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역사 (8) – 최무선

최무선 (1325-1395, 70세)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활동한 무관이며 과학자입니다. 최무선은 132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최동순은 지금의 서울시 마포의 호조관청인 장흥창의 관리였습니다. 최무선이 살던 시기에는 일본 왜구들의 출몰이 잦았던 때였고 최무선은 어려서부터 화약무기에 관심이 많아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왜구들을 효과적으로 무찌르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화약제조법에 몰두하게 됩니다. 당시 화약제조법은 중국에서 이미 개발이 되었지만 그 제조법은 극비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화약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염초: 숯: 유황의 비율이 75%: 15%: 10%의 비율로 필요하고 숯과 유황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가장 중요한 염초는 고려/조선에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염초는 지금의 화학지식으로는 “질산칼륨 (KNO3, Potassium Nitrate)“으로 폭발력을 내는데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에 염초의 제조법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질산광산이 있어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동아시아에는 아직 질산광산이 없었고 따라서 염초제조를 위한 원료확보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최무선이 살던 시기는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였는데 이 때 최무선은 원나라의 이원 (李元)이라는 사람으로 부터 염초를 만드는 몇가지 비법을 전해듣게 됩니다. 집에서 부리던 종 몇명에게 기술을 익히게 해서 시험을 한 결과 화약제조법을 확보하게 된 최무선이 도당에 보고를 했지만 사기꾼 소리만 들었을 뿐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수년간의 끈질긴 설득끝에야 비로소 우왕 3년 (1377년) 즉 최무선이 52세가 되어서야 “화통도감 (지금의 화학약품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화통도감의 제조로서 최무선은 대장군포 · 이장군포 · 삼장군포 · 육화 · 석포 · 화포 · 신포 · 화전 · 화포 · 화통 등의 총포류를 개발하고, 화전 · 철령전 · 피령전 등의 발사용 화기, 질려포 · 철탄자 · 천산오룡전 · 유화 · 주화 · 촉천화 등 각종 화기를 제조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함포를 실을 수 있도록 전함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화기 이용에 대한 교육에도 힘써 화기발사의 전문부대로 보이는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었습니다.

최무선이 55세때인 동왕 6년 (1380년) 왜구 선단 5백 척이 진포에 출몰, 서천과 금강 어구까지 올라와 주변 지역에 대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임명되어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와 함께 전함을 이끌고 배편으로 출항, 처음으로 화통 · 화포 등을 사용하여 왜선을 격파했습니다. 이때 그는 부원수로 최칠석 등을 이끌고 진포에서 고려군을 지휘했습니다. 이때 진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살라버렸습니다. 타고 온 배를 잃어 퇴각로가 막힌 왜구는 곧 한반도 내륙을 돌며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았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운봉에 집결한 왜구는 다시 병마도원수 이성계 등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황산에서 궤멸되어 그 세력이 전에 비해 크게 꺾였습니다 (황산대첩). 《태조실록》에 실린 졸기에서 사관은 “이로써 왜구가 차츰 줄고 항복하는 자들이 서로 잇따르며, 바닷가 백성이 생업을 회복하게 되었으니, 이는 태조의 덕이 하늘에 응한 덕분이라 하나 무선의 공 또한 적지 않았음이다.”라고 최무선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무선이 58세인 동왕 9년 (1383년) 왜구가 다시 남해의 관음포에 상륙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출정하였고, 이 전투에서도 화기를 써서 왜선을 격침시키는 공을 세웁니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대폭 줄어들었을 정도로 화약 병기의 사용은 왜구 격퇴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두 번의 해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고려 조정은 창왕 1년 (1391)에 왜구의 본거지로 알려진 대마도를 정벌하였습니다.

그러나 위화도회군 후 정권을 잡은 이성계 등 신흥무관세력에 의해 화통도감이 없어지고 군기시에 통합되고 맙니다.

《태조실록》에 실린 내용에는 최무선이 임종할 당시 책 한 권을 부인에게 주며 아들 최해산 (1380-1443, 63세) 이 다 자라면 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 책은 화약의 제조법과 염초의 채취 방법 등을 기술한 화약수련법, 화포법 등의 저술이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근거로 최해산은 아버지 최무선의 뒤를 이어 화약 및 화포 제작을 하게 됩니다.

