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TECH (187) Orbital Therapeutics: an in-vivo CAR-T company what BMS acquired at $1.5 Billion

2025년 10월 31일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보스턴에서는 한국에서 소위 섬머타임 (Daylight Savings Time)이라고 알려진 봄이 되면 1시간을 당겼다가 늦가을에 다시 1시간을 늦추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번주가 섬머타임이 끝나는 주이고 다음주부터는 1시간을 더 늦게 시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오늘이 할로윈 데이 (Halloween Day)라서 이번주가 젊은 직원들에게는 사-알짝 들뜬 분위기가 물씬 나는 그런 주였고 오늘 금요일에는 대부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내기도 하고 회사에 나왔던 직원들도 대부분 일찍 집에 귀가를 했습니다.

저도 오늘 해야 할 중요한 일과를 마치고 조금 이른 퇴근을 한 후에 이번 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을 하다보니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Orbital Therapeutics가 BMS에 합병된다는 소식이 있었지요. 사실 이 뉴스를 듣고 나서 바로 여기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을 했다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10월말이나 11월 경에 글을 써보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오늘 정도에 글을 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Beam Spin-Out Orbital Therapeutics Raises $270M to Advance RNA Portfolio – Biospace 4/26/2023

Orbital launched in September 2022 as a spin-out company from genome editing biotech Beam Therapeutics. One of its co-founders is John Maraganore, formerly the founding CEO of Alnylam, who helped spearhead RNA interference-based treatments in the industry. Maraganore had also previously worked at Millennium Pharmaceuticals and Biogen, where he held various leadership positions throughout his 10-year tenure.

Orbital CEO Giuseppe Ciaramella was previously the chief scientific officer of Moderna’s infectious disease unit…Also on Orbital’s masthead is Gilles Besin, who most recently led discovery research at Affinivax and was previously with Moderna, helping the company optimize its mRNA delivery platform. Besin is Orbital’s chief scientific officer.

Orbital Therapeutics는 2022년 9월에 Beam Therapeutics에서 Spin-off를 했는데 CEO인 Giuseppe “Pino” Ciaramella 박사와 CSO인 Gilles Besin 박사가 모두 Moderna에서 mRNA-LNP의 새로운 약물 모달리티를 만든 주역들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신 John Maranagore 박사님은 Alnylam의 CEO를 20여년간 하시고 몇년전에 VC로 바뀌신 분이시죠. Orbital의 설립에는 a16z의 주도적인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설립하고 반년 정도 되어서 $270 Million의 Series A를 했습니다.

Orbital Therapeutics raises $270M series A for next-gen RNA meds, loops in 2 more execs – Fierce Biotech 4/26/2023

같은 날 나온 Fierce Biotech의 기사에서는 기술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This toolbox includes linear RNA, circular RNA and lipid nanoparticle (LNP) tech. The circular RNA innovation has a patent with Stanford University, an institution the biotech is connected to via co-founders Howard Chang, M.D., Ph.D., and Ravi Majeti, M.D., Ph.D. Orbital has also licensed emerging tech in LNP, the science used in Moderna’s COVID vaccine, with hopes of delivering to a wide array of tissues.

그러니까 mRNA, circular RNA를 payload로 하고 LNP를 전달물질로 하는 기반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적응증에 대해 이 회사가 나아간다는 얘기를 했죠. 하지만 어떤 특정 질환을 표적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Orbital Therapeutics Presents Non-Human Primate Data for In Vivo CAR-T Therapy with Potential Best-in-Class Profile for Autoimmune Disease – Orbital Therapeutics Press Release 7/22/2025

그렇게 조용히 (?) 있다가 올해 7월말에 갑자기 In Vivo CAR-T Therapy 치료제를 Autoimmune disease에 이용할 수 있다는 Non-Human Primate Data를 발표하였습니다.

Specifically, in a non-human primate study, Orbital’s in vivo CAR-T approach achieved full B cell depletion in blood, spleen, and lymph nodes, which is required for an effective immune system reset in autoimmune disease. Based on preclinical findings to date, Orbital is advancing OTX-201 through IND-enabling studies and plans to begin clinical development in the first half of 2026.

OTX-201 comprises an optimized circular RNA encoding a CD19-targeted CAR delivered via targeted lipid nanoparticles (LNPs) with in vivo administration. This in vivo approach, in which the patient’s own body serves as the manufacturer of CAR-T cells, has the potential to offer a reduced treatment burden and improved accessibility compared to ex vivo CAR-T therapies, which require patient cell collection and complex manufacturing processes followed by intensive conditioning regimens prior to infusion. Orbital is developing OTX-201 for B cell-driven autoimmune diseases, where the therapeutic goal is to deplete autoreactive B cells and reset the immune system. B cell-driven autoimmune diseases span more than 40 disease indications across multiple therapeutic areas, including rheumatology, neurology, and dermatology.

여기에 내놓은 약물명은 OTX-201인데 circular RNA-LNP이고 CD19-targeted CAR를 전달하는 약물입니다. 이 약물의 B-cell depletion 효과를 NHP study에서 보여주었고 이것이 게임체인저가 되었습니다. 결국 B-cell관련 자가면역질환에 적용할 수 있고 류마티스, 신경계, 피부질환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Orbital Therapeutics가 비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여전히 알기 어렵지만 홈페이지 상에서 보면 아래와 같은 다양한 조합을 선보입니다.

사실 Orbital Therpeutics가 이 결과를 발표하기 2달 전에 Orna Therapeutics에서도 In Vivo CAR-T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Orna Therapeutics Presents New Preclinical Data Supporting its in vivo CAR Therapy Approach in Autoimmune Diseases at the American Society of Gene and Cell Therapy Annual Meeting – PR Newswire 5/15/2025

제가 사실 좀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지금으로 부터 2년반 전에 Circular RNA platform을 기반으로 한 세개의 Startup회사에 대해 비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Orbital Therapeutics였고 이 때 Orna Therapeutics도 있었습니다. Laronde는 지금 Sail Biomedicine으로 합병되어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죠.

BIOTECH (40) – Circular RNA Platform – Orbital vs Laronde vs Orna Therapeutics

Circular RNA 분야가 시작된 것은 :aronde가 2017년에, Orna Therapeutics가 2019년, Orbital Therapeutics가 2022년에 설립이 되었으니까 벌써 약 6-8년 정도 연구가 지속된 분야인데 Circular RNA는 드디어 In Vivo CAR-T 분야에서 새로운 Modality로 주목을 받으며 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회사 설립과 역순으로 M&A가 진행되고 있네요. ㅎㅎ

Circular RNA 분야에서 Orna와 Orbital이 거의 유사한 payload와 LNP로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국 베이징 대학과 칭화대학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거의 같은 시기에 논문을 냈습니다.

CircRNA-based, non-integrated, in vivo panCAR-mediated B cell immune resetting in mouse models and non-human primates. bioRxiv 2025

이런 분위기에서 BMS가 $1.5 Billion으로 아직 전임상 단계의 Orbital Therapeutics를 인수하는 결정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

BMS Makes $1.5B Cell Therapy Play With Orbital Takeover – Biospace 10/10/2025

BMS is currently the only pharma player with two approved CAR T therapies against two different targets: the anti-BCMA Abecma, indicated for relapsed or refractory multiple myeloma, and the CD19-directed Breyanzi, approved for several blood cancers, including mantle cell lymphoma and follicular lymphoma.

Ex-vivo CAR-T 치료제 마켓에서 이미 두개의 약물을 보유한 BMS가 In Vivo CAR-T에 뛰어든 건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날에 나온 Fierce Biotech의 기사를 좀 살펴 볼까요?

BMS inks $1.5B in vivo CAR-T buyout to pull Orbital into its sphere of influence – Fierce Biotech 10/10/2025

“I think in vivo is an interesting platform. Obviously, it’s much, much earlier and further out [than ex vivo], but I think that is another great concept of can you potentially give a patient almost like a vaccine shot and provide them that same kind of CAR expression,” Hoch said. “Early data looks super intriguing and interesting, and so we’ve been watching that field quite closely.”

Lynelle Hoch는 BMS의 Cell Therapy 부문을 총괄하는 분입니다. In Vivo CAR-T에 대해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뿐만 아니라 최근의 In Vivo CAR-T 분야가 얼마나 M&A의 표적이 되고 있는지 아주 잘 정리해 주며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BMS isn’t alone in using M&A dollars to bulk up in this field. In June, AbbVie inked a $2.1 billion purchase of Capstan Therapeutics to add an early-phase autoimmune in vivo CAR-T drug to its pipeline. In addition, Gilead Sciences’ Kite Pharma forked over $350 million for in vivo CAR-T player Interius BioTherapeutics in August, while AstraZeneca paid $1 billion for EsoBiotec and its in vivo lentiviral vector platform back in March.

자 이제 궁금증은 Orna Therapeutics로 넘어 갑니다. Orna Therapeutics의 In Vivo CAR-T 치료제는 과연 누구와 손을 잡게 될까요?

