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역사 (7) – 수학자 이임학 박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일제 식민 지배의 역사와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좋은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지나치는 일이 많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리승기 박사에 대해서도 따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3) – 이태규 박사와 리승기 박사

이임학 박사님 (1922-2005, 83세) 은 일제시대에 태어나신 한국의 대표적인 수학자이십니다. 함경북도 함흥 출신으로 해방하기 1년전인 1944년에 경성제국대학에 수학과가 없어서 대신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졸업 후 박흥식이 만든 조선비행기주식회사의 기술자로 중국 심양에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1년간 휘문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1946년부터 1953년까지 7년간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교수로 근무를 하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미 군정이 비판적인 교수를 제거하고 대학을 재편하려고 하자 반대 의사를 밝히고 사임했습니다. 이후에 북한 김일성대학의 초청을 받아 고향인 함흥을 찾았지만 북한 사회에 반감을 느끼면서 결국 탈출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47년 길에서 우연히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들이 버린 미국수학회지(Bulletin of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를 주워서 읽던 중 저자인 막스 초른 (Max A. Zorn)이 미해결된 문제라고 적은 문제를 해결하여 막스초른에게 편지를 보냈고, 막스초른은 이를 이임학의 이름으로 미국 수학회지에 대신 투고하여 논문을 내게 됩니다. (Ree, Rimhak On a problem of Max A. Zorn. Bull. Amer. Math. Soc. 55, (1949). 575-576) 이 논문은 이임학의 첫 논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공보원 (USIS)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1953년 캐나다의 브리티쉬컬럼비아대학교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캐나다의 첫 한국인 유학생이 되셨고 1955년에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미국에서 좀더 공부하기 위해서 여권연장을 신청했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에 갔던 이력을 들어서 여권을 압수하고 국적을 말소해 버리게 되고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캐나다 시민권자로 살게 됩니다. 예일대학교에서 포스닥 과정을 하신 후 교수로 계시면서 “유한단순군” 연구에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리군이론 (Ree Group Theory)”을 체계화시키셨고 이러한 업적으로 1963년 40세의 나이에 캐나다 최고 영예인 캐나다 왕립학회 정회원이 되셨습니다.

이임학 박사님은 고향이 함경북도 함흥이시고 이런 인연으로 북한에도 몇차례 가셨고 이러한 자유로운 성격은 남한의 군사정권이 보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96년 대한수학회 5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오셨는데 그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한국 수학자들이 한쪽 분야에만 치우치지 말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 정수론과 같은 어려운 분야에 더 많이 도전하기 바랍니다.”

2015년 6월 미래창조과학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과학기술 대표성과 70선’에 “이임학의 리군 이론“이 1950년대 대표적인 성과로 선정되어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과학기술유공자 소개 (https://www.koreascientists.kr/scientists/merit/merit-list/?boardId=bbs_0000000000000028&mode=view&cntId=16&category=2017&pageIdx=)

이임학 교수는 1960년대 새로운 단순군(群)인 ‘리군(Ree Group)’을 발견한 군이론의 대가이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수학자다.

그가 발견한 ‘리군’ 2종과 이미 발견되었던 20여개 단순군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를 세계 수학계의 거목으로 만들었다. 당시 수학계에서는 단순군(simple group)의 분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는데 이임학 교수는 1957년 슈발레의 방법으로 구성된 군들이 조르당-딕슨의 고전 군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히고 이들이 예상하는 성질을 지님을 증명했다. 나아가 1960년에는 새로운 종류의 단순군들의 무한한 두 모임을 찾아내 자신의 이름을 따 ‘리군(Ree Group)’이라 명명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명쾌하면서도 대단히 효과적이어서 세계 수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수학자 다외도네(J. Dieudonne)는 그의 저서 ‘순수 수학의 파노라마’에서 군론을 근원적으로 창시한 21명의 위대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이임학 교수를 꼽았다.

