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투자 (6) – 인플레이션 국채 “STIP”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노잼투자를 하는 중에 계속 주식형 ETF와 뮤추얼펀드만 말씀을 드렸죠? 제가 아직 사실 채권투자를 통해 재미를 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STIP이라고 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 (TIPS)에 투자하는 ETF를 추천하는데요. 제가 아직까지는 채권에 적극적이지 않기도 하고 그냥 VOO와 SCHD 로 잘 나눠놓으면 되는 것 같아서 많이 하지는 않는데요 나중에 현금이 필요한 시점에는 STIP을 현금 대용으로 투자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채권이기 때문에 금액이 막 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5년 이내에 현금을 사용해야 한다면 여기에 투자해 놓는 것이 방법이 될 것 같아요.

Unretirement (10) – 항상 웃자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나이가 든 분들은 표정이 굳어져 가는 것 같아요. 웃으면 더 좋을텐데 잔뜩 우거지상으로 있으면 더욱 늙어보이는 것 같습니다. 웃으면 앤돌핀이 나와서 우리 몸을 더 가볍게 건강하게 만들어주고요 또 우리의 만남에도 축복을 주죠.

자신을 항상 돌아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항상 거울을 보실 때 자신에게 활짝 웃어주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배우자에게도 자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즐겁게 해 주세요.

유머감각이 생기면 좋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니까요.

성경에서도 주님은 나의 기쁨이시라고 했어요. 기쁜 사람은 항상 웃는 모습을 하게 되지요.

우리의 삶 가운데 매일 매일이 항상 밝은 모습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물론 많지요. 하지만 나 자신보다는 나의 주님을 바라보고 더 활짝 웃을 수 있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오늘 저희회사의 QA Consultant와 잠깐 얘기를 나눴어요. 이 분과 저는 연배가 같기도 하지만 서로 농담을 많이 하는 사이거든요. Fat joke지만요. 꼭 얼굴 보고 농담을 하지는 않고 Messaging으로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일로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있을 수 있지만요 이렇게 일단 서로의 마음을 풀어놓으면 일도 서로 도와주게 되더라구요. 자기 딸이 멀리서 추수감사절을 맞으러 왔다고 합니다. 이 분은 싱글대디에요. 참 대단한 분이죠.

딸에 대한 마음은 정말 끔찍한 것 같아요.

딸 가진 아빠의 마음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 갑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덕담을 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격려의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할 수 있어요.

이런 여유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낡아지지 않고 아름답게 나이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모든 분들 추수감사절이 다가옵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와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Bucket List (9) – 드럼 배우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성가대도 하고 중창단 생활도 제법 해서 노래는 좀 하는 편인데 악기는 다룰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악기를 하나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뭘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 봤는데요.

드럼이 생각이 났어요.

보스턴에는 유명한 Berkeley College of Music이라는 실용음악대학교가 있는데 드럼을 배우는 학생들도 많이 옵니다. 이 분들께 드럼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도 드럼은 사서 칠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제가 박자감도 좀 알고 드럼은 일단 손과 발이 계속 움직여야 하니까 나름 운동도 되고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지 않을까 해요. 저는 미국 교회를 다니는데 드럼 치는 분이 많이 계세요. 참 멋져 보이더라구요.

젊은 분들 뿐만 아니라 70대 이상되신 분들도 드럼을 치시는 분이 계시고 찬양예배를 드릴 때 드럼을 치시더라구요.

드럼이라는 악기를 배우면 사람들과 밴드 같은 것도 함께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있어요.

한국과학기술역사 (4) – 이휘소 박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인들이라면 이휘소 박사님에 대해서 존함은 들어봤겠지만 이 분에 대해서는 거의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노벨상 얘기는 많이 들어도 어떤 사람이 어떤 업적으로 받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요. 미국에서는 그 해에 노벨상이 수상되면 자세히 그 업적에 대해 꽤 오랜동안 여러 언론을 통해 나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영어 이름은 Benjamin Whisoh Lee입니다.

이휘소 박사님에 대해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연구에 동조하다가 피살된 것으로 다들 짐작하지만 강주상 교수님의 “이휘소평전”에서는 이휘소 박사님이 군사정권에 매우 반대하셔서 어떤 협조도 하지 않으신 것으로 나옵니다.

저는 이 분의 업적에 대해 제가 조사한 대로 나누려고 합니다.

이휘소 박사님은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셔서 경기중고등학교를 나오시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재직중 도미하셔서 마이애미 대학교 학사, 피츠버그 대학교 석사 및 펜실베니아 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전공은 입자물리학이고 Higgs boson, Higgs mechanism이 이휘소 박사님으로 부터 기인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연구내용은 Guage Theory와 Charm Quark에 대한 연구입니다.

