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나의 삶 (57) 교환일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4년 7월도 다음주면 끝이 나고 곧 8월로 들어가게 되는군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달간 한국으로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시차적응도 하고 밀린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간동안 한국에서 사 온 책들을 열심히 읽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 것 같습니다. 다행히 (?) 좋은 책을 잘 고른 탓에 책 읽기는 아주 즐겁고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사 온 책들의 독후감과 감상을 언제 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먼저 구입한 책 9권 전권을 읽은 이후에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책들이 어떤 면에서 제가 현재 생각해야 할 일들 혹은 생각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책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한권씩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 보다는 이번에는 9권 전권을 읽고 함께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엔도슈사쿠의 ‘침묵’, 존 슈튜어트 밀의 ‘자유론’, 쇠렌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완독했고 지금은 파스칼의 ‘팡세’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팡세를 읽고 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으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마도 단테의 ‘신곡’을 읽게 될 것 같아요.

책을 읽다보니 기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들이 사연이 좀 있더라구요. 예를 들면, ‘자유론’ 서문에 존 슈튜어트 밀이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을 쓴 글이 있는데, 아내의 지적인 참여와 평가가 자신의 책이 좋게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해요. 그런데 ‘자유론’을 쓰는 당시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으니 바로 아내와 나눌 수 있었던 지적인 대화와 참여가 너무나 아쉬웠다고 쓰고 있습니다.

또한 파스칼의 ‘팡세’는 사실 파스칼이 자신의 노트에 끄적여 놓았던 글을 파스칼의 사후에 조카와 친구들에 의해 편집되어 나온 책이었습니다. 파스칼은 10대부터 수학 및 물리학 등에 대해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굳이 글로 남기지 않아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30세에 신앙체험을 한 이후 신학적 철학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는 건강이 좋지 못했고 35세부터는 정상적인 지적 작업을 할 수 없었고 39세에 단명하게 됩니다. 파스칼의 30대 중반 부터는 건강 문제 때문에 기억력이 감퇴되었고 그의 생각을 모두 기록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이렇다 보니 천재적인 기억력보다는 적는 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다시 일기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혼자 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친구나 아내, 가족 등과 함께 교환일기를 쓰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의 생각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생각을 적다보면 모여질 수록 더 귀해지지 않을까? 하고요.

그냥 갑자기 ‘교환일기’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떠 오른 것이었는데 검색을 해 보니 원래 여학생들 사이에서 학창 시절에 많이 하는 것인 모양이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연인끼리 하기도 하고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윤희일의 ‘코스모스를 죽였다’라는 교환일기 형식의 소설도 있더군요.

이 소설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남편과 가족의 교환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벌써 슬프죠?

아프기 전에 교환일기를 함께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흐름이나 즐거움도 건강할 때 함께 하면 더 좋을테니까요.

아무튼 교환일기를 한번 써보려고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교환일기 써보지 않으시겠어요?

아버지의 1주년 추모예배: My tribute to my dad’s first memorial service – from Jacob to Joseph

2024년 7월 12일은 아버지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후 처음으로 맞는 추모예배 (Memorial service) 날입니다. 올해에는 이 날을 동생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 휴가 날짜를 맞추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올해 휴가가 안식년으로 한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한국에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완수네 집을 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준비하면서 어떤 내용으로 말씀을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일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십여년 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성경에 나오는 야곱이 이집트 왕 바로의 앞에서 한 말씀을 빚대어 하신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세기 47장 9절 말씀, 새번역)

이 말씀 중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는 부분을 한숨조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인생은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겨우 3살 때 할아버지께서 주식투자를 잘못했다가 큰 돈을 잃으시고 화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5남매 중에 4째이셨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아버지 없이 해내야 하셨습니다. 대학 진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탓에 번번히 실패를 하시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서울신학대학교에 들어가시고 전도사까지 되셨지만 당시 신앙이 약하셨던 어머니의 반대로 전도사를 그만두시고 철물점을 시작하시게 되면서 아버지의 고달픈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 저희 3남매를 낳으시고 키우셨지만 생활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화학회사에 취직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히 후배들에게 승진이 뒤쳐지는 수모를 받게 되었고 그 아픔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부림특수화학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몇년간은 매출이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결국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가 고3이 되던 해 1월에 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아버지의 나이 50세이셨습니다. 우리가 다 기억하듯이 아버지는 금융거래 문제로 오랜 기간 경찰에 쫓기는 신세이셨고 법적 의무가 사라지는 15년간 우리는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각자 전액장학생이 되거나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하든가 삼성산학 장학생이 되든가 하는 식으로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해결하면서 대학 졸업을 겨우 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모두 대학원 이상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 3남매에게 꼭 해 주시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3남매가 “아버지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이 가능한 오래 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3살 때 할아버지를 여의고 평생 아버지 없는 자녀로 산다는 것의 고통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만은 그런 아픔을 남겨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최선을 다해서 우리 모두가 50대가 될 때까지 살아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20년 전에 저에게 주셨던 요셉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이 말씀은 저 뿐만 아니라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까지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죽기 전에 12형제를 위해 야곱이 축복을 하면서 특별히 요셉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셉은 들망아지, 샘 곁에 있는 들망아지, 언덕 위에 있는 들나귀다. 사수들이 잔인하게 활을 쏘며 달려들어도, 사수들이 적개심을 품고서 그를 과녁으로 삼아도 요셉의 활은 그보다 튼튼하고, 그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야곱이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너에게 복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49장 22-25절 말씀, 새번역)