My Biotech Memoir – Moderna (16) – 2018년 NASDAQ 상장사가 되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직장을 옮기면서 일하는 방식이 3일은 회사에 나가고 2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Hybrid 근무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좋은 것이 회사에 나가는 날을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인데 오늘은 아침에 치과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재택근무를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있는 첫 미팅을 마치고 치과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본래 시간보다 30분 일찍 올 수 없느냐는 것이었어요. 다른 분의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시간이 비었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시간을 원래보다 30분 일찍 가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전기회사에서 전화가 오더니 오후까지 전기가 나간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치과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차에 탔는데 아내에게 문자를 받았는데 같은 얘기를 하는거에요. 제가 너무 정신없이 나오다 보니 전기가 나간다는 얘기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잊어 버렸거든요. 그래서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햄버거를 한 개 먹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컴퓨터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전화기 하나 달랑 들고 도서관을 들어갔으니 책을 하나 읽어보자 하고 서가를 뒤졌는데 마침 어떤 분의 회고록 (Memoir)이 눈에 들어와서 그 책을 잠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는데 책을 읽는 중에 미팅이 있어서 차로 나와서 미팅을 하고 미팅이 끝나니 전기가 들어왔다는 전기회사의 메시지가 와서 다시 도서관으로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미팅들을 마쳤습니다. 여하튼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회고록인데요. 그 책의 내용보다도 회고록을 대략 어떻게 써야겠구나. 하는 감을 잡게 해 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대로 2017년에 어머니를 여의는 큰 일을 겪고 아픔과 동시에 승진의 위로 (?)도 얻은 저는 2018년을 맞게 됩니다. 2018년은 혈액암 투병을 하시는 장인어른의 암치료가 더이상 치료효능을 얻지 못한채 소강상태로 들어간 상황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혈액암은 초기, 중기, 말기가 큰 상관이 없어요. 혈액이 온몸을 돌기 때문에 항암제를 맞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계속 항암제를 맞아야 하는데 처음 맞은 항암제의 내성이 생기기 전까지 맞고 그 약의 내성이 생기면 다음 약을 맞는 식으로 계속 이런 상태를 이미 4년여를 해 오신 상태셨습니다. 사실 시중에 나온 첨단 신약 항암제를 거의 다 맞으셨지요. 저도 항암제 개발을 해 본 적이 있고 당시에도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해서 반드시 항암백신을 성공시켜야 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랬는데 2018년에 들어서면서는 아버님의 항암제 반응이 현저히 줄어드시고 뿐만 아니라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해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어 지셨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현저히 감소하셔서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을 간호하시던 장모님도 점점 힘들어 하시는 등 많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제 아내의 마음도 점점 타들어 갔고요.

가정적으로는 이런 힘든 상황이었지만 회사 상황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먼저 2월초에 $500 Million Equity Financing을 하게 되었습니다.

Moderna Raises $500M Financing for mRNA R&D, Manufacturing – GEN Edge 2/2/2018

하나님의 은혜로 연구자금은 항상 풍족한 상태로 매년 지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Merck와 항암백신에 대한 연구계약을 연장하게 되었죠. 암백신 연구는 당시까지 30년간 답보 상태였는데 Moderna의 mRNA Cancer Vaccine의 가능성이 서서히 열려가는 분위기였습니다.

Biotech unicorn Moderna raises another $125 million in expanded Merck partnership – CNBC 5/3/2018

이런 또 $125 Million이라는 거금이 들어왔네요. 제가 입사한 이래로 모든 펀딩의 단위가 $100 Million 단위였습니다. 어질어질 했습니다.

그리고 7월에 드디어 Norwood에 cGMP Manufacturing Site를 오픈합니다. 본래 케임브리지에 cGMP 사이트가 작은 규모였지만 있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Prototype으로 해서 Norwood Site를 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Norwood 시대와 자체 mRNA-LNP GMP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되었죠.

Moderna opens $110M manufacturing site for its mRNA program – Fierce Pharma 7/17/2018

이 기간 중 아버님의 병세는 크게 악화되셨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한국에 방문을 해서 아버님을 간호하기 시작했고요. 아버님의 병인 B-Cell Lymphoma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결국 아버님은 병마와 5년간 잘 싸워 오셨지만 10월 10일 황망하게도 영원히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저도 급히 귀국을 해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어머니 때에는 제가 따스한 유골함을 안았었는데 이번에는 사위였기 때문에 아버님의 영정사진을 제가 안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버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가는 것과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작년에 이어 어머님과 장인어른 두분을 암으로 잃고 나서 저의 마음속에는 암백신을 개발하는 우리 회사 Moderna의 mRNA-LNP 기술이 반드시 성공하도록 해야 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말 Moderna는 드디어 NASDAQ 상장을 하게 됩니다. 본래 상장 목표는 $500 Million이었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에 실제로는 $604 Million 그러니까 목표보다 $100 Million 이상이 더 들어온 당시로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IPO 액수였습니다.

Moderna’s cash juggernaut rolls on with record $604M IPO – Fierce Biotech 12/7/2018

이렇게 해서 2018년은 2017년과 유사하게 부모님 중 한분을 여의고 회사의 상장이라는 기념을 얻는 희비를 모두 맞보는 또다른 한 해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17년과 2018년 아니 아버님의 암이 발병했던 2013년 이후부터 우리는 매년 어려운 삶을 이어 나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Career Coaching (35) Peer-Coaching Community를 만들기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커리어 코칭에 대해 처음으로 글을 쓴 것이 2022년 11월초니까 지금까지 3년여를 나름대로 커리어 코칭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돈은 받지 않고 커리어 코칭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서 몇몇분을 나름대로 코칭을 해 봤는데 그 중에서 그나마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는 참 드물더라구요. 마음이 좀 ㅏ맞아야 하는 면도 있겠지만 무료로 하다 보니 저도 그렇지만 코칭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혹시 코칭을 더 받고 싶어도 저에게 연락을 취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먼저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고 코칭을 하고 또 한참 지나서 (거의 일년 가량) 다시 제가 좀 덜 바빠질 즈음에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계속 되는 거에요. 이게 가장 큰 고민 덩어리였습니다. 특히 요즘에 Job Market이 좋지 않아서 커리어 코칭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도 선뜻 도움을 청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저도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커리어 코칭을 받은 적이 있어요. 3-4번까지는 회사 100% 지원으로 커리어 코칭을 받는 것이어서 저도 그렇고 코칭하시는 분 입장에서도 서로 상호간에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서 잘 진행을 했는데 막상 그 무료 기간이 끝나니까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저도 그분께 연락을 하지 않게 되더군요.

이 경험이 저에게 커리어 코칭에 대한 생각을 좀더 확고하게 (?) 가지게 한 것 같습니다. 사실 꼭 모두가 무료 커리어 코칭을 원하는 건 아니었어요. 몇분께 여쭈어 보면 돈을 내더라도 하고 싶다는 분들도 종종 계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돈을 받고 커리어 코칭을 하는 것이 처음 얼마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리 긍정적일 것 같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커리어 코칭을 하는 목적이 그 분들 (코칭을 받는 대상자분들)과 아주 오랜 기간동안 만나면서 함께 성장하고 격려하면서 인생과 커리어, 즉 Work-Life Balance, 를 함께 해 나가는 것이거든요.

제가 Bucket List를 많이 써 놓았는데 시간을 돌이켜 다시 생각을 해 보면 그 중 대부분은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인생 목표라기 보다는 그 당시 잠시 하고 싶어했던 패션처럼 왔다가 가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Bucket List를 쓴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돈이 아닌 이후의 삶에서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쓴 것이었는데요. 블로거가 되는 것 말고는 오랜동안 지속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커리어 코칭은 좀 다릅니다. 커리어 코칭은 블로그 이후에 정말 ‘돈을 떠나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의 범주에 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Bucket List가 맞는거죠. 이건 정말 나이가 들어서 바이오텍 업무를 하지 않게 되더라도 꼭 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래서 커리어 코칭을 어떻게 하면 오랜 기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봤습니다. 먼저 제가 하려는 커리어 코칭에 대한 나름의 생각은 이런거에요.

  • 무료로 하는 커리어 코칭
  • 상대방도 배우고 저도 배우는 상호관계적 코칭
  • 장기적인 코칭 – 최소 5년 이상 많게는 10년, 20년도 지속할 수 있는 코칭
  • 내 전문분야 뿐만 아니라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코칭
  •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할 수 있는 코칭

이렇게 쓰고 보니 거의 종교단체 같은 성격이 드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을 하게 된 게 비영리기관을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미국에는 501(c)(3)라는 비영리기관이 있는데요. 제가 예전에 한인교회에서 재정부장을 할 당시에 교회를 비영리기관으로 만드는 서류 작업을 제가 스스로 한 적이 있어서 어떻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그래서 이런 예가 있는지 찾아 보니까 웬걸?

의외로 꽤 많은 거에요.

그래서 이 방법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무료로 커리어 코칭을 하는 어떤 분과 이 생각에 대해서 잠시 나눴는데요. 글쎄 이 분도 생각에 공감을 하시면서 자신도 유태인 젊은 교수들이 Peer coaching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머리가 번쩍하고 갑자기 정리가 되었습니다.

아하!! “Peer Coaching Community”를 만들면 되겠구나!!!

