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iotech Memoir – Moderna (2) – 죽을때까지 이 걸음으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나의 모더나 이야기 (My Biotech Memoir – Moderna)”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일정한 직업 없이 건축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집을 짓고 되팔고를 반복하시는 바람에 저의 집은 어려서 부터 항상 이사를 다녔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어느날 아버지께서 집을 판 대금을 현금으로 들고 오셔서 온가족이 둘러앉아 그 돈다발을 함께 세고 큰 돈 단위로 돈묶음을 해서 전체 받은 금액을 함께 오랜 시간 센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날은 모두들 그 많은 돈에 신기해 하고 약간의 흥분 속에서 돈다발을 즐겁게 세었는데 그 일이 있고 몇일 후에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이 팔렸기 때문에 우리는 또다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이사를 다니다 보니 오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어느 정도 가까워질 무렵이 되면 우리집은 또다시 이사를 해야했기에 결국 인사도 못하고 친구와 헤어지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는 이사하는 일과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고 하는 일이 친구 좋아할 어린 나이의 소년이 겪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렇게 이사를 많이 한 덕분(?)인지 몰라도 저는 어느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험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건축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차를 운전해서 가끔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계곡이나 산에 데리고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차를 운전하실 때에는 좋아하시는 이탈리아 가곡을 큰 소리로 멋지게 불러주셔서 우리들은 잦은 이사를 하는 어려운 과정 중에도 가족들 간에는 화목함을 나름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쾌활한 성격이셨지만 자신이 4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께서 벌어놓으신 돈을 주식투자로 다 날리시고 그 충격으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려서 부터 아버지 없는 설움과 그 허전함을 느끼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저희 3남매들에게는 언제나 친구처럼 잘 놀아주시고 TV에 나오는 만화영화도 우리와 꼭 함께 보시면서 함께 어린이처럼 즐거워해 주시는 좋은 친구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는 한약방을 하시는 외할아버지의 첫째딸이셨는데 성격이 차분하시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시던 동네가 깡시골이어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충분한 성적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여자가 무슨 고등학교를 가냐는 핀잔과 반대로 인해 중학교까지만 다니게 되어서 항상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셨습니다. 특히 어머니는중학교 때 영어선생님으로 부터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셔서 학교를 졸업하신 이후에도 가끔 저희에게 그 때 배우셨던 영어실력을 보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저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없고 언어 습득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특히 중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어민 영어테이프를 선물받아서 원어민의 발음대로 듣고 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저의 발음이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하게 된 계기가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건축일이 워낙 부침이 심하고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도 부족한 살림을 채우시기 위해서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다만 중졸 학력으로는 하실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어서 화장품 장사를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시면서 주위 아주머니들의 비위를 맞추시거나 야쿠르트 아줌마 일을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린 저는 그런 어머니를 부끄러워해서 친구의 집에서 나오시는 어머니를 못본채하고 숨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어리석은 아들이었던 것이 확실하죠.

그렇게 이사가 잦다 보니 교회도 계속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저희 증조할머니께서 죽으셨다가 기도를 몇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크리스찬이 되셨고 그 이후에 제가 4대째 크리스찬인 오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배경으로 저의 아버지는 신학대학교를 나오셨는데 목회에 큰 뜻이 없으시고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많으셔서 정계에 진출하려는 야망도 있으셨지만 정권이 바뀌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장사를 주로 하시고 계셨던 것이죠. 제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6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희들의 교육을 위해 이제 더이상 이사를 다니면 안되겠다고 결정을 하시고 강남8학군이 있는 선릉역 부근에 28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방이 3개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는 안방을 쓰시고 막내 여동생이 방 하나를 혼자 쓰고 나머지 한방은 저와 제 남동생이 함께 쓰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2층침대에서 저는 2층에서 자고 동생은 1층에서 잤는데 처음에는 2층에서 자다가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서 처음 몇일간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금새 익숙해져서 몇일 지나지 않아 잠을 아주 쿨쿨 잘 잘 수 있게 되었죠.

새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이제 교회도 정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가본 교회는 좀 신기했습니다. 교회가 압구정이라는 무슨 밭 사이에 있었는데 큰 허허벌판에 엄청 큰 천막이 크게 쳐진 그런 천막교회였습니다. 그전에도 천막교회나 비닐하우스 교회는 많이 다녀봤지만 그렇게 큰 천막교회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그 천막교회까지 가는 버스는 딱 한대 뿐이었는데 천막교회 주위에는 진흙탕 가득한 밭을 고르고 그 위에 고층아파트가 올라가는 중이었어요.

