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역사 (9) – 염초 제조법 연구 1592-1635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의 강혁훤 교수님의 연구논문인 “1592년-1635년까지의 염초제조법 연구“에 대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논문을 보면서 제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최무선이 고려말에서 조선초에는 최초의 염초제조법 연구자라고 다른 글에서 나누었는데요 그 이후에 어떻게 발전을 해 나갔느냐에 대한 논문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8) – 최무선

1592년이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임금 시기이고 1635년이면 효종 임금 시기입니다.

(글을 쓰는 중입니다)

7/20/2025

염초에 대한 글을 쓰다가 중단한지 몇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염초 제조 공정에 대한 연구논문을 찾아본 결과 놀랍게도 고등학교 논문이 있었습니다. 대전에 있는 유성고등학교의 3학년 학생들 2명과 선생님의 논문이었는데 이런 연구가 박사학위자들이 아닌 고등학생들과 이루어졌다는 것이 흥미로와서 이곳에 남깁니다. 이 두 학생들이 이후에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한국의 화학역사: 염초에서 다이너마이트까지 by 민병만”이라는 책이 있군요. 민병만님은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시고 한화에서 30년간 일하신 분이십니다.

718페이지나 되는 아주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한국에 가면 구매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염초제조와 화포 제조에 관한 정두원 (鄭斗源, 1581-1642)이라는 명나라 사신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분은 1631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염초시료와 화포 등 새로운 서양문물 및 기록을 가져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염초는 화학식으로 질산칼륨이라는 물질입니다. 이 물질의 화학적 생산 방법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Habor-Bosch법이라는 암모니아를 질산과 수소로 부터 만드는 방법을 개발한 방법을 개발한 Fritz Haber의 때에 비로소 천연물이 아닌 화학적 합성법이 실현되었습니다. Haber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독일의 염소가스 등 독가스를 개발한 오명이 있는 화학자였지만 Haber-Bosch법의 발명으로 1918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Fritz_Haber

염초에 대한 고려와 조선의 노력은 더욱 자세히 연구하고 일반 대중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면 어떨까하고 생각합니다. 몇년이 걸릴 일이지만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국립진주박물관에는 최무선의 화약병기에 대한 전시관이 있고 학예연구관이 계시는데요 그에 대한 부산일보 기사가 있어서 이곳에 올립니다.

화통도감에서 군기시로 이어진 빛난 얼 – 부산일보 4/16/2022

국립진주박물관 김명훈 학예연구사는 “세종 16년 세종실록을 보면 군기감의 화약장(염초장 35명, 취토장 35명)이 무려 70명이라고 기록돼 있다“며 조선초기 정부의 화약 무기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김 학예연구사는 “1661년 발행한 경국대전에도 군기시 장인은 철의 생산과 주조 단조로 군기 및 농공구를 제작하는 장인인 야장이 130명, 연장 장인이 160명, 칠장 12명, 화포 제작과 화살촉을 끼울 구멍을 만드는 장인인 마조장이 12명, 금속을 녹여 주조하는 장인인 주조장 20명, 군기에 기름칠하는 유칠장이 2명, 목재를 다루어 기물을 만드는 장인인 목장 2명 등이 존재했다”며 “군기시는 체계적으로 화약 무기를 생산한 지금의 국방과학연구원과 조방창을 합친 것 같은 무기 연구, 제작기관이었다”고 말했다.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고려와 조선이 수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염초 등 화학무기제조에 탁월한 기술력을 이루어 낸 선대 과학자들의 노고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BOSTONIAN (12) – The D. Kim Foundation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비영리기관 (Non-Profit Organization)을 운영해 보는 것에 대해 혹시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보스턴 지역에 있는 참 소중한 비영리기관을 우연히 찾게 되어 나누려고 합니다.