이렇게 말이죠.

그래서 다시 힘을 얻고 무료 커리어 코칭을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이 무료 커리어 코칭 동호회 즉 “Peer Coaching Community”를 말이죠.

혹시 이에 대해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저에게 이메일 (BostonDrLim@gmail.com)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My Biotech Memoir – Moderna (15) 가장 힘들었던 2017년, 어머니의 말기암 선고, 암투병과 어머니의 장례식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어제와 오늘 인도에 있는 CDMO와 이틀간 JSC를 했습니다. 인도시간과 미국시간을 맞추어서 동부시간 아침 6:30-8:30까지 두시간씩 해서 이틀간을 하고 나니 정말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슴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감사하게 지나게 됩니다. 몇일전에 배우 김우빈님께서 유퀴즈 온더 블럭에 나오신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김우빈님이 갑자기 암세포가 발견되셔서 수술과 항암, 방사선 등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다시 나으셔서 드라마와 영화 등을 다시 하시며 일을 하시는데 감사일기를 쓰신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특별한 일에 대한 감사일기를 쓰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한 내용이 자신의 감사일기 제목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정말 제가 매일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게 왔지만 가능하면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과도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면서 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미팅도 많이 했고요.

지난번에 이어서 2017년의 기억들을 좀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2017년은 제 인생에서 힘들었던 해 중의 하나로 기억됩니다. 미국에서 오랜기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2014년에 회사를 떠나 다시 직장을 찾고 적응을 하는 등 계속 수년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금방 몇년이 휙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방문한 것도 이미 4-5년간 시간을 내지 못해 가끔씩 아버지께 돈을 부치고 전화드리고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화도 하지 못했고 특히 아버지와 통화를 한참 하고나면 어머니와는 통화할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아서 몇마디 인사만 하거나 그것도 하지 않고 마쳐지는 시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70대에 접어든 어머니께서 언제부턴가 나라에서 주관하는 아파트 청소용역일을 시작하신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어머니께서 자신을 위해서 돈이 좀 필요하신 모양이다.”라고 생각을 했을 뿐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나다가 한국에 있는 동생들로 부터 전화를 받게 된 것이 4월 즈음입니다. 어머니가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가셔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사진 상으로 암세포는 보이지 않지만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희한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데 무슨 말기암이라니…말이 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동생들과 통화하며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 보는게 좋겠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오진인 것 같다고….그리고 어머니께도 전화 상으로 아마 의사가 경험이 부족해서 잘못 진단을 한 것 같다고….이런 얘기를 하고 또 한달 정도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회사 일에 묻혀 지내고 혼자 하는 프로젝트여서 특별히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016년말에 마지막 단계 중간체 중 하나의 지방물질에 약산을 이용해서 아주 순수한 고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이 기술을 CRO 회사에 이전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했던 결과와 달리 CRO 회사에서는 그다지 높지 않은 순도만 얻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두번째 CRO 회사에 같은 기술을 이전한 결과 이 두번째 회사는 저의 결과를 아주 잘 재현해서 다행히 Kg Scale-up까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회사의 결과와 제 결과를 데이터로 분석하면서 그 원인도 차츰 알게 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회사 내에서 큰 뉴스가 되어서 사장님도 저를 격려해 주실 정도였고 Chromatography step을 줄이면서 전체 공정을 대량생산에서 혁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4월부터 시작해서 6월에 첫 대졸신입사원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입직원을 교육시키면서 새로운 화합물의 공정개발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러다 보니 어느덧 여름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동생들은 어머니를 다시 큰병원으로 모셔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 병원에서도 결국 말기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 암명칭은 CUPS (Cancer of Unknown Primary Source, 원발부위불명암)이라고 즉, 어떤 암인지 알 수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때가 5월말 즈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의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병원에 가서 복수를 빼고 돌아 오셨다가 또 일주일 정도 지나면 복수가 다시 차서 다시 복수를 빼는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수가 차오르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어서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빼던 것이 며칠에 한번씩 자주 빼야 하는 상황이셨습니다.

바이오텍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어서 동생들에게도 수술뿐만 아니라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가 모두 소용없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역만리 미국에서 한가하게 하는 조언이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습니다. 특히 막내여동생은 엄마를 이렇게 일찍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시중에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막내여동생이 복강경으로 하는 항암요법인 온열화학요법에 대해서 물어왔습니다. 이 온열화학요법은 복강경으로 복막에 있는 암세포에 직접 항암제를 주입하고 열을 가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시술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큰 병원보다는 중형병원이 하고 있었는데 안양샘병원에 있는 어느 의사분이 이 시술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었습니다. 나도 나름대로 논문 검색등을 한 결과 일본에서 이 치료를 하는 예를 볼 수 있었고 미국에서도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치료법은 국부적으로 복막에만 항암제를 맞추는 것이고 복강경이어서 어머니께서 받아보시면 혹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머니를 사시는 곳인 분당에서 먼 안양까지 모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절대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기도원에 가시겠다고 해서 너무나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안양샘병원의 담당의사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셔서 어머니를 설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의사선생님께서도 간곡히 정성껏 설득을 하신 끝에 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교인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고 회사에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신입사원 교육 등으로 바쁘게 보내는 동안 어머니의 수술이 진행되었고 초기 예후는 다행히 좋아 보였습니다. 어머니도 좀 힘을 내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으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몇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동생들 둘이 바쁜 일 중에 서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간호했는데 이미 몇달째 어머니를 간호하다 보니 지쳐가는 것이 멀리서도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더 이상은 미국에서 전화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보스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는데 다행히도 이민자인 저의 현실을 잘 이해해 주고 들어주었고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되니 걱정하지 말고 시간도 염려하지 말고 마음껏 휴가를 사용하면서 어머니 간호에만 매진하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저의 일과 신입사원 교육은 같은 보스에게 보고하던 헝가리 출신 디렉터에게 맡겨졌습니다. 헝가리 디렉터도 몇년 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헝가리에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저를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3주 혹은 4주 정도의 휴가를 얻고 마침내 7월 초에 인천 공항으로 입국을 했습니다. 입국한 당일날 분당 처가에 가서 짐을 풀고 다음날 바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이 그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나 혼자 간호를 할테니 좀 쉬라고 하고 그 때부터 어머니를 간호하게 되었습니다. 수술한지 얼마되지 않아 조금 괜찮아 지셔서 퇴원을 하고 분당 집으로 다시 모시고 갔고 어머니와 주일 예배도 가고 수요일 예배도 가고 동네 산책도 했습니다. 집이 엘레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거의 안아 올리듯이 해서 올려드려야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나아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갑자기 안 좋아지셨고 119를 불러서 급히 안양샘병원에 가는 일이 한두차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패혈증 증상이 있으셔서 거의 돌아가실 뻔 했는데 다행히 밤 늦게 안양샘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살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증상은 복강경 수술을 한 이후에 감염에 의한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특히 박테리아가 내성균주여서 약이 듣지 않았고 이런 면역이 좋지 않은 환자를 보호하기에 이 병원의 시설과 시스템은 열악해 보였습니다. 복수가 다시 차 오르고 어머니는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 지셔서 등뼈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여서 바로 누우실 수 없었습니다. 암세포는 점점 커져서 장을 막기 시작했고 장폐색 증상이 시작되고 암이 폐까지 진행되어 한쪽 폐는 이미 못 쓰게 되고 나머지 한쪽 폐도 절반은 물이 차고 나머지 절반으로만 가까스로 호흡을 하시는 어려운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의사가 인공항문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절대 인공항문은 달지 않으시겠다고 완강히 반대하셔서 결국 이것은 하지 않기로 하고 수액으로만 식사를 드렸습니다.

이러는 기간동안 제가 알던 창투사 대표와 회사 설립을 하는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전화통화를 해야 했는데 이것도 너무나 병원에서 할 곳이 없어서 병원 복도 끝에서 해도 전체가 다 들을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갔고 저도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교회 친구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는데 고맙게도 몇몇 친구는 병원까지 저를 찾아와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속한 3주가 되는 7월말이 되어 미국에 돌아갈 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좋은 상태는 아니셨지만 돌아가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누워계신 어머니를 안으며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 또 올게요” 이렇게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해 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거쳐서 보스턴으로 돌아 왔습니다.

예상과 달리 어머니와 이별의 시간은 금새 다가왔습니다. 내가 돌아오고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셔야 했는데 동생들 말이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꺼내 달라고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일을 중환자실에서 어머니께서 견디셨고 동생들에게 의사에게 돌아가셔도 좋으니 혈압, 산소포화도 등 수치를 어떻게든 맞추어서 일반 병실로 옮기도록 조언을 했고 담당 주치의도 그 뜻을 받아들여서 다음날 일인실로 어머니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일인실에서 아마도 동생들이 찬송가를 틀고 어머니께서 다시 신앙심을 회복하실 수 있게 준비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말이 하루를 넘기기 힘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3년째 혈액암 투병 중이셔서 아내와 아이들이 아직 한국에 있었는데 다행인지 아내를 통해 밤까지 전화통을 붙잡고 카카오톡 메시지에 뜨는 문자를 받으며 자정을 넘겨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만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 즈음 다시 눈을 떠보니 남동생으로 부터 문자 하나가 오고 있었습니다.

