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IAN (49) Presentation at Yonsei University K-NIBRT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에서 한달간 안식년을 보내는 중 7월 중순에 뜻깊은 일을 했습니다. 연세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K-NIBRT 사업단에서 60여명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여러나라에서 온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오픈톡이라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기사가 났습니다.

모더나·연세대 K-NIBRT 사업단 “mRNA 응용 방향 공유” – 뉴시스 송연주 기자 7/11/2024

[서울=뉴시스] 모더나와 연세대학교 K-NIBRT가 mRNA 오픈톡 세션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모더나 제공) 2024.07.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연세대학교 K-NIBRT 사업단(한국형 바이오공정인력양성센터)과 지난 10일 K-NIBRT 바이오공정 교육생을 대상으로 ‘mRNA 오픈톡’ 세션을 열고 mRNA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의 의학 응용 방향성을 공유했다고 11일 밝혔다.

연사로 나선 모더나 글로벌 공정 화학 부문 임진수 박사는 ‘불가능을 넘어선 여정’이란 주제로 팬데믹 이전의 mRNA 연구개발부터 코로나19 대응 백신 개발 과정과 미래 의학을 바꿀 mRNA 의약품의 가능성에 중점을 뒀다. 임 박사는 2015년 모더나 본사에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로 입사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mRNA 백신 개발에 참여했다.

임 박사는 10년 이상 mRNA 연구에 매진한 모더나의 플랫폼을 소개하며 mRNA 기술의 유연성은 단 65일 만에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양한 질병에 대한 m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동시에 미래 팬데믹에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 “이번 산학협력 사례가 국내 mRNA 기술 분야 전문성을 높이고 세계 공중 보건에 기여하는 전문가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감사하게도 저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은 연수생 중 한 분이 소감을 Linkedin에 올려 주셨습니다.

Jessie Lin Hui Li, Senior Principal Assistant Director at National Pharmaceutical Regulatory Agency, Ministry of Health,Malaysia

It was an inspirational sharing by the technical expert, Dr Jin Lim from Moderna about Moderna mRNA technology and how they have come so far climbing the mountain during the pandemic. Moderna transformed from a small company of 300 employees to a robust organization of over 5,000, meeting the pressing global demand for vaccines.

Dr Jin Lim mentioned that they couldn’t sleep during the pandemic, rushing through the vaccine development pipeline in 9 months — a process typically takes 10 years! Once again this reminds all of us that behind every challenge, there are great unsung heros working tirelessly to accelerate public health solutions.

Thank you Moderna team for all the hard work and meaningful engagement with us at K-NiBRT, Yonsei University.

그리고 저희 회사의 Senior Vice President께서 저의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Patrick Bergstedt, SVP at Moderna

A few days ago, Moderna Korea, represented by my esteemed colleague Dr. Jin Lim, hosted a ‘Moderna mRNA Open Talk’ session for Yonsei University Korea National Institute for Bioprocessing Research and Training (K-NIBRT).

This event provided an invaluable opportunity for K-NIBRT bioprocessing students to delve into the world of drug development through hashtag#mRNA technology and explore its potential future applications in various medical fields.

Dr. Lim eloquently shared Moderna’s decade-long dedication to mRNA platform research, emphasizing the remarkable agility of mRNA technology. Notably, this platform enabled us to initiate clinical trials for our COVID-19 vaccine in just 65 days. Today, we are leveraging the same platform to pioneer innovative mRNA therapeutics across a wide spectrum of diseases.

Dr. Lim’s insights deeply resonated with the audience: “Collaborative efforts between industry and academia, such as those between Moderna and K-NIBRT, will enhance expertise in the domestic mRNA technology field and help foster experts who will contribute to global public health.”

Such partnerships are essential for advancing scientific knowledge and improving public health. A heartfelt thank you to Yonsei University K-NIBRT, Moderna Korea, and all the participants for making this event a resounding success!

Moderna를 대표해서 연세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바이오 공정 교육생들과 교수님들을 위해 백신 개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오신 교육생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모습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고 더욱 열심히 일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고해 주신 연세대 관계자 분들과 모더나 코리아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Career Coaching (34) 과학자의 진로 탐색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달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명의 과학전공자들로 부터 커리어 코칭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박사학위를 받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었고 또 다른 한 분은 생명공학 4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으로 현재 인턴을 하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두 분과 일주일의 시간차를 두고 온라인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두 분 모두 공히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하기 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과거에 가졌거나 최근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코칭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답을 얘기하는 멘토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남이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질문을 하기 보다는 저의 사례를 나눔으로 통해서 좀 생각을 해 보도록 이끌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은 장황하게 얘기를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저 자신을 오픈하는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죠. 그리고 코치나 멘토라고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이지 완성된 사람이 아닌 건 맞고요. 다만 의뢰인의 상황을 들어보고 그에 맞는 과거 사례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정도는 얘기를 해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서 저 스스로 생각으로는 의뢰인들이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는 느낄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격려를 통해서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드리고 싶었고 주저하지 말고 한발짝 더 앞으로 내딛고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실어서 저의 응원을 보냈습니다.