김동원 박사님 (Dr. Dong-Won Kim)께서 운영하시는 “D. Kim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연구재단 (The D. Kim Foundation for the History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East Asia, http://dkimfoundation.org/wp1/)“입니다. 제가 요즘 연재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역사를 위해 자료를 찾던 중에 강혁훤 교수님 (Dr. Hyeok Hweon Kang at University of Washington at St. Louis, https://www.hhkang.com/) 의 자료를 찾게 되었는데요. 강 교수님의 이력을 보다보니 하버드에서 D. Kim Postdoc Fellow로 계셨더라구요.

김동원 박사님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KAIST에서 1994-2005년까지 교수로 계셨습니다. 그리고 2008년부터 D. Kim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연구재단의 이사장으로 계십니다.

매년 2-3명의 Postdoctoral Fellowship ($60,000), 3-4명의 Dissertation Fellowship ($25,000), Travel grant ($2,500)등을 선정해서 후원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재단의 후원 내용을 보니 아래와 같습니다.

D. Kim 동아시아 과학기술사 연구재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재단은 현대 동아시아 과학기술사를 연구하는 대학원생과 젊은 연구자를 후원하기 위해 펠로우쉽과 그랜트를 수여합니다. 동아시아와 서양 비교연구 및 관련 분야 (수학, 의약, 공중보건) 연구에 대한 지원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the D. Kim Foundation for the History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East Asia. The Foundation provides fellowships and grants to support graduate students and young scholars who are working in the history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modern East Asia, regardless of their nationality, origins, or gender. Comparative studies of East Asia and the West as well as studies in related fields (mathematics, medicine and public health) are also welcome.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서 여기에 나눕니다. 동아시아라면 한국, 중국, 일본의 과학기술사 분야에 대해 서양 과학기술사와의 관련성을 깊이있게 연구하는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연구재단을 저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한국 내에서의 역사학자들의 연구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국제적인 공동연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토대에서 한중일의 역사문제도 좀더 심도있게 논의할 수 있고 또한 나아가 서양과의 근현대사의 과학기술사 흐름을 연관지어 연구할 수 있으니까요.

D. Kim 연구재단을 통해 좋은 신진역사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커리어코칭 (15) – 미국회사 vs 한국회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인더스트리 커리어를 결정할 때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하는 부분이 미국회사와 한국회사의 차이에 대한 것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한국회사의 대기업과 바이오텍 그리고 미국회사의 바이오텍을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경험을 토대로 좀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는데 제가 미국 빅파마 경험은 없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보는 한국과 미국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업문화 (Corporate culture) 가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한국기업들이 글로벌화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고 연구개발도 하고는 있지만요 그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기업은 아직도 제네릭 (Generic drug)이나 바이오시밀러 (Biosimilar)와 같은 복제약 개발이나 신약개발의 경우에도 혁신적인 플랫폼보다는 기존 방식인 저분자, 항체 (Antibody) 등을 개량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좀 안정지향적인 기업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창의성보다는 일의 양, 시간과 속도에 더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커리어를 오래 가져가더라도 자신만의 확실한 과학기술적 경쟁력을 갖기가 어려운 구조인 것 같습니다. 인력채용을 할 때에는 전문성보다는 적응력을 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임원이 되더라도 자신의 전문성보다는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소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기업의 경우에는 빅파마가 되었든지 스타트업이 되었든지간에 그 분야의 세계1위가 되지 않으면 쉽게 따라잡히고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투자규모도 크고 벤처캐피탈의 투자금을 연구에 오로지 사용해야만 합니다. 보통 2년정도 운용자금 (Operating cost)를 펀딩하고요 2년이내에 확실한 마일스톤 (milestone)을 달성해야만 다음 펀딩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사람을 뽑을 때에는 그 사람의 확실한 전문성 (Specialty)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확실히 실력이 보여야만 채용이 되는 구조이구요. 미국기업에서는 업무를 많이 했느냐 빨리 했느냐 보다는 결과에 대한 것을 많이 봅니다. 이 결과란 신약이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도 있겠지만 그에 더해서 실패를 했더라도 핵심적인 문제점 (Root cause)을 발견했고 해결점을 찾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해결점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플러스 요인이 됩니다.

