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저는 출퇴근을 보스턴 펜웨이 방면으로 한시간씩 하는데 테슬라 자율주행으로 놓고 갈 때는 NPR 뉴스를 청취하고 퇴근할 때는 클래식이나 팝송을 듣습니다. 이런 패턴을 잘 생각하고 정리하면 나중에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사실 가장 중요하게 했던 것은 막내딸 아이와 mock interview를 하는 것이었는데 1시간 동안 준비한 걸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큰딸 내외가 손녀를 데리고 막내가 있는 뉴저지로 갔습니다.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사진만 보고도 흐뭇하네요.
제가 1992년에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한 이래 항암제 연구도 한 적이 있고 암백신 연구도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저의 부모님과 장인, 세분을 모두 암으로 잃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우를 곁에서 본 것이 트라우마가 된 것인지 아니면 연구한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만일 내가 암에 걸린다면 과연 항암제를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생각보다 별로 효과가 없다고 저는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주신 분을 알게 되어 오늘 이렇게 그 분의 삶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남기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분은 이건주님이십니다.
CBS 새롭게 하소서에 2018년 4월 9일에 방송된 것이 유튜브에 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고촌중앙교회 이건주 장로 간증|새롭게하소서
본래는 건설회사에서 중동에 파견되어서 사우디 아라비아, 이라크 등에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1년에 위암3기 판정을 받으시고 5년만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해요. 자녀들을 결혼시킬때까지만 살았으면 해서요. 수술과 항암 치료 끝에 위암은 완치를 받으셨고 카타르에 선교를 가시거나 2002년 월드컵 자원봉사를 하시는 등 나누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게 되었는데 수술은 할 수 없지만 흉수를 제거하고 항암치료를 계속 받으시면서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다시 자원봉사를 하셨고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폐암 환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도움을 주고자 한국폐암환우협회를 만들고 회장을 하시면서 유튜브에 강의도 하셨습니다.
2년 전 윤석열 정부 때 의료파동으로 의사들이 파업을 할 때에는 폐암 말기이심에도 항의 집회를 이끄셨습니다.
폐암 말기 이건주 회장, 의사들에 “관용 보여달라” 호소 – 동아일보 2024년 2월 19일
그리고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전과정을 남기셨는데 심지어 더이상 항암제를 맞을 수 없어서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는 과정까지도 남기셨습니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 회장님은 2024년 5월 19일 향년 78세로 별세하셨지만 돌아가시기 한달 전까지도 블로그는 계속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새로운 아침 – 가나안 바라기, 바빌 2024년 4월 18일 이건주님 블로그
말이 쉽지 이렇게 사는 삶은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데 23년간을 항암치료를 다 받으시고 살아간다는 게 그러면서도 봉사 활동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가요?
참 이런 인생으로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 이건주님의 삶을 보면서 저의 삶도 의미있는 삶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 된다는 희망을 보아서 이렇게 부러우면 지는거다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