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퇴직 후의 삶이 걱정된다면 이들처럼 – 라이너 전성기 재단 이인철 기자 10/25/2019
퇴직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퇴직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퇴직을 예습하지 못했지만 공부로 퇴직 후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강찬영, 박경옥 부부를 만났다.
20~30대의 퇴직과 달리 50대 이후의 퇴직은 2라운드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크다. 특히 권고사직 같은 비자발적 퇴직은 불행의 시작이자 나락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강찬영(59), 박경옥(56) 부부에게도 퇴직은 원하던 시점에 일어나지 않았다. 대기업인 한진해운에서 27년 넘게 일한 남편 강찬영 씨가 퇴직한 것은 6년 전이다.
“정년 시스템 안에 있었다면 62세가 정년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겠지만, 당시에는 열심히 일을 했고 실적도 좋았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어요.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게 임원이었지만 당시에는 임원들도 보통은 계약이 연장됐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해도 계약이 연장되겠구나 싶었지요.” _ 강찬영
“우리가 약간 방심하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50대가 되면서 앞으로 뭘 하고 살까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퇴직의) 위험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당연히 아무런 대책이 없었어요.” _ 박경옥
남편의 퇴직은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퇴사 후 4개월 정도 쉬다가 중소기업의 부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해운회사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항공해운 물류회사였다.
퇴직 전에 미리 예정된 자리였기에 불안함은 없었다. 그런데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다시 회사를 나왔다. 이후 강 씨의 재취업 도전은 2년여 동안 계속된다. 그 기간 인맥에 기대어 약속받았던 자리가 어그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37평형 아파트를 전세로 내주고 전세보증금에 돈을 보태 16평형 빌라로 이사했다. 강 씨는 매일 온라인으로 디지털 대학 강의를 들은 후 왕복 2시간 거리의 택배회사에서 택배 분류와 상차 일을 하고 아내 박 씨는 남편의 퇴직 이후 분노 조절과 동의보감에 대한 강의를 하며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나무옆의자)라는 책을 냈다.
Q 전혀 예상하지 못한 퇴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퇴직을 하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아내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는 조직이란 시스템에서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매달 나오는 남편의 월급이 울타리였죠. 안락하게 살았는데 퇴직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방법이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편 일을 성실하게 했기 때문에 퇴직을 앞서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첫 번째 회사에서 퇴직을 했지만 금방 재취업을 했고 매월 받는 급여도 변동이 없었어요.
Q 당장은 아니더라도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었을 텐데요.
아내 남편이 두 번째 퇴직한 후에 6개월 정도는 다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다가 2년 가까이 실업 상태가 됐지요. 그 기간에 생활비를 줄이지 못했어요. 예전 소비 습관을 유지하다가 퇴직금이 바닥나면서 위기를 느꼈지요.
급여가 들어오고 집이 있고 빚도 없고 하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무방비 상태였던 거죠. 그나마 개인연금을 넣었던 게 큰 도움이 돼요. 아직 퇴직 전이라면 연금은 꼭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Q 위기감이 실제 위기로 바뀐 것은 역시나 경제적인 부분에서겠지요?
남편 퇴직하고나서 수입이 한정된 범위에서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기존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규모를 축소한 거지요. 규모를 유지하려고 무리해서 살 이유가 없었어요. 전세금으로 빌라 구입하고 남는 돈과 저축을 합해서 오피스텔을 사서 월세 수익을 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 바로 옆에 회사 건물이 붙어 있어서 해가 잘 들지 않고 고물상과 철공소가 가까이에 있어서 먼지와 소음이 많은 곳이지만 지하철역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라는 점에서 이곳으로 정했어요. 1호선을 이용하는 남편이 일터에 가기에도 편하고요.
Q 노년에 생활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지만 집이 좁아지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아내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지만 작은 집은 살아보니 당연히 불편해요. 거실 소파는 세 명이 앉기 어렵고 집에 누가 방문하면 편하게 얘기할 곳이 마땅찮고요. 무엇보다 저는 책이 많아서 여유가 되면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기도 해요.
집을 줄이면서 이사 오기 전에 4개월 정도 걸려서 물건을 정리했는데 가족과 함께했던 물건이 없어지니 추억도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물건은 중고 거래로 팔고 안 팔리는 건 버렸어요. 다행히 첫째는 직장에서 숙소를 지원해줘서 독립했고 둘째는 일본으로 목조건축을 공부하러 가서 그곳에서 취직해서 정착을 했어요.
