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일입니다. 저는 지난 7년간 미국교회인 Grace Chapel 을 다니고 있는데요 오늘은 매년 열리는 Global Awareness Week (GAW) 즉 세계선교주일입니다. Grace Chapel은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선교 사명을 위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역을 섬기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몇분의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주일이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다른 주에 비해서 훨씬 다양한 인종과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렸는데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좀 깨달은 점이 있어서 이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말씀은 태국목사님의 말씀이셨는데요. 영어를 잘하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메시지는 정확히 전달을 하셨습니다. 2014년에 사모님께서 폐병으로 인해 거의 가망이 없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시다가 기적적으로 소생하셔서 작년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회복되셨다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이 간증에 더불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체 퍼즐 중 한개의 조각만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 조각 하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이 퍼즐 한조각을 붙잡고 나아가는 믿음을 기억하며 제가 오늘부터 무엇을 해야할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어서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오늘 하루동안 깨달은 점을 이 공간에 나누고자 합니다.
예배 마지막에 함께 드린 찬양이 “Holy Forever”라는 찬양이었는데 이 찬양을 드리면서 조선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 “100여년전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보낼 때에도 이랬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어서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어 찬양을 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아내와 함께 나오면서 아내가 묻더군요. 당신은 죽을 때 어떤 것을 후회할 것 같냐고. 자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애쓰지 않은 것이 후회될 것 같다면서…
오늘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 생각 “죽을 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이라는 주제로 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블로그에도 이곳 저곳에 쓴 적이 있지만 저는 어려서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자랐습니다. 사실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이었죠. 그런 제가 사실 대학을 가고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고 나아가 박사학위를 하고 미국까지 오는 여러 과정이 있기 전에 제게도 이 첫번째 퍼즐조각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1985년 겨울을 지나 1986년 동계수련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동계수련회는 3일 금식수련회였는데요 이 수련회가 끝나는 날 목사님께서 40일간 금식수련회를 늘리자고 제안을 하셔서 제가 이 40일 금식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기도가 저의 첫번째 작정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저는 작정기도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채 기도를 이어갔지만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후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져 제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대학 1학년 시절 이태석 박사님 등 좋은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전혀 새로운 학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대기업 5년과 벤처캐피탈 2년 등 다양한 경력도 거치면서 미국 예일대학교에 포스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두번째 작정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제가 첫번째 작정기도를 했던 20년전에 드렸던 40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온전히 받으시고 얼마나 지난 20년간 저를 인도하셨는지를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감사의 마음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알려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40일간의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요셉에 대한 말씀과 미국에 남으라는 정확한 메시지를 받게 되었고 그 메시지대로 저는 다시 20년의 기간동안 놀라운 은혜와 감사한 삶을 살게됩니다.
이제 2025년이 거의 지나가고 있는 지금 저는 다시금 지난 20년간, 아니 40년간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난 시간들을 묵상함과 동시에 다시금 주어질 2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님께 여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작정기도를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더 준비된 (?) 작정기도를 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몇가지 검색을 하던 중 좋은 말씀을 찾게 되어 저를 위해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찾아보니 진정주 약사님의 유튜브인데 순복음 안디옥교회의 사모님이시네요. 이 분이 저처럼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라셨다고 해요. 살아오시면서 작정기도를 여러번 해 오셨는데 그 기도를 하면서도 앞이 캄캄해서 보이지 않던 것, 그래도 기도를 끝내지 않고 1년씩 하신 적도 있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40일만 하던 제가 참 작게 느껴졌고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진정주 약사님이 다니엘의 작정기도에 대한 블로그를 쓰신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 이 분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다니엘을 본받아 일회서 작정기도로 끝내지 말고 평생 기도하자고 남편되신 목사님 (당시는 전도사)과 약속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분을 통해 작정기도는 평생하는 기도라는 말씀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기도보다 강한 기도라는 제목의 이 영상에서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상할만큼 이 이방인 여인에게는 매정하게 대하셨죠. 그래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히 매달립니다. 마지막에 “개에게 주지 않는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며 은혜를 구함으로써 결국 “이런 믿음을 보지 못했다”는 찬사를 얻으신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 말씀을 다시 들어보며 느끼는 점은 작정기도는 평생 드리는 기도임과 동시에 자기를 끝까지 낮추는 기도라는 말씀이 됩니다.
오늘부터 섬머타임이 끝나게 되어 다시 아침 한시간을 더 얻게 되었습니다. 아침 새벽을 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어 오늘 배운 말씀을 기억하며 작정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나이가 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영역 (?) 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저도 40대까지는 정말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들고 보니 50대가 되었더라구요. 그리고 이제 몇년 후면 60대가 목전인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보스턴에 살면서 나이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지낸 편이었지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이듦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가지로 찾아보고 책을 읽고 사색하며 그리고 청년들과 무료 커리어 코칭을 통해 대화하면서 “어떻게 나이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40대와 50대가 된 지금 차이가 있다면 40대에는 주어진 커리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맡겨진 일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면 50대가 된 이후부터는 “나의 삶”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나의 삶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이 밑그림을 그리고 여기에 채색을 하는 것이 바로 나이듦이라고 어떤 분이 말씀하시는 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2015년에 개봉된 “Intern”이라는 영화를 많이들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벤 (Robert De Niro)은 70대로 회사 중역으로 은퇴한 싱글 시니어입니다. 이 분이 어느날 우연히 동네에서 시니어 인턴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30세의 줄리 (Anna Hathaway)가 CEO로 있는 어느 벤처기업에 인턴으로 취직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처음에는 아무런 일도 받지 않은채 날이 지나가게 되죠. 이후 벤은 자신의 경륜을 적절히 줄리와 동료 직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통해서 조금씩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스피치 컨설턴트이신 이상윤님이 이 영화로 부터 대화법에 대한 몇가지를 말씀하신게 있어서 이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었던 벤의 대화의 기술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첫번째는 들어주고, 물어봐 주고, 정리해 주기: 벤은 웬만하면 먼저 해결해 주려고 하지 않고 충분히 상대방의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러다보니까 이야기를 하는 쪽에서 자신의 해결점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코칭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의미를 찾아주기: 사람은 돈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가 중요한데 의미를 상실한 사람에게 의미를 찾아준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상대방이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 말하는 타이밍: 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 바로 말한다든가 상황을 인지했을 때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기다립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의미를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준비되었던 말을 잘 전달해 줍니다.
영상 길이는 길지 않지만 이상윤님이 발견해 주시는 이 영화에서 벤이라는 시니어 인턴이 보여주는 배울점에 대해 잘 짚어주신 것 같아 제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글로 정리해 봅니다.
다른 영상은 자리잡자TV의 편정현 헤드헌터님의 영상이신데요. 50대가 된 직장인이 나머지 기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영상입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50대가 되기 무섭게 희망퇴직이라는 구조조정을 맞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편정현님의 조언입니다. 좀 무섭게 말씀을 하시지만 잘 들어보면 곰곰히 새겨볼 만한 말씀입니다.
편정현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 제목은 짐싼다 vs 버틴다이지만 내용은 보다 미래지향적입니다 – 제가 느낀 점을 좀 나눠보려고 합니다. 11분 이후부터 하시는 말씀에 대한 것인데요.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돈이 안될 수 있다. 돈이 안 되어도 좋다.
지금까지 내가 사회에서 누린게 많다고 느낀다면 누군가를 위해 사회봉사, 섬기는 일 같은 걸 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인데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결국 그것이 일이 된다.
돈이 아니라 어디에서 찾는 사람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가진 네트워크를 통해서 창업한 사람들, 청년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라.
취업 어려운 청년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함께 지내라.
