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나의 삶 (63) 은퇴 자금 인출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과 미래에셋 연금센터 번역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Abraham Okusanya는 RBS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자산운용 분야에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했고 ‘Beyond the 4% rule’이라는 책을 출간해서 연금자산운용에 대한 길잡이를 제시한 사람입니다.

(Picture: Abraham Okusanya)

Beyond The 4% Rule: The science of retirement portfolios that last a lifetime by Abraham Okusanya

친절하게도 미래에셋 연금센터에서 이 책을 한글로 번역을 해 주었습니다.

은퇴자금 인출전략은 (1) Sequence Risk와 (2) Longevity Risk를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고 각자의 삶의 목표와 리스크에 대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골자입니다.

이 책과 함께 서울대학교 소비자 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베이비부머 은퇴자의 은퇴적응유형과 은퇴자산인출전략 연구 – 김병태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소비자학과)

이 논문에서는 은퇴자 유형을 다섯가지로 나누어서 연구를 했습니다.

미래불안형, 기본생활형,건강중심형, 사회활동형 및 현재만족형의 5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기대하는 활동기 지속기간의 경우 현재만족형, 사회활동형과 기본생활형, 미래불안형, 그리고 건강중심형 순으로 전체 은퇴기간 중에서 각각 55.0%, 53.7%, 47.3%, 그리고 47.0%를 활동기로 기대하고 있었다. 객관적 주관적 건강상태가 양호한 경우 활동기는 길게 그리고 간병기는 짦게, 반대로 객관적 주관적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활동기는 짧게, 간병기는 길게 예상하는 공통된 특징을 보였다. 은퇴기 각 단계의 소비에 대해서는 활동기(100)를 기준으로 할 때 회상기때는 평균 67.7% 그리고 간병기에는 평균 57.5%의 소비수준을 희망하며, 현재만족형은 회상기에도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기대하는 은퇴기 단계의 지속기간과 소비수준을 통해 은퇴 후 시간이 경과 됨에 따라 총소비지출은 평균적으로 연간 1.7%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자산인출전략에서는 장수위험에 대한 고려가 매우 중요하며 기대여명은 통제가 불가능한 불확실한 변수이므로 장수리스크가 클수록 인출비율 조절이 은퇴자산 부족확률 통제에 더 효과적이라는 선행 연구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출전략을 적용한 소비수준의 변화를 통해 은퇴자산인출전략이 모든 은퇴자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출전략이 필요한 은퇴자와 은퇴기간의 소득과 소비를 위해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한 은퇴자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은퇴기 단계에 따른 소비의 감소를 반영하고 은퇴자의 위험감수성향에 따른 적절한 자산배분만으로 선행연구보다 훨씬 높은 인출률로 은퇴소비가 가능 하므로 은퇴준비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목표임을 인지시키고 가능한 빨리 은퇴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무설계사 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당면한 과제이자 의무라고 보여진다.

일정 규모의 생활비는 연금을 통해 확보할 수 있도록 적정 연금가입비율을 설정하여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퇴자산 인출전략은 은퇴자의 삶과 연계되어야 한다. 은퇴자산인출전략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바탕으로 행복하고 의미있는 은퇴 이후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은퇴자산 인출에 대한 설계는 은퇴자가 아니라 비은퇴자들에게 미리 제공되어야 한다


BOSTONIAN (53) 오랜 벗의 죽음을 맞으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심포지엄 4회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강연 중에서 손유경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의 ‘노년의 시간과 견딤의 감각’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발표 중에서 “노년이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견디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 왔습니다.

손유경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노년의 시간과 ‘견딤’의 감각]

손유경 교수님의 논문 중 “죽음을 너무 많이 목격하고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노년의 삶이다”이라는 부분은 어쩌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저의 고등학교 친구들 중 몇명이 함께 대학을 다녔던 어떤 친구의 병문안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의리 있는 이 친구들이 함께 사진을 찍은 맨 끝에 마치 배경처럼 환자복을 입고 주사액을 넣는 관을 손에 낀 채로 V자를 그어 보이며 환우의 얼굴을 보여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얼굴이 검어지고 야위어 져서 이 친구가 누군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댓글을 단 친구들은 마치 모두 그 친구를 안다는 듯이 이름을 얘기하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더욱 이상하게 느꼈던 것은 가족들이 아직 이 환자 친구에게 병 상태를 얘기하지 않았다는 병문안을 다녀온 친구의 전언이었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친구가 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히 애쓴 것인지는 몰라도 사진 상으로는 그리 큰 병에 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퇴원을 해도 될 것 같은 모습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친구는 말기암으로 이미 의료진이 가족들에게는 더 이상 의료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가족들은 정작 환자 본인에게는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 사실을 모르는 환자는 퇴원을 시켜 주지 않는다며 툴툴거렸다고 합니다.

이름이 궁금했지만 저는 이름을 굳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괜스리 한국에 있는 고교친구들에게 외국 사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였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있고 몇일이 지나지 않아서 동기 카카오톡 방에 부고가 올라 왔습니다. 그리고 그 부고장을 보고서야 마침내 이 친구의 이름을 알 수 있었고 저와 절친 중 하나였던 바로 그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입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 수소문 끝에 저와 가장 친했던 초등학교 친구를 어렵게 찾아서 만났는데 그 친구가 다니는 은행에 이 친구도 다닌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를 따로 찾아가서 만났죠. 아마 30여분 정도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참 반가웠고 어렸을 때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저와 이 친구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야 말았군요.