Q 매일 직장에 나가던 남편이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얘기를 흔히 듣습니다. 갈등은 없었나요?
아내 낮에 누워서 쉴 때도 신경이 쓰였지요. 게다가 남편은 27년간 회사원이었고 퇴직 전에는 비서와 운전기사까지 있어서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게 없었지요. 기차표 예약도 말만 하면 해결이 되었는데 그걸 저에게 기대하니까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남편이 뭔가 요구를 해도 자립을 하도록 바로 도와주지 않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잔소리도 하고 갈등도 있고 부부싸움도 있었어요.
남편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내가 자유를 느끼는 시기였으니까. 집에서 실컷 책을 읽을 수 있고 회사 다닐 때는 못 읽던 책도 마음껏 읽고(웃음). 이 시간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불안감은 있었어요. 퇴직 후에야 아내의 생활을 알게 됐는데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지 몰랐어요.
Q 두 분 다 지금 디지털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시작했나요?
아내 책을 좋아하고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씨가 운영하는 감이당에서 공부를 여러 해 하고 있었어요. 한번은 <우주 변화의 원리>라는 책을 남편과 함께 읽었는데 저는 어려워서 휙휙 넘긴 책을 읽어내더라고요. 그래서 동양학을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어요. 도서관 등에서 하는 강의를 들으러 다니다가 제대로 공부를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지요. 남편이 2017년에 원광디지털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저는 웰빙문화대학원에서 자연건강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남편 처음 1년간은 동양학 용어를 외워야 하니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3학년인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강의량이 많아서 느슨한 시간이 없어요.
아내 사실 공부하는 게 돈이 제일 적게 들면서 만족도는 높을 수 있어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적호기심이 충족됐을 때 만족감이 크죠. 퇴직 후 부부 사이의 대화가 쉽지 않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저희는 공부라는 공통 관심사를 찾은 셈이에요.
Q 두 분의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남편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학점이 24학점이에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꼼짝 않고 강의만 들어도 쉽지 않아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는 택배회사에서 일을 해요. 오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수업 내용을 암기하고요. 평일에 여유시간이 없으니 주말에 쉬거나 약속을 잡아요. 아니면 밀린 공부를 보충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는 디지털 대학의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고요.
아내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나가야 하니까 강의 준비도 하고 강의 기법이나 컴퓨터 엑셀 같은 걸 배우러 다녀요. 사람들과 만나서 50+ 세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책을 쓰는데 참고하려고 이야기를 수집하지요.
Q 사무직인 대기업 임원으로 일했는데 늦은 나이에 현장직으로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나요?
남편 육체노동을 하면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직장생활할 때는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게 일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뱃살도 없어지고 8kg가량 체중도 줄었어요. 워낙 일이 많으니까 농담삼아 묵언수행한다고 얘기해요. 일하면서 1만 보 이상 걷게 되니 저절로 다이어트를 하고 주급도 받지요. 이전의 삶에서 남아있던 거품을 걷어내는 시간이 내 경우에는 2년이 걸렸어요.
Q 퇴직 이후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나요?
남편 예전 직장 동료들과는 온라인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에요. 직장 다닐 때 만나기 어려웠던 고교 동문들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됐고요. 무엇보다도 50플러스재단이나 디지털 대학쪽의 인연이 생기면서 만나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질적으로 더 나은 관계들이 생긴 것이 달라진 점이에요.
아내 책을 쓰고 싶으면 책 쓰기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제지간도 되고 친구도 됩니다. 거기서 만난 분들과 서로 응원도 해주면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졌어요. 외국에 살 때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만났는데 지금은 집을 줄이면서 손님을 부르기가 어려워졌고 둘 다 바빠서 주말에도 밀린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보다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깊어졌어요.
Q 부부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아내 당신도 퇴직했으니까 밥해, 빨래해 이렇게 하진 않았어요. 이제 6년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들면서 같이 살림을 나누게 됐는데 그러면서 진짜 부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 살던 방식과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생활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빨래를 안 하던 사람이 빨래를 하고 요리를 안 하던 사람이 요리를 하게 되는 거죠. 남편이 살림을 분담해주기 시작하면서 도움이 됐어요. 내가 블로그에 글 올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던가. 퇴직 이후에 남자가 많이 바뀌어야 해요. 여자도 물론 남편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야 하고. 각자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바로 남편의 퇴직 이후에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남편 남편이 퇴직하면 수입이 줄어드는데 아내 쪽에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이전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내와 합의가 안돼서 이혼하는 경우도 봤고요. 현실인식이 중요하지요.