형, 지금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가고 계셔...”

이렇게 하면서 어머니의 혈압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 지더니 조금 있다가 마지막으로 운명하셨다는 동생의 메시지가 떴습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참았던 울음이 와락 통곡이 되어 꺼억꺼억 울었고 그렇게 울다가 정신이 들 즈음 이제 다시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보스에게도 어머니의 부고를 알렸습니다.

갑작스런 비행기표 마련은 쉽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보스턴에서 뉴욕 JFK 공항까지 3시간반을 내리 새벽부터 달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갔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운전하는 시간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쉬지 않고 달려서 결국 JFK공항에 도착했고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리 빨리 갔어도 이미 어머니는 염을 하신 상태였고 저는 서둘러 상주복을 입은채로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을 장례식장에서 보내고 다음날 새벽 어머니를 모시고 화장터와 납골당으로 모셨습니다. 그 뜨거운 어머니의 유골을 모시고 가면서 그리고 유족대표로 마지막까지 함께 하신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리면서 그렇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를 마치고 다시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우리 모두는 옷을 갈아 입고 잠시 쉰 다음 저녁을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어머니 없이 맞는 가족식사였지만 저와 동생들 누구라 할 것 없이 너무 침울해 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를 믿는 마음으로 그래도 가능한한 기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장례식을 하는 중 미국에서 보스로 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승진되었네. 승진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참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요? 저는 어머니의 장례식 가장 힘든 날, 승진이라는 경력상의 축하를 동시에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이것은 어머니께서 천국에 가셔서 저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은 이렇게 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어머니를 잃은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습니다.

My Biotech Memoir – Moderna (14) – Year 2016

2025년 10월 27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 번에는 2015년에 Moderna에 입사해서 1년간 있었던 몇가지 순간들과 경험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머릿속에 담아둔 얘기들을 이렇게 끄집어 내어 글로 쓰고 보니 조금더 자세히 그리고 보다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고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역시 글은 말보다 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입사하고 처음 1년간 Cap chemistry와 Lipid chemistry를 경험한 저는 보스 등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격려를 받으며 차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큰 자신감은 자칫 자만감으로 변할 여지가 있어서 항상 주의하며 제가 항상 배울 것이 더 많이 있고 아직도 부족하다는 자세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회사에서 1년간 있으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1년 정도 먼저 입사했던 동료들과 이런 저런 방식으로 친해지면서 듣게된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부정적이었습니다. 동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Moderna의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매년 Platform Chemistry Head가 1년마다 계속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보스도 시간이 가고 있고 1년이 지나면 바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저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그들의 냉소적인 태도와 조소 섞인 반응은 초기 저의 회사 적응을 어렵게 한 복병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렇게 얘기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결국 한명씩 서서히 회사를 옮기더니 어느새 우리 보스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만 남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팀에서 새로운 Lipid 후보물질이 발굴되었고 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물질은 약물설계 단계부터 Biodegradablility를 염두에 두고 두개의 Ester bonds를 넣은 구조의 약물 최적화를 통해서 새로운 물질이 발굴된 것이어서 물질이 쉽게 가수분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물질이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 특성 상 새로운 Lipid를 속히 임상에 진출시키기 위한 시간 싸움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화합물의 합성법을 신약개발팀 동료로 부터 받고 각 단계의 반응에서 겪은 소중한 경험들을 자세히 듣게 되었습니다. 보여지는 구조는 단순해 보였지만 말을 듣고 보니 반응의 조절이 쉽지 않았고 특히 마지막 최종 합성 단계는 1주일 동안 가열을 해도 고작 50-60%만 반응이 진행될 뿐 반응이 끝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정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혼자서 모든 공정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먼저 문헌 조사를 통해서 중간체의 특성에 대한 최대한의 자료 검색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한 물질이 잘하면 재결정으로 높은 순도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마침 이에 근접한 – 그래도 여전히 최적 공정에는 못 미치지만 – 논문을 찾게 되었고 반응의 최적화와 Workup 최적화를 진행하면서 최종적으로 재결정 방법을 위한 스크리닝에 진입했습니다. 이 물질이 고가이기는 하지만 상용화가 되어 있다고 해서 구매를 해 보았지만 순도가 고작 94-95% 정도로 Supplier가 얘기하는 98% 이상의 순도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제가 발견한 용매군을 활용한 재결정법으로 99% 이상의 원하는 순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물질은 우리 Discovery 팀이 많이 활용하는 구조 골격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제가 새롭게 만든 물질을 Discovery 팀에 제공했고 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 공정은 계속 Scale-up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재결정법을 통한 효과적인 공정개발이 성공함에 따라 Non-chromatographic purification을 할 수 있겠다는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과거 Merck Lipid 공정개발 과정에서 체득하고 개발한 Workup 방법을 활용해서 아주 순도 높은 중간체를 다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Tertiary amine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동료의 말을 빌리면 쉽지 않고 항상 Runaway reaction 혹은 Incomplete reaction 때문에 반드시 Chromatography를 해야 했고 그래도 순도가 그다지 확실히 높은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소량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반응을 Scale-up하는 방식으로 공정에 대한 감을 익히고 불순물을 어떻게 정제하면 좋을지 이리저리 시도해 본 결과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시간적인 문제로 인해서 마지막 두개의 공정은 어쩔 수 없이 Chromatography로 정제를 했고 다만 Silica gel to crude ratio를 최적화해서 용매 사용의 양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Scalability를 확보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역시 마지막 단계의 정제는 간단치 않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총동원해야 98% 이상의 높은 순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혼자서 자동으로 불이 꺼지는 실험실에 혼자 남아서 문제와 씨름을 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다행히 2달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공정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주일동안 가열해도 반응이 50% 정도밖에 진행하지 않던 마지막 단계를 새로운 용매군을 통해 하루 이내에 완결시킬 수 있는 쾌거를 이루어서 덕분에 정제에 들일 노력을 매우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시간을 마지막 공정 개발에 쏟아 부을 수 있도록 중간 공정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고 마지막 단계까지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분석화학 동료에게 물질을 맡겨 얻은 순도 결과는 회사의 동료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초로 높은 순도의 우리 Lipid를 손에 쥐는 순간에 동료들이 축하해 주었고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 물질을 손에 넣고 넘겨주고 난 다음에 곧 이어서 이번에는 5개의 새로운 Lipid 후보물질을 각각 100g 이상씩 얻어야 한다는 프로젝트가 떨어졌습니다. 이 때 Formulation team 보스와 함께 새로운 CRO를 찾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가까운 Woburn에 있는 CRO 회사가 스위스에 본사가 있고 스위스 본사는 본래 Genzyme의 분사한 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 회사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CRO의 팀과 미팅을 하기 위해 그 회사를 방문하고 온라인 미팅을 하면서 G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G는 아주 차분한 백인 친구였는데 성질 급한 제가 밤이고 이른 아침이고 이메일을 보내면 곧장 답을 보내곤 해서 저를 놀래켰습니다. 덕분에 저는 공정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고 공정을 속히 개발해서 CRO에 넘기면 CRO는 G의 지도하에 몇단계의 Scale-up을 통해서 100g 이상의 물질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해내는 방식으로 결국 5개의 모든 Lipid에 대한 공정을 2달이 채 되지 않아 모두 개발했고 문서화해서 Tech Transfer를 마쳤습니다. 이 과정 중에서 NHP study data를 얻었는데 이 중 하나의 약물이 가장 탁월한 결과를 주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결국 임상을 위한 LNP의 최종 Lipid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Preclinical 시험을 빠른 시일내에 이룰 수 있었고 첫번째 GMP batch를 스위스 본사 공장에서 생산하기 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사실상 G와 나 사이의 끊임없는 소통과 G의 노력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아주 친한 동료이자 친구로 지금까지 남게 되었습니다.

이런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먼저 Merck와의 계약이 새로운 단계로 갱신되었습니다.

Merck and Moderna Announce Strategic Collaboration to Advance Novel mRNA-Based Personalized Cancer Vaccines with KEYTRUDA® (pembrolizumab) for the Treatment of Multiple Types of Cancer – Merck Press Release 6/29/2016

그리고 Vertex와 Cystic Fibrosis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은 mRNA의 Modality를 기존의 백신이나 간 치료제를 넘어 호흡기 치료제로 지경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Vertex and Moderna Hammer Out $315 Million+ Deal to Treat Cystic Fibrosis Using mRNA Technology – Biospace 7/6/2016

미국 정부의 BARDA와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474 Million 펀딩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Moderna Wins Up to $125M from BARDA toward Zika mRNA Vaccine – GEN Edge 9/7/2016

Moderna boosts its latest round to $474m – Global Corporate Venturing 9/7/2016

이로써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1.3 Billion의 Cash balance를 늘여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제가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2년간의 펀딩과 계약 진행 상황은 초월적인 수준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My Biotech Memoir – Moderna (13) – 2015년 1월에 입사하다.

