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거다 (41) 조경란 작가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우연히 한국경제신문을 보다가 조경란 작가님을 알게 되었는데 제가 태어난 봉천동에서 평생 사셨다는 것과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여겨져서 이 분의 뒤를 밟게 되었습니다. 조경란 작가님은 1996년에 등단을 하신 이후 지금까지 소설가로 글을 짓고 계시는데요. 이 분에 대한 기사가 2002년부터 올해 2024년까지 무려 22년에 걸쳐서 있어서 이것을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던대로 중간 중간 마음에담고 싶은 말은 붉은 글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33세였던 2002년의 조경란님은 이제 55세가 되셨습니다.

캐릭터들도 작가와 함께 나이들어가더라. 는 부분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만에 침잠하던 서정 시대는 끝났다는 말씀이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치열하게 저자신만을 위해 살던 서정의 시대를 보내고 50대가 되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고 특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철학도 있으시고 어려움을 가진 인생들을 대상으로 수십년간 올곧게 사신 것이라든지 수년간 글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를 겪으셨다든지 하는 부분이 저는 좋게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근 30년간 그 일을 꾸준히 한다는 자체로도 부러워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조경란 인터뷰 – 중부일보 손대선 기자 6/4/2002

최근 ‘코끼리를 찾아서’(문학과지성사 刊)를 출간한 소설가 조경란씨(33). 지난 96년

지난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면서 시작된 작가이력이 올해로 7년째다.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7권의 책을 출간했으니 매년 한 권의 책을 독자들에게 꼬박꼬박 내놓은 셈이다. 이런 꾸준함만으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마당에 내놓은 작품마다 문단 안팎의 각별한 주목을 받아온 작품세계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쁘지 않아요?” 옅은 파스텔톤으로 채색돼 동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번 작품집의 표지를 넌지시 내려보며 하는 말이다. 오연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하는 평소의 그를 떠올려 보면 이런 말은 약간은 의외다, 그러나 이내 그는 마치 상처를 어루만지듯 책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 작품들을 쓰는 동안 많이 아팠어요. 글쓰기는 정신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격렬한 통증이 동반되는 육체적 현상이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때로는 친한 벗과 심하게 다툰 적도 있고요. 그렇게 한여름을 옥탑방에서 땀을 뻘뻘흘리면서 썼어요.” 이럴 때 속된 말로 ‘깡’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선뜻 가냘프다는 인상을 주는 그이기에 이런 ‘깡’은 작품에 관한 한 그만의 결벽, 혹은 철저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작품집에는 ‘코끼리를 찾아서’를 비롯한 ‘동시에’ ‘마리의 집’ 등 7편이 실려있다. 작품들을 아우르는 주제는 연인의 죽음이나 가족의 균열이든 결핍으로 인해 빚어진 병적인 심리 현상들이다. 작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같은 병적인 상황으로 암시하다 어느 순간, 상황의 이면에 은폐된 인물들의 상처를 슬쩍 들춰 보인다. 이 ‘슬쩍’의 순간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지닌 야릇한 현현(顯現)의 힘이 아닐까. 그는 표제작을 통해 ‘코끼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이 땅의 토착생물이 아닌,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코끼리는 결핍의 무게, 부피를 상징한다. 그의 작품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셈이다. “작품을 쓴 것은 지난해 10월이에요, 처음에는 주변을 맴돌던 코끼리의 이미지가 이제는 온전히 나타나요. 내가 바로 코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떤 결핍의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유연한 움직임을 갖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코끼리의 이미지가 은연중에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었는데….” 느림과 빠름을 고루 안배하는 탁월한 문체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강단의 문예창작과정에서 종종 텍스트로 채택되는 문체에 관한 한 데뷔 때부터 완성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문체주의자란 말이 늘상 따라다녔어요. 듣기에 따라서는 칭찬도 되지만 그러나 나 자체는 어떤 한곳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체주의자란 이 꼬리표를 떼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한참이 지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작품을 관통하는 문체가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작가적 개성에 값하는 것이라면 납득하고 수긍합니다.” 이 사람, 진작부터 소설을 써야했을까. “20대 초에 한 컴퓨터 그래픽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그러나 성실한 직장인은 아니었지요. 한번은 일주일에 4번씩이나 결근을 한 적도 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 분들로부터 연락이 와요. 한 분이 말해요. ‘너는 언제나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작가는 요즘 등단한 이래 처음으로 여유시간을 갖고 있단다.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난 1월부터는 요가를 시작했다고. 원고독촉 같은 일체의 압박감 없이 편한 자세로 문학고전들과 옛날 비디오를 다시 섭렵하고 있다. 작품이 몸 안으로 들어와 육화(肉化)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소설에 붙들어 매어놓는 것은 세상에 대한 열정입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문학은 어쩌면 대중과의 공모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예감이 들곤 해요. 그 끝에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어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깊어져야겠다고, 앞으로는 한곳으로 깊이 파내려 가는 기분으로 쓰고 싶어요.” 코끼리는 그의 뱃속에 있다. 코끼리는 김장 같은 것. 기실 그는 김장독 같은 보아구렁이다. 월드컵의 환호성이 그의 옥탑방을 휘감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천천히 코끼리를 발효시킬 그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전해져 온다.

[동인 문학상 ‘최후4강’ 릴레이 인터뷰] 조경란 ‘국자이야기’ –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 10/1/2005

소설가 조경란(36)은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나 지금도 봉천동에서 살고 있다. 소설집 ‘국자이야기’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자전 소설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그는 바로 그곳에서의 성장과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 집은 봉천동에서도 높은 지대에 있다. 게다가 내 방은 옥상 위 높고도 높은 옥탑방이다. 달도 태양도 이웃이다. 봉천동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다.