요셉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0명의 형들에 의해 죽을 뻔 하다가 노예로 팔리게 되었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는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했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부도를 당한 후 나는 사관학교, 완수는 공고, 은미는 상고를 가라고 아버지가 어렵게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각자가 혼자의 힘으로 공부를 했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힘들게 살아온 것을 잘 압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되고 각자 아름다운 가족을 일구게 된 것은 여기에 나온 창세기 49장의 요셉의 축복 말씀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복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2017년에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친 후에 우리 3남매가 남겨진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결정했던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처음에 완수와 내가 반대를 했지만 은미가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4년 동안이나 함께 살면서 모셨는데 너무나 큰 일을 해 준 은미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이후 은미가 안식년을 가게 되면서 완수와 제수씨께서 최선을 다해서 애써 주신 덕분에 아버지께서 혼자 사시면서도 비교적 건강하게 사실 수 있었고 2022년에 대장암을 비교적 일찍 발견해서 수술도 잘됐고 요양병원도 잘 찾아서 은미와 완수가 번갈아 가면서 아버지의 회복을 도운 것도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마지막에 치매가 와서 기억에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마지막까지 식사나 모든 일을 스스로 하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셨고 결국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6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6년간의 과정에서 각자 말 못할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감사합니다. 잘 버텨주어서…

요셉이 자신의 축복을 이루는 데에는 요셉이 형제들을 온전히 용서하고 다시 하나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가 아버지의 추모예배를 드리며 이루어야 할 것도 우리의 화합과 하나됨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잘 버텨주고 잘 살아 주어서….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동생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56)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9권의 책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달간의 안식년 휴가를 얻고 한국에 온 지도 열흘 정도 지나갑니다. 코로나 기간 이후 저는 매년 한국에 방문하고 있는데 이번처럼 편안한 휴가는 처음 맞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너무나 편안한 나머지 조금은 여유를 부리고 오랜만에 한국방송에 나오는 TV 프로그램도 보곤 했는데 왠지 모르게 TV를 보는 시간은 좀 아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뭔가 수동적인 느낌도 들고 꼭 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시간을 그냥 죽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그동안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책을 구입하는 것’

입니다.

가장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서 여기저기 매장을 둘러 보았습니다.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책은 좀 한정적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최소 두세번은 읽을 만한 책으로 고르려고 노력을 하다보니 자연히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가장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마음에 왠지 뿌듯함이 밀려오는 중입니다. 이 감정을 좀 남기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고백 – 넘치는 기쁨 by 윤신원

윤신원님은 저의 대학부 후배이기도 한데요 이 책에 대해서는 아래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8) 윤신원님

신곡 by Dante Alighieri (김운찬 옮김)

단테의 신곡은 그동안 원어로 읽으려고 시도를 몇번 했던 책인데 이 책이 700년이나 전의 작품이다 보니 원어로 그 내용을 넘어가며 읽기는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교보문고에 있는 단테의 신곡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을 잡았습니다. 2009년에 나온 이후로 7쇄까지 나온 책이어서 신뢰가 갔고 주석이 비교적 잘되어 있어서 천페이지가 넘는 이 작품을 나름대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 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 by 쇠렌 키르케고르 (이명곤 옮김)

키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철학적 사유에 대해 잘 소개한 책인 것 같아서 선정을 했습니다. 이명곤님이 이 책에 좋은 주석을 해 주셔서 철학도가 아닌 제가 키르케고르 철학을 관통하는 다양한 관점과 이전 철학들을 나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서 이 책을 구입했는데요 서문과 1장을 읽어보니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철학서는 원문으로 읽기에는 아직 저의 배움이 너무 협소해서 일단 번역서를 읽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침묵 by 엔도 슈사쿠 (공문혜 옮김)

침묵은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 막부 시절의 기독교 박해기에 있었던 일을 기초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입니다. 교회 대학부에서 이 책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가난했던 고학생이었던 저는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이 모임에 선뜻 나서지 못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일본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던 중 에도 막부 이전 시기인 포루투갈과의 교류와 함께 유입된 카톨릭을 믿는 일본 다이묘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후에 카톨릭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침묵은 그 일을 기반으로 쓴 책입니다. 대학 시절에 읽지 못한 한 (?)을 이번에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by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옮김)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영어원문으로 읽으려고 시도를 했던 책인데 역시 기원전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문외한인 제가 기초도 없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 책도 아주 만족스럽다고 느끼지는 못했지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다룬 책으로 제가 교보문고에서 찾은 유일한 (?) 책이어서 이 책을 잡았습니다. 서양 윤리학의 기본틀을 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한두번 읽어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3,4 독을 하면 그나마 원문을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징비록 by 유성룡 (장준호 번역, 해설)

징비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이후에 영의정이었던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이 어떻게 일어났고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담은 책입니다. 임진왜란을 다룬 다양한 책이 있지만 가장 현장에서 전쟁을 겪은 유성룡의 책만큼 좋은 책은 없다고 합니다. 한국의 전쟁사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여 선정을 했습니다.