10/27/2025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모더나에 대한 회고록 (My Memoir in Biotech – Moderna) 을 12회까지 일사천리로 쓰고 중단한 때가 2023년 5월 28일이니까 벌써 2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지난 주에 San Francisco에서 오래 전에 보스턴에서 알고 지냈고 우리 딸의 결혼식에도 오셨던 아내 친구의 아드님 결혼식이 있어서 방문을 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은혜로운 결혼식을 잘 보고 온 것도 좋았지만 10여년전에 보스턴에 오셨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그것도 참 뜻깊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보스턴에 오셨던 분들 중에서 한 가정이 있었는데 두딸과 함께 캘리에서 보스턴에 오셔서 자녀들이 적응하는데 몹시 힘들어 하는 중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둘째가 우리 딸과 같은 6학년이었고 첫째가 10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미 친구들이 Elementary school부터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명은 고등학교, 다른 한명은 중학교에 들어온 것이니까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었고 그 해에 보스턴에 눈이 가장 많은 폭설이 온 해여서 겨울 적응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 그 때 얘기를 듣다보니 10여년전 일이었지만 당시 기억도 나고 함께 힘든 시기에 어린 자녀들을 돌보느라 노심초사하던 젊은 부모들의 심정을 다시 나누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10학년이었던 아이가 캘리에서 바이오텍에 다닌지 벌써 7년이나 되었는데 최근에 Layoff가 되어서 좀 도와줄 수 없는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어오셨습니다. 저야 당연히 도와드리겠다고 흔쾌히 말씀드리고 어제 마침내 그 아이와 전화로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어렸던 아이는 어느덧 30세가 된 어엿한 아가씨가 되었고 저처럼 바이오텍 회사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되었습니다. 원래 전화로 “한 30분 정도하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통화를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방언 터지듯 둘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를 하다보니 거의 두시간을 통화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A는 4년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 체험과 뜨거움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전화선 밖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지 열심히 주일성수를 하려고 노력하고 순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녀답게 살고자 애쓰고 있는 것을 솔직히 나누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A의 지금의 모습이 마치 과거 제가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유학준비도 때려 치우고 선교사 훈련과정에만 매몰되어 지내던 그 때의 저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서 그 얘기와 함께 성경말씀에서 나눈 얘기들, 욥기의 말씀들 Layoff에서 느낀 좌절과 실망들과 같은 각자의 이야기를 맞추어 가는데 시간차가 있을 뿐 너무나 비슷한 경험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떤 순간에 A는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저는 A 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A가 “아멘”하고 저의 기도제목을 묻더군요. 그래서 내 기도제목은 “A에게 좋은 career coach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웃으며 A도 저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한 이후에도 1시간여를 세상에서 느끼는 좌절감, 주위에 믿는 사람이 없는 현실, 데이트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삶의 이야기를 함께 진솔하게 할 수 있었고 저는 좌절하는 A를 격려하고 다시 붇독우며 “Don’t give up because God never give up”이라고 말을 해 주며 다시금 잡서치를 시작하도록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통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A와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난 후 다시 과거의 은혜를 경험했던 회고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다시금 “My Memoir in Biotech – Moderna”를 처음부터 12편까지 다시 찬찬히 읽으며 감사와 함께 잊고 지내던 사실들, 나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 – 이태석 박사님, 전구 목사님, Ronald Breaker 교수님 – 이 많이 생각이 났고 감사하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12편까지 글을 쓰고 중단했던 이유 중 하나는 Moderna 직원으로서 회사일을 계속 쓰는데 대해서 좀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백신개발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매출도 증대되었지만 Science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중순에 저는 Moderna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회고록을 좀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기억력이 아직 좋을 때 기억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내 주위의 동료들이 대부분 ex-Moderna 동료들이고 다들 지금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1월 5일 (월요일)에 저는 첫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부터 3일간 On-boarding training을 받게 되었는데 출근한 첫날 모든 직원들을 한군데로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뜻밖에 회사가 $450 Million 펀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Moderna Closes $450 Million Financing to Support Growth of Messenger RNA Therapeutics™ Platform across Diverse Therapeutic Areas – PR Newswire 1/5/2015

이 뉴스는 다시금 “하나님이 고용주이시다”는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인도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본래 2번째 인터뷰를 진행할 때 대표이사도 만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날따라 대표이사인 Stephane Bancel 사장님이 급한 일정이 생겨서 다시 꼭 만나야 한다고 해서 사장님과의 만남을 위해 세번째 인터뷰를 한번 더 한 것이었고 당시 만났던 사장님은 시종일관 싱글벙글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 급한 일정이 이 펀딩을 마감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저와의 인터뷰가 연기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와 동시에 저의 회사에 재정적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로 부터 일주일만에 Merck와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Moderna Announces License and Collaboration Agreement with Merck to Develop Messenger RNA-based Antiviral Vaccines and Passive Immunity Therapies – PR Newswire 1/13/2015

$450 Million 펀딩에 더해서 $50 Million upfront cash와 함께 $50 Million equity financing을 하는 조건의 딜이 제가 회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회사의 가치도 $3 Billion을 넘어가고 있어서 비상장회사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회사가 운용할 수 있는 현금이 마구마구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펀딩을 지켜보며 저는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몇개월전에 Merck에 $3.85 Billion M&A가 된 Idenix가 Nasdaq 상장회사였슴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한 펀딩규모가 고작 (?) $200 Million이었는데 지금 제가 입사한지 한달도 안되어서 그에 3배 규모의 펀딩이 되었으니까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회사가 가진 현금이 $1 Billion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시작부터 남달랐던 Moderna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딜을 맺고 회사가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을 해 나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입사한 후 놀랐던 것은 제가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뽑힌 Process chemist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미 두차례 최종라운드까지 인터뷰를 한 바가 있었는데 원하는 후보자를 찾을 수 없어서 엎어진 상태였고 제 Yale Postdoc 친구인 K가 저에 대한 얘기를 한 때부터 직급을 두단계나 올리면서 다시 라운드를 진행했는데 저와 인터뷰했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을 해 주어서 만장일치 (?)로 결정이 되었다는 후문이었습니다. 저보다 몇개월 전에 입사한 중국인 동료인 G가 그러더군요.

네가 프리젠테이션 하는 동안 우리가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저의 Boss는 Merck 출신이었는데 이미 저에 대한 얘기를 알고 있는 듯이 행동을 해서 처음 만났는데도 제가 의아해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이 찬양 “완전하신 하나님 (예배합니다)“이라는 그 찬양이 떠오릅니다.

정말 이 찬양대로 “완전하신 나의 주, 의의 길로 날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일 주님의 영광, 다 경배합니다” 이런 마음이 절로 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제가 맡을 프로젝트도 불분명한 상태였는데 처음에 맡게된 일은 mRNA의 Cap chemistry를 위한 공정을 최적화하는 것이었습니다. mRNA에서 Cap 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100%에 가까운 Capping을 해내기 위한 새로운 Capping agent의 개발이 시급했고 이 Cap은 Nucleoside chemistry를 통해서 화학합성을 해야만 하는 것이어서 저와 같이 숙련된 (?) Nucleoside chemist가 하기에 가장 적합한 프로젝트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는 초기부터 생체내에서 불안정한 mRNA를 인체내로 전달하기 위한 전달체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었는데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지질나노입자 (LNP, Lipid Nanoparticle)를 통해서 mRNA를 감싸주어 다양한 인체내 Nuclease로 부터의 공격으로 부터 보호함과 동시에 원하는 표적세포까지 mRNA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다행히 펀딩은 충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험기기를 구입하는 문제와 같은 장비 구입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역시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또하나 놀랐던 것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입사해서 알고 보니 회사의 Science가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황들은 어찌보면 회사라기 보다는 거대한 MIT 나 Harvard 연구소와 같은 느낌의 과학기관 같은 운영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도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연구는 발표해서 나누는 문화여서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신규인력의 조건은 “Presentation & communication” 능력이었고 제가 입사할 때 프리젠테이션 하던 모습이라든가 질문에 응대하고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이끌어 나갔던 것 등이 아마 저에 대해 모두들 긍정적으로 느낀 이유였던 모양이었습니다. 심지어 매분기마다 있는 Scientific Advisory Board Meeting에도 우리 모두가 참여를 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Bob Langer, Jack Szostak, David R. Liu와 같은 거물들 20명 가까이가 매번 참여해서 열띤 토론을 하는 것과 그 분위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사번은 174번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회사에 있는 정규직은 150명이 채 안되었고 많은 인력이 계약직이었습니다. 나중에 계약직들도 다 정규직으로 변경이 되었지만 대졸자들은 대부분 계약직으로 1년 정도 일하고 나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저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들어왔고 이런 스타트업에서 저는 연구책임을 맡아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었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즈음 보스로 부터 Merck의 자체 Lipid의 공정개발을 하라는 프로젝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Moderna 자체 Novel Lipid가 없는 상태였던 상태에서 Merck와 딜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공정과 관련해서 너무 큰 값을 부른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였다. 시간적으로도 한두달 내로 해결을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이전까지 Lipid chemistry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보스와 Discovery chemist들로 부터 조언을 들으며 나름대로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특허를 바탕으로 높은 순도의 Lipid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98% 이상의 순도여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미 CRO를 통해 이 Lipid의 공정개발을 해 보았지만 94% 정도 순도까지는 도달해도 그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초기부터 순도 관리에 철저히 매달렸다. LC-MS 로 중간 단계 공정의 최적화를 g 단위에서 먼저 공정을 개발하고 10x로 Scale-up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Multi-step process development를 진행해 나갔다. 혼자서 전 공정 개발을 진행해야 했기에 가능하면 공정의 규모는 적게 하고 대신에 공정을 여러번 반복하면서 최적화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절감해 나갔다. 다행히 중간단계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물질에는 2개의 cis-double bond가 있었는데 이것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 공정 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물질은 항상 빛과 산소로 부터 철저히 차단시키고 -20 도 이하의 저온 냉장으로 안정성을 유지해 나갔다. 가장 어려웠던 단계는 역시 마지막 2-3 단계의 최종 공정이었다. 두개의 환원반응이 있었는데 이 환원반응을 완결시키면서도 Runaway reaction을 철저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몇가지 방법과 함께 Workup unit operation을 최적화시킴으로써 물질의 순도를 높게 유지하면서 2 cis-double bonds의 원형은 유지하며 마지막 단계로 들어갔다.

