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IAN (62) 보스턴에서 LAFC를 응원한 날 – 손흥민 풀타임 직관 후기

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미국 동부에서 산 지도 어언 2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흘러 과거를 돌아 보니 대한민국에서 산 기간과 미국에서 산 기간이 얼추 비등해 지는 지경에 이르른 듯 합니다. 제가 대한민국을 떠날 때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막 끝나고 몇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다들 아시다시피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4강까지 가서 전세계를 깜짝 놀래켰었죠. 전 그걸 독일에 가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우리가 마치 일본이나 중국 등에 대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과 같은 나라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는데요 우리 대한민국 팀이 이 나라들을 보기좋게 이겨주고 올라와서 자신들에게 졌기 때문에 아주 기세가 등등했죠. 그래서 저를 만났던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02년 황금세대 중 박지성 선수가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을 꿰차고 아주 훌륭하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다시 월드컵 16강을 달성 시켜 주었고 이제는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이 그 뒤를 이어 대한민국의 황금세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2002년에 우리의 영원한 리베로였던 홍명보 선수는 지금 월드컵 감독이죠.

손흥민 선수는 대한민국 대표 주장으로 있으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예선탈락 시켰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의 주장으로서 오랜 기간 활약을 하고 얼마 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LAFC로 이적을 했습니다. 이적한 지 두번째 경기가 바로 제가 있는 보스턴팀인 New England Rangers와의 원정 2차전이었습니다.

이번 원정 2차전에 저희 온가족이 함께 갔는데요 친정팀을 응원해야 했겠지만 (?) 손흥민 선수 덕분에 (?) LAFC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후반전의 손흥민 선수를 가까이 보기 위해서 후반전 뉴잉글랜드팀 골대 쪽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아-주 재미있게 경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2-0 LAFC의 완벽한 승리였죠. 이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는 2개의 어시스트를 해서 Man of the game이 되었습니다.

이 날 정말 많은 한국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관중석을 빙 둘러서 태극기가 곳곳에 걸리고 여기가 과연 뉴잉글랜드 홈구장이 맞나 할 정도로 LAFC를 응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아니 사실 손흥민 선수를 응원한 것이죠.

사실 이 날 뉴잉글랜드팀이 너무 못하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거의 반코트 처럼 뉴잉글랜드 진영에서 놀 정도였거든요. 제 곁에 있는 뉴잉글랜드 팬이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계속 설명을 해 주는데 그러는 거에요. 뉴잉글랜드는 골대까지는 잘 가는데 그 다음에 작전이 없다고요. 그리고 제 뒷편에 남미출신 뉴잉글랜드 팬이 응원을 겪하게 하는데 얼마나 흥분해서 응원하는지 배꼽 빠질 뻔했습니다.

집에서 Foxborough에 있는 Gillette Stadium까지는 1시간 40분 정도나 걸리는 꽤 장거리였는데요 그래도 즐겁게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여파로!!

9월 6일 뉴저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대 미국 친선 A매치 경기표를 또 온가족이 구매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대한민국’을 외칠 생각입니다.

대한 민국 화이팅!! 손흥민 선수와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발해를 꿈꾸며 (1) 발해사를 연구한 러시아 학자 V V Ponosov

08/22/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을 학교에 차로 데려가려고 휴가를 냈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돌아오는 딸의 비행기가 overbooking되어서 하루 더 머물게 되었고 본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은 밤 늦게 집에 왔기 때문에 하루 더 쉬고 가기로 해서 오늘은 좀 개인시간이 생겼습니다. 제 회사는 8월 마지막 주에 하계 휴가 (Summer shutdown)이 있는데 마침 다음주 월요일인 9월 1일도 노동절이어서 꽤 긴 시간동안 휴가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에 아내와 Canada Banff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4년에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를 발표한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기억하는 한 발해라는 역사에 대한 노래 중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최초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노래는 지금으로 부터 31년전이나 되는 오래전에 발표된 노래인데 이 당시에 남북의 긴장 상황이 아주 격화되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로 ‘발해’를 얘기한 것은 참 절묘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노래는 7차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서태지님이 발해로 2행시를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발칙한 놈들, 해동성국은 우리 것이여“.

서태지는 왜 노동당사 앞에서 발해를 꿈꿨나 [강응천의 역사 오디세이] <3> 간도와 한국사 – 프레시안 9/3/2013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이다. 그들은 이 노래를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불렀다. 만주를 지배하던 발해를 왜 노동당사 앞에서 꿈꾸었을까? 발해는 만주와 북한 지역에 걸쳐 있던 왕조이기 때문에 남북한이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하면 대한민국과 발해는 아무 관련이 없다. 즉 발해는 남북통일을 전제할 때에만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역사다.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전에, 거창한 동아시아연합을 전망하기 전에 통일부터 꿈꾸라.

어제 오늘 인터넷을 유영하다가 우연히 발해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는데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세운 나라이지만 이 나라는 북한지역, 중국지역, 러시아 지역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발해가 거란에 멸망한 이후에는 몽골지역까지 발해 유민이 이주했다는 것이 알려져서 몽골에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울 때 만주와 조선이 하나였다는 만선사관(滿鮮史觀) 을 내세우기 위해 발해 역사 연구를 했다고 해서 결국 발해 역사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6개국에서 진행되는 아주 큰 연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중 러시아의 연구에 대한 기사가 있어서 좀 나누려고 합니다. 강인욱 교수님의 글인데 강인욱 교수님은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시면서 발해 연구를 하시는 교수이십니다.

러시아 학자가 찾은 발해, 일본과 중국은 왜 은폐했나 – 중앙일보 5/19/2022

발해를 대표하는 유적인 상경성은 755년에 발해 3대왕 대흠무(문왕)가 건설하여 상경용천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이후 잠시 수도를 옮긴 시간을 빼면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수도 역할을 했다.

