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의 아내와 막내딸이 한국에 방문하기 위해 출국을 했습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보스턴 로건공항까지 라이드를 하고 돌아왔는데 혼자 방안에 앉아서 올해 연말을 무엇을 하며 지낼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되었을까?“를 곰곰히 따져보니 그 첫번째 계기는 Lester Thurow (1938-2016) 교수님의 책 “자본주의의 미래”를 읽었던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을 하게 되어서 이 분의 책들과 사유에 대해 좀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IMF 국가부도위기 시기였던 1997년 3월에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당시 번역하신 유재훈님은 1949년생으로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시고 미국 Purdue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으신 후 LG, 국민은행을 거쳐서 1994년부터 조흥경제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셨습니다.
“제로섬사회”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레스터 서로의 1996년판 자본주의 예언서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italism)“가 번역 출간됐다. (유재훈 역, 고려원, 1만5천원)…저자는 이 책에서 플라톤-헤겔-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역사론적 접근을 거부하고 자연과학 방법론을 적용,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해부를 시도한다…서로는 이런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상황을 지질학의 “판구조론“과 생물학의 “단속평형설“의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저자는 이 책 제목에서 기대되는자본주의의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놓지 않았다. 미래예측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인정하고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각 구성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암시하는데 주력한다. 이 책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기 소르망의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 세기”(1994)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로는 소르망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소르망이 슘페터식의 비관론(자본가정신의 후퇴로 인한 자본주의 쇠락)을 경계하는데 그쳤다면 그는 위기극복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읽었던 것이 아마 1999년-2000년 사이 어느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기 전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서 구입하고 버스 안에서 2시간여 동안 독파한 적이 있습니다. 이 날 제가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당시 가난한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왜 누구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누구는 점점더 부자가 되는지에 대해 아주 오랜동안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레스터 서로우 교수님의 자본주의의 미래라는 이 책은 캄캄함 속에 있는 저에게 밝은 빛을 비추는 것과 같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교육비와 자본의 관계에 대해 말을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자녀 한명의 교육비가 당시 1억원 정도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때 결심했었죠, 가난의 고리를 끊으려면 자식을 낳지 않든지 하나만 낳아야 하겠다고요. 물론 그대로 되지는 않았지만요. 그리고 5년간의 대기업 경험을 가진 제가 이후 스타트업으로 급선회하게 된 원인도 바로 이 지식산업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이 기존 기업의 산업을 대체하는데 대기업 스스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고 스타트업이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고 부 (Wealth)도 그렇게 따라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 인생이 바이오텍 스타트업으로 변화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9년에는 Lester Thurow교수님의 “Building Wealth (지식의 지배)”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매일경제신문에서 2002년에 소개하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현재 중요한 지적재산권이라든가 지식경제, 지식공유 개념이 고작 2000년경에 시작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의 지배’라는 책의 원제는 ‘부 형성하기’라는 뜻인 ‘Bulding Wealth’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쥐고 보면 ‘Bulding Wealth’라는 원제를 왜 한국 출판사가 ‘지식의 지배’라고 변형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읽다보면 의문은 풀린다.
99년에 출간된 이 책은 새천년을 앞두고 출간된 일종의 선언서였다. 세상이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바뀐다는 선언이 이 책의 주요주제다. 서로는 ‘지식사회’라는 개념에 ‘부(富)’ 개념을 접목했다. 이 지점이 서로가 빛나는 부분이다…’왜 소유가 아닌 지배인가?’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서로우는 이 책에서 과거의 부는 소유하는 것이었으나 미래의 부는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공장과 토지, 설비, 자연자원 등은 소유한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지식은 소유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CEO가 많은 지식을 가진 직원을 두었다고 치자. 지식이 뛰어난 직원을 두었다고 해서 이 CEO가 그 직원의 지식을 소유한 것은 아니다.
“지적 재산권은 한 세기전, 아니 불과 25년 전만해도 그다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경제적 성공은 소유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에 법률이 지적 재산권을 지켜주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이제 지적 재산권은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를 옮겨 왔다. 명확하고 과학적인 지적재산권 법체계 없이 지식 기반 자본주의는 없다. 법의 보호없이 지식자산의 축적은 힘들다. 법이 지식을 보호하지 않는데 누가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겠는가.”
서로우는 이 책을 통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진보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국가의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지식 흐름’의 중요성과 ‘지식공유’개념을 강조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는 경제적 불균형의 해소 역시 국가가 마련한 지식인프라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프라에 뜻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책은 거대한 부의 매커니즘을 분석하고 있다. 누구 한명을 부자로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인류 모두를 부의 피라미드에 끌어올리는 ‘부의 건설’을 이야기하고 있기때문이다.
제3산업혁명은 기업들에게 큰 변화를 요구한다. 기업의 역할부분에서 이 책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적용한다. 즉 산업혁명 이전의 과거를 스스로 해체할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 남아서 부의 피라미드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패러다임이 오면 과거의 패러다임은 전면부정 되듯, 이제까지 아무리 전성기를 구가하던 산업이라해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지 않다면 자발적으로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가 왔을때 저항을 선택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성공적인 과거를 폐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 돈의 소유에 대한 천박한 기능과 방법론에 그친다. 그러나 이 책은 본질을 이야기한다. ‘돈’의 가치가 그 도구인 ‘지식’과 어떻게 결합하고 생성되는지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권의 소중한 번역서를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저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자세히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Chapter 2: Mapping the Economic Surface of the Earth
이 표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년간 오로지 상위층만이 연봉 상승을 겪었고 나머지는 모두 하락을 했습니다. 특히 Three라고 하는 부분이 아마도 중위그룹일 것 같은데 15%나 임금이 감소했습니다. 결국 상위층만을 제외하면 가난해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이 통계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Chapter 3: Plate One: The End of Communism
Chapter 4: Plate Two: An Era of Man-made Brainpower Industries
위 표에서 보면 20년간 기존 미국인은 연봉이 6%에서 7.4%로 상승을 하는 반면 이민자들은 0.9%에서 -15.2%로 크게 뒤쳐졌습니다. 특히 5년 이내의 이민자들은 -16.6%에서 -31.7%로 더욱 크게 연봉이 줄어들었죠. 그러니까 아메리칸 드림은 1세대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도 아마 이 때 만약 자녀가 생긴다면 교육은 미국에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사회보장연금과 메디케어라는 65세 이상 의료보험의 혜택이 1980년까지는 낸 것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받았다면 2010년경부터 내야 하는 세금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죠. 다행히 낸 것보다는 여전히 받는 것이 조금 더 많기는 합니다.
Chapter 6: Plate Four: A Global Economy
Chapter 7: Plate Five: A Multipolar World with No Dominant Power
Chapter 8: The Forces Remaking the Economic Surface of the Earth
Chapter 9: Inflation: An Extinct Volcano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는 표입니다. 디플레이션 경제 하에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식경제로 이관되는 이 시기에 신지식으로 무장해서 스타트업으로 경력을 움직이는 것이 맞습니다.
Chapter 10: Japan: The Major Fault Line Across World Trade and the Pacific Rim
Chapter 11: Economic Instability
Chapter 12: Social Volcanoes: Religious Fundamentalism and Ethnic Separatism
Chapter 13: Democracy Versus the Market
Chapter 14: A Period of Punctuated Equilibrium
Chapter 15: Operating in a Period of Punctuated Equilibrium
RULE #1: No one ever becomes very rich by saving money.
RULE #2: Sometimes successful businesses have to cannibalize themselves to save themselves.
RULE #3: Two routes other than radical technological change can lead to high-growth, high rate-of-return opportunities: sociological disequilibriums and developmental disequilibriums.
RULE #4: Making capitalism work in a deflationary environment is much harder than making it work in an inflationary environment.
RULE #5: There are no institutional substitutes for individual entrepreneurial change agents.
RULE #6: No society that values order above all else will be creative; but without some degree of order creativity disappears.
RULE #7: A successful knowledge-based economy requires large public investments in education, infrastructure, and research and development.
RULE #8: The biggest unknown for the individual in a knowledge-based economy is how to have a career in a system where there are no careers.
결국 교육, 인프라, 연구개발투자가 중요하고 기업 내에서 연공서열은 무너질 것이기 때문에 지식경제하에서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경력을 만들어 가야지 회사가 경력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 이것이 서로우 교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내용의 골자인 것입니다. 교수님이 1997-1999년 사이에 말씀하신 것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데 교수님 당시에 비해 AI/ML과 자동화 그리고 바이오 기술이 더욱 급격히 발전하고 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선배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어제 오후에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시내 다운타운에 있는 고급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포르투갈식 점심식사를 하고 왔는데 본래 눈이 온다고 하던 날씨가 기온이 약간 올라가는 바람에 비로 변해 있었습니다. 덕분에 집까지 운전해서 오는 길은 큰 불편이 없었지만요. 그런데 밤 11시부터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2시가 지나서도 눈이 계속 오더군요. 마침내 새벽 1시반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해서 2시에 마치고 샤워하고 늦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은 큰딸의 집에 모두 모여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그동안 준비한 Secret Santa 를 진행했습니다. 시크릿 산타는 한사람을 위해 각자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위에게 선물을 했고 큰딸로 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그 때부터 아름다운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외쳤습니다. 아주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오후 4시에 교회에 가서 성탄절 예배를 드렸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성탄절 예배는 Candlelight service인데 마지막 찬양은 할렐루야 였습니다.
블로그를 3년 이상하고 나니 무언지 모르지만 다음 단계 (?)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브런치 공모전 발표가 있더군요. 이것은 10명의 브런치 작가를 출판사와 연결시켜서 책을 출간하게 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습니다. 될 지 안될지 모르고 책이 될지 안될지 모르나 이미 마음으로는 작가인 상태였습니다.
