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 2025년 일본 北川進 (Kitagawa Susumu) 교수님의 MOF (Metal Organic Framework) 연구를 축하드리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10월이 되니 스웨덴에서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연일 계속되는군요. 작년에는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님이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셨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른 상도 관심이 있겠지만 저로서는 이번 화학상 수상자 중 한분이신 일본 교토대학교의 北川進 (Kitagawa Susumu) 교수님과 그분의 연구성과 그리고 이분에 대한 일본 현지의 언론의 기사를 중심으로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2024년까지 일본에서 공식적인 통계로 30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올해 벌써 두분을 배출함으로써 교토대학교에서만 10명으로 일본 내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낸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교토대학교에서 1949년에 湯川 秀樹 (Yukawa Hideki, 1907-1981) 교수님이 핵물리학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신 이후부터 2025년 현재까지 70여년간 꾸준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연구 업적과 문화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 수 없어서 부러울 따름입니다.

영어권 뉴스에서는 北川進 교수님 보다 다른 두분의 수상자에 대한 연구 업적을 좀더 얘기하는 경향이 있고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한해에 벌써 두명의 노벨상이 나왔다는 뉴스는 있지만 北川進 교수님의 업적에 대해서는 역시 일본 언론이 좀더 세심하게 연구 결과라든지 그분의 성장 배경 등에 대해서 얘기하는 기사가 훨그의 연구의 전환점은 1979년 교토대학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학의 조교로 임명되었을 때였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계산을 통해 화학 물질의 성질과 화학 반응을 해명하는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실험실에서는 금속 이온과 유기 분자로부터 화합물을 합성하는 완전히 다른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실험실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신 장비를 갖춘 의과대학에 밤에 사용해달라고 요청하고 밤새도록 실험을 했습니다. 조교로서 집안일로 바빴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학생의 전문 분야를 꿰뚫어 보거나 동기를 부여하고 연구를 맡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씬 많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일본 언론 특히 요미우리신문의 연재기사를 가지고 北川進 교수님에 대해 배워 보고자 합니다.

北川進 교수님, Richard Robson 교수님, Omar M. Yaghi 교수님의 2025년도 노벨화학상에 대한 내용은 노벨위원회에서 아래에 정리해서 올려 놓았습니다.

Scientific Background to the Nobel Prize in Chemistry 2025 – METAL–ORGANIC FRAMEWORKS – The Nobel Committee for Chemistry

그리고 키타가와 교수님의 최초 보고인 1992년 논문은 아래에 링크를 했습니다.

Synthesis of the Novel Infinite-Sheet and-Chain Copper(I) Complex Polymers

74세이신 키타가와 스스무 교수님에 대한 요미우리신문의 연재 기사를 올립니다.

노벨 화학상 키타가와 스스무 교토 대학 특석 교수 진로와 연구의 어려움… “아이디어는 참신할 때까지 두들겨 맞는다” -요미우리신문 10/82025

키타가와 교수님 연구의 전환점은 1979년 교토대학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되었을 때였습니다. 본래는 계산을 통해 물질의 성질과 화학 반응에 대한 연구를 했지만 교수가 되고나서 금속이온과 유기분자로 부터 화합물을 합성하는 새로운 연구주제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일본도 실험실 장비가 부족한 상태여서 최신장비가 있는 의대에 가서 밤을 새워 실험을 하기도 했고 지도하는 학생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연구를 맡기는 것 등도 배워 나갔다고 합니다. 수많은 노력 끝에 합성한 화합물에 수많은 구멍이 생겼고 이 구멍을 가스를 빼내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1997년에 논문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초기에 국제회의에서 발표하는 과정에서 “믿기지 않는다”. “잘못되었다”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연구가 노벨상을 받게된 키타가와 교수님 연구의 핵심입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지만 두들겨 맞았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면 끝입니다. 나는 그것이 개선의 연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취업을 생각하고 있던 키타가와 스스무에게 “건방진 연구자가 성장한다”고 밀어붙인 지도교수는-요미우리신문 10/8/2025

키타가와 교수님은 교토 중심부의 시조 가와라마치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지역 중학교에 다녔고 책을 읽으면서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배구에 전념하고 열심히 연습했고 주장을 맡아서 팀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회사 취업을 생각하던 키타가와에게 박사과정에 진학하도록 조언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조교수였고 현재 교토대학 명예교수인 모리시마 교수입니다.

키타가와 교수님의 학생이자 컴퓨터 그래픽(CG) 제작사 ‘사이언스 그래픽스’ 사장인 츠지노 타카시(43)는 교토 대학교 4학년생이던 2004년부터 3년간 키타가와 연구실에서 연구할 때 MOF는 “화학을 전공하는 학생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실용성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츠지노 씨 등에게 키타가와 씨는 ‘쓸모가 없다’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보기에 유용해 보이는 것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토 대학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선배’ 요시노 아키라씨는 “대단하다”고 말했다. 후쿠이 켄이치의 “손자”는 공통점이 있다.-요미우리신문 10/8/2025

리튬 이온 배터리를 개발하여 201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아사히화세이의 명예 연구원 요시노 아키라씨(77)는 키타가와 교수가 교토대학 석유화학과 요시노의 후배로, 일본인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후쿠이 켄이치의 손자다. 자신과 키타가와 씨가 화학상 일본 수상자가 계속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후쿠이 박사의 DNA를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깊은 감동을 담아 말했다.

후쿠이 씨는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최첨단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후쿠이 교수의 가르침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도 답을 찾는 연구자에게는 중요한 출발점이며, 키타가와 교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키타가와 씨의 업적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과학이며, 대기에서 온실 가스를 분리하는 등 세계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입니다.

키타가와 스스무 교수님이 학부시절에 후쿠이 켄이치 교수님은 교토대학교 교수이셨습니다. 그래서 손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오랜 연구 전통을 가진 대학에서 좋은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참 부럽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최근들어 일본의 연구동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좋은 연구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시간이 문제이지 한국에서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날이 곧 오기를 바랍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72) 소소한 매순간의 행복 (feat 행복해 지는 법 by 김진혁공작소)

2025년 10월 6일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25년은 저와 저의 가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해인데요 어느덧 10월에 접어 들었네요. 10월이 되고 저의 회사도 작은 바이오텍에서 대기업 글로벌 제약회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참 인생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도무지 무슨 계획대로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뒤돌아 보면 기대와 상상 이상의 길로 가고 있는 제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인생이란 무아지경 (無我之境), 무아도취 ((無我陶醉)) 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렇듯 인생 자체가 계획과 전혀 별개로 전개되지 않고 마는 것이라면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데요.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내용은 다큐멘터리 전문 회사인 김진혁 공작소에서 제작해서 2011년 1월 30일에 KBS 1TV에서 방영한 ‘KBS 스페셜 – 행복해지는 법 2부 행복의 비밀코드’라는 다큐멘터리를 2025년 7월 29일에 Youtube에 재방영하면서 보게 된 작품을 보고 난 저의 감상 후기와 생각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저녁 설겆이를 하면서 들었는데요 (저녁 설겆이는 제가 즐겨하는 제 취미생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Youtube를 듣고 있자니 우와 이 다큐멘터리를 쓴 작가가 누군지 너무나 궁금해 지는 거에요. 제가 듣기에도 너무나 잘 짜여진 극본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뿐만 아니라 한,두편의 논문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서 누가 만든 것인지 찾아봤죠. 역시 AI가 찾아주더군요. 이 작품을 만드신 분은 김진혁 PD셨습니다.

