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비가 오더니 이제 보스턴 날씨도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한국은 지금 아마 많이 덥겠지만요 이곳 보스턴은 위도가 높기 때문에 여름이라도 아주 덥지는 않아요.
저는 인생 후기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에 Bucket List를 쓰고 있는데요 제가 가진 취미 중에 그림에 대한 취미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아직까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취미인데요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도 갖고 싶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도슨트라고 그림이나 조각 등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분들이 자원봉사자인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직업이고 대신에 시간이 좀 자유롭습니다. 공부도 좀 해야 하고요. Certificate이나 석사학위 이상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어서 인생2막이나 3막에 쉬면서 그림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이면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useum studies라는 분야가 있는데요 박물관에 관련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전문분야입니다. 아니면 History of Art (예술역사)나 고고학 (Anthropology) 같은 공부를 하면 이런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PhD in Science를 가지고 있어서 때가 되면 석사학위로 예술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미술사에 대해 공부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인상주의와 일본 유키요에에 대해 공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취미이면서 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 될 것 같고요 그래서 오늘의 Bucket List는 도슨트로 제 나름의 바램을 적어 보았습니다.
회사에서 미팅을 하든지, 뉴스를 보든지, 책을 읽든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든지 간에 어느 순간 생각이 갑자기 스쳐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생각을 잡으려고 재빨리 아이폰의 메모장에 스쳐간 생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오늘 적어 놓은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 자신”과 “나에 대한 평가”가 괴리되면 나의 판단력은 흐려질 수 있다. 결과보다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그 결과에 이른 “과정”이 어떠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이 생각에 대해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점심시간에 어떤 은퇴자의 영상을 보던 중 갑자기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동안도 주로 한국의 은퇴자들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며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갑작스런 퇴직에 대해 생각을 해 보는데요 살면서 정리해고 (Layoff) 형태로 퇴직을 몇차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아주 갑작스런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퇴직은 언제든 쉽지 않습니다.
정리해고를 당하게 (?) 되면 먼저 서류를 받는 미팅을 하고 나서 자리에 가서 물건을 박스에 정리해서 자리를 떠나는 게 순서인데요 가장 최근에 받았던 정리해고가 벌써 10년전이니 다소 까마득한 마음을 갖지만 그 이후로 저는 회사에 제 책상을 만들어 놓지 않고 가방 하나에 컴퓨터와 필요한 노트 등을 넣고 다닙니다. 언제든지 나가야 되면 책상 정리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가방만 들고 나가려고요.
정리해고가 이렇게 힘든 과정이지만 정리해고를 맞게 되었을 때 한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 안에 있는 나”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나는 회사의 명성 (?)이나 후광 (?)에 의해 감춰진 면이 있습니다. 물론 회사 내에서 하는 업무에 아주 특화된 일을 하게 되지요. 회사 내에서는 어느 정도 위치도 있고 실적도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다가 퇴직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하면 그 때에 비로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요 많은 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데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의 새로운 나를 창조해야 하는 수준이 되지요. 그래서 저는 현재 회사를 10년 가량 다니고 있지만 언제든지 회사와 별개인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려고 항상 생각하고 혹시 우리 회사나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저의 회사 이름만 보고 저를 판단하려고 하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살면서 배워서 다른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이 됩니다.
세상에 연구원은 많이 있지만 각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 각자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기업에 오기 전에 그런 방식이 만들어 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학위를 받기 훨씬 이전부터 살아오면서 채득한 방식일 수도 있고 여하튼 각자의 살아온 방식에 의해 이런 독특한 일하는 방식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일하는 방식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보다는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새로운 일자리에서 사고자 할 때 취업이 된다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를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저의 인터뷰를 구성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 현재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남이 뭐라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내가 스스로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으로 일한 것과 그렇지 않고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은 것을 구분하고 가능하면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하고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일이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 결과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저를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고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은 바이오텍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일 – 예를 들면 교회 사역을 한다든가, 가정을 돌보거나 등등 – 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저의 평생에 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저에게 항상 남는 “나 자신의 독특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나 자신”과 “나에 대한 평가”의 괴리가 느껴질 때 그 평가를 내리는 상대방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 홀로 곰곰히 생각해 보며 “진짜 나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발견하고 그 “나 자신”에 집중하도록 저를 재촉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지금 회사에서도 10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네요. 언젠가 이 회사도 떠나서 또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바이오텍을 떠나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하거나 아니면 일보다는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할지도 모르죠.
