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10) – Merck’s wholly-owned subsidiary IDENIX Story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4년 2개월간의 New Haven 생활을 뒤로 하고 보스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내용들은 보스턴 이전에 있었던 저의 다양한 경험들을 시간순으로 나열을 한 것입니다. 보스턴에 오기 전 제가 조인한 회사는 직원 300명 중 100명이나 되는 인원을 정리해고하는 대량 인원감축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회사주가는 폭락하였고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조인할 팀은 이번 정리해고를 비켜간 듯 했습니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던 Idenix라는 회사가 7년후 10배로 기업가치가 크게 상승하며 Merck의 wholly-owned subsidiary로 합병되기까지의 과정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Idenix Pharmaceuticals는 Nucleoside를 기반으로 해서 이미 Telbivudine이라고 B형간염치료제 (HBV)에 승인되어 판매하는 신약이 있었고 이 약물의 개발로 인해 Novartis가 51%의 지분을 갖는 회사로서 제가 입사할 당시에는 C형간염치료제 (HCV) 신약개발을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Yale University에서의 Investigation 결과 제 친구가 실험실에서 강제로 떠나게 된지 얼마 후인 6월경 지도교수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더이상 임군의 연구를 지원할 Fund가 없다. 8월까지만 지원할것이니 Job을 찾아봐라!”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에서 Job을 찾아보려는데 갑자기 CV와 Resume를 만들고 다행히 학교 안에 Resume를 도와주는 분이 계셔서 교정을 받아보며 여기저기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일이 촉박했던 관계로 만일을 대비해서 일단 University of Virginia에 있는 한 연구실에 지원해서 Second Postdoc Offer는 가지게 되었지만 Biotech 회사들에 지원한 서류의 결과를 받아들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저에게 Phone Interview를 해 온 회사가 바로 Idenix Pharmaceuticals였습니다. 사실 나중의 Boss와 Phone Interview를 했는데요 첫번째 질문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Do you like chemistry?”

I said, “Yes!!”

이렇게 시작된 Phone Interview는 30여분간 큰 무리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On-Site Interview를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8월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지도교수님이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교수님: “요즘 Job 알아보는게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저: “일단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Second Postdoc Offer는 받았고 Biotech 회사들과 Interview를 진행 중인데 아직 Offer는 받지 못했습니다.”

교수님: “그럼 몇달간은 어떻게 해서든 Grant 지원을 해 줄테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알아봐요.”

이렇게 교수님께서 다시 시간을 주시는 바람에 저는 1-2개월의 시간을 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7월에 Idenix Pharmaceuticals의 On-site interview를 했고 Interview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예정에 없이 Boss가 실험실 구경을 시켜주더니 점심을 함께 하러 나가자고 하더군요.

Boss와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Boss는 자기가 어느나라에서 온 사람같느냐고 물어보더군요. 남미에서 오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말하면서 미소를 짓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Egypt 사람이었습니다. Egypt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Interview를 잘하고 돌아와서 California에 있는 두군데 Biotech의 Phone Interview와 On-site interview를 잘 마치고 이제 Offer만 받으면 되었습니다. 결국 가장 먼저 Offer를 준 곳도 Idenix Pharmaceuticals였고 이 Offer 를 받은 사실을 다른 회사들에게 알리고 나서 나머지 두군데의 California에서도 조금 더 좋은 offer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3개의 Offer를 받은 상태에서 아내에게 Boston에 갈 것인지 California에 갈 것인지 알아서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Boston을 택했고 Idenix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결정을 결국 아내가 했지만 여호와이레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하나님이 나의 고용주이시다”라는 원칙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Idenix Pharmaceuticals가 바로 제가 전공한 “Nucleoside” 신약개발을 하는 회사였다는 것입니다. 더 신기했던 것은 저의 PhD 연구제목이 2′-C-branched Nucleoside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회사에서 당시 개발하고 있던 C형간염치료제 약물이 바로 2′-C-branched Nucleoside였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 회사에 가려고 했다면 이런 회사를 찾을 수는 없었을텐데 지도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말 미국에는 저에게 기회가 있을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Idenix Pharmaceuticals에 입사를 기다리며 이사 준비를 하던 중에 100명을 layoff한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고 주가는 바닥을 치고 있었습니다. Boss에게 연락해보니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고 오히려 저에게는 다행히도 주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저의 Stock Option 행사가격은 최저가격으로 받고 입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가장 처음에 받은 Project는 IDX184라는 약물이었습니다.

이 약물의 공정개발과 Scale-Up을 해서 Tox Batch를 만들었고 이 약물은 IND filing을 거쳐서 임상2상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Clinical Hold를 당했고 결국 약물은 다른 회사의 약물이 실패하면서 같은 Class로 여겨지면서 FDA로 부터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 약물이 실패한 것도 상심은 되었지만 이후에도 몇개의 Nucleotides 약물을 계속 올렸고 번번히 Clinical Hold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Idenix 는 “Clinical Hold Company”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2007년 11월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해가 지나 2008년에 유명한 Sub-prime mortgage사태와 함께 대형투자은행인 Leman Brothers가 파산을 하면서 VC Funding Market이 갑자기 경색이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Idenix는 2009년 이후부터 매년 Layoff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주위의 거의 모든 회사들에서 Layoff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Layoff된 사람들은 Job을 찾아 이곳 저곳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한국인들 대부분은 귀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은 모든 Biotech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Boston 지역의 Job Market은 얼어 붙었고 임금도 수년째 동결되며 자리가 보전되는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회사의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CFO로 있던 분이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Novartis가 우리회사에 추천한 분이었는데 이 분이 올라온 후에 CSO가 물러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저의 모든 팀 동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실제로 연구를 하는 정규직은 저만 남게 되었고 이후에 계약직 직원 몇명을 뽑아서 새로운 Project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정리해고 이후에 Hedge Fund로 부터 $200M (3,200억원) 이라는 큰 규모의 Funding이 되었고 어찌된 일인지 회사는 갑자기 경력직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약개발의 방향도 몇년간 해오던 Protease Inhibitors Program에서 다시 Nucleotides Program으로 변경되었고 우리에게 Clinical Hold를 안겨준 Guanosine Series 개발에서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Uridine Series로의 급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좋은 화합물을 얻은 덕분에 드디어 임상이 진행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적어도 2-3개의 Nucleotides 약물을 6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임상에 올리게 되었는데 저는 CMC부분의 대표자격으로 Task Force팀에 들어가서 이 약물이 임상에 올라가기 위한 IND-enabling Studies 와 IND Filing 작업을 다른 팀 동료들과 함께 하며 처음으로 회사의 전체적인 신약개발을 근 1년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중 우리가 개발한 IDX-21437이 임상2상에서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게 되었고 어느 날 출근을 하는 중에 작년에 Layoff되었던 한국인 동료로 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Merck가 Idenix를 샀어요! 이제 Merck 연구원이 되셨어요! 축하해요!!”