‘리군’에 대한 연구논문은 1984년부터 10년간 90여 편이 나올 정도로 그의 연구는 세계 수학사에 중요한 연구업적이 되었다. 현재도 ‘리군’은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미국 수학회에서 간행되는 수학 리뷰지를 검색하면 최근 논문 중 제목에 ‘리군’을 포함하는 논문이 20편을 넘으며, 논문과 리뷰에서 ‘리군’을 포함하는 논문은 100여 편이나 되어 지금도 ‘리군’의 중요성이 입증되고 있다.

참고: 국가가 버린 세계적 수학자 이임학, ‘리군이론’으로 수학사에 족적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6052217251

한국과학기술역사 (6) – 세종이 발탁한 과학기술자들 – 이천, 이순지, 장영실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조선시대 과학사를 얘기할 때 장영실에 대해서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천민이었다가 공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어서 그 스토리 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요 장영실을 세종대왕이 발탁한 것으로 모두 알고 있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장영실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탁한 왕은 태종입니다. 장영실은 과학자라기 보다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기술자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을 전체적인 과학적 계획을 짜고 이론을 전개한 두사람이 더 있습니다. 바로 이순지와 이천이라는 분인데요 이 두분이 지금으로 말하면 과학자에 더 가깝습니다.

  • 이천 (1376-1451, 75세): 무신이고 행정가이고 과학자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연구소장이라고 할 수 있죠.
  • 이순지 (1406-1465, 59세): 문신이고 천문학자입니다. 이론적인 기초를 다졌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천문학 박사라고 할 수 있죠.
  • 장영실 (1389?-1443? 54세?): 기술자이고 발명가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술연구원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이천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태종 (1367-1422, 55세)이 왕으로 즉위한지 두번째 해인 1402년에 무과에 급제했고 대마도 정벌을 한 무관입니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왜구의 출몰이 많았기 때문에 태종은 무기의 개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천의 과학적 능력을 보고 세종을 수렴청정하던 1418년에 공조참판이 되어 금속활자의 주조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1420년에는 세종의 명으로 경자자라는 새로운 활자를 만들게 됩니다. 한국의 금속활자는 활자가 여러번 개발됩니다. 이천이 그 중 하나의 중요한 획을 그은 것이죠.1422년에는 저울을 개조하고 사륜차를 만들었습니다.

1433년에는 혼천의를 발명하여 세종에게 올렸고요. 1434년에는 금속활자의 “갑인자“를 새로 만들어서 인쇄발달에 기여를 했습니다.1437년에는 여진족을 정벌했고요

이천의 업적으로는 호조판서로서 오랜 연구 끝에 천문학 기구인 대간의, 소간의, 혼의, 앙부일구, 자격루 등을 만들었고, 그 밖에 화포를 만드는 등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나라에서 건축하거나 개축하는 공사에서 대부분 주관하는 관청의 재조를 맡아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과학기술자인 장영실을 알아보고 적극추천한 것도 이천입니다.

이순지는 이천에 비해 30세가 어립니다. 1427년 (세종 9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종대왕이 한양의 위도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유일하게 답을 한 사람이 이순지입니다. 이순지는 이 일로 발탁이 되어 천문학 이론을 정립하는데 많은 업적을 쌓게 됩니다. 조선의 천문역법을 정비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고 1433년부터 1442년까지 9년간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국 명나라에 의존해서 천문역법을 계산하지 않고 조선 고유의 방법으로 천문역법을 계산하게 됩니다.

장영실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만 승진을 거듭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장영실은 본래 동래군 (지금의 부산)의 관노비였습니다. 발명가로서의 재주를 알아보고 태종이 발탁을 했고 세종대왕이 특히 아꼈다고 합니다.

세종은 장영실이 나이 약 32세 때인 1421년 (세종 4년)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장영실을 중국에 보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했습니다. 귀국 후 1423년(세종 5년)에 천문기기를 제작한 공을 인정받아 노비에서 면천되었고 다시 대신들의 의논을 거쳐 종5품 상의원 별좌에 임명됩니다. 1424년(세종6년), 세종은 그를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시켰고 물시계를 만들라고 명합니다.

