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10월이 되니 스웨덴에서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연일 계속되는군요. 작년에는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님이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른 상도 관심이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번 화학상 수상자 중 한분이신 일본 교토대학교의 北川進 (Kitagawa Susumu) 교수님과 그분의 연구성과 그리고 이분에 대한 일본 현지의 언론의 기사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2024년까지 일본에서 공식적인 통계로 30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올해 벌써 두분을 배출함으로써 교토대학교에서만 10명으로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낸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교토대학교에서 1949년에 湯川 秀樹 (Yukawa Hideki, 1907-1981) 교수님이 핵물리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신 이후부터 2025년 현재까지 70여년간 꾸준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연구 업적과 문화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 수 없어서 부러울 따름입니다.
영어권 뉴스에서는 北川進 교수님 보다 다른 두분의 수상자에 대한 연구 업적을 좀더 얘기하는 경향이 있고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한해에 벌써 두명의 노벨상이 나왔다는 뉴스는 있지만 北川進 교수님의 업적에 대해서는 역시 일본 언론이 좀더 세심하게 연구 결과라든지 그분의 성장 배경 등에 대해서 얘기하는 기사가 훨그의 연구의 전환점은 1979년 교토대학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학의 조교로 임명되었을 때였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계산을 통해 화학 물질의 성질과 화학 반응을 해명하는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실험실에서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로부터 화합물을 합성하는 완전히 다른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실험실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신 장비를 갖춘 의과대학에 밤에 사용해달라고 요청하고 밤새도록 실험을 했습니다. 조교로서 집안일로 바빴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학생의 전문 분야를 꿰뚫어 보거나 동기를 부여하고 연구를 맡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씬 많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일본 언론 특히 요미우리신문의 연재기사를 가지고 北川進 교수님에 대해 배워 보고자 합니다.
北川進 교수님, Richard Robson 교수님, Omar M. Yaghi 교수님의 2025년도 노벨화학상에 대한 내용은 노벨위원회에서 아래에 정리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키타가와 교수님의 최초 보고인 1992년 논문은 아래에 링크를 했습니다.
Synthesis of the Novel Infinite-Sheet and-Chain Copper(I) Complex Polymers
74세이신 키타가와 스스무 교수님에 대한 요미우리신문의 연재 기사를 올립니다.
노벨 화학상 키타가와 스스무 교토 대학 특석 교수 진로와 연구의 어려움… “아이디어는 참신할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 -요미우리신문 10/82025
키타가와 교수님 연구의 전환점은 1979년 교토대학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었을 때였습니다. 본래는 계산을 통해 물질의 성질과 화학 반응에 대한 연구를 했지만 교수가 되고나서 금속이온과 유기분자로 부터 화합물을 합성하는 새로운 연구주제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일본도 실험실 장비가 부족한 상태여서 최신장비가 있는 의대에 가서 밤을 새워 실험을 하기도 했고 지도하는 학생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연구를 맡기는 것 등도 배워 나갔다고 합니다. 수많은 노력 끝에 합성한 화합물에 수많은 구멍이 생겼고 이 구멍을 가스를 빼내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1997년에 논문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초기에 국제회의에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믿기지 않는다”. “잘못되었다”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연구가 노벨상을 받게된 키타가와 교수님 연구의 핵심입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지만 두들겨 맞았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면 끝입니다. 나는 그것이 개선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취업을 생각하고 있던 키타가와 스스무에게 “건방진 연구자가 성장한다”고 밀어붙인 지도교수는-요미우리신문 10/8/2025
키타가와 교수님은 교토 중심부의 시조 가와라마치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지역 중학교에 다녔고 책을 읽으면서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배구에 전념하고 열심히 연습했고 주장을 맡아서 팀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회사 취업을 생각하던 키타가와에게 박사과정에 진학하도록 조언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교수였고 현재 교토대학 명예교수인 모리시마 교수입니다.
키타가와 교수님의 학생이자 컴퓨터 그래픽(CG) 제작사 ‘사이언스 그래픽스’ 사장인 츠지노 타카시(43)는 교토 대학교 4학년생이던 2004년부터 3년간 키타가와 연구실에서 연구할 때 MOF는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실용성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츠지노 씨 등에게 키타가와 씨는 ‘쓸모가 없다’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기에 유용해 보이는 것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토 대학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선배’ 요시노 아키라씨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후쿠이 켄이치의 “손자”는 공통점이 있다.-요미우리신문 10/8/2025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하여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아사히화세이의 명예 연구원 요시노 아키라씨(77)는 키타가와 교수가 교토대학 석유화학과 요시노의 후배로, 일본인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후쿠이 켄이치의 손자다. 자신과 키타가와 씨가 화학상 일본 수상자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후쿠이 박사의 DNA를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깊은 감동을 담아 말했다.
후쿠이 씨는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최첨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후쿠이 교수의 가르침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도 답을 찾는 연구자에게는 중요한 출발점이며, 키타가와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키타가와 씨의 업적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과학이며, 대기에서 온실 가스를 분리하는 등 세계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입니다.
키타가와 스스무 교수님이 학부시절에 후쿠이 켄이치 교수님은 교토대학교 교수이셨습니다. 그래서 손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오랜 연구 전통을 가진 대학에서 좋은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참 부럽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최근들어 일본의 연구동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연구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시간이 문제이지 한국에서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날이 곧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