Guage Theory는 1964년 “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셔서 “Higgs Mechanism”으로 이어지도록 기여를 하셨습니다. 참고로 Higgs Mechanism은 2013년 Peter Higgs와 François Englert가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업적입니다. 또한 199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Gerardus ‘t Hooft의 연구방향이 바뀌도록 조언했다고 하고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Hugh David Politzer는 수상소감에서 당시 입자물리학자 커뮤니티는 Benjamin Lee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언급을 했을 정도입니다.

Charm Quark는 1975년 이 입자의 질량을 계산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1977년에는 Cosmology에 대한 무거운 Neutrino 질량에 대한 lower bound에 대한 논문을 내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이 분의 연구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미국 일리노이주 고속도로에서 대형화물차가 중앙선을 넘어와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것은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 때가 1977년 6월 16일이었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의 마지막 유고 논문은 1977년 3월말에 제출되어 9월에 출간되었습니다.

1960년대-70년대는 대한민국은 아직 무슨 연구를 할 여건이 되어 있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외국 유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죠. 이휘소 박사님께서 오랜동안 살아계셨더라면 더 많은 과학적 공헌을 하셨을텐데 참 아쉽네요. 아래는 이휘소 박사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3) – 이태규 박사와 리승기 박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화학을 전공한 이유로 일단 화학자들에 대해 먼저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위에 보이는 빛바랜 사진은 이태규 교수님께서 KAIST 화학과 석좌교수로 88세 생신 기념으로 출간한 이태규 박사전기 (1990년)에 있는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우장춘 박사님, 이태규 교수님, 리승기 교수님이십니다).

일제시대에 조선인에게 과학, 공학을 가르치는 것은 극히 규제를 하고 있어서 당시 제대로 대학교육을 받으려면 일본에 있는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당시 조선에 있던 대학에서는 주로 사범대학이 있었을 뿐 4년제 대학으로 정식 대학교육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세분은 일본 교토에서 함께 계셨는데요. 당시에 이태규 교수님은 교토제국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시고 나중에 프린스턴 대학교에 양자물리학을 배우기 위해 다시 도미하셨습니다. 해방후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교로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태규 교수님은 초대 문리대 학장으로 부임하셔서 젊은 교수님들을 유치하셨는데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안 문제로 큰 파동을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교수들은 사직하거나 월북을 하게 됩니다. 이태규 교수님께서 이 때 크게 좌절하시고 미국 유타대학교로 오셔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KAIST (당시는 한국과학원 KAIS) 설립을 위해 귀국하셔서 KAIST 화학과를 만드셨습니다. 이태규 교수님은 Eyring-Lee Theory라는 새로운 양자물리화학 이론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리승기 교수님은 교토제국대학교 공업화학과에서 고분자화학을 전공하시고 그동안 비날론 (Vinalon – Vinylon이라고도 함)이라는 새로운 수용성 고분자를 개발하셔서 이 공로로 교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셨습니다. 리승기 교수님도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으로 부임하셨으나 이태규 교수님과 마찬가지로 서울대학교 설치안 문제로 파동을 겪으셨고 한국전쟁 때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을 때 김일성의 친서에 설득당해서 북한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1950년대 남한에는 변변한 화학공업시설이 없었던 반면에 북한에는 함경남도 흥남에 일본자본에 의해 설립된 화학공장이 있어서 여기에서 합성섬유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비날론 공장이 아직도 북한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어 생산된다고 합니다.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비극에 의해 비록 이태규 교수님은 남한으로 리승기 교수님은 북한으로 가시게 되었지만 두 분 모두 해방 초기 유년기에 있던 남북한의 화학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화 기틀을 잡는데 크게 기여하신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분과 함께 우장춘 교수님도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신 관계로 일본어를 사용하시고 일본식 습관을 사용하는 것이 초기에 많은 오해를 불러온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대학교 설치안 파동을 겪을 때 이태규 교수님과 리승기 교수님 모두그런 문제로 동료 교수들 (사실 젊은 교수들) 로 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역사 (2) – 이삼평과 심당길의 일본도자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고려청자, 이조백자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도자기 기술은 예로부터 익히 알려져 있었는데요 기록이 없다보니 할 수 없이 일본에 포로로 건너가게 된 두 도자기 장인에 대해 소개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위에 사진인 2014년에 일본에 포로로 건너가 일본 도자기의 꽃을 피우신 이삼평 선생님심당길 선생님의 전시회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열렸다는 포스터를 옮겨온 것입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립니다.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두번의 전쟁을 통해 일본에서는 조선의 도공을 많이 납치해서 일본으로 잡아가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분들의 삶이 굉장히 고되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시겠지만 실제로 이 분들을 데려간 일본에서의 대접은 달랐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로 인해 양인에 머물렀지만 일본에서는 장인으로 모셔서 일반인에게 없는 성을 부여하고 또한 지금은 사당까지 만들어서 지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삼평 선생님은 임진왜란 때에 왜군의 조선도공(陶工) 납치계획에 따라 사가(佐賀) 나베시마번(鍋島藩)에 의하여 1594년 또는 1596년경에 일본에 끌려가, 처음에는 가라쓰(唐津) 근방에 상륙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쿠고가라쓰(多久古唐津)는 바로 이삼평 선생님에 의해서 시작된 가라쓰도자기입니다. 그 뒤 아리타 조하쿠천(上白川)의 아스미산(泉山)에서 백자광(白磁礦)을 발견하였고, 1605년경 이곳에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열었는데 이것이 일본자기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삼평 선생님은 일가족 18명과 함께 이곳에 이사하여 도향(陶鄕) 아리타의 새 역사를 열었고, 이후 30여년 안에 이곳에는 수많은 도공들이 집결하여 번성을 이루었습니다. 이때까지 아리타는 두메산골로 1590년대의 지도에는 지명이 전혀 나와 있지 않던 곳이었으나 1680년대의 지도에는 아리타 등의 지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체로 이삼평과 함께 납치되었던 도공은 155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리타명산(有田皿山)의 지배권을 확립함으로써 이곳은 대도향(大陶鄕)으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에도(江戶) 후기로 오면 이 아리타·이마리 도자기는 일본 여러 지방의 자기 중 단연 제일로 손꼽히게 발전하였고 이마리항(港)을 통하여 널리 수출되었습니다.

