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27일 (월요일)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절필을 선언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을 한 것도 아니지만 바쁜 직장인의 삶은 어느새 저의 일상을 몇달씩 거르게 하는군요. 몇달 전부터 브런치에 소설을 쓰다가 다시 모든 글을 내리고 새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커리어와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글로 다시 도배질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브런치에는 쓰기가 좀 어색해서 말이 나온 김에 블로그에 제 느낌과 생각의 흐름을 좀 남기려고 합니다.
모태 신앙이라고 하죠?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뜻인데, 저는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시고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아세례 (아기에게 주는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저보다 몇백년 전의 유럽에서는 그 나라의 왕이나 영주가 어떤 종교를 믿는지에 따라 자동으로 크리스찬이 되었다고 하니 그보다는 좀 나아진 것이겠죠.
저는 크리스찬으로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성향을 가졌습니다. 질문이 생기면 해결을 해야 하죠. 그 질문 중 하나가 “요셉”에 대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족장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질문할 게 별로 없어요.
제가 질문하는 요셉은 예수의 양아버지, 마리아의 정혼자이자 남편인 요셉입니다.
유럽에 여행을 가면 저는 항상 대성당을 방문합니다. 모든 대성당에는 항상 똑같은 그림들이나 성상들이 있는데요 예수 주위에 어머니 마리아 (성모 마리아라고 하죠)와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아버지에 대한 건 없어요.
2천년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BC와 AD로 나눠졌다고 하죠? 한국의 역사로는 고조선 때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무슨 여성 인권이 있었으며 무슨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을까요?
특히 부계사회인 이스라엘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의 직업은 테크톤이라고 하는데 돌을 세공하는 석수이거나 나무를 다듬는 목수였을 거라고 합니다. 예수가 자란 곳은 나사렛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인데요 고증에 의하면 전체 인구가 500명 정도 되었을 거라고 합니다. 이런 고루한 시골에서는 더욱더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지 어머니의 역할이 그리 중요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게다가 마리아가 누구인가요?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마리아이다 보니 나사렛 시골에서도 고운 시선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이걸 모두 온몸으로 보호한 사람이 요셉이고 그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장 19절에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요셉은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벙어리가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죠. 누가복음에 보면 12살이 된 예수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3일 밤낮을 찾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렵게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때에도 말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 마리아이지 아버지 요셉은 한마디 말이 없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상한 것은 예수의 형제 중 야고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야고보는 예수에 대해 반대를 했거나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미쳤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난 이후에는 야고보는 교회의 지도자로 변신합니다.
어떻게요?
성경은 완전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침묵합니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심지어 베드로보다도 더 권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와 야고보의 공통분모는 결국 두사람 뿐입니다.
요셉과 마리아
이스라엘에서 13세가 되는 남자는 바 미츠바라는 성인식을 하게 되는데요. 바 미츠바는 율법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12세까지 아버지나 율법학자를 통해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했던 예수의 율법 선생이 누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 율법 선생이 양아버지 요셉이었고 형제 야고보도 마찬가지로 아버지 요셉으로 부터 배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 율법 선생이 무료가 아니거든요. 매우 가격이 비쌌습니다. 노동자 하루 월급의 25%를 내야 그날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테크톤 노동자 계급의 요셉이 아들을 위해 율법 선생에게 돈을 지불할 돈이 없었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셉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요셉에 대한 연구 자료가 제법 있더군요. 물론 많은 부분이 기록에 나와 있지 않아서 예측의 영역이거나 상상의 영역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측과 상상의 영역이라면 소설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요셉의 삶이 어땠을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소설을 써 봤습니다. 어느 정도는 글이 써졌고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나은 듯했지만 캐릭터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가난의 경험은 상당하지만 소년 노동자, 육체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이러다가 전태일 열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1970년 11월 평화시장에서 분신자살을 하신 전태일 열사
그 분의 삶이 궁금해졌고 오늘 어떤 논문을 찾게 되었는데 뜻밖에 전태일 열사께서 글을 쓰는 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33페이지로 된 논문을 아래에 링크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본래 기독교 감리교회에서 교사도 하던 청년이었다고 하는군요. 전태일 열사를 공부하다 보면 예수의 아버지 요셉아나 예수의 캐릭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께서 일기, 수기, 소설 등을 남겨 놓으신 덕분에 그 분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알려졌고 이후에 노동자 소설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글을 쓰셨다는 것을 알고 나니 한결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전태일 재단에서는 전태일 문학상을 줍니다. 아마 이것은 전태일 열사가 글을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역시 사람은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분은 가셨지만 그 분의 글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