최소 3년이상 시간을 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준비가 되어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까지 노력라.
편정현님의 유튜브를 보면서 지난 3-4년간 블로그를 쓰면서 제가 찾고자 하는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을 해 봤어요. 그게 저는 “커리어 코칭“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죠. “돈을 위해 살지 말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서 오랫동안 유지하자” – 이게 제가 찾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커리어 코칭입니다.
끝으로 최근에 유퀴즈 온더 블럭에 나오신 66세의 시니어 인턴이신 오창규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도체회사에서 부사장까지 계시다가 정년을 몇개월 남기고 퇴사를 하게 되셨는데 그 후 8년간 이런저런 자격증을 취득하고 노력을 하다가 PT코리아라는 광고마케팅 벤처기업에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셨다고 합니다. 매 3개월마다 비정규직 연장을 해서 3번까지 연장이 되는데 이 영상을 찍으실 때가 7개월이 되셨을 때니까 마지막 세번째 연장을 하신 상태였던 것이죠. 오창규님이 일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브런치에 유수진님이 오창규님의 사연을 읽고 글을 쓰신 것이 있어서 그 링크와 함께 몇가지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그는 퇴직 후 방황했습니다. 30년 넘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회사로 출근했는데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으니까요. 일을 쉬는 동안에도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습니다….그러다 PTKorea의 시니어 인턴 면접에 합격해 8년만에 첫 출근을 하던 날 “옷을 차려입고 나간다는 자체가 감격스러웠습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그에게 일은 자신이 계속해서 어딘가에 쓸모가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 것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오창규님을 응원하며 유수진님의 글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란 누군가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창조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올라오는 세대, 소위 MZ세대로 부터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배우면서 함께 창조해 나가는 어떤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스턴에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주에는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바람이 꽤 많이 불었습니다. 단풍잎이 많이 떨어지겠군요. 저녁에 아내와 함께 Greek Restaurant에 가서 맛있게 저녁을 와인과 곁들여 먹고 왔습니다. 이렇게 늦가을을 고즈넉히 즐길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상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100세 인생을 살 거라고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좋은 황금기가 언제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면 아마 50대의 10년간이 아닐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통 60대가 되면 부부 둘다 건강을 유지하는게 쉽지 않고 70대가 되면 부부 중 한명이 병원 신세를 질 확률이 높고 80대가 되면 부부 중 적어도 한명은 세상을 떠나게 되어 혼자 살아야 한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부 중 나머지 한명이 홀로 80대 중반 이후부터 100세까지 (만약 정말 100세까지 산다면?) 20여년을 혼자 살아야 하는 거라는거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서 Empty Nester가 된 이후에 부부가 충분히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50대가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매일 매일 이 시간을 감사하게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BIOTECH 메뉴에서 제가 주로 mRNA-LNP의 응용분야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오늘 얘기할 회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기술은 Epigenome Editing이라는 기술로서 mRNA-LNP에 더해서 gRNA를 더한 Platform Technology입니다.
Recent publications by Gersbach’s research team have focused on advancing a commonly-used epigenome editing approach. This approach involves delivering a two-component protein to cells: one component (dCas9) binds to target DNA sequences, and a second modulates epigenetic marks. In one recent study, Gersbach’s group at Duke used this approach to activate a gene in stem cells in culture. His group has also delivered a similar system to the livers of mice to silence a gene involved in regulating cholesterol. Tune will maintain ongoing collaborations with Duke University to advance its platform.
Tune Therapeutics의 TEMPO Platform은 gRNA(s)를 통해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 DNA-binding protein (예, dCas) 을 유도하고 Effector protein (예, DNA methylase)를 이용해서 Epigenome change를 일으키는 방법인데 이 방법으로 지속적이고 선택적인 활성화나 불활성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Epigenome Editing은 DNA 유전자를 건드리지 않고 그 활성화, 불활성화를 조절하는 방법으로서 유전자 조작을 하는 Genome Editing에 비해 보다 안전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Epigenome Editing에 대해 Charlie Gersbach 박사님이 2018년에 발표하신 내용이 있어서 올립니다.
Tune Therapeutics의 설립 기사 중 언급된 논문은 2020년 Stem Cell Reports에 발표된 논문인데 Epigenome Editing으로 pluripotent Stell cell 중 Myogenic progenitor cell lineage를 선택적으로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한 논문이었습니다.
그리고 PCSK9에 대한 결과도 발표를 했습니다. mRNA/gRNA-LNP 시스템으로 Hepatocyte delivery 기술을 발표했는데 Non-Human Primate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사 후 120일 이후에 PCSK9 level은 75% 감소, LDL-C 단백질은 56% 감소되었고 Methylation은 85일간 지속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ALT와 AST 레벨도 안정적이어서 안전성에 대한 결과도 함께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HBV에 대한 결과는 12월말에 Hep-DART 학회에서 발표했습니다. 이 약물은 Tune-401이라는 물질명으로 발표를 했는데 HBV에 대해서는 Human-chimeric mouse model로 실험을 해서 지속적으로 cccDNA 등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Based on the breadth of our preclinical data, we have every reason to believe that this novel therapeutic will translate,” Derek Jantz, chief scientific officer at Tune, said in a press release. “We sincerely hope that this will revitalize the field and lead to the standalone functional cure that HBV patients have been waiting for.”
TUNE-401 is programmed to stop the expression of HBV genes in the liver cells where it takes root. The new preclinical data shows that it’s capable of doing this in human cell lines at a rate of 90 to 95% for at least 550 days, with the modifications holding even as the cells continue to proliferate. They saw similar results in a mouse model for HBV infection, which contains transplanted human hepatocytes that the company described in a press release as “effectively ‘humanizing’ the liver”.
Epigenome Editing 회사들이 속속 창업하고 펀딩과 함께 기술 개발이 진전되면서 이미 2023년경이 되면 이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몇가지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GEN Edge에서 잘 정리한 리뷰 기사가 있어서 링크를 올립니다.
The funding has been earmarked to advance Tune’s pipeline, which is led by Tune-401. The startup has spent recent months securing permission to bring Tune-401 into clinical trials in both New Zealand and Hong Kong.
As well as Tune-401, some of the series B cash will “also support the development of additional gene, cell, and regenerative therapy programs already underway at Tune, and to progress its broader mission of bringing the power and versatility of epigenetic therapies to bear on common and chronic diseases,” the biotech said in the release.
Tune Therapeutics의 Tune-401 임상시험이 잘 진행되어서 B형 간염 환자들이 완치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가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한 건 사실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본래 젊었을 때에도 가난한 고학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절박함으로 한 학기 한 학기를 보내다 보니 하루 종일 도서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마치 고3학생처럼 공부하는데 대학 4년을 그대로 보냈습니다. 그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처음에는 운동을 하지 않다가 농구에 자신감도 갖게 되고 흥미를 갖게 되어 석사과정 동안 농구를 좀 사람들과 한 것이 운동의 전부였죠. 그러다가 농구도 입사하고 부터는 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 미국에 포스닥 과정 중에 수영을 배워서 한동안 수영을 아주 열심히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수영을 그만두게 되면서 수년간 운동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4년전부터 골프도 하고 그러면서 Home Gym을 만들어서 맨몸운동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근육을 붙여 나갔고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부터는 회사에서 Gym membership의 거의 대부분을 지원해 주는 덕택에 1년여를 열심히 Gym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membership benefit이 결국 줄어들면서 다시 Home Gym을 셋팅해서 이제는 지하 Home Gym에서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운동을 합니다. 아 그리고 회사에서 계단 오르 내리기는 꾸준히 하고 엘레베이터는 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성향의 저는 운동을 할 때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보다는 운동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주 조금씩 운동량이 늘어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운동을 하는 방향으로 저의 운동법을 수정했고 덕분에 다시 조금씩 운동량이 아주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하는 골프는 매주 한번씩은 꼭 나가기 때문에 이건 이제 4년째 루틴으로 자리잡아서 제가 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계속 함께 하기로 생각을 했고요 근력 운동을 좀 더 늘리고 유산소운동으로 Rowing Machine을 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몇달새에 가장 괄목할만한 (?) 성장을 한 종목이 있는데 그건 바로 턱걸이 (Pull Up)입니다.
