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IAN (46) Admitted Students Day College Tour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 주와 이번주에 걸쳐서 2주간 막내딸이 합격한 4군데의 대학에 투어를 온 가족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비행기로 DC에 갔다가 LA를 가고 다시 보스턴에 왔다가 차로 이동하는 강행군의 일정이었습니다. 다양한 대학들을 돌면서 각 학교와 우리 딸의 Fit을 점검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5월 1일까지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번주에 딸의 Chorus가 Disney World에서 하는 Chorus Competition이 있어서 다음주 초에 돌아옵니다. 아마 돌아오면 온 가족이 함께 상의를 하고 최종 결정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에 앞어 저의 휘발성 있는 저의 짧은 기억력이 사라지기 전에 일기로 몇가지 점을 남기고자 합니다.

먼저 저의 대학 경험을 나눈다면 고3, 1월에 맞은 아버지의 사업 부도 여파로 돈을 중심으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해야 했던 점이 저로서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이공계를 택해야 했던 것이라든지 장학금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는 점 등이 저로서는 지금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딸에게는 돈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충분한 4년간의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딸 아이가 많은 장학금을 받은 학교들도 있지만 Dream School이 아니라고 판단햐여 과감하게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장학금은 받지 못하지만 4학교로 결정한 것입니다.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Public Policy입니다. 정치, 행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Essay를 읽을 때에도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Law School에 대한 가능성도 얘기를 해 두어서 정치, 행정에 대한 입법적인 중요성을 함께 얘기를 한 상태이고 이번에 다녀온 학교 중 좋은 Law School을 가진 학교의 경우는 Law School도 함께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볼 때 대학 생활 가운데 전공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많은 Pre-Med, Pre-Law Students들이 결국 Computer Science 관련 전공으로 졸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한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AI/ML의 시대이고 Tech과 Biotech 등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정치, 행정에서도 그것을 모르고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Tech과 함께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그런 옵션을 제공하는 학교들이 있습니다.

과학자로 평생을 살고 부모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생의 어려움을 겪거나 일터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인문학적 소양과 이해가 그것을 비교적 용이하게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Liberal Arts School에서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번에 비행기를 여러 차례 갈아타는 여행을 하고 나니 거리에 대한 인식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비행기로 간 곳들은 모두 학교가 도시에 있어서 아이가 그런 점을 좋아한 부분이었기도 했지만 대신에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시간적인 소모라든지 비용적인 부분과 함께 너무 멀리 떨어짐으로 인한 만의 하나 상황을 대처할 수 없는 등등의 점도 마음에 걸리기는 했습니다.

학교들의 Amenity들도 많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교에 성공한 동문들이 많아서 투자를 많이 받은 학교들은 학교가 좋아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학교라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식당, 도서관, 기숙사 등은 중요한 부분이고 이와 더불어 학교 주변 상권과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종교적인 성향과 학생들의 Demography도 보았습니다. 모든 학교가 Demography가 같지 않더군요. 이 부분은 학교를 방문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학교는 백인 상류층 자녀들이 주로 오는 학교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고 어떤 학교는 중산층 이나 중하층 자녀들도 들어올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백인, 아시안, 히스패닉, 흑인 학생 비율을 대략 알 수 있었습니다. 합격한 학생들 보다는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면면을 찬찬히 살폈습니다. 종교적인 부분도 저희는 중요하게 보았는데 이번에 방문한 4군데는 모두 큰 문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Quarter제, Semester제를 가진 학교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학교 분위기를 보면 면학 분위기의 학교와 공부와 사교가 함께 하는 학교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클럽 활동도 중요한데 그런 것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부분들을 함께 모두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렇게 좋은 학교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저로서는 저의 어려웠던 대학시절을 상쇄하고도 남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고 행복한 4년의 대학생활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45) 반퇴시대 재산리모델링 – 부채상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중앙일보에서 연재하는 ‘반퇴시대 재산리모델링’이라고 해서 미래에셋증권과 하나은행의 PB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시리즈가 있는데 자신 스스로 재산 리모델링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눕니다.

중요한 시사점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부채 상환을 통해 지출액을 줄이라: 870만/월 지출액을 478만원/월로 변경
  • 개인연금 개시 및 금융소득을 만들도록 자산 배분을 실시
  • 5억원 중 2억원은 주식 ETF, 2억원은 정기예금, 1억원은 단기채권으로 주식 40%: 채권 60% 포트폴리오 추천.
  • 보험 5천만원을 자산으로 계산한 것이 특이함.

[반퇴시대 재산리모델링] 주식 원금 회복되면 매도, 부채부터 전액 상환을 – 중앙일보 4/17/2024

Q. 인천 송도 자가 아파트에 사는 김모(50)씨. 20년 차 공무원으로 현재 6급이다. 김씨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3년 내 조기퇴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퇴직 후 자영업을 계획하고 있다. 김씨 배우자도 조만간 퇴직할 예정이다. 부부가 모두 퇴직하면 한동안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다. 김씨 부부에겐 자녀도 한 명 있어 더 걱정이다. 김씨의 공무원 연금 수령 시기까지는 약 13년 남았다. 부동산 투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보유 자산을 활용한 재테크 방법을 알고 싶다.

A. 공무원 연금 개시 전까지 생활비 부족 문제가 있겠지만, 김씨는 자영업을 통해 월 3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거주 중인 송도 아파트는 주택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자. 김씨가 투자 중인 주식은 원금 회복이 되면 매각 후 부채를 전액 상환하는 것이 좋다. 김씨는 개인연금에 앞으로 3년 더 납부한 뒤 향후 10년간 연금 수령 시 매월 약 6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김씨가 가진 예금 5억원으로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보자. 2억원은 월 이자가 지급되는 정기예금 상품에 가입하자. 연 3.6%를 가정하면 세후 약 50만원을 받을 수 있다. 2억원은 신종자본증권, 월 지급식 ETF(상장지수펀드)에 가입하면 좋다. 나머지 1억원은 예비비로 두자.

◆금리 하락 시기엔 장기채권에 관심을=김씨가 가진 예금으로 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생활비 마련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금리가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과정에 있어 장기채권에 관심을 가지면 좋다. 채권은 정부·지방자치단체·금융사·기업이 투자자를 대상으로 장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권이다. 금리 하락이 지속하면 미국 30년 국채 등 장기채권에서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금리 4%를 확정하는 하이브리드 연금보험도 인기다. 장기적으로 금리 하락 시 매력적인 상품이다. 최초 가입 금액의 30%를 제외하고 중도 인출도 가능하다. 예비비를 단기 채권에 활용하는 것도 좋다. 정기예금보다 수익성이 높고, 위험 등급도 5등급으로 낮은 편이다. 자금 사용 목적에 따라 정교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투자하길 추천한다.

◆조기 은퇴 후 보험료 지출 부담 줄이려면=김씨 부부는 현재 종신보험·건강보험으로 매달 30만원을 납부하고 있다. 실손보험은 단체보험 혜택을 받고 있다. 퇴직을 계획하는 김씨 부부에겐 두 가지 사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퇴직과 동시에 회사 단체 실손보험을 개인 실손보험으로 전환하자. 신규 가입도 가능하지만, 단체 실손보험의 좋은 조건을 개인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목돈으로 보험료 선납 할인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김씨가 53세에 은퇴한 뒤 60세까지 7년 동안 납입할 보험료는 2520만원이다. 만약 선납 할인받으면 약 13% 할인율을 적용받아 2190만원만 내면 된다. 연금 수령 전까지 매월 지출하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참고로 선납 할인율은 가입한 보험의 적용 이율과 선납 가능 기간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44) 신중년 경력설계안내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2020년에 발간한 5060세대 신중년 경력설계안내서를 발간했는데 260여 페이지에 걸친 아주 자세하고 방대한 자료여서 나눕니다. 이 자료에는 사례가 많이 나와서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 5060대 위한 ‘신중년 경력설계 안내서’ 발간 – 100뉴스 송현지 기자 7/17/2020

한국고용정보원이 5060대 신중년을 위한 경력설계 안내서를 발간했다.

16일 발간한 ‘신중년(5060) 경력설계 안내서’에는 50~60대 신중년을 위한 5가지 준비사항이 담겨 있다.

첫째는 ‘은퇴 후 변화에 대비하기’다. 퇴직 후 신중년은 △지위 △생활리듬 △소비수준 △가정 내 역할 △체력 등 다섯 가지 변화를 겪는다. 명함‧직함 등 직위가 없어지므로 퇴직 후 봉사단체 등에 참여하여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하루 일정표 등 새로운 생활 리듬을 만들어야 하며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지므로 소비 수준도 바꿔야 한다. 100세 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가정 내 역할 분담,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다.

두 번째는 ‘나다운 삶을 위한 직업 선택하기’이다. 중후반기에 갖게 되는 직업은 생계수단일 뿐만 아니라 사회공헌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청년에 비해 여러 직업을 경험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자기 탐색과 역량, 흥미, 적성 등을 골고루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신중년 3모작 패키지’ 사업이나 정부 구직 지원 프로그램, 워크넷이나 나라일터 등 취업정보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 된다.

세 번째는 ‘경제적으로 탄탄히 준비하기’다. 낭비적인 요인은 제거하고, 증여‧상속 등 중장기적 자산변화 계획을 수립하고, 가족 간 재무 관련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내서는 확실한 경제적 노후 대비로 ‘일하는 것’을 꼽았고 이를 위해 눈높이를 조정하고 비정기적인 일거리도 수행해볼 것을 권했다.

네 번째는 ‘주변과 풍요로운 관계 맺기’다. 중년이 될수록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인 관계가 필요한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친목 모임이나 취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은 ‘여가와 건강 알차게 챙기기’다. 여가활동은 중후반기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자원봉사‧취미‧학습‧관계지향‧건강관리‧문화‧여행 등 다양한 여가생활이 권장되며, 건강도 함께 챙겨야 하기 때문에 실손보험 가입도 고려해야 하며 건강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 정기 건강 검진 등도 필요하다.

이 안내서에는 창업‧창직‧재취업 준비사항과 성공 사례, 유용한 정책과 웹사이트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원문은 한국고용정보원 홈페이지-발간물-직업‧진로정보서 메뉴에서 파일을 내려받아볼 수 있다.

최기성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은 “전체 인구 중 5060 세대 비율이 30%에 육박하지만, 신중년이 자신의 경력설계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안내서는 많지 않다”며 “본 안내서를 활용해 두려움과 막막함을 덜어내고 다시 한 번 사회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변화에 따른 2030세대와 5060 신중년의 세대갈등 극복 방안

(1) 신중년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

(2) 평생동안 공부하자: 평생학습체계를 구축하고 실천하자.

(3)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동아리 활동을 적극 활용하자: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발전을 도와주기 위한 동아리 등의 모임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도 변화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ex. 컴퓨터 등 디지털 동아리, 예체능 동아리

인생3모작의 길에 서다

(1) 회사를 나오기 전에 준비하자

(2) 주된 일자리 경험을 충분히 살리자.

(3) 이력서 작성을 위해 삶을 꼼꼼이 돌아보자

(4) 지나간 채용공고 속에서 숨은 정보를 파악하자.

(5) 잔뜩 힘들어간 목과 어깨는 내려놓자.

(6) 주변의 네트워크와 정보를 적극 이용하자: 공개된 정보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구직 중임을 알리라.

(7)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말자.

(8) 꿀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잘 알아두자

  • 명함을 만들자: ex. 세대소통전문가, 도보여행기획자, 자기경영컨설턴트
  • 외주창업: 청소용역, 식당운영
  • 지식기업: 자신의 지식 전문성, 취미, 관심주제 등을 지식서비스로 전환하여 기업, 개인, 단체에 판매하는 형
  • 전문계약직: Gig worker
  • 전문가 창업: 협동조합
  • 창직: 생각정리 전문가, 화분 임대업

교사퇴직 후 에듀디자이너 창 사례: 퇴직하던 날 아내에게 두가지를 약속했습니다. 첫째 이제부터 내 밥은 내가 책임지겠다. 둘째 내 용돈은 내가 벌어 쓸 것이다.

경제적인 것만이 당신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적극 참여하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 신중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신중년이니까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퇴직이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세상도 끝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중년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멋진 인생이 얼마든지 남아있다. 귀한 생을 경외롭게 받아들이고 귀하게 활용하고 떠나길 바란다.

돈-시간-행복“의 함수관계를 생각하자. 재무에 대한 비중을 줄인다면 나답게 살 수 있다. 무책임한 광고나 기사에 휘둘리지 말고 이 시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노년, 나이듦”에 대해 공부해 보길 바란다. 숨겨진 곳을 보고 문제의 틈에서 기회를 볼 수 있다면 오롯이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사회공헌일자리 일을 하는 분의 조언: 사전에 준비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하라. 실제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울 때 과거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이럴 때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태도로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배려, 포옹,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다.

사회공헌일자리 조언: 가족의 지지와 소득을 기대하기 보다 본인의 자긍심과 사회적인 성취를 얻도록 각오와 실천이 중요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보람된 노후생활을 위한 가치관, 생활관 재정립이 필요하다.

신중년 채용계획을 인사담당자에게 물었을 때, 단순노무, 영업직이 43.7% 이었다.

임금은 대략 2천-3천만원이 37%, 3천-4천만원이 24%이었다.

신중년 채용시 중요한 항목은 역시 인화력이었다.

신중년 채용의 장점으로 인사담당자들이 꼽은 것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 무형적인 것이 높은 것이 아쉽다. 실제 매출증가, 원가절감 등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고 말한 것은 15%에 불과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43) 한국 고령층이 58세 – 68세까지 10년간 근로소득이 평균 42% 감소한다는 연구결과

은퇴 이후 10년간 평균소득 42% ‘뚝’ – 한국경제신문 강진규 기자 4/10/2024

우리나라 고령층은 만 58세에서 68세까지 10년간 근로소득이 평균 42%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은퇴 후 ‘소득 절벽’ 현상은 저소득·저학력 계층보다는 고소득·고학력자에게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일 오태희·이장연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학술지 ‘경제학연구’에 발표한 ‘우리나라 고령자의 은퇴 이후 소득절벽 효과 분석’ 논문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의 평균 근로소득은 정년 직전인 58세에 311만원이었지만 10년 뒤인 68세에는 180만원으로 42%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한국고용정보원이 2006년 당시 만 45세 이상이던 1만254명을 뽑아 구성한 ‘고령화연구패널’ 중 연구 조건에 맞는 1928명을 표본 추출해 소득 변화를 분석했다.

이들의 소득 감소 원인 중에선 ‘연령 증가에 따른 노화’가 49%를 차지해 가장 높았다. 이어 ‘주된 일자리 은퇴’가 40%로 뒤를 이었다. 주된 일자리란 생애주기 중 가장 중요하거나 가장 오랜 기간 머무른 일자리를 의미한다.

주된 일자리를 떠난 이후 소득 감소폭은 고학력·고소득자에게서 컸다. 이들이 은퇴 후 새 일자리를 구하면 2년 차까지의 소득은 주된 일자리 대비 평균 111만원 줄었다. 반면 저소득·저학력 계층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2022년 기준 36.2%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5.5%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런데도 2021년 OECD 기준 노인 빈곤율은 43.3%로 전체 평균 14.1%의 세 배를 웃돈다.

연구진은 “소득이 높은 근로자들도 주된 일자리에서 바로 완전하게 은퇴하기보다는 정년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유인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고령자들이 더 오랜 기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 기여하도록 하면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OECD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빈곤률 비율이 가장 높았고 (43.4%), 고령노동자의 비율도 가장 높았다 (36.2%). 이것은 OECD 평균 고령자 고용률 15.5%보다 2배 이상되는 높은 비율이다. 인천대학교 이장연 교수팀은 “고령화연구패널(Korean Longitudinal Study of Ageing)” 을 이용하여 고령자의 소득절벽 효과를 초래하는 주요인을 식별하기 위해 “Heckman 2단계 고정효과“를 실증분석모형으로 설계하였다.

근로자들은 평균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더 오래 근로해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하여 기존에 쌓아온 인적자본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재 일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근로 생애주기 전체에 대한 계획을 사전에 설정하고 은퇴를 미리 설계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1차(2006년)부터 8차(2020년)까지의 고령화연구패널은 종단면조사로서 만 45세 이상의 중고령자 10,254명을 격년 주기로 2006년부터 추적 조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 일반적인 횡단면 조사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동일 표본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근로 경력, 이직 여부, 임금 변동 등 노동시장에서의 선택을 지속해서 관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조사
대상을 고령층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여타 패널보다 표본의 동질성이 높고 일자리의 변동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 직종, 소득 등의 변화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수의 표본확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소득, 직종, 산업, 사업체 규모 등 일자리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주택 소유
여부, 자산․부채 상황, 사적․공적 연금소득, 주관적 및 객관적 건강 관련 지표 등 다양한 경제․인구사회학적 정보를 함께 수집하고 있어 개별요인을 통제하는 것이 용이하다.