오늘도 저는 “나 자신”의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계발하며 성장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 세대는 어려서 부터 학교에서 항상 ‘개발 도상국’이니 ‘상위 중진국’이니 하는 말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의 중요한 사회 시스템도 선진화 되었지만 기업의 투자환경이나 생산성 환경이 크게 성장하여 선진국에 도달한 것을 미국에 사는 저보다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덜 피부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세계은행에서 “중진국 함정 (Middle Income Trap)”이라는 27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냈는데요
세계은행은 1일 ‘중진국 함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1200달러도 채 안 됐지만, 작년엔 3만3000달러에 육박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한국의 경제사는 높은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중소득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필독서’(required reading)”라며 “한국은 성장의 ‘슈퍼스타’(superstar)”라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1994년 고소득국 기준(GNI 1만3845달러)을 넘어섰다. 보고서에서 극복 사례로 함께 제시된 폴란드, 칠레와 비교해도 가파른 성장이다.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의 ‘3i’ 전략을 제시했다. 저소득국 단계에서 투자 촉진을 통해 성장을 시작하고 중진국 단계 이후에는 해외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낡은 제도와 관습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계은행의 조언이다. 그러면서 ‘3i’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소개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씨앗이 됐다고 분석했다. 금융·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고 시장 담합과 지배력 집중을 완화해 국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내용은 보고서의 내용을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1994년은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그 때부터 한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통틀어 꾸준히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정부가 진보정권이어서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선진국의 리더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브라질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중국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은 훨씬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고성장을 구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Venture Capital과 Private Equity가 선진국일수록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Venture Capital과 Private Equity가 성장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으로 이 보고서는 보고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 이전에 2007년에도 “동아시아의 르네상스 (An Eastasian Renaisance)”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데요 이 당시 보고서에서는 동아시아 국가 – 특히 일본, 싱가폴, 한국 – 의 R&D 노력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VOO는 미국의 대표적인 500대 기업의 지수를 추종하는 ETF이기 때문에 너무 미국에 국한되는 지역적 리스크 (Home Country Bias) 가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미국 이외의 시장을 추종하는 인덱스 ETF들을 좀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의 4개의 ETF들이 제가 투자하고 싶은 ETF 들인데요 그 중에서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시장을 추종하는 VEA와 한국을 포함한 Emerging Markets을 추종하는 VWO가 눈길이 갑니다.
IXUS (iShares Total International Stock ETF)
Expense ratio: 0.07%, Yield: 3.07%
VXUS (Vanguard Total International Stock ETF)
Expense ratio: 0.08%, Yield: 3.07%
VEA (Vanguard FTSE Developed Markets Index ETF)
Expense ratio: 0.06%, Yield: 3.38%
VWO (Vanguard Emerging Markets Stock Index ETF)
Expense ratio: 0.08%. Yield: 3.19%
나중에 미국시장은 VOO, 선진국 시장은 VEA, 그리고 때에 따라 Emerging Markets을 포함하고 싶으면 VWO를 넣거나 넣지 않거나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냥 (VOO+VEA) 조합이 가장 잘 헤징된 주식 포트폴리오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2010년부터 14년간 VOO (blue), VEA (black), VWO (red)를 비교해 보면 역시 VOO가 압도적인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로 VEA가 VWO에 비해 강세인 것을 알 수 있죠. 아직까지는 미국 중심의 시장이어서 아마도 VOO : VEA = 9 : 1 정도 비율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2024년 8월 8일은 우리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지 7년이 되는 날입니다.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합니다. 오늘 어머니를 추모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일서 4장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번째 4장12절 말씀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본 적이 없지요.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저희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을 여전히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갑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나 어머니께서 평소 애쓰시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형제 자매가 우애있게 살게 하시기 위해 힘든 생활 가운데에서도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생각하면 비록 어머니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는 안 계시고 천국에 계시지만 여전히 형제 자매를 돌보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올해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큰이모와 큰이모의 큰아들 재원이, 셋째 이모부 그리고 막내이모네 큰딸 지예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 분들과 제가 만나고 오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고 생각해서 였습니다. 사실 어머니도 계시지 않은 이 때에 이 분들을 꼭 만나야 할 이유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저에게 “계속 만나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 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에게도 잘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래서 올해에 큰어머니, 둘째 아들 용수처와 지윤이를 만나고 왔고 저는 따로 작은 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이것도 사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 댁은 도봉구에 있습니다. 큰이모댁은 남양주에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던 분당에서 가려면 거의 2시간 여를 가야 하더라고요. 대전에 다녀오는 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고 가면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래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서 찾아 뵈면 너무들 좋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들과 만나면서 어머니가 함께 계신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어른들과 옛날 얘기도 하고 최근 근황도 전하고 하면서도 어머니가 저와 함께 계신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어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저는 어머니가 저와 항상 함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행할 때 어머니가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자.