작가의 집은 목수였던 부친이 직접 지었다. 옥탑방 창문을 열면 관악산이 보인다. 시인을 꿈꿨던 부친은 옥탑방을 완성한 뒤 “우리 세 딸 중 누군가가 이 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맏딸인 작가는 바로 그 옥탑방에서 밤새 글을 쓰고 아침 7~8시에야 잠에 든다. 10년째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한다.

―원래 시인이 되려고 했다는데.

“스물여섯살에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들어갔다. 시창작 시간에 시를 발표하면 소설같다고 하고, 소설 창작 시간에 소설을 발표하면 시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시를 포기했다. 소설은 인내와 용기가 있으면 쓸 수 있다. 하지만 시는 타고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소설가란 그럼, 시인이 못 된 사람인가.

소설가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속삭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속삭임을 말이 되게끔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봉천동에서 계속 살 것인가. 결혼을 하면 떠날 것인가.

“결혼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동생 둘은 모두 시집을 갔다. 나는 부모님과 셋이서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살고 싶다. 봉천동에서 오래 살 것 같다. 봉천동 옥탑방을 벗어나면 글을 한 줄도 못쓴다. 봉천동이란 이름이 촌스러우니 바꾸자고 주민들이 주장한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다. 만일 새 이름을 사용한다면, 택시를 탈 때 ‘옛날 봉천동 말예요’라고 어차피 말해야 할 텐데…”

―독일에서 당신 소설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소설집 ‘코끼리를 찾아서’와 장편 ‘식빵굽는 시간’이 독일어로 출간됐다. 지난 4월 쾰른에서 열린 한국 문학 낭독회에 다녀왔다. ‘코끼리를 찾아서’의 독어판 제목은 ‘코끼리가 어떻게 내 침실에 들어왔는가’다. 제목이 특이해서 독일 독자들의 눈길을 끈 듯하다. 그들은 내 소설에 대해 ‘집요함이 있다’고 평한다. 아마 한국적 단편 소설 특유의 완결성과 밀도 때문이 아닐까.”

― ‘한국문학의 사생활'(김화영 엮음)을 뒤적이니까, 누군가 당신을 이렇게 묘사했다던데. ‘얼굴은 아름다움이 죽음과 정면으로 맞대결한 듯 청초하고, 그렇게 죽음이 새하얀 듯, 아름다움이 상복인 듯 아찔한 그 찰나 속에 식빵 굽는 여자’

“(웃으면서) 김정환 시인이 쓴 글이다.”

―1996년 등단 이후 이번에 수상후보작인 ‘국자이야기’까지 4권의 소설집을 냈고, 3권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왕성한 필력이다. 글쓰기가 행복한가.

“글을 쓸 때 행복하지는 않다. 하지만 글을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내 삶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신인 시절에 ‘공부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 ‘국자이야기’에서는 내게 절실한 것들이 순서대로 터져나왔다. 앞으로도 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위로를 준 책이다.”

[조경란 낭독회] 작가의 몸짓 하나에 탄성… 환호… – 북데일리 김민영 기 11/14/2007

– 장편소설 <혀> 출간한 조경란 작가 낭독회 현장 스케치, 행사 주최 : 알라딘, 문학동네 –

[북데일리]계단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리 카페가 그처럼 비좁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이 조경란 작가의 팬이었다. 6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혀>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컸다. 신곡을 발표하는 가수의 콘서트 장 못지않은 열기였다.

오프닝은 ‘맘마미아’ 등으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배해선이 맡았다. 아바의 ‘I have a dream’을 열창하는 그녀의 음성은 그야 말로 해맑았다. 입담 또한 수준급이었다. 배해선은 조경란을 `문학계의 이효리’라고 소개했다.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지만 공식행사이니 만큼 ‘작가님’이라고 부르겠다며 애교 섞인 멘트를 날렸다.

곧 이어 조경란 작가가 등장했다. 행사장 곳곳에 붙여진 포스터 이미지처럼 청순한 이미지였다. 흰색 니트 원피스와 롱부츠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무대체질인 내가 왜 이렇게 떠는지 모르겠다”며 환히 웃는 미소가 목련처럼 탐스러웠다.

조경란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털어 놓았다. 몸살처럼 앓던 치열한 사랑 이야기, 시작점에 놓인 지금의 사랑도 속삭였다. 20대 초입. 외부 생활을 끊고 독서에만 몰입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털어 놓았다. 그렇게 무려 5년간 책만 읽은 덕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세 번에 이어진 나긋한 낭독. 한 편의 연극을 방불케 한 생동감 있는 조경란의 목소리가 듣는 이를 들뜨게 만들었다. 편안한 뉴에이지 음악이 깔려 낭독의 묘미를 더했다. 이어 독자와의 대화가 마련됐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인 탓에 독자들의 궁금증 또한 매우 컸다.

이날 가장 눈에 띈 독자는 “조경란 작가만 좋아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질투나 미치겠다”고 말문을 연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는 글뿐만 아니라 조경란 작가의 외모, 스타일까지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호남 형 남자친구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시를 공부하는 국문학도라고 했다. 처음에는 질투심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스스로가 더 팬이 됐다는 그녀. 참석자들은 이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밖에도 “독자들이 <혀>를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는가”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가” “요리를 주된 소재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어 배해선의 열창이 펼쳐졌다.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가 울려 퍼졌다. 독자들은 흥겨운 박수 환호로 노래에 어울렸다. 카페 구석까지 닿을 듯한 배해선의 청명한 목소리에 ’앵콜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배해선은 고개를 내 저었다. “오늘 만큼은 제가 아닌 조경란 작가님의 날이니까요”라는 겸손한 거절을 내비쳤다.