얼떨결에 출근을 하고 보니 그분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회사는 너무나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회사의 Valuation이 본래 $1B (1.2조원) 이 채 안되었는데 이보다 거의 4배에 가까운 높은 가격인 $3.85B (4조6천억원)의 Premium으로 All-Cash Deal로 회사가 매각이 된 것이었습니다. 아래 논문은 IDX21437 약물의 개발과정을 보여준 논문입니다.

The discovery of IDX21437: Design, synthesis and antiviral evaluation of 2′-α-chloro-2′-β-C-methyl branched uridine pronucleotides as potent liver-targeted HCV polymerase inhibitors – Bioorg. Med. Chem. Lett. 9/15/2017

Merck와의 합병과정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회사가 합병되고 한달후 저는 2주 Layoff Notice를 받게 되었습니다. Layoff Notice를 받았지만 저는 저자신을 시험하고 싶어서 Site Head로 새로 오신 Merck의 AVP에게 Merck Process팀에 interview를 할 수 있겠느냐?고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 분은 오히려 흔쾌히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덕분에 2주 Layoff Notice 기간 동안에 저는 New Jersey에 있는 Merck Process팀의 3명의 주요 멤버들과 Job Interview를 할 수 있었습니다. Interview는 결국 잘되지 않아서 2주후에 예정대로 나가게 되었지만 저는 이 Interview 과정 중에서 Merck Process 연구원들에게 우리가 IDX21437을 개발하면서 알게된 중요한 정보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Layoff로 회사를 떠나고 나서 저는 6개월분의 급여를 Severance Package로 받을 수 있었고 All-Cash Deal로 모든 Stock Option을 행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Unemployment benefit도 받을 수 있어서 풍족한 상태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제가 Merck에 Idenix가 인수되어 Merck’s wholly-owned subsidiary가 되어서 Layoff가 되었지만 한가지 희망은 이 약물이 결국 승인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상 3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Merck는 MK-3682 (Uprifosbuvir, IDX21437) 약물의 개발을 중단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듣고 너무나 실망을 했습니다.

Merck Discontinues MK-3682B and MK-3682C Development Programs – Merck Press Release 9/29/2017

이 결정이 난 배경에는 Nucleotide 를 포기하고 Protease Inhibitor+NS5A Inhibitor Combo로 전략을 수정한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나중에 이 Combo 신약은 Zepatier로 FDA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Nucleotide 약물인 Sofosbuvir를 중심으로 한 Gilead/Pharmasset의 C형간염 약물에 시장에서 크게 밀리면서 결국 거의 대부분의 시장을 Gilead 독점으로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대신 Merck는 이 약물의 공정개발 Know-how를 보다 발전시켜 여러가지 좋은 논문을 내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그 중 Science와 Org. Proc. Res. Dev.에 난 논문은 제가 개발한 과정을 Interview에서 보고한 것을 발전시켜 논문을 낸 것이어서 그나마 저로서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A multifunctional catalyst that stereoselectively assembles prodrugs – Science 4/28/2017

Manufacturing Process Development for Uprifosbuvir (MK-3682): A Green and Sustainable Process for Preparing Penultimate 2′-Deoxy-α-2′-Chloro-β-2′-Methyluridine – Org. Proc. Res. Dev. 8/16/2022

근 7년간 Merck’s Wholly-Owned Subsidiary, IDENIX에서 일을 하면서 수많은 Clinical Hold를 경험한 것은 제가 향후 새로운 Platform으로 나아가는 데 아마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Job을 찾는 과정에서 실패확률이 높고 독성문제로 고전하는 Small Molecule 분야보다는 보다 선택적인 Large BioMolecule분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저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다음에는 보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다 상세히 나누고자 합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20) – Boston 임박사의 무한도전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매년 5월이면 알러지로 고생을 하는데 다행히 어제 비가 좀 오고 다음주 월요일 메모리얼데이가 되면 Seasonal Allergy는 끝나게 됩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여전히 가끔 말을 좀 오래하면 잔기침이 나는데요. 매일 Zyrtec-D를 먹으며 버티는 중입니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기침이 줄어들겠죠.

얼마 전부터 책을 쓸 요량으로 “성공확률 0.01%: 모더나 임박사의 무한도전“이라는 글을 연재해서 쓰고 있는데요. 이것과 “My Memoir in Biotech – Moderna“를 엮어서 전자책이나 종이책을 내려고 생각하고 글을 열심히 쓰는 중에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점이 있구요 덕분에 제가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에 대해서도 정리가 나름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전문작가는 아니니까 글을 쓴 다음에 다시 읽어보면 손과 발이 오그라 들어요. 그래도 약간 위안을 얻는 것은 글을 쓰고 나면 머리속에 있는 생각을 일단 밖으로 끄집어 냈다는 것 때문에 좀더 다른 새로운 생각을 다시 머리속으로 쑤셔 넣을 수 있는 공간마련은 좀 되는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혼자 생각하기에 글을 쓰면 머리속은 좀 비어내는 것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블로그를 쓰면서 유튜브를 오래 듣던 습관이 많이 해소가 되었는데요. 뭐랄까…굳이 유튜브에 기대어 듣고 있을 필요는 없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제가 뭔가를 생산해 내고 있다는 만족감이 누군가가 생산한 유튜브를 단순히 소비할 때 보다는 더 좋은 느낌이 있는 듯해요.

요즈음 들어서 부쩍 Next Chapter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앞의 글에서도 그 얘기를 좀 나눴죠.

내가 쓰는 나의 삶 (19) – The Next Chapter – 내 인생 계획표

그런데 가만히 좀더 생각을 해보니까 말이죠. Next Chapter로 가기 전에 This Chapter를 먼저 잘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참…이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글로 쓰면서 생각을 하니까 정리가 돼요.

그래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This Chapter에 대한 얘기에요. 제목을 “보스턴 임박사의 무한도전“이라고 지었는데요.

제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 장 (This Chapter)에서 제가 뭘 하는 게 가장 중요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저는 그것을 “승진 (Promotion)“이라고 계속 생각하고 그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에 승진을 한 다음에 거의 6년째 승진을 못하고 있으니 뭐 이런 생각을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요.

그런데, 정말 승진만이 나의 “이번 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까? 를 생각을 곰곰히 해 보게 되었어요.

이게 아마 여유가 생겨서 이런 고민도 할 수 있는거죠? 지낼만 하다는 얘기에요….

이걸 잘 생각하는 방법은요 영혼이 먼저 가출을 해야 해요. 죽는다는 뜻은 아니고요. 영혼이 먼저 직장을 떠나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 영혼 (보스턴 임박사의 아이덴티티라고 해두죠)이 다니는 Moderna를 떠나서 그만두고 혼자 산다고 가정을 했을 때 나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아쉬울 것 같으냐?를 한번 가만히 따져 보고 싶어진거죠.

자…좀 쉽지는 않은데….예전에 회사를 몇달간 안 다닌 적도 있으니까 그 생각을 하면서 대략 저를 회사 밖으로 일단 끄집어 냈어요.