끝으로 우리가 다시 실제로 어머니와 만날 약속의 말씀을 나누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7절 말씀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로 부터 사랑을 배워서 알고 그 사랑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래서 동기간에 하고 있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지막 심판날에 담대해 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사는 것이고 그 사랑의 삶이 바로 우리를 천국으로 담대히 들어가게 하는 영원한 삶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고 살게 되고 결국에 어머니를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어느덧 8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최근 몇일간의 보스턴 날씨는 정말 한증막 같았는데요 마침 오늘 오후에는 소나기가 쏴아 내려준 덕분에 날씨가 많이 시원해 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한달간 휴가를 다녀와서 일을 하는 중에 있는데요 다른 동료들은 이제부터 휴가를 가는 것 같더군요. 물론 7월에도 많이 휴가를 다녀왔지만 8월에 몇주간 휴가를 가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다들 휴가들 잘 지내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항상 저의 생각이나 글이 그러하듯이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매일 매일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쓰던 초반에는 조기은퇴 혹은 조기퇴직을 염두에 두고 글을 많이 썼는데 시간이 지나고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조기퇴직보다는 ‘일과 여유를 함께 하는 삶“으로 저의 삶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있는 동안 20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동기가 고등학교 78회인데 그런 이유로 매년 7월 8일이면 정기모임을 하는데요 올해에는 마침 저의 휴가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동창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40여명 정도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보니 다들 많이 바뀐 것 같더군요. 일단 10여명은 전혀 모르는 동기들이어서 특별히 얘기를 나누지 않았고요.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일을 그만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좀 변했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좀 받았구요.
“이제 동창회를 꼭 나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꼭 만나야 하는 친구들도 분명히 보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제 너무 변해 버려서 그리 만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과거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때에는 문과, 이과 친구들을 모두 볼 수 있어서 다양성 면에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사는 모습이 이제 많이 변한 걸 느끼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도 저에게 다가오길 어려워 하는 것 같고 저 또한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얘기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동창회가 지난 후에 모임에 나오지 않은 동창들을 따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것도 결국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정말 누굴 더 만나고 누굴 더 이상 만나지 않을지에 대해 거의 마음에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와 함께 공부한 카이스트 동창들과는 서로 사는 게 비슷비슷해서 그런지 너무 편했어요. 올해에는 몇명만 만났지만 작년에 대전에 가서 대전에 사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느낌이었거든요.
“아! 이런 친구들이 편한 것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친구 중에 가장 오랜 친구는 교회 친구들이에요. 어떤 친구들은 중학교 때부터 만났기 때문에 만난지 40년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제가 너무 혼자 말을 하는 느낌을 그동안 받았어요. 그래서 그게 저는 좀 아니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저보다 연배가 높은신 분의 유튜브를 통해서 “3분 Talk을 하면 좋더라….” 이런 말을 들어서 이번에 우기고 우겨서 3분톡을 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았어요.
제가 말하는 시간을 확실히 크게 줄이기도 했고 그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서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다들 많은 일들이 있었더군요. 매년 한국에 들어오면 만나는데 그동안은 이런 얘기를 듣지 못하다가 올해에야 비로소 3분톡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나마 듣게 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교회 친구들과의 만남은 정말 죽을 때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랄 뿐이죠.
그리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아내인 이 친구는 교회 선후배 사이로 만나게 되어 결혼까지 하고 살고 있는데요. 요즘들어 점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아내가 하자고 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있고요 반대로 아내도 제가 하자고 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주는 것 같아요.
매주 한번씩 함께 골프 치고 매일 동네 한바퀴 걸으며 얘기하고 가끔 외식도 하고 어떤 때에는 미술관에서 그림이나 조각을 본다든가 콘서트홀에 가서 음악을 듣는 등 이런 저런 걸 함께 하는데 그 각각의 의미가 저에게 매우 크고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아마 그래서 저에게 이것이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 소확행 – 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와 아내는 오랜 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저의 Full-time 일을 하는 나이를 65세로 정한 상태이고요. 저는 이 때까지 큰 무리없이 바이오텍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 하고 싶으면 더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을 해요. –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친구들이 은퇴나이를 물어보던데 미국에는 은퇴연령, 즉 정년,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임금피크제라고 50대 중반 이후 정년까지 매년 임금이 깍이는 일도 없고요. 모두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임금은 계속 올라갑니다. 제가 일을 잘 한다는 가정에서요. 그리고 정년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일하는 연령도 스스로 정합니다. 저의 보스가 65세이고 저의 팀에 70세 가까이 된 연구원이 계십니다. 아직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두분 다….