문신 정이오의 화약고기라는 책에는 최무선의 업적을 두고 “나라를 위해 마음을 썼으므로 능히 이원의 기술을 얻었으니 그 사려가 깊고 멀다 하겠다. 지금 왜구가 우리 수군과는 감히 배를 타고 승부를 겨루려 들지 못하는 데는 앞서 진포에서의 싸움과 뒷날의 남해에서의 승전 때문이었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최근에 유성고등학교 장미경 선생님과 김준수, 김지훈 학생들이 최무선의 염초제조법에 대한 연구를 현대의 분석기기를 활용하여 발표한 내용이 있습니다.

“흙과 재의 1:1 혼합추출액으로 최대 68% 순도 (Purity)의 염초 (KNO3)를 얻었는데 분별결정법에 의해 순도를 약 14% 향상시켰다. 즉 조상들은 염초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물질의 용해도 차이를 이용한 분별결정법으로 정제하였다.”

“염초 (KNO3)와 용해도가 유사하거나 높은 NaNO3 불순물 등이 정제과정을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흙에서 염초를 얻었는데 “처마밑 흙, 화장실앞의 흙, 마루밑 흙, 오랜창고 바닥의 흙, 길가의 흙, 사람의 소변,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 등에서 염초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염초를 대량으로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염초제조를 위한 흙을 수집하는 “취토군“이라는 군대가 따로 있었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이집저집 가리지 않고 들어가서 처마밑과 화장실 주변의 흙을 모두 채취하다보니 누구나 취토군을 꺼렸고 반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화약제조 부흥을 위해 임금이 직접 “특별취토령“을 선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질산칼륨이 중요한 비료이기 때문에 비료회사에서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말 조선초에 질산칼륨인 염초의 원료를 확보하고 정제법을 개발하기 위해 최무선과 그 군대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노잼투자 (8) – 72의 법칙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노잼투자에서도 나름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기투자를 위한 소위 “72의 법칙 (Rule of 72)“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아인슈타인이 만든 법칙인데요. 72에서 월평균 수익률 (r)을 나누면 원금이 2배가 되는 연수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S&P 500 연평균수익률이 10.2%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경우…

  • 7년이 지나면 원금의 2배가 됩니다.
  • 14년이 지나면 원금의 4배가 되구요.
  • 21년이 지나면 원금의 8배가 되구요.
  • 28년이 지나면 원금의 16배가 되구요.
  • 35년이 지나면 원금의 32배가 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25,000 (3,000만원)S&P500에 투자한 후에 묻어두고 잊어버렸다가 35년이 지나면 $800,000 (10억원) 으로 불려져 있다는 거죠. 돈벌기 쉽죠?

노잼투자는 시간으로 돈을 버는 투자법입니다. 시장에서 날고 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묵혀두라는거죠.

그리고 정작 나의 시간은 나를 위한 투자를 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공헌하구요.

저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금융 (Finance) 업무를 해 봤는데요. 돈은 허무해요. 돈놀이 보다는 펀더맨털, 즉 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저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OSTONIAN (11) – 국가대표 아버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내일 대망의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립니다. “메시의 아르헨티나 vs 음바페의 프랑스”

저는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서 손흥민 선수는 이번 2022년 한국월드컵 국가대표의 주장으로 대회를 준비했고 너무나 잘 싸웠죠. 사실 토트넘 핫스퍼에서 얻은 안면골절 부상과 수술 후유증으로 3주를 경기를 뛰지 못했고 마스크를 쓰고 뛰어야해서 시야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을텐데요 그래도 손흥민 선수는 클래스가 다르더라구요.