김진혁 PD님은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과 석사를 받으신 후 SBS 교양국 PD를 거쳐 1998년부터 김진혁공작소를 설립해서 각 방송국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서 공급하는 분이셨습니다. 역시 글도 잘 쓰셔서 책도 세권을 내셨는데 그 중 하나가 오늘 말하려는 다큐멘터리와 그전에 제작한 1부 다큐멘터리를 엮어서 만드신 책 ‘행복해 지는 법’이라는 책입니다. Youtube에 친절하게도 잘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가지면 행복할까? 라식 수술을 하면, 새 차를 사면, 고시에 붙으면,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까?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비록 그것이 바라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곧 그것에 익숙해지며 (쾌락 적응 현상), 우리는 늘 사물의 한 면을 강조해서 보는 경향(초점의 오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비밀은 무엇일까? 우리가 행복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와 진실을 다양한 실험과 조사, 인터뷰 등을 통해 알아본다.

행복 공식들의 검증 행복의 공식중 하나는 ‘원하는 것을 얼마나 가졌는가?’이다. 우리는 가진 것을 늘림으로써 또는 원하는 것을 줄이고 이미 가진 것을 즐김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식은 행복의 일면만을 설명해 준다. 행복해지는 데는 수많은 우리의 편견, 오해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 행복의 비밀코드는 무엇일까?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서울지검 검사를 그만두고 귀농을 준비 중인 오원근 변호사, 아버지와의 오랜 갈등 끝에 아프리카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박자연 씨, 행복한 환경미화원이자 시인 금동건 씨. 이들은 왜 행복한가? 이들은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시행착오 끝에 자신의 행복을 찾았는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다른 방식의 행복을 택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행복 공식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미하일 칙센트미하이 교수님의 말씀도 나오네요 “삶의 질은 평생 무슨 일을 하며 그 일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있다.” 일을 대하는 것에는 “(1) 생업을 위해 – 돈 때문에 일한다 (2) 출세를 위해 – 일을 즐길 때도 있다 (3) 소명을 위해 – 일을 사랑한다” 의 세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소명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행복도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결론처럼 만들어진 행복한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행복한 삶을 택하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김진혁 PD가 스스로 찾으신 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김진혁 PD가 ‘법대생의 삶’을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사법고시 1차를 합격했지만 2차에 고배를 마신 어느 고시생의 이야기가 나왔고 서울지검 검사생활을 그만두고 귀농을 한 변호사와 법대를 졸업했지만 사시생이 되는 대신 아프리카 자원봉사자로 사는 사람의 삶을 대비시켰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환경미화원을 하시면서 시인이신 금동건님에 대한 이야기도 짤막하게 나왔지만 이 분을 사이에 두고 두명의 법대 출신의 인생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방송 다큐멘터리의 생리 때문에 이런 구성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금동건님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이 분에 대해 글을 적은 것이 있습니다. Google에서도 나오던데 그만 제가 금동건님의 성함을 잘못 쓴 걸 발견했네요 바로 고쳤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5) 금동건님 – 시 쓰는 환경미화원

어찌 되었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좀 생각하게 되었던 점은 허상과 같은 먼 미래의 막연한 행복을 향해 무한정 나를 맡기지 말고 그대신 오늘 맞는 ‘아주 소소한 행복 (Small Win)을 매순간 찾고 그 의미를 알고 즐길 수 있는 삶‘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오늘 찾은 소소한 행복을 열거한다면…

  • 집에서 재택근무하며 일하는 즐거움을 알고 열중했던 매순간의 하루와
  • 아내와 함께 저녁을 지어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던 것
  • 딸아이 내외가 들러서 음식을 가져가던 기쁜 만남들
  • 저녁 운동을 하면서 오늘도 꾸준히 나의 건강을 위해 애쓰던 삶의 열심
  • 블로그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제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내일은 회사에 출근하는 날입니다.

요즈음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고 회사 계단을 사무실이 있는 6층까지 오르락 내리락 걸으며 느끼는 즐거움으로 또다른 삶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게 되었고 10월부터 새로운 미팅을 시작하고 주도하게 되면서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게 생겼습니다. 매일 매일, 매순간 매순간이 행복한 것 같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BOSTONIAN (63) 대한민국 vs 미국 월드컵 친선경기 직관하며 응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9월에 미국 동부에서 아주 좋은 빅 이벤트가 있었죠. 미국에 산지도 22년이 되었는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이런 걸 경험했습니다. 2026년에 멕시코, 캐나다와 함께 미국에서 북중미월드컵이 열리게 되는데요 평가전 명목으로 미국 국가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기 위해 뉴저지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래 미국에서는 축구 경기가 그리 관심있는 경기가 아니어서 입장료가 비싸지 않은 게 정상인데요 한인들의 관심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입장료도 크게 뛰게 되었습니다.

뉴저지 해리슨의 Sports Illustrated Stadium에서 열린 토요일 오후 경기였는데요 하루 전인 금요일 오후에 보스턴을 출발해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열리는 경기에 온가족이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멀리 코넬대학교를 다니는 막내도 함께 오는 가족 추억 여행이었는데요 일찍 출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차 운전자와 가족들을 보니 한인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가까스로 경기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모두 빨갛지 뭡니까?

걸어가면서 미국인 가족이 얘기하는 걸 잠깐 듣게 되었는데 입장료가 너무 크게 올라 버려서 많은 미국인들이 그런 큰돈을 지불하면서 올 수 없어서 미국인이 많지 않다는 얘기였어요.