얼마 전에 미국 교회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다들 오랫동안 – 70대까지는 – 일을 할 생각이더군요. 그리고 한 친구가 최근에 회사에서 은퇴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의 나이가 92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플랭카드 주제가 “Finally Retire!”라고 하더군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저도 제자신이 “언제까지 일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 봤는데 일단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65세로 아내와 약속 (?)을 했고요. 그 이후는 옵션입니다. 제가 현재 하는 바이오 연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66세 이후에도 일을 하리라 생각은 하는데 다만 일하는 형태가 주당 40시간/주5일 근무 형태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거죠. 최근 들어서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는 손을 잠시 놓았었는데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실험을 완전히 놓지는 말고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제 손으로 스스로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몇년 후의 미래가 잘되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가 가장 좋은 하루였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건강한 삶과 제 주위에 있는 진정한 친구들과의 교제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본래 주신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
한국에서 한달간 안식년을 보내는 중 7월 중순에 뜻깊은 일을 했습니다. 연세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K-NIBRT 사업단에서 60여명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여러나라에서 온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오픈톡이라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기사가 났습니다.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연세대학교 K-NIBRT 사업단(한국형 바이오공정인력양성센터)과 지난 10일 K-NIBRT 바이오공정 교육생을 대상으로 ‘mRNA 오픈톡’ 세션을 열고 mRNA (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의 의학 응용 방향성을 공유했다고 11일 밝혔다.
연사로 나선 모더나 글로벌 공정 화학 부문 임진수 박사는 ‘불가능을 넘어선 여정’이란 주제로 팬데믹 이전의 mRNA 연구개발부터 코로나19 대응 백신 개발 과정과 미래 의학을 바꿀 mRNA 의약품의 가능성에 중점을 뒀다. 임 박사는 2015년 모더나 본사에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로 입사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mRNA 백신 개발에 참여했다.
임 박사는 10년 이상 mRNA 연구에 매진한 모더나의 플랫폼을 소개하며 mRNA 기술의 유연성은 단 65일 만에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양한 질병에 대한 mRNA 치료제를 개발하는 동시에 미래 팬데믹에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 “이번 산학협력 사례가 국내 mRNA 기술 분야 전문성을 높이고 세계 공중 보건에 기여하는 전문가 양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감사하게도 저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은 연수생 중 한 분이 소감을 Linkedin에 올려 주셨습니다.
It was an inspirational sharing by the technical expert, Dr Jin Lim from Moderna about Moderna mRNA technology and how they have come so far climbing the mountain during the pandemic. Moderna transformed from a small company of 300 employees to a robust organization of over 5,000, meeting the pressing global demand for vaccines.
Dr Jin Lim mentioned that they couldn’t sleep during the pandemic, rushing through the vaccine development pipeline in 9 months — a process typically takes 10 years! Once again this reminds all of us that behind every challenge, there are great unsung heros working tirelessly to accelerate public health solutions.
Thank you Moderna team for all the hard work and meaningful engagement with us at K-NiBRT, Yonsei University.
그리고 저희 회사의 Senior Vice President께서 저의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A few days ago, Moderna Korea, represented by my esteemed colleague Dr. Jin Lim, hosted a ‘Moderna mRNA Open Talk’ session for Yonsei University Korea National Institute for Bioprocessing Research and Training (K-NIBRT).
This event provided an invaluable opportunity for K-NIBRT bioprocessing students to delve into the world of drug development through hashtag#mRNA technology and explore its potential future applications in various medical fields.
Dr. Lim eloquently shared Moderna’s decade-long dedication to mRNA platform research, emphasizing the remarkable agility of mRNA technology. Notably, this platform enabled us to initiate clinical trials for our COVID-19 vaccine in just 65 days. Today, we are leveraging the same platform to pioneer innovative mRNA therapeutics across a wide spectrum of diseases.
Dr. Lim’s insights deeply resonated with the audience: “Collaborative efforts between industry and academia, such as those between Moderna and K-NIBRT, will enhance expertise in the domestic mRNA technology field and help foster experts who will contribute to global public health.”