자유론 by 존 스튜어트 밀 (이현숙 옮김)

자유론은 제가 관심을 가지는 “자유와 이유”에 대한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는 철학서로 생각이 되어서 선정을 했습니다. 이 책의 자유는 정치와 권력으로 부터의 자유를 다루고 있는데 저의 자유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줄 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문화를 바라보는 창 – 우키요에 by 판리 (홍승직 옮김)

우키요에는 에도 막부 시기의 목판화를 말합니다. 유럽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미술사조이기도 해서 우키요에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오랜동안 있었는데요 이번에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바로 손에 집어 들었습니다. 언젠가 일본에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우키요에 미술관을 꼭 방문할 생각인데요 그 전에 공부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팡세 by 파스칼 (정봉구 번역)

파스칼은 수학자이면서 물리학자였지만 30세부터 철학에 올인했다고 합니다. 본래 팡세를 사려고 생각하고 서점에 간 것은 아니지만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파스칼의 삶이 저의 삶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 파스칼의 팡세를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외에 사고 싶었지만 사지 못한 책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by 임마누엘 칸트

칸트의 세가지 비판 서적은 좋은 번역서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마땅한 책이 없어서 사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온라인 주문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원어로 읽기에는 역시 역부족이었습니다.

씨알은 외롭지 않다,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by 함석헌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은 외롭지 않다”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는 제가 심적으로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암울했던 고3시절 저를 단단히 붙잡아 준 철학서이자 역사서입니다. 저는 이 후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저의 삶의 롤모델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이 책은 아마도 고서점에 가서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닥터 지바고 by 보리스 파스체르나크

닥터 지바고는 제가 20대 중반에 감명 깊게 읽은 책입니다. 다시 한번 읽고 싶은데 영어원문으로 한번 시도를 해 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지 않았습니다. 만약 영어원문으로 읽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용이하지 못하면 다음번에 한국에 올 기회가 있을 때 구입하려고 생각합니다.

성채 by A. J. 크로닌

성채도 20대 중반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요 영어 원문을 읽어보려고 생각해서 이번에 구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사지 않은 책들

인간실격 by 다자이 오사무

이 책이 좋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것 같은데 확신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 도서관 온라인 열람 계좌를 열 생각인데 온라인으로 먼저 읽어보고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논어 by 공자

논어도 꼭 다시 읽어보려고 생각을 하는데 일단 다음으로 기회를 넘긴 상태입니다.

여운형 평전

여운형 선생님에 대한 삶에 대해 저는 꽤 궁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의 기획자이면서 상해임시정부 등의 중요한 인물이지만 암살 당하시고 그 자녀들이 월북하여 김일성의 도움으로 공부도 하고 요직을 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느낌이 드는 분입니다. 삼일운동 이후 일본 정부에서 여운형 선생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임꺽정 by 홍명희

홍명희 원작 임꺽정은 장편소설입니다. 일제시대 때부터 두루 읽혔다고 전해지고 후기 조선시대의 삶을 잘 보여주는 역작입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님이 월북 작가이고 북한에서도 주요 요직을 하신 분이어서 역시 재평가가 필요하지만 소설 임꺽정은 역시 벽초 홍명희의 작품이 최고라고 합니다.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고서점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8) 윤신원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회사로 부터 안식년을 받아서 한달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중인데요 올해 안식년 기간 동안에 저는 꼭 만나야 하는 분들을 만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 가장 현재를 사는 방법은 바로 오늘 만나는 분들과 가능한 한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그러한 만남을 위해 저의 친한 친구이자 에세이 작가인 김쾌대님과 함께 중요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1) – 김쾌대님

대화를 하는 중에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과거 대학부 후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후배와저는 학번이 1년차 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가까운 후배입니다. 당시 의대를 다니고 있었고 제가 2학년일 때에 잠깐 알고 지내다가 오랜동안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함께 여름 방학 기간동안에 함께 우리나라 남단에 있는 어떤 섬에서 농촌활동 봉사활동을 한 것이 함께 지냈던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런데 저의 절친인 김쾌대 작가를 통해서 우연히 최근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황을 듣는 중에 책을 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고 저는 궁금한 나머지 교보문고에 가서 다른 책들과 더불어 이 후배의 책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덤덤하지만 보다 자세히 (?) 근황을 알게 되었던 것 같고 그의 책을 통해 저는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이 후배의 책을 통해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며 왜 이 후배를 제가 부러워 하는지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아래에 색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 책에 나온 부분 중 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들입니다.

영광

(성경의)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주님께 주셨고 주님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주셨다! 우리에게 영광을 나누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이 오신 이유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 (로마서 8:17-18)”

글을 잘 쓰는 능력 보다는 마음으로 읽혀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글을 쓰는 나의 몫도 있지만, 글을 읽는 자의 몫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What counts (가장 중요한 것)

(어떤 선교사님의 기도 편지 중에서) 사고 당시 소생 가능성이 없이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지내는 동안 하셨던 영적인 경험을 나누셨다. 예수님을 만나셨는데 어떤 죄로도 정죄를 하지 않으셨으나 삶을 계수하셨다고 한다. 오랫동안 교회 생활하며 봉사도 많이 하셨으나 예수님이 가치있다고 계수 하신 시간은 적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했던 순간들만 인정하셨다고 하였다.

주님이 카운트 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일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큰 일을 했다고 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무리 수고하고 희생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9-10)”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스가랴 7:3-6)”

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기도하고는 있지만, 정말 주님을 위한 마음으로 한 것일까?

여기까지가 제가 읽으며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입니다.