부고가 올라온 후 친구의 장례식과 관련한 메시지들이 오고 갔습니다. 7명의 친구들이 운구를 위해 자원했다는 것, 장례식장에 다녀온 친구들의 사진들 등등

이제 한줌의 재가 된 친구의 유골함이 떠오릅니다.

내가 오늘 사는 이 날은 어떤 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

저는 오늘도 먼저 떠나간 친구의 내일을 살아내며 견디며 그 친구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반가웠다 그리고 편안하길 바래. 종필아.

나의 식이 요법 (4) Diabetes Reversal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저는 요즘 당뇨 역전 (Reversing Diabetes)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삶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당뇨는 완치가 되지는 않지만 과학적인 근거들에 의해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 있는 Dr. Neal Barnard의 책 “Program for Reversing Diabetes”는 당뇨역전을 위한 식단 및 운동 요법에 대한 좋은 지침서로서 저도 최근 주문해서 읽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2019년 Nutrients Review를 링크합니다.

이 리뷰에서는 세가지 방법에 대한 2019년까지의 연구결과를 리뷰한 것인데, (1) bariatric
surgery (비만수술) (2) Low Calorie Diet (LCD, 저칼로리 다이어트) 및 (3) carbohydrate restriction (LC, 탄수화물 억제)입니다. 비만수술보다는 식단조절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좀더 설명을 하면,

저칼로리 다이어트(LCD)에 대한 중요한 임상시험이 있습니다.

  • Look AHEAD trial randomized 5145 overweight or obese patients with T2D (2003)

칼로리 조절과 운동요법을 함께 한 비만 당뇨 환자군 (ILI, intensive lifestyle intervention)과 당뇨 조절/교육 비만환자군 (DSE)과 비교해서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당뇨가 사라진 환자군은 1년, 2년, 4년 후에 각각 11.5%, 9.2%, 7.3%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DSE 조절군에 비해 3-6배 높은 수치입니다.

  • DiRECT (Diabetes Remission Clinical Trial): 인슐린을 맞지 않고 당뇨 진단 후 6년 이내인 306명의 환자 대상 임상시험

3-5개월간 저칼로리 다이어트 (825–853 kcal/day)를 실시한 환자군과 대조군에 대한 비교 시험으로서, 1년 후 46% 환자가 2년 후에는 36% 환자가 criteria of diabetes remission (HbA1c <6.5% without
antiglycemic medications)에 도달했습니다.

위 두가지 임상시험 결과로 보았을 때, 저칼로리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용하면 2년까지는 당뇨 역전을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희박해 진다는 것입니다.

탄수화물 억제 (LC)에 대한 중요한 임상시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LC가 LCD에 비해 Ab1C 수치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LC를 할 때, 체중 감량은 많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UCLA의 내과전문의  Obidiugwu (Kenrik) Duru, MD, MS와 인터뷰 기사가 있습니다.

Can Diabetes Be Reversed? – UCLA Research Spotlight 11/22/2023

Can You Get Rid of Diabetes?

There’s no cure for diabetes and no way to completely get rid of it. However, diabetes can be reversed in most people.

Reversing diabetes means carefully managing blood sugars to a point where medications are no longer necessary, and staying at that manageable point through a healthy routine of diet and exercise.

당뇨 완치는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뇨를 역전시킬 수 있다.

당뇨역전 (Reversing Diabetes) 이란 약복용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까지 혈당을 주의깊게 관리하는 것을 말하며 (1) 건강한 식단 조절과 (2) 건강한 운동 요법을 통해서 혈당조절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How to Reverse Diabetes

In general, addressing the underlying weight issues that led to diabetes can help reverse it.

A focus on eating less separates reversing diabetes from managing diabetes, which doesn’t necessarily involve weight loss. Managing diabetes involves stabilizing blood sugar levels through lifestyle modifications and medications such as Metformin.

“Just as diabetes can be defined as high blood sugars no matter what makes them high, reversing diabetes can be accomplished by eating less via any method, whether it’s personal resolution, medication, or surgery.”

당뇨 역전은 식단 조절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스스로의 결단, 당뇨약 복용 또는 수술을 포함한다.

Are there specific diets and/or foods that are good for people with diabetes?

Fruits, vegetables, fish, lean meats, and Mediterranean diets are healthy for all people, including those with diabetes.

Dr. Duru advises people to eat foods that come out of the earth as they came out of the earth. That includes eating whole apples with skins intact instead of drinking apple juice and choosing brown rice instead of bleached white rice. He adds that eating fiber-rich foods is also a smart strategy because fiber fills up the stomach and keeps it full.