Such partnerships are essential for advancing scientific knowledge and improving public health. A heartfelt thank you to Yonsei University K-NIBRT, Moderna Korea, and all the participants for making this event a resounding success!
Moderna를 대표해서 연세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있는 바이오 공정 교육생들과 교수님들을 위해 백신 개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오신 교육생들이 너무나 열정적으로 배우려는 모습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고 더욱 열심히 일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고해 주신 연세대 관계자 분들과 모더나 코리아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달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명의 과학전공자들로 부터 커리어 코칭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박사학위를 받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었고 또 다른 한 분은 생명공학 4학년에 올라가는 학생으로 현재 인턴을 하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두 분과 일주일의 시간차를 두고 온라인 미팅을 하게 되었는데 두 분 모두 공히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하기 원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과거에 가졌거나 최근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고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돕는 코칭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답을 얘기하는 멘토링을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남이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질문을 하기 보다는 저의 사례를 나눔으로 통해서 좀 생각을 해 보도록 이끌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은 장황하게 얘기를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저 자신을 오픈하는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미래는 아무도 모르죠. 그리고 코치나 멘토라고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이지 완성된 사람이 아닌 건 맞고요. 다만 의뢰인의 상황을 들어보고 그에 맞는 과거 사례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정도는 얘기를 해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서 저 스스로 생각으로는 의뢰인들이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는 느낄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격려를 통해서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드리고 싶었고 주저하지 말고 한발짝 더 앞으로 내딛고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실어서 저의 응원을 보냈습니다.
코칭이 되었든지 멘토링이 되었든지간에 누군가의 인생의 어느 순간에 결정을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은 항상 쉽지 않습니다.
저도 과거에 많은 실수와 실패가 있었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서 지금이 있게 되었습니다. 저와 상당한 의뢰인들도 실수와 실패를 딛고 나아가서 나중에 누군가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램을 갖습니다.
사유를 존중하는 서양식 사고방식에서 나온 학문 중 하나가 철학 (Philosophy)이라고 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사유하는 사람을 철학자 (Philosopher)라고 하지요. 저도 한동안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중요한 철학자의 책들도 읽고 시간을 내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자와 철학자의 책이 주는 유용성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다양한 사유와 오랜 고민의 결과로 부터 일반적으로 평소에 생각하지 않은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철학도 물론 이런 두뇌의 사고훈련이라는 입장으로 중요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과거 철학은 권력자의 편을 옹호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대중을 굴복시키는 데 이용되곤 했지요. 한 때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라는 이야기도 했던 만큼 철학은 단순히 생각을 하는 도구학문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권력을 한군데로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서 더이상 철학적 사유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은 좀 사라진 상태입니다. 권력을 옹호한 것은 공자, 맹자를 위시한 동양철학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위시한 서양철학에서 공히 유사한 것 같고요 그 이후의 동/서양 철학도 조금씩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큰 조류에 있어서는 결국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철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제가 추구할 분야는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대신에 “사상가 (思想家, Thinker)”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사상가는 한자나 영어에서 보듯이 ‘생각하는 사람, 사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을 보면 사상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턱에 손을 괴고 뭔가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죠?
저는 이 중 “과학 사상가 (Scientific Thinker)”가 되는 것에 대해 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과학 사상가는 주로 과학적 현상을 대상으로 과학적 사고를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학과 기술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요즘 보다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과학에 대해 보다 깊은 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4차산업이나 인공지능, 생명공학 혁명의 시대라는 명칭 등으로 작금의 과학기술문명이 과거에 없이 급진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언론의 조명이 시도 때도 없다 보니 많은 분들이 과학 기술에 대해 너무 맹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과거에도 이런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7, 18세기 산업혁명이 그러했고 20세기의 자동차나 항공 산업도 당시로서는 너무나 획기적이었지요.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문명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일을 적게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시간이나 강도는 오히려 늘어났고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지요. 최근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등장해서 우리의 삶의 질이 늘었는가? 하면 어쩌면 우리가 보다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처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삶의 질이 더 나빠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은 또 어떨까요? 인공지능이 미래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깡통 (Artificial Stupidity)이죠. 기계가 내놓는 많은 답변들은 여전히 정확하지도 않고 오히려 인공지능을 위해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좀 장황하게 되었지만 저는 과학을 과신하거나 맹신하는 것을 매우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과학은 불가지론 (Agnostic), 즉 ‘아무 것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한 학문으로 현재의 사실들이 언제든지 뒤집어 질 가능성이 있는데요. 과학적 발견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어리석음의 늪으로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제가 오랜동안 일하고 있는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에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내용은 현실적인 한계를 거의 담지 못하는 것 같은 인상이고 아직 확인되지 못한 환상만 심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이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오류성과 함께 과학을 이해할 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특히 생명 윤리와 같은 과학 윤리 현상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다양한 생각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2024년 7월의 끝자락을 넘어 8월로 넘어가는 보스턴의 날씨는 마치 초가을을 연상하듯 다소 시원한 느낌을 갖습니다. 아직도 기온은 높은 편이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인지 긴팔, 긴바지를 입고 나서도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7월을 인생의 70대, 8월을 인생의 80대라고 생각하면 어떠할까? 그 인생을 을씨년스럽게 느낄까? 아니면 그 인생을 핫 (Hot) 하다고 느낄까?