미국 스타트업의 경우 펀딩이 적으면 좋은 인력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에 비해 보다 더 혁신적인 연구에 촛점을 맞추게 되고 완전한 차별화를 위해서 큰 규모의 펀딩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스타트업의 시작하는 펀딩인 시리즈 A (Series A)의 경우에 $20M (260억원) 규모의 펀딩을 했다면 요즘에는 적어도 $50M-$150M (650억원-2,000억원) 규모의 시리즈 A를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좋은 경력의 인력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더욱 성공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미국기업과 한국기업에서 일할 때 커리어 상의 또하나의 차이점은 미국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한국 대기업에 임원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지만 한국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미국기업에서 일할 기회는 얻기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미국기업에 취업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미국의 스타트업 혹은 바이오텍에서 제대로 모험을 해보고 부딪혀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모험이 실패를 하더라도 그 경험을 회사를 옮겨서 성공시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바이오텍 환경은 어떤 기업 하나의 성공 실패냐 보다는 바이오텍 허브 (Biotech Hub)의 좋은 시너지를 내는 Ecosystem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미국기업은 파산을 하면 Chapter 11이라는 것을 내게 되는데요 그런 기업에서 정리해고 (Layoff)가 되신 이후에도 다른 기업에 충분히 가실 수 있습니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혹한의 경기 상황에서 모두가 어려운 극단적인 경우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만요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지금까지 미국기업과 한국기업의 선택을 할 때 기업문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판단하실 때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8) – 최무선

최무선 (1325-1395, 70세)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활동한 무관이며 과학자입니다. 최무선은 132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최동순은 지금의 서울시 마포의 호조관청인 장흥창의 관리였습니다. 최무선이 살던 시기에는 일본 왜구들의 출몰이 잦았던 때였고 최무선은 어려서부터 화약무기에 관심이 많아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왜구들을 효과적으로 무찌르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화약제조법에 몰두하게 됩니다. 당시 화약제조법은 중국에서 이미 개발이 되었지만 그 제조법은 극비로 붙여져 있었습니다.

화약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염초: 숯: 유황의 비율이 75%: 15%: 10%의 비율로 필요하고 숯과 유황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가장 중요한 염초는 고려/조선에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염초는 지금의 화학지식으로는 “질산칼륨 (KNO3, Potassium Nitrate)“으로 폭발력을 내는데 중요한 물질이기 때문에 염초의 제조법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질산광산이 있어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동아시아에는 아직 질산광산이 없었고 따라서 염초제조를 위한 원료확보는 매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최무선이 살던 시기는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였는데 이 때 최무선은 원나라의 이원 (李元)이라는 사람으로 부터 염초를 만드는 몇가지 비법을 전해듣게 됩니다. 집에서 부리던 종 몇명에게 기술을 익히게 해서 시험을 한 결과 화약제조법을 확보하게 된 최무선이 도당에 보고를 했지만 사기꾼 소리만 들었을 뿐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수년간의 끈질긴 설득끝에야 비로소 우왕 3년 (1377년) 즉 최무선이 52세가 되어서야 “화통도감 (지금의 화학약품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화통도감의 제조로서 최무선은 대장군포 · 이장군포 · 삼장군포 · 육화 · 석포 · 화포 · 신포 · 화전 · 화포 · 화통 등의 총포류를 개발하고, 화전 · 철령전 · 피령전 등의 발사용 화기, 질려포 · 철탄자 · 천산오룡전 · 유화 · 주화 · 촉천화 등 각종 화기를 제조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함포를 실을 수 있도록 전함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화기 이용에 대한 교육에도 힘써 화기발사의 전문부대로 보이는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었습니다.