경기장에 들어서니 경기장 전체가 붉은 물결이었고요. 이 정도면 그냥 홈구장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나오고 애국가는 떼창으로 불렀고 ‘대~한민국!!’을 계속 연호하면서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몇주전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본 터라 그랬는지 저도 열심히 응원을 했고요. 전반전부터 경기를 아주 잘해서 전반전에 2:0으로 마쳤고 후반전까지 잘 유지해서 2:0 완승을 했습니다. 전반전 후반 즈음에 공격의 핵심이었던 이재성 선수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나가고 후반전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손흥민 선수를 교체했는데 그 이후부터 많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손흥민 선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아주 크게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조현우 선수가 아주 선방쇼를 펼쳤습니다. 사실 조현후 선수가 5세이브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5개까지는 아니더라도 2-3개 정도는 사실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Man of the match는 조현우 선수가 되었습니다.

다시 봐도 참 그날의 흥분의 여운이 있습니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2주 정도 목소리가 쉬어서 회사에서도 회의 때 허스키한 멋진 목소리를 선사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아주 즐거운 경험을 했고요 월드컵 경기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보스턴에서도 경기가 많아서 신청은 했는데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 한켠에 있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때의 생각이 다시 새록새록 나더라구요. 첫째는 당시에 저와 함께 응원을 했었기 때문에 당시 어렸어도 기억을 하던데 막내는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거라서 신기해 하더라구요. 제가 ‘대한민국’하면 모두 다 따라한다고요.

그게 아니라 모두 응원 경험이 있어서 그런 줄 모르는거죠. 여하튼 참 좋은 경험을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날이 일요일이었는데 오후 일찍 막내는 학교에 가는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머지는 함께 보스턴에 잘 돌어왔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기는 어렵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중동본색 – 이희수 교수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나라 미국에서 살면서 맛볼수 있는 장점 중의 하나는 전세계 거의 모든 민족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공부를 한 저로서는 항상 유럽과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서양이 갑자기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된 데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있었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있었고 서쪽 끝에는 유럽이 있었는데 제가 배운 짧은 세계사 지식으로는 계속 동아시아가 승승장구를 하다가 갑자기 몇백년 사이에 패권이 확 유럽으로 쏠린 배경이 너무나 궁금했던 것이죠. 이러던 중에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중동의 역사에 대한 좋은 강의를 좋은 교수님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희수 교수님은 터어키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시고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이신 중동 전문가이십니다. 7차에 걸쳐서 중동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신 귀한 강의가 있는데 너무나 귀해서 너무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동 그리고 이슬람이 세계 역사와 문명에서 차지하는 것이 너무나 큰 데 그동안 서양사의 관점에서 세계를 보다 보니 관점의 왜곡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희수 교수님의 중동본색 강의 시리즈를 찬찬히 따라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중동본색 1강 – 아나톨리아

아나톨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고 지금의 터어키 지방을 말합니다. 놀랍게도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수천년 전인 12000년전인 빙하기 이후 수렵시대에 이미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가 아닌 상류에 있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Göbekli Tepe (괴베클리 테페)라는 지역입니다. 1995년부터 20년간이나 발굴을 했는데도 아직 10% 정도밖에 발굴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놀랍게도 이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산 흔적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전이 있다고 합니다.

중동본색 2강 – 바빌로니아와 히타이트

아나톨리아에서 바빌로니아와 히타이트라는 문명에 대해 강의를 해 주십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은 학교 때 배운 내용보다 훨씬 광범위한 법전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법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전체 282조나 됩니다. 이 전문을 올려 놓은 블로거 분이 계셔서 그 링크를 올립니다.

함무라비 법전 282조 전

히타이트는 세계 최초의 철기 민족이었습니다. 청동기의 주요 원소인 구리 (Copper)의 녹는점은 1085도인 반면 철기의 주요원소인 철 (Iron)의 녹는점은 1538도로서 무려 거의 500도가 더 높습니다. 히타이트 족이 어떻게 이렇게 높은 온도의 용광로를 만들었을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중동인들입니다. 히타이트에서는 철이 금보다 훨씬 비쌌다고 합니다.

중동본색 3강 – 프리기아 미다스왕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손만 닿아도 황금으로 변한다는 그 마이다스입니다. 신화가 아니라 실제라는군요 바로 번성했던 프리기아의 미다스 왕입니다. 얼마나 금이 많았으면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페니키아인들은 무역을 하는 상인이었는데 무역을 위한 서류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 알파벳을 개발했고 이것이 모든 알파벳의 원형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동본색 4강 – 인류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 제국은 바빌론 제국이 망한 후 리디아가 있었고 메디아가 있다가 페르시아가 제국을 이루게 되는데요 몇가지 중요한 내용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왕은 바빌론 포로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면서 밀린 임금 뿐만 아니라 여비까지 마련해서 보내준 왕으로 이스라엘에서도 좋아하는 왕이라고 하는군요. 실제 이름은 키로스1세이고 키로스의 교육이라는 뜻인 키로스에디아 (Cyropaedia)라는 책이 지금도 내려오고 한글 번역서도 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낙원궁전 (pairidaeza ‘둘러싸인 곳’이라는 뜻)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것이 paradeisos (그리스어)로 되었다가 영어의 paradise (천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이 아름다웠던 Persepolis에 있던 다리우스1세의 페르시아 궁전 밖의 정원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보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플루나르코스 영웅전에 의하면 마케도니아 왕 Alexandros가 이 유물을 약탈하기 위해 나귀 1만마리와 노새 5천마리를 동원했다고 한다는군요.

중동본색 5강 -격돌의 시대,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한 페르시아 지역에 세워진 파르티아는 중국에서 안식국이라고 불렀던 나라입니다. 중국의 장건이 실크로드를 구축해서 교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파르티아 이후 나온 국가입니다. 서쪽으로는 비잔틴 제국 (동로마제국)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중국 당나라가 있었죠. 사산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와 정교합일된 제국이었는데 비잔틴 제국과 300년간 전쟁을 하고요 이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져 결국 이슬람에 의해 망하게 되는데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과 함께 조로아스터교도 약화되게 됩니다. 페르시아가 얼마나 강했는지 로마황제 발레아누스는 포로가 되어 페르시아왕 사푸르1세에게 무릎을 꿇은 굴욕적인 벽화가 전해집니다.

중동본색 6강 – 이슬람 제국의 황금기, 세계의 중심이 되다

동로마 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 수중에 들어가고 압바스 시대에 바그다드에 바이툴 히크마 (Baytal-ikhma, 지혜의 집)라는 곳은 거대한 번역기관으로 이슬람 문화의 국제성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도서관을 알렉산드리아에 만들어서 그리스, 이집트 등 전세계의 책들 아랍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플로티노스의 책을 번역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번역하고 의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문학 등이 모두 번성하는 시대가 됩니다.

