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거다 (72) 유랑님: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의 일하는 날이 어제부로 종료를 했습니다. 본래 오늘까지 중요한 두개의 문서를 마쳐야 했는데 어제 이 작업이 잘 마무리 되는 바람에 오늘부터 휴가를 내고 연말 셧다운과 함께 새해까지 좀 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12월이 31일까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번주가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하는 마지막 주였기 때문에 3주만에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했고 그래서 아주 전쟁같은 3주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꿀맛 넘치는 휴가를 맞게 되니 한편으로 감사하고 기쁘네요. 아마, 이것이 일하는 즐거움(?)이 주는 행복이겠죠.

‘부러우면 지는거다’에서 그동안 얼굴이 언론 등을 통해서 알려진 분들을 주로 다뤄왔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분들 중에서도 부러운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게시판에 글을 쓰시는 분들 중에서 무림고수들이 계신데요. 그런 분들을 뵈면 부러운 면이 많아서 어쩌면 블로그를 쓰는 자로서 이런 익명의 무림고수님들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편부터 이런 무림고수님들을 좀 알려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릴 분은 마일모아에서 활동하시는 유랑님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는 은퇴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블로그에서 여러차례 글을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적자유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노력한 분들의 글을 아주 오랜 동안 읽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일모아 게시판을 통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발견했고 어떤 분들은 오랜 기간 아주 잘 준비하신 후 성공적으로 조기은퇴를 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유랑님의 첫번째 조기은퇴계획에 대한 글은 지금으로 부터 6년 6개월 전에 시작했습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한번 봐주세요 m ( _ _ ) m – 마일모아 유랑 05-Feb-2019

35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나이 50에 훌쩍 유랑을 떠나서 한 일이십년 떠돌다, 여기서 죽고 싶다는 곳을 찾으면, 70 정도 되서 정착해서 죽을때 까지 살겠지 싶어요. 50~70까진 한달에 5천, 70 이후엔 4,500이면 살 수 있다고 생각되고. (인플레이션 감안한 현재 가치입니다.) 소셜에서 3000 (나 2000, 껌딱지 1000), 67세 기준이지만, 수령은 70세부터 하는걸로, 소셜 연금의 기금이 바닥나거나, 수령액을 줄이거나, 기간을 늘릴 경우에 대비해서. 나머지 1,500불은 블루칩 배당주와 REIT 으로 조달, 투자원금 600,000이 필요한데, 인플레이션 감안 수익률 3% 인플레이션 2.5%로 잡고, 인플레이션 감안한 투자 수익률 3%로 잡으니, 35세부터 15년간 401k에 18,000불씩 넣으면 50세에 34만불이 되고, 이걸 20년동안 놔두면 70세에 60만불 정도 될것 같습니다. 50부터 70까지 20년간 일년에 6만불씩 꺼내 쓰며 살려면 95만불이 필요하군요. 그래서 일년에 3만불 투자 저축, 한달에 2000불씩 저축하고, 보너스 좀 보태고, 택스 withholding 넉넉히 해서 택스 리턴 받은거 보테고, 15년간 이렇게 하면 55만불 정도 됩니다. 지금 살고 있는집 40만불 짜리 15년간 페이오프 해서 팔아서 보태면, 95만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유랑님의 계획은 50세에 조기은퇴해서 20년간 여행을 다닐 계획인데 95만불이 필요하시고 집 40만불+401(k)과 투자계정 도합 55만불 = 95만불을 만들고 조기은퇴하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2부 – 마일모아 유랑 05-Feb-2019

처음 십만불을 채우는데 거의 6년 가까이 걸렸는데, 20만불이 되는데 4년, 30만불은 3년 40만불은 2년이면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일을 한다면 내년에는 6만, 그다음해에는 7만불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8만불씩 늘어나는 금액이 커질 것 같습니다… 잘려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고 생각되니 실적이나 보너스에 연연해 하지 않고, 세브란스 패키지 받고, 실업 수당 받으면 일년 더 일 안해도 마찬가지라는 계산하에서, 자택 근무 일 수도 마음껏 늘리고, 일도 하라는 만큼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만큼만 합니다. 그러니 회사를 다닌다는게 즐거워지기 시작하네요. 언페이드 리브만 일년에 한두달씩 준다면 한 오년 정도는 더 회사를 다녀도 괜찮을것 같은데 하는 생각까지 들정도로요.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드신 후부터 유랑님은 보다 자유로운 (?) 회사생활이 가능해 지셨고 심지어 언페이드 리브로 여행을 일년에 1-2달씩 다니시는 것도 고려하셨습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3부 (1년 경과 보고) – 마일모아 유랑 05-Feb-2020

2020년 2월에 40만불 이상의 투자액을 모으셨습니다. 짝짝짝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4부 (3년차 경과 보고) – 마일모아 유랑 31-May-2022

코로나 사태로 2년차 업데이트는 못하셨지만 3년차 업데이트가 올라왔습니다. 62만불을 달성하셨습니다. 짝짝짝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5부 (Quater Retirement) 마일모아 유랑 01-Apr-2023

1월에 보너스를 받은 다음날 회사에 나 은퇴 할려구 혹시 세브런스 팩케지 있니 하고 물어보는 얄미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회사 상사님의 분노에 가득찬 설득 내지는 협상을 거쳐, 삼월말까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확답을 받기로 하고…결국 삼월이 마지막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장과 회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원간의 관계를 재 정립하게 되었습니다…저는 아니 나 일 안하거나 조금만 하고 싶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결국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저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회사은 연봉을 안 올려주는 걸로(?). 새 직원을 뽑고 트레이닝이 어느 정도 되서 저의 일의 부담이 줄어들면 그때부터 주 20시간만 일하고, 그때까진 주 30시간 플렉시블하게 일하는 걸루요. 대충 이틀은 풀타임 이틀은 반나절 일하는 걸로 합의를 봤습니다.

보너스 받은 다음날 세브런스 패키지를 묻는 협상 끝에 주 2일 풀타임, 주 2일 하프타임으로 총 주30시간, 쿼터타임은퇴를 하셨네요.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5부 1장. 소소한 근황 업데이트 – 마일모아 유랑 08-Jul-2023

쿼터 은퇴지만 체감상 삼일 일하는 느낌인데, 가끔 연휴가 끼어들거나 휴가라도 내서 하루 재끼면 일하는 날들 사이 간격이 너무 광활해져서 다음 일하는 평일이 언제 돌아오나 날짜를 세고 있는 제 모습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주 30시간 이내로 줄이면 일이 너무 없어서 심심하거나 불안해질것만 같아 두렵기까지 합니다.

주 30시간 일하시는 쿼터 은퇴를 하시고 주로 골프로 보내고 계시더군요.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5부 2장. 은퇴후 유랑자금 월 수입 만불 만들기 – 마일모아 유랑 06-Dec-2023

62세 전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위해, 52세부터 62세까지 10년간 매달 3천불씩 나오는 개인 연금을 들어두었고 매달 수령중입니다…

남은 7천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 봅니다. 두달전 갑자기 지난 십년간 꼬나보던 O라는 주식의 진입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달간 Realty Income이라는 REITs에 50만불을 집중 투자. 은퇴의 현실에 한발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계획은 백만불까지 달려보려 했으나(나름 투자에 과감한 용자), 쫄보의 투자 원칙과 기법의 제약에 묶여 50만불에 무릎을 꿇는 아픔을…매달 배당 소득 2,730불을 확보 했습니다.

남은 4,270불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해 봅니다. 백만불이 있다면, SCHD 80만불, JEPI 10만불, JEPQ 10만불 구입하면,인플레이션을 어느정도 방어하는 자산 증가와 배당률 증가를 확보면서도, 배당률 5%를 살짝 초과 한달 4,270불의 소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집을 팔고 401k의 남은 잔고를 더하면 백만불은 만들 수 있을것 같습니다.

52세 조기은퇴하시고 62세부터 소셜연금 (부부합산 $3000), 월 2700불은 Realty Income 50만불, 월 4270불은 (SCHD 80만불, JEPI 10만불, JEPQ 10만불)로 하는 걸 목표로 실행 중이셨습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계획 6부 1장. 은퇴(준비)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 마일모아 유랑 09-Feb-2024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7부 1장. 한달살기 시작은 퀘벡에서 – 마일모아 유랑 30-Jul-2024

계획대로 집 잘 팔았고, 회사는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하면서 차박이 가능한 중형 SUV에 Cargo Box와 텐트를 싣고
에어비엔비에서 한달 살기를 하는 중
입니다.,,원래 식료품에 500불, 외식에 1000불 예산을 잡았는데, 각각 500불씩 먹는것만 총 1000불 초과네요…이렇게 생각지 못할 수 있는 비용을 아예 예산에 반영해서 천불정도 여유를 남겨 두었어서 그래도 문제없이 여유있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예산은 항상 예비비가 필요하다!

조기은퇴계획을 하신지 5년후 퀘벡에서 한달살기를 하셨는데 예산 만불보다 1000불이 더 들었다고 예비비가 필요하다고 경험을 남겨주셨습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7부 2장. 한달살기에 여행을 끼워 넣기 (초죽음) – 마일모아 유랑 18-Oct-2024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7부 3장. ( 내 이랄줄 알았다!) – 마일모아 유랑 11-Jan-2025

바리스타 퐈이어로 시작한 반은퇴 생활. 결국 노는거에 익숙해지다 보니 일하는걸 까먹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생기기 전날 분명히 내일 컴퓨터 챙겨서 놀러 나가야해라고 P2에게도 거듭 말하고 다짐했는데, 다음날 아침 까먹고 그냥 놀러 나갔습니다. 머피의 법칙으로 걸려온 회사의 서포트 콜. 그리고 걸려온 휴가 중이던(?) 매니져의 전화…오늘 저녁에 해주면 안될까? 나 지금 밖에 나와 있어서…쎄한 기운이 등골을 훓고 지나가더군요. 각오하고 있었지만 닥치고 보니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결국 얼마후 보너스 넘버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한 매니져로부터 작년보다 삭감된 숫자와, 회사 그만두기 2주전 노티스를 주고 나가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잔소리까지…저의 은퇴의 시계가 빨라짐을 느낍니다.