Figure 1을 보면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 (t)에서 4년까지 소득감소가 가장 크게 하락하고 이후 8년차가 되어도 40% 이상의 소득감소를 나타냈다. 이것을 퇴직하기 2년전 (t-2)와 비교한다면 주된 일자리에서 최고소득 대비 -60% 소득으로 오랜기간 살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Figure 1(b)는 징검다리 일자리에서 이직할 때 소득이므로 주된 일자리와는 상관이 없다. 징검다리 일자리에서 소득이 그 이전 징검다리 일자리와 같아지려면 약 6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징검다리 일자리에서 일하는 기간이 적어도 6년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56세일 때가 가장 임금이 높았다가 59세부터 지속적으로 임금이 감소하며 72세에 최소가 되어 이 소득이 유지된다. 따라서 59세 이후부터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국민연금, 개인연금, 투자자산 등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소득의 80-90% 정도를 국민연금, 개인연금, 투자자산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 미리 계산하고 계획을 해야 한다.

이 논문은 아래에 링크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3) 김주난님 – 육군중령, 시공기술사, 작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 나눌 분은 김주난님입니다. 이 분은 육군사관학교를 1987년에 졸업하시고 장교로 임관하셔서 54세에 중령으로 예편하실 때까지 30여년의 군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5년여간 다양한 일을 하시면서 58세에 3년간의 공부 끝에 건축시공기술사를 취득하셔서 63세의 나이에도 고연봉의 건축시공기술사 업무를 하고 계신 분입니다. 자신이 군인으로 있으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두번이나 다녀오셨는데 처음에는 진급을 위해 다녀왔고 두번째에는 보직이 마땅치 않아서 다녀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좌절도 있었고 그만큼 다시 일어나는 의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만약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군생활의 스트레스를 잘 극복할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59세 이전에는 총 10권 정도의 책을 읽었지만 59세 한해동안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매일 출근하다시피해서 500여권의 책을 1년동안 읽으셨다고 합니다.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이 되어서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모십니다. 아래에 이 분에 대한 스포츠 한국일보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올렸습니다.

눈부신 인생혁명을 꿈꾼다면, 66일을 투자하라 – 스포츠 한국 한민정 기자 10/4/2023

‘66일 습관혁명’ 저자 김주난, 글쓰기와 관계, 운동 중요성 강조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그러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66일 습관혁명’(이지퍼블리싱刊)의 저자 김주난 작가가 인용한 ​김수환 추기경과 스티브 잡스의 일성이다. 벌써 가을의 여정을 지나 연말 분위기로 넘어가는 시기이기에 저마다 새해 꿈꿨던 일들이 작심삼일로 끝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반문케 한다.

저자는 “허투루 보내는 하루 하루를 경계해라”고 강조한다. 눈부신 인생을 살고, 인생 혁명을 이루는 사람의 단 한 가지 비결은 시간을 아끼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라는 것.

저자는 37년 동안 직장생활 중 무엇보다 독서와 인간 관계의 중요성, 운동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삼각관계의 연관성과 중요성을 놓치면서 화병으로 13년 동안 극심한 가슴의 통증을 감내한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저자는 세상을 항해하는 자는 남이 아닌 내 자신, 삶의 주인이자 주인공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항해하는 자신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런 스토리 전개의 바탕은 저자가 60년 인생에서 실패하고 성공했던 기록들이다. 3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고 회고했다면서 독자들은 부디 한 번 뿐인 소중한 삶의 시간을 잘 관리하고 인생 역전의 발판을 구축할 것을 권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인생 혁명이 있다고 말했다.

독서를 통해 큰 인생 혁명을 이룬다는 독서혁명,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관계혁명, 도약하고 성장의 빝거름이 되는 책쓰기 혁명, 더 큰 인생을 살기 위한 의식혁명, 운동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노년에 큰 고생을 맞닥뜨린다면서 이를 해소하는 운동혁명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66일을 강조한 것일까? 이 기간은 좋은 습관이 완전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가장 짧은 기간이라는 것. 그러니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딱 66일만 투자해보길 권한다. 이 책은 그런 삶을 희구하는 인생 항해자를 위한 인생 지침서인 셈이다.

조선 최고의 선비가 된 정약용,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가 된 피터 드러커, 매일 10km 운동을 통해 일본 최고의 소설가가 된 하루키, 노예를 해방하고, 최강대국 미국의 초석을 놓은 링컨, 신하들과 관계 혁명으로 성군이 된 세종대왕 등의 진솔한 스토리를 삶의 기술로 제시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한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저장할 수도 없어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서 많은 사람은 실패한 것”이라면서 “부디 66일 인생혁명을 통해서 시간을 아끼고 잘 사용하는 기술을 습관으로 몸에 체득하면 인생 성공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영토를 잃을지라도 결코 시간을 잃지 않겠다.”라는 나폴레옹 명언을 덧붙였다.

‘66일 습관혁명’ 저자 김주난은 육군사관학교 졸업(육사43기)했고 공학석사, 건축시공기술사, 작가이다. 그는 미국공병학교 고등군사반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아프가니스탄 해외파병 등 30여년 동안 직업군인과 군사교범 번역연구원 번역과 수백 권의 독서광, 유튜브 등 SNS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평생 할 수 있는 강력한 습관을 만드는 시간” 김주난의 신간도서 『66일 습관혁명』 출간 – 한국강사신문 김지영 기자 4/22/2022

평생 할 수 있는 강력한 습관을 만드는 시간, 66일! 인생고수에게 배우는 66일 습관혁명. 『66일 습관혁명(이지퍼블리싱, 2022.03.15.)』은 보다 빠르고, 확실하며, 강력한, 습관을 만드는데 필요한 절대적 시간에 대한 책이다. ‘66일 습관 혁명’은 일찍이 세종대왕, 정약용. 피터 드러커, 링컨, 무라카미 하루키가 실천해 온 입증된 방법으로 기존의 21일 루틴 만들기에 실패한 이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책은 이들 대가들이 독서, 운동, 관계, 쓰기와 같이 인류에 남긴 그들의 업적에 반드시 필요했던 반복적인 행동을 어떻게 습관으로 만들어 갔는지를 알려준다. 이로부터 독자 각 개인이 습관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기획했다.

작심삼일에 익숙해진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66일을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이 책은 66일이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켜줄 강력한 습관이 뿌리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66일 동안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며 66일이 지나면 우리 몸은 임계점에 도달하여 관성의 힘으로 스스로 행동하게 되며, 이것이 습관으로 정착하여 인생을 변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인생을 변화시켜줄 대표적인 습관으로 인생고수들을 통해 배운 다섯 가지 습관혁명을 제안한다. 조선 실학자 정약용을 조선 최고의 선비로 만들어준 독서혁명과 쓰기혁명, 매일 10KM 마라톤을 통해 일본 최고의 소설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운동혁명, 토론을 즐기며 신하들과의 신의를 중하게 여긴 성군 세종대왕의 관계혁명, 깨어있는 의식으로 노예를 해방시키고 최강대국 미국의 초석을 마련한 링컨의 의식혁명이 그것이다.

저자는 독서의 중요성, 인간관계의 중요성, 운동의 중요성 등을 깨우치지 못해 실패했던 경험담을 가감 없이 담아냄으로써 이 다섯 가지 습관혁명이 왜 중요한 것인지 설명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66일이란 시간 동안 목표 달성을 위해 반복적으로 꾸준히 실천해 간다면, 당신은 평생 할 수 있는 강력한 습관을 갖게 될 것이고 당신의 꿈은 관성의 힘으로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저자 김주난의 《66일 습관혁명》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66일은 성공을 위한 마중물이다. 마중물은 부동산 투자에서 종잣돈과 같다. 종잣돈이 있는 사람은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 종잣돈은 작은 목표의 달성과 같다. 작은 목표 달성이 모여서 큰 목표 달성이 된다. 당장 가슴이 시키는 목표를 계획하고 실행하길 바란다. 시작하기 전까지가 길뿐 시작하면 50% 달성이고, 66일이면 90% 성공이다. 머뭇거리지 마라. 남들이 하는 것은 당신도 할 수 있다. 신은 당신에게 엄청난 잠재력을 주었다. — p.44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중간 목표를 잘못 선정하여 추진하면 돈, 에너지, 시간이 과도하게 낭비되어 파산을 경험할 수도 있고,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되고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반면 중간 목표를 잘 선정하여 추진하면 당신의 꿈을 달성하는데 힘과 기운을 주고, 또 다른 중간 목표를 달성하게 하여 승리자가 되게 한다. 중간 목표는 주도면밀하고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강인한 의지력으로 달성해야 한다.— p.59-60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벤자민 메이스는 “인생의 비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달성할 목표가 없는 데에 있다.”라고 했다. 목표가 없는 인생은 비극과 같다는 것이다. 인생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 목표라도 수립해서 실천하라. 인생의 목표는 나 자신이 설정하는 것이다. — p.76

저자 김주난은 육군사관학교(43기)를 졸업 후 전후방 각지에서 30여 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를 위해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해외 파병을 2회 다녀왔다.

아프가니스탄의 재건 활동 및 동맹군 간 협동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대통령 표창장과 국무총리 표창장을 수상했다. 군대 제대 후에는 『여단급 이상 공병 작전』등 군사교범 번역과 범죄예방환경설계 관련 업무를 했다. 이후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 건설사업관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58세의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독서를 시작하여 2년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500여 권의 책은 저자에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으며, 무한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책에서 만난 인생 고수들의 이야기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신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독서·쓰기·관계·운동·의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지금도 1일 1권의 책을 읽고 3쪽 분량의 글을 쓰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인생디자이너 기술사 TV〉와 블로그 〈66일 습관 혁명〉을 운영하고 있다.

2025년 10월 6일 (월요일) update

이번 주에 저의 블로그를 방문하신 분들의 기록과 읽어보신 글들을 잠시 리뷰했는데 특이하게도 김주난님에 대한 글이 가장 많이 읽혀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이 기회에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역시 부러운 분이시고 인생을 참 유익하고 알차게 사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일주일 전 즈음에 중앙일보에 이 분에 대한 기사가 나왔군요.

진급 막혀 전역한 천생 군인…‘연봉 9000’ 기술직 된 기적 – 중앙일보 9/29/2025 박형수 기자

이 글은 기술사 합격수기 같은 글로 쓰인 것 같군요. 김주난님이 2018년에 취득하신 건축시공기술사는 굉장히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 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전역 후 일하신 기업에서 상당한 모멸감을 느끼신 것 같고 그러한 아픔을 견디시는 와중에 한 독서와 기술사 시험 공부 과정이 다시 자존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위해 나아가는 발판이 된 것 같습니다. 역시 인생만사 새옹지마 (人間萬事 塞翁之馬)여서 어떻게 인생이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법이네요.

어찌 되었든 중앙일보 박형수 기자님이 김주난님을 인터뷰 한 기사를 실어주신 덕분에 그 나비효과로 제 블로그도 한차례 방문객을 얻었던 것 같네요. 방문해 주셨던 분들께 감사말씀과 인사를 전합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42) 경제적 자유는 삶의 자유의 일부일 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경제적 자유에 대해 오랜동안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생각했던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경제적 자유 (Financial Freedom)란 자신이 시간, 공간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을만큼의 부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부를 이루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가족마다 씀씀이가 다르고 삶의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대개 자신이 정규직으로 일해서 버는 월급 이상의 수입을 일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고 해서 삶 자체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람에 따라 설사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을 지라도 삶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경제적 자유를 얻고자 한다고 할 때 이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유는 좀더 이른 나이에 직장에 얽매이는 삶으로 부터 은퇴하고 스스로의 삶을 추구해 보자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자유를 얻기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목표는 단지 은퇴자, 즉 일을 하지 않을 권리를 얻고자 하는사람들에게먼 즁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퇴하기 보다 일을 삶의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 중 중요한 요소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는 경제적 자유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 보다는 일을 함으로써 얻는 부수적 산물로서 경제적 자율성이 상승하는 과정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삶의 자유의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나빠져서 삶의 질이 현저히 낮아지거나 급기야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면 자신의 삶의 자유는 크게 손상될 것입니다.

선택적 무능 전략을 통해서 삶의 자유의 파이를 넓히는 “과정”을 즐기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적 자유에 소모하는 에너지를 최소한도로 낮추고 – 예를 든다면 Index 투자 혹은 포트폴리오 투자전략을 통해서 – 남은 에너지를 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자유” 요소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건강한 삶을 통해 얻는 자유
  • 일하는 자유: 혼자 할 수 있는 일 (독립적 직업)과 협업하는 일 (협력적 직업) 으로 나눌 수 있고, 또 일의 목적에 따라 영리를 위한 일 (For-Profit), 공익을 위한 일 (Public) 그리고 비영리 사역 (Non-Profit)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배우는 자유
  • 깊은 관계를 맺는 노력
  • 노는 자유: 혼자하는 놀이 혹은 취미가 있을 수 있고 함께 하는 놀이 혹은 취미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을 증가시킬 수도 있고 감소시킬 수도 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2) 강찬영님, 박경옥님 – 대기업 임원출신으로 택배알바를 하기까지 내려놓음

남편 퇴직 후의 삶이 걱정된다면 이들처럼 – 라이너 전성기 재단 이인철 기자 10/25/2019

퇴직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퇴직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퇴직을 예습하지 못했지만 공부로 퇴직 후의 위기를 극복해 가는 강찬영, 박경옥 부부를 만났다.

20~30대의 퇴직과 달리 50대 이후의 퇴직은 2라운드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크다. 특히 권고사직 같은 비자발적 퇴직은 불행의 시작이자 나락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강찬영(59), 박경옥(56) 부부에게도 퇴직은 원하던 시점에 일어나지 않았다. 대기업인 한진해운에서 27년 넘게 일한 남편 강찬영 씨가 퇴직한 것은 6년 전이다.

“정년 시스템 안에 있었다면 62세가 정년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겠지만, 당시에는 열심히 일을 했고 실적도 좋았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어요.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게 임원이었지만 당시에는 임원들도 보통은 계약이 연장됐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해도 계약이 연장되겠구나 싶었지요.” _ 강찬영

“우리가 약간 방심하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50대가 되면서 앞으로 뭘 하고 살까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퇴직의) 위험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당연히 아무런 대책이 없었어요.” _ 박경옥

남편의 퇴직은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인생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퇴사 후 4개월 정도 쉬다가 중소기업의 부사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해운회사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항공해운 물류회사였다.

퇴직 전에 미리 예정된 자리였기에 불안함은 없었다. 그런데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다시 회사를 나왔다. 이후 강 씨의 재취업 도전은 2년여 동안 계속된다. 그 기간 인맥에 기대어 약속받았던 자리가 어그러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37평형 아파트를 전세로 내주고 전세보증금에 돈을 보태 16평형 빌라로 이사했다. 강 씨는 매일 온라인으로 디지털 대학 강의를 들은 후 왕복 2시간 거리의 택배회사에서 택배 분류와 상차 일을 하고 아내 박 씨는 남편의 퇴직 이후 분노 조절과 동의보감에 대한 강의를 하며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나무옆의자)라는 책을 냈다.

Q 전혀 예상하지 못한 퇴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퇴직을 하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아내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는 조직이란 시스템에서 보호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매달 나오는 남편의 월급이 울타리였죠. 안락하게 살았는데 퇴직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방법이 생기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편 일을 성실하게 했기 때문에 퇴직을 앞서서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첫 번째 회사에서 퇴직을 했지만 금방 재취업을 했고 매월 받는 급여도 변동이 없었어요.

Q 당장은 아니더라도 위기감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었을 텐데요.

아내 남편이 두 번째 퇴직한 후에 6개월 정도는 다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다가 2년 가까이 실업 상태가 됐지요. 그 기간에 생활비를 줄이지 못했어요. 예전 소비 습관을 유지하다가 퇴직금이 바닥나면서 위기를 느꼈지요.

급여가 들어오고 집이 있고 빚도 없고 하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에 무방비 상태였던 거죠. 그나마 개인연금을 넣었던 게 큰 도움이 돼요. 아직 퇴직 전이라면 연금은 꼭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Q 위기감이 실제 위기로 바뀐 것은 역시나 경제적인 부분에서겠지요?

남편 퇴직하고나서 수입이 한정된 범위에서 빚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기존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규모를 축소한 거지요. 규모를 유지하려고 무리해서 살 이유가 없었어요. 전세금으로 빌라 구입하고 남는 돈과 저축을 합해서 오피스텔을 사서 월세 수익을 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 바로 옆에 회사 건물이 붙어 있어서 해가 잘 들지 않고 고물상과 철공소가 가까이에 있어서 먼지와 소음이 많은 곳이지만 지하철역에서 걸어올 수 있는 거리라는 점에서 이곳으로 정했어요. 1호선을 이용하는 남편이 일터에 가기에도 편하고요.

Q 노년에 생활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지만 집이 좁아지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요?

아내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지만 작은 집은 살아보니 당연히 불편해요. 거실 소파는 세 명이 앉기 어렵고 집에 누가 방문하면 편하게 얘기할 곳이 마땅찮고요. 무엇보다 저는 책이 많아서 여유가 되면 조금 더 큰 집으로 가고 싶기도 해요.

