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꿈꾸며 (1) 발해사를 연구한 러시아 학자 V V Ponosov

0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을 학교에 차로 데려가려고 휴가를 냈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돌아오는 딸의 비행기가 overbooking되어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고 본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밤 늦게 집에 왔기 때문에 하루 더 쉬고 가기로 해서 오늘은 좀 개인시간이 생겼습니다. 제 회사는 8월 마지막 주에 하계 휴가 (Summer shutdown)이 있는데 마침 다음주 월요일인 9월 1일도 노동절이어서 꽤 긴 시간동안 휴가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에 아내와 Canada Banff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에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를 발표한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기억하는 한 발해라는 역사에 대한 노래 중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최초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지금으로 부터 31년전이나 되는 오래전에 발표된 노래인데 이 당시에 남북의 긴장 상황이 아주 격화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발해’를 얘기한 것은 참 절묘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노래는 7차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서태지님이 발해로 2행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발칙한 놈들, 해동성국은 우리 것이여“.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3> 간도와 한국사 – 프레시안 9/3/2013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이다. 그들은 이 노래를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불렀다. 만주를 지배하던 발해를 왜 노동당사 앞에서 꿈꾸었을까? 발해는 만주와 북한 지역에 걸쳐 있던 왕조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대한민국과 발해는 아무 관련이 없다. 즉 발해는 남북통일을 전제할 때에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역사다.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에, 거창한 동아시아연합을 전망하기 전에 통일부터 꿈꾸라.

어제 오늘 인터넷을 유영하다가 우연히 발해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는데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지만 이 나라는 북한지역, 중국지역, 러시아 지역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이후에는 몽골지역까지 발해 유민이 이주했다는 것이 알려져서 몽골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울 때 만주와 조선이 하나였다는 만선사관(滿鮮史觀) 을 내세우기 위해 발해 역사 연구를 했다고 해서 결국 발해 역사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6개국에서 진행되는 아주 큰 연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중 러시아의 연구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좀 나누려고 합니다. 강인욱 교수님의 글인데 강인욱 교수님은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시면서 발해 연구를 하시는 교수이십니다.

러시아 학자가 찾은 발해, 일본과 중국은 왜 은폐했나 – 중앙일보 5/19/2022

발해를 대표하는 유적인 상경성은 755년에 발해 3대왕 대흠무(문왕)가 건설하여 상경용천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잠시 수도를 옮긴 시간을 빼면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수도 역할을 했다.

발해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들어 다시 불붙었고, 그 중심에 하얼빈이 있었다.,,, 당시 하얼빈에 모여든 러시아인들은 ‘동성문물연구회’를 조직해 발해 연구를 최초로 시작했다.,,동성문물연구회에서 발해를 담당한 사람은 러시아 우랄 지역 출신이었던 V V 포노소프(1899~1975)였다. 포노소프는 일본의 만주침략이 한창이던 1931년에 발해 상경성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조사를 벌였다. 무국적자로 보호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면서 비적들이 횡행하는 이 지역에 목숨을 걸고 갔던 그는 상경성의 주요 지점을 발굴하고 전체 평면도를 정밀하게 작성했다. 발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발굴이었다.

포노소프는 최후까지 남았던 하얼빈의 러시아 고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건국 후 12년이나 지난 1961년까지 헤이룽장성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하얼빈 러시아 학자들이 조사했던 유적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중국 학자들에게 전달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만주사 연구에 바쳤던 그는 62세가 돼서야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소련 지역이 된 그의 고향 우랄 산맥 지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호주에서 여생을 보내며 고고학 연구를 이어 갔다.

복잡한 역사 분쟁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유일하게 옹호하는 측은 러시아였다. 지금도 러시아의 수많은 발해유적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강인욱 교수님의 2014년 논문이 중앙일보의 기사와 관련된 자료 중 하나입니다. 발해사에 대한 연구는 항상 소중한 발해사 연구자 분들의 오랜 노력과 고고학적 발굴로 이루어진 자료로서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스토야킨 막심이라는 러시아 출신 발해사 연구자께서 러시아의 발해사 연구에 대해 자료를 발표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분은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역사와 선조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발해사는 정말 소중한 대한민국의 역사 중 일부이고 많은 주변 나라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그 실체를 밝혀낼수록 우리에게 그리고 남북한의 평화통일 노력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해를 꿈꾸며 이루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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