코칭이 되었든지 멘토링이 되었든지간에 누군가의 인생의 어느 순간에 결정을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항상 쉽지 않습니다.

저도 과거에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서 지금이 있게 되었습니다. 저와 상당한 의뢰인들도 실수와 실패를 딛고 나아가서 나중에 누군가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램을 갖습니다.

Bucket List (42) 과학 사상가 (Scientific Thinker)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사유를 존중하는 서양식 사고방식에서 나온 학문 중 하나가 철학 (Philosophy)이라고 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사유하는 사람을 철학자 (Philosopher)라고 하지요. 저도 한동안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철학자의 책들도 읽고 시간을 내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자와 철학자의 책이 주는 유용성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다양한 사유와 오랜 고민의 결과로 부터 일반적으로 평소에 생각하지 않은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철학도 물론 이런 두뇌의 사고훈련이라는 입장으로 중요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과거 철학은 권력자의 편을 옹호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대중을 굴복시키는 데 이용되곤 했지요. 한 때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라는 이야기도 했던 만큼 철학은 단순히 생각을 하는 도구학문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권력을 한군데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서 더이상 철학적 사유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은 좀 사라진 상태입니다. 권력을 옹호한 것은 공자, 맹자를 위시한 동양철학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서양철학에서 공히 유사한 것 같고요 그 이후의 동/서양 철학도 조금씩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큰 조류에 있어서는 결국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철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제가 추구할 분야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에 “사상가 (思想家, Thinker)”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사상가는 한자나 영어에서 보듯이 ‘생각하는 사람,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을 보면 사상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턱에 손을 괴고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죠?

저는 이 중 “과학 사상가 (Scientific Thinker)”가 되는 것에 대해 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과학 사상가는 주로 과학적 현상을 대상으로 과학적 사고를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학과 기술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요즘 보다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과학에 대해 보다 깊은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차산업이나 인공지능, 생명공학 혁명의 시대라는 명칭 등으로 작금의 과학기술문명이 과거에 없이 급진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언론의 조명이 시도 때도 없다 보니 많은 분들이 과학 기술에 대해 너무 맹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7, 18세기 산업혁명이 그러했고 20세기의 자동차나 항공 산업도 당시로서는 너무나 획기적이었지요.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시간이나 강도는 오히려 늘어났고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요. 최근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등장해서 우리의 삶의 질이 늘었는가? 하면 어쩌면 우리가 보다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삶의 질이 더 나빠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은 또 어떨까요? 인공지능이 미래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깡통 (Artificial Stupidity)이죠. 기계가 내놓는 많은 답변들은 여전히 정확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공지능을 위해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좀 장황하게 되었지만 저는 과학을 과신하거나 맹신하는 것을 매우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과학은 불가지론 (Agnostic), 즉 ‘아무 것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 학문으로 현재의 사실들이 언제든지 뒤집어 질 가능성이 있는데요. 과학적 발견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어리석음의 늪으로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제가 오랜동안 일하고 있는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에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내용은 현실적인 한계를 거의 담지 못하는 것 같은 인상이고 아직 확인되지 못한 환상만 심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오류성과 함께 과학을 이해할 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특히 생명 윤리와 같은 과학 윤리 현상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다양한 생각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과학 사상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9) 이달호, 전태연 부부: 경북 김천시 마고실 마을의 초등학교 1학년 부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4년 7월의 끝자락을 넘어 8월로 넘어가는 보스턴의 날씨는 마치 초가을을 연상하듯 다소 시원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직도 기온은 높은 편이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인지 긴팔, 긴바지를 입고 나서도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7월을 인생의 70대, 8월을 인생의 80대라고 생각하면 어떠할까? 그 인생을 을씨년스럽게 느낄까? 아니면 그 인생을 핫 (Hot) 하다고 느낄까?

오늘 소개하고자 하고 제 마음속에 저장하고픈 ‘부러우면 지는거다 49호’의 주인공은 이달호 (81세), 전태연 (71세) 부부이십니다. 이 두분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 2024년 7월 22일부터 7월 26일까지 방영된 ‘할매요, 학교 가재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분은 모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경상북도 김천시 마고실마을에서 담배농사를 지으며 4녀1남의 5남매를 모두 전문대 이상부터 대학원까지 공부를 시키신 분이십니다. 이 분들은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가 학생들의 감소로 인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어린 학생들 대신 초등학교에 입학한 15명의 시니어 분들 중 두분이십니다.

