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우면 지는거다 (63) 김주영 선생님

7/21/2025 (월요일)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싱그러운 월요일 오후네요.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함께 18-hole golf course를 돌고 오후에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회사에 Wellness vacation 라는 휴가가 있는데요 이 휴가가 매년 이틀이 있다는데 곧 이 휴가가 사라진다고 해서 지난주부터 부랴부랴 쓰는 중입니다. 그래서 마침 오늘 그 마지막 이틀째를 쓰는 중이에요. 당연히 일은 없지요.

마침 날씨도 오늘은 그리 덥지가 않고 선선합니다. 지금 화씨로 77도니까 섭씨로는 25도 정도 되죠. 여름 날씨 같지 않고 가을날씨같은 느낌마저 드는 오후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Porch에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Porch에서 앉아 있으면 우리 마당과 이웃에서 넘어온 나무들이 울창하게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는데 입사귀들이 각자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구요 길게 늘여진 나뭇잎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치 손을 펴고 손가락을 흔들듯이 오무렸다 늘였다를 반복하고요 소나무는 잔잔하게 마치 눈썹을 지그시 감은 듯한 노인처럼 잔잔하게 위아래로 살며시 움직입니다. 찌르래기 소리가 한참이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상공에 나타나서 지나가다 보니 모든 소리를 비행기 소리가 잠시 먹어 버렸네요. 저희 집 근처에 공항이 있는데요 이 공항에 개인 비행기들이 오고 가곤 합니다. 비행기 소리가 사라지니 다시 나뭇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마치 산내음 같은 싱긋한 향기에 맞추어 다양한 자연의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신선노름이 따로 없죠.

제가 요즈음 시와 소설, 수필 같은 문학에 꽂혀 있어서 Youtube 강연으로 듣고 있는데요 그러던 중에 경상북도에서 열린 문학모임에서 소설가 김주영 선생님께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하신 영상이 있어서 어제 들었는데 구수하기도 했지만 이 분의 진심이 느껴지고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오늘 글을 써야 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2년 전에 대구문학관에서 인문예술과학특강 ‘2023 문학, 꽃피다’라는 강연에서 김주영 소설가님께서 80대의 노구를 이끄시고 강연을 하신 것이 있어서 전체를 모두 들었습니다.

오래된 약속 특별판 <영남의 어른 ⑪>- 길 위의 작가 김주영 – 경북기록문화연구원 8/25/2021

김주영 선생님은 경북 청송에서 어린시절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아주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밤늦도록 일을 하시고 쌀을 구해 오셔서 아들만 먹이고 자신은 굶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정식 결혼한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탄생이 아주 불행한 그런 태어남인데, 그러면 서도 어머니는 나 하나를 위해서 무척 고생을 하셨어 요. 일화가 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근데 배가 고프죠. 그러니까 찬장이나 솥을 뒤져보면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물 을 먹습니다. 그러면 한 30분 동안 배가 불러요. 나중에는 배가 고프죠. 해가 지고 나도 어머니가 나타나 질 않아요. 집 툇마루에서 해질 때까지 어머니를 기 다리다가 너무 지쳐서 잠이 들어요. 잠이 들었다 깨 보면 부엌에서 삭정이 부러뜨리는 소리가 나요. 어머니가 어디 가서 한 됫박 되는 양식을 구해 와서 밥을 짓는 겁니다. 그래서 밥을 퍼주죠, 먹으라고. 어머니는 안 먹어요. 가만 보면, ‘난 먹었다’ 하면서 남은 건 내일 아침에 나를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하루 종일 굶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그게 무척 가슴 아팠는데, 나중에 지나고 나니까 아, 어머니가 그랬구나 싶었습니다.

선생님은 박목월, 김동리 선생님등이 세우신 서라벌 예술대학 (현 중앙대학교)에서 박목월 교수님께 11편의 자작시를 드리고 평가를 듣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 박목월 교수님의 답변은 뜻밖에도 시는 어렵겠다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군대를 다녀 오신 후 소설가로 진로를 수정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대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까지도 시인이 되고자 했죠. 여름방학이 되기 전에 시를 11편을 써가지고, 그때 우리를 가르쳤던 박목월 선생님한테 보냈어요. 하늘과 같은 박목월 선생님께, 제가 시 쓴 겁니다 하면서 한 번 봐주십시오 했더니 고맙게 받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드리고 난 다음에 열흘이 지나도 아무 말씀이 없으신 거예요. 그래서 다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께 시를 보내 드렸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러니까 하시는 말씀이, 자네 운문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시는 거예요. 거기서 내가 눈앞이 하얘지는 거예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고 알겠습니다 하고 얼굴이 정말 하얗게 되서 나가가지고 생각했죠. 아, 내가 멋모르고 덤벼들었구나하면서 하늘같은 분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그대로 수용을 한 겁니다. 이래서 내가 어쩐지 압니까? 학교를 그만둬버렸습니다. 군대에 입대를 했어요. 군에서 계속 고민을 했습니다. 시인 될 자격이 없다는데 어떡할까 하다가, 꿩 대신 닭이라는 말 있지 않습니까? 닭을 잡자, 그래서 수필을, 산문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게 지금 내가 소설가가 된 동기가 됩니다.

김주영 선생님의 소설은 하층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객주’라는 10권 분량의 장편소설이죠. 서울신문에서 5년간 연재된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위해서 현장조사를 하느라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 현장을 답사해야 된다는 것, 선생님으로 인해서 많은 후배 작가들이나 제자들한테 어떻게 보면 지침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 현장조사, 답사를 왜 철저히 하냐면 작품 속의 현장감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거 맞구나, 하는 생각을 어떤 그런 작품과 접촉성을 강화시켜 주는 것 같아요. 

객주를 9권까지 연재하시고 갑자기 절필선언을 하셨습니다. 글이 더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죠.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마지막 10권째를 다시 서울신문에서 연재해서 마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편의 장편소설을 위해 거의 30년이 걸린 것입니다. 너무나 그 끈기가 대단하지 않아요? 김주영 선생님은 국어사전을 항상 가지고 다니시고 카메라와 노트를 가지고 주로 노인들을 인터뷰하시는데 새로운 단어가 나오면 노트해 놓았다가 사전에서 찾아 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주영 선생님의 소설은 어렵다고요. 모르는 단어가 너무나 많이 나온다는거죠. 우리말인데도 그렇게 모르는 단어가 많다고 하시네요.

『객주』 같은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30년 만에 10권째 완결편을 냈다는 것은 웬만한 뚝심 아니면 안되었을텐데, 9권을 쓰시고는 왜 그때 멈추셨어요?