그리고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까….

영혼이 회사를 떠나서 좋은 점은 아마도 “새로운 것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과 “승진“이 될 것 같더라구요.

반대로 영혼이 회사를 떠나서 아쉬운 점은 아마도 “행사하지 못하고 남겨진 스탁옵션 – 이거 좀 큽니다”, “상용화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많은 신약들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것 – 이건 스탁옵션보다 더 크고요.”, “안식월 1달 사용하지 못한 것 – 이것도 작지 않죠.”, “새로운 프로젝트 (말은 못합니다만)를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자책” 등등이 남겠더라구요.

그래서 대략 따져볼 때, 영혼이 가출을 한 상태로 봤을 때는 회사를 떠나서 아쉬운 것이 회사를 떠나서 좋은 점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영혼이 돌아왔고요. 이제 영육이 하나로 현재 이번장에서 할 일을 일단 최대한 마무리할 때까지는 버텨보자!는게 오늘은 저의 결론이에요.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생각이 자꾸 왔다 갔다 하는데요. 일단 정리된 사실 하나는…

이번 장 (This Chapter)을 끝내기에는 아직 여전히 이르다!“는 것입니다.

다음주와 그 다음주에는 또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그 일이 끝나고 중대사를 마치고 나면 가을이 오겠는데요?

다른 걸 다 떠나서…제가 살아가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신약을 상용화를 최대한 많이 하고 블록버스터 신약을 많이 만드는 거에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하는 일이 새로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 보다 이 목표에 가장 근접해 있어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성공확률 0.01%: MODERNA 임박사의 무한도전 (4) – Corona Virus 연대기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과 공존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깨닫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주위에 가끔씩 나타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감기 정도의 작은 앓음으로 지나가다가 2000년대 들어서 몇차례 크게 지구의 몇군데를 크게 강타한 적이 있다. 아래는 코로나 바이러스 Phylogeny Tree인데 이것은 각각의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얼마나 가까운지 – 예를 들면 얼마나 가까운 친척인지 – 를 보여주는 것이다. 점으로 표시된 마디가 분화된 시작점이고 같은 줄기에 있을수록 그리고 가까울수록 가까운 친척이다. 이번에 COVID-19의 원인균이 SARS-COV-2는 2003년 SARS 의 원인균이었던 SARS-COV-1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003년에 있었던 SARS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었 때 모든 인간들은 Y2K라 불리던 밀레니엄 버그라는 컴퓨터 문제에 골몰하고 있었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너무 IT에 치중한 나머지 BT를 무시한 결과였다.

2002-2004 SARS Endemic

2003년 코로나바이러스는 SARS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21세기 첫번째 엔데믹을 안겨주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2002년 11월에 중국의 광동지역이었고 박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4년 5월에 끝나기까지 전세계적으로 29개국에서 8천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774명이 숨졌다. 당시 한국은 노무현 정부가 잘 대처한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지만 가까운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폴의 경우에는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특이하게도 카나다에서도 사망자가 많았다. 미국도 부시행정부가 잘 대처하여 팬데믹까지 가지는 않았고 엔데믹으로 마감되었다. 이 때 원인균이 SARS-COV-1이고 우리가 최근 겪은 COVID-19의 원인균은 SARS-COV-2로서 거의 가까운 종이다.

2012- 현재 MERS Endemic

SARS가 끝이 난 후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곁을 잠시 떠나갔다가 2009-2010년 Swine Flu를 한번 겪고 난후에 2012년 MERS로 돌아왔다. MERS는 SARS의 원인균인 SARS-COV-1보다는 다소 먼 친척이다. MERS는 중동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2012년 처음 발견된 후에 산발적으로 중동에서만 발발을 했는데 2015년 갑자기 중동이 아닌 한국에서 MERS로 인한 피해가 컸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 이유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당시 19명이 사망하고 184명이 감염되었으며 6,508명이 격리되었다.

이 당시 MERS의 초기대응실패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팬데믹 예방책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2019년의 COVID-19에서 드러났듯이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신속한 초기대응과 자가격리 조치 등으로 큰 피해를 극도로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MERS 당시를 겪은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아직도 MERS는 몇년에 한번씩 지역별로 출몰한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것은 2020년이다. 낙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9-2022 COVID-19 Pandemic

우리가 최근에 겪은 COVID-19 팬데믹은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했는데 중국정부가 초기대응을 수개월간 하지 않으면서 전세계에 심각한 팬데믹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서 한국은 천우신조로 MERS 베테랑이었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리더로 얻는 천운을 얻었다.

동아일보는 팬데믹 이전, 팬데믹 초기, 팬데믹 중기 및 팬데믹 말기까지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모습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경의를 표했다. 2022년 5월 정은경 청장은 퇴임했다.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대응 실패로 매우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행히 Dr. Anthony Fauci라는 베테랑 덕분에 더 큰 사상을 피할 수 있었고 특히 백신개발에 전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확실하게 대응함으로써 팬데믹이 비교적 조기에 엔데믹으로 바뀌도록 한 공로를 세웠다. 파우치 박사님에 대해서는 이전에 블로그를 나눈 적이 있다.

Unretirement (15) – Dr. Anthony Fauci

COVID-19 팬데믹은 2019년 중국 우한지역에서 발생한 이후에 지금까지 766,984,321명이 전세계적으로 감염되었고 6,935,876명이 사망한 초대형 규모의 팬데믹이었다.

여전히 미국과 한국은 주요 6개국에 들어간다.

COVID-19 팬데믹을 겪으며 리더가 얼마나 중요하고 특히 경험있는 리더의 능동적 대처가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백신과 치료제의 조속한 개발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겨주었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성공확률 0.01%: MODERNA 임박사의 무한도전 (3) – RNA Virus로 부터 배우는 교훈

RNA Virus

바이러스는 유전자의 형태에 따라 크게 DNA Virus와 RNA Virus로 나뉜다. DNA Virus로 대표적인 것은 B형간염 바이러스 (HBV, Hepatitis B Virus)와 Shingles를 일으키는 VZV (Varicella-Zoster Virus), HSV (Herpes Simplex Virus),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 (Herpes Papilloma Virus) 등이 있다. DNA Virus는 인간의 DNA에 삽입 (insertion)되거나 circular DNA 형태로 존재하면서 몸의 면역이 약해졌을 때 계속해서 발현하고 평생 질병을 일으킨다. DNA는 유전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혹시 돌연변이가 생기더라도 교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

반면 RNA Virus는 유전정보를 DNA가 아닌 RNA 형태로 가지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RNA 바이러스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C형간염 바이러스 (Hepatitis C Virus), Ebola Virus, Zika Virus 그리고 RNA에서 DNA를 만드는 Retrovirus인 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등이 있다. RNA는 교정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쉽게 일어나고 따라서 변종이 아주 쉽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HIV의 경우에는 1987년에 팬데믹이 있었는데 그 후 지금까지 백만개 이상의 변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이러다 보니 RNA Virus는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아주 흉악한 미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RNA Virus의 RNA는 인간의 mRNA와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복제 메커니즘도 인간의 방식과 다르다. 따라서 RNA Virus의 이러한 다른 구조를 인식하는 Pattern Recognition Receptors에 작용하는 내재면역 (Innate Immunity) 메커니즘이 우리 몸에 있기 때문에 RNA Virus가 우리 몸에 침투해도 웬만해서는 쉽게 분해되는게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RNA Virus들은 우리의 면역계를 셧다운 시킬 수 있고 그래서 우리 몸안에 침투해서 복제를 하며 복제와 변종을 일으키는 과정을 통해 어떤 경우에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할 수 있다. 우리가 겪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COVID-19 Pandemic)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나온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사태였다.