Gym에 나갈 때 제가 가장 주완점을 두었던 부분이 등근육이었는데요. 그래도 등근육이 워낙 없다보니 주로 Assisted Pull up이라고 Machine을 이용해서 저의 몸무게를 완화시켜 주는 운동을 했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자세는 좋았지만 등근육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어요.
(Assisted Pull Up을 하는 예)
그런데 말씀드린대로 Gym membership을 끊고 Home Gym에서 등근육 운동을 하려니 정말 처음에는 막막하더라구요. 제가 턱걸이 하나도 못했거든요. 이게 8월 25일이니까 2달 전이죠. 이 때에 밴드를 구입해서 좀 해 봤는데 쉽지 않았어요. 밴드 없이는 뛰어 올라서 2개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는 걸 유튜브 덕분에 배웠습니다. 몇분의 선생님이 계셨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김병곤 박사님의 유튜브인데요 전체 길이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말씀하신 순서는
매달리기부터 해라
매달려서 버티기
매달려서 버티고 천천히 내려오기 – 내려올 때 버티는 근육이 턱걸이에 사용할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우연히 찾은 영상인데 백도씨라는 40대 체육선생님이십니다.
이 분께 배운 중요한 점은 1개가 되기 시작하면 그냥 바로 떨어지지 말고 충분히 끝까지 버티면서 천천히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 완전히 팔이 쭈욱 펴질 때까지 늘어지라는 것이죠.
이 방법으로 해서 9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9월 2일에는 Negative Pull Up이죠 매달렸다가 천천히 내려오기를 5회를 두세트하고 마지막에는 7회를 했네요.
이러던 것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한번에 4번을 올라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게 9월 11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10월에 접어들면서 4회, 3회, 2회 이런식으로 총 9번 턱걸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장족의 발전이었죠.
그리고 오늘은 5회, 4회, 3회 이렇게 총 12번 턱걸이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팔이 죽 뻗은 상태에서 완전히 올라갔다가 다시 천천히 끝까지 팔이 완전히 펴질 때까지 내려오는 동작을 천천히 하는 것이니까 12번이라고 해도 적은 횟수가 아닌거에요.
한번도 못 올라갔다가 어느 날 갑자기 4번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 때 4번은 막 빨리 내려오기 무섭게 다시 끌어올리는 식으로 4번을 한 것이고요 지금 5번, 4번, 3번 하는 건 완전히 펴졌다가 당겼다가 다시 천천히 피는 동작을 아주 천천히 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에요.
턱걸이를 잘하시는 오요한님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홍범식님의 유튜브에 나오셔서 강의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오래 매달리기부터 시작 – 처음하는 분은 힘듦니다.
두번째는 Negative Pull Up
Inverted Row도 좋다고 하셨는데 이건 기구가 없어서 못했고요.
Band Pull Up도 말씀하셨는데 제가 가진 밴드가 안 좋은건지 잘 안되더라구요.
참 두분 몸이 대단하죠?
초보자를 벗어나서 턱걸이 갯수를 늘리는 방법에 대한 오요한 님의 강의가 있습니다. 이 분들 장난 아닙니다. 5세트를 하는데 3세트까지는 갯수가 같아요. 우와!!!
저는 언제 이렇게 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이런 선생님들 덕분에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보스턴에서는 한국에서 소위 섬머타임 (Daylight Savings Time)이라고 알려진 봄이 되면 1시간을 당겼다가 늦가을에 다시 1시간을 늦추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번주가 섬머타임이 끝나는 주이고 다음주부터는 1시간을 더 늦게 시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오늘이 할로윈 데이 (Halloween Day)라서 이번주가 젊은 직원들에게는 사-알짝 들뜬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런 주였고 오늘 금요일에는 대부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내기도 하고 회사에 나왔던 직원들도 대부분 일찍 집에 귀가를 했습니다.
저도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과를 마치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한 후에 이번 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Orbital Therapeutics가 BMS에 합병된다는 소식이 있었지요. 사실 이 뉴스를 듣고 나서 바로 여기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을 했다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10월말이나 11월 경에 글을 써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오늘 정도에 글을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Orbital launched in September 2022 as a spin-out company from genome editing biotech Beam Therapeutics. One of its co-founders is John Maraganore, formerly the founding CEO of Alnylam, who helped spearhead RNA interference-based treatments in the industry. Maraganore had also previously worked at Millennium Pharmaceuticals and Biogen, where he held various leadership positions throughout his 10-year tenure.
Orbital CEO Giuseppe Ciaramella was previously the chief scientific officer of Moderna’s infectious disease unit…Also on Orbital’s masthead is Gilles Besin, who most recently led discovery research at Affinivax and was previously with Moderna, helping the company optimize its mRNA delivery platform. Besin is Orbital’s chief scientific officer.
Orbital Therapeutics는 2022년 9월에 Beam Therapeutics에서 Spin-off를 했는데 CEO인 Giuseppe “Pino” Ciaramella 박사와 CSO인 Gilles Besin 박사가 모두 Moderna에서 mRNA-LNP의 새로운 약물 모달리티를 만든 주역들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신 John Maranagore 박사님은 Alnylam의 CEO를 20여년간 하시고 몇년전에 VC로 바뀌신 분이시죠. Orbital의 설립에는 a16z의 주도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설립하고 반년 정도 되어서 $270 Million의 Series A를 했습니다.
같은 날 나온 Fierce Biotech의 기사에서는 기술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This toolbox includes linear RNA, circular RNA and lipid nanoparticle (LNP) tech. The circular RNA innovation has a patent with Stanford University, an institution the biotech is connected to via co-founders Howard Chang, M.D., Ph.D., and Ravi Majeti, M.D., Ph.D. Orbital has also licensed emerging tech in LNP, the science used in Moderna’s COVID vaccine, with hopes of delivering to a wide array of tissues.
그러니까 mRNA, circular RNA를 payload로 하고 LNP를 전달물질로 하는 기반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적응증에 대해 이 회사가 나아간다는 얘기를 했죠. 하지만 어떤 특정 질환을 표적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 있다가 올해 7월말에 갑자기 In Vivo CAR-T Therapy 치료제를 Autoimmune disease에 이용할 수 있다는 Non-Human Primate Data를 발표하였습니다.
Specifically, in a non-human primate study, Orbital’s in vivo CAR-T approach achieved full B cell depletion in blood, spleen, and lymph nodes, which is required for an effective immune system reset in autoimmune disease. Based on preclinical findings to date, Orbital is advancing OTX-201 through IND-enabling studies and plans to begin clinical development in the first half of 2026.
OTX-201 comprises an optimized circular RNA encoding a CD19-targeted CAR delivered via targeted lipid nanoparticles (LNPs) with in vivo administration. This in vivo approach, in which the patient’s own body serves as the manufacturer of CAR-T cells, has the potential to offer a reduced treatment burden and improved accessibility compared to ex vivo CAR-T therapies, which require patient cell collection and complex manufacturing processes followed by intensive conditioning regimens prior to infusion. Orbital is developing OTX-201 for B cell-driven autoimmune diseases, where the therapeutic goal is to deplete autoreactive B cells and reset the immune system. B cell-driven autoimmune diseases span more than 40 disease indications across multiple therapeutic areas, including rheumatology, neurology, and dermatology.