최무선이 55세때인 동왕 6년 (1380년) 왜구 선단 5백 척이 진포에 출몰, 서천과 금강 어구까지 올라와 주변 지역에 대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임명되어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와 함께 전함을 이끌고 배편으로 출항, 처음으로 화통 · 화포 등을 사용하여 왜선을 격파했습니다. 이때 그는 부원수로 최칠석 등을 이끌고 진포에서 고려군을 지휘했습니다. 이때 진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살라버렸습니다. 타고 온 배를 잃어 퇴각로가 막힌 왜구는 곧 한반도 내륙을 돌며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았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운봉에 집결한 왜구는 다시 병마도원수 이성계 등이 이끄는 고려군에게 황산에서 궤멸되어 그 세력이 전에 비해 크게 꺾였습니다 (황산대첩). 《태조실록》에 실린 졸기에서 사관은 “이로써 왜구가 차츰 줄고 항복하는 자들이 서로 잇따르며, 바닷가 백성이 생업을 회복하게 되었으니, 이는 태조의 덕이 하늘에 응한 덕분이라 하나 무선의 공 또한 적지 않았음이다.”라고 최무선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무선이 58세인 동왕 9년 (1383년) 왜구가 다시 남해의 관음포에 상륙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 출정하였고, 이 전투에서도 화기를 써서 왜선을 격침시키는 공을 세웁니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대폭 줄어들었을 정도로 화약 병기의 사용은 왜구 격퇴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두 번의 해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고려 조정은 창왕 1년 (1391)에 왜구의 본거지로 알려진 대마도를 정벌하였습니다.

그러나 위화도회군 후 정권을 잡은 이성계 등 신흥무관세력에 의해 화통도감이 없어지고 군기시에 통합되고 맙니다.

《태조실록》에 실린 내용에는 최무선이 임종할 당시 책 한 권을 부인에게 주며 아들 최해산 (1380-1443, 63세) 이 다 자라면 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 책은 화약의 제조법과 염초의 채취 방법 등을 기술한 화약수련법, 화포법 등의 저술이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 책을 근거로 최해산은 아버지 최무선의 뒤를 이어 화약 및 화포 제작을 하게 됩니다.

문신 정이오의 화약고기라는 책에는 최무선의 업적을 두고 “나라를 위해 마음을 썼으므로 능히 이원의 기술을 얻었으니 그 사려가 깊고 멀다 하겠다. 지금 왜구가 우리 수군과는 감히 배를 타고 승부를 겨루려 들지 못하는 데는 앞서 진포에서의 싸움과 뒷날의 남해에서의 승전 때문이었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최근에 유성고등학교 장미경 선생님과 김준수, 김지훈 학생들이 최무선의 염초제조법에 대한 연구를 현대의 분석기기를 활용하여 발표한 내용이 있습니다.

“흙과 재의 1:1 혼합추출액으로 최대 68% 순도 (Purity)의 염초 (KNO3)를 얻었는데 분별결정법에 의해 순도를 약 14% 향상시켰다. 즉 조상들은 염초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물질의 용해도 차이를 이용한 분별결정법으로 정제하였다.”

“염초 (KNO3)와 용해도가 유사하거나 높은 NaNO3 불순물 등이 정제과정을 어렵게 만든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흙에서 염초를 얻었는데 “처마밑 흙, 화장실앞의 흙, 마루밑 흙, 오랜창고 바닥의 흙, 길가의 흙, 사람의 소변,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 등에서 염초를 얻었다고 합니다. 또한 염초를 대량으로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염초제조를 위한 흙을 수집하는 “취토군“이라는 군대가 따로 있었고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이집저집 가리지 않고 들어가서 처마밑과 화장실 주변의 흙을 모두 채취하다보니 누구나 취토군을 꺼렸고 반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화약제조 부흥을 위해 임금이 직접 “특별취토령“을 선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질산칼륨이 중요한 비료이기 때문에 비료회사에서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말 조선초에 질산칼륨인 염초의 원료를 확보하고 정제법을 개발하기 위해 최무선과 그 군대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노잼투자 (8) – 72의 법칙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노잼투자에서도 나름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기투자를 위한 소위 “72의 법칙 (Rule of 72)“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칙은 아인슈타인이 만든 법칙인데요. 72에서 월평균 수익률 (r)을 나누면 원금이 2배가 되는 연수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S&P 500 연평균수익률이 10.2%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경우…