그리고 조경란 작가의 마지막 낭독이 이어졌다. 삼각관계로 아파하던 여주인공이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이었다. 객석 구석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독자들도 눈에 띄었다. 섬세한 감성으로 사랑의 상실감을 묘파한 조경란의 탁월한 문체가 빛을 발했다.

행사 말미. 영화 ‘Once’의 삽입곡인 ‘Falling Slowly’가 흘러나왔다. 몇몇 독자는 음악에 취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혀>를 들고 독자들의 줄을 섰다. 새 날이 올 것 같지 같은 아득한 밤이었다.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 우먼동아 김수정 기자 8/22/2008

조경란이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4년간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여자로서 늙어간다는 두려움으로 슬럼프를 겪었다는 그에게 방황했던 지난날과 독신으로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해마다 장편이나 단편소설집을 발표해온 ‘부지런한’ 작가 조경란(39)의 작품활동이 뜸해진 건 4년 전 소설집 ‘국자 이야기’를 펴낸 후부터였다. 1년에 한두 차례 단편을 발표했지만 예전보다 집필 속도가 더뎠고, 작품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공황장애, 우울증을 겪거나 타인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싸여 있었다.
“선배들이 종종 ‘그렇게 쉬지 않고 쓰면 지친다’ ‘10년 차에 접어들면 슬럼프가 온다’고 조언했는데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문단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씁쓸함이 들었고, 자신감도 잃어버렸죠. 스스로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작업실이 무조건 싫은데도 책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죠.”
중년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컸다고 한다.
제게 늙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였어요.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흔에 가까워진다는 점이죠. ‘남편과 자식도 없이 오로지 소설만 써왔는데 도대체 내 위치는 어디일까’ 하며 혼란을 느낀 것 같아요.”
그의 이런 불안정한 정신상태는 가끔 꿈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어느 날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어깨뼈를 삽으로 내리찍으며 “너는 늙고 실패했다!” 하고 외치는 악몽에서 깬 그는 밤새 소리내 울었고 “늙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의 기억을 신작 ‘풍선을 샀어’ 속 ‘형란의 첫 번째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슬럼프는 꽤 오랜 시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한 학기 만에 교수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자신은 한 줄도 쓰지 못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순을 느낀 것.
“강의 첫날 ‘소설을 쓴다는 건 나라는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것이다. 자신이 글에 드러나는 것을 겁내지 말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부터 알려줬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서 정작 제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하루라도 빨리 벽돌로 새로운 집을 짓고 싶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었거든요.”

고뇌하고 방황하는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의 모습 담아
그는 3년 가까이 베를린·암스테르담·파리·도쿄 등을 전전했다고 한다. 여행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여행용 트렁크를 덜덜덜 끌고 다니는 동안 낯선 이국 땅에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그곳에서도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책상을 피해 도망쳐왔지만 매 순간 눈앞에 책상이 떠오르더라고요. 술도 많이 마시고 울기도 했어요. ‘이빨로라도 책상을 물고 늘어지라’는 카프카의 말이 ‘치열한 열정이 없으면 포기하라’는 말로 들려 괴로웠고요. 베를린에 위치한 ‘문학의 집’에 두 달 머물면서 ‘소설을 완성하기 전까진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두려움을 깼다고 한다.
한 친구가 ‘베를린에서 뭘 하면서 지내니?’ 하고 묻기에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어’라고 답했더니 ‘그러지 말고 그다음 문장부터 시작해봐. 첫 문장은 글을 쓰는 동안 찾아오지 않겠니?’ 하고 충고하더라고요. 또 작가를 아버지로 둔 한 친구는 ‘너는 지금보다 더 깊은 고독 속에 빠져들 거야. 그러나 이겨낼 거라고 믿어. 우리 아버지도 너처럼 고독하고 삶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이겨내셨거든’ 하고 위로해줬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친구들에게 위로받으면서 저도 남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를 즐긴다는 조경란은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글에 담았다고 한다. “고독에 직면하고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자기 세계를 당당하게 펼친 철학자 니체와 작가 버지니아 울프, 화가 반 고흐 등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작가의 가장 간절하고 밀접하고 뜨거웠던 감정을 털어놓기 마련”이라고 고백했다. 그 무렵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도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풍선을 샀어’ 속 대부분의 화자는 ‘나’이고, 30대 중반의 여자다.
“넉 달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지난해 말 장편소설 ‘혀’를 펴냈지만 그건 이미 10여 년 전 구상한 작품이기 때문에 슬럼프의 잔재는 대부분 ‘풍선을 샀어’에 남아 있어요. ‘형란의 첫 번째 책’의 경우 ‘경란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하면 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제목을 바꿨고, ‘마흔에 대한 추측’에 등장하는 마흔을 앞둔 주인공도 글을 쓴 지 오래된 모습이나 사람들과 사귀는 게 쉽지 않은 모습이 저를 닮아 있어요.”
그에게 글은 창문과 같다고 한다. 자신이 있는 곳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밖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비추기도 하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자습시간에 담을 넘어 서울 광화문 헌책방으로 달려가 책에 파묻혀 지냈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이에 두는 일을 하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작가를 꿈꾸진 않았죠.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책 속에 미래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방황하면서 거듭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는 독방에서 책만 붙잡고 살았고, 6년 동안 홀로 습작과 필사를 반복한 뒤 스물여섯의 나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해서 금방 스타작가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얼마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뭘 좀 해보자,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을 거야’하는 생각에 요리학원에 다녔어요.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식빵 굽는 시간’이죠.”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그는 이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돌이켜보면 작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사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전업작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아요. 소설을 쓴다고 해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과 생활패턴이 달라 어려움을 겪죠. 다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주어진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서울 봉천동에서 부모와 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옥탑방·고시원 등에서 집필해왔는데 ‘혀’를 펴낸 뒤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고. 그의 집필실에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전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만 꺼놓으면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방 한 칸에 15개의 책장이 놓여 있는데 그는 “뜨거운 책, 엄격한 책, 자유로운 책, 다 읽은 책, 다시 읽을 책 등으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즐겁고,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시집을 50~60권 정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어요. 큰소리로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도 하고요. 저는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은 책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업작가로서 살면서 힘들 때 있지만 책 읽고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는 왜 가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는 “모든 걸 충족하고 살 수는 없다. 신이 남자, 좋은 집, 글쓰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망설이지 않고 글쓰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랑하는 게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10년 전 제 모든 것을 걸 만큼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실연의 아픔을 겪었어요. 그로 인해 무척 힘들었지만 비로소 성년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일을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그에게 지혜를 듣고 싶고 이해를 바라는 건데, 어쩌면 아주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죠.”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그는 “10분 후의 일도 어찌될지 모르기에 인생을 단정지을 순 없다. 다만 결혼하더라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전 사주를 봤는데 초년에 고생하고 마흔에 대기만성하는 팔자를 가졌대요. 제 별자리가 염소자리인데, 염소자리는 맨발로 바위산을 오르는 기질을 가졌거든요. 고독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꼭대기에 오르는 형국이죠. 사주와 꼭 들어맞는 것 같아요. 염소자리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많대요. 예전에는 ‘염소자리라 내가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든든하고 좋아요.”
그는 오는 9월 ‘UC버클리·대산문화재단 한국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잠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 강의를 열고 작품 발표회를 가지면서 새 소설을 구상할 생각이라고. 차기작은 삼각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저는 글쓰기 전에 반드시 스케치를 해요. 해가 어느 쪽에서 떠서 어느 쪽으로 지는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사는 지 같은 걸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니까 그곳에서 축척지도를 만들고, 잡지를 보면서 소설 속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을 거예요. 저는 소설 쓸 때 배우가 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인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공짜문학시대’ 작가가 사는 법: 한일 소설가 조경란-시마다 마사히코 대담 – Forbes Korea 6/8/2011