여기에 내놓은 약물명은 OTX-201인데 circular RNA-LNP이고 CD19-targeted CAR를 전달하는 약물입니다. 이 약물의 B-cell depletion 효과를 NHP study에서 보여주었고 이것이 게임체인저가 되었습니다. 결국 B-cell관련 자가면역질환에 적용할 수 있고 류마티스, 신경계, 피부질환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Orbital Therapeutics가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여전히 알기 어렵지만 홈페이지 상에서 보면 아래와 같은 다양한 조합을 선보입니다.
사실 Orbital Therpeutics가 이 결과를 발표하기 2달 전에 Orna Therapeutics에서도 In Vivo CAR-T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제가 사실 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지금으로 부터 2년반 전에 Circular RNA platform을 기반으로 한 세개의 Startup회사에 대해 비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Orbital Therapeutics였고 이 때 Orna Therapeutics도 있었습니다. Laronde는 지금 Sail Biomedicine으로 합병되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죠.
Circular RNA 분야가 시작된 것은 :aronde가 2017년에, Orna Therapeutics가 2019년, Orbital Therapeutics가 2022년에 설립이 되었으니까 벌써 약 6-8년 정도 연구가 지속된 분야인데 Circular RNA는 드디어 In Vivo CAR-T 분야에서 새로운 Modality로 주목을 받으며 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회사 설립과 역순으로 M&A가 진행되고 있네요. ㅎㅎ
Circular RNA 분야에서 Orna와 Orbital이 거의 유사한 payload와 LNP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베이징 대학과 칭화대학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거의 같은 시기에 논문을 냈습니다.
BMS is currently the only pharma player with two approved CAR T therapies against two different targets: the anti-BCMA Abecma, indicated for relapsed or refractory multiple myeloma, and the CD19-directed Breyanzi, approved for several blood cancers, including mantle cell lymphoma and follicular lymphoma.
Ex-vivo CAR-T 치료제 마켓에서 이미 두개의 약물을 보유한 BMS가 In Vivo CAR-T에 뛰어든 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날에 나온 Fierce Biotech의 기사를 좀 살펴 볼까요?
“I think in vivo is an interesting platform. Obviously, it’s much, much earlier and further out [than ex vivo], but I think that is another great concept of can you potentially give a patient almost like a vaccine shot and provide them that same kind of CAR expression,” Hoch said. “Early data looks super intriguing and interesting, and so we’ve been watching that field quite closely.”
Lynelle Hoch는 BMS의 Cell Therapy 부문을 총괄하는 분입니다. In Vivo CAR-T에 대해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뿐만 아니라 최근의 In Vivo CAR-T 분야가 얼마나 M&A의 표적이 되고 있는지 아주 잘 정리해 주며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BMS isn’t alone in using M&A dollars to bulk up in this field. In June, AbbVie inked a $2.1 billion purchase of Capstan Therapeutics to add an early-phase autoimmune in vivo CAR-T drug to its pipeline. In addition, Gilead Sciences’ Kite Pharma forked over $350 million for in vivo CAR-T player Interius BioTherapeutics in August, while AstraZeneca paid $1 billion for EsoBiotec and its in vivo lentiviral vector platform back in March.
자 이제 궁금증은 Orna Therapeutics로 넘어 갑니다. Orna Therapeutics의 In Vivo CAR-T 치료제는 과연 누구와 손을 잡게 될까요?
제가 직장을 옮기면서 일하는 방식이 3일은 회사에 나가고 2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Hybrid 근무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좋은 것이 회사에 나가는 날을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인데 오늘은 아침에 치과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재택근무를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있는 첫 미팅을 마치고 치과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본래 시간보다 30분 일찍 올 수 없느냐는 것이었어요. 다른 분의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시간이 비었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시간을 원래보다 30분 일찍 가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전기회사에서 전화가 오더니 오후까지 전기가 나간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치과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차에 탔는데 아내에게 문자를 받았는데 같은 얘기를 하는거에요. 제가 너무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전기가 나간다는 얘기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잊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햄버거를 한 개 먹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컴퓨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전화기 하나 달랑 들고 도서관을 들어갔으니 책을 하나 읽어보자 하고 서가를 뒤졌는데 마침 어떤 분의 회고록 (Memoir)이 눈에 들어와서 그 책을 잠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는데 책을 읽는 중에 미팅이 있어서 차로 나와서 미팅을 하고 미팅이 끝나니 전기가 들어왔다는 전기회사의 메시지가 와서 다시 도서관으로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미팅들을 마쳤습니다. 여하튼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회고록인데요. 그 책의 내용보다도 회고록을 대략 어떻게 써야겠구나. 하는 감을 잡게 해 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대로 2017년에 어머니를 여의는 큰 일을 겪고 아픔과 동시에 승진의 위로 (?)도 얻은 저는 2018년을 맞게 됩니다. 2018년은 혈액암 투병을 하시는 장인어른의 암치료가 더이상 치료효능을 얻지 못한채 소강상태로 들어간 상황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혈액암은 초기, 중기, 말기가 큰 상관이 없어요. 혈액이 온몸을 돌기 때문에 항암제를 맞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계속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데 처음 맞은 항암제의 내성이 생기기 전까지 맞고 그 약의 내성이 생기면 다음 약을 맞는 식으로 계속 이런 상태를 이미 4년여를 해 오신 상태셨습니다. 사실 시중에 나온 첨단 신약 항암제를 거의 다 맞으셨지요. 저도 항암제 개발을 해 본 적이 있고 당시에도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해서 반드시 항암백신을 성공시켜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2018년에 들어서면서는 아버님의 항암제 반응이 현저히 줄어드시고 뿐만 아니라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해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어 지셨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현저히 감소하셔서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을 간호하시던 장모님도 점점 힘들어 하시는 등 많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제 아내의 마음도 점점 타들어 갔고요.
가정적으로는 이런 힘든 상황이었지만 회사 상황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먼저 2월초에 $500 Million Equity Financing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또 $125 Million이라는 거금이 들어왔네요. 제가 입사한 이래로 모든 펀딩의 단위가 $100 Million 단위였습니다. 어질어질 했습니다.
그리고 7월에 드디어 Norwood에 cGMP Manufacturing Site를 오픈합니다. 본래 케임브리지에 cGMP 사이트가 작은 규모였지만 있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Prototype으로 해서 Norwood Site를 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Norwood 시대와 자체 mRNA-LNP GMP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되었죠.
이 기간 중 아버님의 병세는 크게 악화되셨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한국에 방문을 해서 아버님을 간호하기 시작했고요. 아버님의 병인 B-Cell Lymphoma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결국 아버님은 병마와 5년간 잘 싸워 오셨지만 10월 10일 황망하게도 영원히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저도 급히 귀국을 해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어머니 때에는 제가 따스한 유골함을 안았었는데 이번에는 사위였기 때문에 아버님의 영정사진을 제가 안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버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가는 것과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작년에 이어 어머님과 장인어른 두분을 암으로 잃고 나서 저의 마음속에는 암백신을 개발하는 우리 회사 Moderna의 mRNA-LNP 기술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해야 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말 Moderna는 드디어 NASDAQ 상장을 하게 됩니다. 본래 상장 목표는 $500 Million이었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실제로는 $604 Million 그러니까 목표보다 $100 Million 이상이 더 들어온 당시로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IPO 액수였습니다.