중동본색 7강 – 이슬람세계의 확산과 전쟁

이슬람 제국, 오스만투르크는 사하라 사막 위의 북아프리카 지역과 유럽의 스페인/포르투갈 지역인 안달루시아,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국과 맞닿은 거대한 제국을 이룹니다. 그런 600백년간의 제국의 융성했던 문화적 유산은 안달루시아와 시칠리아의 아랍서적들이 번역되면서 유럽 르네상스의 기틀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유럽이 갑자기 철학, 과학 등 문화 전영역에서 급속한 르네상스 발전을 이룬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중동 역사를 빼고 서양과 동아시아만으로는 이 역사적 원동력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죠. 이슬람 세계는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발전되고 왕성했던 문화 강국이었습니다.

이희수 교수님은 중동, 이슬람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중심 학자이십니다. 참 좋은 강의를 듣고 배운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하나 페르시아어와 아랍어가 완전히 다른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터어키어도 다르기 때문에 이슬람 세계는 사실 간단히 한 세계라고 하기에는 어불성설인 면이 있었습니다. 25개국의 중동국가가 있고 이 중 아랍국가는 22개이고 이란, 터어키, 이스라엘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죠 이를 MENA (Middle East North Africa)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Bucket List (61) 동시 통번역사

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자유와 이유’ 메뉴에서 나름대로 제자신의 인생 2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이런 생각도 써보고 저런 생각도 얘기해 보고 하면서 정리를 해 본 결과 결국 “Unretirement”로 잠정적으로나마 결론을 지은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제가 그동안 틈틈이 나름의 시도와 실험을 해 본 결과 일을 할 때에 비해 일을 하지 않고 완전히 쉴 때 저의 삶의 동력이 떨어지고 더불어 자신감과 활력이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간 사용에 대해서도 그다지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데 따른 것입니다. 이 경험은 좀 의외였는데요 일을 하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책을 본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음악 감상을 한다는지 등등 다양한 취미생활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그렇지 않고 일을 완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된 이유는 저의 게으름이 큰 영향을 준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매일의 삶에서 회사를 통해서 어떤 Structured life를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기본 골격에 더해서 추가로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주3일 출퇴근 및 이틀은 재택근무 형태를 취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이후에 삶의 만족도와 워라벨이 좋아진 측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농담처럼 제 가족에게 얘기했죠. 다음번에 얻는 일자리는 무조건 완전한 재택근무를 할 거라고요. 이런 형태는 현재의 AI 발전 추세와 자동화 그리고 기술발전 등을 통해서 더욱 공고해 지지 뒷걸음질 칠 것 같지 않다는 나름의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마당에서도 아주 나이가 들었을 때 할 일과 지금과 같은 상대적으로 젊은 (?)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의 형태와 성격은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아니면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까지 Bucket List를 적어오고 있는 셈이죠.

제가 작년이죠. 좀 특별한 경험을 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을 받았는데요 한국 식약청에서 실사를 나오는데 통역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아서 제가 급히 회사 내의 한인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통역할 사람을 모집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참여를 했는데 처음에는 인원이 꽤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하루 지나고 나니까 저와 어떤 사원 한분만이 뽑혀서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영어실력이 동시통역이나 연속통역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회사와 식약청 직원분의 피드백을 통해서 괜찮았다고 하더라는 전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첫날 정도만 하고 다른 분께 넘겨주고 다시 본래 업무로 복귀하려다가 일주일 내내 꼬박 잡혀서 통역사로 일을 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통역사가 특별히 재미있는 일은 아니더군요. 주의도 꽤 들었습니다. 특히 제 생각을 섞으면 안된다는 부분이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의미있는 일이고 제가 잘 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에게는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번역가나 통역사의 보수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은데요 미국은 좀 경우가 다른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통역사 단체가 있습니다. American Translators Association (ATA) 라고 하고요 이 곳에서는 인증 시험이나 다양한 컨퍼런스 등을 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찾아보니 LA에 영어-한국어 통역사 일을 하시는 분이 계시고 이 시험을 위해 강의도 하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Korean Translator in Los Angeles

여기에 대표이신 주준희 박사라는 분이 운영하시는데 법원 통역과 의료 통역에서 중요한 일이 많이 있는 것 같고요 특허 관련한 번역 등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책 번역을 생각했는데 대략 찾아본 바로는 책 번역도 소설이나 인문학 책은 들인 시간 대비 소득이 별로라서 대부분 자기계발서 등 위주로 번역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하기에도 이런 일은 의미도 있을 것 같고요. 제가 좀 관심 있어 하는 도슨트 등에서도 통번역사의 성격을 띄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을 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물론 일을 실제로 해 보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는 통번역사에 대한 버킷리스트를 적어 보았습니다. 역시 이런 일을 잘 하려 해도 결국 국어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자꾸 한국어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좀 있거든요. 내년에 꼭 국문과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7) Mark E Byington, PhD – 하버드의 부여 고대사 연구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이 동북3성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도 오히려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한 미국인이 있어서 오늘은 이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름은 Mark Edward Byington 박사님인데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Harvard 대학교에서 ‘부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십니다. 충남부여가 아니라 고구려 위에 있던 그 부여말입니다.

저도 학교에서 부여에 대해 뭘 배웠다는 느낌이 없는데 지금 고등학교에서는 얼마나 가르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여사를 거의 10년간 연구해서 이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박사학위는 아래에 링크를 걸었습니다. 제목은 “The Ancient State of Puyo in Northeast Asia (극동아시아 고대국가 부여)”입니다. 총 446페이지나 되는 대단한 분량이고요. 부여사에 대한 최초의 박사학위 논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대한민국 대학교에서도 없다는 군요.

ISENEA (Initiative for the Study of Early Northeast Asia)라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Byington 박사님이 부여 연구를 하시면서 겪었던 경험을 경희대학교 부설 한국 고대사-고고학 연구소에 10차례에 걸쳐서 게재를 하셨는데요 이 글들을 좀 나누려고 합니다.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1 – 2/28/2017

1994년에서 2003년까지 나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역의 고대사 및 고고학에 초점을 맞춘, 특히 부여, 고구려 및 발해의 정치 조직체들과 관련된 연구를 하며 하버드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교수직을 확보하고자 하는 한국고대사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어려움에 부딪혔는데, 즉, 미래가 불투명한 이 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 수가 아주 적었고, 그 결과 서구 학계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의 미래는 아주 암울했다.

하버드 한국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2 – 3/14/2017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서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청강한 강의에 영감을 받은 필자는 사업 접근법을 동원하면 한국고대사 분야를 발전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한국고대사연구실(Early Korea Project)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한국고대사연구실을 독자적인 기관으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2006년 초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로부터 이 신생 프로젝트의 모체가 되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2006년 4월에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소 옆에 사무실을 마련하였고, 5월과 6월에는 한국고대사연구실과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협의하였으며, 자금 및 기타 지원을 요청하고자 한국을 방문했다.