한국과 일본의 문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소설가 조경란(42)과 시마다 마사히코(50)가 만났다. 조경란은 1996년 단편 ‘불란서안경원’으로 등단한 이래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복어’ 등 인기 소설을 발표했고, 최근엔 산문집 ‘백화점’을 펴냈다. 시마다 마사히코는 26년 동안 30권에 가까운 소설과 20여 권의 희곡과 오페라대본, 에세이를 썼고, ‘피안선생’ ‘나는 모조인간’ 등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최종후보에 여섯 번이나 올랐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25일에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대산문화재단 주최)에 참가했다. 2000년과 200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이 행사의 주제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 시마다 마사히코는 이 자리에서 “지나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오히려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조경란이 ‘궁극의 질문들’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과도 맥이 닿는 듯했다. 두 사람은 2004년 아이오와 대학 작가 연수시절에 만나 친분이 두텁다. 조경란은 “시마다 마사히코의 빅팬(Big fan)”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두 작가가 일본어 통역의 도움을 받아 대담을 나눴다.

e북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멀티미디어로 문학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나?

시마다: 인간은 처음엔 문자도 없이 구어로 살아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1만500개의 단어를 암기해서 살았다고 하니 인간의 뇌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문자로 말하는 시대라 기억력이 그때만큼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에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효율적인 출판이 가능하게 됐다. 작가도 원고를 써서 책을 출판하고 인세가 그 수입원이었는데 이제 책이 공짜인 시대가 돼버렸다. 정보를 보존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우선 ‘뇌에 기억하기’였고, 그 다음에 인쇄였다. 지금은 CD, DVD, 하드디스크등을 이용해 데이터로 남기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신뢰하기 힘든 방법이다. 반면 종이책의 수명은 길다. 구텐베르크 성서는 550년 넘게지난 지금도 읽힌다.

조경란 멀티미디어가 책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여전하다. 멀티미디어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은 점점 두뇌를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개인 컴퓨터, 아이패드에 모든 걸 의존한다. 모든 정보가 담긴 아이패드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주 오래된 구식 휴대전화기를 쓰는데 가능하면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억해두려 애쓴다. 환경이 발달하면 할수록 누구나 쉽게 저자가 되고 출판이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이제 거의 마지막 남은 수공예, 수작업을 한다. 멀티미디어 다매체 시대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궁극의, 최후의 질문이다.“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며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마다: 지금은 다른 플러스 알파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터넷에서 북콘텐트를 거의 무료로 다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대목은 음반시장의 경우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해 살길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공연문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조경란: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그거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피셔 대학에서 장서 50만 권을 폐기하고 전자책으로 대체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느꼈다. 나는 글쓰기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작가의 삶은 비공리적이며 책 쓰기도 그러하다. 영원히 비공리적인 삶을 살아갈 작정이다. 조경란의 책은 컴퓨터에서 다운받기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서점에서 종이 책을 구입하더라도 희소성 있는 작가로 남고 싶다. 책을 책이라고 말하지 않고 종이책, 종이신문으로 말하는 현실이 슬프다. 여러 번 전자책 출간 제의를 받았지만 응낙하지 않았다. 지난 16년 동안 글을 쓰면서 소수의 고정 독자가 생겼다. 그분들은 전자책을 내지 않더라도 내 책을 사 볼 것이다.