RNA Virus는 또한 생화학 무기에도 응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 (지금의 러시아)이 냉전을 하는 동안 RNA Virus인 VEEV를 이용해서 생화학전에 사용할 수 있는지를 미국과 소련이 모두 연구했다는 얘기도 전해질 정도로 RNA Virus는 매우 오랜기간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반인들이 잘 몰라서 그럴뿐 RNA Virus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표적으로 연구되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유전자 치료제의 모델로도 연구되고 있다.

RNA Virus의 구조와 전달체계

RNA Virus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유전자를 증식하고 다시 나가는 과정은 아래에 그림에 보이는 것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먼저 RNA Virus는 RNA 유전자를 둘러싸고 있는 Capsid라고 불리우는 지질막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 지질막에는 인간의 세포막 표면에 있는 Receptor와 결합해서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구조의 Spike Protein이 있고 이 Spike Protein이 인간의 세포질을 뚫고 들어가면 지질막은 벗겨지고 RNA 유전자가 인간의 Ribosome에 의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서 다양한 복제과정을 일으키며 이렇게 생긴 새로운 바이러스 유전자들은 다시 새로 만들어진 지질막에 둘러쌓여 인간의 몸을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병을 일으키지 않고 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죽게 만들 수도 있다.

RNA 자체는 본래 매우 불안정한데 그냥 물 속에 있으면 20분 이내에 모두 분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RNA 자체로는 우리에게 큰 위험을 끼칠 수 없고 바로 이런 지질막으로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분해되지 않고 우리 몸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VEEV의 경우에도 예를 든 것처럼 RNA Virus를 이용하면 질병을 유발해서 전쟁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고 치료 유전자를 넣어주면 유전자 치료에도 이론상으로는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RNA Virus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어 왔다.

mRNA-LNP의 탄생

RNA Virus가 RNA 유전자와 지질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변형한 방식이 지금의 mRNA-LNP 전달 방식이다. 이 때 mRNA는 RNA Virus가 가진 구조를 띄게 되면 당연히 우리 몸의 Pattern Recognition Receptors에 의해 내재면역 (Innate Immunity)의 공격으로 사멸되거나 강력한 염증반응을 유발해서 몸에 통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천연 mRNA는 유전자 전달에 사용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mRNA 치료제가 수십년간 개발되지 못한 이유이다. 천연 mRNA는 할 수 없지만 오랜 연구의 결과로 내재면역반응을 회피할 수 있는 변형 mRNA에 대한 중요한 연구결과들이 얻어져서 드디어 mRNA 를 유전자 전달에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였던 전달체계 (Delivery System)인 지질막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처음에는 주로 Liposome이라고 불리우는 이중 지질막을 이용하고자 노력했지만 이 부분도 오랜 기간 과학자들의 중요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Lipid Nanoparticle을 통해 해결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 확인되기 시작했고 최근들어 3개의 약물이 LNP를 기반으로 승인을 받음으로써 드디어 mRNA-LNP의 조합이 인간의 유전 질환에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치료 조합이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일반인은 알 수 없었고 전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처음에 mRNA 치료제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다. 특히 소위 생명과학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더욱 생명과학 도그마에 빠져서 이것을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일은 데이타로 얘기한다. AI/ML이 발전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찾아내기는 아직 어렵다. 여전히 과학은 발전하고 있고 생명과학 도그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는 자들이 기회를 찾아내며 큰 돈을 벌고 있다.

지금 모더나가 그런 것처럼….

BIOTECH (54) – ReNAgade Therapeutics – Moderna ReUnion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미국이 요즘 망할 것 같죠? Federal debt ceiling 문제로 5월을 못 넘길 것 같죠? 그런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Venture Capital Funding은 여전히 강세입니다. 초강세네요. Boston Biotech Job Market도 덩달아 아주 강세입니다. 신입사원 뽑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웬만한 친구들은 Offer를 두세개씩은 가지고 있으니 Offer가 자꾸 올라가네요. 신입사원 뽑기 경쟁이 장난이 아닙니다. 또 경력직 빼어가기 (or 모셔가기?)도 대단합니다. Message Box가 이런 Message로 항상 꽉 차네요.

얼마 전에 $300M (4,200억원) Series A가 있었습니다. 모두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아주 재미있는 회사가 하나 탄생을 했습니다. 한동안 MPM NewCo로 불렸는데요 뚜껑을 열고보니 Moderna ReUnion이네요. 회사 이름은 ReNAgade Therapeutics입니다.

ReNAgade Therapeutics Launches with over $300 Million in Series A Financing To Unlock the Limitless Potential of RNA Medicine – BusinessWire 5/23/2023

Orna Therapeutics는 Circular RNA Platform Technology를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작년 8월에 Merck가 $150M (1,800억원)의 Upfront와 $221M (2,652억원)을 Series B에 지분투자하고 총 $3.5B (4조2천억원) 규모의 큰 Deal을 이미 했습니다.

Merck bets big on circular RNA, paying $150M and dangling $3.5B in biobucks to work with Orna – FierceBiotech 8/16/2022

당시 기사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Orna has secured lipid nanoparticles from a joint venture with RNA delivery company ReNAgade Therapeutics.” 그러니까 Orna와 ReNAgade Therapeutics는 이 때부터 이미 상당한 부분을 공유한 것 같습니다.

Orna Therapeutics도 MPM Bioimpact에서 만든 Start-Up입니다.

그리고 Merck가 Orna에 투자한 이유가 아래에 있는 anti-CD18 in-situ CAR program이었는데요. ReNAgade도 이것을 함께 개발하는 것인지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The anti-CD18 isCAR program could yield a cheaper and safer alternative to CAR-T cell therapies. Rather than administer a cell therapy to a patient, Orna wants to deliver RNA that encodes for CAR and thereby enables the recipient’s own cells to make the drug. The approach could achieve CAR-like efficacy through a treatment that behaves like a conventional drug, eliminating some of the issues with cell therapy.”

ReNAgade는 이 기술을 payload로 사용해서 다양한 응용을 할 것 같습니다. Homepage에 나온 내용으로 보면 Gene Editing에 적용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Delivery system은 Lipid Nanoparticle (LNP)를 이용하는데 기존 방식이 아닌 cell-targeted LNP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이번 펀딩은 MPM, F2가 주로 펀딩에 참여하고 Alexandria도 일부 참여한 것으로 보이네요.