저와 같이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다녀보고 미국에서도 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다녀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경험이 커리어 코칭을 하는 과정에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커리어 코칭은 커리어 코칭대로 하고 있지만 더욱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느낍니다. 사실 작고하신 구본형님이 직장생활 중 자신에게 갑자기 닥쳐왔던 의미에 대한 갈망을 의미로 승화시켜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를 만들었고 10여년간 연구원들을 훈련하고 59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작고하셨지만 뒤돌아 보면 가장 의미있는 삶을 사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4편에서 김낙수 부장이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일주일을 9회말 2아웃에 마음껏 휘드른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맡겨진 업무를 마치는 장면을 보면서 저도 9회말인지 7회말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마음껏 휘드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BRIC에서 어떤 분이 쓰신 글에서도 브런치 작가 신청을 권유하시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논문 쓰는 연구자는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인데 브런치 작가로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학자/연구자라면 브런치 계정은 생성해 놓으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잘 아시다시피 브런치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브런치 작가로 데뷔를 할 수 있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와 작가의 글에 대한 신뢰성과 글의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경우, 브런치 작가 데뷔가 쉽지만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논문을 쓰는 연구자라면 1-2번 만에 브런치 작가로 데뷔할 수 있으니, 시간이 날 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두시길.
어떻게 구독자 0명에서 브런치 상위 1%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셨습니다. 2017년에 시작해서 2021년까지 4년간 모인 구독자보다 2022년까지 1년간 모인 구독자가 더 많았다고 최소 매주 1편씩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작가가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3가지라는 Youtube (책쓰는 쌤작가) 가 있네요.
기획출판: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해서 계약을 하고 출판하는 것. 원고를 미리 작성해야 한다.
SNS Influencer가 되는 방법: 팬덤이 3만에서 5만 정도가 되어야 한다.
브런치 작가로 등록하는 것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미국 제약 바이오 기업에서 살아남게 된 저만의 이야기를 1-3분에 한편 정도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차분히 써나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Lester Thurow교수님의 책 ‘자본주의의 미래 (The Future of Capitalism)‘이라는 책을 대전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2시간 만에 독파하고 인생의 방향을 정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순간적으로 바꾸듯 저의 작은 한편의 글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변화의 계기가 되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입니다.
제가 살면서 드라마를 두번 이상 보지 않고 사실 최근 몇년간은 아내가 함께 보았으면 하는 드라마가 아니면 보지 않았는데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두번째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복선 등을 모두 고려하면서 자세히 보고 특히 대사를 잘 탐구하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청자 입장이 아니라 제자신이 어떤 때에는 작가로, 어떤 때에는 감독으로 또 어떤 때에는 배우로서 이 드라마를 탐구하는 중입니다. 잘 모르겠어요. 왜 그러는지? 처음에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러더군요. 사람들이 PTSD 생겨서 안 보려고 한다고요. 그래서 일까요? 제가 혹시 PTSD가 생겨서 그런걸까요?
몇일 전에 ‘부러우면 지는거다’에서 구본형님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구본형님이 작고하신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고 나서 이 드라마를 다시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냥 드라마를 즐기기 보다는 “지금부터의 인생은 달라져야 한다“라는 심정으로 이 드라마를 재청취하고 있는 셈입니다.
드라마 3회에서 김낙수 부장은 수많은 불운으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행운과 실적 마저도 모두다 비켜 가는 그런 상황이 그려졌습니다.
2편에서 입사동기인 허태환 과장 (이서환 분)이 울릉도 발령으로 압박을 당하자 번개탄 자살을 시도하게 되고 이에 당황한 백정태 상무 (유승목 분)은 김낙수 부장 (류승룡 분)에게 해결을 종용하게 되죠. 결국 아산공장 발령으로 변경이 되었지만 허태환 과장은 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안으로 김낙수 부장의 해임건이 인사부장으로 부터 제안됩니다. – 백정태 상무가 해야 할 일을 김낙수 부장이 떠 맡아 문제를 해결했지만 결국 김낙수 부장이 팽당하게 되는 상황이 된거죠.
3편에서 기가망 입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역에 대한 가입자 확보건에서 사실 백정태 상무의 무언의 압력하에 김낙수 부장이 승인했던 일이 인기 유튜버로 인해 알려지고 큰 파장을 맞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김낙수 부장이 유튜버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라는 잘못된 지시가 있었고 이것은 문제를 심화시키는 도화선이 되었죠. 하지만 결국 이 문제도 김낙수 부장이 노력해서 일단락 되었습니다.
3편 말미에 아산공장 안전관리팀장에 부장급 공고가 난 것을 발견한 김낙수 부장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4편이 시작되었습니다. 4편에서 몇가지 장면들이 나오죠.
20여년전 백정태 대리와 김낙수 사원이 함께 여인숙에서 동숙하면서 계약을 따내던 일, 그 때 함께 탄 차가 7982번이었습니다.
백정태 상무는 인사부장과 김낙수 부장을 아산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했고 도진우 부장과 영업팀 통합까지 상의를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백정태 상무는 김낙수 부장 입장에서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정태 상무로 부터 수십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있었지만 김낙수 부장은 의도적으로 받지 않습니다.
대신 건물주 친구와 만나서 자신의 회사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죠. 그리고 늦은 시간에 혼자 있을 때 백정태 상무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일저녁 식사를 하자는 백상무의 제안에 대해 주말에 자기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하죠. 이 때 백상무 집은 의리의리한 장롱과 소파로 권위를 상징하고 김낙수 부장은 낡은 소파에 앉아서 초라한 모습으로 대조를 이룹니다.
한편 아내 박하진 (명세빈 분)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학원 등록까지 했었다가 취소를 한 일이 있었는데요 동생의 무시로 인해 다시 박하진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낙수에게 부부관계 시즌2를 선언합니다. 이제부터 부부관계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는 암시이죠.
아들 김수겸 (차강윤 분)은 김부장이 제안한 ACT 인턴을 합격하고도 가지 않고 자신을 시험할 스타트업에 조인을 하죠. 이 직책은 CDO (최고 파괴 책임자)라는 직책입니다. 김부장과 달리 아들 김수겸이 살아갈 인생은 기존의 생각과 방식을 파괴하는 혹은 새롭게 창조하려는 그런 인생이 되리라는 복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아들의 입장은 김부장에게 아픈 손가락이 되지만 반대로 김부장이 보지 못하고 있는 회사라는 울타리에 갇힌 아버지를 밖에서 지켜 보는 아들의 입장이기도 하죠.
주말까지 일주일을 남긴 김부장은 직원들을 총동원해서 특별영업기간을 선포하고 자리를 완전히 비우게 됩니다. 송과장, 정대리, 권사원 모두 꺼려하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원 승진이라는 공수표를 남발하죠. ㅎㅎㅎ
공수표이긴 했지만 영업1팀은 이 1주일간 가장 활발한 1주일을 보냅니다. 항상 9시를 살짝 넘겨서 출근하던 권사원이 새벽에 가장 일찍 출근하는 모습이 바로 일하는 즐거움과 목표를 확실히 느낀 사원의 달라진 점을 보여 줍니다.
사원 시절에 백정태 당시 대리와 함께 타고 영업을 다니던 차 7982를 우연히 되고 정대리와 함께 어려운 업체들을 방문하면서 1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백정태 상무와 했던 대로 모텔에서 정대리와 함께 숙박하게 되는데 잠자기 전에 정대리에게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9회말 2아웃에는 좋은 공이 오기를 기대하며 마음껏 휘두르는 거야!“와 “가족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나자신을 위한 거야“라는 것..
백정태 상무를 집으로 초대한 날 과거 결혼식을 회상하며 즐거웠던 한때를 회상하며 즐거워하지만 김낙수 부장의 웃는 얼굴 속에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대리기사가 오기 전 잠시 걸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김낙수 부장은 25년간 함께한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더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지만 이것을 막아서는 박정태 상무 – “내일 인사과에서 연락이 갈거다….미안하다”
복선처럼 다시 등장하는 7982번 차량 – 결국 폐차되고 맙니다. 마치 김낙수 부장이 더 이상 쓸모없게 여겨지게 된 것처럼…
마지막에 나온 노래 “혼자였다”가 나옵니다.
좀 melancholy하기는 했지만 9회말 투아웃 상황이라는 야구에 빗댄 인생에서
“9회말 2아웃에서는 그냥 머리 비우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공 하나 오겠지’하고 그냥 풀스윙하는 거지“
이 대사를 평생 기억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머리를 비우고 풀스윙하려고 합니다.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제가 몇달전부터 알고리즘 때문에 보기 시작한 유튜버 중에 “서울대디“라는 분이 계신데요 50대 초반이시고 3남매의 가장으로 대기업에 다니고 계신 분이세요. 이 분이 올리시는 유튜브와 그 댓글이 참 좋은 것이 많고 마음 따스한 것이 많다고 느껴서 저도 듣고 있는데요. 서울대디님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 대해 영상을 만드신 것이 있어서 이곳에 나누어 보려고 해요.
그냥 짠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산”에 대한 관점에서 말씀을 하시는 부분이 좋습니다. 시청자들의 관점은 부동산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때마침 방영할 당시가 부동산 상승기였다고 해요. (이건 한국에 살지 않으니 전혀 몰랐습니다. 이래서 자꾸 유튜브를 뒤지게 됩니다. 이런 걸 놓치지 않으려고)
그리고 명문대를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 “성공했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하더라구요. 이 부분은 미국과 한국이 좀 다른 것 같기는 해요. 서울대디님 영상에서 보여주신 건데요. 세대별 성공한 인생이 이런거구나. 뭐 이런 거에요. 50대를 보면 “자녀가 공부를 잘할 때”라고 나와요. ㅎㅎ 이 표대로 보니까 제가 10대, 20대는 실패했었고 30대에 일부 성공했었다가 40대에 다시 실패, 그리고 50대에 성공했네요. 음. 5타수 2안타 4할대 타율이군요. 음…뭐 나쁘지 않군…요.