Duru 박사는 음식을 본래대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어, 사과 주스보다는 사과를 먹고 흰쌀밥 보다는 현미를 먹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은 위장에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위의 결과들을 볼 때, 저 탄수화물 식단과 운동 요법을 함께 하면 당뇨 역전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각자의 결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실험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나의 식이요법 (3) Fasting-Mimicking Diet (단식모방식단)과 제2형 당뇨병 개선 가능성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2형 당뇨병이 있으신 분들께 희소식이 있어서 오늘 이렇게 블로그를 쓰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Valter D. Longo 교수팀에서 100명을 대상으로 당뇨의 중요지표인 A1C를 바탕으로 FMD (Fasting Mimicking Diet, 단식모방식단)이 당뇨 상태 (Type 2 Diabetes)를 당뇨전단계 (Prediabetes)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Nature Communications 2024년호에 보고하였습니다.

(Picture: Valter D. Longo, Ph.D. – Professor at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FMD and diabetes risk
Approximately 85–90% of people with type 2 diabetes are affected by either overweight or obesity. We previously showed that three FMD cycles can restore glucose levels in pre-diabetic study participants with
fasting glucose >99 mg/dl (Fig. 2J, N = 13) to a normal range, which was preserved for at least 3 months following the intervention. Here, we used the homeostatic model assessment to measure insulin resistance (HOMA-IR)39 prior to and after completion of the third FMD cycle in pre-diabetic study participants. HOMA-IR was reduced from 1.473 ± 0.85 to 1.209 ± 0.99 (p = 0.046, N = 11; Fig. 2K; −95% CI 0.521 to −0.006), and Hemoglobin A1c levels were reduced from 5.8 ± 0.3 to 5.43 ± 0.404 (p = 0.032, N = 3; Fig. 2L; 95% CI −0.654 to −0.079). Although the number of examined study participants is small, taken together with our previous study these results indicate that the FMD can reduce insulin resistance and help restore normal glucose tolerance in individuals that had fasting glucose levels indicative of prediabetes.

위 그림 중 K는 인슐린 저항성을 나타내는 HOMA 수치가 대조군 1.473 에 비해 1.209 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L은 혈당을 나타내는 A1C수치가 대조군 5.8에 비해 5.43으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이 두 실험결과는 모두 당뇨전단계 (Prediabetes) 인 사람들의 공복혈당을 잰 것입니다.

이 연구논문을 인용한 기사가 있어서 아래에 링크를 달아 드립니다.

한 달에 5일만 ‘이렇게’ 먹어도 2.5년 젊어진다 – 하이닥 뉴스 4/12/2024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레너드 데이비스 노인학대학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eonard Davis School of Gerontology) 발터 D. 롱고(Valter D. Longo) 교수 연구팀은 18~70세 성인 100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단식 모방 식단의 효과를 분석했다.

단식 모방 식단(FMD)이란 발터 롱고 교수가 고안한 식단으로, 한 달에 연속으로 5일간 채소 위주 식단을 통해 △저열량 △저단백질 △저탄수화물 △고불포화지방을 섭취하여 몸이 단식 중이라고 인식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연구진은 18~70세 성인 100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5일간 단식 모방 식단을 실시한 후 25일간 일반 식단을 섭취하는 사이클을 3개월 동안 진행했다. 반면, 대조군은 일반 식단 또는 지중해식 식단을 섭취하도록 했다.

연구 결과, 단식 모방 식단을 3개월간 실시한 그룹은 인슐린 저항성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낮아지는 등 당뇨병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부지방과 간 지방 등 대사증후군 관련 수치도 감소했다. 이러한 노화 관련 지표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단식 모방 식단 그룹은 생물학적 나이가 평균 2.5년 감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저자 롱고 교수는 “단식 모방 식단만으로도 질병 위험을 줄이고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20~70세의 건강한 사람들에게 일년에 2~3회 정도 단식 모방 식단을 시도해 볼 것을 제안했다. 다만, 임산부나 노인에게는 일반적으로 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Valter D. Longo 교수팀은 2017년 Cell 지에 쥐실험을 통해서 FMD (단식모방식단)을 통해 당뇨에서 당뇨전단계로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가 있습니다. 아직 임상시험까지는 결과가 없지만 앞에 보여진 Nature Communications 논문 결과를 비추어 볼 때 장기간에 걸친 임상시험에서 유사한 결과를 보일 수 있지 않을지 주목됩니다.

정양수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한국식 FMD 식단을 개발해서 발표했는데요.

의사 정양수 “먹는 단식 FMD, 한 달에 한 번만 실천하세요” – 채널예스 8/22/2019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연구 주제가 ‘자가포식(自家捕食, autophagy)’이었어요. 내 몸이 스스로 청소를 한다는, 리뉴얼 한다는 건데요. 희한하게도 그게 굶었을 때, 즉 몸이 비워졌을 때 진행됩니다. 또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주제는 생체시계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생체리듬에 맞지 않은 생활을 하면 몸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적어도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는 꼭 자야 하고요. 자는 시간은 최소한 6시간에서 8시간은 확보를 해야 해요.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손에 들린 fmd식단 5일치를 위한 식재료 목록은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울 만큼 빼곡했다.

한국식 fmd식단에 필요한 식재료는 현미밥, 고구마, 고추,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다진 마늘, 당근, 오이, 방울토마토, 브로콜리, 우엉, 무말랭이, 단호박, 양상추, 양파, 아보카도, 숙주, 시금치, 파, 파프리카, 구운 아몬드, 호두, 김, 단무지, 두부, 카레가루, 발사믹, 식초, 설탕, 소금, 식초, 올리브오일, 들기름, 참기름, 간장, 깨 등이다.