마지막 단계는 Tertiary amine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불순물을 어떻게 분리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단순한 Chromatography 방법으로는 유사한 구조를 가진 Lipid impurity 특성상 분리가 어려웠다. 결국 Workup 방법을 Lipid에 최적화되게 바꾸고 마지막으로 Salt screening 방법을 통해서 Chromatography 없이 마지막 공정을 마쳤다. 그리고 HPLC-CAD 분석방법으로 Merck에서 제공한 Lipid와 비교해 본 결과 다행히 내가 만든 Lipid가 순도가 높고 모든 면에서 나은 결과를 보였다.

이 결과를 보스에게 보여주자 매우 흡족해 하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Merck와의 계약 체결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에 대한 상으로 특별 Stock option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있어 우리 회사는 Merck와 새로운 계약을 발표했다.

Moderna Licenses New Vaccine Candidates Against a New Viral Target to Merck – Moderna Press Release 1/11/2016

뿐만 아니라 2015년 연말 즈음 드디어 Moderna 자체로 개발한 Lipid가 도출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Merck Lipid Process Development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새로운 우리의 Lipid 공정 개발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기틀을 마련한 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CNBC의 50개 Disruptor List에서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Disruptor’ Moderna: Human drug trials within 18 months – CNBC 5/12/2015

당시 50개 회사들 면면을 보면 Elon Musk의 SpaceX를 비롯해서 Uber, Airbnb, Dropbox, Palantir, Slack 등 지금에 와서 봐도 성공한 회사들이 심지어 Moderna보다 뒤에 있습니다. 헐~~ CoinBase는 31위에 있네요. Square가 40위, SnapChat이 50위 입니다.

CNBC Disruptor 50 2015 – CNBC 5/12/2015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준비하심 – 여호와 이레“의 결과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BOSTONIAN (66) 임윤찬 독주회 – J S Bach 골트베르크 변주곡 BWV988 을 들은 감동

2025년 10월 22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결혼식 참석차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습니다. 역시 보스턴 날씨가 캘리포니아 보다는 서늘하군요. 이런 날에 피아니스트 임윤찬님의 독주회가 있어서 오늘 저녁 보스턴 심포니 홀에 다녀왔습니다. 작년에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독주회를 혼자 하는 것이고 보스턴에서 하는 한번 뿐인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자리가 3층까지 꽉 찼더군요.

이번에 연주한 노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BWV 988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초연한 분의 이름이 요한 고틀리프 골트베르크라고 해서 골트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이 노래는 임윤찬님의 스승이신 손민수 교수님의 인생 연주곡이라고도 합니다. 역시 그 스승의 그 제자네요.

오늘 들은 변주곡은 뭐랄까 임윤찬님이 자신의 음악 세계에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변주곡은 일정한 화성 진행에서 변형을 시키는 것이어서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악기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합창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곡이 같은 가사를 계속 반복하고 변주하는 노래였거든요. 그래서 피아노 연주는 합창보다 더 어렵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이 노래를 작곡한 배경에는 러시아의 백작의 불면증이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백작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를 위해 골트베르크가 연주를 하곤 했는데 바흐에게 자신의 불면증을 위해 골트베르크가 연주할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바흐는 본래 변주곡의 단조로움 때문에 변주곡 작곡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백작의 불면증을 위해서는 변주곡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해서 이 변주곡을 작곡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피아노가 흔치 않고 두개의 건반을 가진 챔발로가 주로 연주되었는데 이 노래도 챔발로로 연주하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연주는 14개의 변주곡으로 연주가 진행되었는데 처음에는 마치 연습곡을 연주하던 것처럼 연주가 되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앞선 변주곡을 마치 다시 하나로 웅장하게 연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연주가 되었고 가장 마지막에는 다시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기악연주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건 처음 겪는 경험이었는데 제 아내는 여러 차례 눈물이 났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어서 좀더 남다른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1시간 반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는 임윤찬님의 연주를 들으면서 온 몸과 온 감각이 호강하는 느낌이 들었고 뭔가 다른 차원의 인생 경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옆자리에 저의 치과 의사 가족과 함께 앉게 되어서 같이 들었고요 오랜만에 교회 후배 내외도 만나는 복을 누렸습니다. 역시 한국인들이 거의 대부분 그 자리를 채운 것 같더군요. 모든 감동이 있었습니다.

BOSTONIAN (65) 김경천 장군님 – 일본육사 기병중위 출신 연해주 항일독립군 장군 (1888-1942)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Winston Churchil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국사를 배운 바 있지만 여전히 새롭게 배워야 할 잊혀진 역사와 영웅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새삼 배우게 됩니다. 오늘 소개할 분은 김경천 (1888-1942) 장군이라는 분입니다. 제가 이 분에 대해 알게 된 건 고작 어제입니다. 이렇게 무지한 제자신을 느낄 때에는 정말이지 한심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당 이회영 6형제는 모든 가산을 처분하고 40만원 (지금 돈으로 약 650억원에서 2000억원 상당)의 거금을 만들어 최초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가문입니다. 이 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신흥강습소를 시작으로 1919년 3.1운동 이후 훈련생들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신흥무관학교가 개교하게 되는데 당시 남만삼천이라는 세분의 교관이 계셔서 신동천 (본명 신팔균), 지청천 (본명 지석규) 그리고 김경천 (본명 김광서)의 3분이십니다. 신동천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제2기 졸업생이었고 김경천 장군은 일본육군사관학교 23회 졸업생이자 기병 중위였으며 지청천 장군은 일본육군사관학교 26회 졸업생이자 보병 중위 출신이었습니다. 당시에 “뛰는 김좌진, 남만삼천이면 산천초목도 두려워 떤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광주고려인마을, 김경천 장군 세미나에 ‘남만산천’ 후손 한자리에 – 남도일보 9/5/2023

김경천 장군께서는 1888년 대한제국

김경천 장군님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영상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KBS에서 2012년 방영한 역사스페셜 –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다 의 영상입니다.

2012년 영상을 찍을 당시 김경천 장군님의 막내 따님이신 김지희님이 생존해 계셨고 증손녀인 김올가님께서 할머니의 말씀 “네가 러시아어도 할 수 있고 한국어도 할 수 있으니 김경천 장군님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해 주길 바란다”라는 것을 듣고 김경천 장군님이 묻히신 카자흐스탄의 장소를 찾는 이야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분의 유해는 수많은 다른사람들과 함께 묻힌 상태여서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번째 영상은 김경천 장군의 증손녀인 김올가님이 국회방송에서 증언하는 내용입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신 우당 이회영 박사님의 손자이신 이종찬 회장님이 김올가님을 많이 도와주시는 것 같습니다.

김올가님의 바램이 나오는데요 하나는 김경천 장군님의 백마탄 동상을 만들어서 제막하고 싶다는 것이고 영화제작이나 만화제작 등을 통해서 김경천 장군님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니 김올가님께서 심장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시네요.

‘백마탄 김경천 장군’ 증손녀, 생활고에 투병까지… 도움의 손길 절실 – 경북도민일보 7/7/2025

김올가님이 2019년에 증조할아버지인 김경천 장군님께 쓰신 편지가 있어서 전문 링크와 함께 일부를 나눕니다.

옛 소련땅서 독립운동 김경천 장군님께 증손녀 김올가 올림 – AsiaN 6/15/2019

할아버지는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전쟁을 이끌었어요. 그 모진 세월, “백마를 타고 일제 침략자들을 무찌르던 김경천 장군”의 전설이 동포들의 가슴을 얼마나 뛰게 했을까요. 2005년 할아버지의 일기가 발견됐어요. 그게 바로 할아버지가 피눈물로 쓰신 <경천아일록>(擎天兒日錄)이었어요. 거기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동서양에 전쟁이 전개되면 우리는 중국의 동북3성과 시베리아에 자연적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백만의 우리 민족으로 세계에 대해서는 정의와 인도로, 일본에 대해서는 능히 혈전을 벌여 열강의 호의를 얻을 것이며, 독립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즉 나는 이번에 꼭 독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직접 독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야 가능하다.” 할아버지가 망명하기 직전인 1919년 3월 1일에 쓴 일기였어요. 그 시절에 그렇게 멀리 내다보셨다니!