다매체 시대의 작가는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하나?

조경란: 특정 독자를 의식하면서 글을 써본 적은 없다. 나에게 독자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야기가 뇌리에 스치면 공 굴려지는 시간이 있다. 우리는 오감, 육감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 접촉했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 행간의 무수한 의미가 중요하다. 더 예민하고 치열하게 글을 써야 살아남는다.

시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토리텔러가 됐다. 항상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미묘한 상태를 시작으로 소설을 쓴다. 가장 오래된 문학의 형태는 신화 즉 꿈의 기록이다. 신화는 때로 황당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각자 신화와 같은 내용을 매일 아침 느끼지 않나? 꿈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자신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작가는 돈벌이를 하려고 글쓰기를 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작가에게는 화폐나 다름없다.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창작해 왔다. 실용적이지 않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들을 만들어 왔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엔 실용적이지 않지만 가치가 있다. 작가는 맘만 먹으면 화폐를 만드니 합법적인 위조지폐로 사는 셈이다.

조경란: 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에 있는 친동생과 연락이 6시간가량 두절됐을 때 공포를 느꼈다. 테크놀로지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력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시마다씨께서 느낀 일본은 어땠나?

시마다: 일본 대지진 이후 얼마 동안 가족, 친지와 연락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광장에 모여 입소문을 통해 안부를 묻는 방식이다. 지진 이전에 세계인의 관심이 아랍 혁명에 쏠렸었는데 이 또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입소문을 통해 일어난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트위터나 SNS를 통해 일어난 혁명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2차적인 영향에 불과하다. 1차적으론 광장 네트워킹을 통해 이뤄진 혁명이었다. 일본에서 지진, 쓰나미가 닥쳤을 때 종이책이 훼손된 가정이 많았다.

각지에서 오래된 책을 책방에 파는 사람이 많아졌고 책의 전자화 역시 빨라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전자책도 전기가 없고 인터넷이 없으면 쓸모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최근의 일본 전력난은 이러한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해줬다.

조경란: 나는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SNS로 소통하는 작가들이 부럽지만 잘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과연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시마다씨는 트윗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작가로 살아가는데, 혹은 독자와의 소통에 도움이 되나?

시마다: 나에게는 2만2000명의 트위터 팔로워가 있다. 이는 2만2000부의 잡지와 맞먹는 역할을 한다. 전화 연결이 안 될 때 인터넷은 나의 게시판 역할을 해준다. SNS는 동시다발적으로 단시간에 확산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과 비슷하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 작가들에게 저서에 친필로 사인해서 인터넷서점을 통해 판매한 다음 그 수익금을 기부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여러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줘서 인터넷상에 ‘복구서점’을 만들었다. 170여 명의 작가가 동참했고 7000권 정도의 책이 모아져 웹에서 팔렸다. 멀티미디어가 지닌 장점이 아닌가 싶다.

조경란: 내 책은 15개국에서 발간됐지만 일본에선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내 책이 일본어로 출간된다면 가장 먼저 복구서점에 기부하겠다.

혹시 두 분이 공동 작업을 할 생각은 없나?

조경란:
 20대 초반에 혼자 틀어박혀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시절에 시마다씨의 책도 모두 읽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작가들을 좋아한다. 작가 교류에서 배울 점이 많다. 외국작가와 공동작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밀란 쿤데라, 미셸 우엘벡, 시마다 마사히코 이 세 분이 아니라면 할 생각이 없다.

시마다: 나도 한국작가와 공동작업을 한다면 조경란씨와 하고 싶다. 조경란씨가 뽑은 세 명 가운데 내가 가장 젊어서 유리할 것 같다.(웃음)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조경란:
 단편을 하나 쓰고 오는 7월 말에 도쿄로 가 한 달가량 머물 예정이다. 사실 3·11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려고 했다. 작가는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필사적인 반대로 가지 못했다. 공포가 지나간 뒤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이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듣고 싶다. 먼 미래에 쓰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다. 가을에 돌아와서 다른 장편소설을 시작할 예정이다. 평온해 보이는 상태에서 더 두려움을 느낀다.

시마다: 도쿄에도 대지진 이후 정신적 혼란을 겪는 이가 많은데 얼마나 가깝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할 듯하다. 이미 후쿠시마에는 두 번 다녀왔다. 센다이 북쪽 지역의 쓰나미 피해가 훨씬 컸다. 후쿠시마는 인재 때문에 문제가 크다. 일본 작가 중에도 후쿠시마 피해 현장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고민하는 이가 많다. 나를 포함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지진 이후 자아가 분열된 사람이 상당히 많다. 모두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또다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3·11 이전의 자아와 그 후의 자아,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 연구할 생각이다.

조경란 작가, 가난했던 부모님께서 주신 것은 ‘읽는 즐거움’ – 다독다독 5/23/2012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것

조경란 작가님은 생애 40여년의 기간 동안 단한번도 신문을 옆에 두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간지 3종, 주간지 1종, 교육신문, 독서신문 등 여러 종의 신문을 보고 있다고 하시는데요. 어린 시절 가난했던 부모님께서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읽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셨기에 매일매일 신문을 읽도록 권장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쉽게 한글을 깨우쳤고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지금의 작가님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신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왜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작가 스스로도 읽는 독잘들도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에 조경란 작가님은 서머셋 모어는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헬리 밀러는 강제적이면서도 즐겁기 때문에, 이청준 선생님은 들끓는 욕망때문에 글을 쓴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글을 쓰고 독자들과 의견을 듣고 같이 할 때면 언제나 최고로 즐겁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밝히셨는데요.