  • 7년이 지나면 원금의 2배가 됩니다.
  • 14년이 지나면 원금의 4배가 되구요.
  • 21년이 지나면 원금의 8배가 되구요.
  • 28년이 지나면 원금의 16배가 되구요.
  • 35년이 지나면 원금의 32배가 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25,000 (3,000만원)S&P500에 투자한 후에 묻어두고 잊어버렸다가 35년이 지나면 $800,000 (10억원) 으로 불려져 있다는 거죠. 돈벌기 쉽죠?

노잼투자는 시간으로 돈을 버는 투자법입니다. 시장에서 날고 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묵혀두라는거죠.

그리고 정작 나의 시간은 나를 위한 투자를 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공헌하구요.

저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금융 (Finance) 업무를 해 봤는데요. 돈은 허무해요. 돈놀이 보다는 펀더맨털, 즉 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저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OSTONIAN (11) – 국가대표 아버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내일 대망의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립니다. “메시의 아르헨티나 vs 음바페의 프랑스”

저는 메시의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서 손흥민 선수는 이번 2022년 한국월드컵 국가대표의 주장으로 대회를 준비했고 너무나 잘 싸웠죠. 사실 토트넘 핫스퍼에서 얻은 안면골절 부상과 수술 후유증으로 3주를 경기를 뛰지 못했고 마스크를 쓰고 뛰어야해서 시야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을텐데요 그래도 손흥민 선수는 클래스가 다르더라구요.

특히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70m 드리블 이후에 황희찬의 골은 정말 손흥민 선수만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2018년 독일전 쐐기골이 생각나는 엄청난 드리블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수비 7명이 앞뒤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번에 유퀴즈에서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신 손웅정 감독님의 인터뷰가 있었는데요. 너무나 대단했습니다. 오로지 둘째 아들이 축구로만 행복하고 부상없이 성장하게 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독일 레버쿠젠 (차범근 감독님이 소속되었던 구단이죠) 유소년 팀에서 5년간 뛸 때 손웅정 감독님이 점심, 저녁 굶어가며 6시간씩 아들의 훈련을 바라보고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돌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성기란 내려가란 신호다. 잘 내려가야 한다.” – 이 부분에서는 유재석님도 말을 잊지 못하시더라구요.

본인 스스로 4년간 프로선수 생활을 해 보시고 은퇴도 해 보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손흥민 선수만 보고 열광하지만 손웅정 감독님은 손흥민 선수의 은퇴까지 이미 보고 계시더군요.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셨어요.

2025년에 토트넘 핫스퍼와 계약이 끝나는데 그 이후에는 손흥민이 원하는 나라와 팀에서 돈과 상관없이 한번 뛰어봐라!

이 부분은 정말 손웅정 감독님이 아버지로서 아들 손흥민 선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 말씀을 보면서 이제 “나도 돈과 상관없이 원하는 기업과 팀에서 일을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일이 보여지는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의 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흥민 선수는 좋은 아버지를 두어서 참 복받은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흥민 화이팅!!

커리어코칭 (14) – 교수 vs 기업연구원 vs 정부연구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커리어코칭에 대한 글을 시작할 때 먼저 다루웠어야 하는 문제인데 이제야 다루게 되는군요.

과학자로 박사과정이거나 포스닥 연구원이신 분들에게는 크게 3가지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 대학교 교수
  • 기업 연구원
  • 정부기관 연구원

대학교수

막 박사학위 졸업을 앞두거나 포스닥을 이제 시작하신 분들은 대부분 대학교 교수를 1순위로 생각하고 연구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대학교수는 과학자들에게는 가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또한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뭐 틀린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도 연구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있고 티칭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있는데요. 저는 연구중심으로 크게 성공하신 분도 보고 또 탑스쿨에서 정년트랙 (Tenure Track) 을 하시다가 실패하신 분도 봤구요. 티칭중심대학교수로 사시는 분도 봤습니다.