그 천막교회는 지금의 광림교회가 되었고 그 때 올라가던 고층아파트는 현대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부모님의 훌륭한 결단과 헌신 덕분에 소위 잘 나가는 강남8학군에서 질 좋은 교육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멀지 않았고 훌륭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인생에서 가장 안정되고 나름대로 밝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본래 신앙이 없는 상태로 교회를 다니시던 어머니는 광림교회를 통해서 신앙을 가지게 되셨고 점차 어머니의 신앙은 깊어져 갔습니다. 반면 아버지는 새로 시작한 화공약품사업을 배우고 성장시키느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그러는 중에 평소 하지 않던 술, 담배, 골프 등에 빠지기 시작했고 어느 시기 부터 이에 대해 어머니와 자주 다투시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환경은 좋은 곳으로 옮겨졌지만 그와는 반대로 가족의 화목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가정 폭력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만 갔고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는 날에는 나는 두동생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근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소리를 밤새 듣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밤 늦게 나타나서는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시는데 이전과는 달리 내 마음속에 가만히 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를 때리시는 술에 취한 아버지와 정면으로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고등학생이 되어 키도 아버지보다 커지고 몸도 좋았기 때문에 몇번 아버지를 밀치고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저항하니 아버지도 결국 포기하고 앉은 채로 몇마디 하신 후 더이상의 폭력없이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 이후로는 더이상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끔 일이 바쁘신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잦아지고 뭔지 모를 위험신호는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그저 기우이기를 바라며 저와 동생들은 학업에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고3이 되던 해 1월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부도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집과 친척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고 어느날에는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상심해 계시고 집에 있는 모든 가구와 집기들에는 빨간 딱지가 여기저기 붙여진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는 집에도 오지 못하시고 경찰에 쫓기는 상태가 되어서 어수선한 상태여서 저는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장남인 저로서는 불안해 하는 동생들을 안심시키는 것과 함께 낙담하시고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로하는데 온통 정신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다행히 어머니는 교회에서 기도하시는 생활을 통해 이 어려운 상황을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계셨고 많은 주위의 믿는 분들이 때로는 음식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돈을 보태 주시기도 하시는 등 어려워진 우리 가정을 돌봐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어머니께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시려고 노력해 오신 것이 이 어려운 때에 도움의 손길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대입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날 그날은 늦가을 날씨가 정말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월 이후로 집에 한번도 오시지 못하고 도망을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수개월이 지나서야 저녁 늦은 시간에 잠깐 집에 들르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이전의 당당했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고 너무나 야위고 의기소침한 거의 노숙자같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살도 많이 빠지시고 목소리에는 전혀 기운이 없으셨어요. 그래도 그나마 그날만큼은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우리 온 가족은 차분한 마음이 되어서 어머니께서 준비하시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파트의 초인종이 울리고 아파트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두명의 건장한 사복경찰이 현관문으로 막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몇일동안 사복경찰들이 우리 아파트 앞에서 잠복해서 아버지가 나타나기만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 닥친 것이죠. 저는 그 순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크게 벌리고 아파트 현관을 막아섰고 아파트의 문이 열린 상태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힘껏 크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수색영장이 없이는 당신들은 한발짝도 이 집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집으로 들어오려던 사복경찰들은 순간 당황한 듯 멈칫하는 기색이었죠. 당연히 수색영장이든 어떤 영장이든 가져왔을리가 없으니까요. 몇차례 집으로 들어오려는 경찰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디서 나에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이렇게 모든 식구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순순히 경찰의 손에 넘겨줄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몇분간 대치하는데 어머니께서 음식 준비를 하시다가 급히 나오셔서 두분의 사복경찰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시고는

“동네 사람들에게 소란을 끼치면 민폐가 되니 잠시 잠깐 저와 함께 나가시죠.”

라고 하시고는 두분의 경찰들과 함께 잠시 나가셨습니다. 경찰들과 어머니가 나간 후 저는 현관문을 닫고 집안을 둘러보는데 어디로 숨으셨는지 아버지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즈막이 저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날 너무도 초라하게 뚜껑이 덮인 변기위에 앉아 있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이지 ‘오늘이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셨다는 듯이 힘없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

그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알았노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현관 밖으로 나가서 저으기 멀치감치 떨어져서 아직도 어머니의 사정을 듣고 있는 경찰들에게 다가가 완전한 체념한 상태가 되어 이제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왠일인지 이 사복경찰들이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네가 이제 와서 네 아버지를 빼 돌리고 우리를 들어오라고 하는 걸 우리가 모를 것 같으냐? 에이씨!”

이러고 경찰들은 돌아가 버리고 그 날의 상황은 그렇게 종료가 되었습니다.