Team의 Leadership 중 대부분은 Moderna의 초기 창업 멤버 중에서 일을 아주 잘하는 분들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하네요.

MPM은 최근 RNA에 주로 몰빵을 하는 것 같은데요. MPM에도 이미 Moderna의 임원분 두분이 Partner로 계십니다. 다른 한분은 더 큰 분인데요 아마 또 새로운 회사를 하시는 것 같군요.

요즈음 Boston Biotech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회사나 RNA 회사들에 대기업, Biotech 할 것 없이 Moderna 출신 인력들이 가고 있습니다. mRNA 기반 기술에서 작은 Start-Up을 Fortune 500 까지 올린 경험은 다른 누구도 하지 못했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cell-targeted LNP는 지금 여러 회사에서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도하는 회사는 많지만 아직 임상까지 진입한 경우는 없는데요 ReNAgade가 최초의 회사가 될 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나저나 Flagship Pioneering에서 만든 Laronde가 바짝 긴장을 하겠군요. Laronde도 circular RNA를 기반으로 합니다.

BIOTECH (49) – Laronde Story

제가 Circular RNA의 경쟁 구도에 대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ReNAgade의 출현으로 구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것 같네요.

BIOTECH (40) – Circular RNA Platform – Orbital vs Laronde vs Orna Therapeutics

제가 볼 때 이와 유사한 회사는 더 생길 것 같습니다. 이제 Funding 규모가 $300M이 기본이 되겠네요.

지금보다 Job Market이 더 환상적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Career Coaching을 좀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에요.

성공확률 0.01%: MODERNA 임박사의 무한도전 (2) Biotech의 시작 – Genentech Story

바이오텍의 시작 제넨텍 이야기 (Genentech – The Beginnings of Biotech)

1970년대말 유전자 조작실험 (Cloning)이 시험관에서 성공했다. 아무도 이 실험에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벤처캐피탈리스는 이 실험에 오랜기간 주목했다.

그가 유전저 조작기술을 상용화하려고 하는 어떤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실패했고 벤처캐피탈리스트도 해고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 연구자들을 일일히 전화번호부에서 찾아 전화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유전자 조작기술이 신약개발에 이용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실직한 벤처캐피탈리스트의 말에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교수가 “10분만 얘기할 수 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실직한 벤처캐피탈리스트는 너무 기뻐서 당장 이 교수와 대학 앞에서 만났다. 그들의 대화는 10분을 넘어 3시간으로 이어졌고 결국 회사설립을 결정하게 된다.

이 사진은 실직한 벤처캐피탈리스트였던 Bob Swanson과 유전자 조작 연구를 하던 교수 Herb Boyer의 첫만남을 기념하는 조각상이다. 신중하게 듣고 있는 Herb Boyer에게 Bob Swanson이 열정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것을 아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사람은 유전자 조작기술을 응용한 신약개발 스타트업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Bob Swanson은 자신을 쫓아낸 벤처캐피탈 회사를 찾아가 초기 창업자금 (Seed Fund)을 받아낸다. 이것이 유명한 “Genentech의 시작”이다.

Herb Boyer는 당시 UCSF (University of California at San Francisco)의 30대초반 조교수였고 29세였던 Bob Swanson이 창업자금을 받아낸 벤처캐피탈은 Kleiner Perkins였다.

매일 연구를 하면서도 연구자들은 유전자 조작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벤처캐피탈리스트인 Bob Swanson은 진작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자신이 회사를 다니든지 해고되든지 상관없이 이 개발을 플랫폼으로 이용한 새로운 신약개발을 하고자 오랜기간 노력한 것이다.

시작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특허를 취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의 꿈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조인하면서 제넨텍은 조금씩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모두 20-30대의 젊은이들이었던 이들은 과학기술에 전념했고 그 결과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창업한지 2년만에 Somatostatin을 개발했고 이듬해 Insulin을 개발했으며 창업한지 4년만에 기업공개 (IPO)를 통해 기업가치는 $700M (8,400억원)에 이르렀다.

수십년 장기적인 과학기술 투자 (Long Journey)

새로운 신약 플랫폼의 개발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30-40년의 긴 시간동안 성장하며 성숙하는 매우 지단한 작업이다. 아래는 1993년부터 2022년까지 30년간 Biologics와 합성신약 (NME)이 FDA에서 승인된 숫자이다.

1990년대 초반의 경우 Biologics의 승인 비율은 10%에 불과했지만 그 비율이 점차 늘어나 2022년에는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렇듯 새로운 플랫폼을 완성한 스타트업의 출발은 이 산업자체를 오랜 기간에 걸쳐서 변화시키는 매우 강력한 힘이 있다. 1976년의 제넨텍의 시작과 과학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그리고 성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이다.

나는 이런 변화를 위해 오늘도 보스턴의 한모퉁이 연구실에서 mRNA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mRNA 신약개발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지금부터 수십년 뒤에 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터 나올 새로운 승인약물의 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Moderna와 Pfizer/BioNTech 두 회사가 성공한 mRNA 코로나 백신은 $50B (60조원)을 넘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했다가 성공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시장의 소멸을 보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성공이고 다른 RNA바이러스 정복으로 가는 중에 있다. 이미 수십가지의 RNA 바이러스들이 도처에 우리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한개의 RNA 바이러스가 아니라 수십개의 RNA 바이러스 백신이 만들어져서 모두 정복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성공확률 0.01%: MODERNA 임박사의 무한도전 (1)

무한도전

한국의 MBC에서 김태호 PD와 유재석 등 연예인들이 뭉쳐서 만들었던 최장기 예능프로그램 중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무한도전은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도전 과제를 매주 설정하고 그 과제를 6명의 연예인들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함으로써 결국 그 도전을 성공시키거나 실패하거나 어떤 경우에든 끝까지 해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도전은 무한했고 이 프로그램이 초기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조기에 종영될 위기에도 있었지만 당시 예능국장이던 김영희 예능국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 속에서 점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주말 예능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다. 방송이 자리잡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져 갔고 이를 반영하듯 초기에 매주 과제를 도전하고 해결하던 종래의 패턴을 벗어나 장기과제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때에는 방송 편집이 된 이후에도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고전하며 과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어떤 과제의 경우에는 몇주간 한 과제의 수행과정을 방송으로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의 도전과정에 점차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결국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시청자들의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과 응원은 점차 높아져 갔다. 무한도전은 2005년 4월 30일에 첫방송을 한 이후에 2018년 3월 31일에 마지막 방송을 하기 까지 13년이라는 최장기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무한도전이 우리에게 준 감동은 그 도전이 실패할 때보다는 성공할 때였다. 물론 사소한 실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할 때 시청자들은 큰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되며 이를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향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무한한 도전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나는 생명과학자로서 무한한 도전을 통해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다. 방송이나 SNS에서 듣게 되는 수많은 광고는 우리를 현혹하며 실상보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쉽다. 예를 들면, 고급차나 명품에 대한 광고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서민들의 마음에 파고들며 결국 가난한 서민들의 얇은 지갑을 열게 하며 부족한 자산은 크레딧카드와 같은 채무에 무감각하게 만들어서 서민들이 더욱 가난해지게 하는데 일조한다.