조기은퇴와 유랑민 살이 7부 4장 (드디어 은퇴구좌에 백만불 달성?) – 마일모아 유랑 23-Jul-2025

월급받는 은퇴를 시작한지 일년이 지났습니다. ??!이년반전 Quarter Retirement을 시작으로 1년전에는 집을 팔고 본격적인 한달 살기 유랑 생활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네요.

불과 몇년전까지 해마다 자산이 십만불씩 늘어나는게 신기하고 대견하고 한편으로 설마 계속 이러는건 아니겠지 걱정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일년에 이십만불씩은 늘어나는 중입니다…401k에 백만불을 모아가는 과정을 기록하려고 6년전에 30만불에서 인증 시작한 은퇴구좌 성장기가 드디어 백만불이라는 대망의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기대하던 백만불이 아니라, 갑자기 늘어난 1.5 million의 발란스에 깜짝 놀라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부연 설명하자면, P2가 한국에 가있는 동안 세금 보고를 하느라 P2의 은퇴구좌 관리인으로 저를 추가하였더니 제가 관리하는 구좌의 총 발란스가 43만불 정도 늘어나 버린 겁니다. 그래서 P2 구좌를 뺀 저의 은퇴구좌만은 백십만불 정도가 되겠습니다. 59세쯤에 백만불이 될 것이라는 계획보다 2~3년 이상 앞서게 된 이유는 조기 은퇴 계획과는 달리 지난 2년간 더 회사를 다니면서 은퇴구좌의 성장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입니다.

리얼티인컴 주식은 백만불까지 구매하겠다는 계획은 달성을 못하고, 총투자 50만불에서 멈췄고, 대신 그동안 Pfizer(PFE)를 60만불 가량 구매하게 되었습니다(샀는데 떨어져 서 물타기를 하느라. ㅠㅠ) 계획했던 리얼티인컴 백만불 대신 화이자 주식을 섞어 백만불을 채우고 여기서 매달 5천불 좀 넘는 배당을 받고 있고, 여기에 다른 배당주와 연금 소득으로 또 5천불 조금 넘는 고정 소득을 만들어 현재 매달 만불 이상의 생활비가 조달되고 있습니다만, 회사에서 던져 주는 돈으로만 생활하기에 모두 저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앞으로 계획은 갑자기 회사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게 된다면 아직 배당주에 투자되지 않은 나머지 자산으로 TLTW 를 구입해 배당을 최대화 하는 옵션까지 고려하면,
최소 만이천불에서 만오천불 사이의 그로스 인컴을 만들어 내는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다만 TLTW는 배당 삭감에 대한 미래의 리스크가 있기에 대책으로 소셜연금의 수령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어느정도 관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JEPI/JEPQ 를 섞으려던 계획에 TLTW라는 옵션이 하나 더 추가 된 상태입니만, 회사에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월급이 나와서 현금 비중이 꾸준히 늘어 난다면 느긋하게 SCHD의 비중도 함께 늘려갈 생각도 있습니다. 결국 은퇴준비의 가장 큰 허들이었던 배당주 위주의 투자에서 소소하게 남은 자산들의 SCHD/JEPI/JEPQ/TLTW의 전환과 비중 조절만 남은 셈입니다.

요즘 한달 유랑생활의 지출은 만불에서 만삼천불 사이로 쓰고 있고, 아무래도 매달 계획에 없던 월급이 나오는 지라 펑펑 쓰면서 살아도 스트레스 없는 나름 Go-Go Years 라는 시기를 만끽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저의 투자의 기본은 리발란싱 입니다. 그동안 SnP 500 ETF와, QQQ, SCHD, 그리고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맞추는게 리발란싱 이었다면, 배당주 위주로 전환된 저는 배당 5%에 사서 4%에 파는 걸 리발란싱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플레이션과 이자율의 흐름에 맞춰 최근에는 6% 이상에 사서 5%, 혹은 이자율의 정상화를 감안하면 4%에 파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전략대로라면 리얼티 인컴은 6%대에 샀으니 4%대에 팔고, PFE는 7%대에 샀으니 5%대부터 갈아탈 계획입니다. 배당주 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산보다는, 월 배당을 꾸준히 늘려가는 방향으로 투자 결졍을 해 나가는 것이죠…Roth로 컨버젼할 은퇴자금 백만불 축적도 끝났지만, 회사에는 심리적인 안정을, 저에게는 경제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지금의 고용 관계가 너무 좋네요. 이미 이년반전에 앞으로 2~3년만 더 일할거라 했지만, 지금도 한 1~2년은 더 일하고 싶구요.

여기까지가 지난 6년 6개월간 유랑님이 계획부터 실행까지의 경험을 남기신 것입니다.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계획대로 잘 실행을 하신 덕분에 목표를 추가하는 현재를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모십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76) 죽음을 생각한다. Memento Mori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 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시력’문제입니다. 작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갑자기 올해 들어서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노안인지 다른 원인이 복합적인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업무를 하는데 있어서도 시력문제가 크게 불편해 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팅을 하는데 주로 젊은 층인 우리 회사에서 글씨가 너무 작은 상태로 온라인 미팅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미팅에 집중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리스닝의 부족함을 그동안 속독으로 많이 풀어왔는데 그마저도 이제 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은퇴를 생각하나보다!”

처음으로 건강 문제와 은퇴를 연결시켜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문제는 사실 없습니다. 사무실에 가면 큰 화면이 두개가 있어서 사실 보는 문제는 없는데 미팅을 하려면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야 할텐데 거기에서 바라보는 저의 화면은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최근에 회사가 대기업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컴퓨터를 받았는데 이 화면이 더욱 작아지고 자판도 작아져서 많이 불편하더라구요.

저에게 사실 은퇴는 죽음과 결부되어 생각을 합니다. 공자가 74세까지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기원전 500년대 사람이니까 지금부터 2500년전 사람이에요. 그 당시 사람들은 30-40대에 많이 죽었으니까 일반인보다 두배는 더 산 셈이죠.

제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 건 사실 꽤 오래 전입니다. 어려서 가난을 오랜 기간 겪었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죽는게 사는 것보다 나을 것같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살았고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적도 적지 않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실행이 되지 않았을 뿐이죠.

이제 나이가 점차 들면서 더욱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저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함익병님도 그런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하셨다고 하더군요. 본인은 생일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하세요.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생일이요 다음날 못 일어나면 사망이라고요. 맞는 말씀이세요.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이신 박광우 교수님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박광우 교수님은 “죽음 공부”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분들에게 해 주실 말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의사는 조력자로서 네비게이션 역할만 할 뿐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싼 치료가 좋은 치료는 아니다.

죽음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죽음을 상상해 보라. 오늘을 즐겁게 살고 잘살고 열심히 살아라.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에 돈을 생명연장을 위해 약을 맞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죽는 것에도 변화가 많아서 쉽게 죽지 못한다. 스위스,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등이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주는 나라들이다. 미국의 경우 워싱턴, 오리건, 몬태나, 캘리포니아, 버몬트, 뉴멕시코 6개주가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해 준다. 적극적 안락사도 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좋은 방법은? 임종환자 본인 뿐만 아니라 보호자들과의 헤어지는 과정도 웰다잉의 과정으로 본다. 사람답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함익병님의 생각에 임종이 임박하면 단식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내 인생만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난 이후 남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 어떤 할아버지 자신의 병에 대해 주치의에게 직접 듣고 난 후 퇴원 후 여행을 다니다가 돌아가심.

내일 당장 죽더라도 후회없는 삶을 살았는가?

생전 장례식, 작별 인사를 잘 하는 법, 자녀에게 주는 짧은 회고록 (생전 부고장) – 어차피 죽고나면 남는 것은 기억과 기록 뿐이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71) 최인아 책방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 저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부캐를 분신으로 하는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는데 뭐 하수니까 하수의 기본으로 첫걸음을 떼는 느낌으로 아주 초보적인 초고를 쓰는 중입니다. 일단 단편소설을 써야겠죠. 처음이라 아직 잘 모르지만 A4 용지로 볼 때 80-100 장이라고 하니까 일단 150장 정도를 목표로 하고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어차피 글을 잘라내야 한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쓰는 중입니다. 소설을 왜 쓰느냐고 누군가 물으신다면 대답은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남은 자가 누구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제 소설이 필요한 사람들이 남은 자가 되겠죠. 제 블로그를 혹시 몇차례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분야는 주로 소설, 비즈니스 (돈을 주제로 한), 철학, 역사, 미술 등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도 쓰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분이 시를 원래 쓰셨다고 해요. 시를 쓰는 분의 소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닥터 지바고를 썼던 보리스 파스체르나크도 평생 시를 쓴 시인이고 닥터 지바고가 그가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 주인공인 닥터 지바고도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나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글을 나누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나누고 이 글로 이루어진 저의 이야기 또는 생각을 좀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글을 나누는 공간인 이 블로그가 저에게는 참 사랑스럽고 편안한 공간이고요 오프라인에서 서점이나 도서관과 같은 글을 나누는 공간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나누는 공간을 가지고 계신 최인아 책방 대표이신 최인아님을 부러우면 지는거다에서 모시고자 합니다. 사실 최인아님의 이야기를 제가 전에 들어보기는 한 것 같은데 최근에 오디오북 듣는 취미가 생기다 보니 유튜브에 검색어로 “책”이라고 쓰고 저의 유튜브 계정 알고리즘을 책과 관련한 영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중이었는데 그러다가 최인아님의 영상이 뜨게 되었습니다. 뜬 영상은 아래에 올렸습니다. 아마 최인아책방에서 최근에 올린 영상이어서 제 유튜브에 뜬 것 같습니다. 보통 책에 관한 영상들은 저자들이 직강을 하는 영상이라든가 오디오북이 대부분 나오는 반면 이것은 특이하게도 최인아님이 읽으신 책에 대해 소개하는 그런 것이더군요. 그러니까 본인이 쓰신 책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에 올라온 영상의 내용은 그다지 저에게 와닿았거나 야마구치 슈라는 작가의 책의 내용을 소개하셨지만 그것도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대신에 최인아님이 이런 일을 오래 전부터 기획했고 실행에 옮기셔서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는 점이 전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부러웠습니다.