1432년부터 1438년까지 6년간은 이천의 책임하에 천문 기구 제작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때 물의 힘으로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 자격루(보루각루, 1434년)와 옥루(흠경각루, 1438년)를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대간의, 소간의를 비롯해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평일구, 나침반인 정남일구, 혜정교와 종묘에 설치한 공중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밤낮으로 시간을 알리는 일성정시의, 규표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공으로 1433년(세종 15년)에는 정4품 호군의 관직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모두 이천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1434년(세종 16년)에는 이천이 총책임자였던,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했습니다. 장영실은 노년에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역사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됩니다.

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천의 책임하에서 발명이 가능했던 것이고 이순지의 이론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발명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1421년부터 2년여간 중국에 유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지금은 신분사회가 아니지만 세종대왕 시절에는 국민의 거의 절반이 천민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엄격한 조선 초기의 신분 사회에서 이천의 과학적 책임과 이순지의 과학적 이론 정립이 없었다면 장영실의 발명은 있을 수도 없었고 설사 있더라도 그 빛을 발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종과 세종대왕의 시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과학적 투자의 중요성이 있었습니다. 후기에는 이런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천-이순지-장영실 과학기술팀의 협력과 오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많은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영실은 아마 1389년경에 출생해서 1445년경에 사망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세종의 어가가 부서지는 사고가 1442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아마 그 일로 곤장 80대를 맞고 쫓겨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조선 초기에는 과학기술적 업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임금, 좋은 관료 그리고 좋은 발명기술자가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BIOTECH (9) – Precision Biosciences의 Allogeneic CAR-T 치료제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세포치료제 (Cell Therapy)는 인체의 혈액을 채취한 후 체외에서 변형시켜서 (Ex-Vivo) 원하는 치료제를 만든 후 다시 몸속에 집어넣어주는 치료제를 말합니다. 세포치료제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이 “T-Cell Chimeric 항원 수용체 (CAR-T)” 치료제라는 것입니다. 이 CAR-T 세포치료제는 암세포의 특이학 항원에 반응하도록 T-세포를 조작해서 암환자의 암세포만을 면역적으로 인식해서 죽이게 하는 치료제인데요 Novartis의 Kymriah와 Gilead의 Yescarta라는 치료제가 US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약물은 모두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채취하는데요 환자의 면역상태에 따라서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고 CAR-T 생산도 어렵습니다. 이런 약물을 “자가세포 (Autologous) CAR-T치료제“라고 합니다. 당연히 자가세포 CAR-T 치료제는 한계를 가지고 있죠.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환자의 몸이 아닌 건강한 공여자의 몸에서 T-세포를 추출하는 것을 시도하는 회사가 많이 있는데 이런 약물을 “동종세포 (Allogeneic) CAR-T 치료제“라고 합니다.

동종세포 CAR-T 치료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세포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일어나는 “이식면역반응 (graft-vs-host disease)“를 하지 않도록 세포를 변형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임상적 방법은 없는 상태입니다. 올해에 North Carolina에 위치한 Precision Biosciences에서 이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11명의 환자에 대해서 일단 시험을 했는데요 그 중 7명이 6개월 이상암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의 생존률 (PFS, Progression Free Survival)“이 70%가 나왔습니다. 기존의 자가세포치료제인 Kymriah나 Yescarta는 2개월 미만 암이 진행되지 않은 생존률을 보이기 때문에 이 결과는 3배 이상의 기간동안 치료효과가 지속된 것이어서 매우 고무적입니다.

현재 Precision Biosciences 뿐 아니라 여러 Biotech에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Allogene Therapeutics, CRISPR Therapeutics와 Sana Biotechnology 등이 그러한 회사들입니다.

위 세 회사들은 아직 임상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인데 가장 먼저 진입한 Precision Biosciences최초로 동종세포 CAR-T 치료제의 가능성을 증명한 Data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요. 향후에 환자수를 늘려서 임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5) – Dr. Philip Jaisohn 서재필 박사님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쉬움이 정말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듭니다.