그때가 아마 한국에 신문연재 사상 없었던 일인데, 9권 째 끝나는 지점에서 한국 최고 원고료를 받았습니다. 신문연재 할 동안 인기가 대단했거든요. 그런데 9권 째 분량을 쓰고 나니까 진이 확 빠지는 거예요. 더 못 쓰겠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신문 임영숙 문화부장한테 더 못 쓰겠습니다 이러니까, ‘그러지 말고 한 5개월 정도 시간을 줄테니까 계속 쓰라’ 하더라구 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여기서 끝마치는 게 좋겠다 라고 했는데 임부장이 뭐라고 했냐하면 ‘더 쓰고 싶을 때 반드시 얘기해라. 다른 신문에 가면 안 된다.’ 그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알았다고 하고는 한 20년 흘렀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푸쉬킨에 대한 러시아 여인들이 3,4일 걸려서 꽃을 놓고 간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그것이 작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시베리아에 유배를 갔을 때 어떤 어려운 소녀에게 건네준 시가 러시아 여인들에게 지금까지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죠.

푸시킨의 시를 예로 들 수 있죠.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마라’ 하는 시가 있지 않습니까? 그 시가 원래는 잡지나 신문에 발표됐던 시가 아니었습니다. 푸시킨은 그 당시에 아주 진보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내집니다. 거기 유배지 농장에서 한 소녀를 만났습니다. 아주 누추하고 무식했던 그 소녀가 고생고생을 하면서 농장 일을 하는 거 예요. 그래서 그 아가씨한테 종이를 한 장 달라고 해서 그 시를 써 준 겁니다. 그게 바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하는 시입니다. 그 시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이 죽은 지 18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 러시아에 살고 있는 그 주부들이나 할머니들이 자기 집 텃밭에서 기른 꽃을 꺾어다가 푸시킨의 동상 앞에 바치고 가는 겁니다. 시골에서 모스크바에 올라오는 가정 주부들이 자기 집 텃밭에서 기른 생화를 기차를 타고 사흘, 나흘 걸려서 바치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시 한 편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뭡니까? 그게 바로 위로입니다.

김주영 선생님께서 가장 최근에 인터뷰하신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리셨습니다. 이제 연세가 많으시죠.

노트 20권에 3㎜ 글씨로 까맣게 채운 ‘객주’ 초고… “세상 다 줘도 못 바꿔” [나의 현대사 보물] [45] 소설가 김주영 – 조선일보 6/25/2025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대도 이 노트 한 권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객주(客主)’라는 소설과 그걸 쓰는 일에 미쳐 있었지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경북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지난 21일 만난 김주영(85) 소설가가 ‘객주’ 육필 원고를 들어 보였다. 대학 노트에 3mm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글씨가 새까맣게 들어차 있었다. 언뜻 까만 점이 촘촘히 찍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19세기 말 조선 팔도를 누빈 보부상의 생활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대하소설 ‘객주’(1984년 출간 당시 총 9권)가 이런 대학 노트 20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주영은 1979년 6월 1일부터 1984년 2월 29일까지 4년 9개월간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객주’를 연재했다. 연재 시작 전 5년 동안 전국 200여 개 넘는 시골 장터를 돌아다녔다. 연재 중에도 노트를 갖고 장터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났다. “족히 500명 넘게 만났을 겁니다. 장터에 앉아 있다가 흥미로운 사람이 보이면 따라가서 막걸리를 사주었습니다. 한 주전자를 나눠 마시면 온갖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지요.” 장이 파한 밤이 오면 여인숙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글을 썼다. 대학 노트에 초고를 쓰고, 그 내용을 다시 원고지에 옮겼다. “엎드려서 원고지 70~80매를 그냥 써내려 갔어요. 미쳐 있을 때의 이야기지요.” 그렇게 한 주간 쓴 글 묶음을 인근 신문지국에 가져다주면, 지국에서 원고를 본사로 부쳤다. 문학관 3층 전시실에는 이때 그의 생활을 형상화한 마네킹이 전시돼 있다.

이제 막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소설가 지망생이 언제쯤 김주영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글을 쓸 수 있게 될까요? 저처럼 아니 저보다 더 어렵게 자랐으면서도 항상 웃으시는 김주영 선생님의 끈기있는 인생을 보면서 제가 부러워한다는 점을 이곳에 남깁니다. 꼭 오랜동안 귀감이 되어 주시고 좋은 소설 계속 써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객주 10권을 꼭 읽어야 겠습니다.

BOSTONIAN (60)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위의 사진은 향기나는 인생님 블로그에서 가져왔음을 먼저 밝힙니다. https://m.blog.naver.com/kbcthink/222593525114

제가 하고자 하는 걸 이 분의 그림이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따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붙여 넣었습니다. 향기나는 인생님의 글도 매우 잘 쓰셔서 제가 덧붙일 것이 없을 정도이지만 제 나름대로 글을 좀 써보려고 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에 대해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성이라는 점, 어떻게 이 분들이 사회의 편견을 극복했을까? 에 대해 궁금했던 것도 있고요. 한두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가 직접 궁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이 두분의 인생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하고 나서 이 글을 쓴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제가 요즈음은 Biotech에 대해 별로 글을 안 쓰고 한국 얘기를 많이 쓰네요. 올해 제가 한국에 못가거든요. 아마 그래서 더 이런 글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해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16세기에 조선에 살았던 분으로 시인이자 화가였습니다. 신사임당이 허난설헌보다 약 60년전에 태어났죠. 신사임당은 47년을 사셨고 허난설헌은 27년을 사셨습니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이라는 폐쇄된 소국에서 이런 분들이 나오기는 너무나 어려운데요. 이 분들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집안 분위기가 중요했습니다. 신사임당의 집안은 외가의 영향이 큰 집안 분위기였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는 아들이 없이 딸이 다섯이었는데 모든 딸에게 글을 가르쳤고 시와 그림에 탁월했던 둘째딸 신사임당의 재능을 아껴서 그런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사위로 홀어머니와 살며 아직 급제를 하지 않은 이원수와 결혼을 시키게 됩니다. 이원수는 그릇이 큰 사람이어서 신사임당이 옳은 말을 하면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신사임당은 집안에 딸만 있는 관계로 이원수는 결혼 후부터 처가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들이 신사임당이 자신의 재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신사임당은 47세에 심장병으로 죽게 되고 율곡 이이는 크게 방황을 해서 한때는 승려가 되겠다고까지 했는데 이 때에는 신사임당의 어머니 즉 율곡 이이의 외할머니께서 이이를 돌봐 주셨다고 합니다.

반면 허난설헌은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나이고 허봉의 여동생이었는데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도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글공부를 시켰다고 합니다. 허난설헌은 어려서 부터 시에 큰 재능을 보였는데 이미 8세때부터 라고 합니다. 허난설헌의 12살 위 오빠였던 허봉은 일찌기 과거시험에 급제해서 중국에 왕래를 많이 했는데 그 때마다 좋은 시가 있으면 허난설헌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은 남편 복이 없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시할아버지가 영의정을 하고 시아버지가 동부승지를 한 명망있는 집안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사임당과 달리 시집살이를 하도록 나라에서 바꾸게 되면서 시집살이를 하는 첫세대로 살게 되었다고 하고 그 남편이 과거시험에 계속 낙방하면서 외도를 계속 하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친정 아버지, 오빠 그리고 딸과 아들이 차례로 병으로 죽게 되면서 허난설헌은 매우 상심하게 됩니다.