제가 커리어 코칭에 대해 처음으로 글을 쓴 것이 2022년 11월초니까 지금까지 3년여를 나름대로 커리어 코칭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돈은 받지 않고 커리어 코칭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서 몇몇분을 나름대로 코칭을 해 봤는데 그 중에서 그나마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는 참 드물더라구요. 마음이 좀 ㅏ맞아야 하는 면도 있겠지만 무료로 하다 보니 저도 그렇지만 코칭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혹시 코칭을 더 받고 싶어도 저에게 연락을 취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먼저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고 코칭을 하고 또 한참 지나서 (거의 일년 가량) 다시 제가 좀 덜 바빠질 즈음에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계속 되는 거에요. 이게 가장 큰 고민 덩어리였습니다. 특히 요즘에 Job Market이 좋지 않아서 커리어 코칭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도 선뜻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저도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커리어 코칭을 받은 적이 있어요. 3-4번까지는 회사 100% 지원으로 커리어 코칭을 받는 것이어서 저도 그렇고 코칭하시는 분 입장에서도 서로 상호간에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서 잘 진행을 했는데 막상 그 무료 기간이 끝나니까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저도 그분께 연락을 하지 않게 되더군요.
이 경험이 저에게 커리어 코칭에 대한 생각을 좀더 확고하게 (?) 가지게 한 것 같습니다. 사실 꼭 모두가 무료 커리어 코칭을 원하는 건 아니었어요. 몇분께 여쭈어 보면 돈을 내더라도 하고 싶다는 분들도 종종 계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돈을 받고 커리어 코칭을 하는 것이 처음 얼마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리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커리어 코칭을 하는 목적이 그 분들 (코칭을 받는 대상자분들)과 아주 오랜 기간동안 만나면서 함께 성장하고 격려하면서 인생과 커리어, 즉 Work-Life Balance, 를 함께 해 나가는 것이거든요.
제가 Bucket List를 많이 써 놓았는데 시간을 돌이켜 다시 생각을 해 보면 그 중 대부분은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인생 목표라기 보다는 그 당시 잠시 하고 싶어했던 패션처럼 왔다가 가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Bucket List를 쓴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돈이 아닌 이후의 삶에서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쓴 것이었는데요. 블로거가 되는 것 말고는 오랜동안 지속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커리어 코칭은 좀 다릅니다. 커리어 코칭은 블로그 이후에 정말 ‘돈을 떠나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의 범주에 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Bucket List가 맞는거죠. 이건 정말 나이가 들어서 바이오텍 업무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꼭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래서 커리어 코칭을 어떻게 하면 오랜 기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먼저 제가 하려는 커리어 코칭에 대한 나름의 생각은 이런거에요.
무료로 하는 커리어 코칭
상대방도 배우고 저도 배우는 상호관계적 코칭
장기적인 코칭 – 최소 5년 이상 많게는 10년, 20년도 지속할 수 있는 코칭
내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코칭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할 수 있는 코칭
이렇게 쓰고 보니 거의 종교단체 같은 성격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을 하게 된 게 비영리기관을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미국에는 501(c)(3)라는 비영리기관이 있는데요. 제가 예전에 한인교회에서 재정부장을 할 당시에 교회를 비영리기관으로 만드는 서류 작업을 제가 스스로 한 적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그래서 이런 예가 있는지 찾아 보니까 웬걸?
의외로 꽤 많은 거에요.
그래서 이 방법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무료로 커리어 코칭을 하는 어떤 분과 이 생각에 대해서 잠시 나눴는데요. 글쎄 이 분도 생각에 공감을 하시면서 자신도 유태인 젊은 교수들이 Peer coaching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머리가 번쩍하고 갑자기 정리가 되었습니다.
“아하!! “Peer Coaching Community”를 만들면 되겠구나!!!“
이렇게 말이죠.
그래서 다시 힘을 얻고 무료 커리어 코칭을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이 무료 커리어 코칭 동호회 즉 “Peer Coaching Community”를 말이죠.
혹시 이에 대해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이메일 (BostonDrLim@gmail.com)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어제와 오늘 인도에 있는 CDMO와 이틀간 JSC를 했습니다. 인도시간과 미국시간을 맞추어서 동부시간 아침 6:30-8:30까지 두시간씩 해서 이틀간을 하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슴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감사하게 지나게 됩니다. 몇일전에 배우 김우빈님께서 유퀴즈 온더 블럭에 나오신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우빈님이 갑자기 암세포가 발견되셔서 수술과 항암, 방사선 등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다시 나으셔서 드라마와 영화 등을 다시 하시며 일을 하시는데 감사일기를 쓰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특별한 일에 대한 감사일기를 쓰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한 내용이 자신의 감사일기 제목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제가 매일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게 왔지만 가능하면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과도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미팅도 많이 했고요.
지난번에 이어서 2017년의 기억들을 좀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2017년은 제 인생에서 힘들었던 해 중의 하나로 기억됩니다. 미국에서 오랜기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2014년에 회사를 떠나 다시 직장을 찾고 적응을 하는 등 계속 수년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금방 몇년이 휙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방문한 것도 이미 4-5년간 시간을 내지 못해 가끔씩 아버지께 돈을 부치고 전화드리고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화도 하지 못했고 특히 아버지와 통화를 한참 하고나면 어머니와는 통화할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아서 몇마디 인사만 하거나 그것도 하지 않고 마쳐지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70대에 접어든 어머니께서 언제부턴가 나라에서 주관하는 아파트 청소용역일을 시작하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어머니께서 자신을 위해서 돈이 좀 필요하신 모양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뿐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나다가 한국에 있는 동생들로 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이 4월 즈음입니다.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사진 상으로 암세포는 보이지 않지만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희한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말기암이라니…말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동생들과 통화하며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 보는게 좋겠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오진인 것 같다고….그리고 어머니께도 전화 상으로 아마 의사가 경험이 부족해서 잘못 진단을 한 것 같다고….이런 얘기를 하고 또 한달 정도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회사 일에 묻혀 지내고 혼자 하는 프로젝트여서 특별히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016년말에 마지막 단계 중간체 중 하나의 지방물질에 약산을 이용해서 아주 순수한 고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이 기술을 CRO 회사에 이전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했던 결과와 달리 CRO 회사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순도만 얻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두번째 CRO 회사에 같은 기술을 이전한 결과 이 두번째 회사는 저의 결과를 아주 잘 재현해서 다행히 Kg Scale-up까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회사의 결과와 제 결과를 데이터로 분석하면서 그 원인도 차츰 알게 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회사 내에서 큰 뉴스가 되어서 사장님도 저를 격려해 주실 정도였고 Chromatography step을 줄이면서 전체 공정을 대량생산에서 혁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4월부터 시작해서 6월에 첫 대졸신입사원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입직원을 교육시키면서 새로운 화합물의 공정개발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어느덧 여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동생들은 어머니를 다시 큰병원으로 모셔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 병원에서도 결국 말기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 암명칭은 CUPS (Cancer of Unknown Primary Source, 원발부위불명암)이라고 즉, 어떤 암인지 알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가 5월말 즈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병원에 가서 복수를 빼고 돌아 오셨다가 또 일주일 정도 지나면 복수가 다시 차서 다시 복수를 빼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수가 차오르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어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빼던 것이 며칠에 한번씩 자주 빼야 하는 상황이셨습니다.