그리고 댓글을 보다 보니 송희구 작가님이 본인 유튜브채널에 원작자의 관점을 말씀하신게 있더군요. 그래서 이것도 올립니다.
회사내의 타이틀이 없어졌을 때 묻게 됩니다.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무엇으로 살아왔을까? 나는 누구로 살아왔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바로 이 드라마라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괜찮아 보여요 ‘안정된 직장, 괜찮은 연봉, 서울에 내집 한채’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가 붙잡고 있던 것은 전부 껍데기였을 뿐…
이 드라마는 한사람이 몰락해 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족, 친구에 대해 재발견하고 잊고 있던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정, 김부장은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직업이 사라져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명함이 없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 그자체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인생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송희구 작가님과 서울대디님, 두분의 다른 시각을 듣고 알게 되니 저의 편협했던 시각이 다소 교정되는 느낌도 들고 “아!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직장 생활이 있는거구나!” 이런 걸 깨닫게 됩니다.
직장 일이 마무리되고 퇴근할 때부터 나의 삶이 시작된다고들 해요. 그런데 직장에서의 삶도 나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죠. 직장 생활 속에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때로는 성취감, 동료애, 격려를 받지만 또한편으로는 자괴감, 비애, 실패, 좌절, 상사와 부하를 포함한 사람들로 부터 받는 포화 등도 겪지요. 이런 과정이 나에게 주어진 현실로 그 때 그 때 다가올 때에는 참 힘들지만 일기를 쓰고 블로그를 쓰면서 일정 시간이 지나서 다시 되돌아 보면 또 다른 의미로 그 당시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인생이 이런거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제자신과 대화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또 성장하도록 깨달음을 주거든요. 인간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인류가 최초로 나타났던 20억년으로 부터 고작 5천년 정도 전인데 20억년을 1년으로 따져서 보면 글을 쓰기 시작한게 12월 31일 8시인가? 9시인가? 그렇다고 해요. 정말 얼마 안된거죠.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다는 자체가 인간이 가지는 특권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먹물인거죠. 저는 인간이 두부류라고 생각해요. 글을 쓸 수 있는자와 글을 못 쓰는 자.
이제 다사다난했던 2025년도 며칠 안 남았네요. 오늘도 글을 쓰는 자로 살아갑니다.
추가로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다루는 김부장 이야기 리뷰도 들어볼 만해서 링크를 하는데요. 미키님과 조승연님이 이 드라마에 대해 분석을 하시는데요 대단하네요. 시대의 변화와 반말-존댓말의 차이까지. 단점 하나는 12부작을 다 보시고 하시는 얘기가 아니라 8부까지만 시청하신 상태에서 얘기하시는 거에요. 그래도 너무 좋습니다.
2025년 연말 휴가 기간동안 오디오북으로 한글 번역본을 듣고 영어원서를 눈으로 함께 읽으며 빅터 프랭클 박사님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빅터 프랭클 박사님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수많은 죽음을 극복하고 보게 되면서 경험을 바탕으로 Logotherapy (의미치료) 라는 새로운 정신분석 치료법을 제안하셨는데 그 치료법에 이르게 된 것과 의미치료법의 요소들을 설명하신 책입니다. 제가 들은 오디오북은 아래에 링크를 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님이 선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생존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겪은 사람들 밖에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존을 하게된 것은 수많은 우연이 작용을 했고 (예를 들면 어떤 줄에 섰는가와 같은) 살아남은 상태에서도 매일 매일 살아남는 것이 어려웠는데 프랭클 박사님의 경험에 의하면 중요했던 것이….
(1) 어떠한 환경에서도, 심지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도, 종교와 의지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2) 아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다시 재회할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생존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내가 살아있든지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실제로 살아 돌아갔을 때 현실은 완전히 달라서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 여기서 ‘사랑’이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즉, 인생의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3) 프랭클 박사님이 원래 쓰시던 논문을 나치에게 빼앗겼는데 이 논문을 다시 쓰기 위해 가능할 때마다 다시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이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목표가 박사님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4) 실존적 공허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과거와의 화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이드 정신분석학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현재 상황이 같았을지라도 이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꿈으로써 치료가 되었다. 유머가 큰 도움이 되었다. – 의미치료의 가능성을 여기서 보았다.
예를 들어, 큰 사고로 장애를 얻은 사람도 이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게 됨으로써 더이상 장애에 묶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살을 하려던 사람도 그의 삶의 새로운 의미로서 끝이 아니라 열린 미래가 아무리 희미하다 할지라도 충분히 살아볼 만하다는 점을 깨닫는 것을 통해서도 이겨낼 수 있었다.
(5) 기술개발로 인해 여가시간이 많이 생긴 현대인이나 은퇴로 인해 시간이 많아진 사람은 실존적 공허를 느낀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떠나서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빅터프랭클의 의미치료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6)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각자가 자신의 처한 현실에 따라 스스로 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도움을 좀 받기 위해서 이종인 박사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링크합니다. 박사학위논문을 읽게 되면 의미치료와 이전 정신분석치료의 역사적 배경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고 또 평가를 볼 수 있으니까요.
첫째, 로고테라피는 철학적 인간론이다, 인간은 신체적‧심리적 존재이지만 이를 넘어선 정신차원의 존재이다. 신체 적이고‧심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신체적‧심리적으로 결정된 상태 속에서도 태도의 자유를 잃을 수 없다. 프랑클은 셸러의 차원적 존재론을 수납하여, 육체적‧정신적 차원을 넘어 영적 차원론을 전개한다.
둘째, 로고테라피는 세계관 철학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해석의 주체라고 본다. 허무와 무의미의 세계관을 거절하고 의미로 충만한 세상을 긍정하게 한다. 삶의 의미를 세 가지 가치와 연관하고 있는데, 창조가치와 경험가치 그리고 태도가치이다.
셋째, 로고테라피는 실존적 심리치료법이다. 인간은 궁극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이다. 인간은 역경, 고통, 제약들로 인해서 좌절하는 존재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상실할 때, 절망하게 되는데 그 대용물로 인간은 쾌락과 권력과 같은 다른 것에 몰입한다. 로고테라피는 심리학적 차원을 넘어선 고차원적 접근으로 생물학적‧심리적으로 매워지지 않는 인간실존의 문제에 대응한다. 로고테라피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이전 심리학과 선명하게 구분했다. 로고테라피는 생물학적인 차원과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영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철학적 인간학이다.
그리고 석사학위논문 하나를 더 링크하려고 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하이데거의 ‘경이’개념을 통해 청소년의 자살문제에 함유된 삶의 의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절대적 진리의 기반이 해체된 현대 사회에서 삶의 의미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언제든 해체되고 다시 구성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의미를 규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무의미 속에서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실존적 자유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교육은 이 물음이 가능해지는 실천적 장으로서 교사는 이미 주어진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학생이 그 물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카뮈가 시지프를 통해 적시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삶의 부조리를 떠안고 있는 현대인 쳇바퀴 같은 삶 안에서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붙들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기술공학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배움이 기술습득이 될 때 모든 것이 도구로 되어 버리는 도구주의에 매몰되었지만 여전히 ‘존재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대적 위기를 존재 물음의 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한다.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도구적 유용성에만 몰두하여 각 존재자의 물질적 가치로 환원 불가한 고유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힘에의 의지가 사유를 지배할 때 우리는 자유라기 보다는 끝없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인다. 하이데거는 이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허무주의라고 보며 존재란 무엇인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들이 무용한 것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인간은 오직 가치만을 고민하는 존재로 전락한다고 이야기한다…존재의 의미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은 그저 낭만에 젖은 행위로 치부된 채 사람들은 오로지 유용성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입각해서만 모든 경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마음 씀보다 가치의 입증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끝없는 자기계발과 성취를 위해 내달리지만 그 근저에는 누구도 의미를 보장해주지 않는 세계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허무주의가 흐르고 있다.
경악을 통해 일상의 중단을 마주한 현대인들은 존재의 공허를 맞닥뜨림과 동시에 빈틈없는 삶 속 성공 등의 목표에 몰두해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로이 마주하게 된다. 모든 의미체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는 회사원 사업가 운동선수로서 살아있음이 아니라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를 가장 낯설면서도 친밀한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 심오한 철학적 질문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사치로 여겨져 왔던 것은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왔던 역사적 배경 및 우리의 민족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보니 ‘부러우면 지는거다’를 마치 시리즈처럼 쓰고 있군요. 아마 그만큼 제가 닮고 싶은 롤모델을 찾는 중인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부러우면 지는거다’는 현재 활동 중이신 분들에 대해 쓰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돌아가신 분들도 레거시가 있으면 쓰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분은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지도 이미 10년이 넘으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 분이 돌아가신 지금도 그 분의 영향력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특별한 이 분을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모시고자 합니다.
라고 본인의 이름으로 된 연구소를 2000년에 1인창업하시고 돌아가시는 2013년까지 연구원들을 매년 모집해서 훈련을 시키셨고 현재도 이 연구소는 계속 연구원들을 모집해서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본래 198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IBM에서 일하시다가 1998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하셔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 (1998)’, ‘낯선 곳에서의 아침 (1999)’, ‘월드클래스를 향하여 (2000)’을 출간하시고 2000년에 1인기업을 창업하신 것입니다. 2000년에 인터뷰하신 기사가 있습니다.