왜 조선은 신분을 뛰어넘지 못했는가?

양반, 중인, 평민, 천민 중에서 과학기술자들이 어느 위치일까요?

의사나 통역관은 중인입니다. 그리고 도자기공과 장인은 천민입니다.

서양은 상황이 다릅니다. 귀족들이 과학을 연구했습니다. 유명한 라브와지에가 프랑스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고요. 대부분이 귀족들이 과학을 발전시키는데 많은 일을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한 분파였던 퀘이커교도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서 퀘이커교도들도 과학기술에 많이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가 잘 아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의 밑에 있을 때 한 일이 총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토요토미가 총 만드는 기술자였다는 것이 아니라 총을 만드는 것을 담당했다는 것이죠. 일본은 전쟁을 워낙 많이 했는데 조총을 가진 오다노부나가의 밑에 있던 토요토미가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은 전통적으로 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도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서재필 박사 (Dr. Philip Jaisohn, 1864-1951, 87세)“님입니다. 서재필 박사님은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이시고 병리학자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학기술역사에 대해 쓰면서 이 분 애기를 하는 것입니다. 서재필 박사님은 실학자인 박규수의 제자입니다. 박규수의 제자들이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됩니다. 이 당시 서재필 박사님은 가장 막내였고 사관생도였습니다. 그래서 수구파를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청나라의 간섭으로 3일천하로 끝나고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모든 가족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중에 서재필 박사님이 미국인 신분으로 고종을 만날 때 꽂꽂이 서서 악수를 했다고 합니다. 화가 안 풀렸던 것이죠.

서재필 박사님이 미국에 망명을 할 때 박영효와 서광범도 함께 갔지만 양반신분으로 천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다시 돌아갑니다. 박영효의 경우는 고종의 매제였고 나중에 한일합방할 때 일본의 작위를 받는 매국노가 됩니다.

서재필 박사님은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죠. 그러다가 교회를 가게 되셨는데 교회에서 어떤 후원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죠. 지금의 조지워싱턴 대학교를 다니셨는데 그 때 가정교사를 하던 중에 부인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 부인은 뮤리엘 암스트롱 (Muriel Armstrong)인데 미국대통령 부캐넌의 사촌입니다. 당연히 가족의 반대가 심했지만 결혼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재필 박사님은 의대를 다니셨고 인턴도 했지만 당시는 인종차별 때문에 의사로 일을 하기는 어려우셨다고 해요. 그래서 친구와 동업으로 상점을 했는데 그 사업이 아주 잘 되게 됩니다.

구구절절 다 적을 수는 없고요 몇가지 중요한 업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 서재필 박사님은 독립신문을 창간하셨습니다. 이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이 신문의 날이 되었구요. 3면은 한글로 1면은 영어로 낸 최초의 현대신문입니다.
  • 서재필 박사님은 유한양행의 전신인 유한주식회사의 초대사장이십니다. 유일한 박사님이 귀국할 때 서재필 박사님의 큰따님이 디자인을 해 준 것이 지금의 유한양행의 로고가 되었습니다.
  • 서재필 박사님의 건의로 청나라 사신을 환대하던 문을 허물고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 서재필 박사님은 배재학당 (지금의 배재고등학교)에서 토론수업을 하셨는데요 그것이 만민공동회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안창호, 이승만, 김규식 등이 나옵니다. 나중에 이 분들이 미국에 유학을 하도록 격려하시죠. 그러니까 독립운동가를 정말 많이 키우셨습니다.
  • 서재필 박사님은 3.1운동이 나기 전에는 한국의 독립은 어렵다고 보셨다고 해요. 하지만 3.1운동 이후에 자신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독립자금으로 전재산을 다 투자하시게 됩니다.
  • 서재필 박사님이 박사님이 되신 것은 나중에 펜실베니아 의대에서 병리학 박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논문도 5편이 있습니다. 최초의 서양식 과학자인 것이죠.
  • 1945년에 해방이 된 이후에 미국의 하지 중장과 이승만 박사의 사이가 틀어지게 됩니다. 이 때 하지 중장이 서재필 박사님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고 하죠. 서재필 박사님이 일거에 거절합니다. 대신 초대 제헌국회에서는 의장으로 역할을 하십니다.
  • 서재필 박사님은 독립운동가들 조차도 분열해서 대립하는 것을 너무나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갑신정변과 갑오경장 등이 항상 수구파 때문에 무산되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서재필 박사님은 조선의 멸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나중에 왕족과 수구파는 모두 일본의 작위를 받고 친일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 20년 정도 살아보니 서재필 박사님이 한국을 보실 때 어떠셨을지 조금은 짐작이 가는 면이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일본 근현대사와 과학사에 대해서도 쓰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일본을 좋아해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한가지 깨달을 것이 일본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고 그래서 공부를 했어요. 우리는 일본에 대해 “왜구”의 침입, 임진왜란 그리고 삼국시대때 잠깐 말고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가장 하수가 하는 일입니다.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조곤조곤 반박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돌려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이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윽박지르기 밖에 안되더라구요.