읽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내가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는 읽기는 리딩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왜 읽는가, 어떻게 읽는가, 무엇을 읽는가‘ 등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읽는 크레이이티브 리딩을 강조하셨는데요. 또한 새로운 텍스트를 읽거나 낯선 이를 만나면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이 상태로는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지속적인 읽기습관을 생활화시키는 현명한 수동성이 필요하고 우리가 읽는 모든 텍스트를 언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경란 작가님은 대학도 다니지 않고 은둔형 인간이었던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읽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정말 좋은 단 한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작가로서의 각오도 크고 누군가에게 그런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책 한 권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읽기’를 만난 것은 가장 큰 축복이란 말을 빼놓지 않으셨네요!

끝으로 바늘로 우물을 판다는 터키 속담이 있다며, “이 말은 인내심을 말하는 것이다. 문학이든,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재능이나 주변의 도움이 아니라 인내심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잃지 않고 여러분만의 우물을 파시길 바란다“고 마무리 했습니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 경향신문 4/29/2016

소설가 조경란 ‘봉천동 서재’

‘세상에 이렇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지명이 다 있을까. 어휴, 내 이름이 조봉천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사람들은 봉천동, 하면 우선 판자촌을 떠올린다. … 나는 봉천동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봉천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와 내 가족의 궁핍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울 관악구 봉천동은 중앙동을 거쳐 지금은 은천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봉천동이 가난한 동네라는 선입견을 준다고 해서 중앙동이란 무덤덤한 이름을 얻었고, 다시 도로명 주소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이렇게 지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나 자란 ‘봉천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지은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에서 2층으로 서재를 옮겼을 뿐, 자신의 삶이 된 많은 책장과 책상을 끌어안고 문학과 함께 살아간다.

작가 조경란씨(47)의 하루는 오후 1시에 시작된다. 이때 일어나서 남들 기준으로는 하루 한 끼밖에 안 먹는 식사를 하면서 세 종류의 종이신문을 읽는다. 과거 서재였다가 지금은 침실이 된 옥탑방에서 부모님이 사시는 3층 살림집을 거쳐 2층 서재로 내려오는 시간은 오후 3~4시. 두 군데 대학의 문예창작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밤 12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출입이 허락된 사람은 그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국어와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 조카 둘뿐이다. 세 자매 중 첫째인 그는 도쿄에 사는 두 조카를 포함해 네 조카의 이모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재에서의 두 번째 끼니는 그가 ‘영혼의 빵’이라고 부르는 맥주 한 캔과 빵 한 쪽.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계란 프라이를 빵에다 얹어 먹는다. 조금 마시고 싶은 날에는 대여섯 캔까지도 거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캔에 그친다. 쓰기 이전에 읽기가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그는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받는 책보다 직접 사는 책이 훨씬 많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한다.

자정이 되면 이번에는 일이 아닌 여가를 위한 책을 들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서재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와 쪽문으로 나간 뒤 다시 살림집으로 난 대문을 통해 3층까지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 부모님을 들여다본다. 자정 무렵이면 각자 방에서 각자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은 채 주무시기 일쑤다. 텔레비전과 불을 끄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새벽 5시쯤 잠이 든다.

낮밤이 바뀐 생활은 1996년 작가가 된 이후 20년간 변함 없이 이어졌다. 읽고 쓰는 데 온전히 바쳐진 일상. 그 기원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그는 방에 틀어박혀 꼬박 6년간 책을 읽었다. 뭘 할지 몰랐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책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간대를 거꾸로 생활한 것도, 친구들과 함께 처음 2500cc의 맥주를 마신 뒤 똑바로 걷는 자신을 보면서 맥주가 영혼의 빵임을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가 시인이 되고 싶어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스승 김혜순 시인으로부터 시 말고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그는 졸업하던 해 소설가가 됐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재라는 말은 너무 멋지고, 이 7평짜리 작업실은 ‘균형의 방’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긴장과 의무인 책과 글쓰기, 휴식과 위안인 맥주와 코끼리가 이 비좁은 곳에 다 있으니까요. 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는 이유마저 흔들릴 때가 있어요. 작업실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사나’ 하는 질문, 의기소침에 빠지지 않고 더 살고 싶은 의욕, 이유 같은 것들이 내 옆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는 방,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방….”

한 마디로 그의 삶과 생각이 농축돼 있는 방이다. 그는 옥탑방과 현재 작업실을 꾸려온 과정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자기 방에 상을 편채 쭈그리고 앉아 쓴 소설로 등단한 직후, 원래 막내동생이 쓰던 옥탑방으로 옮겨갔다. ‘커다란 책상이 갖고 싶었다. 옥탑방에도 책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작은 하이그로시 식탁을 하나 샀다. 지금은 군데군데 테두리 칠이 벗겨지고 다리가 흔들거리긴 하지만 아직 쓸 만하다. 옥탑방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심야통화를 했다.’ ‘옥탑방엔 점점 더 책들이 쌓여간다. 책들의 일부를 아래층 거실로 옮겼다. 냉장고 옆면에도 소파가 있던 자리에도 책장을 들여놨다. 아버지가 거실에 기둥을 하나 세웠다. 내 옥탑방을 받쳐놓기 위해서다.’(단편 ‘코끼리를 찾아서’)