그 역시 올 2월, 20년이나 머물러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직장, 한국 IBM을 떠난 터였다…특정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전문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분류보다는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다.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에서 언제든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라는 말이다.,, 나는 한국 IBM에 입사한 후 15년 가까이 직무개선 업무를 맡았는데 관련 서적을 읽고, 교육을 받으면서 이 분야에서만은 나름대로 전문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책도 쓰게 되었고…. 판매와 영업이 가장 중요한 기업에서 주류가 아닌 일을 맡은 것이 내가 직무개선과 조직혁신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어느 조직에도 한직(閒職)이 없을 수 없지만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에 따라 ‘창조적 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세가지가 충족되면 누구든 전보다 행복을 느낄 것으로 생각한다. 전보다 자유로운가, 전보다 경제적으로 개선되었는가, 전보다 의미가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가가 그 세가지다.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전보다 자유로와졌고, 책을 낸 후 인세가 아직도 들어오고 강연수입료도 만만찮으니 경제적으로도 개선되었으며,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하고 있으니 일에도 만족을 느낀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 않나.”
일을 시작하시고 11년이 지난 후의 인터뷰 기사가 있는데요. 왠지 이 때부터 죽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범함이란 본인이 타고난 재능을 모두 쓰고 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아주 작다 해도 그것을 계발하여 모두 쓰고 간 사람들은 모두 비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비범함의 기준은 ‘타고난 재능이 얼마이든 그것을 모두 쓰고 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평범함으로 오염된 내 속에서 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십분 계발하여 그것에 의지하여 독립적으로 살게 된다면 비범한 인생으로의 전환에 성공한 것이다. -구본형-
“저는 이 직업이 천직인거 같아요. 43살에 첫 책을 쓰기 시작해 비록 늦게 이 직업을 만났고 그 전엔 글을 써본 적이 없지만 지금 재밌어요. 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3시간 씩 글을 써요. 매일 쓰면 일 년에 책 한 권정도가 돼요. 영감이 필요하긴 하지만 영감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습관 속에서 영감이 생성되는 것이죠. 아마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저는 단식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써봐야겠다고 결심한 경우에요. 무라카미 하루끼는 어느 날 야구장에 갔었는데, 그 때 타자가 친 공이 푸른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글을 쓰고 살아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런 경우예요.”
“조직원을 성장시키는 리더가 바로 진정한 리더예요” “우리가 함께 해냈구나’ 외칠 수 있는 리더가 최고예요. 리더 홀로 이끄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다수가 ‘사회를 움직여가는 과정에 내가 힘을 보탰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말이죠. 성숙한 사회로 향하면서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현 사회가 추구하는 리더의 모습이죠.”
“약 25년 동안의 수입을 가지고 40~50년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모델이죠…생애경력관리가 필수적이죠. 은퇴 후 50년 동안의 경제활동무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죠. 직장생활에서 또 하나의 전문적인 커리어 패스를 찾아야 해요. 이는 지금 맡고 있는 직무 속에서 자신만이 잘할 수 있는 전략적 직무를 개발하는 것이죠. 그 후엔 매일 직무훈련을 해야 해요. 그래서 차별적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면 회사에 있을 때는 그 전문성으로 회사에 기여하고, 은퇴 후에는 그 전문성을 가지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거죠.”
“해야 할 것을 결심하지 마세요. 하고 싶은걸 결심하세요. 하고 싶다고 하는 생각하는 자체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에요…단계적인 계획보다는 내가 이 일을 했을 때 아름다운 장면을 그리라는 얘기예요…매일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출세한 사람도 아니죠.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지금 ‘내가 내 일을 찾았구나’하는 마음이죠. ‘앞으로 이 일을 하면서 달려가다보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저만의 차별적인 일을 내가 할 수 있겠구나’라고 꿈꿔요. 그리고 ‘나는 내 자신에게 놀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일을 통해서 자기의 새로워지고 놀랄 수 있어요. 이게 삶의 프로젝트죠.”
이제 돌아가시기 3개월 전에 나온 인터뷰입니다. 돌아가실 걸 아셨던 걸까요? 자신이 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평범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책을 통해 ‘구본형’이란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을 직장인으로 근무하다 자신의 주 업무였던 ‘변화 경영’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란 책을 내고, 이후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한 후 본격적으로 1인 기업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분입니다. 그의 말에는 강렬한 끌림이 있었고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진행하는 2박 3일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이후 그가 운영 중이었던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과정에 응시하여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 과정은 그야말로 힘든 고통과 인내를 요구했습니다. 두껍고 어렵기만 한 인문, 사회, 철학, 역사 서적들을 매주 한 권씩 독파해야 했고, 그런 다음에 최소 20~30페이지에 달하는 북리뷰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더불어 책을 읽는 동안 얻게 된 생각을 A4 1장 분량의 칼럼으로 써내야 했죠. 여기에 더해 한 달에 한 번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제 발표까지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이유는 이런 공부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악으로 깡으로 1년을 공부하고 나면, 2년째에는 자신의 책을 출간하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원래 글을 쓰지 않던 사람이 1년간 북리뷰와 칼럼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해서 자신의 책을 뚝딱하고 출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결국 책을 쓰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원고를 완성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러나 습관의 힘은 무서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생각의 틀이 잡히고, 글을 쓰는 것도 점점 힘이 붙자 경제 글쓰기를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거의 1년 가까이, 편수로는 약 200편을 연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놀랄만한 결과였죠. 덕분에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시도를 통해 저는 회사의 ‘재무통’ ‘경제통’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재무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거죠. 하지만 그보다도 더 좋았던 건 글쓰기를 통해 저 자신의 경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실력이 한, 두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겁니다...이 글들을 모아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이란 책을 출간하게 되었으니까요...그해에는 연재와 함께 한 가지 새로운 시도를 더 했는데, 그것은 바로 1년짜리 경제 공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경제 도서들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서평을 쓰되 2주에 한 권 분량으로,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오프 모임을 통해 과제를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죠…첫 기수는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모집했는데 마감날 확인해보니 총 19명의 직원이 지원했더군요. 첫 상견례를 가졌던 그날 저녁의 풍광이 잊히지 않습니다…이날이 바로 제 1인 기업의 이름이자 카페 이름이기도 한 “에코라이후”의 태동이자 첫걸음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에코라이후가 올해로 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2023년 4월 1일에는 구본형 작가 10주기 추모 행사가 3부에 거쳐서 신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놀라는 부분입니다. 돌아가신 이후에도 구본형님은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어제부터 연말 휴가 모드로 들어가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을 한국어로 된 오디오북을 읽으면서 영어로 된 책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워낙 좋아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좀 아깝더라구요. 처음에는 클래식을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했는데 한달 전부터는 오디오북을 듣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출퇴근 할 때에는 잘 들리는 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문학 단편을 주로 듣지만 주말에는 이렇게 영어원서 문학을 듣고 읽습니다. 동시번역 시스템을 써서요. 빅터 프랭클은 잘 아시다시피 유태인으로 2차세계대전 시 독일 아우슈비츠 등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간신히 정말로 극적으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입니다. 이 분이 이 책에서 그 당시의 아픈 경험을 끄집어 내어서 책을 쓴 것이 독일어로 있는데 그것을 영어로 다시 69페이지 짜리 짧게 정리한 책이 이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몇가지가 있는데 제가 중요하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인간은 아무리 악조건에서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사랑이 중요한 의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복은 이렇게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노력하는 분들은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 그렇게 사는 분들을 찾고 그 분들의 삶의 여정과 현재를 보면서 저도 배워 나가는 중입니다. 그런 분으로 오늘은 사람과 직업연구소 정도영 소장님을 부러우면 지는거다의 73번째 주인공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정도영님은 자신의 1인기업인 “사람과 직업연구소”를 2014년 8월에 창업해서 11년이 넘으셨는데요 그 블로그가 있습니다.
올해 5번째 책으로 양재우 컨설턴트님과 공저로 “여유로운 퇴직을 위한 생애설계”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최경자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부부가 생각해 보는 것이 좋고 낮을수록 좋다. 정도영님은 월 200만원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자 그래야 죽는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퇴직 전 생각과 퇴직 후 생각이 같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라. 언제 완전히 은퇴할 것인가? 72-73세 (OECD 보고서)
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위한 일이 생계를 넘어 자신의 삶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삶의 질에도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중장년이 만날 일은 단순업무, 불안한 계약직, 잦은 이직과 직업 전환인데 이 책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고 적응을 위한 새로운 학습을 통해 준비한다.
평생경력의 준비: 평생학습과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함을 잊지 말자. 배울 것은 (1) Upskilling (2) Reskilling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고 여기에 평생학습의 목표를 삼는다.
저의 경우에는 Upskilling, 즉 제가 하는 CMC 일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Reskilling의 경우에는 무조건 자격증 취득을 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유망자격증의 경우 수많은 포장된 포스팅이 많다. 유망자격증보다 구인이 많은 자격증을 찾아 보라고 권한다. 디지털 활용 교육이 필요하다. 탄탄한 네트워킹은 자신의 업무 능력을 네트워크가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장년층 네트워킹의 취약점: (1)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 (2) 구체적으로 부탁하지 못하고 알아서 해주기를 바란다. (3) 능력보다 호감에 기인하는 네트워크가 많다. 저자들의 경험상 70-80%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취업이었다. 따라서 저자들이 권하는 것은…
(1) 네트워킹을 위한 사전관리에 충실하라. 감정적으로 나쁜 관계를 만들지 않기. 필요한 관계가 있으면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시간을 들이기. 결국 관계의 두터움은 들인 시간에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2) 퇴직 전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라. 먼저 퇴직한 사람을 만나면 생각의 깊이를 만들어 주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 주어 자신이 노후준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려주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돈을 아끼지 말라.
