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4년 7월의 끝자락을 넘어 8월로 넘어가는 보스턴의 날씨는 마치 초가을을 연상하듯 다소 시원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직도 기온은 높은 편이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인지 긴팔, 긴바지를 입고 나서도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7월을 인생의 70대, 8월을 인생의 80대라고 생각하면 어떠할까? 그 인생을 을씨년스럽게 느낄까? 아니면 그 인생을 핫 (Hot) 하다고 느낄까?
오늘 소개하고자 하고 제 마음속에 저장하고픈 ‘부러우면 지는거다 49호’의 주인공은 이달호 (81세), 전태연 (71세) 부부이십니다. 이 두분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 2024년 7월 22일부터 7월 26일까지 방영된 ‘할매요, 학교 가재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분은 모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경상북도 김천시 마고실마을에서 담배농사를 지으며 4녀1남의 5남매를 모두 전문대 이상부터 대학원까지 공부를 시키신 분이십니다. 이 분들은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가 학생들의 감소로 인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어린 학생들 대신 초등학교에 입학한 15명의 시니어 분들 중 두분이십니다.
이달호 (81)님은 10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동냥을 하며 어렵게 끼니를 얻어가며 살아야 했고 그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글을 읽으시고 쓰실 수 있습니다. 이달호님은 성실하게 마을을 섬기며 사시다 보니 이장도 하시고 감사패도 받으시고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신 적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자신에게 없는 ‘졸업장’이 평생 자신의 마음을 꾸욱 누르는 돌덩어리처럼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태현 (71)님은 가난한 집의 맞딸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이 그렇듯 딸은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한 식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자체를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무식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그런데 이달호님이 자신이 훗날 세상을 떠날 때를 대비해서 아내가 혼자서도 살 수 있으려면 읽고 쓰는 정도는 배우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아내와 함께 입학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이 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밭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밭일을 하고 씻고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합니다.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하기 전에 먼저 밭일을 마저 해야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약간 주어집니다. 그것 마저도 하루일과로 지친 나머지 쓰러져 잘 때가 많습니다.
이달호님의 소원과 목표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87세가 되셔야 졸업장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한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수, 과학, 사회 등등 다양한 과목을 고루 마쳐야 하죠. 이달호님께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달호님은 꼭 졸업장을 받고 나서 온가족들과 함께 밥 한끼 함께 먹는게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고 하며 허허 웃으십니다.
전태연님의 목표는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글을 모르니 그동안 자녀들의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서 전화번호 숫자로만 간신히 큰딸에게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아직도 한글 실력이 완전치 않으십니다. 받침이 문제입니다. 받침이 없으면 그래도 읽을 수 있는데 받침이 있으면 많이 어렵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하고 받침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기 위해 5남매를 모두 도시로 보냈습니다. 한글을 잘할 수 있게 되면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겠죠?
최근 자녀들이 자신들의 카톡방에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초대한 후 딸들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글 공부를 이제 시작한 엄마를 배려해서 인사말은 아주 짧습니다.

이달호님이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똑같은 말을 마음을 꾹꾹 담아 몇번을 고쳐 쓰다보니 5, 6번을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몇줄 안되는 편지를 다 쓰고 봉투에 고이 넣어서 바지 주머니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식당을 하는 처제네 집에 갔다가 식당 시간을 피해서 서둘러 나온 뒤에 시간이 조금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금오산에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그리고 산의 한켠에 놓인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쉬는 중에 슬며시 편지를 건넵니다.
아내는 아직 그 편지를 제대로 읽을 실력이 되지 않아 남편의 목소리로 다시 듣습니다. 남편은 밀려오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어렵게 편지를 읽어 줍니다. 아내의 눈가도 촉촉해 지고 남편의 눈가도 촉촉해 집니다. 그리고 함께 다짐합니다. 이제 이렇게 편지를 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