아리타도자기의 특징은 아리타 내산제요(內山諸窯)와 외산제요(外山諸窯)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산의 제요는 이삼평 선생님이 발견한 백자광 아스미산의 도석(陶石)과 시라카와산(白川山)의 유석(釉石)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삼평선생님의 지휘 아래 번청(藩廳)이나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의 주문에 의한 상등품의 제작에 주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주로 개물류(蓋物類), 도발극상(兜鉢極上)의 침향호류(沈香壺類), 회석상(會席床)의 식기류, 세공(細工)의 향로류(香爐類) 등이 제작되었습니다.

초기 이마리는 단순한 조선식 백자이며, 고(古)이마리는 아리타 백자로 바뀐 일본 최초의 백자였습니다. 또, 아리타 외산제요는 지주나 상인들의 일상 식기류를 주로 구웠고, 제품의 대부분은 청자·청화백자·백자 등으로 서민적입니다. 또한 대발류(大鉢類)로부터 유합(油盒)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을 가진 것으로 초문(草文) 등을 그린 자유분방한 작품이 많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아리타·이마리 도자기는 기계화의 근대화된 기법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현재 크고작은 백수십 개의 가마가 설치되어 최대의 도향으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도조(陶祖) 이삼평 선생님의 기념비는 아리타마을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도산신사(陶山神社)의 뒷산에 위치하여 아리타도업(有田陶業)의 장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한 심당길 님의 후손은 지금도 “심수관 (沈壽官)“이라는 이름으로 15대째 일본의 도기 장인 집안을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심당길선생님은 정유재란 때 시마즈요시히로(島津義弘)에 의해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가셨고 일본 사스마도기(薩摩燒)를 개창하셨습니다.

1598년 12월, 시마즈요시히로에 의해 남원 등지에서 심당길과 박평의를 비롯하여 40여인이 피랍되어 가고시마현 구시기노시마하라(串木野島平)에 상륙하였습니다. 이 가운데는 심당길(沈當吉)은 청송 심씨로 남원근교에서 피랍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족은 1603년 구시기노(串木野)로부터 현재의 히오키군 히가시 이치키죠 미야마(日置郡 東市 來町 美山) 나에시로가(苗代川)에 이주하여 나에시로가와(苗代川燒)를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18년 후 심당길은 박평의와 함께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를 발굴하여 오늘날의 사쓰마도기를 개창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흙은 조선의 흙과 달라서 이 백토를 발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사쓰마번주는 이들을 사무라이급(士班)으로 예우를 하였으며, 이들이 구워낸 도자기에 사쓰마의 번명(藩名)을 붙여 “사쓰마도기(薩摩燒)”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 후 메이지유신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조선도자기의 흐름과 기예를 계승·발전시켜 나갔습니다. 1873년 제12대 심수관은 오스트리아만국박람회에 대화병 한쌍을 출품하여 서구세계에 사쓰마도기의 수출이 시작되어 ‘사쓰마웨어’라는 이름은 일본도자기의 대명사가 될만큼 유명해졌습니다. 제14대 심수관은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遠太郞)가 쓴 『고향을 잊을 수가 없소이다』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1988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명예총영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되었을 때 조선 도공과 포로를 귀국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조선에 돌아가면 여러 어려움을 받을 수 밖에 없지만 일본에서는 사무라이급의 대접을 받고 있어서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도자기 기술은 무기화학재료를 이용한 중요한 기술이며 이 도자기에서 사용한 화로는 나중에 제철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도공들도 기록이 있으면 좋겠지만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Bucket List (8) – Photo-microscopy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다보면 현미경 사진을 찍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 현미경으로 보는 미세한 세계가 참 예술이거든요. 저의 경우는 Crystallography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미세 결정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미세한 현미경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작업하는 것을 Photo-Microscopy라고 해요.