이 책에는 부록이 있는데 사랑하는 남편과 두 자녀들이 남긴 가족으로서 다른 관점의 글들이 있습니다. 모두 사랑을 담은 절절함이 가득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백 – 넘치는 기쁨’의 저자이신 윤신원님은 소아청소년과 의사이면서 4년전부터 신장암과 함께 살아가고 계십니다. 그의 책은 이 기간 동안 만났던 하나님과의 소중한 만남에 대해 비교적 덤덤하게 적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윤신원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상태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삶을 살아가는 윤신원님의 삶을 통해 저는 큰 도전을 받습니다. 저 또한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텍 연구원이자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윤신원님과 같은 삶을 살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윤신원님은 이 책의 수익금 전액으로 탄자니아 연합대학교 (United African University of Tanzania)에 기부한다고 하는군요. 아래 글로 이 책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드릴까 생각한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훗날 나의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에게도 이 책을 나누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가장 좋은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고 가면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며 그녀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스케줄을 보았습니다.

2024년 6월에도 오전 진료는 계속하시고 있더군요.

윤신원님의 Legacy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녀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윤신원님의 오늘과 미래가 기대됩니다.

In God We Trust!!

내가 쓰는 나의 삶 (55) 다시없는 기회: Reunion, Recreation and Memento Mori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회사의 배려로 두번째 Sabbatical leave (安息年, 안식년)을 받고 온 가족들 함께 한국에 방문하여 한달간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첫번째 안식년도 의미가 있었지만 이번 안식년은 또다른 의미로 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식년을 보내는 중간이지만 그간의 생각과 현재의 느낌을 잠시 나누고 싶어서 글을 적으려고 합니다.

Re-Union (재회)

먼저 이번 안식년에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Re-Union (재회)를 통한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작년에 큰 딸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새 식구가 하나 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5명이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이런 저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 온가족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음식도 좋았고 모든 것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행을 또 언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렌터카를 운전하면서 여행을 했는데 자녀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몇년전에 어른을 모시고 다니는 흔한 제주 여행과는 또 다른 곳을 방문하게 되더군요. 같은 제주도 여행을 하더라도 50대 이후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과 20대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깨닫고 왔습니다. 차 안에서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것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다른 만남은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본래 제가 마당발은 아니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지내는 편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도 한국에 있는 저의 소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2000년에 만나서 지금까지 이런 저런 형태로 지내고 있는 후배를 만났는데 그는 성공한 벤처투자자로 지금도 유명하고 미래에는 더욱 유명해 질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 달리 그의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는 수수하고 차분하며 항상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런 그의 마음과 행동이 저에게 큰 도전이 되고 귀감이 됩니다. 남자들이 거의 4시간을 주저리 주저리 사는 얘기, 현재의 한국과 미국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와 미국의 바이오 산업 등에 대해 나누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흐르더군요. 음식점의 둘만의 공간도 좋았고 직원분이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야기가 더 이어질 뻔했는데 다행히 (?) 딱 좋을 때에 음식점 직원분이 잘 나타나 주신 것 같았습니다. 내일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저와 소중한 인연들은 계속 만나게 될 예정입니다. 저는 이런 만남을 가지며…

오늘이 이 사람과 만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웃고 떠들고 또 한편으로는 심각해 지기도 하면서 서로 때로는 학생이 되고 때로는 선생이 되어서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치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만남은 저에게 참 소중합니다.

Re-Creation (재생)

휴가 (休暇)는 사전적 의미로 ‘직장ㆍ학교ㆍ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입니다. 저도 안식년 한달을 받아서 휴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휴가 기간동안에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듣는 등등 정서적, 감정적인 쉼의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휴가 일정 중의 하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온라인 회원이 되는 것인데 이것은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싶은 저의 마음을 대변하는 계획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책을 읽을 기회가 참 없는데 온라인 회원이 되면 원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니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또하나는 고서점을 방문해서 현재 시중에 나오지 않는 책을 찾아 보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찾고 있는 책은 고 함석헌 선생님의 책 ‘씨알은 외롭지 않다’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가장 어려웠던 고3시절에 제가 잘못되지 않고 중요한 정신적 심지를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저를 일깨워준 책이어서 꼭 확보하고 싶은 책입니다. 검색을 해 보니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은 절판이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책을 찾고 싶습니다.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그동안 나온 책을 살펴보는 것도 저에게 중요한 일정의 하나입니다. 올해에도 좋은 책과의 만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번 안식년을 통해서 또한번 생각하는 것은 저의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이생의 삶의 시간이 한정적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이 주어져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만남들과 흘러가는 시간들을 통해서 가장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휴가 기간이지만 그 중 하루는 회사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기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 지사에서 요청한 기관에서 발표하고 지사 임직원 들에게 저의 경험을 나누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좀 갖기로 되어 있는데 이런 시간도 저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 – 중국 도연명 (陶淵明, 365~427년)의 시에 나오는 글입니다. 고교 시절 배운 말인데 이 말을 기억하며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 봅니다.