1919년에 이미 2차세계대전과 독립의 가능성을 이미 예견하고 계셨고 이에 독립군을 양성하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진짜 “김일성 장군”이 존재했다. 동아일보도 1923년 7월 23일 확인 보도 – 교육N시민 2/3/2021

1983년 (사)한국독립유공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항일투쟁의 영웅 진짜 김일성 장군(1888~1925년 실종)의 이름은 김경천(金擎天) 이며, 본명은 金光瑞(김광서), 일명 金日成(김일성)으로 밝혀졌다. 그는 1910년 일본 육사(제23기 기병과)를 졸업하고 기병중위(기마부대)로 근무하다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항일투쟁을 결심하고 1919년 6월 6일 청산리전투의 명장 지청천(池靑天: 일명 지석규, 당시 일본군 중위)장군과 함께 근무지인 서울(당시 京城)을 탈출, 평안북도 신의주를 거처 만주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이 되었다. 1919년 12월 무기획득을 위해 시베리아로 가자, 마침 시베리아로 출병한 일본군과 러시아 백군을 상대로 1922년 10월까지 수많은 전투를 벌인 것으로 인해 항일투쟁의 상징이고 전설적인 독립군 영웅인 ‘김일성 장군’으로 칭송받았다.

당시 일본군은 러시아의 왕실부대인 백군과 연합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항한 러시아 적군과 김경천 장군이 이끄는 고려해방군이 연합하여 많은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22년 일본이 러시아에서 물러나게 되고 이 때부터 러시아 적군은 오히려 고려해방군을 해산하고 1925년 이후 김경천 장군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1942년에 러시아 정부에 스파이 혐의를 쓰고 시베리아 노역형을 받다가 병으로 돌아가신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김경천 장군님이 일본 유학시절부터 1920년까지 쓰신 일기인 경천야일록 (擎天兒日錄)이라는 일기가 발견되어 김경천 장군의 삶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천아일록을 번역하여 출간한 김병학 교수님의 논문이 있어서 링크를 합니다.

경천아일록은 1888년 김경천이 출생한 때부터 1919년 만주 망명까지는 수기형식으로, 1920년부터 1925년 말까지는 일기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연해주 지역 항일운동가 김경천 장군이 1920년대에 기록한 경천아일록은 2005년 무렵에 그 존재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 까라간다 주에 거주하는 김경천 장군의 막내딸 지희씨를 비롯한 유가족이 까라간다 정보국 문서보관소에 찾아가 김경천의 유품을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하자 그 기관에서 서류뭉치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김경천 장군이 쓴 일기 경천아일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경천 장군님의 유가족들이 오랜기간 수차례에 걸쳐 김경천 장군님의 유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이 일기 경천아일록이 발견된 것입니다.

1919년 초여름 망명에 성공한 이후부터 1922년 여름 빨치산 전투를 끝낼 때까지 3년간의 기록은 항일투쟁사에 대단히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고도로 훈련된 군인답게 그는 극한적인 체험까지도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간결하게 표현하고 전투요도까지 그려 넣어가면서 당시 연해주 한인 항일빨치산들의 치열한 전투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나 그 절제된 언어 속에서는 숨길 수 없는 한인 빨치산 전사들의 피와 눈물과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부하에 대한 김경천의 연민과 애정이 절절히 흘러나온다. 그 외에도 만주와 노령을 넘나들면서 마주치는 세태나 국제정치를 보는 안목, 당시 연해주와 만주에 걸쳐 널리 존재하던 우리 독립단이 처한 환경, 그곳에 산재하는 우리 고시대의 유적들, 우리 유민이 살아가는 모습 등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김경천이 대단히 우려하며 기록해놓은, 소비에트 적위군이 함께 피를 나눈 동료였던 우리 한인빨치산 부대를 몇 차례에 걸쳐 참살한 사건 등에 대한 기록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김경천은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만한 합리적 원인을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 보면 당시 고려인사회가 이와 같은 사건에 빌미를 제공할 만한 상황에 놓여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의 묘소는 2008년 김 예브게니씨가 발급받은 증명서를 토대로 최근에 확인해본 결과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그 묘소는 김경천 한 사람만 묻힌 무덤이 아니라 당시 그 수용소에 끌려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한 죄수들이 집단으로 묻혀있는 공동묘지다. 당국은 시신은 모아두었다가 1주일에 한 번씩 차에 싣고 가서 큰 구덩이를 파고 한꺼번에 매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경천 장군의 유해만 따로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거자료를 더 찾아 보완하고 세밀하게 확인하여 반드시 유해를 찾아 한국으로 봉환해야 할 것이다.

김병학 교수님 논문 이후로 김경천 장군님의 생애에 대해 좀더 자세히 전반적으로 다룬 논문이 있어서 링크를 올립니다. 전남대학교 윤선자 교수님의 논문입니다.

김경천의 결정에 아버지와 형은 찬성하지 않은 것 같다. 그해 여름 대한제국의 陸軍 副領으로서 도쿄를 방문한 김성은은 동생 김경천의 육군유년학교 입학을 반대하였다. 일본육군사관학교 공병과를 졸업하고 대한제국의 교관으로 근무하였지만, 김성은은 동생의 육군유년학교 입학을 반대하였다. 대한제국의 당시 정세를 보건데 군인은 그다지 희망적인 진로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천 장군님의 아버지와 형 모두 군인이었지만 대한제국의 당시 상황과 일본 정세를 잘 알고 있던 아버지와 형은 모두 군인이 되지 말고 공업을 배우도록 종용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 것 같습니다.

학교는 일제의 박해와 중국 지방 당국의 압력으로 1919년 11월 폐교하였다. 그러므로 김경천이 신흥무관학교의 교육을 담당할 수 있었던 시간은 길어도 4개월여에 지나지 않았다...일본군이 시베리아에서 철수하자 1922년 11월 <연해주 고려혁명군과 한인빨치산부대 군사혁명소비에트의 해산과 국민전쟁 참가자 귀가에 대한 인민혁명군 총사령관의 명령 799호>가 내려졌다. 러시아내전 이후 러시아 적군의 후원을 얻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려 했던 김경천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연해주의 모든 한인의병대들이 해산되면서 수청의병대도 해산되었다

마지막으로 스탈린 시대인 1937년에 벌어진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대한 논문을 하나 남겨 놓으려고 합니다. 김경천 장군님과 그 가족들이 카자흐스탄에 살게 된 이유가 바로 이 고려인 강제이주정책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김경천 장군님의 생가터에 표지석이 만들어 졌는데 이 표지석 제막식에서 증손녀 김올가님이 말씀하시는 영상이 있습니다. 중간에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데 곁에 계시는 이종찬 광복회장님이 등을 두드리며 위로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 제막식에는 우당 장학회가 참여했습니다.

김올가님의 소원대로 김경천 장군님의 백마탄 동상도 제막되고 영화와 만화 등도 나와서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이 무지하지 않고 김경천 장군님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8) 김부규님 – 인생2막 개척자들 인터뷰한 책 발간한 공무원 작가

2025년 10월 11일 (토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주는 좀 바쁘게 시간을 보낸 한 주였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아주 바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요. 10월 들어 몇주간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긴장을 한 탓인지 몇번 휘청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꾸준히 운동도 하고 거의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나름대로 건강 관리를 하는데도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역시 당할 재간이 없는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내와 함께 지인 분과 18홀 골프를 치고 왔습니다. 오늘도 새로 만나는 분과 함께 라운딩을 했는데 아주 골프를 잘 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서 즐겁게 골프를 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간 골프장은 단풍이 제법 풍성히 물들어 있어서 내가 골프를 치는지 단풍 구경을 하러 온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카트를 타고 주로 다니기는 했지만 후반에는 카트에서 내려서 많이 걸으며 주의 경관도 감상하고 잔듸도 밟으며 공도 치며 즐겁게 운동을 했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요즘 아내와 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하는 대화는 은퇴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제가 은퇴를 하겠다고 거의 매일같이 아내에게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최근에 직장을 옮긴 이후부터는 새로운 직장과 하는 일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 상태인데 이제는 아내가 오히려 저에게 은퇴 준비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고 저는 그걸 듣는 입장이 되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객전도가 된 상황이고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2막에 대해 좀 검색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의 주인공 “김부규”님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에 대한 몇편의 기사와 책을 출간하시는 것,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 연재기사를 내시는 것 등을 보게 되면서 김부규님의 삶의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김부규님에 대한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려 선배 퇴직자 찾아다니다 책까지 출간…“배우려면 두려움 없어야” – 서울경제신문 2/24/2025