특히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70m 드리블 이후에 황희찬의 골은 정말 손흥민 선수만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2018년 독일전 쐐기골이 생각나는 엄청난 드리블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수비 7명이 앞뒤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번에 유퀴즈에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신 손웅정 감독님의 인터뷰가 있었는데요.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오로지 둘째 아들이 축구로만 행복하고 부상없이 성장하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독일 레버쿠젠 (차범근 감독님이 소속되었던 구단이죠) 유소년 팀에서 5년간 뛸 때 손웅정 감독님이 점심, 저녁 굶어가며 6시간씩 아들의 훈련을 바라보고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돌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성기란 내려가란 신호다. 잘 내려가야 한다.” – 이 부분에서는 유재석님도 말을 잊지 못하시더라구요.

본인 스스로 4년간 프로선수 생활을 해 보시고 은퇴도 해 보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손흥민 선수만 보고 열광하지만 손웅정 감독님은 손흥민 선수의 은퇴까지 이미 보고 계시더군요.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셨어요.

2025년에 토트넘 핫스퍼와 계약이 끝나는데 그 이후에는 손흥민이 원하는 나라와 팀에서 돈과 상관없이 한번 뛰어봐라!

이 부분은 정말 손웅정 감독님이 아버지로서 아들 손흥민 선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보면서 이제 “나도 돈과 상관없이 원하는 기업과 팀에서 일을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보여지는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의 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흥민 선수는 좋은 아버지를 두어서 참 복받은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흥민 화이팅!!

커리어코칭 (14) – 교수 vs 기업연구원 vs 정부연구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커리어코칭에 대한 글을 시작할 때 먼저 다루웠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제야 다루게 되는군요.

과학자로 박사과정이거나 포스닥 연구원이신 분들에게는 크게 3가지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 대학교 교수
  • 기업 연구원
  • 정부기관 연구원

대학교수

막 박사학위 졸업을 앞두거나 포스닥을 이제 시작하신 분들은 대부분 대학교 교수를 1순위로 생각하고 연구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대학교수는 과학자들에게는 가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또한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뭐 틀린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도 연구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있고 티칭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있는데요. 저는 연구중심으로 크게 성공하신 분도 보고 또 탑스쿨에서 정년트랙 (Tenure Track) 을 하시다가 실패하신 분도 봤구요. 티칭중심대학교수로 사시는 분도 봤습니다.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아니면 굳이 대학교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대학교수 지원을 해보니 티칭중심대학에서만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연구성과가 연구중심대학에서 관심을 가지기에는 좀 부족했던 이유였을 수도 있겠죠. 누구에게 물어본 게 아니라서 그냥 저의 나름의 분석이라고 해두죠. 연구중심대학교수는 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R01이라는 큰 펀드를 따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면에 티칭중심의 경우에는 NIH AREA라고 부르는 R15라는 펀드가 있습니다. 그런 작은 규모의 연구펀드 정도면 충분하고 그보다는 강의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정말 좋아하시는 경우에는 이렇게 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강의보다는 연구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여담인데요. 제가 예일대학교에서 포스닥을 할 때 보니까 의와로 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진로를 트는 우수한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명은 박사과정 중이었던 학생이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말 뛰어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자기는 고등학생들에게 꼭 생물학을 가르치고 싶다고 박사과정을 그만 두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한분은 박사학위를 한 분이었는데요. 재혼을 하면서 고등학교 교사로 진로를 트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티칭중심대학의 교수가 될 거라면 오히려 고등학교 교사가 더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좀 어설프게 단순한데요. 학생의 질 때문이에요.

티칭중심대학의 학생의 질은 아무래도 연구중심대학보다는 떨어질텐데(?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고등학생 중에는 편차는 있지만 잘 다듬으면 크게 될 원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기업연구원

과학자로 살다가 기업연구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면 좀 솔깃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겠어요 제 앞에서만 예의상 회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건데 제가 착각을 하는 걸 수도 있죠.