BOOK CLUB (3) War and Peace by Leo Tostoy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몇주간 블로그를 쉬었는데요. 쉼없이 써오던 Biotech 글도 중단하고 다른 여러 글도 중단한채 제가 몰두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톨스토이의 “War and Peace (전쟁과 평화)” 전집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총 2900 페이지 정도되는 소설 전체를 영어원문으로 읽었습니다. 꼬박 2주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톨스토이의 작품 중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백작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살면서 19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를 낳고 기독교에 심취하여 자신의 부를 포기하고 환원하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이러한 그의 삶의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이 소설의 곳곳에서 보여지는 몇몇 캐릭터를 통해서 톨스토이 자신의 생각의 과정과 성장의 과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폼입니다.

톨스토이가 살던 시기는 제정 러시아 시대인데요 이 시대는 1%의 귀족과 99%의 농노 (농사하는 노예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였습니다. 귀족이었던 톨스토이는 농노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그가 농노들의 해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기독교이고 또 하나는 데카브리스트입니다.

“데카브리스트 (Dekabrist)의 난”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으로 시작한 러시아-프랑스 전쟁에서 결국 승리한 러시아의 청년귀족들이 프랑스로 진군하여 프랑스 사회를 보고 큰 충격을 얻은 나머지 러시아에서 1925년 12월 26일에 일으킨 봉기혁명입니다. 이 혁명은 실패하여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죽거나 시베리아에 유배를 가게 되는데 1856년에 돌아온 데카브리스트인 Volkonsky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데카브리스트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고 몇년간 자료 수집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8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1805년의 오스트리아-프랑스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대로 부터 시작하여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 전쟁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 되게 됩니다.

전쟁과 평화는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단순히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 대하물의 성격을 많이 띄고 이 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철학적 사유를 포함하는 철학서의 형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캐릭터들을 통해 소설 형식을 갖는 특이한 형태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귀족의 사랑 이야기가 주제인 것으로 착각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2800페이지 정도까지 있던 처음 절반은 그런 관점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전쟁 이야기인가? 라는 관점으로 읽다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서 이 책이 인생의 성장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인물이 나옵니다. 거의 60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이 나오고 각각의 인물은 별도로 중요하게 다루어 집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그냥 지나가는 조연이 아니라 모두 주연입니다. 물론 여기에 가장 중요한 주연이 있습니다. 안드레이, 니콜라이, 피에르와 나탈리,마리아 등이 있습니다. 특히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톨스토이 자신의 부캐라고 볼 수 있고 나탈리는 톨스토이의 아내인 소피아의 부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가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을 남기고자 합니다.

안드레이는 왕자로서 나폴레옹을 은근히 동경하는 인물입니다. 신중한 성격이며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여동생 마리아의 오빠입니다. 아버지는 과거 훌륭한 군인 장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병적으로 신경질적으로 변하는데 이런 아버지를 끝까지 봉양하는 좋은 아들이기도 합니다. 안드레이에게는 좀 괴퍅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피에르입니다. 피에르는 러시아의 최고 부자의 사생아인데 이 아버지가 갑자기 죽으면서 유언을 통해 상속자로 되는 인물입니다.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했고 그 영향으로 귀족 사회를 혐오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사교계의 천덕꾸러기 신세였습니다. 처음에 엘렌이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자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지만 그녀와 자신이 맞지 않고 엘렌의 자유분방한 성적 취향으로 인해 괴로워 합니다. 나중에 엘렌은 죽게 되지요. 피에르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사유를 보유한 인물이고 친구 안드레이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안드레이는 피에르와 같이 농노들을 착쥐하기 보다는 해방시키려 노력하는데 감정적인 피에르에 비해 지적인 안드레이는 피에르에 비해 철저한 면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안드레이는 전쟁터에서 패배하고 부상을 입은 상태로 자신이 동경하던 나폴레옹이 아주 초라한 사람이라는 것과 반면에 대자연이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것을 발견하며 생각이 크게 변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나탈리라는 어린 약혼자가 있는데 아버지는 나탈리 가문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1년 후에 결혼을 하는 조건을 내걸게 되고 효성지극한 안드레이는 아버지의 이런 지시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탈리는 자유분방한 엘렌의 오빠의 꾀임에 빠져 안드레이와 파혼하게 되죠.

나탈리는 이 과정을 통해 자유분방하던 자세를 완전히 벗고 숭고한 여인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거의 죽게 된 안드레이를 다시 만나 관계를 회복하고 그의 죽음을 맞이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안드레이의 친구이자 충실한 친구 피에르의 도움을 받게 되고 부인 엘렌이 급사하여 혼자 된 피에르와 결혼하며 에필로그 1에서 피에르를 위해 헌신하는 아내 나탈리로의 삶이 나옵니다.

나탈리의 오빠인 니콜라이는 활달한 군인입니다. 니콜라이도 전쟁을 통해 성장합니다. 전쟁 중에 곤경에 빠져서 농노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는 독실한 신자 마리아를 돕게 되고 부모의 방탕한 상류사회 소비행태로 인해 곤경에 처한 가정을 위해 가난한 사촌동생이자 애인을 등지고 마리아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맞아들이는 인물로 나옵니다. 니콜라이는 에필로그 1에서 톨스토이 처럼 농사짓는 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니콜라이는 착취하는 귀족이기 보다는 농부로 일하는 귀족이면서 농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인 후원자가 되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들과 수많은 등장인물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전쟁으로 대변하는 역사가 한두사람의 영웅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며 그 방향은 우리가 알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다는 예정론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을 하는 사람과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 조금씩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저는 자자신의 성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고 친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깨닫게 된 것은 사교적인 관계보다는 진실한 몇몇의 관계가 더욱 소중할 수 있다는 것과 친구와 함께 서로 자극하며 배우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을 바탕으로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 등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삶의 여정을 더 알게 되는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BOSTONIAN (48) 안식휴가와 성장통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여러분은 일을 어떻게 대하시나요?