[끼니 반란 Ep.04] 먹으면서 하는 단식 모방식단, FMD의 모든 것 | SBS 스페셜

정양수 전문의의 한국형 FMD 식단을 의사 부부를 통해 검증을 하는 재미있는 실험이 SBS에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물단식을 하고 남편은 FMD 단식을 했는데요 아내는 5일째에 포기하고 맙니다.

반면 남편 의사분의 경우는 혈당은 낮아지고 지방의 분해물질인 케톤수치는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는 Valter D. Longo 교수와 지속적으로 논의를 하였습니다.

California center for functional medicine에서는 FMD에 대한 자료를 공유했습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62) Empty Nest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 주는 저희 가정에서 매우 중요한 인생여정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것은 바로….

Empty Nest

가 된 날입니다. 우리 막내딸이 대학 진학을 하고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 부부는 마침내 둥지를 비우게 (Emtpy Nest) 되었습니다.

큰 딸보다 거의 8살이나 되는 나이 차이로 막내딸을 얻었을 때,

과연 이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온전히 지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부터 20년 가까이가 흐른 후 마침내 첫번째 등록금을 보내면서 막내의 4년간의 대학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으로 바라기는 4년간 무탈하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장 먼저는 저의 직장과 건강이 허락되어서 대학을 졸업하는 그 날까지 온전히 등록금 걱정 없이 우리 막내딸이 기쁘고 즐겁게 대학 학사학위를 받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아이도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잘 선택하고 그 전공으로 학사학위과정을 잘 마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잘 후원하기 위해 6개월 마다 돌아오는 등록금 수납을 잘 해야 겠지요. 그리고 열심히 등록금 체크를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막내의 대학 졸업식이 다가오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큰 아이는 사실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2년의 대학 생활을 다하지 못했어요. 많이 아쉽죠. 특히 졸업식에 부모가 오지 못하고 당사자들만 올 수 있다고 학교에서 정하는 바람에 저희 가족은 큰 딸의 대학졸업식을 함께 하지 못했고 이후에 학교에서 보내 온 학위증만이 저희 집 한 켠에 자리잡고 있을 뿐입니다.

막내딸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봅니다.

아이의 기숙사는 혼자 쓰는 방을 배정 받았는데 가구를 재배치 하고 나니 방이 꽤 컸습니다. 새로 산 작은 냉장고와 수납을 위해 IKEA에서 산 몇개의 가구를 조립하고 잘 배치하고 나니 근사한 방이 되더군요.

처음에는 아이의 기숙사 방이 작다고 하고 비디오로 봐도 작아서 많이 염려를 했는데 막상 아이의 기숙사 방은 작지 않았고 꽤 괜찮았습니다.

아이와 헤어져서 기숙사로 돌려 보내고 아내와 함께 차를 돌려서 집에 오고 나니 이제야 빈 아이의 방이 보입니다. 몇달 동안은 이 방이 비어져 있게 되겠죠.

그 때까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각자의 삶을 잘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mpty Nest가 된 후 처음 몇일간은 조금 쓸쓸한 느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특히 아내는 아이의 학교에서 돌아온 여독과 집안 정리 및 청소 등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감정적으로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평상시 친구들과 일주일에 두차례 정도 치고 저와도 주말에 한번은 치니까 운동 겸 취미 생활은 하고 있고요. 또한 새롭게 일을 하려고 이미 Job apply도 하고 인터뷰도 곧 하게 될 것 같은데 그러한 일자리가 생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제는 뭔가 나를 위해 좀더 투자를 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Empty Nest Syndrome이라는 정신적인 우울증 같은 심리적 병증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까지 가지 않으려면 아이를 기르는 삶을 벗어나서 이제 부부와 친구 그리고 가족의 울타리를 확장하면서 더 큰 나만의 삶의 지경을 넓혀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큰 딸 부부가 집에서 가까이 살고 있어서 정서적으로는 서로 의지가 되는 것 같기는 하네요. 막내딸도 나중에 주위에 함께 살면 좋겠다고 아내가 그러더군요.

하지만 인생이 우리 뜻대로 어디 되던가요?

알지 못하는 미래가 펼쳐질텐데 이럴 때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In God We Trust!!

부러우면 지는거다 (56) 이순국님: 전 신호그룹 회장, 체육박사, 의학박사, 노년학/종교학 공부 계획, 매일 2-3시간 규칙적 운동 습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한국의 30대 재벌기업 중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신호그룹 회장이었던 이순국님은 회사를 정리한 후 68세에 일본 여행 중 갑자기 닥친 협심증으로 쓰러진 후 다시 재기하며 체육학 박사학위와 의학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노력의 결과였죠.

“일흔 넘어 운동하니 키도 크더군요”…81세 ‘몸짱 할아버지’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8/13/2023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81)의 인생 후반전은 68세에 시작됐다. 일본 여행 중 협심증으로 쓰러진 게 계기였다.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그가 마침내 ‘운동할 결심’을 했다.

이후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신체 개조를 단행했다. 이론공부에도 뛰어들어 74세에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체육학 석사, 76세에 상명대에서 체육학(운동생리학) 박사, 81세에는 순천향대 의대에서 의학박사(예방의학)를 취득했다.