Q 두 분의 생활 가운데 공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인상적인데요, 관련해서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남편 디지털 대학을 등록할 때는 3년쯤 되면 길이 보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앞일이 보이지는 않아요. 학당 쪽으로 방법을 찾거나 상담 쪽으로 길을 찾거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아, 제가 방탄소년단(BTS) 팬이거든요. BTS 팬클럽 아미(army) 친구들에게 BTS의 노래에 담긴 한국 문화와 동양사상을 알려주고 싶어요. 해외의 아미들 가운데 동양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온라인 채널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아내 두 사람이 공부가 끝나면 학당도 하고 계속 책도 쓰고 싶어요. 이번에 퇴직 관련 책을 쓰면서 기업의 퇴직 대상자를 대상으로 강의도 해보고 싶어요. 퇴직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과 퇴직 후의 가정 경제, 부부 관계에 대한 강의를요.
기획 이인철 기자 글&사진 이은석(프리랜서)
“대기업 임원서 택배 분류 알바로… 눈높이 낮추니 새 길 보였다” – 한국일보 송옥진 기자 2/24/2021

(Picture: 강찬영님, 박경옥님)
박경옥(58)씨는 27년간 전업 주부로 살았다.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었고 회사에서 잘 나갔다. 네덜란드, 스페인 주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했고 기사 딸린 차도 나왔다. 덕분에 ‘사모님’ 소리도 들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남편이 은퇴를 ‘당’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은 배가 됐다. 다음달 월급이 끊겼는데도 은퇴를 인정조차 하기 힘들었다.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자꾸 들러붙었다.
남편 강찬영(61)씨는 해운회사에서 27년간 근무했다. 수출하는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배를 써 달라 영업을 했다. 평일에는 2차, 3차, 노래방까지 술 자리가 이어졌다. 주말에도 접대 골프를 치느라 쉬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임원을 달았다. 실적이 좋았으니 내심 전임자들보다는 오래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재계약에 실패해 회사를 떠나면서도 생각했다. ‘관련 업계에 곧 재취업할 수 있겠지.’
은퇴 7년차 부부가 회상하는, 은퇴 당시의 속마음이었다. 이들 부부가 은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다. 퇴직금이라는 마지막 희망조차 마르자 우울감도 사치가 됐다. 지난 8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부부는 “침몰하는 배에 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생활을 청산했다. 생활 규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 일을 찾았다. 그 때서야 새로운 길이 보였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
먼저 집을 줄였다. 37평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16평의 빌라로 옮겨 갔다. 줄여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감행했다. 이제 일자리를 찾을 차례. 몇 년째 소득 ‘0원’. 고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강씨가 찾은 새 일자리는 택배 분류작업 ‘알바’다. 30년 가까이 일했던 분야와 전혀 다를 뿐더러, 힘 좋은 젊은 사람들도 고되어서 나가떨어진다는 육체 노동이다. 통상 오후 3시쯤 출근해 6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월 120만~130만원을 번다. 이 일이 벌써 4년째. 강씨 본인도 택배 일을 이리 오래 할 줄 몰랐다고 했다.

강찬영씨가 4년째 근무 중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택배 물류센터. 강찬영씨 제공
강씨도 처음엔 다른 대기업 임원 출신들처럼 ‘관련 업계 재취업’을 노렸다. 공기업, 중견기업의 책임자 자리에만 원서를 넣었다. 한 중소기업에 실제 취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나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알았다. ’50대 관리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로또 1등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내 노하우는 가치있다고 최면을 걸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의 습득력이 빠르고 조직에서의 노하우는 쉽게 대체돼요.” 남편의 재취업을 적극 돕던 박씨도 “새 사람이 오면 자기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누가 반기겠냐”며 현실을 인정했다.
그 때 지인의 우연한 권유로 시작한 것이 택배 알바였다. 처음엔 주변에서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육체 노동이 주는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그가 은퇴자들에게 “꼭 일을 해라, 농사처럼 가급적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 잡념이 싹 사라졌다”며 “집에 돌아올 때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육십이 다 돼서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어깨에 힘 빼세요, 눈높이를 낮추세요
이들 부부가 은퇴자들에게 강조하는 건 ‘어깨에 힘 빼라‘다. 본인들도 다른 생활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현역일 때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은퇴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강씨는 “은퇴한 장성, 교장, 대기업 임원들에게 접근해 ‘협회장·단체장 주겠다’ ‘특별분양을 한다’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달에 몇 천만원씩 수익을 주겠다’ 이런 사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은퇴자들끼리 사업체 만드는 것도 금기 중 하나다. “은퇴한 임원들이 한 2억원씩 모아서 회사를 창업하거든요. 우리 가치를 못 알아보니, 우리끼리 하자면서.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럴 듯한데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도 하나 뽑아요. 그런데 4명이 다 사장인 거죠. 일은 누가 하나요.”