이달호 (81)님은 10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동냥을 하며 어렵게 끼니를 얻어가며 살아야 했고 그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글을 읽으시고 쓰실 수 있습니다. 이달호님은 성실하게 마을을 섬기며 사시다 보니 이장도 하시고 감사패도 받으시고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신 적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자신에게 없는 ‘졸업장’이 평생 자신의 마음을 꾸욱 누르는 돌덩어리처럼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태현 (71)님은 가난한 집의 맞딸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이 그렇듯 딸은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한 식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자체를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무식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그런데 이달호님이 자신이 훗날 세상을 떠날 때를 대비해서 아내가 혼자서도 살 수 있으려면 읽고 쓰는 정도는 배우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아내와 함께 입학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이 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밭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밭일을 하고 씻고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합니다.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하기 전에 먼저 밭일을 마저 해야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약간 주어집니다. 그것 마저도 하루일과로 지친 나머지 쓰러져 잘 때가 많습니다.

이달호님의 소원과 목표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87세가 되셔야 졸업장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한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수, 과학, 사회 등등 다양한 과목을 고루 마쳐야 하죠. 이달호님께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달호님은 꼭 졸업장을 받고 나서 온가족들과 함께 밥 한끼 함께 먹는게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고 하며 허허 웃으십니다.

전태연님의 목표는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글을 모르니 그동안 자녀들의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서 전화번호 숫자로만 간신히 큰딸에게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아직도 한글 실력이 완전치 않으십니다. 받침이 문제입니다. 받침이 없으면 그래도 읽을 수 있는데 받침이 있으면 많이 어렵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하고 받침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기 위해 5남매를 모두 도시로 보냈습니다. 한글을 잘할 수 있게 되면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겠죠?

최근 자녀들이 자신들의 카톡방에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초대한 후 딸들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글 공부를 이제 시작한 엄마를 배려해서 인사말은 아주 짧습니다.

이달호님이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똑같은 말을 마음을 꾹꾹 담아 몇번을 고쳐 쓰다보니 5, 6번을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몇줄 안되는 편지를 다 쓰고 봉투에 고이 넣어서 바지 주머니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식당을 하는 처제네 집에 갔다가 식당 시간을 피해서 서둘러 나온 뒤에 시간이 조금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금오산에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그리고 산의 한켠에 놓인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쉬는 중에 슬며시 편지를 건넵니다.

아내는 아직 그 편지를 제대로 읽을 실력이 되지 않아 남편의 목소리로 다시 듣습니다. 남편은 밀려오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어렵게 편지를 읽어 줍니다. 아내의 눈가도 촉촉해 지고 남편의 눈가도 촉촉해 집니다. 그리고 함께 다짐합니다. 이제 이렇게 편지를 쓰자고….

내가 쓰는 나의 삶 (57) 교환일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4년 7월도 다음주면 끝이 나고 곧 8월로 들어가게 되는군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달간 한국으로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시차적응도 하고 밀린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간동안 한국에서 사 온 책들을 열심히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 것 같습니다. 다행히 (?) 좋은 책을 잘 고른 탓에 책 읽기는 아주 즐겁고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사 온 책들의 독후감과 감상을 언제 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먼저 구입한 책 9권 전권을 읽은 이후에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책들이 어떤 면에서 제가 현재 생각해야 할 일들 혹은 생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책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한권씩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 보다는 이번에는 9권 전권을 읽고 함께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엔도슈사쿠의 ‘침묵’, 존 슈튜어트 밀의 ‘자유론’, 쇠렌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완독했고 지금은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팡세를 읽고 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마도 단테의 ‘신곡’을 읽게 될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니 기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이 사연이 좀 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자유론’ 서문에 존 슈튜어트 밀이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이 있는데, 아내의 지적인 참여와 평가가 자신의 책이 좋게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해요. 그런데 ‘자유론’을 쓰는 당시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으니 바로 아내와 나눌 수 있었던 지적인 대화와 참여가 너무나 아쉬웠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파스칼의 ‘팡세’는 사실 파스칼이 자신의 노트에 끄적여 놓았던 글을 파스칼의 사후에 조카와 친구들에 의해 편집되어 나온 책이었습니다. 파스칼은 10대부터 수학 및 물리학 등에 대해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굳이 글로 남기지 않아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30세에 신앙체험을 한 이후 신학적 철학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35세부터는 정상적인 지적 작업을 할 수 없었고 39세에 단명하게 됩니다. 파스칼의 30대 중반 부터는 건강 문제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되었고 그의 생각을 모두 기록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이렇다 보니 천재적인 기억력보다는 적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다시 일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혼자 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친구나 아내, 가족 등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의 생각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생각을 적다보면 모여질 수록 더 귀해지지 않을까? 하고요.