결국 허난설헌은 27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게 됩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모두 친정이 강릉입니다. 강릉에 꼭 한번 가봐야 겠네요. 아래는 허난설헌에 대한 좋은 동영상이 있어서 링크를 올립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70) 단편소설가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 주는 다른 주와 달리 조금은 여유로운 (?)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약간 징크스가 될 수도 있는데요 편안하다고 하면 다음주는 보통 엄청 바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냥 망중한 (忙中閑) 정도로만 나누죠.

Blog를 쓰다 보니 이 중에 과연 얼마나 진정한 내 얘기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토스트기로 빵 한 조각을 굽고요 당이 없는 아몬드 우유를 한잔 따라 마십니다. 빵이 구워지면 아몬드 우유 한잔과 함께 자연스럽게 저의 Porch로 가서 의자에 앉아 빵과 우유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죠. 평화롭지 않나요?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리가 따스한 여름 바람을 타고 함께 제 피부로 다가와 지나쳐 갑니다.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소중한 하루가 시작된다는 기쁨이랄까 하는 감정과 함께 빵 한조각이 주는 포만감과 아몬드 우유가 주는 단백질의 기운이 저의 하루를 힘차게 이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단했던 저녁이 가고 새로운 아침이 되었을 때 그 새 아침을 여는데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양식이로군요.

그리고 컴퓨터와 책들을 몇권 들고 나옵니다. 사실 요즈음은 소설을 읽고 있는데요 제가 읽고 있는 소설들은 제가 처음 읽는 소설은 아니에요. 저는 여러권을 다양하게 읽는 다독 (多讀)을 하지 않고 한권을 여러번 읽는 다독 (多讀)을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읽을 때는 아주 빠르게 읽고요 두번째 읽을 때부터는 아주 정독을 합니다. 사전을 찾아가면서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기도 하고요 앞으로만 나가는 게 아니라 뒤로 다시 가서 읽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책을 오래 읽게 되겠죠. 한권을 여러번 읽으면 처음 읽을 때와 달리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보통 소설가들이 책을 쓰는 기간이 짧게는 몇개월이겠지만 길면 몇년간 묵혔다가 쓰기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걸 생각하면 책을 그냥 한번 읽고 다른 책으로 옮겨 가기에는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책을 여러번 읽다보면 그 깊이를 파고 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읽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얼마 전부터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을 쓴다기 보다는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군요. 일단 제목을 붙이고 시작을 한 소설이 두세편이 됩니다. 어떤 건 좀 나갔고요 어떤 건 조금밖에 나가지 않더라구요. 마치 Blog 쓸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부터 무슨 얘기를 써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쓴다기 보다는 글이 가는대로 쓰는 중이기 때문에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지금까지는 등장인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일단 초짜이니까 중편,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을 쓰려고 하는데요. 단편 소설이 보통 A4 용지로 7페이지에서 15페이지 정도 된다고 해요. 그래서 일단 그10페이지 정도 분량의 단편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건 생택쥐페리가 많이 도움이 됐어요. 생택쥐페리가 비행조종사로 살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는 걸 알고 부터 저도 그냥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단편소설을 신춘문예에 출품할 목적은 아니고요 단편소설이 완성되고 퇴고되면 제 Blog에 올릴 생각이에요. 어디라도 공개가 되면 세상에 알려진 거니까요. 그러면 소설가죠. ㅎㅎ

소설을 쓰는데 Google drive가 아주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공간도 아주 충분하고요 무료니까 너무 좋네요. 여러편의 word document를 열 수 있어서 좋고요 그리고 초기 화면에 여러 화면이 동시에 뜨니까 그걸 보면서 제가 제 작품으로 찾아 들어가게 되더군요. 소설을 쓰면서 제가 좀 더 넣고 싶은게 몇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그림이에요. 아니면 사진도 좋고요. 그런데 제가 그린 그림이나 제가 찍은 사진을 넣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소설이니까 사진보다는 그림이 좋겠죠? 바라기는 각 페이지마다 좀 상징적인 (?) 그림이나 삽화를 하나 넣어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이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게 제가 그림을 정~말 못 그리거든요. 혹시 그림 잘 그리는 분이 계시면 알려 주시면 협업 (?)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그냥 광고하고 있죠? 그림이 아니라면 Caligraphy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 (詩) 에요. 소설 속에 시가 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소설과 시는 좀 다른데요. 하지만 작가가 얘기하는 Story line에서 시적인 면이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원래 시인이었다고 해요. 평생 시를 쓰다가 소설로 처음 쓴게 닥터 지바고라고 해요. 이 작품으로 1958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이 분이 시만 쓰다가 소설로 쓴게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되니까 이 뒤에 미국 CIA가 가담했다는 Conspiration theory도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런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시인이다 보니까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주인공 유리 지바고도 의사이면서 시인이거든요. 그리고 소설의 느낌이 시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는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소설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와 소설이 함께 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제 소설에 시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Bucket list 중에서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기가 있는데요 이건 내년 봄부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하는 계획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해요.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보니 한국어를 많이 잊게 되었어요. 단어도 많이 생각나지 않고요. 모국어인데 몇 안되는 단어가 점차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도 들었고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많을수록 삶이 풍성해 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저는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참고로 제가 고등학교 때 가장 못한 과목 두개를 꼽으라면 하나는 화학이고 하나는 국어였는데 화학은 제가 화학자가 되면서 아주 정복 (?)을 멋지게 했으니까 이제 국어를 남은 여생 힘차게 배워 보고 싶어요.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쓸 때에도 도움이 되지 해가 되지는 않을테니까요. 혹시 국어국문학과 공부를 하면서 시인이나 소설가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소설을 쓰면서 제가 사는 삶이 더 풍성해 진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요. 저는 저의 삶에 대한 자전적 소설을 쓰려고 해요. 그리고 좀더 공부가 되어서 중편과 장편소설까지 쓸 수 있는 필력이 된다면 한국의 과학자의 삶에 대한 소설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너무 먼 미래의 꿈이겠죠. 이제 햇병아리 초짜 초절정 하수 소설가의 시작이니 언제 장편 대하소설을 쓰겠어요. 하지만 일단 방향은 그렇다 이겁니다. 흠하하.

한국에서 주로 공부했고 직장 생활도 하다가 미국에 넘어와 산 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많은 경험을 했어요. 저는 행운아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사람들도 제가 행운아라고 많이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일에서 저는 제가 가진 재능이나 실력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운아라고 항상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살면서 이런 행운을 누리며 사는 분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저는 행운아라는 마음으로 살아 갑니다.