무작정 열심히 운동하려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고령자에게 적절한 운동이란 무엇일까. 운동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서울과학기술대 스포츠과학과 대학원에 입학, ‘고강도 저항성 운동이 남성 고령자의 신체 구성 및 활동 체력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위해 필리핀에 가서 사람들을 모아 3개월간 운동시킨 뒤 골밀도 등 신체변화 데이터를 비교했다.

이어 ‘저항성 운동 강도가 남성고령자의 신체 구성, 체력 및 산화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2018)’을 주제로 상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는 광주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3개월간 운동을 하게 한 뒤 혈액검사 등을 통해 체내 활성산소의 변화양상을 연구했다.

-2월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운동의 효능을 의학적으로 보면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답을 찾고 싶었어요.”

그는 격일로 아침에 1시간 정도 조깅을 하고 매일 오후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근력운동을 한다. 그에 따르면 근육은 72시간까지 운동을 기억한다. 그래서 72시간이 넘기 전에 다시 해당 근육을 운동시켜줘야 한다.

그는 몸의 근육부위를 크게 6개로 나눠 하루 두 군데씩 2시간, 3일간 돌아가며 운동해주는 방식으로 몸 전체의 근력운동을 이어간다. 이렇게 운동을 시작한 이래 십여 년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감염되지 않았단다.

“제가 운동에 열심인 것은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 대한 책임을 자기가 져야 한다고 알리고 싶어요. 내가 몸져눕거나 병원을 내집처럼 드나들면 가족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게 되지요.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급적 오래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추는 것은 자신은 물론, 가족과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예요.”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혼자 노저어 서해로 가는 사람을 그린 겁니다.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저는 65~70세에 전반전을 끝낸 뒤 혼자 서해바다를 향해 마지막 항해를 하는 게 후반전이라고 봐요. 서해로 간다는 건 죽으러 가는 건데, 그걸 자기 힘으로 가자는 거죠. 혼자 노를 저어 바다로 가라. 노인이 되면 그런 주체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체육·의학 박사 딴 80代 몸짱…”다음 공부목표는 노년학” – 한국경제신문 7/6/2023

이 전 회장이 박사 학위를 딴 것도 운동과 연관이 있다. 석사 논문은 ‘고강도 저항성운동이 남성 고령자의 신체구성 및 활동체력에 미치는 영향’이었고 박사 논문은 ‘8주간 저항성운동의 강도가 남성 고령자의 신체구성, 체력 및 산화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그는 “논문 연구를 위해 베트남에 가서 실험을 했고 체육학에 이어 의학 박사도 자연스럽게 취득하게 됐다”고 했다. 의학 박사 논문도 ‘신체활동과 건강 관련 삶의 질과의 연관성에 대한 메타분석’ 연구였다.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건강을 유지하고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운동을 매일 하기 어려운 직장인들에게 조언해달라고 하자 “젊을 때 1순위는 건강이 아니어도 된다”고 했다. “젊은 시절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야 할 때”라는 설명이다. 이 전 회장은 “내 정체성은 ‘80대 몸짱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매일 그렇게 운동을 하는 것”이라며 “다만 운동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주 2회 이상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80대엔 노년학을 공부하고 90대엔 종교학을 연구하면서 저승 갈 준비를 할 것”이라며 웃었다. 좌우명이 ‘YCDNSOYA’(You can do nothing sitting on your armchair: 안락의자에 앉아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이 전 회장은 “행복한지 아닌지를 요즘 사람들이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행복한가 같은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자신의 정체성대로 그저 살아가는 겁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55) 사토 도미오 (佐藤富雄)님: 57세에 대학입학, 경제학 학사, MBA, 의학박사, 이학박사, 농학박사가 된 작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의료 과학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IT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지금 우리는 과거 왕들도 누릴 수 없었던 장수 (長壽), 대학/대학원 플랫폼, 편리한 교통, Health Clubs 그리고 SNS (Social Network System) 등 다양한 편의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에는 N잡러가 가능해지고 Digital Nomad라고 해서 세계를 여행하면서도 세상과 쉽게 소통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문명의 이기 (利器) 를 잘 이용하고 활용하면 우리 부모님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활력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적어도 한 세대 (30년) 정도가 더 생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일하는 시간도 예전 보다 늘려야 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래 고등학교에서 문과/이과를 정할 때, 문과를 가서 법대를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는데요 아버지의 반대로 저는 이과에 진학을 했고 그 결과로 이렇게 과학자로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수성가를 하려면 이과에 가서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낫다는 아버지의 깊은 뜻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어렸을 때의 일일 뿐이고 제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의 나는 나의 꿈대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과는 문사철 (문학, 사학, 철학)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이 중에서 문학을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미 철학박사 (Ph.D. – Doctor of Philosophy) 인 이유도 있고요. ㅎㅎ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찌저찌해서 일본에서 이미 한 세대 전에 이런 것을 해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토 도미오 (佐藤富雄)

은퇴 할 나이인 57세에 사토는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경제학 학사를 받고 경영학 석사 (MBA)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60대에는 의학박사, 이학박사, 농학박사의 세가지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학과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사진에 대해 공부하게 됩니다. 몇권의 책을 내고 사토 도미오는 70대에 강연을 다녔고 80대에는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갑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한 9가지 인생설계 – 평생학습] 공부하는 삶이 아름다운 이유 – 윤영걸

1932년생인 사토 도미오는 올해 나이 92세이시고 그는 100세 시대의 롤모델로 한국 언론에도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긴 노년기 준비…”끊임없는 공부와 배움이 최선” – 헬로디디 10/20/2009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 58년 개띠의 공부도전기 (25) – 짱구아빠

57세 사토시의 공부편력기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사토 도미오

BOSTONIAN (52) 대동단결선언: 1910년에서 1919년 사이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이 된 과정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대한민국 광복절과 관련해서 몇일 전에 일본인으로 경성제대 (지금의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 교수가 항일 운동에 함께 한 내용을 블로그에 썼습니다.