그냥 갑자기 ‘교환일기’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떠 오른 것이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원래 여학생들 사이에서 학창 시절에 많이 하는 것인 모양이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연인끼리 하기도 하고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윤희일의 ‘코스모스를 죽였다’라는 교환일기 형식의 소설도 있더군요.

이 소설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과 가족의 교환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벌써 슬프죠?

아프기 전에 교환일기를 함께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흐름이나 즐거움도 건강할 때 함께 하면 더 좋을테니까요.

아무튼 교환일기를 한번 써보려고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교환일기 써보지 않으시겠어요?

아버지의 1주년 추모예배: My tribute to my dad’s first memorial service – from Jacob to Joseph

2024년 7월 12일은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후 처음으로 맞는 추모예배 (Memorial service) 날입니다. 올해에는 이 날을 동생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 휴가 날짜를 맞추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올해 휴가가 안식년으로 한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한국에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완수네 집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준비하면서 어떤 내용으로 말씀을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일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십여년 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이집트 왕 바로의 앞에서 한 말씀을 빚대어 하신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말씀, 새번역)

이 말씀 중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는 부분을 한숨조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인생은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겨우 3살 때 할아버지께서 주식투자를 잘못했다가 큰 돈을 잃으시고 화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5남매 중에 4째이셨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 없이 해내야 하셨습니다. 대학 진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탓에 번번히 실패를 하시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서울신학대학교에 들어가시고 전도사까지 되셨지만 당시 신앙이 약하셨던 어머니의 반대로 전도사를 그만두시고 철물점을 시작하시게 되면서 아버지의 고달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 저희 3남매를 낳으시고 키우셨지만 생활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화학회사에 취직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히 후배들에게 승진이 뒤쳐지는 수모를 받게 되었고 그 아픔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부림특수화학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몇년간은 매출이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가 고3이 되던 해 1월에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아버지의 나이 50세이셨습니다. 우리가 다 기억하듯이 아버지는 금융거래 문제로 오랜 기간 경찰에 쫓기는 신세이셨고 법적 의무가 사라지는 15년간 우리는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각자 전액장학생이 되거나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하든가 삼성산학 장학생이 되든가 하는 식으로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해결하면서 대학 졸업을 겨우 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모두 대학원 이상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 3남매에게 꼭 해 주시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3남매가 “아버지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이 가능한 오래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3살 때 할아버지를 여의고 평생 아버지 없는 자녀로 산다는 것의 고통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만은 그런 아픔을 남겨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최선을 다해서 우리 모두가 50대가 될 때까지 살아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20년 전에 저에게 주셨던 요셉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이 말씀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까지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12형제를 위해 야곱이 축복을 하면서 특별히 요셉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은 들망아지, 샘 곁에 있는 들망아지, 언덕 위에 있는 들나귀다. 사수들이 잔인하게 활을 쏘며 달려들어도, 사수들이 적개심을 품고서 그를 과녁으로 삼아도 요셉의 활은 그보다 튼튼하고, 그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야곱이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너에게 복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49장 22-25절 말씀, 새번역)

요셉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0명의 형들에 의해 죽을 뻔 하다가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는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도를 당한 후 나는 사관학교, 완수는 공고, 은미는 상고를 가라고 아버지가 어렵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각자가 혼자의 힘으로 공부를 했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힘들게 살아온 것을 잘 압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고 각자 아름다운 가족을 일구게 된 것은 여기에 나온 창세기 49장의 요셉의 축복 말씀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복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2017년에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친 후에 우리 3남매가 남겨진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결정했던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처음에 완수와 내가 반대를 했지만 은미가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4년 동안이나 함께 살면서 모셨는데 너무나 큰 일을 해 준 은미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이후 은미가 안식년을 가게 되면서 완수와 제수씨께서 최선을 다해서 애써 주신 덕분에 아버지께서 혼자 사시면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사실 수 있었고 2022년에 대장암을 비교적 일찍 발견해서 수술도 잘됐고 요양병원도 잘 찾아서 은미와 완수가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의 회복을 도운 것도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치매가 와서 기억에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마지막까지 식사나 모든 일을 스스로 하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셨고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6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6년간의 과정에서 각자 말 못할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합니다. 잘 버텨주어서…

요셉이 자신의 축복을 이루는 데에는 요셉이 형제들을 온전히 용서하고 다시 하나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가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드리며 이루어야 할 것도 우리의 화합과 하나됨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잘 버텨주고 잘 살아 주어서….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동생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56)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9권의 책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달간의 안식년 휴가를 얻고 한국에 온 지도 열흘 정도 지나갑니다. 코로나 기간 이후 저는 매년 한국에 방문하고 있는데 이번처럼 편안한 휴가는 처음 맞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너무나 편안한 나머지 조금은 여유를 부리고 오랜만에 한국방송에 나오는 TV 프로그램도 보곤 했는데 왠지 모르게 TV를 보는 시간은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뭔가 수동적인 느낌도 들고 꼭 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시간을 그냥 죽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동안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을 구입하는 것’

입니다.