최인아님이 2012년에 제일기획 부사장 직을 그만두신 이후에 역사학과에서 배우신 모양이에요 그리고 2016년에 최인아책방을 선릉역에 열었다고 하는데요 그에 대한 몇가지 기사가 있습니다.

강남 한복판 4층 ‘최인아책방’의 실험 – 주간조선 14-Oct-2016

이곳의 주인은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 최인아씨…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고 책을 지독하게 읽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8월 중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방을 열었다.

처음 이곳에 책방을 열겠다고 하자 하나같이 반대했다. 책방이라는 아이템에서 한 번, 강남 한복판이라는 데에서 또 한 번, 4층이라는 데에서 연거푸 “안 된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언제부턴가는 책방을 연다는 말을 아예 안 했다. 내가 흔들릴까봐. 다들 안 된다고 하길래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안 할 건가’ 하고. 잘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잘되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공간의 의미와 책방 주인의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는다. 다녀간 고객들은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이 오셔서 술집이 즐비한 환락가에 이런 공간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잘 운영해서 제발 오래오래 하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최인아씨가 모두가 뜯어말리는 책방을 굳이 연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두 가지 차원이다.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또 하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

누구나 살면서 마주함 직한 질문을 12가지 뽑고,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추천서 목록을 받았다…두 가지 질문을 보냈다. ‘① ‘인생의 책’ 열 권을 꼽고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 ② 12개 주제 중 당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 세 가지를 뽑은 후 각 질문마다 세 권의 책을 선정, 왜 좋았는지 말해 달라.’..최씨는 지인 220명에게 ‘숙제’를 내줬고, 그중 150명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지인들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에 읽은 책이 다 다르더라. 나의 20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최씨의 생각은 통했다. 실제로 고객들은 북카드가 꽂혀 있는 책들을 많이 산다고 한다… 고객들은 북카드를 책보다 더 관심 깊게 읽고 있었고, 그 북카드만 읽고 책을 빼들어 구입하기도 했다.

최인아님의 뚝심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2016년 8월에 책방을 시작하고 두달이 채 안된 50일만에 나온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3년 정도 지난 2019년에 새로 기사가 났습니다.

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 객석 18-Mar-2019

회사를 다니면서 “이 일을 언제까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셨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이어나가야 했고 그 선택이 최인아책방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2019년에도 북토크를 하고 계셨군요.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난 후에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신 것이 있습니다.

최인아책방 최인아 대표, ‘샐러리맨 성공기’ 쓴 29년 카피라이터…직장생활 해법 나누는 책방주인 되다 – 한국경제신문 09-Sep-2021

지인들의 우려에도 최인아책방은 5년 만에 강남의 대표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책방에서 운영하는 북클럽 회원이 700여 명이나 된다. 살롱으로도 입소문이 났다. 각종 강연과 클래식 연주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책방에서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살롱의 역할을 하게 된 건 ‘생각의 숲을 이루다’란 슬로건과 연결된다…이곳에서 열리는 강연들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위로와 지혜를 줄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왜 우리가 21세기에 살면서 몇백 년 전 그림을 봐야 할까 질문해 봤어요. 답은 명화가 그 예술가의 새로운 도전과 고난이 함께 맞물려 탄생한다는 점에 있더라고요. 매일 일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예술가의 영혼이 깃든 명작을 보며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으로 강연뿐 아니라 책방에서 일 대 일 마음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싶어지잖아요. 병원까지 찾아가기 망설여지는 분들이 안온한 공간에서 마음 얘기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 2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최인아님이 직접 쓰신 동아일보 오피니언 일부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아광장/최인아]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 동아일보 09-Jun-2023

몇 해 전 우리 책방은 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 적이 있다. 임원과 MZ세대 사이에 끼어 고민 많은 팀장들께 도움이 되고 싶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다. 6회 수업으로 구성되어서 수업료가 꽤 비쌌는데도 공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마감되었다…얼마 전 나는 31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 종종 후기가 올라오는데, 독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문장이 있다. “애쓴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신통한 결과가 없어서 이대로 계속하는 게 맞는지 흔들리고 외로웠는데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힘이 되었다고.

자, 퇴직이나 이직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게 된다. 후임자가 차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정보며 연락처며 현황 등을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업무를 하며 기울였던 노력, 그래서 내 안에 쌓인 노하우와 인사이트 같은 것들까지 다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빈 몸으로 나가는가? 머리와 마음도 초기화해 그곳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떠나는가?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다. 업무를 하면서 쌓은 경험, 노하우, 그리고 ‘아하!’ 했던 깨달음 같은 것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사에 다 두고 빈 몸으로 나가는 게 아니며 그것들은 결국 내 경험, 내 노하우, 내 인사이트라는 얘기다. 노력의 결과가 회사 것으로 귀속되는 게 아니라 나의 것으로 남는다면 평가나 열매와 상관없이 애쓸 만하지 않은가?…알면 통제력이 생긴다. 지금의 노력을 계속할지 말지 생각이 그저 맴돌거나 막연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지만 문제의 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체에 닿으면, 그러니까 나를 흔드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나면 눈앞이 환해진다.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기분은 불쾌하지만 실은, 나 자신을 위해 애쓴 것이고 내 안에는 노력의 흔적들이 쌓이고 남는다는 것, 그러니 내 노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칭찬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둘 이유는 없다는 것.

광고회사 시절 우리는 늘 크고 작은 경쟁 프레젠테이션으로 날을 지새웠다. 어떤 때는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서도 졌고, 어떤 때는 그만 못한 아이디어로도 이겼다. 내가 꽤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클라이언트가 우리 아이디어를 채택했다고 해서 그게 꼭 좋은 아이디어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를 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못한 것도 아니다, ‘쟁이’는 클라이언트의 평가에 휩쓸리지 말고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시 최인아님 본인이 쓰신 글이기 때문인지 훨씬 발췌할 것이 많고 되새겨볼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직원으로서 일을 하든지 대표로서 일을 하든지 결국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과나 평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중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은 정말 곱씹어볼 만한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인아님이 쓰신 다른 글도 궁금해 졌습니다. 이번에는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한 최인아님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를 보여주십니다.

[동아광장/최인아]글로 쓰지 않은 생각은 날아간다! – 동아일보 01-Oct-2022

생각은 향기와 같아서 그 순간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나는 ‘괜찮은’ 생각들을 날려 버린 것에 대해 이제 와 강하게 후회한다…얼마 전 우리 책방은 정지우 작가를 초대해 ‘글쓰기’ 주제로 북 토크를 열었다…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내게 침입하는 평가의 기준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작가가 하려는 말을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는데 딴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말했을 것 같다…면접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허용된 면접 시간은 15분쯤으로 다 같은 조건이었음에도 어떤 사람에겐 유독 끌렸다. 대다수는 의례적인 질문 정도로 넘어갔지만 어떤 이는 조금의 생각이라도 더 듣고 싶어 이리저리 더 질문했다. 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자기 이야기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거라고…서울에서의 바쁜 직장 생활을 접고 가족 모두 제주로 간 후배가 있었다. 그리로 간 지 몇 달 후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서울에선 봄이 가고 여름이 갔는데 제주에선 봄이 오고 여름이 온다고…일에 치여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면 봄이 오는지 가을이 오는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러다 봄의 끝자락에 가서야 ‘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봄이 가는구나’ 하며 아쉬워한다. 반면, 제주에서의 느릿한 생활에선 하늘도 올려다보고 봄 나무에 시선을 줄 수도 있었겠다. 그러자 막 움을 틔우려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오고 ‘아, 봄이 오려나 보다’라고 느끼며 봄의 앞모습을 보는 거다…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새삼 알아차린 게 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도 사회적 동물이며 같이 놀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사회적 존재들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지 않으면 외롭다는 것. 이때 글쓰기야말로 외로움을 다루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임을 여러 작가들로부터 듣는다. 안쪽의 생각을 글로 써 꺼내 보였는데 좋다 해주는 이를 만나면 외롭고 불안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거다.

[동아광장/최인아]自由, 스스로 말미암음 – 동아일보 17-Feb-2024

2014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휩쓸었던 영화 ‘버드맨(Birdman)’ 이야기다…주인공 마이클 키턴(리건 톰슨 역)은 다시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인기가 있든 없든, 찾는 이가 많든 적든, 톱스타든 아니든 자신은 여전히 영화와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라는 것. 바로 이 대목에서 내 머릿속엔 자유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자유(自由). 스스로 자, 말미암을 유. 그러니까 자유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먼저 하든 나중에 하든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 본래 의미다.