장단점을 따지기 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의 대학교수가 아니면 굳이 대학교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대학교수 지원을 해보니 티칭중심대학에서만 관심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저의 연구성과가 연구중심대학에서 관심을 가지기에는 좀 부족했던 이유였을 수도 있겠죠. 누구에게 물어본 게 아니라서 그냥 저의 나름의 분석이라고 해두죠. 연구중심대학교수는 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R01이라는 큰 펀드를 따서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면에 티칭중심의 경우에는 NIH AREA라고 부르는 R15라는 펀드가 있습니다. 그런 작은 규모의 연구펀드 정도면 충분하고 그보다는 강의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정말 좋아하시는 경우에는 이렇게 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강의보다는 연구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여담인데요. 제가 예일대학교에서 포스닥을 할 때 보니까 의와로 고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진로를 트는 우수한 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명은 박사과정 중이었던 학생이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정말 뛰어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자기는 고등학생들에게 꼭 생물학을 가르치고 싶다고 박사과정을 그만 두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또 한분은 박사학위를 한 분이었는데요. 재혼을 하면서 고등학교 교사로 진로를 트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티칭중심대학의 교수가 될 거라면 오히려 고등학교 교사가 더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좀 어설프게 단순한데요. 학생의 질 때문이에요.

티칭중심대학의 학생의 질은 아무래도 연구중심대학보다는 떨어질텐데(?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고등학생 중에는 편차는 있지만 잘 다듬으면 크게 될 원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기업연구원

과학자로 살다가 기업연구원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면 좀 솔깃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겠어요 제 앞에서만 예의상 회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건데 제가 착각을 하는 걸 수도 있죠.

저는 기업연구원과 연구중심대학의 교수직을 비교해 봐도 미국의 환경에서는 기업연구원이 연구중심대학 교수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진로결정을 미루고 계신 분들은 “기업연구원의 미래가 교수에 대해 좀 불안하지 않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죠. 기업은 영리목적의 기관이니까 당연히 기업의 실적에 따라서 승진도 할 수 있고 아니면 정리해고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정리해고가 당해보면 힘들기는 한데 어느 지역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미국의 3군데 지역을 추천합니다. –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뉴욕

기업연구원이 교수와 다른 점은 사실 실적에 대한 대우 (Reward)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업은 대우를 확실히 해주죠. 저는 이 대우에 더해서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질 (Quality)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학교수는 박사과정 학생이나 포스닥을 고용해서 연구를 진행하지만 기업연구원에서는 잔뼈가 굵은 박사들이 즐비하고 정말 똑똑한 학부, 석사 연구원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이 고를수 있거든요. 여기에서 나오는 팀의 시너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로 연결되더라구요.

물론 어려울 때도 많죠. 저희끼리 그럽니다.

만약 실패를 하지 않는 연구를 하고 있다면 혁신적인 연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라고요.

보통 기업연구원도 나눠지는데요.

대기업 (빅파마, Big Pharmaceuticals), 바이오텍, 연구수탁회사 (CRO, 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

어디에서 일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중추적인 역할로 일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구수탁회사에 오랜기간 아웃소싱도 하고 있는데요. 너무 좋은 연구원들이 연구수탁회사에도 많습니다. 정말 잘하는 분들은 나중에 스카웃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1) 나의 연구능력 (2) 내 동료들의 연구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기관 연구원

매릴렌드 (MD, Maryland), 버지니아 (VA, Virginia)주에는 NIH, FDA 같은 정부 기관들이 모여있습니다. 이런 정부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죠. 저는 아직 이 길을 추구한 적이 없는데요. 큰 이유 중 하나는 주식소유를 금지한 이유가 좀 큽니다. 정부기관에서는 이해상충 (Conflict of interest) 이슈로 인해서 사기업 주식 소유를 금하고 있고 정부연구소 입사 이전에 소유하고 있는 사기업 주식을 모두 매각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 부분이 좀 큰데요.