일본을 알면 알수록 그들은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따로 쓰기로 하고요.

서재필 박사님은 미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두 딸이 있었는데 두 따님이 살아계실 때와 그 손자가 살아계실 때에는 서재필 박사님의 유해 봉환이 안되었습니다. 과거 조선왕조와의 악연을 아는 자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손자가 돌아가신 후에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되어 한국에서 갑신정변 때 처절하게 죽은 부인 광산 김씨와 합장을 했다고 합니다.

서재필 박사님께서 필라델피아에 사셨는데요 필라델피아에 있습니다.

그리고 서재필 기념재단에서 계속 서재필 박사님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 중 하나입니다. 서재필 박사님이 사신 기간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굴곡이 많았던 시기였고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필립 제이슨 박사님께서 평생 미워하는 조국을 위해 사셨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병리학적 업적도 중요한 것입니다.

커리어코칭 (13) – 좋은 질문을 하는 과학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바이오텍이나 빅파마에서 일을 하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잡을 얻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네트워킹도 해보고 잡인터뷰도 하게 됩니다. 이번에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인더스트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에 대해서 좀 나누려고 해요. 그것은 바로…

좋은 질문을 하는 과학자

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이오텍이 되었든 빅파마가 되었든 어찌 되었든간에 과학자입니다. 우리를 뽑는 이유도 과학자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결국 할 일도 과학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또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 실험을 하고 결과를 내는 것의 반복입니다. 기업은 특히 연구의 질 (Quality)가 대학교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과학자의 질을 따지게 됩니다. 좋은 대학교를 나왔느냐 이것도 보기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은 수준의 질문을 가졌느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학원에 들어가서 박사학위를 하고 포스닥을 하기까지 우리는 대부분 교수님으로 부터 연구과제를 받아서 발전을 시켰기 때문에 질문을 교수님으로부터 받은 내용만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을 구분해 냅니다. 저도 인터뷰를 할 때 즉 제가 연구원을 뽑을 때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어떤 실험을 할 때 얼마나 깊이 생각을 했는지를 물어봐요. 아주 깊이 들어갑니다. 그냥 한가지 실험을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그러다보면 어떤 사람은 금방 바닥이 드러나서 대답을 못하는 반면 좋은 과학자들은 아무리 파도 계속 답변이 돌아옵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함께 일을 해도 좋은 질문을 계속 던질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일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아주 높은 질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학부때 화학실험을 아주 싫어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이 제가 실험을 하는 걸 좀 신기하게 얘기해요. 어떻게 평생 실험을 하고 사느냐 이거죠. 그런데 제가 학부 때 실험을 싫어한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아서였어요. 짜여진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 저는 너무 싫었거든요. 오히려 대학원 때부터는 그게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평소에 실험을 할 때 그리고 인터뷰를 위해 45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실 때에도 여기에서 정말 내가 충분히 질문을 하고 일을 했는지를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여러분이 발표한 내용으로 물어볼 거에요. 그런데 결과만을 물어보지는 않죠. 그거야 나와있으니까요. 그 보다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지, 아니면 혹시 다른 결론을 알아보고 싶었는데 여력이 없어서 못한 건 없는지? 이런 것도 물어봅니다. 당연하죠. 인터뷰 하는 사람들도 나름 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척하면 알거든요.