저는 기업연구원과 연구중심대학의 교수직을 비교해 봐도 미국의 환경에서는 기업연구원이 연구중심대학 교수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진로결정을 미루고 계신 분들은 “기업연구원의 미래가 교수에 대해 좀 불안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기업은 영리목적의 기관이니까 당연히 기업의 실적에 따라서 승진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정리해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정리해고가 당해보면 힘들기는 한데 어느 지역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미국의 3군데 지역을 추천합니다. –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뉴욕

기업연구원이 교수와 다른 점은 사실 실적에 대한 대우 (Reward)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업은 대우를 확실히 해주죠. 저는 이 대우에 더해서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질 (Quality)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학교수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포스닥을 고용해서 연구를 진행하지만 기업연구원에서는 잔뼈가 굵은 박사들이 즐비하고 정말 똑똑한 학부, 석사 연구원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이 고를수 있거든요. 여기에서 나오는 팀의 시너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로 연결되더라구요.

물론 어려울 때도 많죠. 저희끼리 그럽니다.

만약 실패를 하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다면 혁신적인 연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고요.

보통 기업연구원도 나눠지는데요.

대기업 (빅파마, Big Pharmaceuticals), 바이오텍, 연구수탁회사 (CRO, 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어디에서 일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중추적인 역할로 일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구수탁회사에 오랜기간 아웃소싱도 하고 있는데요. 너무 좋은 연구원들이 연구수탁회사에도 많습니다. 정말 잘하는 분들은 나중에 스카웃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1) 나의 연구능력 (2) 내 동료들의 연구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기관 연구원

매릴렌드 (MD, Maryland), 버지니아 (VA, Virginia)주에는 NIH, FDA 같은 정부 기관들이 모여있습니다. 이런 정부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죠. 저는 아직 이 길을 추구한 적이 없는데요.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식소유를 금지한 이유가 좀 큽니다. 정부기관에서는 이해상충 (Conflict of interest) 이슈로 인해서 사기업 주식 소유를 금하고 있고 정부연구소 입사 이전에 소유하고 있는 사기업 주식을 모두 매각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 부분이 좀 큰데요.

이게 없는 분들의 경우에 공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하시고 싶은 분들은 연구환경으로 볼 때 정부기관 연구원이 연구중심대학 교수에 결코 못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기업체 연구원을 더 선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상이 제가 보는 관점에서 대학교수 vs 기업연구원 vs 정부기관 연구원의 차이였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잘 생각을 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찾으시길 바랍니다.

BOSTONIAN (10) – NEBS 소모임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NEBS (New England Bioscience Society) 보스턴 지부 임원 여러분이 코로나로 인한 오랜 기간의 대면모임이 부족했던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 일환으로 10명 정도씩 소그룹을 나누어서 그 첫 모임을 오늘 참석을 했습니다.

킬링턴 스키장 (Killington Ski Area, Vermont)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나름 달리긴 했는데 결국 약속시간 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미 8분이 와서 자기 소개를 다 끝마치신 것 같은데 저 때문에 다시 한바퀴를 돌게 되어서 심지어 저를 쳐다보고 각자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민망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스닥으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회사에 대한 몇가지 질문들이 있어서 답변을 드렸구요. 각자 어떤 연구를 하는지도 궁금해서 돌아가면서 얘기들을 했는데 다들 오늘 처음 뵙는다고 하시더라구요.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 모이는 게 더 편할 수 있죠.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요.

커리어코칭에 대해서도 약간 소개를 했구요. 아무래도 쥐를 가지고 하는 동물실험을 많이 하시니까 쥐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끝이 없더군요. 저는 사실 동물실험을 하지는 않지만 항상 실험동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마 카톡방을 만들어서 다음 모임에 대한 일정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얘기를 할 모양이에요.

제 직장과 가까운 분들이라 가끔 식사나 커피 한잔의 여유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이지만 과거에 하버드 쪽으로 포스닥을 오려고 알아보던 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결국 예일대학교로 포스닥을 가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하버드에 왔으면 어땠을까?“하는 막연한 상상 같은게 있습니다.

하버드 석사하기 버킷리스트도 아마 그런 갈증(?) 때문인 것 같아요. 뭐 이런 거죠.

아니 하버드가 바로 코 앞인데 여기에서 석사 학위 정도는 해 줘야 하는거 아냐?

Bucket List (2) – Harvard University Master’s Degree

뭐 이런 객기를 부리는 거죠.