바이오텍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서 동생들에게도 수술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모두 소용없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가하게 하는 조언이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습니다. 특히 막내여동생은 엄마를 이렇게 일찍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시중에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막내여동생이 복강경으로 하는 항암요법인 온열화학요법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이 온열화학요법은 복강경으로 복막에 있는 암세포에 직접 항암제를 주입하고 열을 가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시술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큰 병원보다는 중형병원이 하고 있었는데 안양샘병원에 있는 어느 의사분이 이 시술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논문 검색등을 한 결과 일본에서 이 치료를 하는 예를 볼 수 있었고 미국에서도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치료법은 국부적으로 복막에만 항암제를 맞추는 것이고 복강경이어서 어머니께서 받아보시면 혹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를 사시는 곳인 분당에서 먼 안양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절대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기도원에 가시겠다고 해서 너무나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안양샘병원의 담당의사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셔서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의사선생님께서도 간곡히 정성껏 설득을 하신 끝에 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교인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고 회사에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신입사원 교육 등으로 바쁘게 보내는 동안 어머니의 수술이 진행되었고 초기 예후는 다행히 좋아 보였습니다. 어머니도 좀 힘을 내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몇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생들 둘이 바쁜 일 중에 서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간호했는데 이미 몇달째 어머니를 간호하다 보니 지쳐가는 것이 멀리서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더 이상은 미국에서 전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보스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는데 다행히도 이민자인 저의 현실을 잘 이해해 주고 들어주었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되니 걱정하지 말고 시간도 염려하지 말고 마음껏 휴가를 사용하면서 어머니 간호에만 매진하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저의 일과 신입사원 교육은 같은 보스에게 보고하던 헝가리 출신 디렉터에게 맡겨졌습니다. 헝가리 디렉터도 몇년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헝가리에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저를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3주 혹은 4주 정도의 휴가를 얻고 마침내 7월 초에 인천 공항으로 입국을 했습니다. 입국한 당일날 분당 처가에 가서 짐을 풀고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그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나 혼자 간호를 할테니 좀 쉬라고 하고 그 때부터 어머니를 간호하게 되었습니다. 수술한지 얼마되지 않아 조금 괜찮아 지셔서 퇴원을 하고 분당 집으로 다시 모시고 갔고 어머니와 주일 예배도 가고 수요일 예배도 가고 동네 산책도 했습니다. 집이 엘레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거의 안아 올리듯이 해서 올려드려야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나아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갑자기 안 좋아지셨고 119를 불러서 급히 안양샘병원에 가는 일이 한두차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패혈증 증상이 있으셔서 거의 돌아가실 뻔 했는데 다행히 밤 늦게 안양샘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살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증상은 복강경 수술을 한 이후에 감염에 의한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특히 박테리아가 내성균주여서 약이 듣지 않았고 이런 면역이 좋지 않은 환자를 보호하기에 이 병원의 시설과 시스템은 열악해 보였습니다. 복수가 다시 차 오르고 어머니는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 지셔서 등뼈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여서 바로 누우실 수 없었습니다. 암세포는 점점 커져서 장을 막기 시작했고 장폐색 증상이 시작되고 암이 폐까지 진행되어 한쪽 폐는 이미 못 쓰게 되고 나머지 한쪽 폐도 절반은 물이 차고 나머지 절반으로만 가까스로 호흡을 하시는 어려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의사가 인공항문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절대 인공항문은 달지 않으시겠다고 완강히 반대하셔서 결국 이것은 하지 않기로 하고 수액으로만 식사를 드렸습니다.
이러는 기간동안 제가 알던 창투사 대표와 회사 설립을 하는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전화통화를 해야 했는데 이것도 너무나 병원에서 할 곳이 없어서 병원 복도 끝에서 해도 전체가 다 들을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갔고 저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 친구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는데 고맙게도 몇몇 친구는 병원까지 저를 찾아와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속한 3주가 되는 7월말이 되어 미국에 돌아갈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은 상태는 아니셨지만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누워계신 어머니를 안으며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또 올게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거쳐서 보스턴으로 돌아 왔습니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와 이별의 시간은 금새 다가왔습니다. 내가 돌아오고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셔야 했는데 동생들 말이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꺼내 달라고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중환자실에서 어머니께서 견디셨고 동생들에게 의사에게 돌아가셔도 좋으니 혈압, 산소포화도 등 수치를 어떻게든 맞추어서 일반 병실로 옮기도록 조언을 했고 담당 주치의도 그 뜻을 받아들여서 다음날 일인실로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일인실에서 아마도 동생들이 찬송가를 틀고 어머니께서 다시 신앙심을 회복하실 수 있게 준비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말이 하루를 넘기기 힘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3년째 혈액암 투병 중이셔서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 한국에 있었는데 다행인지 아내를 통해 밤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카카오톡 메시지에 뜨는 문자를 받으며 자정을 넘겨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 즈음 다시 눈을 떠보니 남동생으로 부터 문자 하나가 오고 있었습니다.
“형, 지금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가고 계셔...”
이렇게 하면서 어머니의 혈압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 지더니 조금 있다가 마지막으로 운명하셨다는 동생의 메시지가 떴습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참았던 울음이 와락 통곡이 되어 꺼억꺼억 울었고 그렇게 울다가 정신이 들 즈음 이제 다시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보스에게도 어머니의 부고를 알렸습니다.
갑작스런 비행기표 마련은 쉽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보스턴에서 뉴욕 JFK 공항까지 3시간반을 내리 새벽부터 달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갔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운전하는 시간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쉬지 않고 달려서 결국 JFK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빨리 갔어도 이미 어머니는 염을 하신 상태였고 저는 서둘러 상주복을 입은채로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을 장례식장에서 보내고 다음날 새벽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터와 납골당으로 모셨습니다. 그 뜨거운 어머니의 유골을 모시고 가면서 그리고 유족대표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신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리면서 그렇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다시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우리 모두는 옷을 갈아 입고 잠시 쉰 다음 저녁을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어머니 없이 맞는 가족식사였지만 저와 동생들 누구라 할 것 없이 너무 침울해 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를 믿는 마음으로 그래도 가능한한 기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장례식을 하는 중 미국에서 보스로 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승진되었네.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참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요? 저는 어머니의 장례식 가장 힘든 날, 승진이라는 경력상의 축하를 동시에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이것은 어머니께서 천국에 가셔서 저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은 이렇게 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어머니를 잃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2015년에 Moderna에 입사해서 1년간 있었던 몇가지 순간들과 경험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머릿속에 담아둔 얘기들을 이렇게 끄집어 내어 글로 쓰고 보니 조금더 자세히 그리고 보다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고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글은 말보다 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입사하고 처음 1년간 Cap chemistry와 Lipid chemistry를 경험한 저는 보스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격려를 받으며 차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자신감은 자칫 자만감으로 변할 여지가 있어서 항상 주의하며 제가 항상 배울 것이 더 많이 있고 아직도 부족하다는 자세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회사에서 1년간 있으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1년 정도 먼저 입사했던 동료들과 이런 저런 방식으로 친해지면서 듣게된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Moderna의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년 Platform Chemistry Head가 1년마다 계속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보스도 시간이 가고 있고 1년이 지나면 바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저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그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조소 섞인 반응은 초기 저의 회사 적응을 어렵게 한 복병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렇게 얘기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결국 한명씩 서서히 회사를 옮기더니 어느새 우리 보스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만 남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팀에서 새로운 Lipid 후보물질이 발굴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약물설계 단계부터 Biodegradablility를 염두에 두고 두개의 Ester bonds를 넣은 구조의 약물 최적화를 통해서 새로운 물질이 발굴된 것이어서 물질이 쉽게 가수분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물질이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 특성 상 새로운 Lipid를 속히 임상에 진출시키기 위한 시간 싸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화합물의 합성법을 신약개발팀 동료로 부터 받고 각 단계의 반응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들을 자세히 듣게 되었습니다. 