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9) – 변화의 시절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살아온 내용과 더불어 미국에서 산 지 2년이 지나면서 저의 삶은 이민자의 삶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그 배경에는 몇가지 일들이 있었는데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도 있지만 또한 실질적으로 저와 가족들이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이민 관련 서류들도 필요한데요. 이런 일들이 제 주위에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그에 대해 좀 적어보려고 해요.

미국에 남기로 결정을 한 이후부터 저의 주위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변화는 Yale University 연구실 내에서 제 프로젝트의 변화인데요. 어느날 교수님께서 저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2명의 새로운 Postdoc을 고용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저의 위상이 약간 높아진 것이죠. Research Scientist 자리도 제안을 해 주셨지만 제가 학교에 오래 남으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을 한 상태였어요. 새로온 Postdoc은 중국인 여자 한명과 미국인 남자 한명이었는데요 미국인 친구는 두번째 Postdoc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더불어 몇명의 다른 Postdoc들도 조인하게 되서 연구실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구도 지난 2년간은 약간 답보 상태였다면 이 시기부터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변화는 교회에서 일어난 변화인데요. 독일에서 새로오는 Postdoc 한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특이하게도 오실 때부터 H-1 visa로 오시고 오시자 마자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해서 갑자기 우리 모두는영주권 준비를 하게 됐어요. 저도 미국에 남기로는 했지만 이런 이민 관련된 것에는 문외한이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분이 오심으로 해서 저의 신분 문제를 위한 서류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세번째 변화는 담임목사님이 6개월간 안식년을 가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6개월간 남미의 선교지를 돌아보고 오시겠다고 하셨는데요. 안식년 기간동안 설교를 해 주실 분을 물색하던 중 남미에서 오신 선교사님 한분께 6개월간 강단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드렸고 승낙을 받아 6개월간 새로운 말씀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교회의 새벽기도가 활성화되도록 바람을 일으키셔서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저도 이 기간동안 성장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네번째 변화는 좀 규모가 큰데요. 한국에서 PD수첩을 통해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사건이 크게 대서특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통 논문 문제는 다른 연구자들의 문제 제기로 해당 논문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논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는데요 이번 건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로 MBC PD 수첩이라는 탐사기획 프로그램에서 제기하고 Science와 Nature와 같은 저널들이 이를 바탕으로 조사를 해서 결국 이에 해당하는 논문의 증거 사진들이 조작되었음이 판명나게 되고 그 논문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미국에서 Postdoc 중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파면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한국인 Postdoc들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당혹스럽고 쉽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다섯번째 변화는 저와 함께 일하던 Postdoc들의 저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일이에요. 제가 워낙 무디다 보니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늦었지만 알았다 하더라도 보통 중요하지 않은 일은 무시하고 지나치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주의여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큰 일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인 Postdoc의 태도가 초기에 우호적이고 배우려던 자세와는 달리 언제부턴가 드세어지고 저를 무시하는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처음에 이 친구가 Arkansas 출신으로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있어서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보다 좀 큰 문제였구요. 여하튼 이런 일이 몇차례 있으면서 갑자기 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들었습니다.