자유는 자주 외로움을 동반한다...외로움은 다수가 가는 길이 아닌 ‘마이 웨이’를 갈 때 찾아오고 커진다. 뜻을 같이할 사람이 적고 혼자가 될 때 덜컥 외로워지고 갈등에 빠진다...어쩌면 자유란, 소수(minority)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갈 때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롭고자 하는 이는 세상과 불화할 가능성이 크니 자유를 원한다면 외로움을 선물처럼 여겨야 하는 거구나뜻에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수긍하지 않는 것에 머리 숙이지 않을 자유, 원치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했던 것 같다. 돌아보니 (항상 그렇진 못했지만) 품은 뜻에 따라 사느라 더러 외로웠지만 자유는 외로움에 지지 않을 때 얻어진다는 체험 또한 했다. 그러니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자유로워지는 중이구나’라고. 맞다.

‘광고계 전설’ 최인아 대표 “AI시대 가장 귀한 자산은 ‘생각하는 힘'” – 뉴데일리 경제 24-Sep-2025

그는 광고인 시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뭔가?” ,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품었다고 고백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의 일을 ‘생각의 힘으로 기업이나 공동체가 당면한 과제에 획기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일‘로 정의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일론 머스크가 로켓 재료비가 전체 비용의 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재활용 로켓을 개발한 ‘첫 번째 원칙 사고’ 와 시인 나태주가 자신의 일을 ‘사람들 마음속의 이야기를 모으는 꿀벌’에 비유한 사례  등을 들며, 근본으로 돌아가 문제를 재정의하는 생각의 힘을 거듭 강조했다.

최 대표는 강연을 마치며 “AI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그 어떤 때보다도 생각하는 힘이 강조되는 이 시대야말로 크리에이터들이 굉장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일터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실은 해법을 찾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이 가진 ‘생각하는 힘’이라는 자산의 가치를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인아 대표는 1984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등 수많은 유명 광고 카피를 만들었다. 이후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여성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1998년에는 칸 국제 광고제(현 칸 라이언즈)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대한민국 광고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2012년 제일기획을 퇴사한 후, 2016년부터 최인아책방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참 멋지지 않나요? 최인아책방은 유튜브채널 https://www.youtube.com/@inabooks 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Update

[동아광장/최인아]자기 인생의 예언자가 될 때 – 동아일보 24-Dec-2023

[동아광장/최인아]인사이트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 동아일보 13-May-2023

나는 인사이트라는 화두를 들고 오래도록 천착한 끝에 이런 생각에 닿았다. 질문을 품으면 ‘발효’가 일어나고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곧 인사이트라고…그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고 의미 역시 훨씬 깊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모두가 ‘해준다’고 한다 [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18-Feb-2023

‘언제까지 해주냐’라 하지 말고 ‘언제까지 하면 돼?’라고 하자.” 다 아는 것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생각의 집이어서 말은 우리가 그 사안을 대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즉,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말에 주목하고 자기 언어를 가진 사람에게 귀 기울인다.

업무를 끝낸 일과 후나 주말만 인생이 아니고 업무 시간도 엄연한 인생이란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뜻이 맞지 않으면 다른 대안을 알아보고 택하되, 지금 있는 곳에서 일하는 동안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라는.

그저 회사의 일을 월급 받는 대가로 해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차피 정해진 월급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받으니 일견 가성비가 높아 보이지만, 이 생각엔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월급만 취하는 게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도 일어나고 새로운 경험과 통찰도 쌓이며 뜻이 다른 사람과 일할 때의 스킬도 배운다. 월급만 받아가지 않고 이 모든 걸 다 취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가 아닐까? 그러니 회사 일을 해주는 게 아니라 일의 주인이 되어 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나는 일을 해주는 사람인가? 하는 사람인가?

가만한 시간[살며 생각하며] – 문화일보 21-Feb-2025

패트릭 브링리. 우리나라에서만 2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다. 그에겐 영웅과도 같던 형이 있었는데 암으로 세상을 떴다. 겨우 이십 대,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부모, 형제, 부부, 친구…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으로써 이별한 후 남은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던가. 고통과 슬픔의 크기와는 별개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하거나 애도하지 못한다. 바쁘니까. 자식들을 먹여야 하고 일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서둘러 밥벌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이 슬픔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에 먹고 사는 일이 들어선다. 그런데 이 사람, 브링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은 세상에서 제일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뉴욕 한복판에 있었고, 그는 유명한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다. 사랑하는 형이 죽었는데 별일 없다는 듯 밥벌이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으로 들어간다. 관람객이 된 게 아니라, 그곳에 취직을 하고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그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경비원’이 된 그는 일과의 대부분을 가만히 서서 보냈다. 미술관의 진열실에 서서 세계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뿐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남긴 예술품들을 만나고 보았다. 날마다 그런 시간을 보낸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예술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예술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들 속에 묻혀 10년의 세월을 보낸 후 어느 날 다시 그곳으로부터 걸어 나온다. 그러곤 책을 쓰고 작가가 된다.

 바쁠수록 의식적으로 가만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존중한다면 물어보세요[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18-Mar-2023

‘네 생각을 말해 봐.’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그저 그런 얘기를 할라치면 그런 거 말고 네 생각, 너만의 생각을 말해 보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늘 내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선배들이 내 생각을 묻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근사한 경험이었다. 존중받는 느낌이었다.

아, 사람들 가슴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득하구나. 자기 생각이 없거나 주관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구나. 분위기가 되지 않고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 생각을 자기 안에 넣어두었던 거구나.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것. 자주 생각과 의견을 물어보는 거다. 최대한 반영하려 하되 그러지 못할 땐 이유를 말씀하시라. 

[동아광장/최인아]자발적으로 뭔가를 한다는 것 – 동아일보 09-Jul-2023

이 디지털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강력한 콘텐츠여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연결한다는 것. 책을 읽은 이들이 후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책의 내용이나 문장을 공유하면 이런 관심은 다시 저자의 인터뷰나 미디어 출연, 북토크, 강연 등으로 이어진다. 

프로는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상사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찾아서 준비하고 일한다. 그런 태도와 노력이 그 사람을 프로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프로로 대접받고 싶으면 그렇게 일하고 움직일 일이다.

선배가 없다는 당신에게![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29-Oct-2022

젊은 친구들에게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선배가 없다는 말이다…우리는 언제 선배를 찾을까? 고민이 있거나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혹은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선배가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선배는 곁에 잘 없고 생각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글로 써볼 것을 권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후배 한 사람이 내게 면담을 신청했다. 경력으로 입사한 그 친구는 이전 회사와는 일하는 방식도, 문화도 달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민을 늘어놓더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나는 답을 주는 대신 고민을 노트에 써본 후 다시 오라고 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가 다시 왔고 작은 글씨로 빽빽한 A4지 여러 장을 내밀었다. 그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고민이 많이 정리됐다고 했다. 나는 그가 쓴 페이퍼를 한 줄도 읽지 않고 돌려주면서 글을 쓰게 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법이 찾아지는데 그러자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잖아.” 과연 그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널뛰는 생각을 글로 써 내려가자 신기하게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가 보였다고 했다. 나는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지만 그 후배는 길을 찾아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퇴직 후 2년쯤 지났을 때다. 내 딴에는 오랜 고민 끝에 퇴직을 결심했고 남은 생은 학생으로 공부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터였다. 한데, 아는 것과 맞닥뜨리는 것은 같지 않았다. 자발적 선택이었음에도 퇴직 후의 자유가 더 이상 좋지 않았고 심지어는 우울했으며 외로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의 나야말로 선배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나는 선배를 찾는 대신 노트를 펼쳤다. 그러곤 쓰기 시작했다. 내 안의 수만 가지 어지러운 생각과 감정을 그저 마음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손목이 아프도록 써 내려간 페이지가 10쪽을 훌쩍 넘겼다.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마음이 거기 가득 적혀 있었는데 그 수많은 문장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것, 쓰이고 싶다는 것. 마음을 알기까지가 문제이지, 알고 나면 그 다음은 오히려 쉽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 연인들이 다시 만나기 시작하듯 나도 다시 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7년째 책방마님으로 살고 있다.

운이 좋아 믿을 만한 선배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선배를 찾아 당신이 말한다. “선배님, 저 고민이 있어요.” “뭔데? 말해 봐.” 당신은 자세하게 당신의 고민을 설명한다. 그러곤 돌아오는 길.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사실, 선배는 별 조언을 해준 게 없다. 그저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고민은 꽤나 정리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객관화’가 된 것이다. 선배에게 조언을 듣기 위해 당신은 우선 고민이 무엇인지 요모조모 잘 정리해서 전달한다. 바로 그거다.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던 고민을 밖으로 끄집어내니 정체가 환히 들여다보인 것이다. 선배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실은 스스로 문제를 정리하고 객관화한 거다. 사실, 해법은 문제가 무엇인지 똑바로 아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문제가 뭔지 모르거나 다른 것을 문제라 오해한다. 그러면 해법이 요원하다.