발해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들어 다시 불붙었고, 그 중심에 하얼빈이 있었다.,,, 당시 하얼빈에 모여든 러시아인들은 ‘동성문물연구회’를 조직해 발해 연구를 최초로 시작했다.,,동성문물연구회에서 발해를 담당한 사람은 러시아 우랄 지역 출신이었던 V V 포노소프(1899~1975)였다. 포노소프는 일본의 만주침략이 한창이던 1931년에 발해 상경성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조사를 벌였다. 무국적자로 보호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면서 비적들이 횡행하는 이 지역에 목숨을 걸고 갔던 그는 상경성의 주요 지점을 발굴하고 전체 평면도를 정밀하게 작성했다. 발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발굴이었다.

포노소프는 최후까지 남았던 하얼빈의 러시아 고고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 건국 후 12년이나 지난 1961년까지 헤이룽장성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하얼빈 러시아 학자들이 조사했던 유적에 대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중국 학자들에게 전달했다. 40년 가까운 시간을 만주사 연구에 바쳤던 그는 62세가 돼서야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이미 소련 지역이 된 그의 고향 우랄 산맥 지역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호주에서 여생을 보내며 고고학 연구를 이어 갔다.

복잡한 역사 분쟁 속에서 한국의 입장을 유일하게 옹호하는 측은 러시아였다. 지금도 러시아의 수많은 발해유적이 한국인의 손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강인욱 교수님의 2014년 논문이 중앙일보의 기사와 관련된 자료 중 하나입니다. 발해사에 대한 연구는 항상 소중한 발해사 연구자 분들의 오랜 노력과 고고학적 발굴로 이루어진 자료로서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스토야킨 막심이라는 러시아 출신 발해사 연구자께서 러시아의 발해사 연구에 대해 자료를 발표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분은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시고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의 역사와 선조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게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발해사는 정말 소중한 대한민국의 역사 중 일부이고 많은 주변 나라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그 실체를 밝혀낼수록 우리에게 그리고 남북한의 평화통일 노력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해를 꿈꾸며 이루어가며….

내가 쓰는 나의 삶 (71) 똑똑한 바보의 넋두리

8/19/2025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몇일 동안 글을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이번에는 이 글을 쓸까, 저 글을 쓸까 이리저리 궁리만 하다가 정작 글은 하나도 쓰지 않은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실행에 옮길 뿐만 아니라 그나마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저를 적잖이 당황시키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쓰려고 했던 것들과 잡다했던 많은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는 차원에서 글을 몇줄 남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블로그 한 꼭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똑똑한 바보‘입니다. 머리로 순간 순간 지나가는 생각은 많은 것 같은데 그 생각을 잡아내지 못하고 그냥 흘려 지나갈 뿐만 아니라 그걸 어디에다 적어 놓지도 않고 있으니 이 게으름을 어찌해야 할까요.

먼저 글쓰기에 대해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소위 ‘작가적 삶’에 대한 생각입니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건 아마도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책을 사는 걸 좋아할 뿐 아니라 책을 읽는 걸 좋아하니까요. 제 삶 자체가 항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과학자의 삶도 읽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죠. 제가 책을 읽는 방식이 크게 두가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책을 여러권 읽는 다독이고 또 하나는 한 책을 여러번 읽는 다독입니다. 소설, 철학자의 책 (감히 철학책을 읽을 수준은 아직 안된다고 생각해서), 역사에 대한 책, 다른 문화에 대한 책 (일본, 예술, 음악 등), 투자에 대한 책 등을 읽을 때에는 주로 전자의 방식인 책을 여러권 읽는 다독을 많이 했습니다. 반면에 제가 전공을 하는 과학 분야의 책은 후자의 방식, 즉 한권의 책을 여러번 읽는 다독으로 얻은 지식을 습득해서 지금까지 응용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최근에 불현듯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은 제가 아직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뜻을 함유합니다.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 몇가지 방법이 있더군요. 먼저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뭐 자기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계속 읽는 전작주의로 읽는 방식도 있겠고 아니면 특정 분야의 소설을 읽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많이 읽어야 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합니다. 둘째는 필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몰랐던 사실인데 알려진 소설가들이 필사를 통해서 오랜 기간 자신의 필력이 생기기까지 노력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에게 좀 유레카 순간이기도 했는데 필사를 시작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고 대신 책을 읽을 때 필사를 하듯이 아주 정독해서 읽게 된 점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기는 합니다. 문해력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던 터라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한권의 소설을 여러번 밑줄을 그어 가면서 아주 정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편한 편의점2를 이런 식으로 읽고 있습니다. 대략 1주일에 한번씩 정독을 하게 된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읽다 보니 그냥 스윽 읽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김호연 작가님의 디테일이 조금씩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셋째는 습작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전작 장편소설 ‘토지’를 쓰신 박경리님은 토지를 쓰시기 전에 쓰신 책들이 습작이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하는군요. 박경리 작가님은 초기에는 단편을 주로 쓰시다가 나중에 장편으로 넘어오신 것 같은데 그런 수십년의 작업을 겸손하게 습작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이제 막 시작하려는 햇병아리 작가 지망생 (?)의 경우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습작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에는 Google doc에 타자를 쳤는데 그냥 자판을 두드려서는 글이 제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종이에 쓰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상이 글에 대해서 지난 몇주간 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오락가락했던 생각들입니다.

둘째는 공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배우는 자의 삶’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라고 하면 뭔가 학점 받아야 할 것 같고 학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이 부분이 저를 너무 옥죄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어쩌면 제게 공부는 인생에서 한 것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면서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군요. 가난한 고학생으로 너무 오랜 기간 공부를 배우려는 것보다는 장학금을 목표로 공부하는 이상하고도 희한한 공부를 너무 오랜기간 해오다 보니 이런 왜곡된 공부에 대한 태도가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마치 근력운동을 하는데 자세를 처음부터 잘못 잡고 오랜동안 운동을 한 탓에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 된 것 같은 것 말이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에게는 공부가 노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노동이었던 공부를 떠나 ‘배움이라는 여행 (배움여행)’을 좀 하고 싶은데 이게 쉽지가 않더라는 것을 여기에 이렇게 실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고 커리어도 거의 정점에 도달한 상태여서 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렇다면 보다 자유롭게 배움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배움여행을 함에 있어서 ‘전문성 추구’라는 완벽 편력을 여전히 두뇌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 보니 배움여행도 어느새 노동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말입니다. 얼마전에 Bucket List에 쓴 것 같이 내년에는 국어국문학과 학부과정을 시작해 볼 생각인데 덜컥 겁부터 나더라구요. 참 이게 뭐라고 말이죠. 그깟 학점 못받아도 누구 뭐라 할 사람 없고 이 공부 꼭해야 하는 것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선언한 것이면서도 여전히 공부 노동자의 관념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운동에 대한 것입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생각과 노력입니다.