그런데 그 행운아가 겪었던 수많은 불운 (?)과 고난을 말 못하는 느낌이 저를 항상 조여왔던 것 같아요. 어떨 때에는 뜬 구름 없이 친구들에게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해서 모두를 당황 시킨 적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말을 하고 나면 항상 지나고 후회했어요. ‘그 말을 괜히 해 가지고…’ 이렇게요. 그런데 그래도 이 얘기를 어딘가에 쓰기는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에세이를 쓸까 했는데 그건 너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좀 세상에 나자신을 벌거벗은 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어쩌면 저 자신을 너무 미화 (?)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었어요. 그래서 대신에 저와 같거나 제가 가지고 싶었던 어떤 Character를 창조해서 거기에 저의 못다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단편소설 아니 소설을 쓰기 시작한거죠.

그리고 시도 쓰고 있어요. 얼마전에 첫 시를 발표했죠. 두번째 시도 써 놓기는 했는데 발표를 할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세번째 시도 쓰는 중인데 글이 마춰지지를 않아요. 누군가에게 제 시를 발표한다고 해서 무슨 감흥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 큰 기대는 하지 않는데 제자신을 위해 쓰는거에요. 기억에 담아 두려고요. 저의 당시의 진짜 감정을 시로 남겨서요. 시를 써 보니까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었어요.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별말을 다 하네요. 이만 이번 글은 마치려고 합니다. 저의 꿈이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네요.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삶에도 꿈이 전진하시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BOOK CLUB (6) 신경숙과 최용이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번주에 읽는 세번째 책은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인데요 서울대학교 나민애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소설 편에서 소설가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신경숙님에 대해 더 알아 보기로 했는데요 그러던 중에 신경숙님이 소설가가 되도록 조언을 주신 야학 선생님 최홍이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단 결석 반성문이 대학노트 20페이지 “너 소설 써 봐라” – 국민일보 5/12/2015

1979년 야간인 서울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던 열일곱살 여공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았다. 1주일 동안 무단결석을 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다시 나온 여공에게 “어떤 얘기라도 좋으니 네 얘기를 써 봐라. 뭘 하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대신 학교는 빠지지 말아라”고 말했다. 여공은 대학노트에 20쪽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반성문 대신 이 글을 받아든 선생님은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48·사진)씨와 최홍이(69) 서울시 교육의원의 아름다운 사제(師弟) 스토리다.

작가 신경숙 ① – 조선일보 Top Class 2023년 2월호

“그러다 문득 이렇게 남아 있는 자료가 없으면 소설가로서는 더 풍요롭게 작업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역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그 한 장의 종이로 리진의 일생을 모두 내가 채워 넣었어요. 그 시간은 내게 개화기 시대의 조선과 유럽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실존했으나 사라진 어떤 인생을 소설가로서 그려내는 충만한 시간이기도 했죠. 《리진》을 쓰면서 처음으로 소설 쓰는 근육 같은 게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생각만 하고 쓰다가 멈추기를 계속했던 《엄마를 부탁해》도 《리진》을 내고 나서 쓸 수 있었으니까요.”

“내 반성문이 적힌 그 노트를 돌려주며 선생님이 ‘너는 소설가가 돼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던 그 말씀만 기억나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지, 시인이 될 것인지, 소설가가 될 것인지 그 외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암담했던 나에게 정말 별이 쏟아지는 듯한 말씀이었어요.”

작가 신경숙 ② – 조선일보 Top Class 2023년 2월호

작가가 된 후로 가장 건강하고 행복했을 때는요.
“《풍금이 있던 자리》에 수록된 단편들을 쓰던 시기였어요. 스물두 살에 등단했지만 서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작품 쓰는 일에 온전히 시간을 내준 적 없이 살았어요. 계속 이렇게 지내면 서른이 돼서 너무 허탈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딱 1년만, 작품 쓰는 일에 몰두해보겠다며 다음 날 일터로 나가던 방송국을 그만뒀어요. 나에게 1년의 시간을 준 것이죠. 살 것 같았어요. 1년이 지난 해가 마침 아버지 회갑 때라 책이 나와서 아버지 회갑상 앞에 바쳤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 책을 독자들이 많이 읽어줬습니다.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뿐더러 독자들 덕분에 넓은 책상과 작업실까지 갖게 되었고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됐죠.

신경숙 작가님의 은사이신 최홍이님의 삶도 쉽지 않으셨습니다.

빨갱이로 몰려 죽은 아버지, 아들은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 홍주일보 7/2/2021

최홍이는 1969년 공주교대를 졸업한 후 같은 해 중등교원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후 중등학교 3곳을 거쳐 1979년 영등포여자고등학교에 부임했다. 당시 영등포여고 교장은 “최 선생은 서울대도 안 나왔잖아요, 4년제 정규대학도 못 나왔으니 야간반을 맡으라”고 했다. 최홍이는 “당시는 야속했지만 열의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야간반을 맡지 않았더라면 신경숙이라는 인재를 만날 수 없었겠죠”라며 진주를 찾은 인연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최홍이는 “경숙이뿐 아니라 그 시절 만났던 제자들은 모두 시대를 함께 나눈 분신 혹은 동료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소설가 신경숙은 그의 장편 ‘외딴방’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힌다. 신경숙의 ‘외딴방’은 서울로 올라와 외딴방에 살며 구로공단 전자부품회사에 다니던 10대 소녀의 젊은 날을 그린 자전소설이다. 작품 속 ‘나’는 공장에 다닌 지 1년 만에 산업체야간학교에 입학하지만 주산·부기 위주의 커리큘럼에 흥미를 잃고 방황한다. 그때 ‘나’를 붙잡아준 이는 최홍이 국어교사다. ‘나’의 글재주를 눈여겨본 그는 “주산은 안 놓아도 된다”며 평론이나 시 보다는 소설 쓰기를 권한다. 이후 ‘나’는 최홍이 교사가 건넨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필사하며 소설 습작에 들어간다. 야학은 신경숙을 소설가로 만든 ‘인큐베이터’였던 것이다. 

신경숙 작가님께서 15세때 정읍에서 서울로 올라 오셔서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주경야독을 하고 소설을 습작하면서 소설가로 성장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신경숙님의 책이 좀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신경숙 작가님의 소설을 전작주의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69) 무용지용 (無用之用)

안녕하세요 보스턴 언우 (言友) 임박사입니다.