어디에 가든지 항상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기술혁신 (Disruptive Innovation)을 하려고 하면 기존의 사고체계를 무너뜨리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해요.

100명 중 99명이 안된다고 하는 것에 우리는 진정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바로 큰 신약개발의 기회가 오거든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연구자를 지금 우리는 찾고 있습니다. 좋은 과학자는 어디에서든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연말에도 실험실에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위해 애쓰시는 과학자 여러분을 통해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감사를 드립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mailto:BostonDrLim@gmail.com으로 연락을 주시면 답장을 드리겠습니다.

BIOTECH (8) – Wave Life Sciences의 RNA Editing 신약 가능성에 GSK가 투자하다.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어제 새로운 RNA 치료제와 관련한 아주 흥미로운 News가 있어서 그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News는 이렇습니다.

“GSK가 Wave Life Sciences의 RNA Editing 프로그램에 $170M (2,200억원) 선지급금 및 최대 $3.3B (4조3천억원)까지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내용이 어제 Wave Life Sciences에서 투자자들에게 발표한 자료인데요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2025년까지 현금이 확보되었다“는 점입니다. RNA Editing 약물 중 가장 앞선 약물은 WVE-006인데 2023년에 임상진입을 할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임상2상까지는 충분히 자금이 확보가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RNA Editing 기술로 임상시험단계로 진입한 약물은 없기 때문에 WVE-006약물이 최초의 약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https://ir.wavelifesciences.com/static-files/5ae3a191-9cb4-4736-b404-d8a2504435b2

Wave Life Sciences는 Boston 지역에 있는 Biotech 회사이고요 일본의 동경과학대학교의 와다 다케시 (Takeshi Wada)교수의 소위 “Stereopure (순수이성질체) Oligonucleotide“기술을 실현하기 위해 2012년에 설립된 NASDAQ 상장회사입니다. 지난 10년간 Stereopure Oligonucleotide기술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는 회사이고요 최근에는 RNA Editing 분야로도 확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회사에서는 이 기술을 PRISM 기술이라고 부르고요 와다교수는 본래 PS Stereopure Oligonucleotide를 개발했는데 Wave Life Sciences는 PN으로 확장을 해서 중추신경계 (CNS, Central Nervous System)과 간 (Liver) 에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된다고 동물실험을 통해서 증명을 했고 과학논문 (Peer-review journals)에도 계속해서 논문을 내고 있습니다. Peer-review라는 것은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서로 검증을 한 논문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논문을 투고하게 되면 Peer-review라는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치는데요 이 검증과정을 통해서 Data가 얼마나 제대로 해석이 되었고 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한 후에 논문이 나오게 됩니다.

Wave의 RNA Editing 기술은 mRNA의 특정 염기가 변형된 유전자질환을 고치기 위해서 Adenosine (A)의 부분을 Inosine (I)으로 변형시켜서 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이고 A를 I로 바꾸는 “PN Stereopure Oligonucleotide”를 “AIMer“라고 부릅니다.