박경옥씨가 남편 은퇴 후 ‘생존법’을 담아 펴낸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의 표지. 박경옥씨 제공
하지만 그도 어깨에 힘을 쫙 빼기까지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씨가 본인의 책,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에서 전하는 일화는 은퇴자들이 눈높이를 낮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구청 일자리지원센터 앞을 지나는데 외국을 다니는 무당이 국제적인 굿을 할 때 동행하는 통역 겸 비서를 뽑는 공고가 난 거예요. 제가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했어요. ‘당신, 영어 잘하죠, 동양학 공부하고 있죠. 적임자예요’ 이러면서. 나중에야 들었죠. 이력서에 대기업 다닐 때 연봉을 적었다는 걸요. 아니, 통역에게 그만한 월급을 주려면 한 달에 굿을 얼마를 해야 해요?”
“은퇴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 됩니다”
남편이 은퇴하자 박씨도 나이 오십 넘어 처음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평소 동의보감, 한의학을 공부해왔던 그는 서울시 50+(플러스)센터, 구청 등의 강연자로 변신했다. 성격에 잘 맞았고 강연비를 살림에 보태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은퇴자, 은퇴 부부를 상담하는 일도 시작했다. 책을 내면서 ‘작가’라는 새 정체성도 생겼다. 지금은 동년배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강연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박경옥씨가 지난달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시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박경옥씨 제공
물론 프리랜서는 고되다. 자기계발에는 끝이 없고, 홍보를 위해 유튜브,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여럿을 운영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에 강연자로 설 자리도 줄었다. 박씨는 그래도 “50대, 60대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남편의 월급으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 후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부지만, 그렇다고 노후에 돈을 너무 많이 주는 일자리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의 강도가 높아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강씨도 오전 시간에는 사이버대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강씨는 “150만원 이상 받는 일자리는 공부를 할 수가 없겠더라“며 “은퇴 이후에는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취미나 휴식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 임원서 택배 노동자 된 남편, 전업주부서 작가로 변신한 아내[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9/5/2021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우연히 접하고 읽어본 건 한참 전인데 한동안 묵혀뒀다. 아내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라 남편의 입장이 궁금했다. 자칫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져 남편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박경옥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며 혹시 부군도 함께 오시면 어떠시겠냐고 조심스레 타진하니 흔쾌히 응하겠다고 한다. 인터뷰 장소는 자택이 좁으니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난달 24일 부부가 동아일보를 찾았다. 아내의 오전 수업이 끝나고 남편의 오후 출근을 앞둔 틈새시간대, 점심시간을 낀 두 시간 반 정도가 주어졌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렸다.

53세에 닥친 퇴직, 재취업과 두번째 퇴직, 그 후 2년간의 도전과 실패의 반복…. 산전수전 겪으며 어깨에서 힘을 뺀 남편은 택배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작가로 데뷔했다. 가장의 퇴직 이후 숨 가쁘게 돌아간 자신들의 삶의 기록이 책이 되었다. 이제 깜깜한 터널 같던 시기를 빠져나온 부부는 “내려놓는다는 각오를 하니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닥친 경영진 일괄사퇴
7년전, 강찬영(60) 씨는 27년간 다닌 한진해운 임원직을 내놓았다. 아무리 임원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지만, 성과가 좋았고 나이도 있어 한 번쯤은 더 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영이 휘청대던 회사는 주주들에게 ‘자구노력’을 보여줘야 했다. 사장을 비롯해 전 경영진이 일괄 사퇴했다. 그 2년 뒤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그래도 처음엔 여유가 있었지요. 4개월 만에 같은 계열 중소기업에 부사장으로 옮겼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도한 외국회사와의 프로젝트가 성사 직전에 무산됐어요. 역할이 없어진 상태에서 회사에 있는 건 면목없는 일이어서 사직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딘가에 새로 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이력서를 썼지만 다음은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고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별 얘기 없이 택배회사 물류센터 일을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었다.