김은숙 작가님이 쓰신 ‘미스터 션샤인 (Mr Sunshine)’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요 그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 중에 변요한 배우님이 연기한 김희성은 여주인공 김태리 배우님이 분한 고애신을 연모하고 도와주는 역할로 나오죠. 아버지는 중인 출신으로 돈을 위해 친일 부역자로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이었지만 그 아들인 김희성은 일본에 유학해서 문학을 공부하고 귀국해서 나중에 신문사를 세워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

이 김희성의 대사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요.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無用) 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나는 글의 힘은 믿지 않소. 허나 귀하는 믿소.” “글도 힘이 있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오. 애국도 매국도 모두 기록해야 하오. 그대는 총포로 하시오”

고애신은 총과 포로 즉, 무력적 방법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김희성은 글로 쓴 기록도 힘이 있다고 강변하죠. 결국 글은 역사에 남김으로써 궁극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저는 오랜 기간 거의 모든 직장 생활 동안 자본주의에 유용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요즘 생텍스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신적인 것, 감정적인 것, 의식적인 것 등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학자로 이성적인 것이 항상 우수하다 혹은 탁월하다는 생각에 거의 사로잡혀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더 크게 반응하고 오래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과연 이성이 맞는가? 사람은 감정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심리학에 대한 책, 철학자의 책 등을 읽으면서 점차 깨닫기 시작했죠. 정말 감정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철학의 방향도 점차 실존주의를 넘어 미학적인 것으로 점차 발전하고 감정적인 면이 강조된다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문학의 필요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아주 긴 논문이나 학술서 보다 한 장의 그림이 더 많은 것을 순간적으로 내포할 수도 있고요 한편의 시가 장편 소설이 오랜시간 말하던 것을 아주 짧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거죠.

그러다 보니 예술, 미술, 음악, 시, 노래, 소설, 에세이 같은 것에 대해 점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니즘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데에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무용지용 (無用之用)’입니다. 무용지용은 장자가 한 말인데요 ‘언뜻 보기에 쓸모없는 것이 오히려 큰 구실을 한다‘는 뜻입니다.

[김승호의 룸펜교사] 무용지용(無用之用), 교육의 쓸모 – 교육플러스 5/7/2021

장자는 제자들과 길을 가던 중 잎만 무성한 나무를 나무꾼이 쓸모가 없다고 해서 자르지 않는 것을 보고 “저 나무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기 수명을 다 한다“고 말했다. 장자의 무용지용은 이른바 발상의 전환이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쓸모가 없을 수도 혹은 쓸모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 된다. 곧고 굵은 나무는 인간에게 쓸모가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일찍 베인다. 반면에 곧지 않고 잎사귀만 가득한 나무들은 쓸모없어 나무꾼에게 외면 받지만 오히려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산다.

예술과 철학이 무용지용의 예로 하이데거가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술과 철학이 모든 진리의 생성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무용지용의 미학 – 이런 삶을 즐기며 지향하며 살아가 보고 싶습니다.

BOOK CLUB (5)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의 비행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를 옮긴 후에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일주일에 이틀은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 (?)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일하는 날을 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서 좋고요 또한 집에서 일하는 날은 마치 휴가를 즐기듯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일하는 날이 일이 없다거나 강도가 적다는 뜻이 아니고요 환경이 회사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는 조금더 편안하다는 것이죠. 옷도 평상복 차림이고요 아침에 라떼를 한잔 마시고 쿠키를 먹으며 미팅과 컴퓨터 작업을 하지요.

제가 우리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Porch인데요 저희 집에 와 본 사람들은 이 공간을 가장 좋아하곤 하구요 이 공간은 옆의 3면과 바닥이 스크린으로 가려져 있어서 벌레가 들어오지 않는 반면 자연의 소리와 바람은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이 공간에 있으면 우리 고양이 모나가 제 곁을 지키곤 합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모나에게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과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양한 동물친구들 – 칩멍크, 토끼, 새, 칠면조 등등 – 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죠.

오늘은 조금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 제가 이번 주에 읽은 책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사실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특별히 읽어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책꽂이에 그냥 방치되어 있던 책이었는데요 하도 유명한 책이다 보니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서 기쁜 마음과 벅찬 마음을 가지고 이 책에 대해 독후감과 함께 제가 조사한 내용들, 그리고 생각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오늘 책은

어린 왕자

입니다. 프랑스의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1900-1944, 44세)가 실종되기 이년 전인 1942년에 뉴욕에서 쓰고 일년 후 그러니까 비행기 사고로 실종되기 일년 전인 1943년에 영어와 프랑스로 출간한 책이 이 책입니다.

어린왕자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먼저 작가 소개를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4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게 되면서 몰락한 귀족 가문의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게 됩니다. 생텍쥐페리는 위로 누나 3명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는데 남동생은 15살 때 병으로 죽게 됩니다. 그 죽는 모습이 마치 서서히 나무가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하고요. 이 모습은 어린 왕자가 나중에 뱀에 물려 쓰러지는 장면에서 묘사됩니다. 동생이 죽은 후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 된 생텍쥐페리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 들게 되죠. 원래는 해군 시험을 보았지만 낙방하고 어렸을 때부터 비행술을 배워서 공군 조종사가 됩니다. 생텍쥐페리는 비행기 조종사로 있으면서 처음에는 우편물 수송기를 몰고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등지를 돌다가 이후에는 프랑스 공군 조종사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데요 1940년에 프랑스 괴뢰정부가 세워지면서 그는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31세 때에는 미망인인 과테말라 여성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두사람 모두 외도를 하는 특이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또 함께 했다고 해요.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운전하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고 하고요 착륙을 해서도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이 사람들은 그가 전세계를 비행기로 다니고 직업을 여러번 바꾸며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면면이라고 합니다. 비행기 사고도 많이 겪었는데 특히 1937년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서 거의 죽을 뻔했는데 현지인의 도움으로 물을 먹고 살아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고 하고요. 1942년에 드골이 임시정부를 만든 후 생텍쥐페리를 프랑스 괴뢰정부의 부역자로 공공연히 말해서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고 술에 쩔어 살았다고 합니다. 사실 생텍쥐페리는 괴뢰정부를 공격했는데도 말이죠. 그의 나이 40대는 본래 비행사가 될 수 없는 나이였지만 그는 비행을 하게 해 달라고 졸라서 결국 아이젠하워 장군의 승낙을 받게 되고 대신 5번만 비행하라고 했지만 9번째 비행이 있었던 1944년 7월 31일에 실종이 되게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어린왕자의 화자가 바로 생텍쥐페리이고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비행기 추락사고가 아마도 리비아 사막에 떨어져 4일간 죽을뻔하고 현지인의 도움으로 물을 마시고 살아난 것 그리고 남동생의 죽음, 아내와의 결혼 생활, 사회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왕자는 B-612라는 혹성 (astroid)에 사는 소년입니다. 그 혹성은 아주 작고 두개의 활화산과 한개의 사화산이 있었는데 어린 왕자는 이 화산을 매일 솔로 깨끗이 청소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미 씨앗이 혹성에 날아와 살게 되는데 어린 왕자는 이 장미를 정성껏 키우게 되죠. 하지만 장미는 꽤 까다롭고 요구가 많아서 결국 어린 왕자는 이 곳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어린 왕자가 떠나기로 한 걸 안 장미는 갑자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쉬워 하고요 하지만 어서 떠나라고 합니다.