가끔 일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일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분들의 글이나 Youtube 등을 보게 되면 좀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직장생활에서 일터의 삶이 행복하다거나 자유롭다고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산업혁명 시대 이후로 우리의 일의 형태가 다소 반복적이거나 상명하복식의 기계적 업무인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내가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작업의 반복이라거나 기계적이라는 것을 넘어선 또다른 차원 – 고차원적 – 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테면 일은 단순히 기계적 반복을 몇십년간 하는 것만은 아니고 스스로 생산적인 어떠한 부가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생산활동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는 더 나아가 자신이 팀의 일원으로서 해 나가는 일을 통해 사회를 위해 중요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면서 그의 대가로 임금을 받거나 부차적인 소득을 얻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는 일의 의미는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일터를 통해 하고 있는 일은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일터에서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매일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을 합니다. 특히 미국의 직장생활에서 하는 일은 Beyond my comfort zone –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즐겁지만은 않고 무언가 고통과 도전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과 난제를 향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서 저자신도 성장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만 5년부터 3년마다 한달의 특별한 Sabbatical leave (안식 휴가)를 부여합니다. 이번에 저는 두번째 안식 휴가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안식 휴가에 대해 딸과 함께 얘기를 하다가 Unlimited vacation policy와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사실 아주 특별한 차이는 별로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 주어진 이 Sabbatical leave는 단순한 휴가를 넘어 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가족들과 지난 시간을 감사하며 공유하는 시간으로서의 의미도 있고 저에게 감사한 직장으로 부터 받은 특별 휴가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조금더 큰 미래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렇게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친구들이나 친지들을 만나면서 그동안의 근황을 배우고 저 자신도 저의 근황과 생각을 나누면서 무언가 배우는 과정이 있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이 시간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명상의 시기라고 할까요? 저는 항상 내일에 대한 큰 기대가 있습니다. 사실 그냥 매일 매일을 사는 것이라면 인생은 좀 지겨운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버는 목적으로만 매일 살아간다면 그것은 좀 인생을 최대한 산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력을 키워나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의 느낌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고 발견하면서 살아가는 매일은 좀 다른 인생입니다.

성장통 (成長痛)‘이라고 할까요?

성장통은 아이들에게서 신체적인 이상이 없는데도 특별한 원인이 없이 양측 다리 통증이 나타나는 증상을 뜻하지요? 어쩌면 현재의 저도 미래의 저에 비해서는 어린아이이고 계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유없이 온몸에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장통을 느낄 수 있어야 무언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외부로 부터 오는 자극과 함께 내부에서의 성찰이 함께 수반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과 성찰이 반복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 제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요 저는 오늘도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즐기고 있는 안식 휴가도 단순히 매일 노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장하는 성장통의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성장통을 통해 자극과 성찰을 하면서 계속 자라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며 그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54) Polymath 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다.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Polymath란 적어도 두 세가지 이상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Leonardo Da Vici, Benjamin Franklin 등이 Polymath의 예로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주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Polymath들이 많이 있었다가 이후 기술의 발전 등의 이유로 전문화가 이루어 지면서 Polymath는 거의 종적을 감추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4차 산업혁명으로 이름 지어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주된 직장의 일을 그만 둔 이후에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오래된 기사이지만 지금으로 부터 5년 전에 포브스에 실린 기사를 읽으며 좀 생각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3 Reasons Why Being A Polymath Is Key In The Future Of Work – Forbes by Adi Gaskell 3/22/2019

Polymath가 미래 일의 핵심인 세가지 이유

Ever since Adam Smith published The Wealth of Nations, the industrial world has been enthralled with specialization. Workers have been trained from an early age to focus on a fairly narrow range of skills that they will then apply for the remainder of their careers, like compliant cogs in the industrial machine.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이후로 산업 사회는 전문화 되어 왔다. 근로자들은 어려서 부터 특정 전문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훈련되어 자신들의 직업을 영위하게 됨으로써 마치 산업 기계 부품과 같이 살게 되었다.

This forms a basic T-shaped knowledge base, with deep expertise in one discipline, which was gained early on in one’s career, which was them supplemented and built upon with whatever on-the-job training you were offered.

이것이 기본적인 T-형 지식기반으로 한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가지고 직업 내에서 얻어지고 보완하게 되며 직업훈련 형태로 키워져 왔다.

For many years, this approach has been just fine, but it’s no longer fit for purpose, and today, knowledge should resemble more of an M-shaped profile whereby you have in-depth knowledge and expertise in multiple areas, with lifelong learning then helping to keep those skills relevant.

수년동안 이러한 접근은 당연시 여겨졌지만 이제 더이상 이러한 방식은 목적에 맞지 않게 되었고 한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서 깊은 전문지식을 가져야 하는 M-형 지식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Overcoming stigma

The problem is, this kind of knowledge profile has a high level of stigma attached to it.  In the western world it’s characterized as the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  In Eastern Europe, a common saying is “seven trades, the eighth one – poverty” (and variants of this throughout the Eastern Bloc). In South Korea, they say that “a man of twelve talents has nothing to eat for dinner.”