집을 줄이면서 이사 오기 전에 4개월 정도 걸려서 물건을 정리했는데 가족과 함께했던 물건이 없어지니 추억도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물건은 중고 거래로 팔고 안 팔리는 건 버렸어요. 다행히 첫째는 직장에서 숙소를 지원해줘서 독립했고 둘째는 일본으로 목조건축을 공부하러 가서 그곳에서 취직해서 정착을 했어요.

Q 매일 직장에 나가던 남편이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아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얘기를 흔히 듣습니다. 갈등은 없었나요?

아내 낮에 누워서 쉴 때도 신경이 쓰였지요. 게다가 남편은 27년간 회사원이었고 퇴직 전에는 비서와 운전기사까지 있어서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게 없었지요. 기차표 예약도 말만 하면 해결이 되었는데 그걸 저에게 기대하니까 스트레스였어요. 그래서 남편이 뭔가 요구를 해도 자립을 하도록 바로 도와주지 않기도 했어요. 이 때문에 잔소리도 하고 갈등도 있고 부부싸움도 있었어요.

남편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내가 자유를 느끼는 시기였으니까. 집에서 실컷 책을 읽을 수 있고 회사 다닐 때는 못 읽던 책도 마음껏 읽고(웃음). 이 시간이 오래 못 갈 것이라는 불안감은 있었어요. 퇴직 후에야 아내의 생활을 알게 됐는데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지 몰랐어요.

Q 두 분 다 지금 디지털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공부를 시작했나요?

아내 책을 좋아하고 철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고전평론가인 고미숙 씨가 운영하는 감이당에서 공부를 여러 해 하고 있었어요. 한번은 <우주 변화의 원리>라는 책을 남편과 함께 읽었는데 저는 어려워서 휙휙 넘긴 책을 읽어내더라고요. 그래서 동양학을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어요. 도서관 등에서 하는 강의를 들으러 다니다가 제대로 공부를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지요. 남편이 2017년에 원광디지털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저는 웰빙문화대학원에서 자연건강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남편 처음 1년간은 동양학 용어를 외워야 하니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어요. 3학년인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강의량이 많아서 느슨한 시간이 없어요.

아내 사실 공부하는 게 돈이 제일 적게 들면서 만족도는 높을 수 있어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지적호기심이 충족됐을 때 만족감이 크죠. 퇴직 후 부부 사이의 대화가 쉽지 않다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저희는 공부라는 공통 관심사를 찾은 셈이에요.

Q 두 분의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남편 이번 학기에 수강한 학점이 24학점이에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꼼짝 않고 강의만 들어도 쉽지 않아요. 오후 4시부터 11시까지는 택배회사에서 일을 해요. 오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수업 내용을 암기하고요. 평일에 여유시간이 없으니 주말에 쉬거나 약속을 잡아요. 아니면 밀린 공부를 보충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는 디지털 대학의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고요.

아내 일주일에 두세 번 강의를 나가야 하니까 강의 준비도 하고 강의 기법이나 컴퓨터 엑셀 같은 걸 배우러 다녀요. 사람들과 만나서 50+ 세대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책을 쓰는데 참고하려고 이야기를 수집하지요.

Q 사무직인 대기업 임원으로 일했는데 늦은 나이에 현장직으로 일하는 것은 힘들지 않나요?

남편 육체노동을 하면서 훨씬 마음이 편해졌어요. 직장생활할 때는 저녁마다 술을 마시는 게 일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뱃살도 없어지고 8kg가량 체중도 줄었어요. 워낙 일이 많으니까 농담삼아 묵언수행한다고 얘기해요. 일하면서 1만 보 이상 걷게 되니 저절로 다이어트를 하고 주급도 받지요. 이전의 삶에서 남아있던 거품을 걷어내는 시간이 내 경우에는 2년이 걸렸어요.

Q 퇴직 이후 인간관계에 변화가 있나요?

남편 예전 직장 동료들과는 온라인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에요. 직장 다닐 때 만나기 어려웠던 고교 동문들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됐고요. 무엇보다도 50플러스재단이나 디지털 대학쪽의 인연이 생기면서 만나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질적으로 더 나은 관계들이 생긴 것이 달라진 점이에요.

아내 책을 쓰고 싶으면 책 쓰기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제지간도 되고 친구도 됩니다. 거기서 만난 분들과 서로 응원도 해주면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졌어요. 외국에 살 때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만났는데 지금은 집을 줄이면서 손님을 부르기가 어려워졌고 둘 다 바빠서 주말에도 밀린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보다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깊어졌어요.

Q 부부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아내 당신도 퇴직했으니까 밥해, 빨래해 이렇게 하진 않았어요. 이제 6년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들면서 같이 살림을 나누게 됐는데 그러면서 진짜 부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전에 살던 방식과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생활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빨래를 안 하던 사람이 빨래를 하고 요리를 안 하던 사람이 요리를 하게 되는 거죠. 남편이 살림을 분담해주기 시작하면서 도움이 됐어요. 내가 블로그에 글 올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던가. 퇴직 이후에 남자가 많이 바뀌어야 해요. 여자도 물론 남편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던 삶에서 벗어나야 하고. 각자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바로 남편의 퇴직 이후에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남편 남편이 퇴직하면 수입이 줄어드는데 아내 쪽에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어요. 이전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내와 합의가 안돼서 이혼하는 경우도 봤고요. 현실인식이 중요하지요.

 Q 두 분의 생활 가운데 공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인상적인데요, 관련해서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남편 디지털 대학을 등록할 때는 3년쯤 되면 길이 보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앞일이 보이지는 않아요. 학당 쪽으로 방법을 찾거나 상담 쪽으로 길을 찾거나.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아, 제가 방탄소년단(BTS) 팬이거든요. BTS 팬클럽 아미(army) 친구들에게 BTS의 노래에 담긴 한국 문화와 동양사상을 알려주고 싶어요. 해외의 아미들 가운데 동양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온라인 채널로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아내 두 사람이 공부가 끝나면 학당도 하고 계속 책도 쓰고 싶어요. 이번에 퇴직 관련 책을 쓰면서 기업의 퇴직 대상자를 대상으로 강의도 해보고 싶어요. 퇴직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과 퇴직 후의 가정 경제, 부부 관계에 대한 강의를요.

기획 이인철 기자 글&사진 이은석(프리랜서)

“대기업 임원서 택배 분류 알바로… 눈높이 낮추니 새 길 보였다” – 한국일보 송옥진 기자 2/24/2021

(Picture: 강찬영님, 박경옥님)

박경옥(58)씨는 27년간 전업 주부로 살았다.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었고 회사에서 잘 나갔다. 네덜란드, 스페인 주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했고 기사 딸린 차도 나왔다. 덕분에 ‘사모님’ 소리도 들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남편이 은퇴를 ‘당’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은 배가 됐다. 다음달 월급이 끊겼는데도 은퇴를 인정조차 하기 힘들었다.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자꾸 들러붙었다.

남편 강찬영(61)씨는 해운회사에서 27년간 근무했다. 수출하는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배를 써 달라 영업을 했다. 평일에는 2차, 3차, 노래방까지 술 자리가 이어졌다. 주말에도 접대 골프를 치느라 쉬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임원을 달았다. 실적이 좋았으니 내심 전임자들보다는 오래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재계약에 실패해 회사를 떠나면서도 생각했다. ‘관련 업계에 곧 재취업할 수 있겠지.’

은퇴 7년차 부부가 회상하는, 은퇴 당시의 속마음이었다. 이들 부부가 은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다. 퇴직금이라는 마지막 희망조차 마르자 우울감도 사치가 됐다. 지난 8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부부는 “침몰하는 배에 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생활을 청산했다. 생활 규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 일을 찾았다. 그 때서야 새로운 길이 보였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

먼저 집을 줄였다. 37평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16평의 빌라로 옮겨 갔다. 줄여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감행했다. 이제 일자리를 찾을 차례. 몇 년째 소득 ‘0원’. 고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강씨가 찾은 새 일자리는 택배 분류작업 ‘알바’다. 30년 가까이 일했던 분야와 전혀 다를 뿐더러, 힘 좋은 젊은 사람들도 고되어서 나가떨어진다는 육체 노동이다. 통상 오후 3시쯤 출근해 6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월 120만~130만원을 번다. 이 일이 벌써 4년째. 강씨 본인도 택배 일을 이리 오래 할 줄 몰랐다고 했다.

강찬영씨가 4년째 근무 중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택배 물류센터. 강찬영씨 제공

강찬영씨가 4년째 근무 중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택배 물류센터. 강찬영씨 제공

강씨도 처음엔 다른 대기업 임원 출신들처럼 ‘관련 업계 재취업’을 노렸다. 공기업, 중견기업의 책임자 자리에만 원서를 넣었다. 한 중소기업에 실제 취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나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알았다. ’50대 관리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로또 1등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내 노하우는 가치있다고 최면을 걸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의 습득력이 빠르고 조직에서의 노하우는 쉽게 대체돼요.” 남편의 재취업을 적극 돕던 박씨도 “새 사람이 오면 자기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누가 반기겠냐”며 현실을 인정했다.

그 때 지인의 우연한 권유로 시작한 것이 택배 알바였다. 처음엔 주변에서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육체 노동이 주는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그가 은퇴자들에게 “꼭 일을 해라, 농사처럼 가급적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 잡념이 싹 사라졌다”며 “집에 돌아올 때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육십이 다 돼서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어깨에 힘 빼세요, 눈높이를 낮추세요

이들 부부가 은퇴자들에게 강조하는 건 ‘어깨에 힘 빼라‘다. 본인들도 다른 생활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현역일 때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은퇴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강씨는 “은퇴한 장성, 교장, 대기업 임원들에게 접근해 ‘협회장·단체장 주겠다’ ‘특별분양을 한다’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달에 몇 천만원씩 수익을 주겠다’ 이런 사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은퇴자들끼리 사업체 만드는 것도 금기 중 하나다. “은퇴한 임원들이 한 2억원씩 모아서 회사를 창업하거든요. 우리 가치를 못 알아보니, 우리끼리 하자면서.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럴 듯한데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도 하나 뽑아요. 그런데 4명이 다 사장인 거죠. 일은 누가 하나요.”

박경옥씨가 남편 은퇴 후 '생존법'을 담아 펴낸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의 표지. 박경옥씨 제공

박경옥씨가 남편 은퇴 후 ‘생존법’을 담아 펴낸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의 표지. 박경옥씨 제공

하지만 그도 어깨에 힘을 쫙 빼기까지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씨가 본인의 책,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에서 전하는 일화는 은퇴자들이 눈높이를 낮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구청 일자리지원센터 앞을 지나는데 외국을 다니는 무당이 국제적인 굿을 할 때 동행하는 통역 겸 비서를 뽑는 공고가 난 거예요. 제가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했어요. ‘당신, 영어 잘하죠, 동양학 공부하고 있죠. 적임자예요’ 이러면서. 나중에야 들었죠. 이력서에 대기업 다닐 때 연봉을 적었다는 걸요. 아니, 통역에게 그만한 월급을 주려면 한 달에 굿을 얼마를 해야 해요?”

“은퇴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 됩니다”

남편이 은퇴하자 박씨도 나이 오십 넘어 처음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평소 동의보감, 한의학을 공부해왔던 그는 서울시 50+(플러스)센터, 구청 등의 강연자로 변신했다. 성격에 잘 맞았고 강연비를 살림에 보태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은퇴자, 은퇴 부부를 상담하는 일도 시작했다. 책을 내면서 ‘작가’라는 새 정체성도 생겼다. 지금은 동년배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강연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박경옥씨가 지난달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시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박경옥씨 제공

박경옥씨가 지난달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시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박경옥씨 제공

물론 프리랜서는 고되다. 자기계발에는 끝이 없고, 홍보를 위해 유튜브,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여럿을 운영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에 강연자로 설 자리도 줄었다. 박씨는 그래도 “50대, 60대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남편의 월급으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 후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부지만, 그렇다고 노후에 돈을 너무 많이 주는 일자리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의 강도가 높아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강씨도 오전 시간에는 사이버대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강씨는 “150만원 이상 받는 일자리는 공부를 할 수가 없겠더라“며 “은퇴 이후에는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취미나 휴식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업 임원서 택배 노동자 된 남편, 전업주부서 작가로 변신한 아내[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9/5/2021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우연히 접하고 읽어본 건 한참 전인데 한동안 묵혀뒀다. 아내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라 남편의 입장이 궁금했다. 자칫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져 남편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박경옥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며 혹시 부군도 함께 오시면 어떠시겠냐고 조심스레 타진하니 흔쾌히 응하겠다고 한다. 인터뷰 장소는 자택이 좁으니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난달 24일 부부가 동아일보를 찾았다. 아내의 오전 수업이 끝나고 남편의 오후 출근을 앞둔 틈새시간대, 점심시간을 낀 두 시간 반 정도가 주어졌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렸다.

우산 함께 쓰는 건 오랜만인 듯, 어딘지 어색해보이는 강찬영 박경옥 부부. 청계천에서.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우산 함께 쓰는 건 오랜만인 듯, 어딘지 어색해보이는 강찬영 박경옥 부부. 청계천에서.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53세에 닥친 퇴직, 재취업과 두번째 퇴직, 그 후 2년간의 도전과 실패의 반복…. 산전수전 겪으며 어깨에서 힘을 뺀 남편은 택배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작가로 데뷔했다. 가장의 퇴직 이후 숨 가쁘게 돌아간 자신들의 삶의 기록이 책이 되었다. 이제 깜깜한 터널 같던 시기를 빠져나온 부부는 “내려놓는다는 각오를 하니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닥친 경영진 일괄사퇴
7년전, 강찬영(60) 씨는 27년간 다닌 한진해운 임원직을 내놓았다. 아무리 임원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지만, 성과가 좋았고 나이도 있어 한 번쯤은 더 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영이 휘청대던 회사는 주주들에게 ‘자구노력’을 보여줘야 했다. 사장을 비롯해 전 경영진이 일괄 사퇴했다. 그 2년 뒤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그래도 처음엔 여유가 있었지요. 4개월 만에 같은 계열 중소기업에 부사장으로 옮겼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도한 외국회사와의 프로젝트가 성사 직전에 무산됐어요. 역할이 없어진 상태에서 회사에 있는 건 면목없는 일이어서 사직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어딘가에 새로 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이력서를 썼지만 다음은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고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별 얘기 없이 택배회사 물류센터 일을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었다.

강찬영 씨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택배 물류회사에서 4년째 분류와 상하차일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정신노동자가 육체노동자로 변하는 과정이라 말하는 강씨는 일하면서 체중 8kg이 빠졌다고 한다. 강찬영 씨 제공

강찬영 씨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택배 물류회사에서 4년째 분류와 상하차일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정신노동자가 육체노동자로 변하는 과정이라 말하는 강씨는 일하면서 체중 8kg이 빠졌다고 한다. 강찬영 씨 제공

집 줄이고,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박경옥(57) 씨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점차 50대의 관리직 재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때까지도 과거의 씀씀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두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마침 유학을 떠난 둘째아들 학비까지 대주고 나니 위기의식이 들었다.

“매달 고정으로 들어오는 현금이 필요했어요. 남편만 쳐다볼 수는 없다보니 저도 돈 벌 길을 백방으로 찾았죠. 감초농사도 지어보고, 고향에서 해산물을 떼어와 택배로 팔아도 보고…. 결국 집을 줄이기로 했어요.”

정든 37평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16평 빌라로 이사했다. 남는 전세금으로 월세가 나오는 오피스텔을 장만했다. 이사 전 중고장터에서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고 못 파는 것은 버렸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두 차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쌓인 자잘한 세간들도 미련 없이 헐값에 팔았다. 추억만 남으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사 간 빌라는 공장 옆이라 먼지가 많고 비좁지만 남편 직장이 있는 오류역까지 한 번에 가는 1호선 전철역이 가깝다.

박 씨는 서울시와 구청 등 각종 구직센터에서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았다.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다보니 조금씩 수입도 생겼다. 최근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추가했다. 서울시나 구청 등에서 제공되는 공공일자리들은 어떤 일이건 월 30~40만원 정도만 벌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중·노년 중에는 작은 수입이라도 얻으려 애쓰는 분이 무척 많아요. ‘학습지원단’이나 ‘상담’처럼 좀 우아한 일거리는 해외유학파나 고위공직자 등 스펙이 대단한 분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요. 다들 품위는 유지하면서 봉사 겸 사회생활 겸해서 월 몇십만 원이라도 벌고 싶은 거죠.”

2002년 스페인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귀임하기 전 현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강찬영 씨 제공
2002년 스페인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귀임하기 전 현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강찬영 씨 제공

○“예순 다 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강 씨는 4년 전 시작한 택배회사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11시 경까지 택배 분류와 상하차일을 한다. 젊은이들도 며칠 일해보고 그만둔다는 ‘극한직업’이다. 업무량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조절하는데 월수입은 대략 120~130만 원 정도다.