(3) 자신의 상황을 널리 알리고 조언을 구하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방향으로 일을 찾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4) 경제와 투자공부를 하라. 돈을 벌 수는 없을지 몰라도 돈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물가상승률에 상회하는 수익률을 얻어야 한다. 투자수익률 목표를 낮게 잡을수록 유리하다. 투자의 목표는 돈의 가치를 미래에도 유지하는 것에 둘 것. 따라서 목표 투자수익률 = 물가상승률로 충분하다. 저자는 “안정적인 목표 투자수익률 =물가상승률 + 5%“. 이 정도 수익률을 올리려면 경제 지표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투자 기업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한다.
돈을 버는 목적은? 돈을 벌어 어떻게 내 삶이 만족스러워 질 수 있는지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는 많아진 시간에서 외롭게 사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은퇴시간에서 즐기려면 놀고 쉬는 것에도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이 자신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퇴직 전에 알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관심을 자녀, 배우자에서 나 자신에게 두고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한지를 찾아 나가자. 50대 이후 삶의 격차는 벌어진다. 경제수준, 가족 관계, 사회적 관계, 자신의 건강 등의 준비가 중요하다. 마지막 점검시기는 50대 – 60대 이후 취할 수 있는 노력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복구할 시간이 주어지지만 중장년에게는 시간도 부족하고 개선을 위해서 젊은 날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노후에는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비교의 눈높이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진다. 눈높이를 낮추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다다를 목표를 명확히 하자.
가장 명확한 징후는 몸에서 나타난다.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아프면 삶의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핵심이슈는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세가지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 (1) 식습관 (2) 운동습관 (3) 수면습관 – 잠들기 전 장시간의 스마트폰 시청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생계 책임자로서 맺어 온 가족관계에서 새로운 가족관계로 지금부터 다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회적 관계: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일자리의 후광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오로지 인간으로서 나만 남게 된다. 일이 없을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한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의 일하는 날이 어제부로 종료를 했습니다. 본래 오늘까지 중요한 두개의 문서를 마쳐야 했는데 어제 이 작업이 잘 마무리 되는 바람에 오늘부터 휴가를 내고 연말 셧다운과 함께 새해까지 좀 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12월이 31일까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번주가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하는 마지막 주였기 때문에 3주만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고 그래서 아주 전쟁같은 3주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꿀맛 넘치는 휴가를 맞게 되니 한편으로 감사하고 기쁘네요. 아마, 이것이 일하는 즐거움(?)이 주는 행복이겠죠.
‘부러우면 지는거다’에서 그동안 얼굴이 언론 등을 통해서 알려진 분들을 주로 다뤄왔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분들 중에서도 부러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게시판에 글을 쓰시는 분들 중에서 무림고수들이 계신데요. 그런 분들을 뵈면 부러운 면이 많아서 어쩌면 블로그를 쓰는 자로서 이런 익명의 무림고수님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편부터 이런 무림고수님들을 좀 알려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릴 분은 마일모아에서 활동하시는 유랑님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은퇴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블로그에서 여러차례 글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자유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노력한 분들의 글을 아주 오랜 동안 읽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일모아 게시판을 통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발견했고 어떤 분들은 오랜 기간 아주 잘 준비하신 후 성공적으로 조기은퇴를 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35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나이 50에 훌쩍 유랑을 떠나서 한 일이십년 떠돌다, 여기서 죽고 싶다는 곳을 찾으면, 70 정도 되서 정착해서 죽을때 까지 살겠지 싶어요. 50~70까진 한달에 5천, 70 이후엔 4,500이면 살 수 있다고 생각되고. (인플레이션 감안한 현재 가치입니다.) 소셜에서 3000 (나 2000, 껌딱지 1000), 67세 기준이지만, 수령은 70세부터 하는걸로, 소셜 연금의 기금이 바닥나거나, 수령액을 줄이거나, 기간을 늘릴 경우에 대비해서. 나머지 1,500불은 블루칩 배당주와 REIT 으로 조달, 투자원금 600,000이 필요한데, 인플레이션 감안 수익률 3% 인플레이션 2.5%로 잡고, 인플레이션 감안한 투자 수익률 3%로 잡으니, 35세부터 15년간 401k에 18,000불씩 넣으면 50세에 34만불이 되고, 이걸 20년동안 놔두면 70세에 60만불 정도 될것 같습니다. 50부터 70까지 20년간 일년에 6만불씩 꺼내 쓰며 살려면 95만불이 필요하군요. 그래서 일년에 3만불 투자 저축, 한달에 2000불씩 저축하고, 보너스 좀 보태고, 택스 withholding 넉넉히 해서 택스 리턴 받은거 보테고, 15년간 이렇게 하면 55만불 정도 됩니다. 지금 살고 있는집 40만불 짜리 15년간 페이오프 해서 팔아서 보태면, 95만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유랑님의 계획은 50세에 조기은퇴해서 20년간 여행을 다닐 계획인데 95만불이 필요하시고 집 40만불+401(k)과 투자계정 도합 55만불 = 95만불을 만들고 조기은퇴하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처음 십만불을 채우는데 거의 6년 가까이 걸렸는데, 20만불이 되는데 4년, 30만불은 3년 40만불은 2년이면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일을 한다면 내년에는 6만, 그다음해에는 7만불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8만불씩 늘어나는 금액이 커질 것 같습니다… 잘려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생각되니 실적이나 보너스에 연연해 하지 않고, 세브란스 패키지 받고, 실업 수당 받으면 일년 더 일 안해도 마찬가지라는 계산하에서, 자택 근무 일 수도 마음껏 늘리고, 일도 하라는 만큼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만큼만 합니다. 그러니 회사를 다닌다는게 즐거워지기 시작하네요. 언페이드 리브만 일년에 한두달씩 준다면 한 오년 정도는 더 회사를 다녀도 괜찮을것 같은데 하는 생각까지 들정도로요.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드신 후부터 유랑님은 보다 자유로운 (?) 회사생활이 가능해 지셨고 심지어 언페이드 리브로 여행을 일년에 1-2달씩 다니시는 것도 고려하셨습니다.
1월에 보너스를 받은 다음날 회사에 나 은퇴 할려구 혹시 세브런스 팩케지 있니 하고 물어보는 얄미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회사 상사님의 분노에 가득찬 설득 내지는 협상을 거쳐, 삼월말까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확답을 받기로 하고…결국 삼월이 마지막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장과 회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원간의 관계를 재 정립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아니 나 일 안하거나 조금만 하고 싶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결국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저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회사은 연봉을 안 올려주는 걸로(?). 새 직원을 뽑고 트레이닝이 어느 정도 되서 저의 일의 부담이 줄어들면 그때부터 주 20시간만 일하고, 그때까진 주 30시간 플렉시블하게 일하는 걸루요. 대충 이틀은 풀타임 이틀은 반나절 일하는 걸로 합의를 봤습니다.
보너스 받은 다음날 세브런스 패키지를 묻는 협상 끝에 주 2일 풀타임, 주 2일 하프타임으로 총 주30시간, 쿼터타임은퇴를 하셨네요.
쿼터 은퇴지만 체감상 삼일 일하는 느낌인데, 가끔 연휴가 끼어들거나 휴가라도 내서 하루 재끼면 일하는 날들 사이 간격이 너무 광활해져서 다음 일하는 평일이 언제 돌아오나 날짜를 세고 있는 제 모습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주 30시간 이내로 줄이면 일이 너무 없어서 심심하거나 불안해질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합니다.
62세 전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위해, 52세부터 62세까지 10년간 매달 3천불씩 나오는 개인 연금을 들어두었고 매달 수령중입니다…
남은 7천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 봅니다. 두달전 갑자기 지난 십년간 꼬나보던 O라는 주식의 진입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달간 Realty Income이라는 REITs에 50만불을 집중 투자. 은퇴의 현실에 한발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계획은 백만불까지 달려보려 했으나(나름 투자에 과감한 용자), 쫄보의 투자 원칙과 기법의 제약에 묶여 50만불에 무릎을 꿇는 아픔을…매달 배당 소득 2,730불 (배당률 6.55%)을 확보 했습니다.
남은 4,270불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해 봅니다. 백만불이 있다면, SCHD 80만불, JEPI 10만불, JEPQ 10만불 구입하면,인플레이션을 어느정도 방어하는 자산 증가와 배당률 증가를 확보면서도, 배당률 5%를 살짝 초과 한달 4,270불 (배당률 5.12%)의 소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집을 팔고 401k의 남은 잔고를 더하면 백만불은 만들 수 있을것 같습니다.
52세 조기은퇴하시고 62세부터 소셜연금 (부부합산 $3000), 월 2700불은 Realty Income 50만불, 월 4270불은 (SCHD 80만불, JEPI 10만불, JEPQ 10만불)로 하는 걸 목표로 실행 중이셨습니다.
계획대로 집 잘 팔았고, 회사는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하면서 차박이 가능한 중형 SUV에 Cargo Box와 텐트를 싣고 에어비엔비에서 한달 살기를 하는 중입니다.,,원래 식료품에 500불, 외식에 1000불 예산을 잡았는데, 각각 500불씩 먹는것만 총 1000불 초과네요…이렇게 생각지 못할 수 있는 비용을 아예 예산에 반영해서 천불정도 여유를 남겨 두었어서 그래도 문제없이 여유있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예산은 항상 예비비가 필요하다!