Nikon에서는 매년 Small World Contest를 하는데요 올해의 수상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 아름답죠? 저만 아름다운가요?

저는 이런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Photo-Microscopy를 하시는 분이 계시더라구요.

예를 들면 김한겸 현미경 사진작가님이 YTN 사이언드에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참 하고 싶은게 많죠? 저는 태생이 쉬지 못하는 성격이 아닌가 싶어요.

당뇨운동사례 – 걷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당뇨인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의사선생님들이 권하는 운동이 “걷는 것”인데요 어찌하다보니 비교적 늦게 말씀을 드리게 되었네요.

아래 이상우님의 사례를 통해서 걷기로 당뇨를 극복한 이야기를 보여드립니다. 걷기를 할 때는 좀 빠른 경보하듯이 하셔야지 너무 느리게 하시면 아마 운동효과가 그리 높지는 않은 것 같아요.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 걷기 전에 준비운동을 맨손체조로 하시고요.
  • 동반자로 강아지와 함께 걸으셨네요.
  • 매운 음식의 초장에 설탕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팁이에요. 가능하면 초장같은 것은 드시지 않는게 좋아요. 저도 비빔밥을 먹을 때 초장은 섞지 않습니다.
  • 결심이 중요하다고 하셨죠 – 매일 거르지 않고 음식도 조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고요.

걷는 것은 가장 하기 쉬워 보이지만 매일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주위에서 걷기를 매일 하시는 분은 잘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추우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매일 걸으실 수 있는 분께는 걷기를 추천합니다.

혹시 매일 걷기가 어려우시거나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하시는 경우에는 Treadmill을 사서 집에서 걸으시는 것도 저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당뇨인 여러분께 걷기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저는 계단오르내리기를 매일 하고 있어서 특별히 걷지는 않습니다.

나의 운동 일지 (9) – 계단 오르내리기

노잼투자 (5) – FXAIX & FNILX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그동안은 너무 Vanguard 제품 위주로 말씀을 드린 것 같아서 Fidelity 제품도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보통 ETF는 세글자입니다. SPY, VOO 이런 식으로요.

Mutual fund는 5글자입니다. 오늘 소개할 FXAIX와 FNILX 같은게 뮤추얼펀드죠.

ETF와 Mutual Fund의 차이는 ETF는 정수로 주를 살 수 있는데 뮤추얼펀드는 분할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VOO를 사시고 남는 잔액으로 FXAIX나 FNILX를 사실 수 있는거죠.

FXAIX와 FNILX는 둘다 Fidelity의 S&P500 추종 Mutual fund에요. FXAIX의 expense ratio는 0.01%이고 FNILX의 expense ratio는 0.00%입니다. 그러니까 없다는 얘기죠.

둘다 S&P500 추종 뮤추얼펀드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어요.

당뇨운동사례 – 자전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당뇨인 여러분이 당뇨를 극복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시는게 중요합니다. 당뇨를 실제로 극복하신 분들은 모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계시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게 중요함을 강조하고 계세요.

아래의 글은 자전거타기를 통해서 당뇨를 극복하신 사례입니다. 저는 자전거 대신에 Rowing Machine을 하고 있지만 가끔 실내자전거를 타기도 합니다.

나의 운동일지 (7) – 로잉머신

한규식님은 마라톤도 하시고 자전거도 하시니까 초인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요. 어떤 극한의 운동을 한다는 측면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게속 하시고 있다는 것에 촛점을 맞추셨으면 해요. 이것 말고도 쉬운 것도 또 올릴 예정이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마라톤이나 자전거를 타는게 우리에게 꼭 안될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