강찬영 씨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택배 물류회사에서 4년째 분류와 상하차일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정신노동자가 육체노동자로 변하는 과정이라 말하는 강씨는 일하면서 체중 8kg이 빠졌다고 한다. 강찬영 씨 제공
○집 줄이고,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박경옥(57) 씨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점차 50대의 관리직 재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때까지도 과거의 씀씀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두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마침 유학을 떠난 둘째아들 학비까지 대주고 나니 위기의식이 들었다.
“매달 고정으로 들어오는 현금이 필요했어요. 남편만 쳐다볼 수는 없다보니 저도 돈 벌 길을 백방으로 찾았죠. 감초농사도 지어보고, 고향에서 해산물을 떼어와 택배로 팔아도 보고…. 결국 집을 줄이기로 했어요.”
정든 37평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16평 빌라로 이사했다. 남는 전세금으로 월세가 나오는 오피스텔을 장만했다. 이사 전 중고장터에서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고 못 파는 것은 버렸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두 차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쌓인 자잘한 세간들도 미련 없이 헐값에 팔았다. 추억만 남으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사 간 빌라는 공장 옆이라 먼지가 많고 비좁지만 남편 직장이 있는 오류역까지 한 번에 가는 1호선 전철역이 가깝다.
박 씨는 서울시와 구청 등 각종 구직센터에서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았다.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다보니 조금씩 수입도 생겼다. 최근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추가했다. 서울시나 구청 등에서 제공되는 공공일자리들은 어떤 일이건 월 30~40만원 정도만 벌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중·노년 중에는 작은 수입이라도 얻으려 애쓰는 분이 무척 많아요. ‘학습지원단’이나 ‘상담’처럼 좀 우아한 일거리는 해외유학파나 고위공직자 등 스펙이 대단한 분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요. 다들 품위는 유지하면서 봉사 겸 사회생활 겸해서 월 몇십만 원이라도 벌고 싶은 거죠.”

○“예순 다 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강 씨는 4년 전 시작한 택배회사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11시 경까지 택배 분류와 상하차일을 한다. 젊은이들도 며칠 일해보고 그만둔다는 ‘극한직업’이다. 업무량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조절하는데 월수입은 대략 120~130만 원 정도다.
“예순이 다 되어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니 잡념이 사라지고 건강해졌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빠지던 체중이 8kg이나 줄었습니다.”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주독야경(晝讀夜耕)’인 셈이다. 원광디지털대 동양학과에 등록해 오전 내내 강의 듣고 직장까지 왕복 2시간 남짓 걸리는 전철에서 복습하는 방식으로 생활의 리듬을 만들었다.
“회사생활은 영업의 연속이라 매일 밤 술 마시고 주말이면 골프 치러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에 중독돼 있었어요. 은퇴하면 좋든 싫든 자기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시행착오 겪고 시달리고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시작하게 되죠.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은 처음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의 직함은 ‘우주변화원리연구소’ 소장이다. 동양학을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양함이 있을 뿐
아내는 함께 헤쳐나온 남편의 퇴직과정을 책으로 써냈다. 2019년 7월 나온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나무옆의자)’다. 최근 5쇄를 찍었고 타이완에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한다.
난생처음 책을 쓸 용기를 낸 계기가 있었다.
“남편 퇴직이후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 속에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 즈음 중장년들이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튜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 PD와 카메라맨 두 분이 제 얘길 너무 열심히 들어주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어떤 해결책도 줄 수는 없지만 제 말을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며 후련해졌어요. 당시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받았죠.”
-책 내용을 보면 남편이 싫어할 내용도 있는 것 같은데….
박 씨가 “쉽지 않았어요”라며 웃기 시작하자 강 씨가 끼어든다. “은퇴하는 분들에게 제가 겪은 것을 전달하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책이 조금 과장되게 포장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에서는 힘들었어요. ‘삼식이’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절대 그 말을 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썼더라구요. 제가 화를 냈죠.”
박 씨는 “독자들 중에 책을 낸 것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한다.