또 하나의 예는 제약회사의 광고를 들 수 있다. 신약이 출시되면 제약회사는 앞다투어 새로운 약이 질환으로 고통을 당하는 환자들을 완치할 수 있을 것처럼 아픈 환자들의 마음을 후벼낸다. 건강할 때에는 제약회사의 광고를 듣더라도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다가 막상 그 질병에 걸리게 되면 평소에 듣던 광고의 내용과는 달리 신약의 실상이 환자를 고치기는 커녕 아주 낮은 치료가능성만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부작용이라고 불리우는 다른 병을 일으킴으로써 약을 먹지 않는 편이 약을 먹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의심마저 하게 만든다.

생명과학자로 30여년 전에 어떤 대기업에서 신약개발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은 벅차고 기쁘기만 했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처음에는 신약개발한 약물이 임상시험에 올라가기도 어려웠고 조금 실력이 나아져서 임상시험에 올라가더라도 최종적으로 약물이 승인되어 환자들에게 사용되기까지 되는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는 너무나 초라하고 미미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기대보다는 실망이 더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신약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거의 신약개발하는 생명과학자로 사는 삶을 거의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한도전의 정신으로 계속해서 신약개발에 도전했고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약 메커니즘이나 개발하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항상 던지며 더 나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섰고 어떤 때에는 벤처캐피탈리스트 투자자로서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할지 모르는 바이오텍 스타트업을 찾아 다니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새로 생명과학분야를 배우기 위해 다시 연구생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이런 준비와 새로운 실력을 습득하게 되면서 나의 무한도전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새로운 도전은 과정상의 많은 실패를 동반한다. 만약 실패하지 않고 항상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끊임없이 실패했고 그 실패들을 분석하고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차원의 안목이 생겨나고 결국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공확률 0.01%

내가 30여년전 처음 신약개발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신약의 성공확률이 1만분의 1 즉 0.01%라고 하였다. 그 때에는 정말 그런줄 알았다. 사실은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었는데도…미국 바이오텍 스타트업에서 처음 도전했던 RNA 바이러스 C형간염치료제에 도전할 때에는 몇개의 약물이 있었지만 치료 효과는 50% 미만이었고 약물은 극심한 부작용으로 환자들을 괴롭혔다. 많은 신약연구자들이 C형간염 (HCV) 의 원인 바이러스인 RNA Virus는 쉽게 변환하기 때문에 완치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바이오텍 스타트업들이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무한도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느날 한 Nucleotide 신약이 95%-100%의 완치효과를 임상3상에서 증명했고 약물은 3개월만 먹으면 되었다. 세계에서 신약개발 역사상 최초로 C형간염은 우리 생명과학자들의 노력을 통해 완치할 수 있었고 그 중심에 뉴클레오타이드 (Nucleotide) 신약이 있었다. 이제 더이상 C형 간염환자들은 없고 이 신약의 필요도 사라졌다. 나는 이런 약을 개발하고 싶어했고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Yale University에서 함께 연구생으로 있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Moderna라는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듣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메신저 RNA (mRNA)으로 신약을 만든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 신약개발 플랫폼의 기초가 된 논문을 찾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연한 기회에 Youtube의 Ted Talk에서 Moderna의 CEO인 Stephane Bancel 대표가 발표하는 짧은 프리젠테이션을 찾게 되었다.

mRNA가 약이 될수 있다면? (What if mRNA could be a medicine?)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며 나의 의심은 일말의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여전히 성공확률은 0.01%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더이상 0.01%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볼만한 무한도전이라고 생각했고 성공확률이 낮았을 뿐,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무한했다. Moderna에 입사하기로 결정하고 나는 반대로 100%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뛰어났다. 거의 대부분 빅파마에서 경험이 오래되었거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 연구실에서 조련받은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었다. 펀딩도 충분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한도전을 했다. 실험실에서도 무한도전을 했고 회사 자체에도 무한도전을 했다. 과거에 이런 회사의 운영형태가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정말 신기한 방식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비상장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이다. 전문 온라인 신문에서 우리에 대해 비방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모르고 한 소리일 뿐이었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했고 분석하고 점점 진화해 갔다. 쥐실험과 원숭이 실험은 점점 희망의 시그널을 주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mRNA를 안전하게 몸속으로 전달해 줄 우리의 전달체는 Lipid Nanoparticle이었다. 모든 분자들을 분자설계와 합성을 통해서 변환시켜 갔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mRNA 신약개발은 RNA뿐만 아니라 단분자 (Small Molecule), DNA, mRNA, 단백질 및 Lipid Nanoparticle까지 종합 생명과학 패키지 연구였다.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다. 회사의 투자자들과 공동연구 빅파마들은 우리를 믿고 거금을 지속적으로 투자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발생했다.

전세계적으로 2,000개 이상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신약이 임상시험에 도전했다. 여전히 mRNA 백신에 대해서는 조롱하거나 비방하는 기사가 많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시간만이 문제였다. 빨리 해야했다. 매일 수백만명이 죽음을 향해 나아갔고 병원 중환자실은 중환자로 가득했고 의료진도 지쳐갔다.

임상 3상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mRNA-1273 – 94.5%!!

우리의 mRNA 백신은 세상의 조롱과 비판을 딛고 성공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나와도 비판이나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팬데믹은 다행히 엔데믹으로 변했고 모두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오늘도 무한도전을 이어 나아가고 있다. 나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나의 무한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무한도전은 성공할 때에야 환자들과 환자들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의미가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다.

지금부터 이 나의 무한도전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Bucket List (31) – 1인 출판사 Crowd Funding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아는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제가 하고 있는 커리어코칭의 목표를 중고등학생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영감을 준 분은 김민식 PD님이신데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2) – 김민식 피디님

김민식 PD님은 경쟁이 가장 적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신다면서 기분좋게 말씀을 하셨어요. 저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AI/ML시대에 어차피 과거의 정보와 지식은 모두 AI/ML이 찾아준다고 생각을 한다면 지금 자라나는 중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우리 기성세대와는 분명히 다른 일을 해야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즉, AI/ML이 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데 그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될 것 아니겠어요?

창조하는 일 중에서 생명을 치유하는 일은 얼마나 보람이 있는데요.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블로그에 쓰고 책으로도 쓰고 ‘중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 좋겠다!’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거에요.

블로그는 쓰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닌데요 더 나아가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1인 출판사, 크라우드펀딩으로 전자책 출간

에 대한 것을 알게 된거에요.

[강대호의 책이야기]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고?…‘달러구트 꿈 백화점’

삼성전자 연구원인 이미예 작가님이 그렇게 하셨더군요. 크라우드펀딩플랫폼 ‘텀블벅’을 통해서 전자책을 출간했는데 호응이 좋아서 종이책으로까지 가게 된 케이스에요.