BOSTONIAN (51)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항일 운동에 가담한 경성제국대학 일본인 교수

저는 먹물 특성 상 논문을 바탕으로 결론을 추론하려고 노력하는데요. 한가지 저의 오랜 궁금증이고 그동안 애매하게 남아 있던 의문점에 대해 좀 알고 싶어서 제가 찾아볼 수 있는 한도에서 문헌 몇개를 찾았고 그에 대해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제가 궁금해 했던 점은 바로

1910년에 대한제국의 전제군주제로 부터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로 변하게 된 과정

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조금 해결해 줄 수 있는 논문 두가지가 있어서 글로 제가 알게 된 것을 블로그로 남기려고 합니다.

첫번째 논문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종익 교수의 2917년 논문으로 제목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이전 정치체제 구상 – 1910년대 군주제와 공화제를 중심으로‘입니다.

이 논문에서 중요하게 배우는 점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1910년부터 1917년경까지 입헌군주제 형식의 망명정부 수립 노력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 망명정부 수립에 힘쓰던 이상설 등이 사망하게 된다.
  • 중국 신해혁명의 영향으로 공화제에 대한 새로운 의식 변화가 일어났다.
  •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서 민주공화제가 선언되고 이것이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두번째 논문은 University of California at Riverside의 장태한 교수의 2021년 논문으로 제목은 ‘민주공화제의 미국발 계보: 대한인국민회와 <대동단결선언>‘입니다.

이 논문에서 말하는 중요한 점은

  •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샌프란시스코 리버사이드에 최초의 한인기구가 설립되었다.
  • 대한인국민회는 미국 이민국으로 부터 정식으로 인정을 받아 한인들이 일본의 영향에 있지 않고 독자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자유로운 독립운동이 가능하게 했다.
  • 대한인국민회의 민주공화제가 1917년 대동단결선언에 실리게 되었다.
  • 대동단결선언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대동단결선언문서> 등 2건 문화재 등록 – 우리문화신문 12/8/2015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대동단결선언문서>와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고종황제 하사 족자>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였다. 

이번에 등록된 등록문화재 제652호 <대동단결선언문서>는 신규식, 박용만, 조소앙 등 해외 독립운동가 14명이 통합적인 독립운동조직을 결성하려는 뜻을 가지고 민족대회를 소집하기 위해 1917년 7월 국내외 민족 운동가들에게 작성한 한글과 한문으로 된 문서이다. 독립기념관이 1985년경 도산 안창호의 딸인 안수산에게 기증받아 소장하고 있다. 

위의 두 편의 논문을 보고 그 이전 논문들을 인용한 내용을 보니 사실 저의 궁금증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발표된 것은 아주 최근이었습니다. 그 뜻은 아직도 새롭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동단결선언>에서는 1910년 8월 29일 강제병합으로 황제권이 포기했고 대한민국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로 보고 있습니다.

“융희황제가 3보(토지.인민.정치)를 포기한 8월 29일은 즉 우리들 동지가 3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이 때 순간도 멈추거나 쉼이 없음이라. 우리들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그(융희)의 황제권 소멸의 때가 즉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 최종의 하루는 즉 신한국 최초의 하루이니, 어찌 연관 없겠는가. 우리의 한은 처음부터 한인의 한이오, 비한인의 한이 아니라.한인간의 주권수수는 역사상 불문법(명실상부의 뜻)의 국헌이오. 비한인에게 주권 양여는 근본적 무효요, 한국민성(한국민의 성정)의 절대 불허하는 바이라, 고로 경술년 융희황제의 주권 포기는 즉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권위를 양도함)이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3보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또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있도다

1917년에 제정된 <대동단결선언>의 글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주권은 1910년 8월 29일 순종의 주권포기와 함께 전제군주제가 포기되었고 ‘민주공화제’로 상속된 것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3.1 운동의 결과 민주공화제가 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보니까 그 이전부터 미국 민주공화제, 중국 신해혁명 그리고 러시아의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등으로 전제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제로의 자연스러운 의식 전환이 있었고 그러한 결과가 바로 2017년 <대동단결선언>으로 나타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부터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민주공화제가 다시 한번 명시되었고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헌번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된 것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노력을 해 주신 두분의 교수님들과 도산 안창호 선생님 가족들 그리고 선열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54) 김광성님: 14년째 대학생 72세 방송통신대학생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어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심포지엄에서 하는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주제에 대한 서울대학교 국문과, 중문과, 철학과 등 교수님들의 주제발제를 Youtube에서 들었는데요 고전에서도 ‘노년 혹은 나이듦’에 대해 이미 다루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다양한 나이듦의 모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나이드는 모습이라면 ‘배우면서 나이들어 감‘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요.