조기은퇴계획을 하신지 5년후 퀘벡에서 한달살기를 하셨는데 예산 만불보다 1000불이 더 들었다고 예비비가 필요하다고 경험을 남겨주셨습니다.
바리스타 퐈이어로 시작한 반은퇴 생활. 결국 노는거에 익숙해지다 보니 일하는걸 까먹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생기기 전날 분명히 내일 컴퓨터 챙겨서 놀러 나가야해라고 P2에게도 거듭 말하고 다짐했는데, 다음날 아침 까먹고 그냥 놀러 나갔습니다. 머피의 법칙으로 걸려온 회사의 서포트 콜. 그리고 걸려온 휴가 중이던(?) 매니져의 전화…오늘 저녁에 해주면 안될까? 나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쎄한 기운이 등골을 훓고 지나가더군요. 각오하고 있었지만 닥치고 보니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국 얼마후 보너스 넘버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한 매니져로부터 작년보다 삭감된 숫자와, 회사 그만두기 2주전 노티스를 주고 나가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잔소리까지…저의 은퇴의 시계가 빨라짐을 느낍니다.
월급받는 은퇴를 시작한지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년반전 Quarter Retirement을 시작으로 1년전에는 집을 팔고 본격적인 한달 살기 유랑 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네요.
불과 몇년전까지 해마다 자산이 십만불씩 늘어나는게 신기하고 대견하고 한편으로 설마 계속 이러는건 아니겠지 걱정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일년에 이십만불씩은 늘어나는 중입니다…401k에 백만불을 모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려고 6년전에 30만불에서 인증 시작한 은퇴구좌 성장기가 드디어 백만불이라는 대망의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기대하던 백만불이 아니라, 갑자기 늘어난 1.5 million의 발란스에 깜짝 놀라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부연 설명하자면, P2가 한국에 가있는 동안 세금 보고를 하느라 P2의 은퇴구좌 관리인으로 저를 추가하였더니 제가 관리하는 구좌의 총 발란스가 43만불 정도 늘어나 버린 겁니다. 그래서 P2 구좌를 뺀 저의 은퇴구좌만은 백십만불 정도가 되겠습니다. 59세쯤에 백만불이 될 것이라는 계획보다 2~3년 이상 앞서게 된 이유는 조기 은퇴 계획과는 달리 지난 2년간 더 회사를 다니면서 은퇴구좌의 성장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입니다.
리얼티인컴 주식은 백만불까지 구매하겠다는 계획은 달성을 못하고, 총투자 50만불에서 멈췄고, 대신 그동안 Pfizer(PFE)를 60만불 가량 구매하게 되었습니다(샀는데 떨어져 서 물타기를 하느라. ㅠㅠ) 계획했던 리얼티인컴 백만불 대신 화이자 주식을 섞어 백만불을 채우고 여기서매달 5천불 좀 넘는 배당 (PFE 배당률 $27,240/$600K =4.54%) 을 받고 있고, 여기에 다른 배당주와 연금 소득으로 또 5천불 조금 넘는 고정 소득을 만들어 현재 매달 만불 이상의 생활비가 조달되고 있습니다만, 회사에서 던져 주는 돈으로만 생활하기에 모두 저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앞으로 계획은 갑자기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게 된다면 아직 배당주에 투자되지 않은 나머지 자산으로 TLTW 를 구입해 배당을 최대화 하는 옵션까지 고려하면, 최소 만이천불에서 만오천불 사이의 그로스 인컴을 만들어 내는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다만 TLTW는 배당 삭감에 대한 미래의 리스크가 있기에 대책으로 소셜연금의 수령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어느정도 관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JEPI/JEPQ 를 섞으려던 계획에 TLTW라는 옵션이 하나 더 추가 된 상태입니만, 회사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월급이 나와서 현금 비중이 꾸준히 늘어 난다면 느긋하게 SCHD의 비중도 함께 늘려갈 생각도 있습니다. 결국 은퇴준비의 가장 큰 허들이었던 배당주 위주의 투자에서 소소하게 남은 자산들의 SCHD/JEPI/JEPQ/TLTW의 전환과 비중 조절만 남은 셈입니다.
요즘 한달 유랑생활의 지출은 만불에서 만삼천불 사이로 쓰고 있고, 아무래도 매달 계획에 없던 월급이 나오는 지라 펑펑 쓰면서 살아도 스트레스 없는 나름 Go-Go Years 라는 시기를 만끽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저의 투자의 기본은 리발란싱 입니다. 그동안 SnP 500 ETF와, QQQ, SCHD, 그리고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맞추는게 리발란싱 이었다면, 배당주 위주로 전환된 저는 배당 5%에 사서 4%에 파는 걸 리발란싱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의 흐름에 맞춰 최근에는 6% 이상에 사서 5%, 혹은 이자율의 정상화를 감안하면 4%에 파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략대로라면 리얼티 인컴은 6%대에 샀으니 4%대에 팔고, PFE는 7%대에 샀으니 5%대부터 갈아탈 계획입니다. 배당주 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산보다는, 월 배당을 꾸준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투자 결졍을 해 나가는 것이죠…Roth로 컨버젼할 은퇴자금 백만불 축적도 끝났지만, 회사에는 심리적인 안정을, 저에게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지금의 고용 관계가 너무 좋네요. 이미 이년반전에 앞으로 2~3년만 더 일할거라 했지만, 지금도 한 1~2년은 더 일하고 싶구요.
여기까지가 지난 6년 6개월간 유랑님이 계획부터 실행까지의 경험을 남기신 것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계획대로 잘 실행을 하신 덕분에 목표를 추가하는 현재를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모십니다.
요즈음 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시력’문제입니다. 작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갑자기 올해 들어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노안인지 다른 원인이 복합적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도 시력문제가 크게 불편해 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팅을 하는데 주로 젊은 층인 우리 회사에서 글씨가 너무 작은 상태로 온라인 미팅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미팅에 집중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리스닝의 부족함을 그동안 속독으로 많이 풀어왔는데 그마저도 이제 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은퇴를 생각하나보다!”
처음으로 건강 문제와 은퇴를 연결시켜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문제는 사실 없습니다. 사무실에 가면 큰 화면이 두개가 있어서 사실 보는 문제는 없는데 미팅을 하려면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야 할텐데 거기에서 바라보는 저의 화면은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최근에 회사가 대기업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컴퓨터를 받았는데 이 화면이 더욱 작아지고 자판도 작아져서 많이 불편하더라구요.
저에게 사실 은퇴는 죽음과 결부되어 생각을 합니다. 공자가 74세까지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기원전 500년대 사람이니까 지금부터 2500년전 사람이에요. 그 당시 사람들은 30-40대에 많이 죽었으니까 일반인보다 두배는 더 산 셈이죠.
제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 건 사실 꽤 오래 전입니다. 어려서 가난을 오랜 기간 겪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죽는게 사는 것보다 나을 것같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살았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적도 적지 않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실행이 되지 않았을 뿐이죠.
이제 나이가 점차 들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함익병님도 그런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하셨다고 하더군요. 본인은 생일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하세요.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생일이요 다음날 못 일어나면 사망이라고요. 맞는 말씀이세요.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이신 박광우 교수님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박광우 교수님은 “죽음 공부”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사는 조력자로서 네비게이션 역할만 할 뿐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싼 치료가 좋은 치료는 아니다.
죽음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죽음을 상상해 보라. 오늘을 즐겁게 살고 잘살고 열심히 살아라.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을 생명연장을 위해 약을 맞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죽는 것에도 변화가 많아서 쉽게 죽지 못한다. 스위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등이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주는 나라들이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 캘리포니아, 버몬트, 뉴멕시코 6개주가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준다. 적극적 안락사도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좋은 방법은? 임종환자 본인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과의 헤어지는 과정도 웰다잉의 과정으로 본다.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함익병님의 생각에 임종이 임박하면 단식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내 인생만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난 이후 남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 어떤 할아버지 자신의 병에 대해 주치의에게 직접 듣고 난 후 퇴원 후 여행을 다니다가 돌아가심.
내일 당장 죽더라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는가?
생전 장례식, 작별 인사를 잘 하는 법, 자녀에게 주는 짧은 회고록 (생전 부고장) – 어차피 죽고나면 남는 것은 기억과 기록 뿐이다.
요즈음 저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부캐를 분신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는데 뭐 하수니까 하수의 기본으로 첫걸음을 떼는 느낌으로 아주 초보적인 초고를 쓰는 중입니다. 일단 단편소설을 써야겠죠.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지만 A4 용지로 볼 때 80-100 장이라고 하니까 일단 150장 정도를 목표로 하고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어차피 글을 잘라내야 한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쓰는 중입니다. 소설을 왜 쓰느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대답은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남은 자가 누구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제 소설이 필요한 사람들이 남은 자가 되겠죠. 제 블로그를 혹시 몇차례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분야는 주로 소설, 비즈니스 (돈을 주제로 한), 철학, 역사, 미술 등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도 쓰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분이 시를 원래 쓰셨다고 해요. 시를 쓰는 분의 소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닥터 지바고를 썼던 보리스 파스체르나크도 평생 시를 쓴 시인이고 닥터 지바고가 그가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 주인공인 닥터 지바고도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나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글을 나누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나누고 이 글로 이루어진 저의 이야기 또는 생각을 좀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글을 나누는 공간인 이 블로그가 저에게는 참 사랑스럽고 편안한 공간이고요 오프라인에서 서점이나 도서관과 같은 글을 나누는 공간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나누는 공간을 가지고 계신 최인아 책방 대표이신 최인아님을 부러우면 지는거다에서 모시고자 합니다. 사실 최인아님의 이야기를 제가 전에 들어보기는 한 것 같은데 최근에 오디오북 듣는 취미가 생기다 보니 유튜브에 검색어로 “책”이라고 쓰고 저의 유튜브 계정 알고리즘을 책과 관련한 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중이었는데 그러다가 최인아님의 영상이 뜨게 되었습니다. 뜬 영상은 아래에 올렸습니다. 아마 최인아책방에서 최근에 올린 영상이어서 제 유튜브에 뜬 것 같습니다. 보통 책에 관한 영상들은 저자들이 직강을 하는 영상이라든가 오디오북이 대부분 나오는 반면 이것은 특이하게도 최인아님이 읽으신 책에 대해 소개하는 그런 것이더군요. 그러니까 본인이 쓰신 책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에 올라온 영상의 내용은 그다지 저에게 와닿았거나 야마구치 슈라는 작가의 책의 내용을 소개하셨지만 그것도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대신에 최인아님이 이런 일을 오래 전부터 기획했고 실행에 옮기셔서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는 점이 전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부러웠습니다.
