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LUB (8)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5년 연말 휴가 기간동안 오디오북으로 한글 번역본을 듣고 영어원서를 눈으로 함께 읽으며 빅터 프랭클 박사님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빅터 프랭클 박사님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수많은 죽음을 극복하고 보게 되면서 경험을 바탕으로 Logotherapy (의미치료) 라는 새로운 정신분석 치료법을 제안하셨는데 그 치료법에 이르게 된 것과 의미치료법의 요소들을 설명하신 책입니다. 제가 들은 오디오북은 아래에 링크를 합니다.

그리고 영어원서는 아래에 링크를 합니다. (출처: https://antilogicalism.com/wp-content/uploads/2017/07/mans-search-for-meaning.pdf)

빅터 프랭클 박사님이 선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생존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겪은 사람들 밖에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존을 하게된 것은 수많은 우연이 작용을 했고 (예를 들면 어떤 줄에 섰는가와 같은) 살아남은 상태에서도 매일 매일 살아남는 것이 어려웠는데 프랭클 박사님의 경험에 의하면 중요했던 것이….

(1) 어떠한 환경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도, 종교와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2) 아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다시 재회할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생존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가 살아있든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실제로 살아 돌아갔을 때 현실은 완전히 달라서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 여기서 ‘사랑’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즉, 인생의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3) 프랭클 박사님이 원래 쓰시던 논문을 나치에게 빼앗겼는데 이 논문을 다시 쓰기 위해 가능할 때마다 다시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이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목표가 박사님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4) 실존적 공허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과거와의 화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이드 정신분석학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현재 상황이 같았을지라도 이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꿈으로써 치료가 되었다. 유머가 큰 도움이 되었다. – 의미치료의 가능성을 여기서 보았다.

예를 들어, 큰 사고로 장애를 얻은 사람도 이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더이상 장애에 묶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살을 하려던 사람도 그의 삶의 새로운 의미로서 끝이 아니라 열린 미래가 아무리 희미하다 할지라도 충분히 살아볼 만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을 통해서도 이겨낼 수 있었다.

(5) 기술개발로 인해 여가시간이 많이 생긴 현대인이나 은퇴로 인해 시간이 많아진 사람은 실존적 공허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떠나서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빅터프랭클의 의미치료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6)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각자가 자신의 처한 현실에 따라 스스로 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도움을 좀 받기 위해서 이종인 박사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링크합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읽게 되면 의미치료와 이전 정신분석치료의 역사적 배경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고 또 평가를 볼 수 있으니까요.

첫째, 로고테라피는 철학적 인간론이다, 인간은 신체적‧심리적 존재이지만 이를 넘어선 정신차원의 존재이다. 신체
적이고‧심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신체적‧심리적으로 결정된 상태 속에서도 태도의 자유를 잃을 수 없다. 프랑클은 셸러의 차원적 존재론을 수납하여, 육체적‧정신적 차원을 넘어 영적 차원론을 전개한다.

둘째, 로고테라피는 세계관 철학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해석의 주체라고 본다. 허무와 무의미의 세계관을 거절하고 의미로 충만한 세상을 긍정하게 한다. 삶의 의미를 세 가지 가치와 연관하고 있는데, 창조가치와 경험가치 그리고 태도가치이다.

셋째, 로고테라피는 실존적 심리치료법이다. 인간은 궁극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이다. 인간은 역경, 고통, 제약들로 인해서 좌절하는 존재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절망하게 되는데 그 대용물로 인간은 쾌락과 권력과 같은 다른 것에 몰입한다. 로고테라피는 심리학적 차원을 넘어선 고차원적 접근으로 생물학적‧심리적으로 매워지지 않는 인간실존의 문제에 대응한다. 로고테라피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이전 심리학과 선명하게 구분했다. 로고테라피는 생물학적인 차원과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영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철학적 인간학이다.

그리고 석사학위논문 하나를 더 링크하려고 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하이데거의 ‘경이’개념을 통해 청소년의 자살문제에 함유된 삶의 의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의 기반이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삶의 의미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언제든 해체되고 다시 구성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의미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무의미 속에서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실존적 자유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교육은 이 물음이 가능해지는 실천적 장으로서 교사는 이미 주어진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그 물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카뮈가 시지프를 통해 적시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삶의 부조리를 떠안고 있는 현대인 쳇바퀴 같은 삶 안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붙들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기술공학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배움이 기술습득이 될 때 모든 것이 도구로 되어 버리는 도구주의에 매몰되었지만 여전히 ‘존재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존재 물음의 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한다.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도구적 유용성에만 몰두하여 각 존재자의 물질적 가치로 환원 불가한 고유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힘에의 의지가 사유를 지배할 때 우리는 자유라기 보다는 끝없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인다. 하이데거는 이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허무주의라고 보며 존재란 무엇인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들이 무용한 것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인간은 오직 가치만을 고민하는 존재로 전락한다고 이야기한다…존재의 의미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그저 낭만에 젖은 행위로 치부된 채 사람들은 오로지 유용성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입각해서만 모든 경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마음 씀보다 가치의 입증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끝없는 자기계발과 성취를 위해 내달리지만 그 근저에는 누구도 의미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계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허무주의가 흐르고 있다.

경악을 통해 일상의 중단을 마주한 현대인들은 존재의 공허를 맞닥뜨림과 동시에 빈틈없는 삶 속 성공 등의 목표에 몰두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로이 마주하게 된다. 모든 의미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는 회사원 사업가 운동선수로서 살아있음이 아니라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를 가장 낯설면서도 친밀한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 심오한 철학적 질문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사치로 여겨져 왔던 것은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왔던 역사적 배경 및 우리의 민족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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