2006년 11월에 한국고대사연구실(EKP)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관대한 보조금을 받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시했는데, 그 중에는 한국 고고학 강의 시리즈도 있었다…2007년 2월 초에 한국고대사연구실은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또 하나의 관대한 보조금을 지원받기 시작했는데, 이 보조금은 주로 운영비에 사용되었다. 프로그램 계획과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한국고대사연구실은 2007년 초에 기본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하버드 한국 고대사연구실에 대한 회고 10 – 8/14/2017

한국의 과거에 대해 초국수주의적이고 사이비 역사학적 관점을 지닌 많은 사람들은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이후 내용에서는 “사이비 역사 단체”라고 언급하겠다)라는 단체를 결성하였고, 그 중 일부는 수년 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을 공격해왔다...한국고대사연구실은 하버드가 제공하는 지원을 통해 축소된 규모로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 지원을 통해 고구려에 관한 비정기 시리즈(Occasional Series)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대 한국-일본 교류에 관한 마지막 출판물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남아있는 지원금도 2017년 1월 31일로 소진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사실상 한국고대사연구실은 본질적으로 죽은 프로그램이 되었다...필자는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정치적 근시안이나 사이비 역사학의 불합리성의 부식 작용으로도 파괴되지 않을 씨를 심는데 성공했기를 희망한다.

결국 요지는 국수적인 사이비 역사학자 (이 분의 주장에 의하면) 에 의해 제기된 식민사관 이슈 (예, 한사군 문제 등)로 인해 하버드에서의 한국고대사연구실이 중단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이 분이 지금도 계속 연구를 하시려는 의지가 있어 보이고 대한민국 역사의 고대사 연구가 좀더 포괄적으로 연구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9/13/2025 Update

단국대학교 사학과의 심재훈 교수님께서 Byington 박사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평을 올리신 논문이 있어서 저의 공부를 위해 링크를 합니다.

BOSTONIAN (62) 보스턴에서 LAFC를 응원한 날 – 손흥민 풀타임 직관 후기

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미국 동부에서 산 지도 어언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흘러 과거를 돌아 보니 대한민국에서 산 기간과 미국에서 산 기간이 얼추 비등해 지는 지경에 이르른 듯 합니다. 제가 대한민국을 떠날 때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막 끝나고 몇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다들 아시다시피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4강까지 가서 전세계를 깜짝 놀래켰었죠. 전 그걸 독일에 가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우리가 마치 일본이나 중국 등에 대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과 같은 나라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는데요 우리 대한민국 팀이 이 나라들을 보기좋게 이겨주고 올라와서 자신들에게 졌기 때문에 아주 기세가 등등했죠. 그래서 저를 만났던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02년 황금세대 중 박지성 선수가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을 꿰차고 아주 훌륭하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다시 월드컵 16강을 달성 시켜 주었고 이제는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이 그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황금세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2002년에 우리의 영원한 리베로였던 홍명보 선수는 지금 월드컵 감독이죠.

손흥민 선수는 대한민국 대표 주장으로 있으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예선탈락 시켰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의 주장으로서 오랜 기간 활약을 하고 얼마 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LAFC로 이적을 했습니다. 이적한 지 두번째 경기가 바로 제가 있는 보스턴팀인 New England Rangers와의 원정 2차전이었습니다.

이번 원정 2차전에 저희 온가족이 함께 갔는데요 친정팀을 응원해야 했겠지만 (?) 손흥민 선수 덕분에 (?) LAFC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후반전의 손흥민 선수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 후반전 뉴잉글랜드팀 골대 쪽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아-주 재미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2-0 LAFC의 완벽한 승리였죠. 이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는 2개의 어시스트를 해서 Man of the game이 되었습니다.

이 날 정말 많은 한국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관중석을 빙 둘러서 태극기가 곳곳에 걸리고 여기가 과연 뉴잉글랜드 홈구장이 맞나 할 정도로 LAFC를 응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니 사실 손흥민 선수를 응원한 것이죠.

사실 이 날 뉴잉글랜드팀이 너무 못하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거의 반코트 처럼 뉴잉글랜드 진영에서 놀 정도였거든요. 제 곁에 있는 뉴잉글랜드 팬이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계속 설명을 해 주는데 그러는 거에요. 뉴잉글랜드는 골대까지는 잘 가는데 그 다음에 작전이 없다고요. 그리고 제 뒷편에 남미출신 뉴잉글랜드 팬이 응원을 겪하게 하는데 얼마나 흥분해서 응원하는지 배꼽 빠질 뻔했습니다.

집에서 Foxborough에 있는 Gillette Stadium까지는 1시간 40분 정도나 걸리는 꽤 장거리였는데요 그래도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여파로!!

9월 6일 뉴저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대 미국 친선 A매치 경기표를 또 온가족이 구매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대한민국’을 외칠 생각입니다.

대한 민국 화이팅!! 손흥민 선수와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발해를 꿈꾸며 (1) 발해사를 연구한 러시아 학자 V V Ponosov

0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을 학교에 차로 데려가려고 휴가를 냈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돌아오는 딸의 비행기가 overbooking되어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고 본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밤 늦게 집에 왔기 때문에 하루 더 쉬고 가기로 해서 오늘은 좀 개인시간이 생겼습니다. 제 회사는 8월 마지막 주에 하계 휴가 (Summer shutdown)이 있는데 마침 다음주 월요일인 9월 1일도 노동절이어서 꽤 긴 시간동안 휴가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에 아내와 Canada Banff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에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를 발표한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기억하는 한 발해라는 역사에 대한 노래 중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최초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지금으로 부터 31년전이나 되는 오래전에 발표된 노래인데 이 당시에 남북의 긴장 상황이 아주 격화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발해’를 얘기한 것은 참 절묘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노래는 7차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서태지님이 발해로 2행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발칙한 놈들, 해동성국은 우리 것이여“.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3> 간도와 한국사 – 프레시안 9/3/2013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이다. 그들은 이 노래를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불렀다. 만주를 지배하던 발해를 왜 노동당사 앞에서 꿈꾸었을까? 발해는 만주와 북한 지역에 걸쳐 있던 왕조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대한민국과 발해는 아무 관련이 없다. 즉 발해는 남북통일을 전제할 때에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역사다.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에, 거창한 동아시아연합을 전망하기 전에 통일부터 꿈꾸라.