최인아님이 2012년에 제일기획 부사장 직을 그만두신 이후에 역사학과에서 배우신 모양이에요 그리고 2016년에 최인아책방을 선릉역에 열었다고 하는데요 그에 대한 몇가지 기사가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은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씨…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지독하게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8월 중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열었다.
처음 이곳에 책방을 열겠다고 하자 하나같이 반대했다. 책방이라는 아이템에서 한 번, 강남 한복판이라는 데에서 또 한 번, 4층이라는 데에서 연거푸 “안 된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언제부턴가는 책방을 연다는 말을 아예 안 했다. 내가 흔들릴까봐. 다들 안 된다고 하길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안 할 건가’ 하고. 잘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잘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공간의 의미와 책방 주인의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녀간 고객들은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이 오셔서 술집이 즐비한 환락가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잘 운영해서 제발 오래오래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최인아씨가 모두가 뜯어말리는 책방을 굳이 연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또 하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누구나 살면서 마주함 직한 질문을 12가지 뽑고,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추천서 목록을 받았다…두 가지 질문을 보냈다. ‘① ‘인생의 책’ 열 권을 꼽고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② 12개 주제 중 당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 세 가지를 뽑은 후 각 질문마다 세 권의 책을 선정,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최씨는 지인 220명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중 150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지인들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에 읽은 책이 다 다르더라. 나의 20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최씨의 생각은 통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북카드가 꽂혀 있는 책들을 많이 산다고 한다… 고객들은 북카드를 책보다 더 관심 깊게 읽고 있었고, 그 북카드만 읽고 책을 빼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최인아님의 뚝심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2016년 8월에 책방을 시작하고 두달이 채 안된 50일만에 나온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3년 정도 지난 2019년에 새로 기사가 났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 일을 언제까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셨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이어나가야 했고 그 선택이 최인아책방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2019년에도 북토크를 하고 계셨군요.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난 후에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신 것이 있습니다.
지인들의 우려에도 최인아책방은 5년 만에 강남의 대표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이 700여 명이나 된다. 살롱으로도 입소문이 났다. 각종 강연과 클래식 연주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살롱의 역할을 하게 된 건 ‘생각의 숲을 이루다’란 슬로건과 연결된다…이곳에서 열리는 강연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지혜를 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왜 우리가 21세기에 살면서 몇백 년 전 그림을 봐야 할까 질문해 봤어요. 답은 명화가 그 예술가의 새로운 도전과 고난이 함께 맞물려 탄생한다는 점에 있더라고요. 매일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예술가의 영혼이 깃든 명작을 보며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으로 강연뿐 아니라 책방에서 일 대 일 마음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잖아요. 병원까지 찾아가기 망설여지는 분들이 안온한 공간에서 마음 얘기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 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최인아님이 직접 쓰신 동아일보 오피니언 일부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우리 책방은 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 적이 있다. 임원과 MZ세대 사이에 끼어 고민 많은 팀장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6회 수업으로 구성되어서 수업료가 꽤 비쌌는데도 공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마감되었다…얼마 전 나는 3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종종 후기가 올라오는데, 독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문장이 있다.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신통한 결과가 없어서 이대로 계속하는 게 맞는지 흔들리고 외로웠는데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되었다고.
자, 퇴직이나 이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게 된다. 후임자가 차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정보며 연락처며 현황 등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업무를 하며 기울였던 노력, 그래서 내 안에 쌓인 노하우와 인사이트 같은 것들까지 다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빈 몸으로 나가는가? 머리와 마음도 초기화해 그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떠나는가?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다. 업무를 하면서 쌓은 경험, 노하우, 그리고 ‘아하!’ 했던 깨달음 같은 것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사에 다 두고 빈 몸으로 나가는 게 아니며 그것들은 결국 내 경험, 내 노하우, 내 인사이트라는 얘기다. 노력의 결과가 회사 것으로 귀속되는 게 아니라 나의 것으로 남는다면 평가나 열매와 상관없이 애쓸 만하지 않은가?…알면 통제력이 생긴다. 지금의 노력을 계속할지 말지 생각이 그저 맴돌거나 막연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문제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체에 닿으면, 그러니까 나를 흔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눈앞이 환해진다.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기분은 불쾌하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해 애쓴 것이고 내 안에는 노력의 흔적들이 쌓이고 남는다는 것, 그러니 내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둘 이유는 없다는 것.
광고회사 시절 우리는 늘 크고 작은 경쟁 프레젠테이션으로 날을 지새웠다. 어떤 때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서도 졌고, 어떤 때는 그만 못한 아이디어로도 이겼다. 내가 꽤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클라이언트가 우리 아이디어를 채택했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아이디어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를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못한 것도 아니다, ‘쟁이’는 클라이언트의 평가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시 최인아님 본인이 쓰신 글이기 때문인지 훨씬 발췌할 것이 많고 되새겨볼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직원으로서 일을 하든지 대표로서 일을 하든지 결국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과나 평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곱씹어볼 만한 말인 것 같습니다.그래서 최인아님이 쓰신 다른 글도 궁금해 졌습니다. 이번에는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한 최인아님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를 보여주십니다.
생각은 향기와 같아서 그 순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나는 ‘괜찮은’ 생각들을 날려 버린 것에 대해 이제 와 강하게 후회한다…얼마 전 우리 책방은 정지우 작가를 초대해 ‘글쓰기’ 주제로 북 토크를 열었다…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내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작가가 하려는 말을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는데 딴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말했을 것 같다…면접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허용된 면접 시간은 15분쯤으로 다 같은 조건이었음에도 어떤 사람에겐 유독 끌렸다. 대다수는 의례적인 질문 정도로 넘어갔지만 어떤 이는 조금의 생각이라도 더 듣고 싶어 이리저리 더 질문했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라고…서울에서의 바쁜 직장 생활을 접고 가족 모두 제주로 간 후배가 있었다. 그리로 간 지 몇 달 후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에선 봄이 가고 여름이 갔는데 제주에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고…일에 치여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면 봄이 오는지 가을이 오는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러다 봄의 끝자락에 가서야 ‘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봄이 가는구나’ 하며 아쉬워한다. 반면, 제주에서의 느릿한 생활에선 하늘도 올려다보고 봄 나무에 시선을 줄 수도 있었겠다. 그러자 막 움을 틔우려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아, 봄이 오려나 보다’라고 느끼며 봄의 앞모습을 보는 거다…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새삼 알아차린 게 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도 사회적 동물이며 같이 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사회적 존재들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외롭다는 것. 이때 글쓰기야말로 외로움을 다루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임을 여러 작가들로부터 듣는다. 안쪽의 생각을 글로 써 꺼내 보였는데 좋다 해주는 이를 만나면 외롭고 불안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거다.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휩쓸었던 영화 ‘버드맨(Birdman)’ 이야기다…주인공 마이클 키턴(리건 톰슨 역)은 다시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인기가 있든 없든, 찾는 이가 많든 적든, 톱스타든 아니든 자신은 여전히 영화와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라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내 머릿속엔 자유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자유(自由). 스스로 자, 말미암을 유. 그러니까 자유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먼저 하든 나중에 하든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 본래 의미다.
자유는 자주 외로움을 동반한다...외로움은 다수가 가는 길이 아닌 ‘마이 웨이’를 갈 때 찾아오고 커진다. 뜻을 같이할 사람이 적고 혼자가 될 때 덜컥 외로워지고 갈등에 빠진다...어쩌면 자유란, 소수(minority)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갈 때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자 하는 이는 세상과 불화할 가능성이 크니 자유를 원한다면 외로움을 선물처럼 여겨야 하는 거구나…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그는 광고인 시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뭔가?” ,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품었다고 고백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일을 ‘생각의 힘으로 기업이나 공동체가 당면한 과제에 획기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일‘로 정의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로켓 재료비가 전체 비용의 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재활용 로켓을 개발한 ‘첫 번째 원칙 사고’ 와 시인 나태주가 자신의 일을 ‘사람들 마음속의 이야기를 모으는 꿀벌’에 비유한 사례 등을 들며, 근본으로 돌아가 문제를 재정의하는 생각의 힘을 거듭 강조했다.
최 대표는 강연을 마치며 “AI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도 생각하는 힘이 강조되는 이 시대야말로 크리에이터들이 굉장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실은 해법을 찾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가진 ‘생각하는 힘’이라는 자산의 가치를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인아 대표는 1984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 수많은 유명 광고 카피를 만들었다. 이후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여성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칸 국제 광고제(현 칸 라이언즈)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2012년 제일기획을 퇴사한 후, 2016년부터 최인아책방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인사이트라는 화두를 들고 오래도록 천착한 끝에 이런 생각에 닿았다.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곧 인사이트라고…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고 의미 역시 훨씬 깊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언제까지 해주냐’라 하지 말고 ‘언제까지 하면 돼?’라고 하자.” 다 아는 것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생각의 집이어서 말은 우리가 그 사안을 대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즉,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말에 주목하고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 귀 기울인다.