문제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기반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M-형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동유럽에서는 종종 “7가지 직업, 여덟번째는 결국 가난”이라고들 말한다. 한국에서는 “다재다능하면 먹을 것이 없다”라고 한다.

This mindset is one that needs overcoming.  Whereas the T-shaped approach to knowledge was acceptable in an age where change was slower and less widespread,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change is pretty much a constant, so it’s no longer something to be mocked.  If you still need convincing, here are a few reasons why having multiple strings to your bow is so important.

이런 통념을 넘어서야 한다. T-형 접근법이 기술발전이 느리고 덜 보편화된 시대에는 적합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직업을 갖는 것은 더이상 조롱거리가 되지 못한다. 확신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다양한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아래에 열거하고자 한다.

1. Polymaths are more innovative – Innovation today is increasingly recombinative in nature.  This means that innovators are not necessarily inventing completely new things, but rather applying existing technologies in new ways.  This requires people to have a broad set of skills and experience so that they can apply ‘left field’ thinking on common problems. One of the main reasons entrepreneurship is so high among the migrant community is that migrants have norms and values built up in their homeland that they have to reassess when they move overseas.  This process of re-evaluation acts as the Eureka moment in finding new ways of doing things in their new homeland. The value of cognitive diversity has been well explained by academics like Scott Page, and amply illustrated via crowdsourcing and open innovation, where challenges are often best solved by people outside of their core domain of expertise.  So if you want to be creative and innovative, spread your knowledge net far and wide.

1.Polymath는 보다 더 혁신적이다 –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혁신은 본질적으로 점점 융합적이다. 말하자면 혁신자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기술들을 새로운 영역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방면의 기술과 경험을 가져야만 어떠한 문제에 대해 전혀 의외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이민자들 가운데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모국에서 얻은 경륜과 가치들을 해외로 이주한 이후 다시 재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재해석 과정을 통해서 이들은 유레카 경험을 하게 되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방식을 창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식의 다양성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 Scott Page와 같은 학자들이 이미 연구했고 크라우드 소싱이나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문제점들이 전문 영역 밖의 사람들에 의해 아주 잘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창의적이며 혁신적이고 싶다면 당신의 지식을 아주 넓혀야 한다.

2. Adapting to changes in a 100-year life – Children born today are likely to live until they’re 100 years old, and will therefore have multiple careers during their long life.  If one is to make the most of such a long life, or to enjoy what Lynda Gratton refers to as the “longevity premium,” then it’s vital that you’re able to adapt sufficiently to ride the waves of change and remain gainfully employed throughout. Having multiple talents will not only give you greater value in the workplace, but in a world where many of the jobs today’s school children will do not yet existing, it’s vital that you have a number of skills that you can apply to whatever the labor market looks like in the future.

2.100세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 –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백세까지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래 살면서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오래사는 삶을 최대한 이용하고 Lynda Grattn이 “장수프리미엄”이라고 말했듯 향유할 수 있으려면 변화의 파고를 충분히 적응할 수 있으면서 계속 고용되어야 한다.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직장에서 가치를 창조할 수 있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직업들 안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만 미래의 노동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3. Tapping into your passion – When we’re children we have this inherent curiosity for life that tends to get beaten out of us as we progress through the schooling system, such that we often end up in jobs we hate. This is a criminal waste, and noted thinkers such as Ken Robinson have long bemoaned the turgid state of modern education and how it drives any excitement for learning out of us.  As an adult, all is not lost however, and I’ve written before about how you can both reignite your curiosity and how you can design the life you want to lead. If you do these things, you will inevitably venture off down multiple paths as you go where your curiosity takes you.  This will almost certainly reignite your passion and purpose at work, which research has shown not only results in us being more productive and happier at work, but earning more throughout our career and even living longer lives as a result.

3.관심사에 주목하기 – 어렸을 적에는 본질적으로 삶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지만 학교 시스템을 통해 공부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억제되고 결국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은 불행한 낭비이고 Ken Robinson과 같은 선각자들은 현대 교육 체계가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오랜 기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 잃은 것은 아니고 지금이라도 다시 호기심을 재발동하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호기심을 따라 다양한 일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당신이 관심사에 다시 주목하고 일의 의미를 찾게 되면서 연구에도 나타나듯이 더욱 생산적이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이 벌 수 있고 결과적으로 더욱 오래 살 수 있게 된다.

Versatility and resilience are prized characteristics in this era of extreme change, and cultivating multiple talents is a great way of achieving that.  The above are some of the reasons why this is valuable, and in a subsequent article I will explore some of the ways you can do so.

다양성과 꾸준함이 끝없이 변화하는 시대에서 이겨낼 수 있는 특성이고 다방면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내용들이 바로 그 이유들이고 차후에 다른 글에서 당신이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참 재미있는 세상이고 기회의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은 과거 왕들도 원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고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꿈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참 즐거우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참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Bucket List (41) 라틴어 배우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 서양철학 서적도 조금씩 읽고 클래식 음악도 듣다 보니 라틴어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몇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요.

네델란드의 철학자였던 바룩 스피노자 (Baruch Spinoza, 1632-1677)가 살던 시기에는 교회의 권위가 너무 세서 스피노자가 자신의 저작을 일반 대중이 볼 수 없도록 라틴어로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독일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의 경우에도 초기 저작은 라틴어로 썼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라틴어 원문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번역서에 지쳤거든요.