보여지는 구조는 단순해 보였지만 말을 듣고 보니 반응의 조절이 쉽지 않았고 특히 마지막 최종 합성 단계는 1주일 동안 가열을 해도 고작 50-60%만 반응이 진행될 뿐 반응이 끝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정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혼자서 모든 공정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먼저 문헌 조사를 통해서 중간체의 특성에 대한 최대한의 자료 검색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한 물질이 잘하면 재결정으로 높은 순도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이에 근접한 – 그래도 여전히 최적 공정에는 못 미치지만 – 논문을 찾게 되었고 반응의 최적화와 Workup 최적화를 진행하면서 최종적으로 재결정 방법을 위한 스크리닝에 진입했습니다. 이 물질이 고가이기는 하지만 상용화가 되어 있다고 해서 구매를 해 보았지만 순도가 고작 94-95% 정도로 Supplier가 얘기하는 98% 이상의 순도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제가 발견한 용매군을 활용한 재결정법으로 99% 이상의 원하는 순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물질은 우리 Discovery 팀이 많이 활용하는 구조 골격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제가 새롭게 만든 물질을 Discovery 팀에 제공했고 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 공정은 계속 Scale-up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재결정법을 통한 효과적인 공정개발이 성공함에 따라 Non-chromatographic purification을 할 수 있겠다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과거 Merck Lipid 공정개발 과정에서 체득하고 개발한 Workup 방법을 활용해서 아주 순도 높은 중간체를 다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Tertiary amine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동료의 말을 빌리면 쉽지 않고 항상 Runaway reaction 혹은 Incomplete reaction 때문에 반드시 Chromatography를 해야 했고 그래도 순도가 그다지 확실히 높은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소량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반응을 Scale-up하는 방식으로 공정에 대한 감을 익히고 불순물을 어떻게 정제하면 좋을지 이리저리 시도해 본 결과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시간적인 문제로 인해서 마지막 두개의 공정은 어쩔 수 없이 Chromatography로 정제를 했고 다만 Silica gel to crude ratio를 최적화해서 용매 사용의 양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Scalability를 확보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역시 마지막 단계의 정제는 간단치 않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총동원해야 98% 이상의 높은 순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혼자서 자동으로 불이 꺼지는 실험실에 혼자 남아서 문제와 씨름을 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다행히 2달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공정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주일동안 가열해도 반응이 50% 정도밖에 진행하지 않던 마지막 단계를 새로운 용매군을 통해 하루 이내에 완결시킬 수 있는 쾌거를 이루어서 덕분에 정제에 들일 노력을 매우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시간을 마지막 공정 개발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중간 공정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고 마지막 단계까지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분석화학 동료에게 물질을 맡겨 얻은 순도 결과는 회사의 동료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초로 높은 순도의 우리 Lipid를 손에 쥐는 순간에 동료들이 축하해 주었고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 물질을 손에 넣고 넘겨주고 난 다음에 곧 이어서 이번에는 5개의 새로운 Lipid 후보물질을 각각 100g 이상씩 얻어야 한다는 프로젝트가 떨어졌습니다. 이 때 Formulation team 보스와 함께 새로운 CRO를 찾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가까운 Woburn에 있는 CRO 회사가 스위스에 본사가 있고 스위스 본사는 본래 Genzyme의 분사한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회사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CRO의 팀과 미팅을 하기 위해 그 회사를 방문하고 온라인 미팅을 하면서 G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G는 아주 차분한 백인 친구였는데 성질 급한 제가 밤이고 이른 아침이고 이메일을 보내면 곧장 답을 보내곤 해서 저를 놀래켰습니다. 덕분에 저는 공정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공정을 속히 개발해서 CRO에 넘기면 CRO는 G의 지도하에 몇단계의 Scale-up을 통해서 100g 이상의 물질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내는 방식으로 결국 5개의 모든 Lipid에 대한 공정을 2달이 채 되지 않아 모두 개발했고 문서화해서 Tech Transfer를 마쳤습니다. 이 과정 중에서 NHP study data를 얻었는데 이 중 하나의 약물이 가장 탁월한 결과를 주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결국 임상을 위한 LNP의 최종 Lipid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Preclinical 시험을 빠른 시일내에 이룰 수 있었고 첫번째 GMP batch를 스위스 본사 공장에서 생산하기 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사실상 G와 나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과 G의 노력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아주 친한 동료이자 친구로 지금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먼저 Merck와의 계약이 새로운 단계로 갱신되었습니다.
제가 모더나에 대한 회고록 (My Memoir in Biotech – Moderna) 을 12회까지 일사천리로 쓰고 중단한 때가 2023년 5월 28일이니까 벌써 2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지난 주에 San Francisco에서 오래 전에 보스턴에서 알고 지냈고 우리 딸의 결혼식에도 오셨던 아내 친구의 아드님 결혼식이 있어서 방문을 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은혜로운 결혼식을 잘 보고 온 것도 좋았지만 10여년전에 보스턴에 오셨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그것도 참 뜻깊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보스턴에 오셨던 분들 중에서 한 가정이 있었는데 두딸과 함께 캘리에서 보스턴에 오셔서 자녀들이 적응하는데 몹시 힘들어 하는 중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둘째가 우리 딸과 같은 6학년이었고 첫째가 10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미 친구들이 Elementary school부터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명은 고등학교, 다른 한명은 중학교에 들어온 것이니까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었고 그 해에 보스턴에 눈이 가장 많은 폭설이 온 해여서 겨울 적응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 그 때 얘기를 듣다보니 10여년전 일이었지만 당시 기억도 나고 함께 힘든 시기에 어린 자녀들을 돌보느라 노심초사하던 젊은 부모들의 심정을 다시 나누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10학년이었던 아이가 캘리에서 바이오텍에 다닌지 벌써 7년이나 되었는데 최근에 Layoff가 되어서 좀 도와줄 수 없는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어오셨습니다. 저야 당연히 도와드리겠다고 흔쾌히 말씀드리고 어제 마침내 그 아이와 전화로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렸던 아이는 어느덧 30세가 된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고 저처럼 바이오텍 회사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었습니다. 원래 전화로 “한 30분 정도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통화를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방언 터지듯 둘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를 하다보니 거의 두시간을 통화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A는 4년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 체험과 뜨거움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전화선 밖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열심히 주일성수를 하려고 노력하고 순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녀답게 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솔직히 나누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A의 지금의 모습이 마치 과거 제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유학준비도 때려 치우고 선교사 훈련과정에만 매몰되어 지내던 그 때의 저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서 그 얘기와 함께 성경말씀에서 나눈 얘기들, 욥기의 말씀들 Layoff에서 느낀 좌절과 실망들과 같은 각자의 이야기를 맞추어 가는데 시간차가 있을 뿐 너무나 비슷한 경험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떤 순간에 A는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저는 A 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A가 “아멘”하고 저의 기도제목을 묻더군요. 