예순이 다 되어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니 잡념이 사라지고 건강해졌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빠지던 체중이 8kg이나 줄었습니다.”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주독야경(晝讀夜耕)’인 셈이다. 원광디지털대 동양학과에 등록해 오전 내내 강의 듣고 직장까지 왕복 2시간 남짓 걸리는 전철에서 복습하는 방식으로 생활의 리듬을 만들었다.

“회사생활은 영업의 연속이라 매일 밤 술 마시고 주말이면 골프 치러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에 중독돼 있었어요. 은퇴하면 좋든 싫든 자기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시행착오 겪고 시달리고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시작하게 되죠.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은 처음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의 직함은 ‘우주변화원리연구소’ 소장이다. 동양학을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부부의 놀이는 공부다. 현재는 동양학이 공통된 관심사다. 교보문고에 들른 강찬영 박경옥 부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부부의 놀이는 공부다. 현재는 동양학이 공통된 관심사다. 교보문고에 들른 강찬영 박경옥 부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양함이 있을 뿐
아내는 함께 헤쳐나온 남편의 퇴직과정을 책으로 써냈다. 2019년 7월 나온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나무옆의자)’다. 최근 5쇄를 찍었고 타이완에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한다.

난생처음 책을 쓸 용기를 낸 계기가 있었다.

“남편 퇴직이후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 속에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 즈음 중장년들이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튜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 PD와 카메라맨 두 분이 제 얘길 너무 열심히 들어주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어떤 해결책도 줄 수는 없지만 제 말을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며 후련해졌어요. 당시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받았죠.”

-책 내용을 보면 남편이 싫어할 내용도 있는 것 같은데….

박 씨가 “쉽지 않았어요”라며 웃기 시작하자 강 씨가 끼어든다. “은퇴하는 분들에게 제가 겪은 것을 전달하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책이 조금 과장되게 포장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에서는 힘들었어요. ‘삼식이’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절대 그 말을 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썼더라구요. 제가 화를 냈죠.”

박 씨는 “독자들 중에 책을 낸 것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한다.

“대기업 임원까지 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무슨 택배회사에서 일을 하냐는 둥의 비난이죠. 우리 사회에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심한 것 같아요. 제가 몇 년간 일자리 찾아다니며 보면 다양한 역할 중 하나를 내가 하고 있을 뿐이예요. 우린 모두 다양성의 세계를 살고 있고 안정된 삶은 없어요. 저희를 ‘대기업 임원까지 한 친구가 왜 나락으로 떨어졌냐’는 식으로 보는데, 우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박경옥 작가는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구청이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한다. 책을 낸 뒤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 코로나 탓에 요즘은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박경옥 씨 제공

박경옥 작가는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구청이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한다. 책을 낸 뒤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 코로나 탓에 요즘은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박경옥 씨 제공

은퇴 후 배우자는 보험같은 존재
큰 아들은 지난 봄에 결혼했고 둘째는 유학 간 일본에서 취직해 눌러앉았다. 부부의 고난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한다. 집에는 오롯이 부부만 남았다.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우린 살 수 있다, 괜찮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우리 둘만 남았는데 서로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 스승이자 친구이자 동반자로 다중 역할을 해줘야 해요. 좋은 배우자가 가장 좋은 보험인 것 같아요.”

참고로, 이 부부가 친구처럼 놀 때 하는 것은 공부다. 돈이 적게 들고 만족도는 높기 때문이란다. 동양학이 공동의 관심사다.

-흔히 남편들이 은퇴해 가정으로 돌아오면 아내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은퇴남편증후군’을 호소하는데요.

“제 나름의 생활이 있는데 갑자기 끼어드니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하죠. 비서와 기사를 두고 일하다가 집에 돌아온 남편은 딴나라에서 온 사람 같았어요. 집에서도 ‘oo 알아봐라’ 한마디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식이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느라 애먹었어요. 그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조금씩 나아지던데요.”

-퇴직이 갑작스러울수록 마음의 상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위직의 비자발적 퇴직의 경우 여러 사연이 있지요. 제가 아는 모 은행 지점장은 퇴직 뒤 3주일을 앓아누우셨대요. 너무 억울해서. 가장 실적이 좋았고,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을 통보받았거든요. 평생 그 억울함을 어쩌지를 못하게 될 수도 있지요. 겪어보니 퇴직 후 마음치료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제가 우연히 유튜브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치료 효과를 얻었듯이 말이죠. 퇴직자가 ‘난 당시 억울했어. 난 더 일할 줄 알았단 말야’라고 충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은퇴 후 재취업은 기대수준 낮춰야

-이제 경력을 살린 재취업은 포기한 건가요.

“50세 넘어 경력을 살린 재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서서히 깨달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딜 가나 피라미드식 조직인데 그 상단에는 내부에서 올라오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요. 웬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전관예우가 아니고서야 굳이 외부에서 굴러온 돌을 그 꼭대기에 박아넣을 이유가 없는 거죠.”(박씨)

강찬영 씨의 말은 더 현실감이 있다. “회사가 나에게 연봉 1억을 준다면 최소한 10억 정도 이익을 뽑아내야 합니다. 내가 이 회사에 10억 정도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라고 자문해봐야 하는 거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니 판단이 되더라구요.”

이런 그는 “지금이 딱 좋다”고 말한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월급 200만 원 정도부터는 고용주나 일 그 자체에 자기 삶을 구속당해야 합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일은 보람될 정도로만 열심히 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됩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니 세상 편하고 즐겁습니다.”

강찬영씨가 네덜란드 법인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벨기에 선박주들을 초청해 사이클링 행사를 열었다. 강찬영 씨 제공
강찬영씨가 네덜란드 법인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벨기에 선박주들을 초청해 사이클링 행사를 열었다. 강찬영 씨 제공

중장년 재테크와 경제 공부 필요
책을 읽다 보면 이 부부가 경제적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예컨대 남편이 임원이 된 2013년, 부부는 갖고 있던 재건축아파트를 팔아버렸다. 이후 경제가 내리막으로 들어설 거라고 봤다. 그 뒤 이들은 다시는 그 아파트 시세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퇴직 전에는 팔 수 없었던 한진해운 우리사주를 퇴직 후에도 ‘큰 회사니까’ 믿고 팔지 않았다가 회사 파산으로 수천만원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재테크 같은 것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러다가 큰일 날 것 같아요. 저희도 물론 그렇지만 후배들은 젊은 시절부터 경제나 금융공부도 하고 재테크도 해야 나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듯합니다.”

이뿐 아니다. 월세를 받기 위해 구입했던 오피스텔은 자주 말썽이 생겼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2017년 정부 권장대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어 ‘적폐’로 몰리는 느낌마저 든다. 박 씨 개인에게 따로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도 없는 살림에 엄청난 부담이다.

“세금 제도가 휙휙 바뀌면서 인생계획이 엉망이 되고 있어요. 남편 나이 기준 63세부터 국민연금이 나옵니다. 그 돈만으로 서울에서 살기는 어려울 텐데, 생각이 많네요.”

이런 박씨는 정부지원사업인 50플러스 보람일자리로 저소득 어르신 급식사업의 주방보조로 일하게 됐다고 기뻐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3시간씩 일하러 나가는데 한 달 내내 일하면 최대 40만 원을 받는다. “이거 벌어서 세금 내야 해요. 하하”

BIOTECH (170) D&D Pharmatech: GLP-1R NLY01 Clinical Failure and Collaboration Deal with Metsera Pharma

(사진: 이강춘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 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이사)

(Picture: Sulki Lee, PhD, CEO of D&D Pharmatech and Ted Dawson, PhD, Johns Hopkins University)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에는 한국바이오텍 회사인 디앤디파마텍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강춘·슬기 父子, 화학분야 최고 학술지 공동저자 올라 – 조선일보 조호진 기자 6/11/2023

이강춘 약대 석좌교수(오른쪽)와 아들 이슬기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한국과 미국의 부자(父子) 교수가 국제적인 화학 분야 최고 학술지에 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성균관대는 “이강춘(66·오른쪽) 약대 석좌교수가 아들 이슬기(36·왼쪽)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함께 바이오 신약을 보호하는 고분자 화합물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 6일자 표지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10일 밝혔다.

아버지는 성균관대 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들은 성균관대 고분자공학과를 나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사람은 아들이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부터 여러 학술지에 20여 편의 공동 연구 성과를 발표해 왔다.

아버지와 아들은 요즘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거의 매일 30분씩 통화한다. 아버지는 “이 나이에 아들과 매일 통화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아들 덕분에 나도 연구에 정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구바이오제약, 디앤디파마텍 지분 취득 – 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3/5/2018

코스닥 상장 제약업체 동구바이오제약[006620]은 치매 질환 치료제 개발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는 디앤디파마텍의 지분 8.1%를 취득하기로 했다고 5일 공시했다. 취득 주식 수는 3만536주, 취득 금액은 약 31억원이다. 회사 측은 취득 목적이 “치매질환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개발 사업 협력 목적의 지분투자”라고 밝혔다.

뉴랄리, 시리즈A 3600만弗 투자유치 “올 파킨슨신약 美임상돌입” –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7/19/2018

존스홉킨스에서 스핀오프한 CNS 전문기업인 뉴랄리(Neuraly)가 시리즈A로 3600만달러(약 40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이로써 파킨슨병 후보물질의 미국 임상1상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했다. 뉴랄리는 시드머니로 180만달러를 확보한 바 있다.

이번 라운드는 뉴랄리의 모회사인 디앤디파마텍(D&D Pharmatech)이 리드했다. 투자기관으로는 스마일게이트, 인터베스트, LB인베스트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지온인베스트먼트, 동구바이오제약 등이 참여했다. 새로운 투자자로는 미국 투자기관인 Octave Life Sciences, Maryland Venture Fund가 합류했다.

뉴랄리의 선도 파이프라인은 NLY01로 당뇨병약로 사용되는 GLP-1 작용제(Glucagon-like peptide-1 receptor agonist)인 엑세나타이드의 반감기를 늘린 물질이다. 구체적으로 NLY01은 엑세나타이드(exendin-4)의 C-terminal 말단에 시스테인(Cys)을 결합한 후 페길레이션 링커+페길리이션을 통해 반감기를 늘린 형태다. 디앤디파마텍은 자체 페길레이션 플랫폼을 통해 엑세나타이드 자체의 생물학적 활성과 생산수율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NLY01는 파킨슨병 동물모델에서 병기진행을 늦추고 운동 및 인지기능을 개선, 수명을 연장시켰다. 해당 연구결과는 지난달 네이처 메디슨에 게재된 바 있다(doi: 10.1038/s41591-018-0051-5).

뉴랄리는 NLY01은 올해 8월에 정상인을 대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승인신청서(IND filing)를 제출할 계획으로, 임상프로토콜에 따라 임상은 내년초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후 임상2상부터는 적응증을 나눠 디앤디파마텍이 알츠하이머병, 뉴랄리가 파킨슨병에서 임상개발을 진행한다. 임상1상 진행을 위한 임상시료는 미국 위탁생산업체(CMO)에서 생산한다.

이슬기 뉴랄리 대표는 “현재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등을 포함한 신경퇴행성질환에서 병기진행을 늦추거나, 중단, 혹은 치료하는 약물은 없는 실정”이라며 “현재 사용되는 약물은 운동 및 인지기능의 일시적인 증상완화 효과만 있으며, 시간에 따라 효과가 약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NLY01이 병기진행을 멈추고 질병을 근복적으로 고치는 치료제(dis­ease-mod­i­fy­ing ther­apy)로서 잠재력을 갖는다고 믿는다”며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한편 뉴랄리는 2016년 존스홉킨슨 신경질환부의 Ted Dawson 교수 랩에서 시작한 회사다.

동구바이오제약과 계열사들 ‘임상 진전·IPO’ 시너지 – 데일리팜 이석준 기자 10/31/2018

동구바이오제약과 그 계열사들이 임상 진전, 기업공개(IPO) 등 시너지를 내고 있다. 동구바이오제약은 지분 투자를 바탕으로 공동 개발 및 IPO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동구바이오제약은 노바셀테크놀로지, 디앤디파마텍 2개의 계열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노바셀테크놀로지는 동구바이오제약 R&D 센터장 김윤식 이사가 기타상무이사로 연구개발 부문에 관여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동구바이오제약 조용준 대표이사와 김도형 부사장이 사외이사 및 공동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동구바이오제약은 2012년 4월 2일 기술성 투자 목적으로 71억원을 투자해 노바셀테크노로지 지분을 확보했다. 반기보고서 기준 197만5000주(지분율 27.3%)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자리잡고 있다.

디앤디파마텍 기술성 투자는 올 3월 21일 이뤄졌다. 31억원을 투자해 7.9% 지분을 얻었다.

두 곳의 동구바이오제약 계열사는 시너지를 내고 있다.

노바셀테크놀로지는 최근 아토피 피부염 신약 후보물질(NCP112) 전임상에 들어갔다. 아토피는 확실한 원인 치료제가 없어 새 약제 니즈가 높은 상황이다. 2020년 시장 규모는 56억 달러 정도로 전망된다.

노바셀은 펩타이드 합성 전문기업인 ㈜애니젠 및 CRO(임상시험 수탁기관) 전문기관인 노터스와 각각 원료합성 및 전임상 시험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전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제형 연구는 동구바이오제약이 나선다. 동구바이오제약은 경피투여제 제조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피부과 처방 1위 기업으로 아토피 치료제 개발에 노하우를 전수한다.

디앤디파마텍은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내년 상장이 목표다.

디앤디파마텍은 올 3월 국내외 투자가로부터 190억원을 유치했다.

국내 벤처캐피탈(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LB인베스트먼트 등)과 동구바이오제약, 미국 투자기관(옥타브라이프 사이언스, 메릴랜드 벤처펀드 등)이 투자한 것으로 파악된다. 동구바이오제약은 디앤디파마텍 지분 7.9%(상반기 말 기준)를 가지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연내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NLY01’ 미국 임상 1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IPO를 통해 공모자금을 확보하면 비만, 당뇨, 희귀성 섬유화증 등 다른 파이프라인의 국내외 임상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동구바이오제약 관계사 디앤디파마텍, 1400억 투자 유치 – 청년의사 정새임 기자 4/23/2019

동구바이오제약 관계사이자 치매질환 신약 개발업체인 디앤디파마텍이 1,4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투자유치에는 페이스북의 최초 투자자이자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약 19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진행한 바 있는 디앤디파마텍은 이번 시리즈B 투자를 통해 피터 틸이 설립한 옥타브라이프사이언스에서 570억원, 스마일게이트에서 400억원, 인터베스트에서 300억원 등 총 1,400억원의 자금을 조달받게 됐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교수진 및 연구진이 포진한 신약개발 기업 디앤디파마텍은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희귀성 섬유화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뉴랄리’와 ‘세라리 화이브로시스’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최근 디앤디파마텍과 자회사가 개발중인 퇴행성 뇌질환 치료물질인 NLY01의 미국 임상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신약 개발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한편, 관계사인 동구바이오제약은 지난해 3월 디앤디파마텍 지분 7.9%를 취득했다. 동구바이오제약은 전략적 투자자로 현재 디앤디파마텍의 공동대표이사와 CFO를 선임해 경영일선에 참여하고 있으며, 공동연구개발 및 국내판권 추진 등을 목표로 양사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 pre-IPO 590억 유치..”임상개발” –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10/12/2021

디앤디파마텍 (D&D Pharmatech)이 590억원 규모의 pre-IPO 투자를 유치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로써 디앤데파카텍은 이번 Pre-IPO 투자 유치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들로 부터 총 2,200억원 수준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번 투자에는 국내 사모펀드 (PEF) 운용사인 프렉시스캐피탈파트너스의 주도로 바이오 투자에 강점을 보이는 DS자산운용과 큐더스벤처스, 상장주간사를 맡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이 참여했다. 프렉시스캐피탈은 연기금을 주요 투자자로 한 5,0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운용하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운용사이며 디앤디 파마텍의 리드 파이프라인의 안전성과 다양한 임상 파이프라인을 통한 높은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이번 투자금은 디앤디파마텍의 앞서가는 프로그램의 임상개발에 사용될 예정이다. 디앤디파마텍은 현재 파킨슨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GLP-1 작용제 ‘NLY01’의 글로벌 임상2상 (240명 규모), 당뇨 및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이 있는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GKP-1/GCG 이중작용제 ‘DD01’의 임상 1/2a 상 (88명 규모)을 진행 중이며 섬유화 질환을 타깃하는 재조합 TRAIL ‘TLY012’의 미국 임상1상을 준비 중이다.

홍유석 디앤디파마텍 대표는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신뢰에 감사하며, 프렉시스캐피탈이 이번 pre-IPO 투자를 주도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인 파킨슨병 임상2상을 포함한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있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 후보물질 임상개발에 앞장서고 향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여러 치료 후보물질 발굴을 통해 파이프라인 확장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디앤디파마텍은 2018년 시리즈A 190억원, 2019년 시리즈 B로 1,41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디앤디파마텍은 지난 9월 코스닥 시장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2개의 전문평가기관으로부터 A, A 등급을 받은 바 있다.