이게 없는 분들의 경우에 공적인 영역에서 역할을 하시고 싶은 분들은 연구환경으로 볼 때 정부기관 연구원이 연구중심대학 교수에 결코 못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기업체 연구원을 더 선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상이 제가 보는 관점에서 대학교수 vs 기업연구원 vs 정부기관 연구원의 차이였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잘 생각을 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찾으시길 바랍니다.

BOSTONIAN (10) – NEBS 소모임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NEBS (New England Bioscience Society) 보스턴 지부 임원 여러분이 코로나로 인한 오랜 기간의 대면모임이 부족했던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 일환으로 10명 정도씩 소그룹을 나누어서 그 첫 모임을 오늘 참석을 했습니다.

킬링턴 스키장 (Killington Ski Area, Vermont)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나름 달리긴 했는데 결국 약속시간 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미 8분이 와서 자기 소개를 다 끝마치신 것 같은데 저 때문에 다시 한바퀴를 돌게 되어서 심지어 저를 쳐다보고 각자 돌아가면서 소개하는 민망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스닥으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회사에 대한 몇가지 질문들이 있어서 답변을 드렸구요. 각자 어떤 연구를 하는지도 궁금해서 돌아가면서 얘기들을 했는데 다들 오늘 처음 뵙는다고 하시더라구요.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 모이는 게 더 편할 수 있죠.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요.

커리어코칭에 대해서도 약간 소개를 했구요. 아무래도 쥐를 가지고 하는 동물실험을 많이 하시니까 쥐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끝이 없더군요. 저는 사실 동물실험을 하지는 않지만 항상 실험동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마 카톡방을 만들어서 다음 모임에 대한 일정을 포함해서 여러가지 얘기를 할 모양이에요.

제 직장과 가까운 분들이라 가끔 식사나 커피 한잔의 여유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이지만 과거에 하버드 쪽으로 포스닥을 오려고 알아보던 게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결국 예일대학교로 포스닥을 가서 지금에 이르렀지만 “하버드에 왔으면 어땠을까?“하는 막연한 상상 같은게 있습니다.

하버드 석사하기 버킷리스트도 아마 그런 갈증(?) 때문인 것 같아요. 뭐 이런 거죠.

아니 하버드가 바로 코 앞인데 여기에서 석사 학위 정도는 해 줘야 하는거 아냐?

Bucket List (2) – Harvard University Master’s Degree

뭐 이런 객기를 부리는 거죠.

어제 제약바이오모임에서는 공중보건학 석사 (MPH, Master of Public Health) 를 하신 후에 박사학위를 하신 분을 마침 뵈었는데요. 제가 관심이 있는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하는 걸 여쭤보니까 할만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계속 갈등 중이긴 한데요. 여하튼 어떤 형태로든 최고의 연구환경에서 일해보거나 공부해 보는건 참 행운이죠.

오늘 뵌 분들도 모두 하버드, MIT,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MGH, 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라 겸손하시지만 탁월한 분들인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와 가까운 분들이 몇분 계시더라구요. 일단 링크드인 (Linkedin)으로 연결을 했으니까 따로 기회를 만들어서 만나려고 생각합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저와 그리 다리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갑은 오늘 약간 열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NEBS 임원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BOSTONIAN (9) – KASBP Year-End Dinner & Learn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연말이죠?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뉴스가 나오네요. 이런 와중에 KASBP 보스턴 지부의 연말 디너&런 (Dinner & Learn)모임이 있었습니다. 보건산업진흥원 보스턴 지부에서 후원을 해 주셔서 아주 성황리에 된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비가 많이 내려서 더 많은 분들이 등록을 하셨는데 오시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저년식사는 Beef, chicken, vegan 세가지 도시락 중에 하나였는데 저는 Beef 도시락을 선택해서 처음 뵙는 두분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7시부터 Gritstone Bio에서 Head of Clinical Biostatistics이신 배경화 박사님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What do Clinical Biostatistician do? 였고요. 어렵지 않게 쉽게 설명을 해 주시고 좋은 질문도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Gritstone Bio는 self-amplifying mRNA (samRNA)를 chimpanzee adenovirus 벡터 (chAd)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Cancer vaccine과 Covid 백신 등 다양한 약물을 개발하는 중인데요.