어제 오늘 인터넷을 유영하다가 우연히 발해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는데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지만 이 나라는 북한지역, 중국지역, 러시아 지역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이후에는 몽골지역까지 발해 유민이 이주했다는 것이 알려져서 몽골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울 때 만주와 조선이 하나였다는 만선사관(滿鮮史觀) 을 내세우기 위해 발해 역사 연구를 했다고 해서 결국 발해 역사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6개국에서 진행되는 아주 큰 연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중 러시아의 연구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좀 나누려고 합니다. 강인욱 교수님의 글인데 강인욱 교수님은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시면서 발해 연구를 하시는 교수이십니다.

러시아 학자가 찾은 발해, 일본과 중국은 왜 은폐했나 – 중앙일보 5/19/2022

발해를 대표하는 유적인 상경성은 755년에 발해 3대왕 대흠무(문왕)가 건설하여 상경용천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잠시 수도를 옮긴 시간을 빼면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수도 역할을 했다.

발해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들어 다시 불붙었고, 그 중심에 하얼빈이 있었다.,,, 당시 하얼빈에 모여든 러시아인들은 ‘동성문물연구회’를 조직해 발해 연구를 최초로 시작했다.,,동성문물연구회에서 발해를 담당한 사람은 러시아 우랄 지역 출신이었던 V V 포노소프(1899~1975)였다. 포노소프는 일본의 만주침략이 한창이던 1931년에 발해 상경성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조사를 벌였다. 무국적자로 보호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면서 비적들이 횡행하는 이 지역에 목숨을 걸고 갔던 그는 상경성의 주요 지점을 발굴하고 전체 평면도를 정밀하게 작성했다. 발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발굴이었다.

포노소프는 최후까지 남았던 하얼빈의 러시아 고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건국 후 12년이나 지난 1961년까지 헤이룽장성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하얼빈 러시아 학자들이 조사했던 유적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중국 학자들에게 전달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만주사 연구에 바쳤던 그는 62세가 돼서야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소련 지역이 된 그의 고향 우랄 산맥 지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호주에서 여생을 보내며 고고학 연구를 이어 갔다.

복잡한 역사 분쟁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유일하게 옹호하는 측은 러시아였다. 지금도 러시아의 수많은 발해유적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강인욱 교수님의 2014년 논문이 중앙일보의 기사와 관련된 자료 중 하나입니다. 발해사에 대한 연구는 항상 소중한 발해사 연구자 분들의 오랜 노력과 고고학적 발굴로 이루어진 자료로서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스토야킨 막심이라는 러시아 출신 발해사 연구자께서 러시아의 발해사 연구에 대해 자료를 발표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분은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역사와 선조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발해사는 정말 소중한 대한민국의 역사 중 일부이고 많은 주변 나라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그 실체를 밝혀낼수록 우리에게 그리고 남북한의 평화통일 노력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해를 꿈꾸며 이루어가며….

내가 쓰는 나의 삶 (71) 똑똑한 바보의 넋두리

8/19/2025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몇일 동안 글을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이번에는 이 글을 쓸까, 저 글을 쓸까 이리저리 궁리만 하다가 정작 글은 하나도 쓰지 않은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실행에 옮길 뿐만 아니라 그나마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저를 적잖이 당황시키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쓰려고 했던 것들과 잡다했던 많은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는 차원에서 글을 몇줄 남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블로그 한 꼭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똑똑한 바보‘입니다. 머리로 순간 순간 지나가는 생각은 많은 것 같은데 그 생각을 잡아내지 못하고 그냥 흘려 지나갈 뿐만 아니라 그걸 어디에다 적어 놓지도 않고 있으니 이 게으름을 어찌해야 할까요.

먼저 글쓰기에 대해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소위 ‘작가적 삶’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건 아마도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책을 사는 걸 좋아할 뿐 아니라 책을 읽는 걸 좋아하니까요. 제 삶 자체가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의 삶도 읽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죠. 제가 책을 읽는 방식이 크게 두가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책을 여러권 읽는 다독이고 또 하나는 한 책을 여러번 읽는 다독입니다. 소설, 철학자의 책 (감히 철학책을 읽을 수준은 아직 안된다고 생각해서), 역사에 대한 책, 다른 문화에 대한 책 (일본, 예술, 음악 등), 투자에 대한 책 등을 읽을 때에는 주로 전자의 방식인 책을 여러권 읽는 다독을 많이 했습니다. 반면에 제가 전공을 하는 과학 분야의 책은 후자의 방식, 즉 한권의 책을 여러번 읽는 다독으로 얻은 지식을 습득해서 지금까지 응용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최근에 불현듯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은 제가 아직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뜻을 함유합니다.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 몇가지 방법이 있더군요. 먼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뭐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계속 읽는 전작주의로 읽는 방식도 있겠고 아니면 특정 분야의 소설을 읽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많이 읽어야 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둘째는 필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몰랐던 사실인데 알려진 소설가들이 필사를 통해서 오랜 기간 자신의 필력이 생기기까지 노력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에게 좀 유레카 순간이기도 했는데 필사를 시작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고 대신 책을 읽을 때 필사를 하듯이 아주 정독해서 읽게 된 점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기는 합니다. 문해력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던 터라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한권의 소설을 여러번 밑줄을 그어 가면서 아주 정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편한 편의점2를 이런 식으로 읽고 있습니다. 대략 1주일에 한번씩 정독을 하게 된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읽다 보니 그냥 스윽 읽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김호연 작가님의 디테일이 조금씩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습작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작 장편소설 ‘토지’를 쓰신 박경리님은 토지를 쓰시기 전에 쓰신 책들이 습작이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박경리 작가님은 초기에는 단편을 주로 쓰시다가 나중에 장편으로 넘어오신 것 같은데 그런 수십년의 작업을 겸손하게 습작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 햇병아리 작가 지망생 (?)의 경우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습작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에는 Google doc에 타자를 쳤는데 그냥 자판을 두드려서는 글이 제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종이에 쓰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이 글에 대해서 지난 몇주간 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오락가락했던 생각들입니다.

둘째는 공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배우는 자의 삶’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라고 하면 뭔가 학점 받아야 할 것 같고 학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이 부분이 저를 너무 옥죄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어쩌면 제게 공부는 인생에서 한 것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면서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군요. 가난한 고학생으로 너무 오랜 기간 공부를 배우려는 것보다는 장학금을 목표로 공부하는 이상하고도 희한한 공부를 너무 오랜기간 해오다 보니 이런 왜곡된 공부에 대한 태도가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마치 근력운동을 하는데 자세를 처음부터 잘못 잡고 오랜동안 운동을 한 탓에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 된 것 같은 것 말이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에게는 공부가 노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노동이었던 공부를 떠나 ‘배움이라는 여행 (배움여행)’을 좀 하고 싶은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는 것을 여기에 이렇게 실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커리어도 거의 정점에 도달한 상태여서 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렇다면 보다 자유롭게 배움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배움여행을 함에 있어서 ‘전문성 추구’라는 완벽 편력을 여전히 두뇌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 보니 배움여행도 어느새 노동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Bucket List에 쓴 것 같이 내년에는 국어국문학과 학부과정을 시작해 볼 생각인데 덜컥 겁부터 나더라구요. 참 이게 뭐라고 말이죠. 그깟 학점 못받아도 누구 뭐라 할 사람 없고 이 공부 꼭해야 하는 것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선언한 것이면서도 여전히 공부 노동자의 관념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운동에 대한 것입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생각과 노력입니다.