가장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서 여기저기 매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책은 좀 한정적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최소 두세번은 읽을 만한 책으로 고르려고 노력을 하다보니 자연히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가장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마음에 왠지 뿌듯함이 밀려오는 중입니다. 이 감정을 좀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고백 – 넘치는 기쁨 by 윤신원

윤신원님은 저의 대학부 후배이기도 한데요 이 책에 대해서는 아래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8) 윤신원님

신곡 by Dante Alighieri (김운찬 옮김)

단테의 신곡은 그동안 원어로 읽으려고 시도를 몇번 했던 책인데 이 책이 700년이나 전의 작품이다 보니 원어로 그 내용을 넘어가며 읽기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 있는 단테의 신곡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을 잡았습니다. 2009년에 나온 이후로 7쇄까지 나온 책이어서 신뢰가 갔고 주석이 비교적 잘되어 있어서 천페이지가 넘는 이 작품을 나름대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 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by 쇠렌 키르케고르 (이명곤 옮김)

키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철학적 사유에 대해 잘 소개한 책인 것 같아서 선정을 했습니다. 이명곤님이 이 책에 좋은 주석을 해 주셔서 철학도가 아닌 제가 키르케고르 철학을 관통하는 다양한 관점과 이전 철학들을 나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서 이 책을 구입했는데요 서문과 1장을 읽어보니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철학서는 원문으로 읽기에는 아직 저의 배움이 너무 협소해서 일단 번역서를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묵 by 엔도 슈사쿠 (공문혜 옮김)

침묵은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 막부 시절의 기독교 박해기에 있었던 일을 기초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입니다. 교회 대학부에서 이 책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가난했던 고학생이었던 저는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이 모임에 선뜻 나서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일본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던 중 에도 막부 이전 시기인 포루투갈과의 교류와 함께 유입된 카톨릭을 믿는 일본 다이묘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후에 카톨릭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침묵은 그 일을 기반으로 쓴 책입니다. 대학 시절에 읽지 못한 한 (?)을 이번에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by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영어원문으로 읽으려고 시도를 했던 책인데 역시 기원전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문외한인 제가 기초도 없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 책도 아주 만족스럽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다룬 책으로 제가 교보문고에서 찾은 유일한 (?) 책이어서 이 책을 잡았습니다. 서양 윤리학의 기본틀을 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한두번 읽어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3,4 독을 하면 그나마 원문을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징비록 by 유성룡 (장준호 번역, 해설)

징비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이후에 영의정이었던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이 어떻게 일어났고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은 책입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다양한 책이 있지만 가장 현장에서 전쟁을 겪은 유성룡의 책만큼 좋은 책은 없다고 합니다. 한국의 전쟁사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여 선정을 했습니다.

자유론 by 존 스튜어트 밀 (이현숙 옮김)

자유론은 제가 관심을 가지는 “자유와 이유”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는 철학서로 생각이 되어서 선정을 했습니다. 이 책의 자유는 정치와 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다루고 있는데 저의 자유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줄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문화를 바라보는 창 – 우키요에 by 판리 (홍승직 옮김)

우키요에는 에도 막부 시기의 목판화를 말합니다. 유럽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미술사조이기도 해서 우키요에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오랜동안 있었는데요 이번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손에 집어 들었습니다. 언젠가 일본에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우키요에 미술관을 꼭 방문할 생각인데요 그 전에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팡세 by 파스칼 (정봉구 번역)

파스칼은 수학자이면서 물리학자였지만 30세부터 철학에 올인했다고 합니다. 본래 팡세를 사려고 생각하고 서점에 간 것은 아니지만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파스칼의 삶이 저의 삶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 파스칼의 팡세를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외에 사고 싶었지만 사지 못한 책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by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세가지 비판 서적은 좋은 번역서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마땅한 책이 없어서 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온라인 주문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원어로 읽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씨알은 외롭지 않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by 함석헌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은 외롭지 않다”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는 제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암울했던 고3시절 저를 단단히 붙잡아 준 철학서이자 역사서입니다. 저는 이 후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저의 삶의 롤모델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고서점에 가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닥터 지바고 by 보리스 파스체르나크

닥터 지바고는 제가 20대 중반에 감명 깊게 읽은 책입니다. 다시 한번 읽고 싶은데 영어원문으로 한번 시도를 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지 않았습니다. 만약 영어원문으로 읽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용이하지 못하면 다음번에 한국에 올 기회가 있을 때 구입하려고 생각합니다.