오늘 소개할 부러우면 지는거다의 주인공은 공고를 졸업하고 평생 감정평가원에서 부동산 감정평가 업무를 하시다가 퇴직 후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학사학위 과정을 공부하시는 김광성님입니다.

14년째 대학공부를 하시고 계신데 이미 학사학위가 여러개 있으십니다.

“공부하는 노년, 강추합니다” 71세 김광성 씨가 13년째 대학생인 이유는[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4/8/2023

71세 김광성 씨는 13년 차 대학생이다.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에서 32년간 근무하고 58세에 정년퇴직했다. 그 이듬해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문화교양학과 2011학번이 됐다.

4년 뒤 순조롭게 대학 졸업장을 받았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곧바로 국어국문학과 2학년에 편입했고, 같은 식으로 미디어영상학과를 거쳐 지금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공고를 나와 정년까지 일만 해온 그에게 ‘공부’는 평생 키워온 갈증이자 언젠가를 위해 아껴둔 달콤한 즐거움이었다.

퇴직할 즈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남아 있는 많은 시간, 뭘 하고 보낼지가 발등의 불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봐도 먹고사는 것은 웬만하면 해결되는데, 오히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할지가 심각한 고민이 됩니다. 사실 자식 농사 끝나고 나면 큰돈 쓸 일은 별로 없지요. 그때 생각해 낸 게 평생 공부입니다. 심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겠다… 가족도 적극 찬성해줬습니다.”

은퇴자의 대학 도전이 쉽기만 했던 건 아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지요. 대학에 입학한 첫해부터 틈날 때마다 도보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였지요.”

전국의 해안선을 따라 약 1600km를 5년간 시간나는대로 혼자 걸었다. 한 번에 3~4일, 혹은 일주일씩. 총 40일 걸렸으니 하루 약 40km를 주파한 셈이다.

그는 노년의 공부는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하는, 인생을 위한 공부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장점으로 젊어지는 효과를 꼽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탈(脫) 꼰대’ 효과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며 젊은 세대와 접촉하다 보면 시대의 조류를 알고 세상과 좋은 접점을 유지하게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방송대 홍보단에 들어가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고 스터디나 동아리 활동, 신입생과 다문화 학우들의 멘토 역할 등에 적극 참여하며 뒤늦은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부동산 자산관리 강의나 글쓰기 강좌를 열어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방송대 1년 등록금은 약 75만 원(공대는 200여만 원). 성적 상위 7%까지는 전액, 20%까지는 반액 장학금을 수여한다. 그는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첫 졸업 논문인 ‘나는 문화교양을 학습하며 행복해졌는가’는 학과 우수논문으로 선정됐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그에게 행복은 품격 있는 삶을 위해 지성과 품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이고 문화 교양에 대해 공부하는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결론이 아니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소소한 행복, 요즘 말로 ‘소확행’이소중하죠. 인간은 행복한 순간에 행복을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불행이 닥쳐야 비로소 과거의 작은 행복을 되돌아보지요.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려면 이성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해요. 아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는 공부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7년 전 다시 상근직 일자리를 얻었다. 감정평가법인의 상임고문이자 자회사인 부동산중개법인의 대표를 맡아 9시 출근, 6시 퇴근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다시 직장을 갖게 된 비결도 공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공부를 계속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따라갈 수 있었지요. 이 나이에도 다른 세대와 교감할 수 있고 새로운 정보화 문물을 잘 구사할 수 있고요. 제 나이에 컴퓨터 기기 제대로 못 만지는 분들 많잖아요. 취업해서 역할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지요.”

특히 성 역할이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시각 교정은 그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 여느 가장처럼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는 꼰대 스타일이었지만 요리와 살림을 도맡겠다고 나섰다.

“마침 손주가 태어나 아내는 그 수발드느라 바빠진 탓도 있었지요. 30여 년간 아내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했는데, 그때부터 해도 다 갚지 못할 것 같더군요. ‘앞으로 밥은 내가 해준다’고 선언했습니다.”

공부를 통해 시대의 조류를 알고 저 스스로 과거의 잘못된 행동 양식을 깨닫고 깨우치는 겁니다. 나이 먹으면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 거예요. 그렇게 배운 삶의 지혜는 바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노년의 공부는 일상을 바꿉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나이 들어 공부할 때 가장 큰 고민이 돌아서면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나이 든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게 방송대 강의입니다. 오프라인 수업이라면 교수님 강의를 놓치면 다시는 못 듣죠. 하지만 저희 학교 강의는 본인이 부지런하다면 언제 어디서건 다시 듣기를 할 수 있어요. 요 작은 휴대전화 하나만 있으면 교수님을 불러낼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가 없어요.”

방송대 강의는 한 학기 평균 6과목을 듣는데 과목당 대략 15시간의 강의로 이뤄진다. 단순 계산으로는 한 학기 90시간을 듣는 셈이다. 그는 초기에는 모든 강의를 5번 씩, 요즘도 3번씩은 돌려보며 복습한다고 한다.