“대기업 임원까지 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무슨 택배회사에서 일을 하냐는 둥의 비난이죠. 우리 사회에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심한 것 같아요. 제가 몇 년간 일자리 찾아다니며 보면 다양한 역할 중 하나를 내가 하고 있을 뿐이예요. 우린 모두 다양성의 세계를 살고 있고 안정된 삶은 없어요. 저희를 ‘대기업 임원까지 한 친구가 왜 나락으로 떨어졌냐’는 식으로 보는데, 우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박경옥 작가는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구청이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한다. 책을 낸 뒤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 코로나 탓에 요즘은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박경옥 씨 제공
○은퇴 후 배우자는 보험같은 존재
큰 아들은 지난 봄에 결혼했고 둘째는 유학 간 일본에서 취직해 눌러앉았다. 부부의 고난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한다. 집에는 오롯이 부부만 남았다.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우린 살 수 있다, 괜찮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우리 둘만 남았는데 서로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 스승이자 친구이자 동반자로 다중 역할을 해줘야 해요. 좋은 배우자가 가장 좋은 보험인 것 같아요.”
참고로, 이 부부가 친구처럼 놀 때 하는 것은 공부다. 돈이 적게 들고 만족도는 높기 때문이란다. 동양학이 공동의 관심사다.
-흔히 남편들이 은퇴해 가정으로 돌아오면 아내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은퇴남편증후군’을 호소하는데요.
“제 나름의 생활이 있는데 갑자기 끼어드니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하죠. 비서와 기사를 두고 일하다가 집에 돌아온 남편은 딴나라에서 온 사람 같았어요. 집에서도 ‘oo 알아봐라’ 한마디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식이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느라 애먹었어요. 그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조금씩 나아지던데요.”
-퇴직이 갑작스러울수록 마음의 상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위직의 비자발적 퇴직의 경우 여러 사연이 있지요. 제가 아는 모 은행 지점장은 퇴직 뒤 3주일을 앓아누우셨대요. 너무 억울해서. 가장 실적이 좋았고,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을 통보받았거든요. 평생 그 억울함을 어쩌지를 못하게 될 수도 있지요. 겪어보니 퇴직 후 마음치료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제가 우연히 유튜브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치료 효과를 얻었듯이 말이죠. 퇴직자가 ‘난 당시 억울했어. 난 더 일할 줄 알았단 말야’라고 충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은퇴 후 재취업은 기대수준 낮춰야
-이제 경력을 살린 재취업은 포기한 건가요.
“50세 넘어 경력을 살린 재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서서히 깨달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딜 가나 피라미드식 조직인데 그 상단에는 내부에서 올라오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요. 웬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전관예우가 아니고서야 굳이 외부에서 굴러온 돌을 그 꼭대기에 박아넣을 이유가 없는 거죠.”(박씨)
강찬영 씨의 말은 더 현실감이 있다. “회사가 나에게 연봉 1억을 준다면 최소한 10억 정도 이익을 뽑아내야 합니다. 내가 이 회사에 10억 정도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라고 자문해봐야 하는 거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니 판단이 되더라구요.”
이런 그는 “지금이 딱 좋다”고 말한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월급 200만 원 정도부터는 고용주나 일 그 자체에 자기 삶을 구속당해야 합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일은 보람될 정도로만 열심히 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됩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니 세상 편하고 즐겁습니다.”

○중장년 재테크와 경제 공부 필요
책을 읽다 보면 이 부부가 경제적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예컨대 남편이 임원이 된 2013년, 부부는 갖고 있던 재건축아파트를 팔아버렸다. 이후 경제가 내리막으로 들어설 거라고 봤다. 그 뒤 이들은 다시는 그 아파트 시세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퇴직 전에는 팔 수 없었던 한진해운 우리사주를 퇴직 후에도 ‘큰 회사니까’ 믿고 팔지 않았다가 회사 파산으로 수천만원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재테크 같은 것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러다가 큰일 날 것 같아요. 저희도 물론 그렇지만 후배들은 젊은 시절부터 경제나 금융공부도 하고 재테크도 해야 나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듯합니다.”
이뿐 아니다. 월세를 받기 위해 구입했던 오피스텔은 자주 말썽이 생겼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2017년 정부 권장대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어 ‘적폐’로 몰리는 느낌마저 든다. 박 씨 개인에게 따로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도 없는 살림에 엄청난 부담이다.
“세금 제도가 휙휙 바뀌면서 인생계획이 엉망이 되고 있어요. 남편 나이 기준 63세부터 국민연금이 나옵니다. 그 돈만으로 서울에서 살기는 어려울 텐데, 생각이 많네요.”
이런 박씨는 정부지원사업인 50플러스 보람일자리로 저소득 어르신 급식사업의 주방보조로 일하게 됐다고 기뻐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3시간씩 일하러 나가는데 한 달 내내 일하면 최대 40만 원을 받는다. “이거 벌어서 세금 내야 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