저는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도 거의 반드시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때는 Gym membership을 끊고 열심히 거의 매일 다닌 적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병이 났는데 그 이후로 운동을 끊다시피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근력이 상당히 빠져 나간 앙상한 몸과 마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Gym membership은 끊었고 Home gym을 만들어서 매일 이곳에 가서 다시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도 처음에는 횟수에 집착한 나머지 무리한 (?) 노동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운동으로 복귀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단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요. 목표는 ‘오늘 할 수 있는데까지 한다’입니다. Rowing machine 타는 것도 다시 천천히 시작을 했고 Pull Up 을 위해 Dead hang과 Negative pull up 그리고 Inclined pull up을 하고 Goblin Squat과 Push Up을 느린 동작으로 근육이 가능한 한 최대로 이완하는 식으로 해서 근육이 붙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Weight band를 사서 발목에 달고 산책을 가는 걸 매일은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걸을 때 해 봤는데 천천히 걷더라도 하체에 근력이 조금은 더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 봅니다.

넷째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MBTI를 해 본적은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Power I‘인 건 확실합니다. 엄청 내성적이죠. 그렇다 보니 자꾸 동굴속으로 기어 들어가 동면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특히 컴퓨터와 핸드폰이 생기면서 더 용이하게 혼자만의 동굴에서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이걸 좀 깨려고 애를 쓰는 중인데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사람들과 자꾸 말하려고 노력하고 점심도 원래는 ‘혼밥러‘인데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끼어서 먹고 열심히 듣고 몇마디라도 말을 붙여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점심을 $15까지 제공해 주기 때문에 Doordash 를 통해서 점심을 사먹게 되는데요 사내 식당에서 삼삼오오 앉아서 먹는 문화가 이 회사에는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가능하면 섞여서 먹어 보려고 노오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인과학자들이 하는 모임이나 만남도 가지려고 애를 아주 많이 쓰고 있고요. 어떤 분들과는 띄엄띄엄이기는 해도 꾸준한 만남을 가지고 있는데요 얼마전에 아내가 이 부분을 건드려서 언성이 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그러더군요. 친구가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못나게 대꾸했죠. 친구가 없는게 아니라 노오력을 하려는데 지지를 못받는 거라구요. 참 이 부분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민자로 나이든다는 게 차암 많이 외로운 것 같아요. 나이를 잊고 누구나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죠. 제가 내성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말이 없는 건 또 아니에요.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말이 좀 많다고 해야할까요? 제 느낌에 좀 피곤한 스타일 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누구를 만나면 말은 곧잘 하는 편입니다. 단지 찾아가서 만나려는 그간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찾아가는 서비스 (?),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노오력이 필요한 것 뿐이죠. 그런데 찾아가려니 돈이 드네요. ㅎㅎ

다섯번째는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앞에 국어국문학과에 대한 얘기도 하기는 했지만 저는 언어 배우는 걸 잘하고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배운 언어공부에서 다 잘해 온 편이에요. 영어도 고등학교, 대학교 때 잘하는 편이었고,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는데 독일어도 고등학교 때 잘하는 편이었죠. 심지어 독일에 1년간 살면서 뭐 의사소통면에서는 아주 자알 했다고 자부합니다. 음하하. 그리고 한국에 살 적에 첫직장이었던 대기업에 1주일간 해외연수 프로그램이라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우리는 일본에 가는 것이었는데 이를 위해서 한달간 일본어 학원에 가서 일본어를 배웠거든요! 그때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일본에 가서는 단어가 딸려서 할 수 없이 영어를 주로 썼지만요 그래도 일본어는 좀 할 줄 압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서 제2외국어 시험을 통과하는게 졸업요건이어서 이 때 다시 일본어를 했습니다. 그 시험도 어렵지 않게 통과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대학때 중국어를 한학기 들었는데 이것도 잘했었어요. 자화자찬같지만 언어에 대해서는 좀 두려움 같은 게 없이 곧잘 따라합니다.

요즈음 책을 좋아하다보니 몇개 언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영어를 좀 문학적 관점에서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요. 말하자면 영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프랑스어에 대한 생각은 좀 오래 되었는데요. 시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에요. 인상주의가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다 보니 자연히 프랑스어를 할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Youtube에서 인상주의에 대한 영어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Curator들이 멋진 프랑스어로 말을 해 줍니다. 예를 들면 작품 제목을 영어로 하지 않고 프랑스어로 원래 제목을 불러주거든요. 어찌나 멋지던지요. 그랬는데 제가 Biotech, Healthcare에서 일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Global healthcare에 대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WHO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필수더군요. 흐음…아프리카에서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많다보니 프랑스어를 하면 장점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최근에 알베르 카뮈와 생떽쥐페리 등 프랑스 소설가 들의 책을 읽다보니 프랑스어를 더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영어원서로 일독을 했는데요 톨스토이가 러시아 백작이라서 귀족들의 삶을 묘사했는데 이 러시아 귀족들, 프랑스어로 대화합니다. 캬아. 그래서 전쟁과 평화에 12%인가가 프랑스어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래서 또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이러다 보니 러시아어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우선 톨스토이 때문이고요. 저는 톨스토이 전작주의를 꼭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어, 영어 그리고 러시아로 같은 작품을 여러번 읽는 게 목표에요. 톨스토이 단편집도 있기는 하지만 대작들은 소위 벽돌책이거든요. 러시아 작품 중 또 좋아하는 작품은 보리스 빠스체르나프의 닥터 지바고와 도스토 옙스키의 작품 들이에요. 최근에는 푸쉬킨의 시도 러시아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참 생각이 많죠?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입니다. 휴우.

