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어느 유튜브 경제채널에서 한국의 대기업 총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때 그 총수의 대답은 “자유“였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서 다루는 메뉴 중 “자유 (自由) 와 이유 (理由)“라는 메뉴가 있는데 지금 쓰고 있는 “내가 쓰는 나의 삶”도 이 메뉴의 한 토막글 중 하나가 될 예정입니다.
이제까지 “경제적 자유 (Financial Freedom)”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 경제적 자유 (經濟的自由) 라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지 “자유”를 찾아가고 “자유인”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가장 최소한의 조건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넘어선 자유에 대해 그리고 나는 어떤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좀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자유에 대한 국어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크게 세가지 의미로 나뉩니다.
-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 (법률) 법률의 범위 안에서 남에게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위.
- (철학)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구속되지 아니하고“입니다.
여기서 구속은 (1)시간 (2) 공간 (3) 행위 및 (4) 관계에 대한 구속을 포함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서 자유를 설명한다면
“나는 자유인으로서 (1) 내가 원하는 시간에 (2) 내가 가고 싶은 공간 (장소)에서 (3) 내가 원하는 행위나 사고를 하고 (4)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가장 최선의 관계를 맺어가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3) 내가 원하는 행위나 사고”가 무얼까?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단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서 살아온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살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나 교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웠고 그 이후에는 회사에서 상사의 지시를 통해 일을 해 왔습니다. 물론 이외에 배우자나 친구들, 선후배들 등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삶을 일터를 떠나서 만약 완전히 혼자서 산다는 가정 하에서 생각을 해 보았을 때,
“과연 내가 원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죠. 일단은 원하지 않는 행위를 끊는 것으로 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 TV를 보지 않는 것
-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 주식시장을 들여다 보지 않는 것
- 교회에서 필요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 것
- TV 뉴스를 보지 않는 것
- 정치 평론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것
-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지 않고 생각없이 듣거나 믿는 것
- 소파에 누워 있는 것
-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
- 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는 것
등등 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몇가지 원하는 행위를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 일기를 쓰는 것
- 좋은 책을 읽는 것 – 고전이나 소설, 철학, 심리학, 역사 서 등 생각할 만한 책
- 운동을 하는 것
- 좋은 옷과 신발 등을 고르고 입는 것 – 패션에 신경 쓰는 것
- 블로그를 쓰는 것
- 유튜브에서 좋은 강의를 필기하며 집중해서 듣는 것
- 클래식 음악을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것
- 아내와 자녀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
- 아내와 취미 생활을 늘려가는 것
- 친구와 형제자매에게 종종 연락하는 것
등입니다.
다시 자유의 정의로 돌아와서 철학적 의미를 곱씹어 보면 “자연 및 사회의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것을 활용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이 뜻이 무엇일까? 라고 생각을 해 봤는데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께서 쓰신 논문을 통해서 좀 유추해 보기로 했습니다.
칸트는 초월적 자유라는 말을 쓰면서 “자유라는 말은 우주론적인 의미에서는 한 상태를 스스로 시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유에서 생긴 원인성은 자연법칙에 쫒아서 시간적으로 규정하는 다른 원인에 또 다시 예속되어서는 안된다.”
헤겔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라는 것은 오직 나에 대해서 나 아닌 타자가 없는 데에만 있는 것이다“라고 본다.
위 논문에서 김석수님은 “자유와 필연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탈사회적이고 탈역사적으로 전개된 논의로만 볼 수 없고, 오히려 역사성과 사회성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논의에 대한 평가는 당대의 상황과 관련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현 시점에서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4차 산업 혁명의 중심에 있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의 발전으로 Post-Human이 되는 시대라고 하죠. 이런 시대가 저에게 줄 수 있는 몇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 일하는 시간을 줄여 줌으로써 여가 시간을 부여할 것 같습니다.
- 인공지능으로 인해 지식과 정보의 양은 매우 커지게 되겠고
- 대신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고요
- 생명공학의 발전은 건강한 삶으로 선조들보다 오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보들이 외장하드 처럼 저의 생각 밖에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저로서는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어쩌면 나는 자유롭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 자유가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자유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자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SNS로 부터 떨어져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ChatGPT 를 사용하지 않고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 이를 통해 제가 살 시간, 공간, 관계 및 행위를 제 스스로의 통제안으로 넣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블로그를 쓰고 책을 읽는 양과 읽는 책의 두께가 늘어나게 되면서 저도 차츰 생각이라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한가지 제가 최근 느끼는 문제점을 발견한 게 있습니다.
오랜동안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이 점점 늘어 나면서 너무 이것 저것 하려고 하지 말고 집중해서 한가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발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저는 읽고 쓰고 움직이고 만납니다.
One thought on “내가 쓰는 나의 삶 (53) 진정한 자유에 대한 사유 – 경제적 자유를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