“디앤디파마텍, 10개 파이프라인 미국 임상중” – 히트뉴스 남대열 기자 11/10/2021

혁신치료제 개발 바이오텍을 추구하는 디앤디파마텍(대표 이슬기)은 스팩이 남다르다. 퇴행성 뇌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 파이프 라인’ 등 임상개발에 진입한 포트폴리오만 10개에, 투자 유치 금액이 2191억 원에 이르는 등 ‘상장기업’과 맞먹는다.

핵심 파이프라인 NLY01의 임상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디앤디파마텍은 창업의 시작점도 독특하다.

이슬기 대표의 아버지는 이강춘 성균관대 약대 석좌교수로, 디앤디파마텍의 NLY01, TLY012, DD01 등 세 가지 주력 치료 후보물질이 이 교수 연구실에서 나왔다. 아버지 이강춘 교수의 연구 성과를, 아들 이슬기 대표가 신약으로 개발하고 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 진입을 목표로 한데 따라 미국 현지에 전문 임상개발팀(35명)을 구축해 신약 임상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상개발뿐만 아니라 초기 연구부문 또한 대형제약회사들과 공동 연구 협력체계를 활발히 진행하며, 보유 파이프라인의 가능성도 입증했다.

히트뉴스는 지난 달 29일 판교 디앤디파마텍 본사에서 홍성훈 전무(CFO)를 만났다. 

디앤디파마텍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창업투자회사에서 심사역 업무도 맡아 일했습니다. 외국계 사모펀드에서도 투자업무를 하다 2018년 바이오 벤처 생태계에 CFO의 역할로 조인하게 됐습니다. 

이스트브릿지파트너스, 동구바이오제약에서 근무하셨죠?

이스트브릿지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 성격이므로 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를 거의 안 했고요. 솔직히 사회 생활 초기 바이오 분야에 큰 관심을 둘 계기가 없었어요. 그러다 동구바이오제약 CFO로 일하게 되면서 바이오 벤처 기업의 성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동구바이오제약에서 일하면서 디앤디파마텍 시리즈B 펀딩을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디앤디파마텍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바이오벤처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버젯팅(Budgeting, 자금 조달)이라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바이오 벤처는 차입이 안 되는 구조에요. 매출도, 이익도 없기 때문에 자본과 연계된 투자를 받아야 합니다. 연속 선상에서 어떠한 엑시트(Exit, 투자자의 입장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방안) 플랜을 제공할지 투자자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협력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이오 벤처는 매출이 없기 때문에 회계나 관리 부분보다 오히려 비용만 보는 경향이 크니 버젯팅을 통해 앞으로 사용될 자금을 예측하고, 자금 조달을 하는데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임상비용이나 오퍼레이션 비용을 적시적소에 조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이오벤처가 3년 간 2200억 원을 투자받은 것은 이례적입니다.

시리즈A와 시리즈B를 통해 약 1600억 원을 투자 받았고, 최근 591억 원을 투자 받아 총 2191억원을 유치했습니다. 시리즈A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물) 기전의 우수성과 글로벌 시장을 타깃해 미국에서 임상하고 있는 부분을 기관 투자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였습니다. 2018년 3월, 국내 벤처캐피털 및 동구바이오제약을 포함한 총 7개의 투자자가 190억원을 투자했거든요.

1410억 원에 이르는 시리즈B 투자 유치가 의미가 있었던 점은 사업 발표를 진행할 때, 기존 투자자 이외의 투자자를 따로 만나지 않고, 기존 투자자 중 5개 팀을 대상으로 9개월 동안 (회사가) 어떤 업무를 수행했는지 중점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진행상황을 본 투자자들이 우리의 가치를 높이 인정해 예상보다 많은 투자를 해 주셨습니다.

이같은 성과에도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에서 미승인된 것은 예상 밖입니다.

회사 경영진은 바이오텍의 목표를 신약 개발이라고만 판단했기 때문에 임상 시험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습니다. 되돌아 보니 기술 이전 등 사업적인 부분이 부족했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의 진심과 열정을 객관화해 보여주지 못했던 셈입니다. 

다시 말해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술이전이나 대형 제약사와 협업 같은 것이 회사의 기술성 강화 측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됐다는 것입니다. 거래소 입장에서 디앤디파마텍은 이런 역량이 부족한 곳으로 비쳐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회사 제품의 시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그걸 해소하고 다시 심사를 하는 게 맞다고 경영진이 판단했으며, 이를 보완한 후 최근 다시 기술성평가를 거쳐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시장성 해소를 위한 디앤디파마텍의 비즈니스 협력 모델은 만드셨나요?

바이오텍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기술이전에 있다고 봅니다만, 단순 기술이전보다 계약체결 이후에도 임상개발에 일정 부분 참여하는 공동개발 형태 또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기술이전은 기본적인 빌드업을 진행한 다음 사업 모델을 키울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게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대형 제약사와 파트너링이 필요한 것인데, 올해 6월 대웅제약과 경구용 펩타이드·단백질 의약품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중국의 선전 살루브리스 제약과도 DD01이라는 대사성질환 후보물질에 대한 기술이전을 체결했습니다.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데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력은 어떤가요? 이 파이프라인이 중국 제약사와 협력하는 것이죠?

네 맞습니다. 비만 치료제 분야는 노보 노디스크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노보 노디스크가 GLP-1 계열만 활용하는 반면, 우리는 GLP-1뿐만 아니라 글루카곤을 같이 건드리는 듀얼 아고니스트(agonist)로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GLP-1이 혈당을 조절하고 식욕 억제 역할을 하는데, 글루카곤 아고니스트까지 추가하게 되면 에너지 대사가 활발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중 감량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얻었죠.

DD01 치료 후보물질은 동물실험(전임상)에서도 경쟁제품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고, 그 결과 중국 살루브리스 제약과 기술이전을 체결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기 때문에 비만 치료제 분야에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에 집중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NLY01 후보물질을 바탕으로 논문 작업을 진행했고, 파킨슨병 분야의 세계 석학 중 한명인 Ted Dawson 교수가 기존 GLP-1계열의 약물이 신경염증을 억제해 뇌신경세포를 보호하는 기전을 밝혀 2017년 네이처에 관련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당시 이슬기 대표가 Ted Dawson 교수 연구진과 공동개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해당 기전을 바탕으로 2018년 디앤디파마텍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NLY01을 가지고 수행한 성공적인 연구 결과가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영향력 지수)가 높은 네이처 메디슨에 게재됐습니다.

비록 조건부 승인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상품명 아두헬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만큼 CNS(Central Nervous System, 중추신경계) 치료제 분야가 어려운 영역이지만, 역설적으로 시장도 무궁무진하고 신약 개발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이 분야를 최우선순위로 두고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NLY01 작용기전

미국에 있는 5개 브랜치의 역할은 뭔가요?

현재 한국 본사에 30명, 미국 자회사에 60명의 임직원이 있는데, 주목할 점은 미국에 있는 임직원의 절반 이상인 35명이 임상전문 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대부분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미국 CRO (임상시험수탁기관)에게 임상시험을 의존하고 있는 것과 다른 점입니다.

저희는 미국 자회사의 임상전문인력이 현지 CRO를 관리하면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직접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FDA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해서 미국 임상인력들은 FDA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디앤디파마텍은 어떤 회사로 성장해 나갈 것인지 궁금합니다.

디앤디파마텍은 다양한 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로, 하나의 임상이 실패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체력이 있는 회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임상이 진행되는 현지에 임상 전문가를 직접 채용해 임상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둔 회사라는 것이죠.

파킨슨병 임상 2상과 관련해 240명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현재 180명의 임상시험이 종료됐거나 진행 중입니다. 2022년 말이면 투약이 끝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성과를 내면 다국적 제약사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는 바이오텍, 성공적인 임상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바이오텍, 퇴행성 뇌질환 분야에 있어 치료뿐만 아니라, 분석과 진단까지 수행하고 있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 바이오텍이 이루지 못한 부분을 해보고 싶다는 비전에 동의하고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CFO로서 전무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영속적인 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이오텍에서 자금 조달이 굉장히 중요한데, 성과를 통해 자금이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CFO 본연의 업무인 버젯팅이 제일 중요하고, 사업이 선순환되도록 새 먹거리를 계속해 찾아내야 하고, R&D나 BD(사업개발) 측면에서 라이선스 아웃만 할 게 아니라 라이선스 인도 진행해 새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디앤디파마텍 임상 실패 후폭풍…기관 2,200억원 투자금 회수 고심 – 한국경제신문 김유림 기자 2/21/2023

디앤디파마텍의 기업가치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파이프라인이 유효성 입증에 실패했다. 상장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던 기관투자자들은 투자금 회수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 역시 투자자 미팅을 진행하며 향후 계획을 논의 중이다.

21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디앤디파마텍은 파킨슨병 치료제 파이프라인 ‘NLY01’의 유효성 입증 실패 발표 이후 기존에 투자를 받았던 기관투자자 미팅을 돌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장외에서 총 22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 2018년 시리즈A에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LB인베스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옥타브 라이프사이언스 등이 190억원을 투자했다.

2019년 시리즈B에는 옥타브라이프사이언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가 1410억원을 투자했다. 2020년 진행한 590억원 규모의 프리IPO에는 프랙시스캐피탈, DS자산운용, 큐더스벤처스, 한국투자증권이 참여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약 6000억원으로 평가받았다.

디앤디파마텍이 고밸류로 평가받을 수 있던 배경에는 NLY01이 있다. NLY01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기반의 후보물질이다. GLP-1은 장에서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으로, 혈당이 높을 때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혈당을 올리는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해 혈당강하 효과를 낸다. 체중 감량 효과도 낸다. 이 때문에 당뇨병은 비만치료제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최근엔 퇴행성 뇌질환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논문이 나오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디앤디파마텍은 미국 자회사 뉴랄리(Neuraly)를 통해 진행한 NLY01 글로벌 임상 2상에서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다. 탑라인(topline) 데이터 분석 결과, 1차지표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기대 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거액의 투자금을 쏟아부은 기관투자자들은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디앤디파마텍은 지난 1월 기술성평가를 통과한 만큼 올 상반기 상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임상 2상이 틀어지면서 상장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회사 측은 후속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해 상장에 도전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A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아직 회사 측과 논의하지 않았지만,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해서 상장 도전을 다시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B기관투자자 관계자는 “투자금 회수를 아예 못 하는 건 아니다”며 “주력으로 하려던 게 실패했으니, 투자한 밸류에이션에서 조금의 손실은 감수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원래 계획보다 상장이 지연되는 건 흔한 일”이라면서 “회사와 논의를 해봐야 결정되겠지만, 결국 디앤디파마텍의 다른 파이프라인을 빌드업해서 상장을 노리는 전략이 유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디앤디파마텍이 가장 빠르게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은 비만 및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DD01’이다. DD01은 지속형 GLP-1·글루카곤(Glucagon) 수용체 이중작용제다. 주 1회 피하주사로 투여되는 제형이며, 미국에서 104명 규모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이번 임상 1상에서 탐색적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디앤디파마텍 관계자는 “당뇨와 지방간 등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을 했기 때문에 유효성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탑라인 데이터 발표는 3월 말 예상한다”고 말했다.

디앤디파마텍, “삼수만에”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 통과 – 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12/21/2023

디앤디파마텍 (D&D Pharmatech)이 3번째 시도끝에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코스닥시장 상장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디앤디파마텍의 상장예비심사를 승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상장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디앤디파마텍은 앞서 2020년 기술성 평가에서 통과한 이후 다음해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제출했지만 미승인 결과를 받았으며, 이후 다시한번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또다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지난 2014년 설립된 회사로 GLP-1 수용체 작용제 (GLP-1R agonist) 약물을 기반으로 파킨슨병을 포함한 퇴행성뇌질환과 당뇨, 비만 등 대사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테그이 리드 프로그램은 GLP-1R 작용제 ‘엑세나타이드 (exenatide)’에 페길레이션을 적용한 ‘NLY01’로 파킨슨병 임상2상에서 1차종결점에 도달하지 못해 실패를 알렸다. 해당 세부 결과는 이번달 던셋뉴롤로지 (The Lancet Neurology)에 게재됐다. 그밖에 비알콜성지방간염 (NASH) 치료제로 GLP-1/GCG 이중작용제 ‘DD01’의 임상1상을 진행하고 있다.

디앤디파마텍은 시리즈 A 190억원, 시리즈 B 1410억원, pre-IPO 투자로 590억원 등 총 219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바 있다.

D&D Pharmatech, Metsera expand collaboration for new obesity, MASH treatments – Korea Biomedical Review by Han-Soo Lee 3/18/2024

D&D Pharmatech, a Korean biotech company, said it expanded its collaboration with the U.S.-based Metsera for new treatments. 

This expansion includes amendments to a previously established agreement for an oral obesity treatment and the initiation of a new global technology transfer agreement for an injectable treatment targeting obesity and MASH (metabolic associated severe hepatopathy).

The original agreement covered the global technology transfer of D&D Pharmatech’s peptide oral technology, ORALINK™, applied to obesity treatments DD02S and DD03, and MET06 for 550 billion won ($412.1 million) in April of last year.

The updated agreement now includes the oral GLP-1/GIP dual agonist DD14 and oral amylin agonist DD07, increasing the total possible license out fee by an additional 220 billion won to a total of 770 billion won.

DD14 is being developed as an oral formulation to enhance patient convenience over Eli Lilly’s injectable obesity treatment, Zepbound, a GLP-1/GIP dual agonist.

DD07, an amylin receptor agonist previously approved for type 2 diabetes treatment, has shown potential for weight loss, especially when combined with GLP-1 agonists.

In a separate move, D&D Pharmatech and Metsera have also entered into a new agreement for the global license of the injectable triple-G (GLP-1/GIP/GCG triple agonist) DD15, valued at approximately 280 billion won.

DD15, leveraging D&D Pharmatech’s long-acting technology, aims to offer multifaceted benefits such as increased satiety, improved glycemic control, and enhanced fat breakdown, showcasing its potential not only as an obesity treatment but also for MASH.

D&D Pharmatech will continue preclinical development necessary for Investigational New Drug (IND) submissions, while Metsera will support all related costs, promising stable revenue generation for D&D Pharmatech beyond milestone payments.

“This expansion of the technology transfer items is believed to be the result of the mutual trust demonstrated through the joint research and development process between the two companies over time,” D&D Pharmatech CEO Lee Seul-ki said. “Notably, based on D&D Pharmatech’s early-stage material research and development know-how and Metsera’s substantial financial support, we are committed to doing our best to grow into a leading company in the next-generation obesity treatment market by simultaneously advancing multiple product groups into clinical trials.”

Exclusive: Backed with $350M, secretive startup Metsera jumps into the obesity race – Endpoints News by Andrew Dunn 4/3/2024

Funded with $350 million from top-tier VCs and led by a veteran pharma CEO, a new obesity startup called Metsera has been quietly building plans to get multiple drugs into the clinic over the next two years, Endpoints News has exclusively learned.

Metsera’s CEO is Clive Meanwell, the former chief executive of The Medicines Company. The company was incorporated in 2022 by Population Health Partners, an investment firm started in 2020 by Meanwell and former Pfizer CEO Ian Read.

Operating in stealth mode, Metsera has in-licensed six obesity drug candidates from a Korean biotech, acquired a London-based biotech, and is targeting up to seven IND filings over the next 12 to 24 months. Endpoints pieced together Metsera’s operations in the red-hot weight loss space through US and global legal filings, Korean press releases that outline the licensing deals, recent job postings, and an in-development-but-public-facing version of the startup’s website. (After Endpoints reached out to Metsera, a password-protected login was added to access the site.)

The young company has raised what could be one of biotech’s biggest funding rounds of 2024 from some of biotech’s highest-profile investors. The website describes Population Health and ARCH Venture Partners as its founders, with additional investors including GV, F-Prime Capital, Exor Ventures, Mubadala, Newpath Partners, SoftBank, the Abu Dhabi Investment Authority, and Americo. Metsera has raised $250 million along with “an additional $100 million committed from new and existing investors,” according to a recent job opening description reviewed by Endpoints.

Endpoints reached out to learn more about the startup from several of Metsera’s leaders and backers — all of whom declined to comment or did not respond.

On its draft website, Metsera describes itself as a “clinical-stage therapeutics and health technology company committed to serving customers who want to lose weight and health systems which support them.”

“We are advancing the next generation of medicines to eradicate obesity for tens of millions of people,” the website says, adding they are focusing on combining incretin and non-incretin medicines.

It’s one of many new startups aiming to capitalize on the breakthrough success of GLP-1 drugs from Eli Lilly and Novo Nordisk. Smaller startups with early clinical success have become some of biotech’s hottest companies: Roche paid $2.7 billion for Carmot Therapeutics, Viking Therapeutics has soared past an $8 billion market capitalization off promising data, and the privately held startup Aardvark Therapeutics is planning to raise up to $200 million in a possible IPO, the Financial Times recently reported.

Metsera strikes pipeline deal with Korean biotech
Meanwell served as CEO for roughly two decades at The Medicines Company, which Novartis bought for $9.7 billion in 2020. Shortly after that deal closed, Meanwell launched Population Health, which has also incubated the asthma-focused biotech Areteia Therapeutics, which launched in 2022 with a $350 million Series A.