오늘 소개하고자 하고 제 마음속에 저장하고픈 ‘부러우면 지는거다 49호’의 주인공은 이달호 (81세), 전태연 (71세) 부부이십니다. 이 두분의 이야기는 KBS 인간극장 2024년 7월 22일부터 7월 26일까지 방영된 ‘할매요, 학교 가재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분은 모두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경상북도 김천시 마고실마을에서 담배농사를 지으며 4녀1남의 5남매를 모두 전문대 이상부터 대학원까지 공부를 시키신 분이십니다. 이 분들은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초등학교가 학생들의 감소로 인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어린 학생들 대신 초등학교에 입학한 15명의 시니어 분들 중 두분이십니다.
이달호 (81)님은 10살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동냥을 하며 어렵게 끼니를 얻어가며 살아야 했고 그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글을 읽으시고 쓰실 수 있습니다. 이달호님은 성실하게 마을을 섬기며 사시다 보니 이장도 하시고 감사패도 받으시고 시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신 적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자신에게 없는 ‘졸업장’이 평생 자신의 마음을 꾸욱 누르는 돌덩어리처럼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태현 (71)님은 가난한 집의 맞딸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이 그렇듯 딸은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한 식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자체를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자무식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십니다.
그런데 이달호님이 자신이 훗날 세상을 떠날 때를 대비해서 아내가 혼자서도 살 수 있으려면 읽고 쓰는 정도는 배우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아내와 함께 입학을 하셨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이 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밭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밭일을 하고 씻고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합니다.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려면 집에 와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하기 전에 먼저 밭일을 마저 해야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약간 주어집니다. 그것 마저도 하루일과로 지친 나머지 쓰러져 잘 때가 많습니다.
이달호님의 소원과 목표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87세가 되셔야 졸업장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한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수, 과학, 사회 등등 다양한 과목을 고루 마쳐야 하죠. 이달호님께 이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달호님은 꼭 졸업장을 받고 나서 온가족들과 함께 밥 한끼 함께 먹는게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고 하며 허허 웃으십니다.
전태연님의 목표는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글을 모르니 그동안 자녀들의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서 전화번호 숫자로만 간신히 큰딸에게만 전화를 걸곤 했습니다. 아직도 한글 실력이 완전치 않으십니다. 받침이 문제입니다. 받침이 없으면 그래도 읽을 수 있는데 받침이 있으면 많이 어렵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하고 받침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살지 않게 하기 위해 5남매를 모두 도시로 보냈습니다. 한글을 잘할 수 있게 되면 자녀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겠죠?
최근 자녀들이 자신들의 카톡방에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초대한 후 딸들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글 공부를 이제 시작한 엄마를 배려해서 인사말은 아주 짧습니다.
이달호님이 아내를 위해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똑같은 말을 마음을 꾹꾹 담아 몇번을 고쳐 쓰다보니 5, 6번을 고쳐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몇줄 안되는 편지를 다 쓰고 봉투에 고이 넣어서 바지 주머니에 감추어 놓았습니다.
식당을 하는 처제네 집에 갔다가 식당 시간을 피해서 서둘러 나온 뒤에 시간이 조금 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금오산에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그리고 산의 한켠에 놓인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쉬는 중에 슬며시 편지를 건넵니다.
아내는 아직 그 편지를 제대로 읽을 실력이 되지 않아 남편의 목소리로 다시 듣습니다. 남편은 밀려오는 눈물을 꾹꾹 참아내며 어렵게 편지를 읽어 줍니다. 아내의 눈가도 촉촉해 지고 남편의 눈가도 촉촉해 집니다. 그리고 함께 다짐합니다. 이제 이렇게 편지를 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