사람의 마음은 의식이 10%, 무의식이 90%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자신의 안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무엇을 욕망하며 무엇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지 알려면 그것들을 의식 위로 꺼내야 한다. 객관화 작업이자 출력 과정인데, 이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로 써보는 거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깊은 욕망과 만나는 일이며 또한 자기 자신을 믿는 일이다. 고민과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 스스로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다. 다만 꺼내 쓰지 않을 뿐이다. 좋은 선배를 가지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선배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다. 지금 고민이 있다면 노트를 펴고 쓰기 시작하시라. 당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길이 보일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 지속하는 마음[동아광장/최인아] – 동아일보 11-Jun-2022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엔 유명한 건축가가 등장한다. 그는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실제로 그 건축물을 이용하고 살아갈 사람들이 조금의 편리라도 더 누리도록 고심하고 고심한다. 건축 분야처럼 만든 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되는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쉬운데 소설 속 노 건축가는 겉으로 눈에 띄는 건축, 건축가 자신이 빛나는 건축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경쟁 입찰에선 특히 유리할 게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한다. 일이란 무엇인지,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소설은 한마디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줄곧 ‘일’을 떠올리며 읽었고 그러면서 열정적이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리는 열정이란 말을 들으면 인파이터의 폭발적 에너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마라톤에 가깝고 일터에서의 성취는 시간과의 싸움일 때가 많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평가받지 못해 기죽고 절망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러다 가늘게 성취와 성장 같은 열매를 맺는다.

맨 앞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 무언가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이 끝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것들이다. 좋아하는 마음 이면의 지속하는 마음도 돌아보면 좋겠다. 어른이라면 말이다.

BOSTONIAN (73) 영화 “승부” 관람후기 – 조훈현 vs 이창호 국수 코칭과 함께 성장함에 대하여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넷플릭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넷플릭스 영화인 “승부”에 대해 느낀 점을 좀 적으려고 합니다. 승부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 두분의 국수께서 처음에 사제지간으로 만나서 나중에 스승인 조훈현 9단이 당시 이창호 6단에게 지면서 무관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절치부심해서 타이틀을 가져오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바둑에 대해서는 너무 시간도 오래 걸려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고 바둑 머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노력을 해 보지 않은 분야이긴 한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바둑 자체보다는 제자인 이창호 9단을 가르치고 제자와 대국을 두고 패배하고 하는 그 과정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절치부심해서 다시 제자인 이창호 9단에게 도전자로서 타이틀을 따내는 이 과정이 커리어 코칭과 많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열심히 보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 (혹은 스승 혹은 멘토) 들은 처음에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 사람이 자신을 넘어서기를 기대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먼 미래의 언젠가 (?) 아마 거의 자신이 그 분야에서 생명력을 다해갈 즈음에 제자가 자기 보다 더 높이 올라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제자가 분발을 하고 잘 자라서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해 자신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 때 선생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번 영화 승부에서 조훈연 역학을 했던 이병헌 배우는 이 부분에 대해 아주 고민을 많이 하신 흔적이 느껴질 정도로 연기를 아주 잘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병헌! 이런 느낌이었어요. 제자에게 지고 돌아오는 것, 너무 힘들고 화나죠. 이 부분에 대해 조훈현 9단께서 인터뷰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뷰] 조훈현 “‘승부’ 분위기까지 연기한 이병헌, 대단한 명연기..유아인 혼내는 장면은 픽션” – 조선일보 01-Apr-2025

내가 스승에게 배운 게 있다. 그걸 그대로 이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것이다…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내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니다

그리고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역시 이창호 9단은 스승을 배려하여 최소한의 대답만 하고 어려운 질문에는 대답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바둑계의 살아있는 신화! 조훈현 이창호, 두 전설의 첫 사제 대담! – 무비스트 2023

이런 경지까지 가시기까지 조훈현 9단 본인 스스로 이것을 받아 들이고 깨닫는 시간이 필요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블르그님이 영화 “승부”를 보시고 느낀 감상을 블로그로 남기셨는데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오랜기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곳에 링크를 남깁니다.

영화 ‘승부’를 보고 – 브런치 블로그 by 셔니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조훈현 9단이 스승으로 부터 받았던 바둑판에 새긴 글씨가 있었죠? 결국 조훈현 9단도 이창호 9단도 자신과 싸움을 해서 이긴 것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어떤 사원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일일히 실험하는 방법이라든지 어떻게 생각하고 고안을 해서 빠른 시간안에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에 대해 학부 졸업을 한 사원을 선발해서 키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원이 습득력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성장 속도도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제 스스로 느끼기에 이 사원과 저의 스타일이 이제 많이 달라졌으며 더 이상 함께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 시점이 왔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많이 화가 났던 것 같고 그 감정선이 그대로 튀어 나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날부터 조훈현 9단처럼 고민을 하는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정은 그 사원을 저보다 당시에 뛰어나다고 느끼는 동급 매니저에게 넘겨서 그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더 오래 데리고 있다면 성장에 제동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죠. 그 결정은 결국 맞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대신에 그 사원과는 좋은 관계로 끝이 난 것 같지는 않지만요.

조훈현 9단께서도 이창호 9단과 아주 친한 관계정도는 이제 아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이창호 9단은 다른 길을 가고 있고 본인과 스타일이 달랐으며 뛰어 넘었으니까요.

이런 것은 참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커리어 코칭을 하지만 그 끝은 결국 저를 뛰어 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 그 과정에서는 놓아주는 것이 맞는 선택이고 더 좋은 것은 다른 코치 혹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코칭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 되겠죠.

좋은 영화,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를 만나면 참 기분이 훈훈하고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영화 자체는 2020년 12월 17일부터 2021년 4월 3일까지 5개월 정도 찍었고 그 영화가 2025년 3월 26일에 첫 개봉을 했다고 하니까 영화 제작 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개봉이 된 것입니다. 영화를 만든다고 다 개봉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유아인 배우의 마음 고생도 참 심했으리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다행히 영화가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모두에게 상영되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BOSTONIAN (72)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인형 보스턴 발레공연 아내와 관람한 후기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보스턴 발레단에서 공연하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하고 왔습니다. 사실 그날 당일에 받은 감동을 그대로 나누고 싶었지만 보스턴이 그날 너무 막히는 바람에 집에 11시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이제서야 이 감동의 후기를 나눕니다.

제가 오페라나 교향곡 등은 공연을 종종 보았지만 발레 공연을 관람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먼저 호두까기인형의 내용을 알아야 해서 좀 공부를 하고 가기는 했는데 다행히 공연장에서 나눠준 팸플렛에 잘 안내가 되어 있어서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발레단에 한국 분이 몇분 계시더라구요. 아주 열심히 잘하시는 모습에 왠지 뿌듯했고요. 이런 분들은 Primary Dancer라고 표현을 하거나 Artist로 표현을 하던데 정말 발레 동작 하나 하나가 너무나 어려운 동작인데 그런 동작을 이렇게 잘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했어야 하는지 저로서는 감조차 오지 않았습니다.

발레리라를 보조하는 남자 무용수들의 노력도 정말 대단했어요. 호두까지인형 왕자역을 한 분도 잘했지만 각각 나라에 나오는 발레 하시는 분들의 공연 하나 하나가 정말이지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1부는 좀 뭐랄까 아이들이 보면 좋은 공연일 것 같아서 다소 좀 김빠지게 느껴졌는데 2부에 들어가니까 공연의 발레 자체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너무나 좋았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를 연발하는 이상한 글이 되고 말았군요.

다들 잘하셨지만 그 중에서 인도에 관련한 두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춤은 환상적이라고 할까 매혹적이라고 할까 아시아 남성 댄서와 인도인 여성 발레리나였는데 두분의 조합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한국이 나은 발레리나분의 발가락을 어떤 기사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발레 공연을 보는 내내 그 분들의 멋진 춤 뒤에 이 분들의 수많은 노력들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아이들 없이 부부만이 가니까 참 좋았던 것 같고요 가고 올 때 차가 너무나 막히고 특히 경찰들이 주요 도로를 막아 놔서 일찍 출발했는데도 저녁을 못 먹고 공연을 보고 왔고 그래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75) 생텍쥐페리를 본받아 연구하며 소설쓰기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정말 정신없이 일이 많아서 어떻게 하루를 지내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 와중에 주말에는 막내의 아파트를 알아 보기 위해서 뉴저지에 다녀왔고 아내는 그 참에 그랬는지 아니면 수업에 갔던 학생들로 부터 옮겼는지 모를 감기기운이 들기 시작했고 저도 그 곁에서 감기 기운을 달고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저녁에는 커리어 코칭하는 분들과 미팅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나마 저녁시간에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그나마 온전히 쉬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차암.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나이가 들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하루를 보냈는데요 갑자기 치과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습니다. 미팅 중이어서 받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아내에게 메시지가 오기를 치과에서 보험문제로 전화를 하기 원한다는 것이었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서 전화를 했는데 글쎄 저를 제외하고 가족들의 치과보험이 내년 1월부터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거에요. 사실 저에게 전화를 한 분에게는 잘못이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짜증이 밀려왔고 아마도 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그 분께도 전달이 되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저의 잘못이었고 세세하게 살피지 못해서 그만이지 아내와 아이를 누락한 것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년1월 부터 시작하는 베니핏에는 가족들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은 확인을 했지만 이번에 아내의 치과진료는 무보험으로 처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속이 많이 상했을 아내가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내나 저나 나이가 많이 들긴 든 것 같아요.