The obesity drug candidates Metsera has licensed come from a South Korean biotech called D&D Pharmatech. The two companies announced an initial licensing deal last April around three assets: an oral GLP-1 agonist called DD02S, an oral GLP-1/GCG/GIP, or “triple G,” agonist called DD03, and MET06.

On March 18 of this year, the two announced an expanded deal to license DD07, an oral amylin receptor agonist, and DD14, an oral GLP-1/GIP receptor dual agonist. Metsera and D&D simultaneously announced a second deal to license an injectable triple-G candidate called DD15, planning to enter clinical trials in the first half of 2025, according to D&D Pharmatech’s Korean press release, which also calls out DD15’s potential to treat the liver disease MASH. Combined, the deals are potentially worth over 1 trillion won ($739 million) in milestone payments to D&D.

D&D CEO Seulki Lee declined to comment, citing Metsera’s stealth status, and said the news was intended to be released only for the Korean audience. In addition to the Korean-language press release, Endpoints also found an English translation of a Korea Biomedical Review story reporting on the transactions.

Other key Metsera leaders include chief financial officer Gbola Amusa, formerly chief scientific officer of the investment bank Chardan, chief scientific officer Brian Hubbard, and chief medical officer Steve Marso, according to Metsera’s site.

Stephen Bloom and James Minnion are also respectively listed as senior vice president and vice president of R&D. The two previously ran Zihipp, a tiny London-based startup that Metsera acquired in 2023, according to its site. Bloom researched gut hormones like GLP-1 in the 1980s and co-founded Zihipp with Minnion in 2015 to treat obesity.

“I am presently working to further exploit gut hormones for weight control in a side effect-free, convenient therapeutic — one that, if desired, an individual could use for a lifetime,” Bloom says in a quote on the website. “I joined Metsera because the company has the skill and ethos to successfully bring a family of these much-needed therapeutics to fruition.”

내가 쓰는 나의 삶 (41) 나는 글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도 이제 1년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지금까지 쓴 글이 530개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제가 쓴 글보다 방문자 수가 적지만 글을 누군가 읽어주시면 좋고 읽어주시지 않더라도 이것은 저자신을 위한 지식창고와 같은 곳이기 때문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로그를 쓰게 된 동기는 너무 일에 치이고 50대가 되면서 이제 나 자신에 대해 분명히 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나름의 철학적 고찰 여정이었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 가졌던 생각에 비해 1년반이 지난 지금 블로그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고 비약적으로 발전을 했습니다 . 글의 양도 많아졌지만 글의 길이도 훨씬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글의 깊이도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 금융, 의학, 과학 그리고 예술에 관심이 많은데요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보면 저의 이런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좀더 융합적인 접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역사와 바이오텍을 융합한다든지 금융과 과학을 융합한다든지 예술과 과학을 융합한다든지 하는 등 다양한 융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Productive Longevity (생산적으로 나이들어 가기)”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이것은 저의 인생이 단순히 Unretirement가 아니라 나아가 창조적인 삶으로 이후의 인생을 영위하고자 하는 저의 바램도 있고 이를 위해 어떠한 배움과 훈련이 필요할까?에 대해서 스스로 반문하고 자답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년반 동안 제 사이트에 방문하는 분들이 접속하는 국가를 알 수 있는데요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오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즘 고민하게 되는 것은 이 사이트를 한글로 하는 것과 함께 영어로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Biotech의 경우는 영어로 완전히 쓰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Biotech에 대해 좀더 말씀을 드리면 초기에는 제가 관심이 있는 몇개의 기업에 집중해서 찾으려고 했는데 공부를 해보니 그렇게 해서는 저의 안목이 너무 편협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달 전부터 Agnostic 하게 접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런 방향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뉴스 기사와 논문 및 Corporate Presentation을 한 곳에 모으고 있는 중인데 글이 좀더 모이고 여유가 생기면 제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쓰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Biotech이 계속해서 제 블로그의 메인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두번째 주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Productive Longevity,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부러우면 지는거다, 내가 쓰는 나의 삶, Unretirement 및 금융과 관련한 부분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유로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보는 부분이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 (Work), 놀이 (Hobbies), 사랑 (Love), 연대 (Community)

여기에 담는 그런 글을 쓰고 싶고요. 나이듦에 대한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들에 대해 집중하면서 좋은 Role Model을 소개하며 배워나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뇌섹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두뇌에 미친 자극을 주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좌뇌에 해당하는 지식과 이성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우뇌에 해당하는 운동과 예술에도 자극을 많이 주려고 합니다. 평소에 Classical Music도 좋아하고 Impressionism Art를 사랑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더 많은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몸관리에 좀더 신경을 더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활력이 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Productive하려면 건강한 몸과 정신이 반드시 필수요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인생을 하루라도 그냥 보내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이 소비하는 인생과 생산적인 인생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만든 물건이나 컨텐츠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창의적이고 계속해서 가치를 생산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 중에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렵게 살았던 자수성가형이어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자녀들은 제가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라고 하는데요 저는 일을 하면서 조금 조금씩 즐기는 인생을 살려고 합니다. 그래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읽는 것, 논문이나 레포트 보는 것을 저는 좋아하고 잘합니다. 그런데 제가 글을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Peter Drucker 교수님이 글을 써야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저도 글을 쓰면서 저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되는 것 같고 저 자신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무엇을 생산할지 계속 고민해 보겠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1) 조경란 작가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우연히 한국경제신문을 보다가 조경란 작가님을 알게 되었는데 제가 태어난 봉천동에서 평생 사셨다는 것과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여겨져서 이 분의 뒤를 밟게 되었습니다. 조경란 작가님은 1996년에 등단을 하신 이후 지금까지 소설가로 글을 짓고 계시는데요. 이 분에 대한 기사가 2002년부터 올해 2024년까지 무려 22년에 걸쳐서 있어서 이것을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던대로 중간 중간 마음에담고 싶은 말은 붉은 글로 표시를 해 두었습니다. 33세였던 2002년의 조경란님은 이제 55세가 되셨습니다.

캐릭터들도 작가와 함께 나이들어가더라. 는 부분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나만에 침잠하던 서정 시대는 끝났다는 말씀이 많이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치열하게 저자신만을 위해 살던 서정의 시대를 보내고 50대가 되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분이고 특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나름의 철학도 있으시고 어려움을 가진 인생들을 대상으로 수십년간 올곧게 사신 것이라든지 수년간 글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를 겪으셨다든지 하는 부분이 저는 좋게 보였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근 30년간 그 일을 꾸준히 한다는 자체로도 부러워할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조경란 인터뷰 – 중부일보 손대선 기자 6/4/2002

최근 ‘코끼리를 찾아서’(문학과지성사 刊)를 출간한 소설가 조경란씨(33). 지난 96년

지난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면서 시작된 작가이력이 올해로 7년째다.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7권의 책을 출간했으니 매년 한 권의 책을 독자들에게 꼬박꼬박 내놓은 셈이다. 이런 꾸준함만으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마당에 내놓은 작품마다 문단 안팎의 각별한 주목을 받아온 작품세계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쁘지 않아요?” 옅은 파스텔톤으로 채색돼 동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번 작품집의 표지를 넌지시 내려보며 하는 말이다. 오연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하는 평소의 그를 떠올려 보면 이런 말은 약간은 의외다, 그러나 이내 그는 마치 상처를 어루만지듯 책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 작품들을 쓰는 동안 많이 아팠어요. 글쓰기는 정신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격렬한 통증이 동반되는 육체적 현상이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때로는 친한 벗과 심하게 다툰 적도 있고요. 그렇게 한여름을 옥탑방에서 땀을 뻘뻘흘리면서 썼어요.” 이럴 때 속된 말로 ‘깡’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선뜻 가냘프다는 인상을 주는 그이기에 이런 ‘깡’은 작품에 관한 한 그만의 결벽, 혹은 철저함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작품집에는 ‘코끼리를 찾아서’를 비롯한 ‘동시에’ ‘마리의 집’ 등 7편이 실려있다. 작품들을 아우르는 주제는 연인의 죽음이나 가족의 균열이든 결핍으로 인해 빚어진 병적인 심리 현상들이다. 작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 같은 병적인 상황으로 암시하다 어느 순간, 상황의 이면에 은폐된 인물들의 상처를 슬쩍 들춰 보인다. 이 ‘슬쩍’의 순간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지닌 야릇한 현현(顯現)의 힘이 아닐까. 그는 표제작을 통해 ‘코끼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이 땅의 토착생물이 아닌,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코끼리는 결핍의 무게, 부피를 상징한다. 그의 작품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하나의 키워드인 셈이다. “작품을 쓴 것은 지난해 10월이에요, 처음에는 주변을 맴돌던 코끼리의 이미지가 이제는 온전히 나타나요. 내가 바로 코끼리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떤 결핍의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유연한 움직임을 갖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코끼리의 이미지가 은연중에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었는데….” 느림과 빠름을 고루 안배하는 탁월한 문체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강단의 문예창작과정에서 종종 텍스트로 채택되는 문체에 관한 한 데뷔 때부터 완성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문체주의자란 말이 늘상 따라다녔어요. 듣기에 따라서는 칭찬도 되지만 그러나 나 자체는 어떤 한곳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체주의자란 이 꼬리표를 떼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한참이 지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작품을 관통하는 문체가 있다면, 그리고 이것이 작가적 개성에 값하는 것이라면 납득하고 수긍합니다.” 이 사람, 진작부터 소설을 써야했을까. “20대 초에 한 컴퓨터 그래픽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그러나 성실한 직장인은 아니었지요. 한번은 일주일에 4번씩이나 결근을 한 적도 있지요. 어떻게 알았는지 그 분들로부터 연락이 와요. 한 분이 말해요. ‘너는 언제나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작가는 요즘 등단한 이래 처음으로 여유시간을 갖고 있단다. 이번 소설집을 내면서 체력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난 1월부터는 요가를 시작했다고. 원고독촉 같은 일체의 압박감 없이 편한 자세로 문학고전들과 옛날 비디오를 다시 섭렵하고 있다. 작품이 몸 안으로 들어와 육화(肉化)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소설에 붙들어 매어놓는 것은 세상에 대한 열정입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문학은 어쩌면 대중과의 공모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예감이 들곤 해요. 그 끝에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어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깊어져야겠다고, 앞으로는 한곳으로 깊이 파내려 가는 기분으로 쓰고 싶어요.” 코끼리는 그의 뱃속에 있다. 코끼리는 김장 같은 것. 기실 그는 김장독 같은 보아구렁이다. 월드컵의 환호성이 그의 옥탑방을 휘감을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천천히 코끼리를 발효시킬 그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전해져 온다.

[동인 문학상 ‘최후4강’ 릴레이 인터뷰] 조경란 ‘국자이야기’ –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 10/1/2005

소설가 조경란(36)은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나 지금도 봉천동에서 살고 있다. 소설집 ‘국자이야기’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자전 소설 ‘나는 봉천동에 산다’에서 그는 바로 그곳에서의 성장과 삶을 말하고 있다. ‘우리 집은 봉천동에서도 높은 지대에 있다. 게다가 내 방은 옥상 위 높고도 높은 옥탑방이다. 달도 태양도 이웃이다. 봉천동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다.

작가의 집은 목수였던 부친이 직접 지었다. 옥탑방 창문을 열면 관악산이 보인다. 시인을 꿈꿨던 부친은 옥탑방을 완성한 뒤 “우리 세 딸 중 누군가가 이 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맏딸인 작가는 바로 그 옥탑방에서 밤새 글을 쓰고 아침 7~8시에야 잠에 든다. 10년째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한다.

―원래 시인이 되려고 했다는데.

“스물여섯살에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들어갔다. 시창작 시간에 시를 발표하면 소설같다고 하고, 소설 창작 시간에 소설을 발표하면 시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시를 포기했다. 소설은 인내와 용기가 있으면 쓸 수 있다. 하지만 시는 타고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소설가란 그럼, 시인이 못 된 사람인가.

소설가란 자기 주위에 있는 사물들이 속삭이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속삭임을 말이 되게끔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봉천동에서 계속 살 것인가. 결혼을 하면 떠날 것인가.

“결혼은 당분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동생 둘은 모두 시집을 갔다. 나는 부모님과 셋이서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살고 싶다. 봉천동에서 오래 살 것 같다. 봉천동 옥탑방을 벗어나면 글을 한 줄도 못쓴다. 봉천동이란 이름이 촌스러우니 바꾸자고 주민들이 주장한다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싶다. 만일 새 이름을 사용한다면, 택시를 탈 때 ‘옛날 봉천동 말예요’라고 어차피 말해야 할 텐데…”

―독일에서 당신 소설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

“소설집 ‘코끼리를 찾아서’와 장편 ‘식빵굽는 시간’이 독일어로 출간됐다. 지난 4월 쾰른에서 열린 한국 문학 낭독회에 다녀왔다. ‘코끼리를 찾아서’의 독어판 제목은 ‘코끼리가 어떻게 내 침실에 들어왔는가’다. 제목이 특이해서 독일 독자들의 눈길을 끈 듯하다. 그들은 내 소설에 대해 ‘집요함이 있다’고 평한다. 아마 한국적 단편 소설 특유의 완결성과 밀도 때문이 아닐까.”

― ‘한국문학의 사생활'(김화영 엮음)을 뒤적이니까, 누군가 당신을 이렇게 묘사했다던데. ‘얼굴은 아름다움이 죽음과 정면으로 맞대결한 듯 청초하고, 그렇게 죽음이 새하얀 듯, 아름다움이 상복인 듯 아찔한 그 찰나 속에 식빵 굽는 여자’

“(웃으면서) 김정환 시인이 쓴 글이다.”

―1996년 등단 이후 이번에 수상후보작인 ‘국자이야기’까지 4권의 소설집을 냈고, 3권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왕성한 필력이다. 글쓰기가 행복한가.

“글을 쓸 때 행복하지는 않다. 하지만 글을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내 삶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신인 시절에 ‘공부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 ‘국자이야기’에서는 내게 절실한 것들이 순서대로 터져나왔다. 앞으로도 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위로를 준 책이다.”

[조경란 낭독회] 작가의 몸짓 하나에 탄성… 환호… – 북데일리 김민영 기 11/14/2007

– 장편소설 <혀> 출간한 조경란 작가 낭독회 현장 스케치, 행사 주최 : 알라딘, 문학동네 –

[북데일리]계단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리 카페가 그처럼 비좁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이 조경란 작가의 팬이었다. 6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혀>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컸다. 신곡을 발표하는 가수의 콘서트 장 못지않은 열기였다.

오프닝은 ‘맘마미아’ 등으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배해선이 맡았다. 아바의 ‘I have a dream’을 열창하는 그녀의 음성은 그야 말로 해맑았다. 입담 또한 수준급이었다. 배해선은 조경란을 `문학계의 이효리’라고 소개했다. 사석에서는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지만 공식행사이니 만큼 ‘작가님’이라고 부르겠다며 애교 섞인 멘트를 날렸다.

곧 이어 조경란 작가가 등장했다. 행사장 곳곳에 붙여진 포스터 이미지처럼 청순한 이미지였다. 흰색 니트 원피스와 롱부츠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무대체질인 내가 왜 이렇게 떠는지 모르겠다”며 환히 웃는 미소가 목련처럼 탐스러웠다.

조경란은 사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털어 놓았다. 몸살처럼 앓던 치열한 사랑 이야기, 시작점에 놓인 지금의 사랑도 속삭였다. 20대 초입. 외부 생활을 끊고 독서에만 몰입하던 시절의 이야기까지 털어 놓았다. 그렇게 무려 5년간 책만 읽은 덕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세 번에 이어진 나긋한 낭독. 한 편의 연극을 방불케 한 생동감 있는 조경란의 목소리가 듣는 이를 들뜨게 만들었다. 편안한 뉴에이지 음악이 깔려 낭독의 묘미를 더했다. 이어 독자와의 대화가 마련됐다. 오랜만에 발표한 신작인 탓에 독자들의 궁금증 또한 매우 컸다.

이날 가장 눈에 띈 독자는 “조경란 작가만 좋아하는 남자친구 때문에 질투나 미치겠다”고 말문을 연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자친구는 글뿐만 아니라 조경란 작가의 외모, 스타일까지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호남 형 남자친구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시를 공부하는 국문학도라고 했다. 처음에는 질투심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스스로가 더 팬이 됐다는 그녀. 참석자들은 이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밖에도 “독자들이 <혀>를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는가”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가” “요리를 주된 소재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어 배해선의 열창이 펼쳐졌다.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가 울려 퍼졌다. 독자들은 흥겨운 박수 환호로 노래에 어울렸다. 카페 구석까지 닿을 듯한 배해선의 청명한 목소리에 ’앵콜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나 배해선은 고개를 내 저었다. “오늘 만큼은 제가 아닌 조경란 작가님의 날이니까요”라는 겸손한 거절을 내비쳤다.