마지막은 예술에 대한 것입니다. “예술가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생각이라고 일단 말해보죠.

인상주의로 대표되는 다양한 작품들은 제가 어디든 미술관에 갈 때마다 반드시 살펴보는 루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화가들의 삶이 궁금해 져서 찾아보고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온 것 처럼 제가 어려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얘기를 못 듣고 자라서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채 조기 포기를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A4용지에 조금이나마 그림을 펜으로 뎃생하는 시늉은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는데 창피를 당할 걸 잘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은 어디에 계신 걸까요.

또 하나는 악기에 대한 거에요. 참고로 전 노래는 잘하는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합창, 중창 하고 자라서 노래는 음정, 박자 잘 지키고 악보도 잘 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악기를 못 다룹니다. 이게 제 아픈 갈비뼈인데요. 악기를 배워보고 싶어요. 제가 출퇴근하면서 음악을 듣는데요. 그 선율을 느끼며 바깥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자면 제자신이 영화나 그림 속 어딘가에 있는 한 장면에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곤 합니다. 아-주 행-복-한 상상이죠. 그런데 악기를 다룰 줄 알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보고 싶고 Saxophone과 Drum도 배워보고 싶습니다. 이것 봐요. 벌써 악기가 4개나 나왔죠? 이러니 시작을 못하는 겁니다. 시작을…

그래서 여기까지가 생각만 많고 실천은 부진한 어느 똑똑한 바보의 넋두리였습니다. 이렇게 글로나마 남기니 그래도 뭔가 한건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밤은 왠지 잠이 잘 올 것 같군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66) – 채홍정 시인, 사전박사

08/12/2025 (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즈음 한글 공부에 푹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 김호연님의 ‘불편한 편의점2’를 두번째로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이번에 읽을 때는 마치 제가 이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읽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읽을 때에 비해 시간은 조금 더 걸린 것 같지만 그 대신 조금 더 깊이있게 이 소설을 읽지 않았는가하고 자평해 봅니다.

한글의 순우리말 단어 공부를 하면서 채홍정 시인이라는 분이 순우리말에 대한 좋은 글을 연재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채홍정 시인님 (85)은 1940년에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셔서 1983년부터 대전에서 정착해서 살고 계신데 56세때인 1996년 한맥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하셨습니다. 의외로 늦깍이 등단을 하신거죠. 채홍정 시인님의 인터뷰가 Youtube에 있어서 그 꼭지를 이곳에 남겨 놓고자 합니다.

채홍정 시인님은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도 떨어져 살아야 겠고 그 어려움을 일기쓰기로 달래셨던 것 같습니다. 본래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20년전 즈음 아드님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국가적인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듣고 자극을 받으셔서 열심히 더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사전박사 채홍정 시인 네번째 시집 ‘사랑하며 섬기며’ 펴내 – 중도일보 8/12/2020

채홍정 시인은 “시조는 모두 순우리말로 쓰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많았다. 시 곳곳에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 시인은 “15년 전쯤 설날 아들이 손자에게 말하길,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시인이니까 잘 모셔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낯 뜨거움을 느꼈다. 무명시인인 내가 시를 쓴다고 후세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질 않는가. 그 후로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이후 KBS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후세에게 내 손자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다. 어디를 가든 메모지와 볼펜, 신문을 보든 매스컴을 보든 이상한 말이 나오면 메모를 시작했고, 이 계기가 결국 사전을 편저하게 된 사연“이라고 말했다. 채 시인이 편저한 2015년 새 속담사전, 2017년 신 고사성어, 2019년 익은말 큰사전은 인기가 많은 사전으로 재출간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1000쪽 분량에 달하는 순우리말 대사전도 펴낼 예정이다. 채 시인은 “순우리말대사전을 내면 내 학문적 업은 모두 끝이 난다“며 “오늘도 내일도 헛발 걸음 않으려고 몸부림칠 것“이라고 팔순 시인은 덤덤하게 목표를 밝혔다.

17년간 신문 등에서 새로운 단어 등을 보게되면 그것을 계속 기록하셨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4권의 사전을 만드셨습니다. 그 4번째 사전인 ‘순우리말 대사전’을 4년전에 펴내셨습니다.

“품격 있는 우리말 사랑합시다”…‘순우리말 대사전’ 펴낸 채홍정 선생 – 뉴스1 10/21/2021

아름답고 고운 순우리말이 점점 사장되고 잊히는 것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망구(望九)의 노익장을 자랑하는 시인이자 재야(在野) 국어학자인 대원(大元) 채홍정(蔡鴻政) 선생(81)이 ‘순우리말 대사전’(오늘의문학사)을 펴냈다. 2015년 ‘새속담사전’, 2017년 ‘신고사성어’, 2019년 ‘익은말 큰사전’에 이은 네 번째 국어 관련 역작으로 여기에는 각종 사전과 매스컴, 인터넷 등을 통해 생소한 어휘를 그때그때 수집하고 정리한 지난 17년의 세월이 녹아있다. “그동안 여러 번 중동무이(하던 일이나 말을 끝맺지 못하고 중간에서 흐지부지 그만두거나 끊어 버림)했지만 ‘순간이 쌓여 역사가 된다’라는 말처럼 지금은 아리따운 추억의 오솔길에 마음이 머물러 마냥 흐뭇합니다.” 한글은 어느 나라 글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탁월한 표현력에 뛰어난 독창력을 지녔다는 자부심으로, 우리 국민의 어휘력과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싶다는 소망에서 채 선생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대사전을 엮었다. “우리 사회가 더 품격 있는 순우리말을 사용하도록 행정기관과 언론기관, 교육기관에서 앞장서 주길 바랍니다. 순우리말을 사랑하는 문학인도 더욱 많아져야 하고요.