AIMer를 개발하기 위해서 10년간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고요 이미 cGMP 공장도 자체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위한 준비는 이미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Wave가 그동안 Suvodirsen이라는 DMD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가 2019년에 실패를 해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RNA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의 운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유명해진 Ionis Pharmaceuticals나 Alnylam Pharmaceuticals도 이미 그런 어려움을 수십년간 겪었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하는 회사들이 이런 실패를 겪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COVID-19 기간동안에 극복을 하고 3년만에 다시 이런 새로운 딜을 하는데까지 엄청난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Wave에는 한국인 과학자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WVE-006은 전임상연구 (IND-enabling studies)에서 2023년에 임상시험신청을 할 수 있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1. NSG-PiZ 쥐실험에서 AAT 단백질이 증가되는 것을 확인했고,
  2. 쥐의 AAT 단백질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3. AAT 단백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약물 이외에도 Wave의 PRISM기술을 이용한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 3개가 있고 전임상 중인 약물도 2개가 있습니다. 모두 중추신경계 치료제입니다. 이들 모두가 AIMer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성공은 모두의 시너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RNA Editing은 세계 최초의 임상시험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High Risk High Return의 혁신 과학기술 투자가 될 것입니다. 2023년에 Wave에서 정말 좋은 뉴스가 계속 나오기를 바랍니다.

Unretirement (14) – Dr. Stanley Crooke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은퇴없는 삶 (Unretirement)에 대해서 그동안 쓴 글을 보니까 주로 한국인에 대한 얘기를 쓴 것 같아서 주위에 제가 존경하는 미국인에 대해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위에 보이는 분은 스탠리 크룩 (Stanley T. Crooke) 박사님입니다. RNA 치료제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시고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Ionis Pharmaceuticals의 창업자 (Founder)이시고 CEO셨고 이사회장 (Chairman of the Board of Directors)이셨습니다. 75세까지 현직에 계시다가 지금은 Ionis를 비롯한 여러 바이오텍의 이사회 임원으로 일하시면서 또한 n-Lorem Foundation이라고 하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이 비영리단체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이 분은 어린시절이 아주 불우한 분이세요. 어머니가 15세에 낳아서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키웠습니다. 몇년후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고 돌아오셨는데 어머니 약값을 위해 어려서부터 신문팔이를 했다고 해요. 그 가족 중에서 고등학교를 처음 졸업하고 또 박사학위까지 하는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죠.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약학 공부를 하고 MD-PhD를 마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신약개발을 하는 일을 하시게 됩니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15년간을 일을 하셨는데요 대기업이 갖는 장점도 많았지만 한계도 느끼시게 됩니다. 주로 기술혁신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RNA 회사를 창업하시게 되는데요 그 회사가 지금의 Ionis Pharmaceuticals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안티센스 (Antisense Oligonucleotide)라는 20~25개 뉴클레오타이드 약물을 만들어서 mRNA (메신저 RNA)를 파괴하게 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물이었습니다. 1989년에 회사를 창업을 했는데 엄청난 실패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뉴클레오사이드 변형화학을 발전시키고 약리학, 독성학, 생산공정 등을 발전시켜서 결국 2010년대부터 비로소 약이 제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작년에 Ionis Pharmaceuticals의 정규업무는 그만 두셨고요 현재는 n-Lorem Foundation의 일에 집중하시고 계세요.

이 분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환자들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Sick people depend on us.)”

이걸 항상 생각하셨다고 해요. 저도 지금까지 이 생각을 하고 살면서 힘들 때마다 극복을 했는데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더라구요.

글쎄요. 저도 계속 노력을 하다보면 이분처럼 아니 이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Ionis Pharmaceuticals 파이프라인을 보니까 32개 약물이 아주 중요한 임상시험 단계에 있고 승인된 약물도 많아요. 창업한지 33년이 되었으니까 지금 모더나가 20년이 더 지나면 이 정도가 되는군요.

“환자들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Sick people depend on us.)”

꼭 명심하겠습니다.

BOSTONIAN (8) – American Chemical Society – Heroes of Chemistry Award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연말이 되면 항상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지요. 저도 매년 돌아보게 되는데요 지난 2년은 저로서는 가장 힘들고 보람된 해가 아니었나하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일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서 하루 하루 버티다시피 2년을 살았는데 그래서였을까요?