그리고 조경란 작가의 마지막 낭독이 이어졌다. 삼각관계로 아파하던 여주인공이 사랑했던 남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이었다. 객석 구석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독자들도 눈에 띄었다. 섬세한 감성으로 사랑의 상실감을 묘파한 조경란의 탁월한 문체가 빛을 발했다.

행사 말미. 영화 ‘Once’의 삽입곡인 ‘Falling Slowly’가 흘러나왔다. 몇몇 독자는 음악에 취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혀>를 들고 독자들의 줄을 섰다. 새 날이 올 것 같지 같은 아득한 밤이었다.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 우먼동아 김수정 기자 8/22/2008

조경란이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4년간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여자로서 늙어간다는 두려움으로 슬럼프를 겪었다는 그에게 방황했던 지난날과 독신으로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해마다 장편이나 단편소설집을 발표해온 ‘부지런한’ 작가 조경란(39)의 작품활동이 뜸해진 건 4년 전 소설집 ‘국자 이야기’를 펴낸 후부터였다. 1년에 한두 차례 단편을 발표했지만 예전보다 집필 속도가 더뎠고, 작품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공황장애, 우울증을 겪거나 타인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싸여 있었다.
“선배들이 종종 ‘그렇게 쉬지 않고 쓰면 지친다’ ‘10년 차에 접어들면 슬럼프가 온다’고 조언했는데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문단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씁쓸함이 들었고, 자신감도 잃어버렸죠. 스스로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작업실이 무조건 싫은데도 책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죠.”
중년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컸다고 한다.
제게 늙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였어요.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흔에 가까워진다는 점이죠. ‘남편과 자식도 없이 오로지 소설만 써왔는데 도대체 내 위치는 어디일까’ 하며 혼란을 느낀 것 같아요.”
그의 이런 불안정한 정신상태는 가끔 꿈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어느 날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어깨뼈를 삽으로 내리찍으며 “너는 늙고 실패했다!” 하고 외치는 악몽에서 깬 그는 밤새 소리내 울었고 “늙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의 기억을 신작 ‘풍선을 샀어’ 속 ‘형란의 첫 번째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슬럼프는 꽤 오랜 시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한 학기 만에 교수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자신은 한 줄도 쓰지 못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순을 느낀 것.
“강의 첫날 ‘소설을 쓴다는 건 나라는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것이다. 자신이 글에 드러나는 것을 겁내지 말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부터 알려줬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서 정작 제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하루라도 빨리 벽돌로 새로운 집을 짓고 싶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었거든요.”

고뇌하고 방황하는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의 모습 담아
그는 3년 가까이 베를린·암스테르담·파리·도쿄 등을 전전했다고 한다. 여행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여행용 트렁크를 덜덜덜 끌고 다니는 동안 낯선 이국 땅에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그곳에서도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책상을 피해 도망쳐왔지만 매 순간 눈앞에 책상이 떠오르더라고요. 술도 많이 마시고 울기도 했어요. ‘이빨로라도 책상을 물고 늘어지라’는 카프카의 말이 ‘치열한 열정이 없으면 포기하라’는 말로 들려 괴로웠고요. 베를린에 위치한 ‘문학의 집’에 두 달 머물면서 ‘소설을 완성하기 전까진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두려움을 깼다고 한다.
한 친구가 ‘베를린에서 뭘 하면서 지내니?’ 하고 묻기에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어’라고 답했더니 ‘그러지 말고 그다음 문장부터 시작해봐. 첫 문장은 글을 쓰는 동안 찾아오지 않겠니?’ 하고 충고하더라고요. 또 작가를 아버지로 둔 한 친구는 ‘너는 지금보다 더 깊은 고독 속에 빠져들 거야. 그러나 이겨낼 거라고 믿어. 우리 아버지도 너처럼 고독하고 삶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이겨내셨거든’ 하고 위로해줬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친구들에게 위로받으면서 저도 남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를 즐긴다는 조경란은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글에 담았다고 한다. “고독에 직면하고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자기 세계를 당당하게 펼친 철학자 니체와 작가 버지니아 울프, 화가 반 고흐 등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작가의 가장 간절하고 밀접하고 뜨거웠던 감정을 털어놓기 마련”이라고 고백했다. 그 무렵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도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풍선을 샀어’ 속 대부분의 화자는 ‘나’이고, 30대 중반의 여자다.
“넉 달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지난해 말 장편소설 ‘혀’를 펴냈지만 그건 이미 10여 년 전 구상한 작품이기 때문에 슬럼프의 잔재는 대부분 ‘풍선을 샀어’에 남아 있어요. ‘형란의 첫 번째 책’의 경우 ‘경란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하면 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제목을 바꿨고, ‘마흔에 대한 추측’에 등장하는 마흔을 앞둔 주인공도 글을 쓴 지 오래된 모습이나 사람들과 사귀는 게 쉽지 않은 모습이 저를 닮아 있어요.”
그에게 글은 창문과 같다고 한다. 자신이 있는 곳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밖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비추기도 하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자습시간에 담을 넘어 서울 광화문 헌책방으로 달려가 책에 파묻혀 지냈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이에 두는 일을 하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작가를 꿈꾸진 않았죠.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책 속에 미래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방황하면서 거듭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는 독방에서 책만 붙잡고 살았고, 6년 동안 홀로 습작과 필사를 반복한 뒤 스물여섯의 나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해서 금방 스타작가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얼마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뭘 좀 해보자,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을 거야’하는 생각에 요리학원에 다녔어요.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식빵 굽는 시간’이죠.”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그는 이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돌이켜보면 작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사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전업작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아요. 소설을 쓴다고 해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과 생활패턴이 달라 어려움을 겪죠. 다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주어진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서울 봉천동에서 부모와 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옥탑방·고시원 등에서 집필해왔는데 ‘혀’를 펴낸 뒤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고. 그의 집필실에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전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만 꺼놓으면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방 한 칸에 15개의 책장이 놓여 있는데 그는 “뜨거운 책, 엄격한 책, 자유로운 책, 다 읽은 책, 다시 읽을 책 등으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즐겁고,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시집을 50~60권 정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어요. 큰소리로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도 하고요. 저는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은 책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업작가로서 살면서 힘들 때 있지만 책 읽고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는 왜 가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는 “모든 걸 충족하고 살 수는 없다. 신이 남자, 좋은 집, 글쓰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망설이지 않고 글쓰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랑하는 게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10년 전 제 모든 것을 걸 만큼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실연의 아픔을 겪었어요. 그로 인해 무척 힘들었지만 비로소 성년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일을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그에게 지혜를 듣고 싶고 이해를 바라는 건데, 어쩌면 아주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죠.”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그는 “10분 후의 일도 어찌될지 모르기에 인생을 단정지을 순 없다. 다만 결혼하더라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전 사주를 봤는데 초년에 고생하고 마흔에 대기만성하는 팔자를 가졌대요. 제 별자리가 염소자리인데, 염소자리는 맨발로 바위산을 오르는 기질을 가졌거든요. 고독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꼭대기에 오르는 형국이죠. 사주와 꼭 들어맞는 것 같아요. 염소자리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많대요. 예전에는 ‘염소자리라 내가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든든하고 좋아요.”
그는 오는 9월 ‘UC버클리·대산문화재단 한국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잠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 강의를 열고 작품 발표회를 가지면서 새 소설을 구상할 생각이라고. 차기작은 삼각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저는 글쓰기 전에 반드시 스케치를 해요. 해가 어느 쪽에서 떠서 어느 쪽으로 지는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사는 지 같은 걸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니까 그곳에서 축척지도를 만들고, 잡지를 보면서 소설 속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을 거예요. 저는 소설 쓸 때 배우가 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인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공짜문학시대’ 작가가 사는 법: 한일 소설가 조경란-시마다 마사히코 대담 – Forbes Korea 6/8/2011

한국과 일본의 문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소설가 조경란(42)과 시마다 마사히코(50)가 만났다. 조경란은 1996년 단편 ‘불란서안경원’으로 등단한 이래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복어’ 등 인기 소설을 발표했고, 최근엔 산문집 ‘백화점’을 펴냈다. 시마다 마사히코는 26년 동안 30권에 가까운 소설과 20여 권의 희곡과 오페라대본, 에세이를 썼고, ‘피안선생’ ‘나는 모조인간’ 등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최종후보에 여섯 번이나 올랐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25일에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대산문화재단 주최)에 참가했다. 2000년과 2005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이 행사의 주제는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 시마다 마사히코는 이 자리에서 “지나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오히려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같은 날 조경란이 ‘궁극의 질문들’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내용과도 맥이 닿는 듯했다. 두 사람은 2004년 아이오와 대학 작가 연수시절에 만나 친분이 두텁다. 조경란은 “시마다 마사히코의 빅팬(Big fan)”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두 작가가 일본어 통역의 도움을 받아 대담을 나눴다.

e북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멀티미디어로 문학시장이 어떻게 바뀌었나?

시마다: 인간은 처음엔 문자도 없이 구어로 살아 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1만500개의 단어를 암기해서 살았다고 하니 인간의 뇌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게 된다. 지금은 문자로 말하는 시대라 기억력이 그때만큼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에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효율적인 출판이 가능하게 됐다. 작가도 원고를 써서 책을 출판하고 인세가 그 수입원이었는데 이제 책이 공짜인 시대가 돼버렸다. 정보를 보존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우선 ‘뇌에 기억하기’였고, 그 다음에 인쇄였다. 지금은 CD, DVD, 하드디스크등을 이용해 데이터로 남기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신뢰하기 힘든 방법이다. 반면 종이책의 수명은 길다. 구텐베르크 성서는 550년 넘게지난 지금도 읽힌다.

조경란 멀티미디어가 책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여전하다. 멀티미디어가 발달하면 할수록 사람은 점점 두뇌를 사용하지 않는 듯하다. 개인 컴퓨터, 아이패드에 모든 걸 의존한다. 모든 정보가 담긴 아이패드를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주 오래된 구식 휴대전화기를 쓰는데 가능하면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억해두려 애쓴다. 환경이 발달하면 할수록 누구나 쉽게 저자가 되고 출판이 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이제 거의 마지막 남은 수공예, 수작업을 한다. 멀티미디어 다매체 시대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궁극의, 최후의 질문이다.“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며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마다: 지금은 다른 플러스 알파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터넷에서 북콘텐트를 거의 무료로 다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흥미로운 대목은 음반시장의 경우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해 살길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공연문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조경란: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그거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피셔 대학에서 장서 50만 권을 폐기하고 전자책으로 대체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느꼈다. 나는 글쓰기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작가의 삶은 비공리적이며 책 쓰기도 그러하다. 영원히 비공리적인 삶을 살아갈 작정이다. 조경란의 책은 컴퓨터에서 다운받기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서점에서 종이 책을 구입하더라도 희소성 있는 작가로 남고 싶다. 책을 책이라고 말하지 않고 종이책, 종이신문으로 말하는 현실이 슬프다. 여러 번 전자책 출간 제의를 받았지만 응낙하지 않았다. 지난 16년 동안 글을 쓰면서 소수의 고정 독자가 생겼다. 그분들은 전자책을 내지 않더라도 내 책을 사 볼 것이다.

다매체 시대의 작가는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하나?

조경란: 특정 독자를 의식하면서 글을 써본 적은 없다. 나에게 독자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야기가 뇌리에 스치면 공 굴려지는 시간이 있다. 우리는 오감, 육감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 접촉했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것, 행간의 무수한 의미가 중요하다. 더 예민하고 치열하게 글을 써야 살아남는다.

시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스토리텔러가 됐다. 항상 꿈에서 막 깨어났을 때, 미묘한 상태를 시작으로 소설을 쓴다. 가장 오래된 문학의 형태는 신화 즉 꿈의 기록이다. 신화는 때로 황당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각자 신화와 같은 내용을 매일 아침 느끼지 않나? 꿈속의 자신과 현실 속의 자신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작가는 돈벌이를 하려고 글쓰기를 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작가에게는 화폐나 다름없다.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창작해 왔다. 실용적이지 않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들을 만들어 왔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엔 실용적이지 않지만 가치가 있다. 작가는 맘만 먹으면 화폐를 만드니 합법적인 위조지폐로 사는 셈이다.

조경란: 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에 있는 친동생과 연락이 6시간가량 두절됐을 때 공포를 느꼈다. 테크놀로지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력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시마다씨께서 느낀 일본은 어땠나?

시마다: 일본 대지진 이후 얼마 동안 가족, 친지와 연락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광장에 모여 입소문을 통해 안부를 묻는 방식이다. 지진 이전에 세계인의 관심이 아랍 혁명에 쏠렸었는데 이 또한 원시적인 방법으로 입소문을 통해 일어난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트위터나 SNS를 통해 일어난 혁명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2차적인 영향에 불과하다. 1차적으론 광장 네트워킹을 통해 이뤄진 혁명이었다. 일본에서 지진, 쓰나미가 닥쳤을 때 종이책이 훼손된 가정이 많았다.

각지에서 오래된 책을 책방에 파는 사람이 많아졌고 책의 전자화 역시 빨라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전자책도 전기가 없고 인터넷이 없으면 쓸모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최근의 일본 전력난은 이러한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해줬다.

조경란: 나는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SNS로 소통하는 작가들이 부럽지만 잘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과연 소통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시마다씨는 트윗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작가로 살아가는데, 혹은 독자와의 소통에 도움이 되나?

시마다: 나에게는 2만2000명의 트위터 팔로워가 있다. 이는 2만2000부의 잡지와 맞먹는 역할을 한다. 전화 연결이 안 될 때 인터넷은 나의 게시판 역할을 해준다. SNS는 동시다발적으로 단시간에 확산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과 비슷하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 작가들에게 저서에 친필로 사인해서 인터넷서점을 통해 판매한 다음 그 수익금을 기부하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여러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줘서 인터넷상에 ‘복구서점’을 만들었다. 170여 명의 작가가 동참했고 7000권 정도의 책이 모아져 웹에서 팔렸다. 멀티미디어가 지닌 장점이 아닌가 싶다.

조경란: 내 책은 15개국에서 발간됐지만 일본에선 아직 발간되지 않았다. 내 책이 일본어로 출간된다면 가장 먼저 복구서점에 기부하겠다.

혹시 두 분이 공동 작업을 할 생각은 없나?

조경란:
 20대 초반에 혼자 틀어박혀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시절에 시마다씨의 책도 모두 읽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작가들을 좋아한다. 작가 교류에서 배울 점이 많다. 외국작가와 공동작업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밀란 쿤데라, 미셸 우엘벡, 시마다 마사히코 이 세 분이 아니라면 할 생각이 없다.

시마다: 나도 한국작가와 공동작업을 한다면 조경란씨와 하고 싶다. 조경란씨가 뽑은 세 명 가운데 내가 가장 젊어서 유리할 것 같다.(웃음)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조경란:
 단편을 하나 쓰고 오는 7월 말에 도쿄로 가 한 달가량 머물 예정이다. 사실 3·11 지진이 일어났을 때 가려고 했다. 작가는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필사적인 반대로 가지 못했다. 공포가 지나간 뒤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사건이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듣고 싶다. 먼 미래에 쓰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다. 가을에 돌아와서 다른 장편소설을 시작할 예정이다. 평온해 보이는 상태에서 더 두려움을 느낀다.

시마다: 도쿄에도 대지진 이후 정신적 혼란을 겪는 이가 많은데 얼마나 가깝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할 듯하다. 이미 후쿠시마에는 두 번 다녀왔다. 센다이 북쪽 지역의 쓰나미 피해가 훨씬 컸다. 후쿠시마는 인재 때문에 문제가 크다. 일본 작가 중에도 후쿠시마 피해 현장에서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고민하는 이가 많다. 나를 포함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지진 이후 자아가 분열된 사람이 상당히 많다. 모두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또다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3·11 이전의 자아와 그 후의 자아,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계속 연구할 생각이다.

조경란 작가, 가난했던 부모님께서 주신 것은 ‘읽는 즐거움’ – 다독다독 5/23/2012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것

조경란 작가님은 생애 40여년의 기간 동안 단한번도 신문을 옆에 두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간지 3종, 주간지 1종, 교육신문, 독서신문 등 여러 종의 신문을 보고 있다고 하시는데요. 어린 시절 가난했던 부모님께서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읽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셨기에 매일매일 신문을 읽도록 권장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쉽게 한글을 깨우쳤고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지금의 작가님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신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왜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작가 스스로도 읽는 독잘들도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에 조경란 작가님은 서머셋 모어는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헬리 밀러는 강제적이면서도 즐겁기 때문에, 이청준 선생님은 들끓는 욕망때문에 글을 쓴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글을 쓰고 독자들과 의견을 듣고 같이 할 때면 언제나 최고로 즐겁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밝히셨는데요.