그래서인지 모더나 (Moderna)의 Cancer vaccine과 Covid vaccine mRNA-1273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좀 놀랐습니다. 모더나 직원의 발표인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발표가 끝나고는 네트워킹 시간이 있었는데요. 저는 그냥 가까운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9시 근방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저로서는 적당한 인원이 참여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Unretirement (15) – Dr. Anthony Fauci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미국인 두번째 은퇴없는 삶 (Unretirement)의 롤모델 (Role Model)로 소개하고 싶은 분은 안토니 파우치 박사님 (Dr. Anthony Fauci)이십니다. 1940년생으로 현재 82세이십니다.

파우치 박사님은 코넬의대를 졸업하신 의사이시고 졸업 후 1968년에 미국국립보건원 (NIH,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미국 국립알러지 및 감염증 연구소 (NIAID, National Institute of Allergy and Infectious Disease)에 1968년에 들어가셨습니다. 올해 그만두셨으니까 총 54년간 국가 연구소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미국은 국가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면 바이오텍이나 빅파마에 주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공적인 영역에 있기 때문에 철저히 그런 것은 금하고 있습니다.

파우치 박사님의 업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AIDS의 원인을 밝힌 일입니다. AIDS는 1987년에 발발을 했는데요 아직도 에이즈 백신은 없습니다. 변종만도 백만개가 넘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기간동안 가장 고생한 분이 파우치 박사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0년 3월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우치 박사님이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쉽게 설명하던 모습은 제 마음속에 전설로 남았습니다. 7:30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파우치 박사님은 NIH를 그만두시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하시지는 않고 또 새로운 일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파우치 박사님이 최근에 인터뷰하신 게 있는데요 마지막 부분에 NIH를 그만둔 다음에 무엇을 하실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다음의 행보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글쎄요 아직 어떤 특별한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공직윤리규정상 공적업무에 충실해야 하고 어떠한 사적인 이익이 공적 업무에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미래를 위한 특정한 논의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것을 원치 않고요 남은 4개월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언급했듯이 저는 제가 54년간 NIH에서 과학자로 연마한 것과 NIAID의 디렉터로 38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젊은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일텐데 특별히 의약과 과학을 다루는 공공의료 분야에서 공적 서비스 커리어를 생각하는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할 것 같아요.

On what’s next 

Well, I have not pursued anything specific because the rules of government ethics are clear that you’ve got to make sure you stick with the job that you’re doing and to avoid any conflict of interest, you don’t engage in any specific discussions about opportunities after or else you have to recuse yourself from many of the things you want to do. And I don’t want to do that, I want to give all of my effort to my last four months in the job. But as I mentioned publicly, I would like to look at what I have to offer at this stage in my career and it’s the experience I’ve garnered over the last 54 years as the scientist at NIH and the last 38 years as director of [NIAID] and perhaps inspire some of the younger generation of scientists, and would be scientists to get them interested in a career in public service, particularly in the arena of public health, involving medicine and science. 

전문보기: https://www.govexec.com/management/2022/09/dr-fauci-young-scientists-follow-science-stay-out-politics/376788/

파우치 박사님도 젊은 세대를 위해 커리어코칭을 하시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계시죠? 특별히 공공의료 분야에서 자신처럼 일하고자 하는 과학자나 의사가 있다면 돕고 싶다는 뜻을 말씀하고 계세요.

저도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