책 때문에 천장이 무너질까봐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는 지경에 이르자 어머니가 나서면서 작가가 된 지 11년 만에 서재는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근처에 괜찮은 방이 하나 나왔다고 했다.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근방인 낙성대와 신림동까지 작업실로 쓸 만한 방이란 방은 죄다 알아보고 다닌 터였다. 어지간한 곳은 터무니없이 세가 비쌌다. … 엄마를 따라나섰다. 골목으로 난 쪽문을 열고 열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한 일곱평 정도 될까. 나는 복도를 눈여겨봤다. 간신히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지만 입구에서 방까지 석자짜리 책장을 다섯개쯤 세워놓을 수 있어 보였다.’(단편 ‘봉천동의 유령’)

어머니가 데려간 곳은 세입자가 나간 자기 집의 빈 방이었다. 이 복도에는 그의 눈짐작대로 5개의 책장이 놓였고 9년이 지난 지금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히다 못해 켜켜이 쌓였다. 하얀 롤스크린으로 가려진 오른쪽 싱크대 옆으로는 세계 각국의 맥주가 들어있는 냉장고와 함께 커피밀, 주전자, 컵들이 정리돼 있다.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오자 창 앞에 책상이 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책장이다. 높이 170㎝쯤 되는 5단 책장 10개에 책들이 가득하다. 계속 버려도 책은 줄지 않는다.

서재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가구는 책상과 의자 외에 딱딱한 벤치 하나뿐이다. 처음 이곳으로 옮겨올 때 놓았던 푹신한 소파베드는 치워버렸다. 누구를 초대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책상 오른쪽에는 국내외 시집과 시 이론서, 왼쪽에는 소설 이론서와 문학 이론서, 등 뒤에는 평생 갖고 있을 국내외 소설, 복도에는 산문집과 미술책이 꽂혀 있다. 30년이 지난 책도 먼지 한톨 없다. 줄잡아 3000권은 돼 보이지만 “매일 책등을 보기 때문인지” 필요한 책은 바로 뽑아낸다.

소박한 책장에 비해 책상은 호사를 부렸다. 그는 침실과 분리된 서재를 마련한 기념으로 스스로 디자인한 책상을 목수에게 주문해 홍송으로 짰다. 가로로 얕은 서랍이 세 개 달린 책상에서는 반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그 위에는 클로버 747 TF 타자기가 있고 한 자루도 어김없이 뾰족하게 깎은 일제 연필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바로 아래 동생이 사는 도쿄의 신사에서 사온 연필에는 ‘하루하루의 노력’ ‘한발한발 나간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연필로 책에 줄을 긋거나 창작 메모를 하고 학생들의 소설 원고를 수정해 준다.

그의 책장마다 놓인 작은 조각은 코끼리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사모은, 조금씩 다른 재질과 모양의 코끼리가 서재 이곳저곳에 숨은 그림처럼 존재한다. 코끼리의 등장 역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필름 한 장이 남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잠을 잤다. … 잠에서 깨어났다. 숨을 멈추고 있다가 기습하듯 찰칵, 셔터를 눌렀다. 잡아 뺀 듯 필름이 툭 빠져나왔다. 얼른 불을 켰다. … 웬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거기 있었다.’(‘코끼리를 찾아서’)

그는 자신의 생일에 손수 복어국을 끓여먹고 자살한 친할머니, 애인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은 연숙이 고모, 간암으로 죽은 도성이 삼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받고 헤어진 옛 애인의 이야기를 소설이나 산문에 쓴 적이 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건설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결혼해 스무 살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지상에서 가장 크지만 온순한 초식동물 코끼리는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삶의 무게와 고통과 고독의 현신이다.

그러나 우울하기만 한 게 인생이라면 누가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게 문학이라면 누가 감동할 수 있을까. 밝고 따뜻하고 좋은 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조씨의 소설에는 이런 균형이 있다. 그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소설 <식빵 굽는 시간>에 향긋하게 부풀어오른 빵 냄새를 불어넣었다. 연인 사이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인 <혀>에서는 제철 재료를 사용한 서양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상처받은 남녀의 이야기인 <복어>는 끝내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서정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서정적 시기라는 것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젊은 시기이거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라면 말이다. 평범한 개도 어둠 속에서는 승냥이처럼 보인다. 서정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혹은 어둠 너머의 것을 주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봉천동의 유령’)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커서 그 너머가 잘 보이지 않던 젊음의 시기가 지나서 그런지, 여태까지 써왔던 글보다는 보다 더 ‘그들’ 혹은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침착하게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어요. 크든 작든 읽는 사람에게 생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소설 말이에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나쁜 일을 덜어내는 것, 평온함, 조용한 고립, 찢김이 아니라 스스로 아무는 상처 같은 고독을 원했다는 그는 ‘균형의 방’에서 조금씩 아껴가면서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조경란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백화점>을 펴냈다.

4년 만에 새 소설집 낸 조경란 “가족 문제는 늘 관심사였어요” – 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7/21/2022

첫 연작소설 ‘가정 사정’…”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

4년 만에 새 소설집 '가정 사정' 낸 조경란 작가
4년 만에 새 소설집 ‘가정 사정’ 낸 조경란 작가(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연작 소설 ‘가정 사정’을 출간한 소설가 조경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가족 문제는 늘 관심사였어요. 인간이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가족을 갖고,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어떤 문제가 개인적 책임의 차원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에 직면하고 건너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등단 27년째를 맞은 소설가 조경란(53)이 여덟 번째 소설집이자 가족 문제를 주제로 한 첫 연작소설 ‘가정 사정'(문학동네)으로 돌아왔다. 2018년 단편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이후 4년 만으로, 총 8편이 실렸다.