또 재미있는 SNS 얘기도 있는데요. 어떤 작가가 사인회를 했는데 2명밖에 안와서 그걸 SNS에 올린 거에요.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고 해요.

참 요지경이죠! 사람들이 마음이 착해서 그래요.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래서 갑자기 저도 꿈이 생겼어요.

제가 쓰고 싶은 “Moderna 신데렐라 연구원“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1인 출판 전자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될 듯, 안될 듯 그렇죠?

이럴 땐 그냥 해야 돼요. 어차피 50:50일 때는 해서 100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편이 나아요. 해 보려고요.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하나 늘었네요.

BOSTONIAN (26) – 연구과제 – 오래 만나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블로그를 통해서 몇차례 얘기를 했지만 작년 팬데믹이 막바지가 되면서부터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저와 같은 내성적인 사람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은 참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거의 연구과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는…

연구과제 – 오래 만나기

입니다.

제가 보스턴 지역과 한국에서 그동안 오랜기간 알고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더라구요.

지인들 또는 친구들이 먼저 나에게 연락하고 지속적으로 만나준다.

흐음….

결국 수동적인 저의 성격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산물 중에 그래도 저와 만나주는 몇몇분들이 있는 거에요. 보통 대부분은 제가 연락을 하기보다 상대방이 저에게 연락을 해와서 그동안 만나왔어요.

그런데 이제 그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는 방법을 달리해서 제가 먼저 연락을 하는 방식으로 좀 치환을 하는 중입니다. 사실 지인들과 친구들은 여전히 제가 먼저 연락을 하기 전에 보통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요. 그러니 제가 특별히 노력을 할 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신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 새로운 분들과는 제가 주도적으로 “오래 만나기”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죠.

예를 들면 커리어코칭을 위해 만난다는가…네트워킹을 한다든가…뭐 이런거요.

일단은 밥을 함께 먹는 식으로 시작은 했어요. 첫번째 식사는 제가 사기로 하고요 그 다음에는 얻어 먹는 식으로 Take Turn 방식이죠. 직장인에 한해서요..

학생들이나 포스닥 연구원 분들은 여전히 제가 그냥 삽니다. 그게 일단 편하고요. 제가 받은 예전에 도움을 돌려드린다는 개념인데 다들 좋아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어떤 사람들만 좋아하고요 뭐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이 연구과제는 제가 평생 연구해야 할 주제인 것 같고요. 저의 “노화현상 (Aging Phenomena)”이 이런 분들에게 혹시 부담이 될까해서 가능하면 머리는 갈색으로 염색을 합니다. 머리염색을 하면 저자신이 일단 나이를 잊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공부를 많이 해요. 자꾸 물어보려고 하고요. 귀찮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Comfort Zone“을 빠져 나오는데는 성공을 하지 않았나? 자평을 해 봅니다.

오늘도 작년 KASBP 모임에서 처음 뵙고 그 다음에 한번 제가 점심 사고 오늘 그분이 점심을 사서 3번째 만남을 이어간 분이 계세요. 같은 바이오 회사이기도 하고 반가워서 계속 만나는데 저처럼 키도 크고 옷도 잘입고 잘 생겼습니다…하하.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분과는 오래 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봅니다.

또 한분은 예전에 한인교회에 함께 다닌 분인데 제가 지금 Layoff되어서 잡을 찾을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이세요. 그래서 교회는 달라졌지만 제가 작년말에 연락을 해서 한번 만났고 올해도 한두번은 만나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바이오텍 인맥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일을 함께 하는건 없어서 특별히 일관계로 만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인간적인 만남이죠.

다른 분들은 아직 두번 정도 뵌 분들이 몇분 계시고요. 좀더 기회가 되어서 만남을 이어가려고 해요. 너무 인원이 많아져도 관리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일단은 10명 이내로 좀 먼저 친해질 때까지는요.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해요.

오래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연구과제에 대해서 제가 나름대로 가정 (Hypothesis) 을 좀 세웠습니다.

첫째, 존대말로 하고 절대 말을 놓치 않는다. 선생님이라 생각하고 배우는 자세를 취한다.

둘째, 가능한한 일상적인 얘기를 주로 하고 상대방을 세워주기 위해 애쓴다.

셋째, 내 얘기를 할 때는 터놓고 숨김없이 한다.

이 정도로 일단 정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 생활을 할 때 잠시 7개월 같이 일한 분이 계세요. 그 분은 이상하게 연락을 계속 해서 지금까지 20여년간 그 만남이 꾸준히 이어져요. 그 분도 저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배우는 중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배울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요 신기하게도….

한동안은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던데 알고 보니 그것은 제가 Reach-Out을 하지 않은 까닭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을 만나려고 하면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요즘 들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노력을 한 결과일까요?

다음주는 아주 빼곡히 점심,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금-토요일은 KASBP Spring Symposium이 있어서 거기에서 또 사람들을 만날 것 같구요. 한국에서 온다는 친구도 있어서 만나기로 했고 다른 한국에서 오는 분들도 있어서 이 분들은 대접을 해야 할 것 같네요.

특별한 목적을 내세우지 않고 만나는게 좋은 것 같아요. 커리어코칭 얘기를 했더니 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일단은 그 얘기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친해지기 전에는요.

제 아내가 이런 저의 변화를 보며 놀립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극과 극이야!”

뭐 놀려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좋게 변하는 극과 극은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의 연구과제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잘되면 블로그나 책으로 남기려고요. 한가지 확실한 건요 오래 만나려면 둘 중 한사람이 끌어줘야 해요. 그동안은 끌어주는 사람이 저의 상대방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방을 끌어주려고 하는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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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iotech Memoir – Moderna (9) – 변화의 시절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살아온 내용과 더불어 미국에서 산 지 2년이 지나면서 저의 삶은 이민자의 삶으로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그 배경에는 몇가지 일들이 있었는데요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도 있지만 또한 실질적으로 저와 가족들이 미국에 정착하기 위한 이민 관련 서류들도 필요한데요. 이런 일들이 제 주위에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그에 대해 좀 적어보려고 해요.