여섯번째 변화는 교수님의 변화인데요. 처음 약속과 달리 저의 영주권 수속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었습니다. NIW 수속에 중요한 Reference Letter를 써 주시기로 하시고는 차일피일 미루셔서 결국에는 지도교수 추천서 없이 이미 7개의 추천서를 모았고 그 중 6개는 타기관에 계신 분들의 Independent Reference Letter였기 때문에 저의 케이스는 사실 이미 상당히 좋은 케이스였어요. 어쨋든 지도교수님의 추천서 없이 영주권 수속을 마치게 되었고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일곱번째 변화는 담임목사님께서 안식년에서 돌아오신 후 남미의 니카라구아로 선교사로 가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시면서 사임을 통보하신 일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 온 성도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고요 담임목사님이 니카라구아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거리의 아이들의 충격적인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선교사로 가신다는 것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의 선교 후원을 준비하는 중요한 서류를 만들었고요 담임목사님은 얼마 안 있어 선교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 없이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청빙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기간을 가졌는데요. 이를 안쓰럽게 여기신 남미 선교사님께서 선교지에 복귀할 시기를 미루시고 1년을 더 설교목사로 섬기시기로 결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임목사님이 없이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목회를 경험하는 1년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덟번째 변화는 가장 충격이 큰 변화였습니다. 제가 Postdoc을 한지 3년 6개월이 지난 어느날 지도 교수님께서 저를 아침 일찍 부르셨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지도 교수님을 뵈었는데 교수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몇개월간 너와 불가리아 포스닥의 연구에 대해 우리가 내부조사를 했는데 너의 연구는 문제가 없었지만 불가리아 포스닥의 연구는 가짜로 판명났다. 오늘 우리가 랩미팅을 할텐데 그동안에 시큐리티 요원이 와서 불가리아 포스닥을 데리고 갈거고 미국을 떠나게 된다. 네가 그와 그동안 해오던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받도록 하고 대신 그 포스닥에게는 이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표정관리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새로온 어떤 포스닥 동료가 저에게 제가 한 실험을 재현한다고 해서 제가 도와주곤 했거든요. 알고보니 그 친구가 재현한 것은 연구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저와 함께 했던 두명의 포스닥 특히 Arkansas 출신 미국인 포스닥이 주도한 사실도 알 수 있었죠. 그동안 왜 나를 차갑게 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실험실에서 제가 가장 친했던 동료는 그날 쫓겨나기로 한 불가리아 포스닥이었어요. 우리는 항상 점심을 같이 먹고 새로운 연구계획을 기획하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 가장 친구가 오늘 이후 볼 수 없게 된 것이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날 결국 우리들이 따로 모여있는 동안 불가리아 친구가 두명의 건장한 시큐리티 요원과 함께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가게 된 것은 불가리아 포스닥이었지만 사실 이 조사가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사건으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로 볼 때 저를 표적으로 한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요.

아홉번째 변화는 제가 쓰던 논문에서 저의 순위가 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날 제가 시작해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던 논문이 투고되기 전에 주저자 두명이 Arkansas 포스닥과 중국인 포스닥 그리고 저 이렇게 순서로 되어 있고 제가 3번째 저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따로 찾아가 논의한 끝에 세명이 공동제1저자로 되었지만 순서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바로 나다.

이 음성과 함께 저는 논문에 대한 미련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용주이시다“라는 사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저에게 이번에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논문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밀어내고 첫번째 저자가 된 포스닥은 저의 지도교수와 회사를 설립해서 함께 7년간 일을 하다가 결국 회사가 실패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한동안 다시 포스닥 생활을 해야 했고 두번째 저자였던 중국인 포스닥은 나중에 연구 이외의 다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과학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열번째 변화는 지도교수님이 저를 연구실에서 내보내기로한 결정이었습니다. 첫번째 변화가 저에게 좋았듯 마지막 변화는 저에게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지도교수님은 마지막까지 제가 좋은 오퍼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신경쓰시고 기다려주시는 미덕을 보여 주셨고 캘리포니아 바이오텍 2군데와 보스턴 바이오텍 1군데의 최종 오퍼를 받고 그 중에서 보스턴으로 가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회사에 취업한 시기가 2008년 금융위기가 있기 바로 전 해인 2007년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포스닥 모두가 영주권을 받았지만 실제로 취업까지 한 사람은 제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여러가지 형태로 어려움을 주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저를 보호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저를 인도해 주심으로써 제가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포스닥 기간 후반부에 일어난 10가지 변화를 시기 순으로 나열한 것입니다. 고용주이신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셨고 제가 좋을 때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항상 곁에서 저를 지켜주고 계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양 달콤한 말로 안심을 시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 사람들이 하는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힘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