조경란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가족은 선택할 수도 없고, 버리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개인적 관심사와 사회적 관심사가 맞물리는 지점에 흥미가 있다”는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글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어느 날 동네 식당 앞에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라고 붙은 안내문을 보고선 “순간적으로 몸과 사고가 정지됐다”고 회상했다. 개인 사정이 아니라 가정 사정은 무엇일까, 세상에 많은 가정 사정이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든 가족 문제를 아우르는 문구 ‘가정 사정’은 결국 표제작이 됐다.

소설집 속에서 가족의 모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한 차양 밑에 모여 서로 무심히 다른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가정 사정’)이고, 구성원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견디며 사는 남은 자들(‘양파 던지기’ 등)이며,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이름(‘내부 수리중’)이다. 쉽게 상처 주지만 가장 편하고 힘이 되는 관계로 그려진다.

연작소설 '가정 사정' 출간한 조경란 작가

표제작 ‘가정 사정’은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남동생을 잃은 정미가 아버지와 처음 맞는 둘만의 새해를 그린다. 불꽃놀이 여파로 고층 빌딩에서 떨어진 종이 꽃가루를 치우는 경비원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나 보이면서도 조금씩 나아질 것을 암시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기태와 연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내부 수리중’은 조경란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꼽은 작품이다.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린 기태는 불편한 손이지만 아내의 손을 맞잡는다. 모든 일이 좋아질 리 없지만 서로 의지하고 이겨내길 바라는, 내부 수리 중인 가게 안의 사람들을 향한 조경란의 마음이 묻어난다.

“23번 환자가 다녀갔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개인 사정’에선 원치 않는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대구로 떠나는 여성 인주가 주인공이다. 인주는 최근 발생한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의 피해자로 다행히 살아남았다. 조경란이 탈고 마지막까지 계속 고친 소설로, 제목도 ‘우(右)로 굽은 길’에서 바꿨다.

그는 원래 소설집을 5월에 내려고 했다가 미뤘다. 7편의 소설을 써놓고 전체 구조를 살피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세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방향 걷기’를 추가했다. 유년 시절 엄마에 의한 가정폭력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 딸 미석의 심리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소설가 조경란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조경란과 비슷한 50세 전후 중년 여성이다. 조경란은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는 한 일용직이나 단순 업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며, 일자리를 잃어가는 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는 “내가 20대엔 주인공이 20대, 30대엔 30대였다”며 “나와 가깝고 더 안타까운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원고 수정단계에서야 주인공들이 나와 같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작가의 말’에 쓰려다가 빠뜨린 내용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을 쓰며 쉰이 됐다며 “소설 하나 좋다고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했다.

이어 “작가에게는 자신과 이웃, 사회를 바라보는 3가지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전 소설집이 자신을 지나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는 과도기였다고 한다면 이번 소설집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제 진짜 소설가가 되려나 보다“고 덧붙였다.

조경란은 올해 가을에 단편소설 1편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작품을 쓸 계획이다. 2010년 발표한 장편소설 ‘복어’에 이어 내년 겨울쯤 삶을 버리려고 하는 일가족 이야기를 그린 두 번째 장편도 오랜만에 내놓을 예정이다.

“‘다정한 인사’가 들어 있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옆에서 내 삶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더 살아가야지.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을 기대해 봐야지’ 이런 마음이에요.”

포즈 취하는 조경란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조경란 ‘일러두기’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 – 한국일보 전혼잎 기자 3/25/2024

조경란(55) 작가의 단편소설 ‘일러두기’가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이혼 후 아버지로부터 인쇄·복사 전문점을 물려받은 ‘재서’와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석연찮은 여자” ‘미용’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그렸다.

조 작가는 25일 수상소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라는 질문이 이 단편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글을 마치고서야 그녀(미용)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순수한 생명력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이 만들어내고 행동하는 일상의 경이로운 이야기에 대해 더 쓰겠다”고 말했다.

권영민 문학사상 편집주간(서울대 명예교수)은 “’일러두기’는 평범한 서민의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따뜻하게 전개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도시 변두리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경처럼 펼쳐내면서 각박한 현실의 이면에서 등장인물의 내면 의식의 변화를 꼼꼼하게 챙겨 보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고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를 설명했다.

1996년 등단한 조 작가는 ‘불란서 안경원’ ‘코끼리를 찾아서’ ‘일요일의 철학’ ‘가족의 기원’ ‘혀’ ‘복어’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제47회 이상문학상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우수작에는 김기태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 ‘투 오브 어스’, 성혜령 ‘간병인’, 최미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등 5편이 뽑혔다. 대상 상금은 5,000만 원, 우수작 재수록료는 각 500만 원이다. 제47회 수상작품집은 다음 달 출간된다.

[이 아침의 소설가] 대입 실패 후 책만 읽다, 소설 쓰기 시작한 작가 조경란 – 한국경제신문 임근호 기자 4/4/2024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해 6년 동안 집에서 책만 읽고 지냈다. 그러다 문득 시인이 되고 싶어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스승인 김혜순 시인이 말했다. 시 대신 소설을 써보라고. 대학에서도 하루 종일 책만 읽던 그는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같은 해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제1회 신인작가상도 받았다.

태어나고 자란 서울 봉천동에 계속 살며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코끼리를 찾아서> 등과 장편소설 <가족의 기원> <혀> 등이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상도 받았다.

조경란은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가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단편 ‘일러두기’도 그런 작품이다. 도시 변두리 동네 이웃들이 서로 끌어안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경처럼 펼쳐내며 각박한 현실 이면에 숨겨진 인물의 내면 의식 변화를 담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하는 질문이 이 단편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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