어제 제약바이오모임에서는 공중보건학 석사 (MPH, Master of Public Health) 를 하신 후에 박사학위를 하신 분을 마침 뵈었는데요. 제가 관심이 있는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하는 걸 여쭤보니까 할만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계속 갈등 중이긴 한데요. 여하튼 어떤 형태로든 최고의 연구환경에서 일해보거나 공부해 보는건 참 행운이죠.

오늘 뵌 분들도 모두 하버드, MIT,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MGH,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라 겸손하시지만 탁월한 분들인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분들이 몇분 계시더라구요. 일단 링크드인 (Linkedin)으로 연결을 했으니까 따로 기회를 만들어서 만나려고 생각합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저와 그리 다리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갑은 오늘 약간 열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NEBS 임원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BOSTONIAN (9) – KASBP Year-End Dinner & Learn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연말이죠?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뉴스가 나오네요. 이런 와중에 KASBP 보스턴 지부의 연말 디너&런 (Dinner & Learn)모임이 있었습니다. 보건산업진흥원 보스턴 지부에서 후원을 해 주셔서 아주 성황리에 된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비가 많이 내려서 더 많은 분들이 등록을 하셨는데 오시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저년식사는 Beef, chicken, vegan 세가지 도시락 중에 하나였는데 저는 Beef 도시락을 선택해서 처음 뵙는 두분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7시부터 Gritstone Bio에서 Head of Clinical Biostatistics이신 배경화 박사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What do Clinical Biostatistician do? 였고요. 어렵지 않게 쉽게 설명을 해 주시고 좋은 질문도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Gritstone Bio는 self-amplifying mRNA (samRNA)를 chimpanzee adenovirus 벡터 (chAd)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Cancer vaccine과 Covid 백신 등 다양한 약물을 개발하는 중인데요.

그래서인지 모더나 (Moderna)의 Cancer vaccine과 Covid vaccine mRNA-1273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좀 놀랐습니다. 모더나 직원의 발표인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발표가 끝나고는 네트워킹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냥 가까운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9시 근방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저로서는 적당한 인원이 참여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Unretirement (15) – Dr. Anthony Fauci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미국인 두번째 은퇴없는 삶 (Unretirement)의 롤모델 (Role Model)로 소개하고 싶은 분은 안토니 파우치 박사님 (Dr. Anthony Fauci)이십니다. 1940년생으로 현재 82세이십니다.

파우치 박사님은 코넬의대를 졸업하신 의사이시고 졸업 후 1968년에 미국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미국 국립알러지 및 감염증 연구소 (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에 1968년에 들어가셨습니다. 올해 그만두셨으니까 총 54년간 국가 연구소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국가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면 바이오텍이나 빅파마에 주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공적인 영역에 있기 때문에 철저히 그런 것은 금하고 있습니다.

파우치 박사님의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AIDS의 원인을 밝힌 일입니다. AIDS는 1987년에 발발을 했는데요 아직도 에이즈 백신은 없습니다. 변종만도 백만개가 넘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기간동안 가장 고생한 분이 파우치 박사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 3월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우치 박사님이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쉽게 설명하던 모습은 제 마음속에 전설로 남았습니다. 7:30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파우치 박사님은 NIH를 그만두시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하시지는 않고 또 새로운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파우치 박사님이 최근에 인터뷰하신 게 있는데요 마지막 부분에 NIH를 그만둔 다음에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다음의 행보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글쎄요 아직 어떤 특별한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공직윤리규정상 공적업무에 충실해야 하고 어떠한 사적인 이익이 공적 업무에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미래를 위한 특정한 논의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것을 원치 않고요 남은 4개월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했듯이 저는 제가 54년간 NIH에서 과학자로 연마한 것과 NIAID의 디렉터로 38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젊은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일텐데 특별히 의약과 과학을 다루는 공공의료 분야에서 공적 서비스 커리어를 생각하는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할 것 같아요.