그래서 내 기도제목은 “A에게 좋은 career coach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웃으며 A도 저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한 이후에도 1시간여를 세상에서 느끼는 좌절감, 주위에 믿는 사람이 없는 현실, 데이트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삶의 이야기를 함께 진솔하게 할 수 있었고 저는 좌절하는 A를 격려하고 다시 붇독우며 “Don’t give up because God never give up”이라고 말을 해 주며 다시금 잡서치를 시작하도록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A와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난 후 다시 과거의 은혜를 경험했던 회고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다시금 “My Memoir in Biotech – Moderna”를 처음부터 12편까지 다시 찬찬히 읽으며 감사와 함께 잊고 지내던 사실들, 나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 – 이태석 박사님, 전구 목사님, Ronald Breaker 교수님 – 이 많이 생각이 났고 감사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12편까지 글을 쓰고 중단했던 이유 중 하나는 Moderna 직원으로서 회사일을 계속 쓰는데 대해서 좀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백신개발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매출도 증대되었지만 Science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중순에 저는 Moderna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회고록을 좀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기억력이 아직 좋을 때 기억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 주위의 동료들이 대부분 ex-Moderna 동료들이고 다들 지금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1월 5일 (월요일)에 저는 첫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부터 3일간 On-boarding training을 받게 되었는데 출근한 첫날 모든 직원들을 한군데로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뜻밖에 회사가 $450 Million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뉴스는 다시금 “하나님이 고용주이시다”는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인도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본래 2번째 인터뷰를 진행할 때 대표이사도 만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날따라 대표이사인 Stephane Bancel 사장님이 급한 일정이 생겨서 다시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 사장님과의 만남을 위해 세번째 인터뷰를 한번 더 한 것이었고 당시 만났던 사장님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 급한 일정이 이 펀딩을 마감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저와의 인터뷰가 연기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저의 회사에 재정적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로 부터 일주일만에 Merck와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450 Million 펀딩에 더해서 $50 Million upfront cash와 함께 $50 Million equity financing을 하는 조건의 딜이 제가 회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회사의 가치도 $3 Billion을 넘어가고 있어서 비상장회사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회사가 운용할 수 있는 현금이 마구마구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펀딩을 지켜보며 저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몇개월전에 Merck에 $3.85 Billion M&A가 된 Idenix가 Nasdaq 상장회사였슴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한 펀딩규모가 고작 (?) $200 Million이었는데 지금 제가 입사한지 한달도 안되어서 그에 3배 규모의 펀딩이 되었으니까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회사가 가진 현금이 $1 Billion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시작부터 남달랐던 Moderna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딜을 맺고 회사가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을 해 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입사한 후 놀랐던 것은 제가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뽑힌 Process chemist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두차례 최종라운드까지 인터뷰를 한 바가 있었는데 원하는 후보자를 찾을 수 없어서 엎어진 상태였고 제 Yale Postdoc 친구인 K가 저에 대한 얘기를 한 때부터 직급을 두단계나 올리면서 다시 라운드를 진행했는데 저와 인터뷰했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을 해 주어서 만장일치 (?)로 결정이 되었다는 후문이었습니다. 저보다 몇개월 전에 입사한 중국인 동료인 G가 그러더군요.
“네가 프리젠테이션 하는 동안 우리가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저의 Boss는 Merck 출신이었는데 이미 저에 대한 얘기를 알고 있는 듯이 행동을 해서 처음 만났는데도 제가 의아해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찬양 “완전하신 하나님 (예배합니다)“이라는 그 찬양이 떠오릅니다.
정말 이 찬양대로 “완전하신 나의 주, 의의 길로 날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일 주님의 영광, 다 경배합니다” 이런 마음이 절로 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맡을 프로젝트도 불분명한 상태였는데 처음에 맡게된 일은 mRNA의 Cap chemistry를 위한 공정을 최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mRNA에서 Cap 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100%에 가까운 Capping을 해내기 위한 새로운 Capping agent의 개발이 시급했고 이 Cap은 Nucleoside chemistry를 통해서 화학합성을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저와 같이 숙련된 (?) Nucleoside chemist가 하기에 가장 적합한 프로젝트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는 초기부터 생체내에서 불안정한 mRNA를 인체내로 전달하기 위한 전달체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지질나노입자 (LNP, Lipid Nanoparticle)를 통해서 mRNA를 감싸주어 다양한 인체내 Nuclease로 부터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함과 동시에 원하는 표적세포까지 mRNA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다행히 펀딩은 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험기기를 구입하는 문제와 같은 장비 구입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역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하나 놀랐던 것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입사해서 알고 보니 회사의 Science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황들은 어찌보면 회사라기 보다는 거대한 MIT 나 Harvard 연구소와 같은 느낌의 과학기관 같은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도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연구는 발표해서 나누는 문화여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신규인력의 조건은 “Presentation & communication” 능력이었고 제가 입사할 때 프리젠테이션 하던 모습이라든가 질문에 응대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것 등이 아마 저에 대해 모두들 긍정적으로 느낀 이유였던 모양이었습니다. 심지어 매분기마다 있는 Scientific Advisory Board Meeting에도 우리 모두가 참여를 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Bob Langer, Jack Szostak, David R. Liu와 같은 거물들 20명 가까이가 매번 참여해서 열띤 토론을 하는 것과 그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사번은 174번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회사에 있는 정규직은 150명이 채 안되었고 많은 인력이 계약직이었습니다. 나중에 계약직들도 다 정규직으로 변경이 되었지만 대졸자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1년 정도 일하고 나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들어왔고 이런 스타트업에서 저는 연구책임을 맡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었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즈음 보스로 부터 Merck의 자체 Lipid의 공정개발을 하라는 프로젝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Moderna 자체 Novel Lipid가 없는 상태였던 상태에서 Merck와 딜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공정과 관련해서 너무 큰 값을 부른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였다. 시간적으로도 한두달 내로 해결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전까지 Lipid chemistry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보스와 Discovery chemist들로 부터 조언을 들으며 나름대로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특허를 바탕으로 높은 순도의 Lipid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98% 이상의 순도여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CRO를 통해 이 Lipid의 공정개발을 해 보았지만 94% 정도 순도까지는 도달해도 그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초기부터 순도 관리에 철저히 매달렸다. LC-MS 로 중간 단계 공정의 최적화를 g 단위에서 먼저 공정을 개발하고 10x로 Scale-up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Multi-step process development를 진행해 나갔다. 혼자서 전 공정 개발을 진행해야 했기에 가능하면 공정의 규모는 적게 하고 대신에 공정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최적화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절감해 나갔다. 다행히 중간단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물질에는 2개의 cis-double bond가 있었는데 이것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 공정 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물질은 항상 빛과 산소로 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20 도 이하의 저온 냉장으로 안정성을 유지해 나갔다. 가장 어려웠던 단계는 역시 마지막 2-3 단계의 최종 공정이었다. 두개의 환원반응이 있었는데 이 환원반응을 완결시키면서도 Runaway reaction을 철저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몇가지 방법과 함께 Workup unit operation을 최적화시킴으로써 물질의 순도를 높게 유지하면서 2 cis-double bonds의 원형은 유지하며 마지막 단계로 들어갔다.
마지막 단계는 Tertiary amine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불순물을 어떻게 분리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단순한 Chromatography 방법으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진 Lipid impurity 특성상 분리가 어려웠다. 결국 Workup 방법을 Lipid에 최적화되게 바꾸고 마지막으로 Salt screening 방법을 통해서 Chromatography 없이 마지막 공정을 마쳤다. 그리고 HPLC-CAD 분석방법으로 Merck에서 제공한 Lipid와 비교해 본 결과 다행히 내가 만든 Lipid가 순도가 높고 모든 면에서 나은 결과를 보였다.
이 결과를 보스에게 보여주자 매우 흡족해 하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Merck와의 계약 체결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에 대한 상으로 특별 Stock option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있어 우리 회사는 Merck와 새로운 계약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연말 즈음 드디어 Moderna 자체로 개발한 Lipid가 도출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Merck Lipid Process Development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새로운 우리의 Lipid 공정 개발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기틀을 마련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CNBC의 50개 Disruptor List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50개 회사들 면면을 보면 Elon Musk의 SpaceX를 비롯해서 Uber, Airbnb, Dropbox, Palantir, Slack 등 지금에 와서 봐도 성공한 회사들이 심지어 Moderna보다 뒤에 있습니다. 헐~~ CoinBase는 31위에 있네요. Square가 40위, SnapChat이 50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