김부규(59) 씨는 퇴직을 앞둔 이들이 길잡이로 삼을 사례집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인생 2막을 먼저 시작한 100명의 선배를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김 씨는 2015년 퇴직 준비를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정년까지는 10년이 남아 있었지만 선배들이 “퇴직 준비는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한 터였다. 주말마다 도서관을 찾아 퇴직과 노후 준비, 재취업에 관한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읽어 내려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의 눈을 번쩍이게 하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도서관을 찾은 지 2년 만이었다. 퇴직 후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를 창업한 중장년이 쓴 그 책에는 자영업자가 보내는 하루하루의 치열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글쓰기가 낯설었던 그는 지역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수강하고, 인터뷰 요령을 공부하며 인터뷰어가 되기 위해 1년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렇게 2019년 그의 퇴직자 인터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는 인생 2막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부딪쳐 봐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서 그의 인터뷰는 ‘체험 삶의 현장’을 방불케 한다고. 현장감을 살려서 글을 전달할 기회가 되기도 해 양봉장과 고추 농장 등 경험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직접 찾아가 일손을 도우며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궁금한 직종이 있다면 수소문해 발굴하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도 관련 인물이 눈에 띄면 주저하지 않고 섭외를 시도한다. 우연히 ‘산야초 팝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붙인 사진관을 발견하고는 무작정 들어가 ‘약초꾼으로 전직하시냐’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작가도 아닌 데다 기자 직함이 찍힌 명함 한 장도 없으니 거절당하기 일쑤. 그는 클리어 파일에 인터뷰 기사를 하나하나 출력해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6년간 카페, 철학원, 화물운송업, 양봉업, 귀농, 사회복지사, 시설 경비원 등 총 52명의 인생 2막 개척자를 만나 52가지의 직업 세계를 탐구했다. 그 결과물이 2022년에 출판한 ‘퇴직, 두렵지만 희망은 있다’이다. 그는 이를 개정해 ‘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도 출판했다.

인생 2막의 경로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심 분야의 책을 읽는 겁니다. 책에 길이 있어요. 저도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았어요. 저는 현직에 있으며 준비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충분히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휴대폰에 여러 어플을 다 설치해 봅니다. 그렇게 하다보니 키오스크도 마찬가지고 인스타, 엑스(구 트위터) 등도 다 다룰 수 있어요. 배우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해요. 일단 해보는 거죠.”

[화제] 현직 공무원이 은퇴자들의 새 일자리 다룬 책 출간 – 서울신문 2/11/2022

11일 김 팀장에 따르면 2025년 1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그도 다른 사람들 처럼,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던 ‘예비 퇴직자’이다. 선배들로 부터 “퇴직 10년 전 부터는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그는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인생 선후배들이 주위에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을 다룬 정보가 의외로 너무 없었다. 틈틈히 도서관을 다니면서 여러 책을 보며 퇴직 후 직업을 고민하던 그는 어느날 ‘먼저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어 치킨 가맹점 사장, 귀농인, 시내버스 운전사, 양봉농장 운영주, 화물차주, 개인택시 운전사, 편의점 대표, 행정사, 공인중개사, 대리운전기사 등 주변 지인 부터 하나 둘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로는 지인의 지인 소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만나 인터뷰를 했다. 퇴직 또는 전직 후 성공적으로 새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의 솔직하고도 ‘생생한 경험담’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타인들과도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터뷰 내용을 공유하기로 마음먹고 2019년 가을 부터 2년여에 걸쳐 20명의 인터뷰를 완료했고, 21번째 부터는 한 온라인 매체에 연재 중에 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앞길이 보였다. 김 팀장의 올해 목표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TV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이다. 내년엔 제2권 출간도 계획 중에 있으며, 이후 글씨기 공부를 더 해서 소설 집필에 도전할 생각이다. 글쓰기는 2018년 부터 시작해 아직 경험이 부족하지만, 꾸준히 공부하고 연습하면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부규님은 현직 공무원이신데 올해 12월에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10년 전인 2015년부터 은퇴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틈틈이 읽으셨는데 그 중 어떤 분의 체험 이야기를 읽으시고 이를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하기로 하셨다는군요. 인터뷰를 시작하시기 전에 글쓰기 교육이나 인터뷰에 대한 공부를 1년간 하시고 2019년에 인터뷰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뷰가 쉽지 않죠. 김부규님은 그분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을 돕고 체험을 하시면서 직접 부딪혀 보면서 글을 써나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특이점인 것 같고 이 분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글이 쓰여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책을 읽는 것이 모든 일의 가장 첫번째 길이라는 것을 김부규님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김부규님은 오마이뉴스에 2021년 9월부터 현재까지 43분의 인생2막 이야기를 연재하고 계십니다.

퇴직 후 새 인생 개척한 소시민 이야기 – 오마이뉴스 김부규 참여기자

김부규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현명한 은퇴자들’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 한 내용이 있군요.

첫번째 인터뷰 중에서 와닿는 말씀은

  • 관심분야 5 권의 책을 읽으라는 것이고 그 중에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그에 대해 15-20권 정도 책을 읽으면 길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될 것이다. 만약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책읽기를 시작하면 된다.

두번째 인터뷰 중에서 가슴에 와닿는 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공부하고 경험해 봐야 한다. 좋아해야 어려움이 올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노는 위주의 취미생활은 오래 가지 못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할 때 오래간다. –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느낌을 가지려면 어떤 의미있는 일을 해야 보상도 받게되고 일을 통해 또다른 즐거움을 누릴수도 있고 주위에 베풀 수도 있다. 따라서 생산적인 활동은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게 할 수 있다.
  • 직장생활에서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조금 여유있게 길게 시간을 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넓게 볼 수 있다.

김부규님은 근 10년간 책을 통해 공부하고 계속 시도하시면서 길을 찾아가는 방식을 몸소 체득하신 분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부터는 또 어떤 삶을 사실지 기대가 되어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모셨습니다.

BOSTONIAN (64) 손흥민 선수의 137경기 A매치 최다출전 신기록을 축하합니다.

2025년 10월 11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저는 “손흥민”이라는 대한민국 등번호 7번 선수를 사랑하는 팬의 마음으로 그리고 손흥민 선수 자신이 가장 기쁜 순간 중 하나로 2025년 10월 10일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남자축구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라는 것의 무게는 주장 완장을 차 본 선수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박지성 선수가 주장 완장을 찬 모습을 기억하고 현 월드컵 감독인 홍명보 감독의 선수 시절에도 주장 완장을 찬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이제까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탁월했던 선배 거인들의 어깨를 넘어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거인이 되어가는 중요한 우리의 자산이 되어 가고 있고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비록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나라 중 하나인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과의 홈경기 평가전에서 5대0 이라는 큰 점수차로 지기는 했지만 사실 이런 점수차가 우리 팬들에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고 기억해 보신다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거스 히딩크 감독님도 하도 5대0으로 지다 보니까 별명이 “5대0″이라고 불린 치욕적인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서 어쩌면 반드시 넘어가야할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경기를 보지 못하고 하이라이트로만 보았슴에도 많은 비가 오는 와중에서 고군분투한 우리 캡틴 손흥민 선수가 전방에서 홀로 브라질 수비수 여러명을 상대하며 외롭게 싸우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 대표팀에서 손흥민 선수가 전방 공격수로 경기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상대팀이 느끼는 부담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경기를 현장에서 직관한 분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축구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차례의 경기를 통해 손흥민이라는 탁월한 공격수가 우리의 주장으로 경기를 이끌 때에 상대팀이 아무리 강팀이라 할지라도 손흥민 선수를 한명의 수비수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어제 경기에서도 손흥민 선수 주위로 3명 이상의 수비수가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선수를 우리가 자랑스럽게 볼 수 있고 그로인해 대한민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 모두는 즐거운 흥분으로 경기를 보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장거리 비행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혼신을 다해 뛰어 주었고 그로 인해 더 큰 점수차가 날 수도 있었던 경기가 5대0으로 마무리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후방에서 수비하던 김민재, 조현우 선수가 막아낸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핫스퍼의 주장으로 있다가 팀을 옮기는 결정을 할 때 미국 LAFC로 옮기는 결정을 한 배경에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마음가짐과 고려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LA는 미국 서부 끝에 있어서 한국과 가장 가깝고 무엇보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는 미국에 있습니다. 이런 결정들을 할 때 대표팀이라는 생각, 주장이라는 생각에 대한 의지가 없이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은 우리 손흥민 선수가 2025년 지금 순간을 지나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를 생각할 때 저는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예선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 마지막 두번째 골을 넣기 위해 수십미터를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마침내 가까스로 골을 넣었던 그 순간이 기억에 매우 오래 남습니다. 이 골은 손흥민만이 할 수 있는 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경기 순간은 언제 보아도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어제 137경기 대표팀 A 매치 최다출전기록을 이룬 손흥민 선수를 위해 노컷뉴스는 4장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A매치 최다 출전 137경기’ 손흥민[노컷네컷] – 노컷뉴스 10/10/2025

마지막 우비를 입고 응원하는 대한민국 붉은악마 응원단 앞에서 온몸에 비를 맞은 손흥민 선수가 왼쪽에 주장완장을 차고 관중석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당연히 137경기가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아니죠. 지금부터 본인만의 새로운 기록을 위해 성큼성큼 나아가는 손흥민 선수에게 저는 언제나 그리고 오랜동안 영원한 팬으로 남아서 응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손흥민 선수 – 137회 최다A매치 출전 기록과 대한민국 월드컵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헌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