성채 by A. J. 크로닌

성채도 20대 중반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요 영어 원문을 읽어보려고 생각해서 이번에 구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지 않은 책들

인간실격 by 다자이 오사무

이 책이 좋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 도서관 온라인 열람 계좌를 열 생각인데 온라인으로 먼저 읽어보고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논어 by 공자

논어도 꼭 다시 읽어보려고 생각을 하는데 일단 다음으로 기회를 넘긴 상태입니다.

여운형 평전

여운형 선생님에 대한 삶에 대해 저는 꽤 궁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의 기획자이면서 상해임시정부 등의 중요한 인물이지만 암살 당하시고 그 자녀들이 월북하여 김일성의 도움으로 공부도 하고 요직을 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느낌이 드는 분입니다. 삼일운동 이후 일본 정부에서 여운형 선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임꺽정 by 홍명희

홍명희 원작 임꺽정은 장편소설입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두루 읽혔다고 전해지고 후기 조선시대의 삶을 잘 보여주는 역작입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님이 월북 작가이고 북한에서도 주요 요직을 하신 분이어서 역시 재평가가 필요하지만 소설 임꺽정은 역시 벽초 홍명희의 작품이 최고라고 합니다.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고서점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8) 윤신원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회사로 부터 안식년을 받아서 한달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중인데요 올해 안식년 기간 동안에 저는 꼭 만나야 하는 분들을 만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 가장 현재를 사는 방법은 바로 오늘 만나는 분들과 가능한 한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그러한 만남을 위해 저의 친한 친구이자 에세이 작가인 김쾌대님과 함께 중요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1) – 김쾌대님

대화를 하는 중에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과거 대학부 후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배와저는 학번이 1년차 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가까운 후배입니다. 당시 의대를 다니고 있었고 제가 2학년일 때에 잠깐 알고 지내다가 오랜동안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함께 여름 방학 기간동안에 함께 우리나라 남단에 있는 어떤 섬에서 농촌활동 봉사활동을 한 것이 함께 지냈던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런데 저의 절친인 김쾌대 작가를 통해서 우연히 최근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황을 듣는 중에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저는 궁금한 나머지 교보문고에 가서 다른 책들과 더불어 이 후배의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덤덤하지만 보다 자세히 (?) 근황을 알게 되었던 것 같고 그의 책을 통해 저는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이 후배의 책을 통해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며 왜 이 후배를 제가 부러워 하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아래에 색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 책에 나온 부분 중 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들입니다.

영광

(성경의)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주님께 주셨고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주셨다! 우리에게 영광을 나누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이 오신 이유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 (로마서 8:17-18)”

글을 잘 쓰는 능력 보다는 마음으로 읽혀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글을 쓰는 나의 몫도 있지만, 글을 읽는 자의 몫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What counts (가장 중요한 것)

(어떤 선교사님의 기도 편지 중에서) 사고 당시 소생 가능성이 없이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지내는 동안 하셨던 영적인 경험을 나누셨다. 예수님을 만나셨는데 어떤 죄로도 정죄를 하지 않으셨으나 삶을 계수하셨다고 한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하며 봉사도 많이 하셨으나 예수님이 가치있다고 계수 하신 시간은 적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했던 순간들만 인정하셨다고 하였다.

주님이 카운트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일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큰 일을 했다고 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무리 수고하고 희생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9-10)”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스가랴 7:3-6)”

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기도하고는 있지만, 정말 주님을 위한 마음으로 한 것일까?

여기까지가 제가 읽으며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입니다.

이 책에는 부록이 있는데 사랑하는 남편과 두 자녀들이 남긴 가족으로서 다른 관점의 글들이 있습니다. 모두 사랑을 담은 절절함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백 – 넘치는 기쁨’의 저자이신 윤신원님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이면서 4년전부터 신장암과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의 책은 이 기간 동안 만났던 하나님과의 소중한 만남에 대해 비교적 덤덤하게 적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윤신원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상태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는 윤신원님의 삶을 통해 저는 큰 도전을 받습니다. 저 또한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 연구원이자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윤신원님과 같은 삶을 살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윤신원님은 이 책의 수익금 전액으로 탄자니아 연합대학교 (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에 기부한다고 하는군요. 아래 글로 이 책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드릴까 생각한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훗날 나의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에게도 이 책을 나누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좋은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고 가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며 그녀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스케줄을 보았습니다.