나이는 이만큼만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의 장점에 대해서 어떤 유튜브를 통해 들은 것이 있어서인데 일기보다는 소설이, 소설보다는 시가 감정선이 훨씬 절제된 글이어서 시간이 오래 지나더라도 감정선을 다시 느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얼마전에 종영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쓰신 송작가님도 회사를 다니시면서 틈틈이 웹소설을 쓰셨는데 그것이 나중에 이렇게 드라마 까지 된 것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렇게 드라마가 될 줄도 몰랐고 그냥 블로그에 조금씩 쓴 글이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죽는 순간까지 비행기 조종사로 살았습니다. 비행기 조종사로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어린왕자의 스토리가 되었고 어린왕자를 출간하고 1년여만에 결국 행방불명되게 됩니다. 소설은 아니지만 팡세를 쓴 파스칼의 경우에는 파스칼이 글을 남기려고 쓴 글이 아니고 파스칼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자 주위의 친구들과 아내가 파스칼의 글을 모아서 남긴 것이 지금까지 고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글을 남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든 읽히지 않든지 상관없이 글 자체는 이미 창작의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저는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창작자가 된 것이고요. 저의 창작물인 글이 모여서 언젠가 누군가에게 혹시 모를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의 글은 그 글의 생명력을 다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연재는 나중에 하고요 먼저 쓰기로 했습니다. 전문 작가분들은 매일 1000자에서 2000자씩 꾸준히 쓰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초짜 소설가이니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단 글을 뽑아 보고 나중에 시간을 두고 탈고를 해 가면서 조금씩 연재를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어제 등장인물과 소설의 구도는 결정을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소설을 쓰다보면 발전하거나 변경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글이 글 자체를 결정해 줄 수 있다면 그 경험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은 저의 경험을 녹여서 만든 이야기를 적으려고 해요. 소설을 써보려고 생각을 한 건 좀 시간이 오래 되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건 소설의 기승전결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어제 마치 기적처럼 그 구도가 잡혔습니다. 제가 소설을 처음 써 본게 올해 7월 15일어었거든요? A4 4페이지 정도를 써 놨는데 5개월 정도가 지나서 다시 읽어보니 지금 쓰려고 하는 소설과 일맥이 조금은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반년정도의 시간차가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는 결국 같았던 거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제가 써야 하는 소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인데요 그래도 미팅이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있어서 바쁜 하루가 될 전망이에요. 생텍쥐페리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순간 순간 조금씩 메모를 하든지 끄적여 보려고 해요. 그게 나중에 모아지면 좋은 에피소드가 되어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날도 오겠죠?

그리고 제 소설에 음악과 시가 함께 가미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요. 그래서 시에도 조금씩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인생은 어떻게 흐를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의 방향이 과거 – 현재 – 미래 이렇게 한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저의 인생도 결국 생에서 시작해서 사로 끝나는 여정으로 가겠죠. 그 여정 안에서 족적이 소설이나 시의 형태 혹은 에세이로 남겨질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쁘지 않겠어요?

생명력은 결국 글 속에서 남겨져야 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소설쓰기에 한번 도전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혹시 아나요? 우리 소설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지…

BOSTONIAN (71) 김대유 교수님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2025년 12월 2일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 보스턴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오후에 기온이 올라갔다가 저녁이 되면서 다시 기온이 내려갔기 때문에 얼음이 되어 버리는 아쉬움은 좀 남지만 어찌 되었든지 첫눈이 온 것만은 확실합니다. 저는 겨울에 태어나서 눈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논에 물을 대어서 겨울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스케이트를 타곤 했는데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가 되어야 하루종일 얼음이 꽁꽁 얼어서 온종일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전 어려서부터 아주 추운 겨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로서는 보스턴의 겨울도 언제나 반갑습니다.

오늘 출근길에 오디오북을 듣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찾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나만의 방’을 듣게 되었는데 마음을 좀 빼앗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찾다 보니 김대유 교수님이라는 분께서 15분의 여류작가에 대한 글을 연재하신 것이 있어서 이것을 좀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①버지니아 울프-영문학, 버지니아 울프로 물들다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②불꽃 같은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③빙점(氷点)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④루 살로메, 사랑 끝에 서다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⑤황진이, 달콤씁쓸한 그녀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⑥’냉정과 열정 사이’의 에쿠니 가오리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⑦ ‘오만과 편견’ 의 제인 오스틴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⑧박완서, 그 가슴 푸근한 이름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⑨봄날의 가벼운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⑩모더니즘 시문학의 샛별 ‘에밀리 디킨슨’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⑪높고 쓸쓸한 영혼, ‘거장(巨匠) 박경리’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⑫시오노 나나미, 욕먹는 여자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⑬복잡성의 페미니즘, 실비아 플라스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⑭여성주의적 실존주의! 시몬느 드 보봐르 – 김대유 교수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⑮엄마를 부탁해, 작가 신경숙 – 김대유 교수

신경숙 작가님을 마지막으로 15부가 마무리 된 날이 2024년 12월 10일이었는데요 그 해 10월에 한강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죠. 그래서 한강 작가님에 대한 글이 별도로 기재되었습니다.

[김대유 칼럼] 트렌드 노벨상 2024, 작가 한강 – 김대유 교수

BOSTONIAN (70)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 송과장의 관점에서

2025년 12월 1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이어서 좀 긴 연휴를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대학에 다니는 막내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도 보고 저도 아내를 도와 음식을 만들면서 열심히 내조(?)를 했죠. 요즘엔 이렇게 먼저 굴르는게 사는 방법이라고 여기고 아내가 시키면 잽싸게 먼저 처리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절 휴가 기간동안에 마냥 논 것도 아닙니다. 회사에서 12월 1일까지 해내야 하는 업무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추수감사절 당일과 그 다음날 즉 금요일을 제외하고 토요일부터 일요일 그리고 오늘 오후까지 정말 정신없이 보낸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추수감사절을 일과 함께 보내다니…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이런 일하는 추수감사절을 겪었답니다. 에고….

그 와중에 넷플릭스에서 요즘 핫하다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완독했습니다. 류승룡 배우님과 명세빈 배우님은 뭐 당연히 명불허전으로 잘하시지만 그 이외에도 조연들이 참 대단하더군요. 정말이지 다들 잘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특히 눈에 들어온 분은 송익현 과장님 (신동원 분)과 권송희 사원 (하서윤 분)이었는데요. 이 분들 계속 좋은 배우로 좋은 연기 많이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물론 주인공은 김낙수 부장님 (류승룡 분)이었지만 사실상 작가이신 송희구님의 관점에서는 송익현 과장님이 또다른 관점으로 주인공(?)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보면 먼저 작가연구를 하라고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송희구 작가님도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있으셨고 부동산 공부를 해서 자산가가 되셨고요. 송익현 과장님처럼 살고자 노력하셨던 분이십니다. 김낙수 부장이 송익현 과장 앞에서 만큼은 함부로 하지 않죠. 그의 직언을 귀담아 듣습니다. 물론 귀담아 듣는다고 행동도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만 송익현 과장은 대부분의 경우에 그냥 지나치는 것 같다가도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유튜버와 지방의 작은 업체 두군데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있었는데 송익현 과장은 지방의 작은 업체를 꼭 김부장이 가야한다고 아주 강하게 얘기를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김부장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우여곡절을 겪다가 세차장 일을 하면서 다시 회사의 임원차 세차하는 일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결정을 하게 되는데 그 때에도 송익현 과장만이 찾아와서 “존경합니다.”라고 이제 퇴사한 김낙수님에게 깍듯이 대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드리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죠.

작가이신 송희구님도 자신의 페르소나가 송익현 과장이었다고 합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대표이사 (대리) 부터 임시직원 (임원)까지 가는 일방적인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송과장과 같이 회사에 올인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부동산 임장도 다니고 점심도 줄여먹고 이번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하철 첫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고 했더군요.

작가 송희구님이 그렇게 10여년을 사셨다고 해요. 이런 분들은 이길 수 없습니다. 10여년을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리고 이걸 해내는 분들은 뭔가를 반드시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회사 소중한 걸 아셔야 해요”…‘김 부장’ 원작자의 메시지 – 한겨례 01-Dec-2025

 송 작가는 “그런데 직장, 진짜 소중한 곳이다”라며 “직장생활에서 배우는 것들 플러스, 나의 어떤 종잣돈도 마련할 수 있고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퇴를 앞둔 중년 직장인들에게는 “직장은 어쨌든 손익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나는 과연 직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게 없어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를 미리미리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고 송 작가는 조언했다. 송 작가는 “회사 내에서는 내 업무에 충실히 하되 회사 밖에 퇴근 후에는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송희구 작가님이 새벽 4:30-4:40에 일어나서 매일 지하철 첫차를 타신다고 하는데 그 일상을 어떤 유튜브 분과 함께 동행하는 편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여러가지 얘기를 하시는데요.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있는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극사실주의 직장 스토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송희구 작가 – 우먼동아 08-Sep-2021

김 부장 팀의 에이스, 입사 11년 차 송 과장. 일도 잘하고 선후배들의 신뢰를 받는 타입.

아침 일찍 출근해 꾸준히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하는 것 같더니, 상무부터 최 부장까지 송 과장에게 부동산 조언을 구한다. 최 부장의 재개발 아파트부터 상무의 재건축 아파트까지 모두 송 과장의 조언이 한몫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말단인 권 사원까지 부동산 투자에 가세한다. 평소 신뢰를 쌓은 덕에 부동산 계약을 이유로 연차 휴가를 내도 김 부장조차 눈치 주지 않는, 직장인들의 롤 모델이다.

작가는 실제 서울 용산에 위치한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과장 송희구(38) 씨다.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지하철로 출근, 업무 시작 전에 쓴 소설을 지난해부터 자신의 블로그와 부동산 카페에 올렸다... 8월 말 2권의 책으로 출간된 ‘김 부장 이야기’는 각 온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오르며 순항 중이다. 현재 송 작가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송 과장 이야기를 담은 3번째 시리즈 출간 계획과 함께 드라마 대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월급 외 수입이 생기면 조기 은퇴할 생각도 있었으나 아직까지 회사에서 배우는 것이 많고, 나이 들수록 노동의 가치를 느끼기에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고. 묵묵히 자기 삶을 사는 아버지로부터 배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 송 작가는 자식에게도 이를 물려주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고 했다.