“‘공부하는 노년’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제가 해온 여러 선택 중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꼰대죠(웃음). 그냥 저는 그랬다는 거예요.”

시대 변화에 따라 지식은 끊임없이 변하고 낡아간다. 그는 전공에 따라 8년에서 12년이면 지식반감기를 맞는다며 평생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노후 필요 자금에 대해 금융계나 미디어가 너무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살림하며 보니 제 경우 부부 생활비는 월 200만원 정도면 충분하더군요. 연금에 약간의 추가 수입을 확보하면 되는 거죠. 또 하나, 노후에는 있는 재산에 맞춰 사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다 살길이 있어요. 4050 시절에 자산을 뻥튀기해두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공포감은 조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는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꺼내 놓았다.

톨스토이의 유작 잠언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서 제가 얻는 성찰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영혼에 대한 믿음, 끝없는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몸을 겸손하게 낮추어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편안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 별거 있나요. 하루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거예요.”

BOSTONIAN (51)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항일 운동에 가담한 경성제국대학 일본인 교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8월 15일은 한국의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한국 (조선)은 광복을 맞게 되었고 내년은 광복 80주년이 됩니다.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수많은 분들이 우리의 마음에 계시죠. 상해임시정부,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 조당 조만식, 몽양 여운형 그리고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등 너무나 많이 계시죠.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조선을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했죠. 그 선봉에 선 곳이 지금의 서울대학교인 경성제국대학교 였습니다. 경성제국대학교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이를 위해 조선의 정체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앞선 곳이 경성제국대학교 경제학부이고 시카타 히로시(四方博)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당화 하기 위해 많은 통계와 자료를 수집하고 이론화 하는 일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경성제국대학의 이런 논리에 맞서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과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 상학부에서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교수들과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한국인 교수들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 한국독립을 위한 경제 이론을 위해 애썼고 흥업구락부나 조선어학회 등에도 관여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좋은 연구 자료가 있습니다.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상과대학 교수들이 어떻게 경성제대 경제학 교수들의 논리에 맞서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논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경성제국대학교 법학부의 일본인 교수인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가 조선인 항일운동가를 사택에 숨겨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植民기획 부정한 지식인… 미친놈 취급받으며 불행 감내 ⑭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1899~1982) – 한국교육신문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10/7/2019

식민 지배의 최전선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그로서 교사의 최정점에는 경성제국대학의 교수 집단이 위치하고 있었다. 1926년 개교 당시 25명에 불과했던 이들은 일제 말기까지도 법문학부 60명을 포함해 200명에 못 미치는 소수였지만 ‘국가수요(國家須要)의 학술’을 표방한 이들은 식민 기획의 이념을 창출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며 그와 명운을 함께 했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학부인 경성제국대학의 교수 신분으로 조선의 민족운동과 혁명운동에 가담한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는 이러한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교수로 부임한 것은 1927년 4월이었다. 이 대학에서 그는 법문학부 2회인 이강국(李康國)과 박문규(朴文奎), 최용달(崔容達) 등 조선인 학생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유물사관과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친 그는 이들이 만든 마르크스 사회과학 연구모임인 경제연구회의 지도교수를 맡았다.

이처럼 반제운동과 조선인의 민족해방운동에서 열렬한 활동을 하던 미야케는 당시 유명한 혁명운동가인 이재유를 자신의 동숭동 교수 관사 지하에 토굴을 파 37일 동안 숨겨준 일을 계기로 1934년 5월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검찰에 송국돼 예심이 시작된 직후인 1934년 6월 그는 대학으로부터 휴직 처분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7개월 후인 1935년 1월 면직됐다. 1934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 및 범인 은닉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그의 아내인 히데도 이재유를 숨겨준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같은 해 5월 24일에 취조를 받고 기소유예에 처해졌다. 석방된 이후에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일제 경찰의 지속적인 내사에 시달렸다. 
 

미야케가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그녀는 경성제대 졸업생으로 미야케의 제자인 최용달 등의 도움으로 쌍림동(당시 병목정)에서 고서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1934년 11월에는 조선인 운동자인 김윤회의 배려로 명동(당시 명치정 2정목)에서 ‘가메야(龜屋)’라는 고서점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전술한 이종률도 그의 아내에게 2000원의 자금을 전달하는 등의 형태로 적극 후원했다. 

출옥 이후에 그는 아내가 경영하던 고서점을 정리하고 1937년 1월에 일본으로 돌아가 고물상(자동차 해체업)과 신문판매점 등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는데 특고(特高)의 감시는 패전까지 계속됐다. 

‘사상사건’으로 투옥된 유일의 경성제국대학 교수로서 이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그것도 대학교수라는 지위에 있던 인물이 사상사건과 관계해 투옥된 희유의 사건”이었다.  

조선에서 그가 보낸 시간이 10년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치러야 했던 가혹한 대가와 지배 블록의 보복은 어둡고 암울했던 식민지 시기의 실상, 파시즘과 제국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의 일로 다른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들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국의 식민지 현실이 암담했으면 총독부 산하의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마저 도움을 주려 했고 또 그런 도움으로 이 가족이 평생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요?

그리고 일본인 교수마저 이렇게 어려움을 당했다면 당시 조선인의 고통은 더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순국하신 우리 선열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