어린 왕자는 6개의 작은 별을 방문해서 왕, 허풍쟁이, 술꾼, 지리학자, 전등 끄는 사람, 전철수 등을 만나게 되는데요 왕, 허풍쟁이, 술꾼, 지리학자는 자기만 알고 세상과 관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리학자를 통해서 지구에 가면 20억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고 그래서 그는 7번째 별인 지구로 향하게 되죠.

지구에 간 곳은 사막이었습니다. 어린 왕자가 가장 처음 만난 건 뱀이었습니다. 뱀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언제든지 자신이 돌아온 곳으로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고 하죠. 그리고 여우를 만나게 되는데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지는 것 (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화자인 비행 조종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조종사는 사막에 불시착해서 비행기를 고치는 중이었죠. 이 조종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고 목이 말라진 두사람은 사막을 걸어서 마침내 우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종사에게 부탁을 해서 우물의 물을 마시게 되죠.

이러한 일련의 일이 있던 중 어린 왕자가 B-612를 떠난 지 일년이 다가오게 됩니다. 어린 왕자는 뱀을 찾아가 별로 돌아가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어린 왕자는 뱀에 물려 나무가 쓰러지듯 서서히 쓰러지게 됩니다.

어린 왕자를 어릴 때에도 본 적이 있는데요 전 당시 보아뱀 그림을 보고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 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어보니 이상한 책이라기 보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가 특히 좋아했다고 하고요. 사르트르도 인용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본래 생텍쥐페리는 미국에 오기 전부터 이미 작가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는데요 뉴욕에 갔을 때 동화를 써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어린 왕자를 쓰게 됩니다. 이 그림도 생텍쥐페리가 그린 것이죠.

어린 왕자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정말 좋은 교훈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 얘기한 것 중에서 전 두가지가 가장 와닿았는데요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들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현상에 따라서만 산다면 돈을 벌고 겉으로 멋지고 부러울만한 모습으로 사는 것 그런 것이 세상에서는 중요하겠지만 결국 인생의 실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겉으로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이죠. 자신만의 내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길들여지는 것” 즉 다른 사람들과 오랜 기간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길들여지기 위해서는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우는 교수를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여우는 가르쳐 주지만 어린 왕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직접적인 도움은 뱀이 주게 되죠.

또 하나 생텍쥐페리의 삶을 보면서 제가 좀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배운 점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생텍쥐페리가 비행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가능하다는 거죠. 인생을 단지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생각도 했어요. 만약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나중에 쓸 생각으로 미뤄 놓았다면 우리는 영영 이 책을 볼 수 없었겠죠. 물론 생텍쥐페리의 다른 책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인간의 대지’라는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송태효 교수님의 논문 “실존주의적 직업관 이해”라는 제목의 자료를 링크합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다양한 주제들과 배경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린 왕자를 읽고 생텍쥐페리의 저서를 전작주의로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어 번역서는 그리 많지 않군요. 영어 번역본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스턴 시인 (1) 엄마 소풍 오시는 날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제 곧 8월이 되겠군요. 8월은 저의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가신 날입니다. 벌써 8년이 되어 가네요. 올해에도 동생들과 함께 추모예배를 드릴텐데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군요. 얼마 전에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요 이 드라마에서 손석구 배우가 연기한 남편은 천국의 우편배달부였죠.

저도 우리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서 잠시나마 휴가를 나와 우리와 소풍을 가는 걸 상상해 봤어요. 그래서 졸작이지만 시같은 느낌을 내 봅니다.

엄마 소풍 오시는 날

  • 엄마 소풍 오시는 날
  • 식초밥
  • 달걀, 단무지
  • 시금치 돌돌말아
  • 맛있는 엄마 김밥
  • 엄마 소풍 오시는 날
  • 새벽별
  • 예쁜 치마
  • 하얀 셔츠
  • 화사한 스카프
  • 엄마 소풍 오시는 날
  • 아침 햇살
  • 정다운 엄마 미소
  • 사느라 지친 우리들 보러
  • 엄마 소풍 오시는 날
  • 구름 벅찬 가슴
  • 파아란 하늘 소식
  • 한아름 안고
  • 빛바랜 사진 속 우리 엄마
  • 우리 향해 활짝 웃고 계신다
  • 엄마 보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BOSTONIAN (59)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 영화 “쇼생크에서의 구원 (쇼생크탈출)”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 곳 보스턴도 7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휴가 기간이 시작됩니다. 벌써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도 있구요 8월에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동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전에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저는 올해 4월말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아직 고작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직장에서 사귀고 알게 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며 그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인생을 느끼고 매일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직장은 예전에 다니던 직장보다는 좀 규모는 작지만 그렇다고 임직원들의 능력과 역량은 탁월하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뽑을 때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저를 선택해 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들 여전히 저를 지지해 주고요 만나면 항상 농담도 하고 함께 웃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터라는 느낌보다는 과학을 매개로 한 어떤 다인종 공동체에 들어온 느낌이 드는 희한한 현상을 만끽하고 있어요. 저희 회사는 창업자들이 인도인 이민자들이어서 그런지 인도인들이 많은데요. 그 전에도 인도인들과 일해 본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다양한 (?) 인도인들을 만난 적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진 다양한 인도인들을 만나면서 매주 신기해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얘기가 길어졌네요. 각설하고 이번 주에는 갑자기 영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봤던 영화 “쇼생크탈출 (Shawshank Redemption)”이라는 오래된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쇼생크탈출은 199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무려 31년전에 개봉된 아주 오래된 영화에요.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느낌이 정말 강렬해서 그랬는지 지금까지도 이 영화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쇼생크탈출은 Stephen King의 소설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라는 중편소설 (Novella)을 각색한 영화입니다.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소설을 원서로 읽고 있는데요 쉽지는 않지만 영화와 또다른 세밀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2차대전이 끝난지 몇년 되지 않은 1947년에 Andy Dusfresne이 Shawshank 감옥에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1966년까지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사실 이 시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없죠. 우리로 치자면 ‘응답하라 1988’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1947년에 인기있던 배우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여배우 Marilyn Monroe나 Rita Hayworth와 같은 배우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죠. 소설의 제목도 그래서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입니다. Andy Dufresne는 30대의 아주 잘 나가는 은행원 간부였는데 그의 미모의 아내가 골프 선생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고 술이 잔뜩 취한 어느날 밤 아내와 골프 선생이 살해 당하게 되면서 주인공인 Andy는 살해 용의자로 재판을 받아 Shawshank 감옥으로 오게 됩니다. 이 감옥은 가상의 감옥이긴 하지만 미국 Maine 주에 위치한 것으로 나옵니다. 소설가 Stephen King이 Maine 주 출신이기 때문이죠.