“하나하나 찾아 엮은 순우리말 대사전… 문학인에 보탬 되길” – 대전일보 11/4/2021

채 시인은 “원래 사전을 낼 생각은 없었는데 17년 전 아들이 외손자들에게 `국가가 인정하는 시인이니 잘 모셔야 한다`는 말에 이름 없는 시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서글펐고 큰 죄책감과 중압감을 느꼈다“며 “이후 우연히 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를 보게 됐고 후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나, 둘 정리하던 우리말이 쌓여 사전까지 펴게 됐다“고 소회했다. 그는 “한글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고, 어느 나라 글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탁월한 표현력에 독창력까지 지닌 언어지만 오늘날 한자에 가려 활용되지 못하고 점점 잊혀 가는 것이 아쉽다“라며 “사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순우리말에 대한 어휘력을 키우고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오랜 시간 지지해 준 가족과 독자, 문인들이 전해준 응원이 있어 하고자 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한글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시와 수필에 담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올해까지 6권의 시집을 내셨는데 여섯번째 시집 ‘홀로 기다리는 순간들’이라는 시집이 올해에 나왔군요.

채홍정 시인, 여섯 번째 시집 ‘홀로 기다리는 순간들’ 출간 – 충청신문 3/17/2025

별빛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고, 달빛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면 영원히 지지 않는 천국을 준다’는 말처럼 범사에 감사하며 여섯 번째 시집을 세상에 알립니다.” 돌부리에 차이고 거센 물살에 휩쓸리며 하루하루를 채워간다는 채홍정 시인은 “단 한 편의 시라도 독자에게 나긋나긋 옥 굴러가듯 행복 꽃나비로 깊은 감동이 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고 말했다.

올해 85세이신 채홍정 시인께서는 시집과 사전 이외에도 수필집과 소설을 준비 중에 계시다고 합니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계속해서 노력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멀리 미국 보스턴에서 채홍정 시인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5) 금동건님 – 시 쓰는 환경미화원

2025년 8월 10일 (일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은 아내와 막내딸과 함께 보스턴에 있는 감자탕 집에서 감자탕과 보쌈을 맛있게 먹고 딸은 Heytee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 티를 사고 우리 부부는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원래는 Natick이라는 곳에 있는 일식 부페에 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주말에는 먹기 힘들 것 같아서 유턴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마 내일 다시 가야할 것 같군요.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즐거운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요즈음 김호연 작가님의 ‘불편한 편의점2’를 두번째 읽고 있는데 지난 번과 달리 정독을 하면서 만약 내가 이 책을 쓴다면 어떻게 썼을 것인가? 라는 창작자의 마음으로 읽고 있어서 시간은 더 오래 걸리지만 아주 더 자세히 읽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리나’를 영어원서로 주문을 해서 도착하면 이 책도 여러번 정독을 할 생각입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이미 영어원서를 한번 읽었는데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어 번역으로 가장 잘되었다고 평가되는 책을 사서 주문을 매겼습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참 흥분이 되는군요.

그리고 요즈음 돌싱글즈7이 시작을 해서 보고 있는데요 방송에 나오는 편집된 화면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방송까지 나와서 다시 시작하려는 10명의 돌싱 남녀들을 보면서 응원을 하게 됩니다. 이번 돌싱글즈 7기에도 좋은 짝이 나오길 바랍니다.

설겆이를 하면서 우연히 듣게된 Youtube 방송이 2011년 1월 30일에 KBS에서 방영되었던 ‘무언가를 가지면 정말 행복한가?’라는 다큐가 있는데 이걸 듣다가 금동건님의 사연을 접하게 되어서 오늘 금동건님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려고 합니다.

위의 다큐 중에서 10:00-19:15까지 부분이 금동건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금동건님 (64세) 은 환경미화원이신데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시를 쓰십니다. 금동건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도 언론을 통해서 알려져 있습니다. 4년전에 유퀴즈 온더블럭에도 나오셨더군요. 금동건님은 2006년에 시인으로 등단하시고 지금까지 20년간 환경미화원으로 사시면서 느끼시는 일상을 시로 써 오시는 시인이십니다.

오늘도 사랑스러운 쓰레기들을 잘 모셨다.

공부를 고등학교까지 밖에 하지 못해 끝나지 않은 공부의 연속이라 생각하신다고 합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헝클어졌던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하고 공부의 연속입니다.”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07> 금동건 시인의 시집 ‘비움’ – 국제신문 5/30/2021

호계천 근처에 있는 3평 남짓 크기의 컨테이너이다. 그가 일하는 회사와 가깝다. 일이 끝나면 이곳에 와서 시를 쓴다. 환경미화원이라는 직업에서 시인으로 돌아오는 작은 집이다. 여기서 하루를 돌아보고 글을 쓴다. 

11살 소년 때 자갈치시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그는 2006년에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하고, 2007년에 첫 시집을 내면서 ‘자갈치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후 ‘꽃비 내리던 날’ ‘詩를 품은 내 가슴’ ‘엄마의 젖무덤’ ‘비움’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아팠어요. 20대와 30대를 병마와 싸우면서 보냈답니다. 수염은 구안와사가 왔을 때 그 모습을 가리기 위해 길렀는데, 이젠 제 스타일이 됐어요. 병에 시달리면서 꿈도 희망도 다 잃고 이렇게 죽는 것 아닌가 절망했던 저를 살린 것이 시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지금 이 일을 하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아내입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일기를 계속 썼는데 어느 순간 시가 되더라구요.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썼어요. 일기를 쓰듯이 시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점차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들이 시가 됐습니다. 시는 저를 살게 하고, 버티게 하고, 존재하게 합니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제가 시를 쓰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저의 등단과 두 번째 시집까지 보셨지요. 제게 남긴 유언이 ‘빚지지 마라’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마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필하지 마라’였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비우는 환경미화원이다/ 그러므로 거리엔 아침 햇살 가득 채워주는 시인이다

저도 요즘 한동안 제 나름대로 시에 대해 공부를 좀 해 보았는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금동건님은 일기를 쓰시다가 그것이 시로 변하셨다고 하는군요. 저도 이렇게 글을 열심히 쓰다 보면 혹시 시로 변할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한 분의 시인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배워 봅니다.