저는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거의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때는 Gym membership을 끊고 열심히 거의 매일 다닌 적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병이 났는데 그 이후로 운동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근력이 상당히 빠져 나간 앙상한 몸과 마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Gym membership은 끊었고 Home gym을 만들어서 매일 이곳에 가서 다시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횟수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 노동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으로 복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단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요. 목표는 ‘오늘 할 수 있는데까지 한다’입니다. Rowing machine 타는 것도 다시 천천히 시작을 했고 Pull Up 을 위해 Dead hang과 Negative pull up 그리고 Inclined pull up을 하고 Goblin Squat과 Push Up을 느린 동작으로 근육이 가능한 한 최대로 이완하는 식으로 해서 근육이 붙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Weight band를 사서 발목에 달고 산책을 가는 걸 매일은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걸을 때 해 봤는데 천천히 걷더라도 하체에 근력이 조금은 더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 봅니다.

넷째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MBTI를 해 본적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Power I‘인 건 확실합니다. 엄청 내성적이죠. 그렇다 보니 자꾸 동굴속으로 기어 들어가 동면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특히 컴퓨터와 핸드폰이 생기면서 더 용이하게 혼자만의 동굴에서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이걸 좀 깨려고 애를 쓰는 중인데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자꾸 말하려고 노력하고 점심도 원래는 ‘혼밥러‘인데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끼어서 먹고 열심히 듣고 몇마디라도 말을 붙여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점심을 $15까지 제공해 주기 때문에 Doordash 를 통해서 점심을 사먹게 되는데요 사내 식당에서 삼삼오오 앉아서 먹는 문화가 이 회사에는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섞여서 먹어 보려고 노오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인과학자들이 하는 모임이나 만남도 가지려고 애를 아주 많이 쓰고 있고요. 어떤 분들과는 띄엄띄엄이기는 해도 꾸준한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아내가 이 부분을 건드려서 언성이 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그러더군요. 친구가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못나게 대꾸했죠. 친구가 없는게 아니라 노오력을 하려는데 지지를 못받는 거라구요. 참 이 부분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민자로 나이든다는 게 차암 많이 외로운 것 같아요. 나이를 잊고 누구나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죠. 제가 내성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말이 없는 건 또 아니에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말이 좀 많다고 해야할까요? 제 느낌에 좀 피곤한 스타일 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누구를 만나면 말은 곧잘 하는 편입니다. 단지 찾아가서 만나려는 그간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찾아가는 서비스 (?),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노오력이 필요한 것 뿐이죠. 그런데 찾아가려니 돈이 드네요. ㅎㅎ

다섯번째는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앞에 국어국문학과에 대한 얘기도 하기는 했지만 저는 언어 배우는 걸 잘하고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언어공부에서 다 잘해 온 편이에요. 영어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 잘하는 편이었고,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는데 독일어도 고등학교 때 잘하는 편이었죠. 심지어 독일에 1년간 살면서 뭐 의사소통면에서는 아주 자알 했다고 자부합니다. 음하하. 그리고 한국에 살 적에 첫직장이었던 대기업에 1주일간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라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우리는 일본에 가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서 한달간 일본어 학원에 가서 일본어를 배웠거든요! 그때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일본에 가서는 단어가 딸려서 할 수 없이 영어를 주로 썼지만요 그래도 일본어는 좀 할 줄 압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서 제2외국어 시험을 통과하는게 졸업요건이어서 이 때 다시 일본어를 했습니다. 그 시험도 어렵지 않게 통과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대학때 중국어를 한학기 들었는데 이것도 잘했었어요. 자화자찬같지만 언어에 대해서는 좀 두려움 같은 게 없이 곧잘 따라합니다.

요즈음 책을 좋아하다보니 몇개 언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영어를 좀 문학적 관점에서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요. 말하자면 영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프랑스어에 대한 생각은 좀 오래 되었는데요. 시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에요. 인상주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다 보니 자연히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Youtube에서 인상주의에 대한 영어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Curator들이 멋진 프랑스어로 말을 해 줍니다. 예를 들면 작품 제목을 영어로 하지 않고 프랑스어로 원래 제목을 불러주거든요. 어찌나 멋지던지요. 그랬는데 제가 Biotech, Healthcare에서 일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Global healthcare에 대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WHO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필수더군요. 흐음…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많다보니 프랑스어를 하면 장점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알베르 카뮈와 생떽쥐페리 등 프랑스 소설가 들의 책을 읽다보니 프랑스어를 더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영어원서로 일독을 했는데요 톨스토이가 러시아 백작이라서 귀족들의 삶을 묘사했는데 이 러시아 귀족들, 프랑스어로 대화합니다. 캬아. 그래서 전쟁과 평화에 12%인가가 프랑스어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래서 또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어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우선 톨스토이 때문이고요. 저는 톨스토이 전작주의를 꼭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어, 영어 그리고 러시아로 같은 작품을 여러번 읽는 게 목표에요. 톨스토이 단편집도 있기는 하지만 대작들은 소위 벽돌책이거든요. 러시아 작품 중 또 좋아하는 작품은 보리스 빠스체르나프의 닥터 지바고와 도스토 옙스키의 작품 들이에요. 최근에는 푸쉬킨의 시도 러시아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 생각이 많죠?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휴우.

마지막은 예술에 대한 것입니다. “예술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생각이라고 일단 말해보죠.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다양한 작품들은 제가 어디든 미술관에 갈 때마다 반드시 살펴보는 루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화가들의 삶이 궁금해 져서 찾아보고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온 것 처럼 제가 어려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얘기를 못 듣고 자라서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채 조기 포기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A4용지에 조금이나마 그림을 펜으로 뎃생하는 시늉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창피를 당할 걸 잘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은 어디에 계신 걸까요.