업무를 끝낸 일과 후나 주말만 인생이 아니고 업무 시간도 엄연한 인생이란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뜻이 맞지 않으면 다른 대안을 알아보고 택하되, 지금 있는 곳에서 일하는 동안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라는.
그저 회사의 일을 월급 받는 대가로 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차피 정해진 월급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받으니 일견 가성비가 높아 보이지만, 이 생각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월급만 취하는 게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도 일어나고 새로운 경험과 통찰도 쌓이며 뜻이 다른 사람과 일할 때의 스킬도 배운다. 월급만 받아가지 않고 이 모든 걸 다 취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러니 회사 일을 해주는 게 아니라 일의 주인이 되어 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나는 일을 해주는 사람인가? 하는 사람인가?
패트릭 브링리. 우리나라에서만 2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다. 그에겐 영웅과도 같던 형이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떴다. 겨우 이십 대,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부모, 형제, 부부, 친구…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으로써 이별한 후 남은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던가. 고통과 슬픔의 크기와는 별개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못한다. 바쁘니까. 자식들을 먹여야 하고 일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서둘러 밥벌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이 슬픔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에 먹고 사는 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사람, 브링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은 세상에서 제일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뉴욕 한복판에 있었고, 그는 유명한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다. 사랑하는 형이 죽었는데 별일 없다는 듯 밥벌이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으로 들어간다. 관람객이 된 게 아니라, 그곳에 취직을 하고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그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경비원’이 된 그는 일과의 대부분을 가만히 서서 보냈다. 미술관의 진열실에 서서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남긴 예술품들을 만나고 보았다. 날마다 그런 시간을 보낸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예술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예술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들 속에 묻혀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어느 날 다시 그곳으로부터 걸어 나온다. 그러곤 책을 쓰고 작가가 된다.
‘네 생각을 말해 봐.’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그저 그런 얘기를 할라치면 그런 거 말고 네 생각, 너만의 생각을 말해 보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선배들이 내 생각을 묻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근사한 경험이었다.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아, 사람들 가슴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득하구나. 자기 생각이 없거나 주관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구나. 분위기가 되지 않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생각을 자기 안에 넣어두었던 거구나.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것. 자주 생각과 의견을 물어보는 거다. 최대한 반영하려 하되 그러지 못할 땐 이유를 말씀하시라.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선배가 없다는 말이다…우리는 언제 선배를 찾을까? 고민이 있거나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선배가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선배는 곁에 잘 없고 생각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글로 써볼 것을 권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후배 한 사람이 내게 면담을 신청했다. 경력으로 입사한 그 친구는 이전 회사와는 일하는 방식도, 문화도 달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민을 늘어놓더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답을 주는 대신 고민을 노트에 써본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가 다시 왔고 작은 글씨로 빽빽한 A4지 여러 장을 내밀었다. 그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고민이 많이 정리됐다고 했다. 나는 그가 쓴 페이퍼를 한 줄도 읽지 않고 돌려주면서 글을 쓰게 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법이 찾아지는데 그러자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잖아.” 과연 그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널뛰는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가자 신기하게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고 했다. 나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지만 그 후배는 길을 찾아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퇴직 후 2년쯤 지났을 때다. 내 딴에는 오랜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했고 남은 생은 학생으로 공부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터였다. 한데, 아는 것과 맞닥뜨리는 것은 같지 않았다. 자발적 선택이었음에도 퇴직 후의 자유가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울했으며 외로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의 나야말로 선배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나는 선배를 찾는 대신 노트를 펼쳤다. 그러곤 쓰기 시작했다. 내 안의 수만 가지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그저 마음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손목이 아프도록 써 내려간 페이지가 10쪽을 훌쩍 넘겼다.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이 거기 가득 적혀 있었는데 그 수많은 문장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것, 쓰이고 싶다는 것. 마음을 알기까지가 문제이지, 알고 나면 그 다음은 오히려 쉽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 연인들이 다시 만나기 시작하듯 나도 다시 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7년째 책방마님으로 살고 있다.
운이 좋아 믿을 만한 선배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선배를 찾아 당신이 말한다. “선배님, 저 고민이 있어요.” “뭔데? 말해 봐.” 당신은 자세하게 당신의 고민을 설명한다. 그러곤 돌아오는 길.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사실, 선배는 별 조언을 해준 게 없다. 그저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민은 꽤나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객관화’가 된 것이다. 선배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 당신은 우선 고민이 무엇인지 요모조모 잘 정리해서 전달한다. 바로 그거다.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던 고민을 밖으로 끄집어내니 정체가 환히 들여다보인 것이다. 선배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실은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객관화한 거다. 사실, 해법은 문제가 무엇인지 똑바로 아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문제가 뭔지 모르거나 다른 것을 문제라 오해한다. 그러면 해법이 요원하다.
사람의 마음은 의식이 10%, 무의식이 90%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자신의 안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욕망하며 무엇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지 알려면 그것들을 의식 위로 꺼내야 한다. 객관화 작업이자 출력 과정인데,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로 써보는 거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깊은 욕망과 만나는 일이며 또한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다. 고민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 스스로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다. 다만 꺼내 쓰지 않을 뿐이다. 좋은 선배를 가지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선배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지금 고민이 있다면 노트를 펴고 쓰기 시작하시라. 당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길이 보일 것이다.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엔 유명한 건축가가 등장한다. 그는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실제로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살아갈 사람들이 조금의 편리라도 더 누리도록 고심하고 고심한다. 건축 분야처럼 만든 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는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쉬운데 소설 속 노 건축가는 겉으로 눈에 띄는 건축, 건축가 자신이 빛나는 건축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경쟁 입찰에선 특히 유리할 게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한다. 일이란 무엇인지,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소설은 한마디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줄곧 ‘일’을 떠올리며 읽었고 그러면서 열정적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는 열정이란 말을 들으면 인파이터의 폭발적 에너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마라톤에 가깝고 일터에서의 성취는 시간과의 싸움일 때가 많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평가받지 못해 기죽고 절망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다 가늘게 성취와 성장 같은 열매를 맺는다.
맨 앞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이 끝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좋아하는 마음 이면의 지속하는 마음도 돌아보면 좋겠다. 어른이라면 말이다.
제가 얼마 전에 넷플릭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넷플릭스 영화인 “승부”에 대해 느낀 점을 좀 적으려고 합니다. 승부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 두분의 국수께서 처음에 사제지간으로 만나서 나중에 스승인 조훈현 9단이 당시 이창호 6단에게 지면서 무관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절치부심해서 타이틀을 가져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바둑에 대해서는 너무 시간도 오래 걸려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바둑 머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노력을 해 보지 않은 분야이긴 한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바둑 자체보다는 제자인 이창호 9단을 가르치고 제자와 대국을 두고 패배하고 하는 그 과정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절치부심해서 다시 제자인 이창호 9단에게 도전자로서 타이틀을 따내는 이 과정이 커리어 코칭과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열심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 (혹은 스승 혹은 멘토) 들은 처음에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 사람이 자신을 넘어서기를 기대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먼 미래의 언젠가 (?) 아마 거의 자신이 그 분야에서 생명력을 다해갈 즈음에 제자가 자기 보다 더 높이 올라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자가 분발을 하고 잘 자라서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해 자신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 때 선생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번 영화 승부에서 조훈연 역학을 했던 이병헌 배우는 이 부분에 대해 아주 고민을 많이 하신 흔적이 느껴질 정도로 연기를 아주 잘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병헌! 이런 느낌이었어요. 제자에게 지고 돌아오는 것, 너무 힘들고 화나죠. 이 부분에 대해 조훈현 9단께서 인터뷰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조훈현 9단이 스승으로 부터 받았던 바둑판에 새긴 글씨가 있었죠? 결국 조훈현 9단도 이창호 9단도 자신과 싸움을 해서 이긴 것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어떤 사원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일일히 실험하는 방법이라든지 어떻게 생각하고 고안을 해서 빠른 시간안에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에 대해 학부 졸업을 한 사원을 선발해서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원이 습득력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성장 속도도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제 스스로 느끼기에 이 사원과 저의 스타일이 이제 많이 달라졌으며 더 이상 함께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 시점이 왔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많이 화가 났던 것 같고 그 감정선이 그대로 튀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날부터 조훈현 9단처럼 고민을 하는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정은 그 사원을 저보다 당시에 뛰어나다고 느끼는 동급 매니저에게 넘겨서 그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더 오래 데리고 있다면 성장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죠. 그 결정은 결국 맞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대신에 그 사원과는 좋은 관계로 끝이 난 것 같지는 않지만요.
조훈현 9단께서도 이창호 9단과 아주 친한 관계정도는 이제 아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창호 9단은 다른 길을 가고 있고 본인과 스타일이 달랐으며 뛰어 넘었으니까요.
이런 것은 참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커리어 코칭을 하지만 그 끝은 결국 저를 뛰어 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 과정에서는 놓아주는 것이 맞는 선택이고 더 좋은 것은 다른 코치 혹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코칭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 되겠죠.
좋은 영화,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를 만나면 참 기분이 훈훈하고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영화 자체는 2020년 12월 17일부터 2021년 4월 3일까지 5개월 정도 찍었고 그 영화가 2025년 3월 26일에 첫 개봉을 했다고 하니까 영화 제작 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개봉이 된 것입니다. 영화를 만든다고 다 개봉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유아인 배우의 마음 고생도 참 심했으리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다행히 영화가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모두에게 상영되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