Bucket List (60) 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Singer Songwriting 공부하기

08/02/2025 (토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 날씨가 아주 선선했어요. 아이들이 집에 와서 좀 쉬고 있는 중에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Eastern Golf Course로 18-hole golf를 치러 갔습니다. 한분의 미국인이 함께 치게 됐는데 이제까지 함께 쳤던 사람 중에 가장 잘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분하고 치다 보니 뭐 정신없이 친 것 같습니다. 18-홀을 3시간 30분만에 마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자기 게임을 하지 못한 저와 아내는 사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잘 치는 사람과 치는 것도 쉽지 않군요. 어릴 때부터 쳤던 사람이라고 하고요 50대로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장타였고 버디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버디를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파 (Par)만 해도 좋다고 하던 제 모습을 생각하며 반성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Bucket List를 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왜냐하면 이미 59개나 되는 버킷리스트가 모두 다 넣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제부터 어떤 유튜브를 보다가 생각을 해보니 아직도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스턴에는 버클리음대 (Berklee College of Music)이 있는데요 김동률이나 싸이 등이 여기 출신들이고요 재즈뮤직을 배우는 곳인데 예전에 한인교회를 다닐 때에 청년 중에서 버클리음대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사실 잘 몰랐는데 여기가 알고 보니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더군요. 한국에서는 실용음악이라고 하던가요?

어제 처음 본 영상인데요 Jason Lee라는 20년차 색소폰 주자가 졸업한지 10여년전만에 버클리음대에 가서 교수님들과 Jam을 하는 영상이 있었는데 너무 부러웠습니다.

이 버클리음대가 제 직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엄청 가깝죠? 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재즈 학교에서 공부하면 얼마나 좋겠는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입학은 직장인으로서 부담스럽지만 온라인으로 배우는 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이론 공부부터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Music Theory나 Voice Technique 같은 것 그리고 Songwriting 같은 건 배워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Study Music Online With Berklee – Berklee College of Music

시니어 싱어송라이터가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 봤는데요. 아 있군요.

여기 송우기님은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이신데 일을 하시면서도 싱어송라이터로 살고 계시네요. 이런 분들이 계신 걸 보니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올리고 버클리음대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추진을 해 보기로 합니다.

하늘해 – 음악창작소 해봄

나잇이라고 마케팅 업무로 5년간 일을 하다가 퇴사하고 뮤지션으로 새로 시작한 이야기를 브런치북으로 쓰신 나잇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블로그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려 놓습니다.

두번째 직업은 뮤지션입니까? – 나잇 브런치북

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 고 김우중 회장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는 밤입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4) 조완규님 – 97세의 평생 현역 생물학자

08/01/2025 (금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몇일 전에 우연히 발견했고 깜-짝 놀란 분이 계셔서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조완규 박사님이신데요 1928년생이시니까 올해 97세이십니다. 현재 국제백신연구소에서 지금도 출근해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 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사실 유튜브 디시인사이드 ‘지식인 초대석’에서 였는데요. 2차례에 걸쳐서 인터뷰 영상이 있습니다.

[인터뷰] 조완규 박사 “생물학 선택, 내 인생의 가장 현명한 결정” – 한스경제 07/28/2025

2025년 여름, 국제백신연구소에서 만난 조 박사는 아흔이 넘은 고령에 나이를 잊은 듯 또박또박한 말투와 유머, 그리고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과학은 이성적인 희망의 언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그는 TV 화면 속 고통받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지켜보며, 백신 연구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현재도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상임고문 직함으로 연구소에 출근하며 연구사업을 돕고 있는 조 박사는 백신 개발이 인류 공동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위생 수준은 높아졌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 아이들은 백신이 하나 없어 죽습니다. 이들도 백신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조 박사는 매일 아침 공원을 걷는다. 언덕길 70미터, 운동시설까지 포함해 하루 1만보가 기본이다. 고령에도 스마트폰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해 기자에게 보여준 액정 화면에는 아직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7000보를 훌쩍 넘긴 수치가 측정돼 있었다. “2003년부터 하루도 안 쉬고 운동을 했어요. 성북동 살 땐 삼청동까지 뛰고, 관악산 중턱을 오르내렸습니다.”

소식(小食)도 건강 유지의 비결 중 하나다. “빵 한 조각, 주스, 우유면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삶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래 살려고 애쓰는 건 아닙니다. 다만 눈 감는 순간까지 건강하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민폐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렇게 오랜동안 과학자로서 모범적인 삶을 사시는 한국인이 계시다는게 저에게 참 본이 되네요. 저도 이 분처럼 활동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MASTERPIECE (5) G-드래곤 삐딱하게

08/01/2025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뉴잉글랜드도 8월에 접어들었네요. 어제 업스테이트 뉴욕에 다녀왔는데요 비가 많이 왔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제법 선선했습니다. 어제 대학에 다니는 막내딸을 학교에서 부터 보스턴까지 6시간 가까이 운전을 함께 하고 왔는데 집에 오는 길에 딸 아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서 들려 달라고 했더니 의외로 K-Pop을 트는거에요. 깜짝 놀랐습니다. 본래 보스턴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만 해도 Pop Song은 들었지만 K-Pop은 듣지 않았거든요. 다행히 대학에 가서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한인 2세들과 어울리다 보니 요즘은 한국 문화에 좀더 많이 다가가는 것 같아서 아빠로서 안심도 되고 여러모로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명의 MZ 세대 가수들 노래를 들었는데요 저도 많이 아는 노래여서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 딸과 제가 감성적으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함께 들었던 노래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데이식스의 예뻤어, 이무진의 청춘만화, 한로로의 노래 등이었습니다.