2024년 6월에도 오전 진료는 계속하시고 있더군요.

윤신원님의 Legacy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녀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윤신원님의 오늘과 미래가 기대됩니다.

In God We Trust!!

내가 쓰는 나의 삶 (55) 다시없는 기회: Reunion, Recreation and Memento Mori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회사의 배려로 두번째 Sabbatical leave (安息年, 안식년)을 받고 온 가족들 함께 한국에 방문하여 한달간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첫번째 안식년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안식년은 또다른 의미로 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식년을 보내는 중간이지만 그간의 생각과 현재의 느낌을 잠시 나누고 싶어서 글을 적으려고 합니다.

Re-Union (재회)

먼저 이번 안식년에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Re-Union (재회)를 통한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작년에 큰 딸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새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5명이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이런 저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온가족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음식도 좋았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행을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렌터카를 운전하면서 여행을 했는데 자녀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몇년전에 어른을 모시고 다니는 흔한 제주 여행과는 또 다른 곳을 방문하게 되더군요. 같은 제주도 여행을 하더라도 50대 이후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과 20대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고 왔습니다. 차 안에서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것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다른 만남은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본래 제가 마당발은 아니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지내는 편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도 한국에 있는 저의 소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2000년에 만나서 지금까지 이런 저런 형태로 지내고 있는 후배를 만났는데 그는 성공한 벤처투자자로 지금도 유명하고 미래에는 더욱 유명해 질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 달리 그의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는 수수하고 차분하며 항상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런 그의 마음과 행동이 저에게 큰 도전이 되고 귀감이 됩니다. 남자들이 거의 4시간을 주저리 주저리 사는 얘기, 현재의 한국과 미국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와 미국의 바이오 산업 등에 대해 나누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흐르더군요. 음식점의 둘만의 공간도 좋았고 직원분이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야기가 더 이어질 뻔했는데 다행히 (?) 딱 좋을 때에 음식점 직원분이 잘 나타나 주신 것 같았습니다. 내일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저와 소중한 인연들은 계속 만나게 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런 만남을 가지며…

오늘이 이 사람과 만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웃고 떠들고 또 한편으로는 심각해 지기도 하면서 서로 때로는 학생이 되고 때로는 선생이 되어서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만남은 저에게 참 소중합니다.

Re-Creation (재생)

휴가 (休暇)는 사전적 의미로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입니다. 저도 안식년 한달을 받아서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휴가 기간동안에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듣는 등등 정서적, 감정적인 쉼의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휴가 일정 중의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온라인 회원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계획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책을 읽을 기회가 참 없는데 온라인 회원이 되면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니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고서점을 방문해서 현재 시중에 나오지 않는 책을 찾아 보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찾고 있는 책은 고 함석헌 선생님의 책 ‘씨알은 외롭지 않다’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가장 어려웠던 고3시절에 제가 잘못되지 않고 중요한 정신적 심지를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저를 일깨워준 책이어서 꼭 확보하고 싶은 책입니다. 검색을 해 보니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은 절판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책을 찾고 싶습니다.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그동안 나온 책을 살펴보는 것도 저에게 중요한 일정의 하나입니다. 올해에도 좋은 책과의 만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번 안식년을 통해서 또한번 생각하는 것은 저의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이생의 삶의 시간이 한정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이 주어져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만남들과 흘러가는 시간들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휴가 기간이지만 그 중 하루는 회사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지사에서 요청한 기관에서 발표하고 지사 임직원 들에게 저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좀 갖기로 되어 있는데 이런 시간도 저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 – 중국 도연명 (陶淵明, 365~427년)의 시에 나오는 글입니다. 고교 시절 배운 말인데 이 말을 기억하며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 봅니다.

BOOK CLUB (3) War and Peace by Leo Tostoy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몇주간 블로그를 쉬었는데요. 쉼없이 써오던 Biotech 글도 중단하고 다른 여러 글도 중단한채 제가 몰두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War and Peace (전쟁과 평화)” 전집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총 2900 페이지 정도되는 소설 전체를 영어원문으로 읽었습니다. 꼬박 2주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백작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살면서 19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를 낳고 기독교에 심취하여 자신의 부를 포기하고 환원하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이러한 그의 삶의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이 소설의 곳곳에서 보여지는 몇몇 캐릭터를 통해서 톨스토이 자신의 생각의 과정과 성장의 과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폼입니다.

톨스토이가 살던 시기는 제정 러시아 시대인데요 이 시대는 1%의 귀족과 99%의 농노 (농사하는 노예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였습니다. 귀족이었던 톨스토이는 농노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가 농노들의 해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기독교이고 또 하나는 데카브리스트입니다.