저희 아버지는 작은 제조 공장을 운영하시는데, 말이 사장이지 노동자와 다름없으세요. 사장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에 외국인 노동자와 고압을 쏘고, 프레스를 찍는 등의 일을 30년 넘게 해오셨어요. 곁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한 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셨어요. 나라 탓, 경제 탓, 부모 탓 등을 하지 않으셨고 저도 자라면서 그런 부분을 배우려고 했어요. 제 아이에게 많은 부와 물질을 물려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삶의 자세나 태도, 가치관은 물려주고 싶어요.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 회사 다니면서도 집필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출근길과 아침 시간에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경제, 경영, 재테크 책만 파고들었는데 몇 달 읽다 보니 결국 다 비슷한 내용이더라고요. 그래서 고전문학이라든지 자서전 등을 비슷한 비율로 읽기 시작했어요. 현인들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면서 나 자신은 누구인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그렇다고 뭔가 뾰족한 답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나를 더 알게 되고,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 무엇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찾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아주 긴 제목의 소설을 쓰고 드라마로도 성공한 작가이지만 송희구님의 소설 자체는 유려한 문장이 있다거나 사람을 끄는 문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노력한 노력의 산물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어서 이루어진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송희구님을 응원하고 이번 추수감사절 기간동안 일과 병행하면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12부까지 다 보면서 그래도 나자신도 이렇게 블로그를 쓰면서 매일 매일 조금은 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나를 보다 더 알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Home Gym에서 운동을 하고 이렇게 썼어요.

나는 오늘 나를 들어 올렸다.”

추신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고 나서 여자분들 세네이 수다를 떠시는 유튜브가 있는데 일단 올려 봅니다. 유튜브명이 “미자말자숙자”라고 이제 겨우 꼭지 두개있는 유튜브인데 그 중 하나가 알고리즘으로 뜨더군요. 이름하여 “김부장 와이프 이야기“입니다. 저는 명세빈님의 연기를 아주 좋게 봤는데 명세빈님을 엄청 뭐라 해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권송희 사원 역을 연기하신 하서윤 배우님에 대해서도 잠시 글을 남기려고 해요.

‘김 부장 이야기’ 하서윤, ‘찐 회사원 바이브’로 대기업 회사원 캐릭터 완성 – 스포츠 경향 01-Dec-2025

하서윤은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투로 ‘사회생활 만렙’이지만 MZ사원의 면모를 가진 권송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또 그는 재계약 미흡 업체들을 모아 부장인 김낙수(류승룡 분)에게 몰아주며 “부장이잖아”라고 혼잣말하고, 부장님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과장 송익현(신동원 분)의 말에는 “많이 받는 사람이 많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게 팀장이잖아요”라는 소신 발언을 숨기지 않는 등 2030세대를 대변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그 얘기가 없는데 송희구 작가님이 어떤 방송에서 하서윤님의 연기의 한장면 중에서 김낙수 부장님이 동기를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권송희 사원 (하서윤 분)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셨습니다. 눈물을 참아내며 대신에 마시던 커피를 탁자에 탁 소리가 들리게 내리고 나가죠.

10:52-11:25에 하서윤님의 연기 장면이 나옵니다. 아쉽게도 커피를 탁 내려놓은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감정의 변화와 억울함이 묻어 나옵니다. “싫은데요!” 이 대사와 함께…

그리고 송희구 작가님의 유튜브가 있는데요 그 중 하나의 영상을 올립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그룹을 만들어라.”

송희구님은 원래 블로그를 쓰는 블로거였습니다. 그러다가 작가가 되셨죠.

송희구에게 블로그는 또다른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흔히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교과서 같은 말이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명언이죠. 이 명언을 작가 송희구에게 적용한다면 “기록은 배신하지 않는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네요. 2013년부터 그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출근해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블로거 ‘클루지’ 송희구가 말하는 대박의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꾸준히 기록하는 것!

기록하는 습관이 모이다 보니 글 쓰는 시간이 점점 편해졌어요. 사실 저는 전문가에게 글을 배운 적도 없고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 글을 써본 적도 없었어요. 김부장 이야기도 은퇴 후 생활을 걱정하는 부장님들을 지켜보며 별다른 계획없이 자연스럽게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거든요. 그래도 연재를 할 만큼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던 건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쓴 게 도움이 됐다고 봐요. 일기는 종이에도 쓰지만 블로그에는 보다 정제되고 잘 정리된 일기를 쓴다는 느낌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기 위한 채널은 많잖아요. 여러 SNS채널이 있지만 그 중에서 좀 더 진솔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선택한 게 블로그였어요. 블로그는 ‘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그래서 나의 일기를 엮어 하나의 책장을 채워 나간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블로그를 통해 출간을 하고 웹툰과 드라마 등으로 연결이 되는 모든 과정이 저는 지금도 참 신기해요.

모든 캐릭터에 애정이 가요. 전부 나의 모습이 조금씩 담겨있거든요. 남이 나보다 잘 풀리면 질투를 느끼는 김부장의 모습, 가진 돈 다 쓰며 인생 즐기고 싶어하는 정대리의 모습, 안전한 직장을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권사원의 모습 모두 제게 조금씩 있어요. 송과장은 있는 그대로의 저고요. 그래서 모두 소중한 캐릭터죠. 김부장 이야기 속 캐릭터가 저마다 자신과 닮은 구석이 조금씩은 있나 봐요. 동료나 후배들이 “누구 캐릭터 혹시 나 아니냐”라고 자주 묻거든요.

평소에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그 기록이 모였을 때 조금씩 손을 보기만 해도 멋진 작품이 탄생할 수 있어요. 그러니 꾸준히 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속성을 갖기 위해 자신만의 규칙을 세워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좋은 게 생각나면 즉시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 요일이나 매일 글쓰기 시간을 정해 쓰는 등의 지속성이요.

사람들이 글 하나만 보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누구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지?’하고 하나씩 포스팅을 읽어보는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요.

일상 속에 인상 깊은 순간들을 블로그에 기록하면 그게 삶의 기록이 돼요. 이때 기록은 단순한 사실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낀 점을 자세히 기록해야 진정한 기록입니다. 저는 9년전부터 기록을 하지 않았다면 출판의 기회를 만날 수 없었을 거고, 글쓰기의 원동력도 얻지 못했겠죠. 그래서 누군가 재테크든 사업이든 시작하고 싶다면 일단 블로그에 기록을 시작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 삶에 중요한 순간, 새로운 기회를 만났던 모든 시작점에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블로그는 ‘시작’입니다.

사진으로만 남기면 한 장면만 보이지만 시각적인 데 언어가 곁들여지면 기억할 수 있는 게 더 많거든요. 그렇게 쌓인 기록은 아껴주고 싶고 누구보다 소중한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이더라고요.

이 블로그 글이 2022년 4월이라고 하니까 지금부터 3년 8개월 전의 글이네요.

전 아직 3년 조금 넘어서 밖에 블로그를 쓴지 안되었는데 스스로를 사랑하며 계속 글을 더욱 꾸준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네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70) 이순재 배우님 – 영원히 성장하는 국민배우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 주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있는 주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매년 세번째 목요일이 추수감사절인데 이번 주 목요일이 바로 추수감사절이고 금요일은 추수감사절 연휴로 보내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이라면 한 해의 감사함을 기억하는 날인데요. 이런 날, 저는 영원한 국민 배우로 故 이순재 선생님 (1934-2025) 을 기억하며 부러우면 지는거다의 70번째 주인공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이순재 선생님을 제가 부러워 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배우라는 한 길을 꾸준히 걸으신 분이십니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이신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1956년에 서울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극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올해로 69년간 배우 생활을 해 오신 분이십니다.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당신이 시작하던 50년대, 60년대에는 배우에 대해 ‘딴따라’라고 해서 천대하던 시절이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무대가 없으셨던 때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시절을 다 견디시고 한 길로 그대로 지금까지 오신 분이십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이순재 선생님을 스승처럼 모실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이순재 선생님께서는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계속 노력하시고 성장하신 분이십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 처음 배우를 시작하실 때에는 연기를 배울 곳이 없으셔서 국어사전을 가지고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하는지 어떤 뜻이 있는지를 계속 공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기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서두르지 않고 기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연습하셨습니다. 매일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대본을 외우며 어디에서든지 항상 먼저 가서 기다리시고 계속 노력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리어왕’이라는 200분의 연극을 하셨는데 200분이라고 하면 느낌이 잘 안 오지만 Intermission 15분을 빼고 나도 2시간이 넘는 엄청난 연극입니다. 이 연극을 87세이셨던 2021년에 리어왕 역할로 연극을 하셨습니다.2022년에는 연극을 세편이나 하셨고 2022-2023년에 드라마를 세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연극 두편과 ‘대가족’이라는 영화 그리고 KBS에서 드라마 ‘개소리’ 등 총 4편이나 되는 연기를 소화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에 최고령 연기대상이라는 영예를 안으셨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를 준비하시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시면서 하차를 하셨어도 결국 목숨이 다하시는 그날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기인생에 매진하시고 성장하신 분이십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 2024년에 하신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단막극이 있습니다.

예술은 완성이 없다. 끝까지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이순재님의 성장은 2024년 KBS 연기대상을 받으시면서 화룡점정을 찍으셨습니다. 이 날 마지막에 가천대학교 석좌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어서 제자들에게 미안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우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말 겸손한 모습이셨습니다.