비가 점점 많이 와서 사실 운전은 쉽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함께 노래를 듣고 오다 보니 어느새 집에 무사히 도착을 했어요. 그리고 하루가 지났는데도 마음에 K-Pop에 대한 잔상이 남았는지 하루 종일 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나는 어떤 노래를 좋아하지? 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하는 중에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지드래곤의 ‘삐딱하게”에 대해 얘기를 좀 하고 싶어졌습니다. 삐딱하게는 지드래곤의 솔로2집 쿠데타 (2013) 의 더블 타이틀 곡 중 하나인데 이 노래는 제가 들을 때마다 가사와 음율이 제가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삐딱하게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내버려둬
어차피 난 혼자였지
아무도 없어 다 의미 없어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버럭버럭 소리쳐 나는 현기증
내 심심풀이 화 풀이 상대는 다른 연인들
괜히 시비 걸어
동네 양아치처럼 가끔 난 삐딱하게 다리를 일부러 절어 이
세상이란 영화 속 주인공은 너와나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외로운 저 섬 하나
텅텅 빈 길거리를 가득 채운 기러기들
내 맘과 달리 날씨는 참 더럽게도 좋아

너 하나 믿고 마냥 행복했었던 내가
우습게 남겨졌어
새끼손가락 걸고 맹세했었던 네가
결국엔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내버려둬
어차피 난 혼자였지
아무도 없어 다 의미 없어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짙은 아이라인 긋고 스프레이 한 통 다 쓰고
가죽바지, 가죽자켓 걸치고 인상 쓰고
아픔을 숨긴 채 앞으로 더 비뚤어질래
네가 미안해지게 하늘에다 침을 칵
투박해진 내 말투와
거칠어진 눈빛이 무서워 너
실은 나 있지 두려워져
돌아가고픈데 갈 데 없고
사랑하고픈데 상대 없고 뭘 어쩌라고
돌이 킬 수 없더라고

너 하나 믿고 마냥 행복했었던 내가
우습게 남겨졌어
새끼손가락 걸고 맹세했었던 네가
결국엔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사랑 같은 소리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내버려둬
어차피 난 혼자였지
아무도 없어 다 의미 없어
사탕 발린 위로 따윈 집어 쳐
오늘밤은 삐딱하게

오늘밤은 나를 위해
아무 말 말아줄래요
혼자인 게 나 이렇게
힘들 줄 몰랐는데 (그대가 보고 싶어)
오늘밤만 나를 위해
친구가 되어줄래요
이 좋은 날 아름다운 날
네가 그리운 날
오늘밤은 삐딱하게

저도 살면서 삐딱하게 막 화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이런 노래를 들으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뻥 뚤리고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제가 반골 기질이 있어서 그럴까요? 삐딱하게는 지드래곤이 작사와 작곡을 한 노래입니다. 자신의 노래인거죠. 본래 싱글2집을 낼 때 타이틀을 쿠데타라고 한 이유가 자신의 음악이 갇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구요. 항상 발전하려고 애쓰는 지드래곤의 노력에 항상 박수를 보내고 계속해서 오래 오래 좋은 노래를 남겨 주기를 바라고 나이가 아주 많이 들을 때까지도 우리 곁에서 계속 좋은 가수로 성장하면서 사랑받는 가수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편 최근에 지드래곤이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노래 ‘삐딱하게’를 쓰게 된 계기가 강산에님의 ‘삐딱하게’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그 영상은 아래에 있습니다.

너무 착하게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너무 훌륭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네 TV를 봐도 라디오를 틀어봐도 삐따기의 모습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네 있는 그대로 얘기할 수 있는 삐따기 조금 삐딱하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네 조금 삐딱하면 손가락질 하기 바쁘네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바르다고 하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저물어 가는데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깨어나서 일어나서 눈을 뜨고 귀 기울여 깨어나서 일어나서 눈을 뜨고 귀 기울여 깨어나서 일어나서 눈을 뜨고 귀 기울여 깨어나서 일어나서 눈을 뜨고 귀 기울여 나나나나 예예 조금 삐딱하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네 조금 삐딱하면 손가락질 하기 바쁘네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바르다고 하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저물어 가는데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삐딱 (하게) 삐딱 (하게) 삐딱 (하게)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그가 서 있는 땅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네 삐딱 하게

BOSTONIAN (61) Tanglewood에서 처음으로 Lang Lang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날

7/27/2025 (일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와 저는 그동안 Boston Symphony Orchestra에서 하는 조성진,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공연에 다녀오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Tanglewood에서 하는 Lang Lang의 피아노 공연을 보러 가기로 예약을 해서 이곳에 처음으로 가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편도로 2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꽤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오후 2시에 하는 오케스트라를 보기 위해 오전 10시 조금 넘어서 출발을 했는데요 가는 길도 길었지만 비도 조금이나마 내리더군요. 다행히 주차가 힘들지는 않아서 1시 조금 넘어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공연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공연은 Boston Symphony Orchestra가 연주하는 큰 공연이었는데요 은퇴한 분들이 매우 많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늘 공연은 중국인 Lang Lang의 피아노 협주가 있었는데요 Saint-Saëns Piano Concerto No. 2을 23분간 연주했습니다. 저는 이 연주를 처음 들었지만 너무나 좋았고요. 역시 Lang Lang은 듣던대로 Performance의 천재적인 기질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섬세한 피아노 연주를 선보여 기립박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앵콜곡까지 아주 잘 들었습니다.

Intermission이 끝나고 BSO에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생활의 추억’을 들었는데요 4분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를 세우고 Flute과 Clarinet soloists 들이 너무나 연주를 딱 맞게 해 주셔서 연주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마치 새들이 재잘대듯이 연주를 해 주셨습니다.

아내와 함께 이렇게 좋은 연주를 듣게 된 것이 참 좋았고요. 역시 교향곡은 현장에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Tanglewood가 오고 가는데 5시간이나 드는 장거리이다 보니 자주 가기는 어렵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다만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입니다.

Tanglewood는 1934년부터 시작한 연주의 오랜 내공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다가 세이지 오자와가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Sony에서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세이지 오자와는 무려 30년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최장수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영향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연주를 듣는 내내 세이지 오자와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BOOK CLUB (7) 엄마를 부탁해, 열하일기, 불편한 편의점2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은 세상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뿌듯함 그리고 성취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제 블로그를 통해서 누군가가 어떤 새로움을 만일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제가 독서를 통해서 얻게된 그 무언가가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지 모를 일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어느 기간동안 글을 쓰고 나서 다시 돌아 와서 그 글을 다시 읽게될 때에 무언가 뿌듯함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빈곤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고요. 그렇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저는 항상 제자신의 정신적 빈한함을 항상 느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최근에 저는 다시 책을 들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죠.