“데카브리스트 (Dekabrist)의 난”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으로 시작한 러시아-프랑스 전쟁에서 결국 승리한 러시아의 청년귀족들이 프랑스로 진군하여 프랑스 사회를 보고 큰 충격을 얻은 나머지 러시아에서 1925년 12월 26일에 일으킨 봉기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실패하여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죽거나 시베리아에 유배를 가게 되는데 1856년에 돌아온 데카브리스트인 Volkonsky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데카브리스트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고 몇년간 자료 수집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8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1805년의 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대로 부터 시작하여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전쟁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 되게 됩니다.

전쟁과 평화는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단순히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 대하물의 성격을 많이 띄고 이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철학적 사유를 포함하는 철학서의 형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캐릭터들을 통해 소설 형식을 갖는 특이한 형태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귀족의 사랑 이야기가 주제인 것으로 착각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2800페이지 정도까지 있던 처음 절반은 그런 관점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전쟁 이야기인가? 라는 관점으로 읽다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 이 책이 인생의 성장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거의 60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이 나오고 각각의 인물은 별도로 중요하게 다루어 집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그냥 지나가는 조연이 아니라 모두 주연입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중요한 주연이 있습니다. 안드레이, 니콜라이, 피에르와 나탈리,마리아 등이 있습니다. 특히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톨스토이 자신의 부캐라고 볼 수 있고 나탈리는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의 부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가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을 남기고자 합니다.

안드레이는 왕자로서 나폴레옹을 은근히 동경하는 인물입니다. 신중한 성격이며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여동생 마리아의 오빠입니다. 아버지는 과거 훌륭한 군인 장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병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변하는데 이런 아버지를 끝까지 봉양하는 좋은 아들이기도 합니다. 안드레이에게는 좀 괴퍅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피에르입니다. 피에르는 러시아의 최고 부자의 사생아인데 이 아버지가 갑자기 죽으면서 유언을 통해 상속자로 되는 인물입니다.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했고 그 영향으로 귀족 사회를 혐오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사교계의 천덕꾸러기 신세였습니다. 처음에 엘렌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자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지만 그녀와 자신이 맞지 않고 엘렌의 자유분방한 성적 취향으로 인해 괴로워 합니다. 나중에 엘렌은 죽게 되지요. 피에르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사유를 보유한 인물이고 친구 안드레이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안드레이는 피에르와 같이 농노들을 착쥐하기 보다는 해방시키려 노력하는데 감정적인 피에르에 비해 지적인 안드레이는 피에르에 비해 철저한 면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안드레이는 전쟁터에서 패배하고 부상을 입은 상태로 자신이 동경하던 나폴레옹이 아주 초라한 사람이라는 것과 반면에 대자연이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것을 발견하며 생각이 크게 변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나탈리라는 어린 약혼자가 있는데 아버지는 나탈리 가문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1년 후에 결혼을 하는 조건을 내걸게 되고 효성지극한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이런 지시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탈리는 자유분방한 엘렌의 오빠의 꾀임에 빠져 안드레이와 파혼하게 되죠.

나탈리는 이 과정을 통해 자유분방하던 자세를 완전히 벗고 숭고한 여인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거의 죽게 된 안드레이를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하고 그의 죽음을 맞이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안드레이의 친구이자 충실한 친구 피에르의 도움을 받게 되고 부인 엘렌이 급사하여 혼자 된 피에르와 결혼하며 에필로그 1에서 피에르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 나탈리로의 삶이 나옵니다.

나탈리의 오빠인 니콜라이는 활달한 군인입니다. 니콜라이도 전쟁을 통해 성장합니다. 전쟁 중에 곤경에 빠져서 농노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는 독실한 신자 마리아를 돕게 되고 부모의 방탕한 상류사회 소비행태로 인해 곤경에 처한 가정을 위해 가난한 사촌동생이자 애인을 등지고 마리아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맞아들이는 인물로 나옵니다. 니콜라이는 에필로그 1에서 톨스토이 처럼 농사짓는 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니콜라이는 착취하는 귀족이기 보다는 농부로 일하는 귀족이면서 농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인 후원자가 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들과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전쟁으로 대변하는 역사가 한두사람의 영웅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며 그 방향은 우리가 알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다는 예정론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을 하는 사람과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 조금씩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저는 자자신의 성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고 친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깨닫게 된 것은 사교적인 관계보다는 진실한 몇몇의 관계가 더욱 소중할 수 있다는 것과 친구와 함께 서로 자극하며 배우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을 바탕으로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 등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삶의 여정을 더 알게 되는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