장이 모두 부정적이었어요. 선교사님께서 이 모든 과정에 저희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고 계셨어요. 그러던 중에 저의 마음 속에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네가 진정으로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라

그래서 생각을 해 봤어요. Nucleoside 연구를 오랜 기간 했잖아요? 이 연구는 결국 RNA나 DNA 연구와 연결이 되는데 저는 항상 도대체 RNA니 Robozyme이니 DNA니 하는게 실제로 어떻게 연구되는지 궁금한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명문대학교의 의대나 생물학 연구실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Yale 대학교의 한 교수님으로 부터 관심이 있다는 답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교수님께 제가 직접 이메일을 드린 기억은 없고 이메일 리스트를 봐도 없더라구요.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 이제 사택을 비워주어야 하는 날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컴퓨터 코드를 뽑기 전에 이메일을 확인했는데 거짓말처럼 Offer Letter 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월급과 의료보험을 모두 지원한다는 너무나 감사한 조건으로 말이죠. 우리 가족은 그날 얼마나 함께 뛰며 즐거워했는지 모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던 선교사님도 함께 기뻐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독일의 1년과정을 통해 저희들에게 현지 선교 훈련을 하셨다고 믿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저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2년간 살면서 방황했던 그리고 방탕했던 모든 앙금을 씻고 회개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다시 새로운 영으로 회복되어서 Yale University가 있는 New Haven, CT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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