미국에 남기로 결정을 한 이후부터 저의 주위에는 몇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변화는 Yale University 연구실 내에서 제 프로젝트의 변화인데요. 어느날 교수님께서 저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2명의 새로운 Postdoc을 고용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저의 위상이 약간 높아진 것이죠. Research Scientist 자리도 제안을 해 주셨지만 제가 학교에 오래 남으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을 한 상태였어요. 새로온 Postdoc은 중국인 여자 한명과 미국인 남자 한명이었는데요 미국인 친구는 두번째 Postdoc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더불어 몇명의 다른 Postdoc들도 조인하게 되서 연구실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연구도 지난 2년간은 약간 답보 상태였다면 이 시기부터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변화는 교회에서 일어난 변화인데요. 독일에서 새로오는 Postdoc 한분이 계셨는데 이 분은 특이하게도 오실 때부터 H-1 visa로 오시고 오시자 마자 영주권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해서 갑자기 우리 모두는영주권 준비를 하게 됐어요. 저도 미국에 남기로는 했지만 이런 이민 관련된 것에는 문외한이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분이 오심으로 해서 저의 신분 문제를 위한 서류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세번째 변화는 담임목사님이 6개월간 안식년을 가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6개월간 남미의 선교지를 돌아보고 오시겠다고 하셨는데요. 안식년 기간동안 설교를 해 주실 분을 물색하던 중 남미에서 오신 선교사님 한분께 6개월간 강단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드렸고 승낙을 받아 6개월간 새로운 말씀을 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교회의 새벽기도가 활성화되도록 바람을 일으키셔서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인원이 크게 늘어났고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로 점차 변화되었습니다. 저도 이 기간동안 성장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네번째 변화는 좀 규모가 큰데요. 한국에서 PD수첩을 통해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사건이 크게 대서특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통 논문 문제는 다른 연구자들의 문제 제기로 해당 논문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논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는데요 이번 건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로 MBC PD 수첩이라는 탐사기획 프로그램에서 제기하고 Science와 Nature와 같은 저널들이 이를 바탕으로 조사를 해서 결국 이에 해당하는 논문의 증거 사진들이 조작되었음이 판명나게 되고 그 논문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미국에서 Postdoc 중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파면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한국인 Postdoc들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당혹스럽고 쉽지 않은 순간이었습니다.

다섯번째 변화는 저와 함께 일하던 Postdoc들의 저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일이에요. 제가 워낙 무디다 보니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늦었지만 알았다 하더라도 보통 중요하지 않은 일은 무시하고 지나치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주의여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큰 일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인 Postdoc의 태도가 초기에 우호적이고 배우려던 자세와는 달리 언제부턴가 드세어지고 저를 무시하는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처음에 이 친구가 Arkansas 출신으로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있어서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보다 좀 큰 문제였구요. 여하튼 이런 일이 몇차례 있으면서 갑자기 저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들었습니다.

여섯번째 변화는 교수님의 변화인데요. 처음 약속과 달리 저의 영주권 수속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었습니다. NIW 수속에 중요한 Reference Letter를 써 주시기로 하시고는 차일피일 미루셔서 결국에는 지도교수 추천서 없이 이미 7개의 추천서를 모았고 그 중 6개는 타기관에 계신 분들의 Independent Reference Letter였기 때문에 저의 케이스는 사실 이미 상당히 좋은 케이스였어요. 어쨋든 지도교수님의 추천서 없이 영주권 수속을 마치게 되었고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일곱번째 변화는 담임목사님께서 안식년에서 돌아오신 후 남미의 니카라구아로 선교사로 가신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하시면서 사임을 통보하신 일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 온 성도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고요 담임목사님이 니카라구아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거리의 아이들의 충격적인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고 선교사로 가신다는 것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의 선교 후원을 준비하는 중요한 서류를 만들었고요 담임목사님은 얼마 안 있어 선교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 없이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청빙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기간을 가졌는데요. 이를 안쓰럽게 여기신 남미 선교사님께서 선교지에 복귀할 시기를 미루시고 1년을 더 설교목사로 섬기시기로 결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임목사님이 없이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목회를 경험하는 1년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덟번째 변화는 가장 충격이 큰 변화였습니다. 제가 Postdoc을 한지 3년 6개월이 지난 어느날 지도 교수님께서 저를 아침 일찍 부르셨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지도 교수님을 뵈었는데 교수님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몇개월간 너와 불가리아 포스닥의 연구에 대해 우리가 내부조사를 했는데 너의 연구는 문제가 없었지만 불가리아 포스닥의 연구는 가짜로 판명났다. 오늘 우리가 랩미팅을 할텐데 그동안에 시큐리티 요원이 와서 불가리아 포스닥을 데리고 갈거고 미국을 떠나게 된다. 네가 그와 그동안 해오던 연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받도록 하고 대신 그 포스닥에게는 이 일은 비밀로 해야 한다.”

저는 이 얘기를 듣고 표정관리를 전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새로온 어떤 포스닥 동료가 저에게 제가 한 실험을 재현한다고 해서 제가 도와주곤 했거든요. 알고보니 그 친구가 재현한 것은 연구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저와 함께 했던 두명의 포스닥 특히 Arkansas 출신 미국인 포스닥이 주도한 사실도 알 수 있었죠. 그동안 왜 나를 차갑게 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실험실에서 제가 가장 친했던 동료는 그날 쫓겨나기로 한 불가리아 포스닥이었어요. 우리는 항상 점심을 같이 먹고 새로운 연구계획을 기획하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 가장 친구가 오늘 이후 볼 수 없게 된 것이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날 결국 우리들이 따로 모여있는 동안 불가리아 친구가 두명의 건장한 시큐리티 요원과 함께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나가게 된 것은 불가리아 포스닥이었지만 사실 이 조사가 황우석 박사 논문조작사건으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로 볼 때 저를 표적으로 한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요.

아홉번째 변화는 제가 쓰던 논문에서 저의 순위가 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날 제가 시작해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던 논문이 투고되기 전에 주저자 두명이 Arkansas 포스닥과 중국인 포스닥 그리고 저 이렇게 순서로 되어 있고 제가 3번째 저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따로 찾아가 논의한 끝에 세명이 공동제1저자로 되었지만 순서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논문이 아니라 바로 나다.

이 음성과 함께 저는 논문에 대한 미련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용주이시다“라는 사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저에게 이번에도 다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논문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를 밀어내고 첫번째 저자가 된 포스닥은 저의 지도교수와 회사를 설립해서 함께 7년간 일을 하다가 결국 회사가 실패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한동안 다시 포스닥 생활을 해야 했고 두번째 저자였던 중국인 포스닥은 나중에 연구 이외의 다른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과학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열번째 변화는 지도교수님이 저를 연구실에서 내보내기로한 결정이었습니다. 첫번째 변화가 저에게 좋았듯 마지막 변화는 저에게 좋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지도교수님은 마지막까지 제가 좋은 오퍼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신경쓰시고 기다려주시는 미덕을 보여 주셨고 캘리포니아 바이오텍 2군데와 보스턴 바이오텍 1군데의 최종 오퍼를 받고 그 중에서 보스턴으로 가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회사에 취업한 시기가 2008년 금융위기가 있기 바로 전 해인 2007년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위의 포스닥 모두가 영주권을 받았지만 실제로 취업까지 한 사람은 제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여러가지 형태로 어려움을 주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저를 보호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저를 인도해 주심으로써 제가 새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포스닥 기간 후반부에 일어난 10가지 변화를 시기 순으로 나열한 것입니다. 고용주이신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셨고 제가 좋을 때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도 항상 곁에서 저를 지켜주고 계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양 달콤한 말로 안심을 시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결국 사람들이 하는 말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힘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