(2025/11/27 Update)

그런데 이 ‘개소리’ 드라마는 건강 이상이 오신 상태에서 강행하신 작품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 43회에서 말씀을 하신 것이 있습니다.

35분부터 38분까지 말씀을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침을 맞으면서 리어왕까지 찍고 난 이후에 ‘개소리’ 드라마가 1년반 전부터 이미 약속이 되어 있던 드라마여서 6개월 이상 강행군을 했는데 결국 11월말에 백내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연출자는 3월부터 다시 촬영을 하자고 했지만 제작비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12월부터 눈이 아직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촬영을 재개해서 2월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었으니까 KBS 연기대상이 더 갚지게 느껴집니다.

(2025/11/27 update 부분 종료)

셋째는 이순재 선생님은 세대를 아우르는 진정한 어른으로 사신 분이십니다.

젊은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꽃보다 할배에서도 가장 연장자이신데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앞장서서 걸으시고 뒤쳐진 적이 없으셨고 연극무대에 가시면 꼭 배우들의 식사를 챙기셨습니다. 연극, 드라마, 영화만 하신 것이 아니고 코미디물인 ‘거침없는 하이킥’에서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으실 만큼 끊임없이 도전하셨습니다. 2007년에는 MBC 방송연예대상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분이 그동안 있었나요? 저는 아직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송승환 선배님께서 하시는 ‘원더풀 라이프’에 몇년전에 나오신 적이 있으십니다. 2020년 가을에 찍은 영상입니다.

2019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인간극장에서 ‘거침없이 직진’이라는 제목으로 출연하신 적도 있습니다.

대종상을 한번도 못 타 봤다구…인기라는 건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정상에 서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항상 ‘나는 부족하구나. 나는 좀 모자라는구나’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니까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잖아요.

91세의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시지만 아직도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대전고등학교를 나오셨는데 1년 선배가 되시는 것 같아요.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네분이 독일에 가셔서 감회 새로워 하시는 모습이 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끝으로 이순재님을 보내 드리지만 제 마음 속에는 영원히 성장하신 국민배우로서 그리고 저의 롤모델로서 기억될 것으로 여기며 ‘부러우면 지는거다 (70)’의 글을 마칩니다.

항상 이순재님의 삶 자체가 저에게 도전이 되었고 미래를 보여주시는 귀감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끝까지 노력하고 성장하시는 모습을 아름답게 남겨 주셔서 당신의 삶이 과학자로 살아가는 저에게 비전이 되었습니다.”

BOSTONIAN (69) $1 Trillion Biotech의 Bucket List는 꿈이 아니었다.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날이 2022년 10월 28일인데요 이제 3주년이 지났죠. 그동안 700개의 글을 썼으니까 지난 3년동안 2일에 3편정도씩 글을 꾸준히 올린 셈이 됩니다.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 때에는 지금과 같이 이렇게 많은 글을 쓰게 될지는 전혀 생각을 못하고 “내가 혹시 100편까지 라도 블로그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처음에는 이런 조바심에 마구잡이로 정말 닥치는 대로 글을 썼던 것 같아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사실 생명공학자로서 저도 겪고 있는 제2형 당뇨에 대한 올바른 생활방식과 치료법을 공유하려고 했던 게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였는데요. 글을 쓰다 보니 이 부분에대한 글은 몇편 안되어 그냥 끝이 나 버렸고 블로그의 방향은 그보다는 좀더 개인적인 글들 – 예를 들면 “자유와 이유“, “Bucket List“, “BOSTONIAN” – 같은 메뉴와 함께 “BIOTECH“과 “Career Coaching“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글을 쓴 메뉴는 “자유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의 가장 큰 고민과 상념의 추이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자기성찰과 자아 발견을 위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것 같고요 그러면서 삶의 일상에 대한 것은 “BOSTONIAN“에 마치 일기를 쓰듯이 적어갔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답하기 위해 “Bucket List“를 이어 나갔으며 그러는 중에 “BIOTECH“과 “Career Coaching“이 제가 해야 할, 해야만 할 어떤 소명처럼 생각이 되어 계속 이런 주제의 글들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몇가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메뉴도 있는데요. 특히 제 친구이자 작가인 김쾌대님을 시작으로 본받을만한 사람들을 찾아보자는 것에서 시작했던 “자유와 이유” 메뉴안에 있는 작은 꼭지인 “부러우면 지는거다“가 69편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이 저의 블로그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어느 순간 갑자기 방문자가 늘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어떤 경우에는 제가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소개했던 어떤 분이 언론에 소개되시면서 덩달아 방문자가 늘어나는 호재를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항상 저의 부족한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현재 저의 회고록 (Memoir)를 쓰고 있는데요. 여전히 회고록 글이 이어지고 있고 언제까지 이 회고록을 계속 쓰게 될지,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찌보면 이 회고록 만큼은 제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자 저의 가족 특히 자녀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Legacy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계속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두가 좀 길어졌네요.

지금 토요일 오후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는 이유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서입니다. 신기하게도 제가 예전에 적어 놓았던 Bucket List 중 하나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전혀 저의 의사와 노력과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벌어져서 이것에 대한 제 나름의 기록을 남겨 놓으려는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냥 바이오텍 연구자의 소확행(?)이라고 생각하시고 들어 주시기 바라고 혹시 저의 글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답글을 남겨 주시면 읽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썼던 글은 이것입니다.

Bucket List (32) – Trillion Dollar Biotech

이 글은 2023년 5월 29일에 쓴 글인데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2년반전 즈음에 막연한 소망 혹은 소원 (?) 같은 생각으로 몇 자 적어 놓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아마도 IT 기업들은 Trillion Dollar Market Capitalization인 경우가 몇 회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Apple, Microsoft, Google 같은 회사들이 당시에 아마 천조 시장가치를 넘어섰던 것 같고요. 이 회사들이 지금은 $3 Trillion이 넘지요?

그런데 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글로벌 제약회사나 바이오텍들은 모두 시가총액이 그리 크지 않았어요. 제 기억에 Johnson & Johnson이 가장 큰 회사였는데 $377 Billion (2023) 정도 되었던 걸로 기록에 나오는군요. 그러니까 당시 가장 큰 글로벌 제약회사보다 적어도 3배 이상이 되는 큰 기업가치의 바이오텍 회사를 만들어 보겠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제가 목표랍시고 Bucket List에 따악 적어 놓은 거에요. 황당하죠?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올해에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 회사가 Eli Lilly로 되었는데 어제 Healthcare 회사로서는 사상 최초로 꿈에 그리던 $1 Trillion Market Capitalization을 달성하게 된거에요. 짜-잔~!!

Eli Lilly Becomes First Health-Care Company to Hit $1 Trillion Market Value – Stocks.News 21-Nov-2025

이게 전조가 있었나봐요. 11월 20일에 Biospace에서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1 Trillion 임박!” 이런 식의 기사를 낸 것이죠.

Eli Lilly Enters Uncharted Territory as Market Cap Nears $1T – Biospace 20-Nov-2025

2023년에는 Apple이 시가총액 단연 1등이었는데 2년여만에 Nvidia에 1위 자리를 내어 주었군요. 무려 시가총액이 $4.54 Trillion입니다. Apple, Microsoft, Google (Alphabet), Amazon 이렇게 5개 회사와 Eli Lilly를 비교했군요. 여기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Tesla와 Berkshire Hathaway도 Trillion dollar company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이번주 금요일에 $1 Trillion 가치를 찍었네요. 종가는 다시 약간 주저앉기는 했어요.

Lilly becomes first drugmaker to hit $1 trillion valuation on weight-loss demand – Reuters 21-Nov-2025

Lilly pulled ahead in part because Novo’s Wegovy launch in 2021 was hampered by supply shortages, giving Lilly room to gain ground. The U.S. company’s drugs have also shown stronger clinical efficacy, and Lilly has been faster to scale up manufacturing and expand distribution.

본래 Mounjaro와 Zepbound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데 GLP-1 표적약물은 Novo Nordisk가 먼저 FDA로 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공급부족으로 인해 Eli Lilly가 그 틈을 잘 파고 들어서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 후반으로 가면서 다른 제약회사와 달리 크게 수직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주요 매체에서 어김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좋은 회사의 직원으로 우연히 맞게 된 이런 꿈같은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로서는 너무나 감사하고 다시한번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음을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죠. 고작 이 회사에 들어간지 1년이 채 안되니까요. 저에게 이러한 경험이 저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다시 한번 도약하고 환자들에게 질환으로부터 완치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해서 안겨드리고자 하는 목표로 나아가는 저의 커리어 비전과 소명이 꼭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몇일 전에 집에 세워둔 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오늘 교체를 하기 위해 Autozone에 오고 가면서 미생의 작가이신 윤태호 작가님이 어떤 Youtube channel에 나오셔서 인터뷰한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마치 오늘의 저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느껴져서 함께 남기고자 합니다.

윤태호 작가님의 말씀이 자신이 5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나이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 죽음으로 가는 여정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서 “50대 이전의 삶은 어쩌면 준비의 과정이었던 것이었구나. 이제부터 50대, 60대, 70대 점차 죽음으로 다가가면서 진정으로 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부터 정말 노력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비슷한 연배인 저로서도 죽음이라는 걸 늘상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그 죽음을 앞에 놓고 사는 삶이 더욱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배움의 말씀을 들은 것 같아서 윤태호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윤태호님의 인터뷰 1부와 2부가 있는데 1부의 29분경부터 윤태호님께서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 도서를 소개하시면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두편의 윤태호 작가님의 인터뷰가 길지만 주옥같은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좋은 날에 좋은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니 정말 좋네요. 감사함이 넘치는 토요일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