이번 9월말에 모더나 코로나백신 SpikeVax 개발에 대한 공로로 미국화학회 (ACS, American Chemical Society) 에서 주는 화학의 영웅 (Heroes of Chemistry)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Pfizer는 Paxlovid라는 코로나치료제로 그리고 Merck는 Molnupiravir라는 코로나치료제로 상을 받았고요 이외에 Dow, Eli Lilly 그리고 3M이 상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상을 받게 되어 나름 뜻깊은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새로운 일을 위해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정진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BIOTECH (7) – Moderna Individualized Neoantigen Therapy Phase 2b Results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오늘 드디어 기다리던 Moderna의 INT (Individualized Neoantigen Therapy) 임상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상 2b상 결과인데 임상시험 대조는 아래와 같이 Merck의 Keytruda라는 면역항암제에 대한 대조 시험이었습니다.

(1) Keytruda

(2) Keytruda + mRNA-4157

이렇게 두가지 대조실험을 했는데 (1) 번의 환자에 비해 (2) 번의 환자에서 “암재발없는 생존비율 (RFS, Recurrence Free Survaival)”이 44% 높게 나왔습니다. 이번에 시험한 대상은 피부암인 흑색종 3기와 4기 (Stage III/IV Melanoma) 환자입니다. 흑색종에 대해서는 아래 그림을 보시면 좀 아실 수 있는데 흑색종 3기는 림프선 (Lymph Node)에 전이가 되는 암이고 흑색종 4기는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소위 말기암입니다. 흑색종은 암 중에서도 치료가 어려운 암인데 그 중에서 말기에 해당하는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이번 임상시험은 157명의 흑색종 3기와 4기 환자들에 대해서 수술 후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입니다. 2023년부터 임상 3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INT는 암환자의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채취해서 “암세포에 특이한 변형 (Neoepitope)”를 찾아서 그에 맞는 항원을 넣어주는 것입니다. 타 경쟁사의 경우 약 20가지 Neoepitope를 넣는데 저희의 경우는 34가지의 Neoepitope를 넣습니다.

암백신의 생산공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자 개개인의 몸에서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얻은 후
  2. 암세포와 암세포에 특이한 변형을 찾아주기 위해 유전자 Sequencing을 하고
  3. 개개인의 INT를 별도로 만들어서
  4. 환자의 몸에 주사하게 됩니다.

INT 에 사용하는 전달방식은 Covid-19 Vaccine 전달방식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미 검증이 된 전달방식입니다.

Keytruda는 Merck의 PD-1 억제제라는 면역항암제이며 현재 면역항암제 중에서 가장 큰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으며 15가지 이상의 암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10월에 Merck와 Moderna는 INT 에 대한 계약을 임상 비용 및 상용화 시 이익 비율을 50-50의 비율로 조정하였고 Moderna는 $250M (3,200억원) 을 Merck로 부터 받았습니다.

INT는 지난 수십년간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였고 아직 상용화 약물이 없는 분야입니다. 암으로 고생하는 가족들을 겪어본 저로서는 이 INT 개발에 대한 기대와 노력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꼭 성공하길 기대합니다.

참고자료: https://www.modernatx.com/media-center/all-media/blogs/fight-against-cancer

메신저 RNA: DNA와 단백질의 메신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DNA (Deoxyribonucleic Acid)와 단백질에 대해서는 모두들 익히 들어서 잘 아시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이렇죠. DNA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고 단백질은 유전정보를 통해 만들어진 최종물질인데 우리 몸속에서 중요한 생리현상에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에너지를 만들고 중요한 대사작용을 하고 우리 근육을 형성하고 등등, 을 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이 바로 단백질입니다. 그러니까 DNA에서 단백질까지 만드는 과정이 우리 생명을 잘 유지하고 건강하게 하는데 필요한 생리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NA (리보핵산, Ribonucleic Acid)는 바로 이 둘을 이어주는 메신저입니다. 그래서 메신저 RNA (mRNA, Messenger RNA)라고 하지요. mRNA는 DNA에 비해서 안정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보통 반감기가 20분 정도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mRNA는 DNA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서 단백질을 만들고 곧바로 몸속에서 분해가 되는것입니다. 말하자면 스파이가 지령을 받고 지령받은 종이를 불태우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글을 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