On what’s next 

Well, I have not pursued anything specific because the rules of government ethics are clear that you’ve got to make sure you stick with the job that you’re doing and to avoid any conflict of interest, you don’t engage in any specific discussions about opportunities after or else you have to recuse yourself from many of the things you want to do. And I don’t want to do that, I want to give all of my effort to my last four months in the job. But as I mentioned publicly, I would like to look at what I have to offer at this stage in my career and it’s the experience I’ve garnered over the last 54 years as the scientist at NIH and the last 38 years as director of [NIAID] and perhaps inspire some of the younger generation of scientists, and would be scientists to get them interested in a career in public service, particularly in the arena of public health, involving medicine and science. 

전문보기: https://www.govexec.com/management/2022/09/dr-fauci-young-scientists-follow-science-stay-out-politics/376788/

파우치 박사님도 젊은 세대를 위해 커리어코칭을 하시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계시죠? 특별히 공공의료 분야에서 자신처럼 일하고자 하는 과학자나 의사가 있다면 돕고 싶다는 뜻을 말씀하고 계세요.

저도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7) – 수학자 이임학 박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일제 식민 지배의 역사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좋은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지나치는 일이 많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리승기 박사에 대해서도 따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3) – 이태규 박사와 리승기 박사

이임학 박사님 (1922-2005, 83세) 은 일제시대에 태어나신 한국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십니다. 함경북도 함흥 출신으로 해방하기 1년전인 1944년에 경성제국대학에 수학과가 없어서 대신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졸업 후 박흥식이 만든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기술자로 중국 심양에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1년간 휘문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1946년부터 1953년까지 7년간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교수로 근무를 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미 군정이 비판적인 교수를 제거하고 대학을 재편하려고 하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사임했습니다. 이후에 북한 김일성대학의 초청을 받아 고향인 함흥을 찾았지만 북한 사회에 반감을 느끼면서 결국 탈출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47년 길에서 우연히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들이 버린 미국수학회지(Bulletin of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를 주워서 읽던 중 저자인 막스 초른 (Max A. Zorn)이 미해결된 문제라고 적은 문제를 해결하여 막스초른에게 편지를 보냈고, 막스초른은 이를 이임학의 이름으로 미국 수학회지에 대신 투고하여 논문을 내게 됩니다. (Ree, Rimhak On a problem of Max A. Zorn. Bull. Amer. Math. Soc. 55, (1949). 575-576) 이 논문은 이임학의 첫 논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공보원 (USIS)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1953년 캐나다의 브리티쉬컬럼비아대학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캐나다의 첫 한국인 유학생이 되셨고 1955년에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 좀더 공부하기 위해서 여권연장을 신청했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에 갔던 이력을 들어서 여권을 압수하고 국적을 말소해 버리게 되고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게 됩니다. 예일대학교에서 포스닥 과정을 하신 후 교수로 계시면서 “유한단순군” 연구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리군이론 (Ree Group Theory)”을 체계화시키셨고 이러한 업적으로 1963년 40세의 나이에 캐나다 최고 영예인 캐나다 왕립학회 정회원이 되셨습니다.

이임학 박사님은 고향이 함경북도 함흥이시고 이런 인연으로 북한에도 몇차례 가셨고 이러한 자유로운 성격은 남한의 군사정권이 보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96년 대한수학회 5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오셨는데 그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한국 수학자들이 한쪽 분야에만 치우치지 말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 정수론과 같은 어려운 분야에 더 많이 도전하기 바랍니다.”

2015년 6월 미래창조과학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에 “이임학의 리군 이론“이 1950년대 대표적인 성과로 선정되어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과학기술유공자 소개 (https://www.koreascientists.kr/scientists/merit/merit-list/?boardId=bbs_0000000000000028&mode=view&cntId=16&category=2017&pageIdx=)

이임학 교수는 1960년대 새로운 단순군(群)인 ‘리군(Ree Group)’을 발견한 군이론의 대가이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수학자다.