그러는 와중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이 죽는 순간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긴 Requiem이 있습니다. 이 음악은 라틴어 성가입니다. 이러니 더욱 라틴어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유명한 부분으로는 예를 들면 Lacrimosa 가 있습니다.

Berliner Philharmoniker & Claudio Abbado – Mozart: Requiem In D Minor: Sequentia: Lacrimosa

처음에 이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 라틴어 원본 : 영어 번역 대조를 봤는데 길이가 엄청 다른거에요. 아! 그래서 ‘안되겠다. 라틴어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라틴어 기초를 일단 떼려고 시작을 했습니다. 잘했어요!!

Basic Latin Essentials

이 강좌가 좋은게 군더더기가 없어요. 23강 중에서 16강을 현재 듣고 있습니다.

기초를 공부하고 기초 문법이 좀 다져지면 중급 부터는 정식 대학 강좌를 들을 생각입니다. 라틴어가 프랑스,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와 아주 가까워서 사실 라틴어를 배우고 나면 이 언어들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라틴어를 고급 수준까지 하려면 몇년 걸린다고 하는데요 시간은 많으니까 지금부터 해도 늦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47) 강석우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은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에 빠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을 들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오페라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 여행을 가면 차 속에서 이탈리아 칸초네 산타루치아나 오솔레미오 등을 부르셨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그 당시에는 ‘오페라가 뭐가 좋은거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저도 아버지와 같이 오페라를 좋아하는군요. ㅎㅎ

이번에 부러우면 지는거다는 강석우님으로 정했습니다. 강석우님에 대해서는 배우라고만 알고 있었는데요 3년 전에 송승환님의 원더풀라이프에 나오셨던 장욱제님께서 강석우님을 부럽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말씀하셨던 게 강석우님처럼 클래식 공부를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것이었어요. 5:55부터 보시면 강석우님에 대해 부럽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배우 장욱제 마지막화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강석우님에 대한 것은 우먼센스에 나온 기사가 있습니다.

강석우의 품격 – 우먼센스 10/1/2018

책을 발간할 만큼 클래식에 조예가 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들으면 제 감정이 움직인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기회가 생겨 처음 정식으로 음악회에 가보고, 대학교 때 대학 방송국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클래식을 전공하는 친구들도 사귀고 본격적으로 클래식을 알게 됐습니다. 배우가 된 후로는 일반 직장인보다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쉬는 기간 동안 음악회나 전시회, 발레 공연에 가는 등 취미 생활에 집중했어요. 벌써 40년이 넘었네요. 그러니 이제는 클래식이 제 몸에 밴 거나 마찬가지죠.

‘아트테이너’라고 불리며 전시를 열 정도로 그림도 잘 그리신다면서요?
아유,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림이나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어요. 그저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게 좋은 건지 판단할 눈과 귀가 생긴 거죠. 그 판단 기준에 저를 대입시키며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림 전시 같은 경우 벌써 30차례 이상 했네요. 제 그림을 산 분들에게 미안하죠. 어쨌든 그림은 앞으로도 계속 그릴 생각이니 그림값이 좀 올라야 할 텐데요.(웃음)

오늘 비가 옵니다. 비가 그치면 가을의 문턱을 넘어갈 듯한데 이럴 때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요?
팝 중에서는 도로시 무어의 ‘미스티 블루’. 약간 재지한 곡인데 이런 날 들으면 정말 좋죠. 그리고 20대 중반에는 이런 날이면 핑크 플로이드의 ‘더 파이널 컷’이란 곡을 꼭 들었어요. 이 곡의 트럼본 파트는 정말 기가 막히죠. 클래식에서는 가을엔 역시 브람스의 ‘인터메쪼 Op. 118’의 두 번째 곡. 많은 분이 계절이 연상되는 곡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꼽는데 제가 생각할 때 가장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작곡가는 브람스인 것 같아요. 교향곡 3번 3악장이나 4번의 1악장도 좋아요.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원작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란 영화에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 들어가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앞서 말한 건 좀 대중적인 곡들이고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곡은 (한동안 고민 후)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1번 2악장.

어떤 곡인가요?
독일 함브루크의 떠돌이 음악가였던 브람스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요아힘의 소개로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에 가게 돼요. 그때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만나게 되죠. 슈만의 집에 머물면서 당시 스무 살이었던 브람스가 세 곡을 쓰는데, 그게 소나타 1번, 2번, 3번이에요. 그 곡들을 듣고 클라라가 “투박한 껍질 속에 있는 열매”라고 했어요. 자신을 향한 브람스의 마음을 읽은 거죠. 자꾸 감싸려고 하지만 브람스의 마음이 곡 안에 다 들어 있는 거예요. 특히 1번의 2악장을 들어보세요. 아주 기가 막힙니다.

[KBS음악실] 2021.6.8. 살롱드피아노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번 Op.1 C Major 中 2악장 Andante) |안종도 피아니스트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딱히 계획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계획을 세운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요즘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있어요. 놀기. 짬이 나는 대로 여행 가고 골프 치면서 좀 놀려고요. 예전에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이제는 좀 놓으려고요.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일본에 가고, 10월에는 홍콩에 가요. 그렇게 살려고요. 지금부터는.

멋있지 않나요? 저도 그림을 좋아하고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강석우님처럼 직접 할 생각은 못하는데요. 직접 실행에 옮기고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이곳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