읽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내가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이 없는 읽기는 리딩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왜 읽는가, 어떻게 읽는가, 무엇을 읽는가‘ 등 끊임없는 질문을 하면서 읽는 크레이이티브 리딩을 강조하셨는데요. 또한 새로운 텍스트를 읽거나 낯선 이를 만나면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이 상태로는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지속적인 읽기습관을 생활화시키는 현명한 수동성이 필요하고 우리가 읽는 모든 텍스트를 언어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경란 작가님은 대학도 다니지 않고 은둔형 인간이었던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읽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정말 좋은 단 한권의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작가로서의 각오도 크고 누군가에게 그런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책 한 권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읽기’를 만난 것은 가장 큰 축복이란 말을 빼놓지 않으셨네요!

끝으로 바늘로 우물을 판다는 터키 속담이 있다며, “이 말은 인내심을 말하는 것이다. 문학이든,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재능이나 주변의 도움이 아니라 인내심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잃지 않고 여러분만의 우물을 파시길 바란다“고 마무리 했습니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 경향신문 4/29/2016

소설가 조경란 ‘봉천동 서재’

‘세상에 이렇게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지명이 다 있을까. 어휴, 내 이름이 조봉천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사람들은 봉천동, 하면 우선 판자촌을 떠올린다. … 나는 봉천동에 사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다. 하지만 봉천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와 내 가족의 궁핍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느낌이기 때문이다.’(단편 ‘나는 봉천동에 산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울 관악구 봉천동은 중앙동을 거쳐 지금은 은천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봉천동이 가난한 동네라는 선입견을 준다고 해서 중앙동이란 무덤덤한 이름을 얻었고, 다시 도로명 주소가 덧씌워졌다. 그러나 이렇게 지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이 태어나 자란 ‘봉천동’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지은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옥탑방에서 2층으로 서재를 옮겼을 뿐, 자신의 삶이 된 많은 책장과 책상을 끌어안고 문학과 함께 살아간다.

작가 조경란씨(47)의 하루는 오후 1시에 시작된다. 이때 일어나서 남들 기준으로는 하루 한 끼밖에 안 먹는 식사를 하면서 세 종류의 종이신문을 읽는다. 과거 서재였다가 지금은 침실이 된 옥탑방에서 부모님이 사시는 3층 살림집을 거쳐 2층 서재로 내려오는 시간은 오후 3~4시. 두 군데 대학의 문예창작 강의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 밤 12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출입이 허락된 사람은 그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국어와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 조카 둘뿐이다. 세 자매 중 첫째인 그는 도쿄에 사는 두 조카를 포함해 네 조카의 이모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재에서의 두 번째 끼니는 그가 ‘영혼의 빵’이라고 부르는 맥주 한 캔과 빵 한 쪽.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계란 프라이를 빵에다 얹어 먹는다. 조금 마시고 싶은 날에는 대여섯 캔까지도 거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캔에 그친다. 쓰기 이전에 읽기가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는 그는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받는 책보다 직접 사는 책이 훨씬 많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 읽고 싶은 책을 주문한다.

자정이 되면 이번에는 일이 아닌 여가를 위한 책을 들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서재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와 쪽문으로 나간 뒤 다시 살림집으로 난 대문을 통해 3층까지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 부모님을 들여다본다. 자정 무렵이면 각자 방에서 각자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은 채 주무시기 일쑤다. 텔레비전과 불을 끄고 옥탑방으로 올라간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새벽 5시쯤 잠이 든다.

낮밤이 바뀐 생활은 1996년 작가가 된 이후 20년간 변함 없이 이어졌다. 읽고 쓰는 데 온전히 바쳐진 일상. 그 기원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그는 방에 틀어박혀 꼬박 6년간 책을 읽었다. 뭘 할지 몰랐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책을 읽어왔기 때문이다. 식구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간대를 거꾸로 생활한 것도, 친구들과 함께 처음 2500cc의 맥주를 마신 뒤 똑바로 걷는 자신을 보면서 맥주가 영혼의 빵임을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다가 시인이 되고 싶어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스승 김혜순 시인으로부터 시 말고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그는 졸업하던 해 소설가가 됐다.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서재라는 말은 너무 멋지고, 이 7평짜리 작업실은 ‘균형의 방’이라고 해두면 좋을 것 같아요. 긴장과 의무인 책과 글쓰기, 휴식과 위안인 맥주와 코끼리가 이 비좁은 곳에 다 있으니까요. 이 균형이 무너지면 사는 이유마저 흔들릴 때가 있어요. 작업실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사나’ 하는 질문, 의기소침에 빠지지 않고 더 살고 싶은 의욕, 이유 같은 것들이 내 옆에 머무는 느낌이 들어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는 방,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방….”

한 마디로 그의 삶과 생각이 농축돼 있는 방이다. 그는 옥탑방과 현재 작업실을 꾸려온 과정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자기 방에 상을 편채 쭈그리고 앉아 쓴 소설로 등단한 직후, 원래 막내동생이 쓰던 옥탑방으로 옮겨갔다. ‘커다란 책상이 갖고 싶었다. 옥탑방에도 책상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작은 하이그로시 식탁을 하나 샀다. 지금은 군데군데 테두리 칠이 벗겨지고 다리가 흔들거리긴 하지만 아직 쓸 만하다. 옥탑방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심야통화를 했다.’ ‘옥탑방엔 점점 더 책들이 쌓여간다. 책들의 일부를 아래층 거실로 옮겼다. 냉장고 옆면에도 소파가 있던 자리에도 책장을 들여놨다. 아버지가 거실에 기둥을 하나 세웠다. 내 옥탑방을 받쳐놓기 위해서다.’(단편 ‘코끼리를 찾아서’)

책 때문에 천장이 무너질까봐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는 지경에 이르자 어머니가 나서면서 작가가 된 지 11년 만에 서재는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간다. ‘엄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근처에 괜찮은 방이 하나 나왔다고 했다.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근방인 낙성대와 신림동까지 작업실로 쓸 만한 방이란 방은 죄다 알아보고 다닌 터였다. 어지간한 곳은 터무니없이 세가 비쌌다. … 엄마를 따라나섰다. 골목으로 난 쪽문을 열고 열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한 일곱평 정도 될까. 나는 복도를 눈여겨봤다. 간신히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폭이었지만 입구에서 방까지 석자짜리 책장을 다섯개쯤 세워놓을 수 있어 보였다.’(단편 ‘봉천동의 유령’)

어머니가 데려간 곳은 세입자가 나간 자기 집의 빈 방이었다. 이 복도에는 그의 눈짐작대로 5개의 책장이 놓였고 9년이 지난 지금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히다 못해 켜켜이 쌓였다. 하얀 롤스크린으로 가려진 오른쪽 싱크대 옆으로는 세계 각국의 맥주가 들어있는 냉장고와 함께 커피밀, 주전자, 컵들이 정리돼 있다.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오자 창 앞에 책상이 있는 면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책장이다. 높이 170㎝쯤 되는 5단 책장 10개에 책들이 가득하다. 계속 버려도 책은 줄지 않는다.

서재에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가구는 책상과 의자 외에 딱딱한 벤치 하나뿐이다. 처음 이곳으로 옮겨올 때 놓았던 푹신한 소파베드는 치워버렸다. 누구를 초대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책상 오른쪽에는 국내외 시집과 시 이론서, 왼쪽에는 소설 이론서와 문학 이론서, 등 뒤에는 평생 갖고 있을 국내외 소설, 복도에는 산문집과 미술책이 꽂혀 있다. 30년이 지난 책도 먼지 한톨 없다. 줄잡아 3000권은 돼 보이지만 “매일 책등을 보기 때문인지” 필요한 책은 바로 뽑아낸다.

소박한 책장에 비해 책상은 호사를 부렸다. 그는 침실과 분리된 서재를 마련한 기념으로 스스로 디자인한 책상을 목수에게 주문해 홍송으로 짰다. 가로로 얕은 서랍이 세 개 달린 책상에서는 반지르르 윤기가 흐른다. 그 위에는 클로버 747 TF 타자기가 있고 한 자루도 어김없이 뾰족하게 깎은 일제 연필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바로 아래 동생이 사는 도쿄의 신사에서 사온 연필에는 ‘하루하루의 노력’ ‘한발한발 나간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 연필로 책에 줄을 긋거나 창작 메모를 하고 학생들의 소설 원고를 수정해 준다.

그의 책장마다 놓인 작은 조각은 코끼리다.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사모은, 조금씩 다른 재질과 모양의 코끼리가 서재 이곳저곳에 숨은 그림처럼 존재한다. 코끼리의 등장 역시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필름 한 장이 남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잠을 잤다. … 잠에서 깨어났다. 숨을 멈추고 있다가 기습하듯 찰칵, 셔터를 눌렀다. 잡아 뺀 듯 필름이 툭 빠져나왔다. 얼른 불을 켰다. … 웬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거기 있었다.’(‘코끼리를 찾아서’)

그는 자신의 생일에 손수 복어국을 끓여먹고 자살한 친할머니, 애인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은 연숙이 고모, 간암으로 죽은 도성이 삼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받고 헤어진 옛 애인의 이야기를 소설이나 산문에 쓴 적이 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건설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결혼해 스무 살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지상에서 가장 크지만 온순한 초식동물 코끼리는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삶의 무게와 고통과 고독의 현신이다.

그러나 우울하기만 한 게 인생이라면 누가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게 문학이라면 누가 감동할 수 있을까. 밝고 따뜻하고 좋은 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조씨의 소설에는 이런 균형이 있다. 그는 가족의 비극을 다룬 소설 <식빵 굽는 시간>에 향긋하게 부풀어오른 빵 냄새를 불어넣었다. 연인 사이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인 <혀>에서는 제철 재료를 사용한 서양요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상처받은 남녀의 이야기인 <복어>는 끝내 죽음이 아닌 삶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서정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서정적 시기라는 것이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젊은 시기이거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통찰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라면 말이다. 평범한 개도 어둠 속에서는 승냥이처럼 보인다. 서정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혹은 어둠 너머의 것을 주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봉천동의 유령’)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커서 그 너머가 잘 보이지 않던 젊음의 시기가 지나서 그런지, 여태까지 써왔던 글보다는 보다 더 ‘그들’ 혹은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침착하게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어요. 크든 작든 읽는 사람에게 생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소설 말이에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나쁜 일을 덜어내는 것, 평온함, 조용한 고립, 찢김이 아니라 스스로 아무는 상처 같은 고독을 원했다는 그는 ‘균형의 방’에서 조금씩 아껴가면서 그런 소설을 쓰고 있다.

■조경란

[집이 사람이다] (16) 문학과 꼬박 지새는 밤들…그녀의 일과 쉼을 지켜준 ‘균형의 방’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혀> <복어>,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백화점>을 펴냈다.

4년 만에 새 소설집 낸 조경란 “가족 문제는 늘 관심사였어요” – 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7/21/2022

첫 연작소설 ‘가정 사정’…”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

4년 만에 새 소설집 '가정 사정' 낸 조경란 작가
4년 만에 새 소설집 ‘가정 사정’ 낸 조경란 작가(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연작 소설 ‘가정 사정’을 출간한 소설가 조경란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가족 문제는 늘 관심사였어요. 인간이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가족을 갖고,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어떤 문제가 개인적 책임의 차원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에 직면하고 건너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등단 27년째를 맞은 소설가 조경란(53)이 여덟 번째 소설집이자 가족 문제를 주제로 한 첫 연작소설 ‘가정 사정'(문학동네)으로 돌아왔다. 2018년 단편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이후 4년 만으로, 총 8편이 실렸다.

조경란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가족은 선택할 수도 없고, 버리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개인적 관심사와 사회적 관심사가 맞물리는 지점에 흥미가 있다”는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며 글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어느 날 동네 식당 앞에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라고 붙은 안내문을 보고선 “순간적으로 몸과 사고가 정지됐다”고 회상했다. 개인 사정이 아니라 가정 사정은 무엇일까, 세상에 많은 가정 사정이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든 가족 문제를 아우르는 문구 ‘가정 사정’은 결국 표제작이 됐다.

소설집 속에서 가족의 모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한 차양 밑에 모여 서로 무심히 다른 쪽을 바라보는 사람들(‘가정 사정’)이고, 구성원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견디며 사는 남은 자들(‘양파 던지기’ 등)이며,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이름(‘내부 수리중’)이다. 쉽게 상처 주지만 가장 편하고 힘이 되는 관계로 그려진다.

연작소설 '가정 사정' 출간한 조경란 작가

표제작 ‘가정 사정’은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남동생을 잃은 정미가 아버지와 처음 맞는 둘만의 새해를 그린다. 불꽃놀이 여파로 고층 빌딩에서 떨어진 종이 꽃가루를 치우는 경비원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나 보이면서도 조금씩 나아질 것을 암시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기태와 연호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내부 수리중’은 조경란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꼽은 작품이다. 사고로 두 손가락이 잘린 기태는 불편한 손이지만 아내의 손을 맞잡는다. 모든 일이 좋아질 리 없지만 서로 의지하고 이겨내길 바라는, 내부 수리 중인 가게 안의 사람들을 향한 조경란의 마음이 묻어난다.

“23번 환자가 다녀갔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개인 사정’에선 원치 않는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대구로 떠나는 여성 인주가 주인공이다. 인주는 최근 발생한 ‘완도 일가족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의 피해자로 다행히 살아남았다. 조경란이 탈고 마지막까지 계속 고친 소설로, 제목도 ‘우(右)로 굽은 길’에서 바꿨다.

그는 원래 소설집을 5월에 내려고 했다가 미뤘다. 7편의 소설을 써놓고 전체 구조를 살피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세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방향 걷기’를 추가했다. 유년 시절 엄마에 의한 가정폭력 트라우마가 여전히 남아 있는 딸 미석의 심리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소설가 조경란

각각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조경란과 비슷한 50세 전후 중년 여성이다. 조경란은 특별한 기술이 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는 한 일용직이나 단순 업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며, 일자리를 잃어가는 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는 “내가 20대엔 주인공이 20대, 30대엔 30대였다”며 “나와 가깝고 더 안타까운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원고 수정단계에서야 주인공들이 나와 같이 나이가 들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며 웃었다. ‘작가의 말’에 쓰려다가 빠뜨린 내용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을 쓰며 쉰이 됐다며 “소설 하나 좋다고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했다.

이어 “작가에게는 자신과 이웃, 사회를 바라보는 3가지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전 소설집이 자신을 지나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는 과도기였다고 한다면 이번 소설집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제 진짜 소설가가 되려나 보다“고 덧붙였다.

조경란은 올해 가을에 단편소설 1편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작품을 쓸 계획이다. 2010년 발표한 장편소설 ‘복어’에 이어 내년 겨울쯤 삶을 버리려고 하는 일가족 이야기를 그린 두 번째 장편도 오랜만에 내놓을 예정이다.

“‘다정한 인사’가 들어 있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옆에서 내 삶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인사를 건네고 싶네요. ‘더 살아가야지. 오늘은 힘들었지만, 내일을 기대해 봐야지’ 이런 마음이에요.”

포즈 취하는 조경란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조경란 ‘일러두기’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 – 한국일보 전혼잎 기자 3/25/2024

조경란(55) 작가의 단편소설 ‘일러두기’가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이혼 후 아버지로부터 인쇄·복사 전문점을 물려받은 ‘재서’와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혼자 사는 “석연찮은 여자” ‘미용’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그렸다.

조 작가는 25일 수상소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라는 질문이 이 단편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글을 마치고서야 그녀(미용)가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순수한 생명력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며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이 만들어내고 행동하는 일상의 경이로운 이야기에 대해 더 쓰겠다”고 말했다.

권영민 문학사상 편집주간(서울대 명예교수)은 “’일러두기’는 평범한 서민의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따뜻하게 전개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도시 변두리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경처럼 펼쳐내면서 각박한 현실의 이면에서 등장인물의 내면 의식의 변화를 꼼꼼하게 챙겨 보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고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를 설명했다.

1996년 등단한 조 작가는 ‘불란서 안경원’ ‘코끼리를 찾아서’ ‘일요일의 철학’ ‘가족의 기원’ ‘혀’ ‘복어’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제47회 이상문학상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심사했다. 우수작에는 김기태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 ‘투 오브 어스’, 성혜령 ‘간병인’, 최미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등 5편이 뽑혔다. 대상 상금은 5,000만 원, 우수작 재수록료는 각 500만 원이다. 제47회 수상작품집은 다음 달 출간된다.

[이 아침의 소설가] 대입 실패 후 책만 읽다, 소설 쓰기 시작한 작가 조경란 – 한국경제신문 임근호 기자 4/4/2024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조경란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실패해 6년 동안 집에서 책만 읽고 지냈다. 그러다 문득 시인이 되고 싶어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스승인 김혜순 시인이 말했다. 시 대신 소설을 써보라고. 대학에서도 하루 종일 책만 읽던 그는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같은 해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제1회 신인작가상도 받았다.

태어나고 자란 서울 봉천동에 계속 살며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코끼리를 찾아서> 등과 장편소설 <가족의 기원> <혀> 등이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상도 받았다.

조경란은 탄탄한 구성과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가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단편 ‘일러두기’도 그런 작품이다. 도시 변두리 동네 이웃들이 서로 끌어안고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배경처럼 펼쳐내며 각박한 현실 이면에 숨겨진 인물의 내면 의식 변화를 담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하는 질문이 이 단편의 시작”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