처음에 Andy는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되죠. 하지만 교도소장의 세금문제를 해결해 주게 되고 교도관들의 세금이라든가 재산 문제에도 도움을 주기 시작하면서 Andy의 교도소 생활이 순조롭게 되는 것 같게 됩니다. Andy에게는 필요한 물건을 구해주고 돈을 받는 교도소 동료가 나오는데요. Morgan Freeman이 연기한 Elis Boyd Redding입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교도소에 적응하게 될 무렵 절도를 하다가 잡혀온 젊은 죄수 Tommy Williams (Gil Bellows 분)이 들어오게 됩니다. Tommy는 결혼한 처지여서 교도소에서도 공부를 하기 원하고 Andy는 Tommy의 고등학교 검정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게 됩니다.

그러다가 Tommy로 부터 자신의 아내를 죽인 진범을 다른 교도소에서 만난 얘기를 듣게 되죠. 이 사실을 알게된 Andy는 교도소장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며 재심을 받고자 하지만 이미 자신의 세금탈루 등 비밀을 알고 있는 Andy가 풀리는 것을 꺼려한 교도소장의 계략에 의해 Andy의 재심은 무산되고 Tommy는 이 과정에서 죽게 됩니다.

Andy의 동료 중 도서관 사서를 하며 평생 감옥에서 있는 죄수 Brooks를 알게 되는데 그가 어느날 흉기를 가지고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Brooks가 감옥에서 사면되게 되었는데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진 Brooks가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죠. 결국 Brooks는 사면이 되어 감옥에서 나가게 되지만 결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느날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아침 점호시간에 Andy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되고 그 날 Andy의 교도소 방에서 Rita Hayworth의 사진 뒤로 감춰진 커다란 통로가 발견되죠. 하지만 이미 Andy는 탈출을 하고 교도소장의 비리서류를 언론사에 보낸 상태여서 교도소장은 결국 자살로 마감하게 됩니다. Andy가 탈출을 하기 전에 친구인 Elis에게 Texas에 가서 편지를 찾으라는 얘기를 하는데 Andy가 탈출하고 얼마 후 Elis도 사면을 받게되어 세상으로 나옵니다.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Elis도 어렵다는 생각에 Brooks가 죽었던 곳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나 Andy의 말이 떠올라 Texas에 가서 Andy의 편지와 돈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있는 멕시코의 주소로 가서 Andy와 재회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에서 얘기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 희망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데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희망은 좋은거야. 아마 가장 좋은 것이겠지. 좋은 건 결코 사라지지 않아.)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바쁘게 사느냐 아니면 서둘러 죽느냐)

이 영화는 실제로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투자금의 두배 정도되는 매출을 얻어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긴 수준이었다고 하죠. 그리고 상도 하나도 타지 못한 무관의 제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1, 2위에 나오는 영화 중 하나라고 합니다.

The Guardian: “Is ‘Shawshank Redemption‘ Really the Greatest Film Ever Made?”

짜투리 정보 중 하나는 여기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거인들입니다. Andy Dufresne역을 한 Tim Robins는 196cm이고요 Morgan Freeman은 188cm이고요 교도소장역의 Clancy Brown은 192cm입니다. 이렇게 장신들이 연기를 하다 보니 Morgan Freeman은 상대적으로 작게 보였죠. 착시현상이라고 할까요?

[공간사회학] 쇼생크 탈출은 실화? 쇼생크 교도소 어디?…아는 만큼 보인다 – 뉴스 스페이스 7/15/2024

이 영화는 가상일까요? 실화일까요?

이 영화는 가상이지만 어떤 실화를 각색한 것입니다.

The real Shawshank Redemption – J. H. Moncrieff 1/31/2017

Andy Dufresne의 실제 모델은 Frank Freshwaters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은 1957년에 집행유예를 받았다가 1959년에 가중처벌로 20년형을 받고 오하이오 감옥에 복역하게 되었고요. 그로 부터 2년후 농촌 노동형을 하다가 도주를 해서 숨어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1975년 그러니까 도망친지 14년후에 West Virginia 주에 있는 Charleston에서 붙잡히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사람이 도망자 생활을 하는 동안 너무나 성실하게 산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지사는 Frank Freshwaters를 오하이오 교도소로 보내는 것을 거부하게 되고 Frank는 다시 잠적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Florida에서 William Harold Cox라는 이름으로 살기도 했고요. 현재는 89세로 Ohio주 Akron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Frank Freshwaters의 별명은 The Shawshank Fugitive (쇼생크 용의자)이기도 합니다. 2015년에 호주 Melbourne에서 붙잡혀 결국 죄를 일체 자백하고 Ohio 교도소에 복역하게 되는데요 그를 아는 수많은 지인들의 투서로 그는 결국 9개월만에 가석방되어 현재까지 자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Frank는 죄를 지은 적이 있지만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로 알려져 있죠.

Frank Freshwaters – Wikipedia

쇼생크 탈출 영화와 소설을 통해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연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매일 챗바퀴 돌듯이 사는 것이 산다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건 그냥 ‘Get busy dying (서둘러 죽느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요. 그렇다고 ‘Get busy living (바쁘게 사느냐)’도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주체적으로 그 목표와 희망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얘기하는 진정한 삶의 이유가 아닐른지요?

BOOK CLUB (4)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정재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아주 오래된 얘기이지만 저는 어렸을 때 “국어”라는 과목을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기도 했는데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주제를 찾으시요”하는 식의 국어 공부법이 저에게 잘 맞지 않은 것이 아닐까? 라고 지금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책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1년에 책을 수백권씩 보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지만 저는 그렇게 다독을 하는 사람은 못되고 대신에 같은 책을 여러번 읽는 식의 “다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 책을 읽기에 좀 어려운 면이 있어서 그렇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은 소설이 저에게는 가장 잘 맞는 장르였고 철학 관련한 책들 – 철학 전문 도서는 아니구요 – 도 좋아하는데요 어렸을 때 국어를 제대로 못 배웠다는 것 때문일까요? 저는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부터 다시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국어국문학과에서 배우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시”에 대한 갈증 (?) 때문이기도 한데요. 소설이나 미술, 음악에 대해서는 제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시”에 대해서만큼은 너무 어렵고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정재찬 교수님의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Youtube를 통해서 정재찬 교수님의 강연은 몇번 들은 적이 있고 조곤조곤 시적인 표현과 좋은 시를 소개해 주시는 감동을 느끼곤 했는데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인생에 대한 주제들 –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 에 대해 좋은 시와 수필 등을 통해서 잘 설명을 해 주셨어요. 특히 좋은 시를 소개하시기 전과 후에 그 시가 의미하는 것들을 잘 소개해 주셔서 저와 같이 시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왜 시를 읽고 암기해야 하는지를 잘 소개해 주신 것 같아요.