그가 발견한 ‘리군’ 2종과 이미 발견되었던 20여개 단순군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를 세계 수학계의 거목으로 만들었다. 당시 수학계에서는 단순군(simple group)의 분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임학 교수는 1957년 슈발레의 방법으로 구성된 군들이 조르당-딕슨의 고전 군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히고 이들이 예상하는 성질을 지님을 증명했다. 나아가 1960년에는 새로운 종류의 단순군들의 무한한 두 모임을 찾아내 자신의 이름을 따 ‘리군(Ree Group)’이라 명명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명쾌하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이어서 세계 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수학자 다외도네(J. Dieudonne)는 그의 저서 ‘순수 수학의 파노라마’에서 군론을 근원적으로 창시한 21명의 위대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이임학 교수를 꼽았다.

‘리군’에 대한 연구논문은 1984년부터 10년간 90여 편이 나올 정도로 그의 연구는 세계 수학사에 중요한 연구업적이 되었다. 현재도 ‘리군’은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미국 수학회에서 간행되는 수학 리뷰지를 검색하면 최근 논문 중 제목에 ‘리군’을 포함하는 논문이 20편을 넘으며, 논문과 리뷰에서 ‘리군’을 포함하는 논문은 100여 편이나 되어 지금도 ‘리군’의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

참고: 국가가 버린 세계적 수학자 이임학, ‘리군이론’으로 수학사에 족적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6052217251

한국과학기술역사 (6) – 세종이 발탁한 과학기술자들 – 이천, 이순지, 장영실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조선시대 과학사를 얘기할 때 장영실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천민이었다가 공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어서 그 스토리 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요 장영실을 세종대왕이 발탁한 것으로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장영실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탁한 왕은 태종입니다. 장영실은 과학자라기 보다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기술자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을 전체적인 과학적 계획을 짜고 이론을 전개한 두사람이 더 있습니다. 바로 이순지와 이천이라는 분인데요 이 두분이 지금으로 말하면 과학자에 더 가깝습니다.

  • 이천 (1376-1451, 75세): 무신이고 행정가이고 과학자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연구소장이라고 할 수 있죠.
  • 이순지 (1406-1465, 59세): 문신이고 천문학자입니다. 이론적인 기초를 다졌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천문학 박사라고 할 수 있죠.
  • 장영실 (1389?-1443? 54세?): 기술자이고 발명가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술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이천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태종 (1367-1422, 55세)이 왕으로 즉위한지 두번째 해인 1402년에 무과에 급제했고 대마도 정벌을 한 무관입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왜구의 출몰이 많았기 때문에 태종은 무기의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천의 과학적 능력을 보고 세종을 수렴청정하던 1418년에 공조참판이 되어 금속활자의 주조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1420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경자자라는 새로운 활자를 만들게 됩니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활자가 여러번 개발됩니다. 이천이 그 중 하나의 중요한 획을 그은 것이죠.1422년에는 저울을 개조하고 사륜차를 만들었습니다.

1433년에는 혼천의를 발명하여 세종에게 올렸고요. 1434년에는 금속활자의 “갑인자“를 새로 만들어서 인쇄발달에 기여를 했습니다.1437년에는 여진족을 정벌했고요

이천의 업적으로는 호조판서로서 오랜 연구 끝에 천문학 기구인 대간의, 소간의, 혼의, 앙부일구, 자격루 등을 만들었고, 그 밖에 화포를 만드는 등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나라에서 건축하거나 개축하는 공사에서 대부분 주관하는 관청의 재조를 맡아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과학기술자인 장영실을 알아보고 적극추천한 것도 이천입니다.

이순지는 이천에 비해 30세가 어립니다. 1427년 (세종 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종대왕이 한양의 위도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유일하게 답을 한 사람이 이순지입니다. 이순지는 이 일로 발탁이 되어 천문학 이론을 정립하는데 많은 업적을 쌓게 됩니다.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고 1433년부터 1442년까지 9년간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국 명나라에 의존해서 천문역법을 계산하지 않고 조선 고유의 방법으로 천문역법을 계산하게 됩니다.

장영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승진을 거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장영실은 본래 동래군 (지금의 부산)의 관노비였습니다. 발명가로서의 재주를 알아보고 태종이 발탁을 했고 세종대왕이 특히 아꼈다고 합니다.