또 하나는 악기에 대한 거에요. 참고로 전 노래는 잘하는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합창, 중창 하고 자라서 노래는 음정, 박자 잘 지키고 악보도 잘 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악기를 못 다룹니다. 이게 제 아픈 갈비뼈인데요. 악기를 배워보고 싶어요. 제가 출퇴근하면서 음악을 듣는데요. 그 선율을 느끼며 바깥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제자신이 영화나 그림 속 어딘가에 있는 한 장면에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곤 합니다. 아-주 행-복-한 상상이죠. 그런데 악기를 다룰 줄 알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보고 싶고 Saxophone과 Drum도 배워보고 싶습니다. 이것 봐요. 벌써 악기가 4개나 나왔죠? 이러니 시작을 못하는 겁니다. 시작을…

그래서 여기까지가 생각만 많고 실천은 부진한 어느 똑똑한 바보의 넋두리였습니다. 이렇게 글로나마 남기니 그래도 뭔가 한건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밤은 왠지 잠이 잘 올 것 같군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66) – 채홍정 시인, 사전박사

08/12/2025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 한글 공부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김호연님의 ‘불편한 편의점2’를 두번째로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이번에 읽을 때는 마치 제가 이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읽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읽을 때에 비해 시간은 조금 더 걸린 것 같지만 그 대신 조금 더 깊이있게 이 소설을 읽지 않았는가하고 자평해 봅니다.

한글의 순우리말 단어 공부를 하면서 채홍정 시인이라는 분이 순우리말에 대한 좋은 글을 연재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채홍정 시인님 (85)은 1940년에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셔서 1983년부터 대전에서 정착해서 살고 계신데 56세때인 1996년 한맥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하셨습니다. 의외로 늦깍이 등단을 하신거죠. 채홍정 시인님의 인터뷰가 Youtube에 있어서 그 꼭지를 이곳에 남겨 놓고자 합니다.

채홍정 시인님은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아야 겠고 그 어려움을 일기쓰기로 달래셨던 것 같습니다. 본래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20년전 즈음 아드님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국가적인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듣고 자극을 받으셔서 열심히 더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사전박사 채홍정 시인 네번째 시집 ‘사랑하며 섬기며’ 펴내 – 중도일보 8/12/2020

채홍정 시인은 “시조는 모두 순우리말로 쓰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많았다. 시 곳곳에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 시인은 “15년 전쯤 설날 아들이 손자에게 말하길,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시인이니까 잘 모셔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낯 뜨거움을 느꼈다. 무명시인인 내가 시를 쓴다고 후세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질 않는가. 그 후로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후세에게 내 손자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다. 어디를 가든 메모지와 볼펜, 신문을 보든 매스컴을 보든 이상한 말이 나오면 메모를 시작했고, 이 계기가 결국 사전을 편저하게 된 사연“이라고 말했다. 채 시인이 편저한 2015년 새 속담사전, 2017년 신 고사성어, 2019년 익은말 큰사전은 인기가 많은 사전으로 재출간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1000쪽 분량에 달하는 순우리말 대사전도 펴낼 예정이다. 채 시인은 “순우리말대사전을 내면 내 학문적 업은 모두 끝이 난다“며 “오늘도 내일도 헛발 걸음 않으려고 몸부림칠 것“이라고 팔순 시인은 덤덤하게 목표를 밝혔다.

17년간 신문 등에서 새로운 단어 등을 보게되면 그것을 계속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4권의 사전을 만드셨습니다. 그 4번째 사전인 ‘순우리말 대사전’을 4년전에 펴내셨습니다.

“품격 있는 우리말 사랑합시다”…‘순우리말 대사전’ 펴낸 채홍정 선생 – 뉴스1 10/21/2021

아름답고 고운 순우리말이 점점 사장되고 잊히는 것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망구(望九)의 노익장을 자랑하는 시인이자 재야(在野) 국어학자인 대원(大元) 채홍정(蔡鴻政) 선생(81)이 ‘순우리말 대사전’(오늘의문학사)을 펴냈다. 2015년 ‘새속담사전’, 2017년 ‘신고사성어’, 2019년 ‘익은말 큰사전’에 이은 네 번째 국어 관련 역작으로 여기에는 각종 사전과 매스컴, 인터넷 등을 통해 생소한 어휘를 그때그때 수집하고 정리한 지난 17년의 세월이 녹아있다. “그동안 여러 번 중동무이(하던 일이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중간에서 흐지부지 그만두거나 끊어 버림)했지만 ‘순간이 쌓여 역사가 된다’라는 말처럼 지금은 아리따운 추억의 오솔길에 마음이 머물러 마냥 흐뭇합니다.” 한글은 어느 나라 글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탁월한 표현력에 뛰어난 독창력을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우리 국민의 어휘력과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싶다는 소망에서 채 선생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대사전을 엮었다. “우리 사회가 더 품격 있는 순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행정기관과 언론기관, 교육기관에서 앞장서 주길 바랍니다. 순우리말을 사랑하는 문학인도 더욱 많아져야 하고요.

“하나하나 찾아 엮은 순우리말 대사전… 문학인에 보탬 되길” – 대전일보 11/4/2021

채 시인은 “원래 사전을 낼 생각은 없었는데 17년 전 아들이 외손자들에게 `국가가 인정하는 시인이니 잘 모셔야 한다`는 말에 이름 없는 시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서글펐고 큰 죄책감과 중압감을 느꼈다“며 “이후 우연히 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를 보게 됐고 후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나, 둘 정리하던 우리말이 쌓여 사전까지 펴게 됐다“고 소회했다. 그는 “한글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고, 어느 나라 글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탁월한 표현력에 독창력까지 지닌 언어지만 오늘날 한자에 가려 활용되지 못하고 점점 잊혀 가는 것이 아쉽다“라며 “사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순우리말에 대한 어휘력을 키우고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 지지해 준 가족과 독자, 문인들이 전해준 응원이 있어 하고자 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한글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시와 수필에 담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올해까지 6권의 시집을 내셨는데 여섯번째 시집 ‘홀로 기다리는 순간들’이라는 시집이 올해에 나왔군요.

채홍정 시인, 여섯 번째 시집 ‘홀로 기다리는 순간들’ 출간 – 충청신문 3/17/2025

별빛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고, 달빛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면 영원히 지지 않는 천국을 준다’는 말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여섯 번째 시집을 세상에 알립니다.” 돌부리에 차이고 거센 물살에 휩쓸리며 하루하루를 채워간다는 채홍정 시인은 “단 한 편의 시라도 독자에게 나긋나긋 옥 굴러가듯 행복 꽃나비로 깊은 감동이 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올해 85세이신 채홍정 시인께서는 시집과 사전 이외에도 수필집과 소설을 준비 중에 계시다고 합니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계속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멀리 미국 보스턴에서 채홍정 시인님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