이 책 안에서 두,세개의 대중가요가 나오는데요 첫번째 것은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입니다. 양희은님이 엄마이고 악동 뮤지션의 수현님이 딸로서 노래를 하는데요. 참 눈물나는 노래입니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 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왜 엄만 내 마음도 모른 채 매일 똑같은 잔소리로 또 자꾸만 보채? 난 지금 차가운 새장 속에 갇혀 살아갈 새처럼 답답해 원망하려는 말만 계속해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고! 왜 애처럼 보냐고? 내 얘길 들어보라고! 나도 마음이 많이 아퍼 힘들어하고 있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난 엄마의 눈엔 그저 철없는 딸인 거냐고? 나를 혼자 있게 놔둬!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랄 라라 라랄 라라 라랄라 엄마, 나를 좀 믿어줘요! 어려운 말이 아닌 따스한 손을 내밀어줘요! 날 걱정해주는 엄마의 말들이 무겁게 느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게 무섭게 느껴져 왜 몰래 눈물을 훔쳐요? 조용히 가슴을 쳐요? 엄마의 걱정보다 난 더 잘 해낼 수 있어요! 그 무엇을 해내든 언제나 난 엄마의 딸로 다 버텨내고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요!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처럼 좋은 엄마 되는 게 내 꿈이란 거!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엄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단 걸!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바로 내 꿈이란 거!

엄마은 나이만 들었다 뿐이지 인생에 대해 모르는게 여전히 많고 딸은 몸만 컸을 뿐이지 아직 이룬 것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직도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어서 어려운데 좀 엄마가 잔소리를 하시니 힘들고…

이런 마음을 잘 나타낸 것 같습니다. 노래는 운율이 있는 시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이문세님의 옛사랑이라는 노래를 소개해 주셨어요.

그리고 송창식님의 “귀촉도”라는 노래의 가사를 미당 서정주님으로 받은 얘기는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무명의 송창식이라는 젊은 가수가 시를 주지 않기로 유명한 미당 서정주 시인에게 가사를 받고 작곡을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참 대단합니다.

이번 기회에 시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시집을 몇권 사와야 겠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62) 심혜경님 –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7월 중순의 뉴잉글랜드의 여름은 적당히 덥고 또 적당히 건조한 그런 때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재택근무하는 날이어서 Porch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곤충들의 소리, 자동차 소리, 오토바이 소리 등이 어우러져 있고 제 곁에는 우리 사랑하는 고양이가 제 곁에서 편안하게 세상 밖을 구경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일까?”를 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부러워 하는 어떤 분들은 결국 제가 되고자 하는 혹은 되려고 하는 어떤 사람을 먼저 한 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러우면 지는거다 의 글이 저에게는 나름 삶의 희망이자, 촉매제이고 또 한편으로는 도전을 유발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분은 67세의 심혜경님입니다. 심혜경님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라는 책을 쓰신 작가이시기도 한데요. 본래 직업은 도서관 사서이셨습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고 평생을 중앙도서관 사서로 일을 하시면서 새로 들어오는 책을 매일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사셨다고 하는데요. 심혜경님은 50대 초반에 새로운 결심을 하시게 됩니다.

바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죠. 지금까지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작가 ① – 조선일보 Top Class 2022년 12월호

할머니가 가진 스테레오타입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스스로를 ‘공부하는 할머니’라 칭하는 심혜경 작가는 위트 있고 동시에 박식했다. 그는 27년 동안 서울시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했고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니며 영어영문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프랑스언어문화학을 공부했다. 동시에 태극권과 뜨개질, 클래식 기타와 피아노, 다도, 수채화도 배웠다. 지금은 13년 차 번역가이자 공저를 포함해 네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공부는 ‘뜨겁게 불타올라 빠르게 연소시켜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현재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생각이 자라도록 물을 주는 일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카페’와 ‘공부’와 ‘할머니’의 개념이 모두 담을 넘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이 셋은 모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점이 비슷했고, 심혜경 작가는 바로 그 사례였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작가 ② – 조선일보 Top Class 2022년 12월호

매번 새로운 책을 읽으니까요.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에요(웃음). 일을 쉬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처럼 책을 그만 읽고 싶다는 생각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역시 심혜경님은 꾸준한 공부와 독서를 통해서 본인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활력하고 유쾌하게 만들어 나가고 계신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심혜경님에 대한 다른 기사도 있습니다.

[단상]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 한국일보 04/10/2023

지루한 시간을 덜어내려고 인생에 끌어들였던 공부가 어느새 취미가 되어 버렸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여든의 나이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아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미켈란젤로의 좌우명은 “나는 아직도 공부한다.”였다고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나이에 대한 의무감과 선입견이 많다.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공부의 목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두고 즐긴다면, 부담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믿는 만큼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그녀는 예뻤다 – 10/19/2022 50플러스재단

스스로 학구파 아닌 학교파(공부가 아니라 학교 가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라고 하는 그녀는 졸업한 지 오래라 대학원 입학에 도움(석사 학위 취득 때 영어 성적 필요)이 될까 싶어 들어간 방송대(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을 마치고 다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일본학과,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각 3학년에 편입하여 세 개의 학위를 더 받았다. 40여 년 전 학위까지 총 다섯 개다.

토크 말미에 그녀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 연설 중 일부를 들려주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님의 서울대 졸업생을 위한 연설문은 저에게도 마치 저의 회사원으로서의 삶의 졸업을 위한 축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하루 하루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 이걸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난 카페서 공부하는 할머니”…방송대 4개 학사 따고 번역가로 제2인생 – 동아일보 02/23/2022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하루 내내 집에 사람이 없지만 은퇴한 난 카페로 출근한다”며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카공족’이 바로 나”라고 웃었다. 그는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매일 3, 4시간씩 공부를 하거나 번역 업무를 한다. “매일 어느 카페에 갈 지를 고른 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요. ‘집순이’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나를 전환하는 거죠. 경복궁역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 의자, 동네 개인 카페의 창가 자리, 서울 종로구 서촌의 골목길에 있는 한옥 카페 구석이 제 방입니다.”

그는 은퇴 전부터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번역가 양성 학원도 다녔다. 번역을 배우면 원서를 직접 읽을 정도로 외국어 능력이 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취미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다 우연히 번역 업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조금씩 번역 일감을 받다간 사서 은퇴 후엔 출판 번역가로 산다. 이젠 강연회에도 불려갈 정도로 번역가로 커리어를 쌓았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하는 번역가 양성학원에 다니셨다고 하는데요 원서를 직접 읽고 싶어서 시작했던 공부가 결국 은퇴 이후 번역가로 사는 인생 2막의 부캐가 되셨네요. 끊임없이 공부하고 호기심을 갖고 부딪히며 움직이는 것이 결국 심혜경님의 60대의 인생에서 활기를 갖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시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