세종은 장영실이 나이 약 32세 때인 1421년 (세종 4년)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장영실을 중국에 보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했습니다. 귀국 후 1423년(세종 5년)에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받아 노비에서 면천되었고 다시 대신들의 의논을 거쳐 종5품 상의원 별좌에 임명됩니다. 1424년(세종6년), 세종은 그를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시켰고 물시계를 만들라고 명합니다.

1432년부터 1438년까지 6년간은 이천의 책임하에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때 물의 힘으로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 자격루(보루각루, 1434년)와 옥루(흠경각루, 1438년)를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대간의, 소간의를 비롯해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평일구, 나침반인 정남일구, 혜정교와 종묘에 설치한 공중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시간을 알리는 일성정시의, 규표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공으로 1433년(세종 15년)에는 정4품 호군의 관직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모두 이천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1434년(세종 16년)에는 이천이 총책임자였던,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했습니다. 장영실은 노년에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됩니다.

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천의 책임하에서 발명이 가능했던 것이고 이순지의 이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발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1421년부터 2년여간 중국에 유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지금은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세종대왕 시절에는 국민의 거의 절반이 천민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엄격한 조선 초기의 신분 사회에서 이천의 과학적 책임과 이순지의 과학적 이론 정립이 없었다면 장영실의 발명은 있을 수도 없었고 설사 있더라도 그 빛을 발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종과 세종대왕의 시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과학적 투자의 중요성이 있었습니다. 후기에는 이런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천-이순지-장영실 과학기술팀의 협력과 오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많은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영실은 아마 1389년경에 출생해서 1445년경에 사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고가 1442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아마 그 일로 곤장 80대를 맞고 쫓겨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조선 초기에는 과학기술적 업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임금, 좋은 관료 그리고 좋은 발명기술자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BIOTECH (9) – Precision Biosciences의 Allogeneic CAR-T 치료제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세포치료제 (Cell Therapy)는 인체의 혈액을 채취한 후 체외에서 변형시켜서 (Ex-Vivo) 원하는 치료제를 만든 후 다시 몸속에 집어넣어주는 치료제를 말합니다. 세포치료제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이 “T-Cell Chimeric 항원 수용체 (CAR-T)” 치료제라는 것입니다. 이 CAR-T 세포치료제는 암세포의 특이학 항원에 반응하도록 T-세포를 조작해서 암환자의 암세포만을 면역적으로 인식해서 죽이게 하는 치료제인데요 Novartis의 Kymriah와 Gilead의 Yescarta라는 치료제가 US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약물은 모두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채취하는데요 환자의 면역상태에 따라서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고 CAR-T 생산도 어렵습니다. 이런 약물을 “자가세포 (Autologous) CAR-T치료제“라고 합니다. 당연히 자가세포 CAR-T 치료제는 한계를 가지고 있죠.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환자의 몸이 아닌 건강한 공여자의 몸에서 T-세포를 추출하는 것을 시도하는 회사가 많이 있는데 이런 약물을 “동종세포 (Allogeneic) CAR-T 치료제“라고 합니다.

동종세포 CAR-T 치료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세포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이식면역반응 (graft-vs-host disease)“를 하지 않도록 세포를 변형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임상적 방법은 없는 상태입니다. 올해에 North Carolina에 위치한 Precision Biosciences에서 이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11명의 환자에 대해서 일단 시험을 했는데요 그 중 7명이 6개월 이상암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의 생존률 (PFS, Progression Free Survival)“이 70%가 나왔습니다. 기존의 자가세포치료제인 Kymriah나 Yescarta는 2개월 미만 암이 진행되지 않은 생존률을 보이기 때문에 이 결과는 3배 이상의 기간동안 치료효과가 지속된 것이어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현재 Precision Biosciences 뿐 아니라 여러 Biotech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Allogene Therapeutics, CRISPR Therapeutics와 Sana Biotechnology 등이 그러한 회사들입니다.

위 세 회사들은 아직 임상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인데 가장 먼저 진입한 Precision Biosciences최초로 동종세포 CAR-T 치료제의 가능성을 증명한 Data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요. 향후에 환자수를 늘려서 임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