이번 주에는 세권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 책들을 읽고 남은 저의 감정과 생각들을 블로그에 남기는 편이 훗날의 제자신을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Youtube 강연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이민애 교수님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소설을 읽을 때에는 작가의 삶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리고 이번주에 읽은 세권의 소설과 함께 알게된 세분의 소설가님들의 삶에 대한 저의 공부 결과를 이 곳에 함께 풀어볼까 합니다.

먼저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제가 몇년전에 읽었던 책이고 이번에 두번째로 읽은 책입니다. 신경숙님은 전북 정읍에서 1962년에 태어나셔서 1979년부터 구로공단 근처의 전기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야학을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셨는데요 그 때 선생님이셨던 최홍이 선생님의 조언을 받고 1984년에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시면서 등단을 하신 분이십니다. 신경숙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생각했던 건 오래 전이셨는데 글이 잘 나가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가 2007년에 ‘리진’이라는 소설을 쓰시면서 공부를 많이 하시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비로소 쓰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생일을 위해 서울에 사는 아들들과 딸들을 방문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오시다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어머니를 아버지가 놓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들은 아들대로 딸들은 딸들대로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회상하면서 엄마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그런 이야기에요. 특히 엄마가 잠시 마치 영혼과 같이 등장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그 부분에서 엄마의 남모를 사랑에 대한 얘기, 엄마의 자녀들에 대한 마음들도 그려집니다. 이 책을 제가 읽으려고 생각했던 이유는 곧 8월이 되면 저의 어머니의 추모일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 추모일을 준비하면서 다시금 저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다시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잃고 나서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이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아버지 즉 남편이죠. 항상 아내보다 멀찍이 앞장서서 걸으며 발걸음을 맞추지 않으며 평생을 살아왔고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며 살았던 남편입니다. 나중에 반성을 하지만 소용이 없죠. 저도 이 남편의 입장에서 제 아내를 다시 돌아봤다고 할까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이 책을 읽고 아내에게 좀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습니다.

두번째 책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입니다. 연암 박지원은 글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생 가능하면 당파나 정쟁에 휩싸이지 않으며 멀찍이 비교적 낮은 관직으로 인생을 살았던 분이더군요. 이 분이 1780년 44세 때 5월부터 10월까지 청나라 연경에서 북경까지 돌아보며 느낀 점을 쓴 책이 바로 이 열하일기입니다. 연암의 해학과 신문물에 대한 수용성을 엿볼 수 있어서 좋은 그런 책입니다. 저는 고미숙님이 쓰신 책을 읽었는데요 중간 중간 자세한 소개가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본래는 연경에서 황제를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요 황제가 연경에서 북경으로 오라는 연통을 주면서 여행이 꽤 긴 여정이 됩니다. 북경쪽으로 오게 되면서 티베트와 몽고에 대한 청나라 황제의 경계심이랄까 경외심 같은 걸 연암은 느꼈다고 하고요. 아마 그 당시 티베트는 매우 강성했던 것 같아요. 황제가 라마불교 승려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죠. 그러면서 이 승려에게 꼭 인사를 하라고 명을 내리는데 조선은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전통이어서 이게 어려운 거에요. 거기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진족과 한족 사이의 갈등 구조에 대해서도 연암은 서술을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참 이상한 얘기를 해요. 소경이 눈을 떴는데 길을 못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다시 눈을 감으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청나라에는 유럽과 이슬람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문물이 있었는데요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위정자들이 청나라를 무시하는 풍조였기 때문에 그리고 오랑캐를 업신여기는 행태 등으로 인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눈으로 보았던 문제를 애둘러서 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났습니다. 실학자로서 느끼는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책은 김호연님의 ‘불편한 편의점2’를 읽었어요. 이 책은 어느날 제 아내가 어떤 분으로 부터 받아서 집에 가져와서 제가 읽게된 책인데요 숙대앞 청파동 Always 편의점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불편한 편의점1을 못 읽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요. 김호연님은 이 책을 쓰기까지 4권의 소설을 쓰셨는데 매우 호응이 적어서 한때 소설을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전혀 편의점을 할 수 없는 선배가 하는 편의점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불편함을 느끼면서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셨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 4만부 정도만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백만부가 팔리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불편한 편의점2에 나오는 상황은 코로나 시국입니다. 그래서 사실 더 우울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죠. 정육식당 주인, 고등학생, 연극배우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도우면서 인생의 어려움을 조금씩 극복하는 힘을 주고 나아가게 하죠. 김호연님께서 어떤 분을 통해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다’라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다고 해요. 여기에도 이 얘기가 나옵니다. 비교는 암이니까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라. 걱정은 독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때 그 때 즐겁게 살아라.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이 곳에 나오는 수많은 군상들은 모두 매우 어려워요. 하지만 그 어려움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죠. 코로나 시국에 얼마나 어두웠습니까? 그 어두웠던 코로나 팬데믹 당시의 일들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도 당시 백신개발을 하면서 너무나 힘들었는데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루머들에 대해서도 나왔고 한국정부의 다양한 시책이 자영업자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들이어서 이에서 겪는 어려움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떤 정육식당 가족의 이야기는 참 따스하게 다가옵니다. 김호연님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요 여기에 나오는 염사장님처럼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어머니를 기억하며 이런 소설을 쓰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세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능하면 정독을 하려고 노력을 했고요. 소설가님들께서 새로운 단어를 알려주실 때 기쁜 마음으로 온라인 사전을 뒤지고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요 그래도 ‘한국어가 모국어인데도 모르는 단어가 이렇게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책들을 다시 책꽂이에 꽂아 놓아야 겠네요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내 가족의 소중함을 항상 되새기고 ‘열하일기’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불편한 편의점2’를 통해서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서로 조금씩 도울만한 여유를 갖는다면 희망을 가지고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책 익는 세상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세분의 작가님들과 캐릭터를 통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