경찰들이 돌아가고 나서 다시 어머니는 급히 저녁식사를 차리시고 우리 모두는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그날 우리가 저녁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특히 저는 경찰들과 짧은 순간 겪었던 초긴장 상황의 극한 대치상황과 이후 다시 경찰들이 돌아와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이미 집에 계시지 않았고 저와 동생들은 어머니의 독려로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저에게 대학을 간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며 이미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입시 공부에서 손을 놓게 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미 몇달간 담임선생님이 몇십만원하던 육성회비를 가져와야 학교를 더 다닐 수 있다고 윽박지르고 이미 최종 통첩까지 받은 상태여서 이제 수일 내로 학교에서 내쳐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조용히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오늘 친구의 어머니께서 저 대신 육성회비를 주시면서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을 얘기해 주셨고 선생님이 교사 회의를 통해서 졸업 때까지는 육성회비를 장학금 형태로 주시기로 하셨다는 감사한 말씀을 해 주셔서 저는 다행히도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마음속으로 이미 대학을 간다는 것은 꿈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이미 가지 않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저의 그런 마음을 모르신채 교회에 가셔서 열심히 저를 위해 매일밤 다른 학부형들과 목사님과 대학입시를 위한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제 몇 달이 지나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터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교과서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는 접어두고 이제 대신 그동안 보지 못한 책을 몇권 읽어볼 요량으로 아버지의 책꽂이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저의 평생의 지침이 되어 준 두권의 철학책을 찾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책은 함석헌님의 “씨알은 외롭지 않다.“였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씨알”은 저와 같은 민초를 얘기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치열하게 사셨던 함석헌님의 삶과 삶의 철학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함석헌님은 군부독재시절 수차례 감옥에 가시게 되셨는데 본인은 그것을 오히려 “대학에 간다”고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감옥 안에서 사색하며 배운 것이 대학을 다니며 배운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신 것이죠. 함석헌님도 크리스찬입니다. 함석헌님이 치열한 삶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유지하고 평정심을 찾으시는 모습을 책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이 책을 통해 저는 저의 현재 어려운 상황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씨알은 외롭지 않다”를 다 읽고 나서 저의 어려운 상황을 이길 힘을 얻은 저는 다른 함석헌님의 책에 손길이 갔습니다. 그 책은 “죽을때까지 이 걸음으로“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함석헌님의 저항과 투옥을 하게 된 배경 등 그 분의 인생이 다양한 우여곡절과 질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은 한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갈 것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덤덤하게 쓰신 책이었습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저는 지금의 상황에 흔들리기 보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지 간에 그 상황이나 결과에 흔들림이 없이 내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올곳이 흔들림 없이 가면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꿈을 포기한 어린 저에게 단비와 같은 것이었고 지금까지도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수년이 지나 나중에 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아버지는 함석헌 선생님을 꽤 존경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적인 분이셨는데도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대학교 때 읽은 이후로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아버지의 책장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이 귀한 두권의 책을 통해서 아버지의 부재를 견딜수 있고 이후 저의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견뎌나갈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헌 선생님께서는 몇년전 세상을 떠나셨지만 선생님의 힘있는 어조는 저의 삶 속에 여전히 남아 힘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 글도 혹시 어려운 가운데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분에게 제가 어려서 함석헌 선생님의 책을 통해 힘과 결의를 다졌듯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y Biotech Memoir – Moderna (1) – Prelog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몇분이 그동안 저에게 제안하시길 Moderna에 다녔던 경험을 책으로 써서 나누면 좋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랜 기간 곰곰히 고민을 하다가 이제 그래도 시작은 해보자는 생각으로 블로그에 그동안 제가 살면서 느끼던 경험들을 조금씩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이 글은 제가 젊었을 때 어려운 상황들, 이루려던 꿈, 그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들에 대해 조금씩 적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초고는 항상 부족한 법이지만 블로그의 특성상 글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을 것 같고요. 다만 제가생각하는 생각의 틀의 한도안에서 써 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저의 책꽂이에는 제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지침이 되어 준 몇권의 책이 있는데요 이 책들은 저를 북돋아 준 좋은 책들이고 멘토들입니다. 그 책을 아래에 열거해 보려고 합니다.

Book Club (1) – Medicine, Science and Merck by Roy Vagelos and Louis Galambos – 이 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Merck의 CEO이셨고 Regeneron의 Chairman 으로 30년을 섬기신 Roy Vagelos 박사님의 인생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이 분의 책을읽을 수 있었던 것은 참 우연히도 제가 다니던 이전 Biotech 회사가 Merck에 M&A되면서 Merck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우연히 회사에서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읽어도 좋다는 책이었고요 이 책은 이후 저의 커리어에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Roy Vagelos 박사님은 Merck의 80-90년대 중흥기를 이끄신 분으로 그 기간동안 본인이 겪었던 신약개발 스토리를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해 주시고 계십니다.

두번째 책은 “성경대로 비즈니스 하기 Proverb 31“- 하형록 지음 – 저의 오랜 교회친구가 우연히 보스턴을 방문했다가 저에게 책 두권을 선물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책이고 다른 하나는 하형록 대표님이 쓰신 다른 책인 “성경대로 세상살기 WISDOM 31″입니다. 두 권이 조금 입장은 다르지만 같은 분이 쓰신 만큼 내용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제가 써야 하는 글도 결국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데 이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하형록 대표님은 자신의 개인적인 자라온 배경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나누어 주심으로써 자신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언제 하형록 대표님의 이 책에 대한 저의 독후감이 블로그에 올라올 날이 있으면 좋겠네요.

세번째 책은 “Genentech – The Beginnings of Biotech” by Sally Smith Hughes – 이 책은 우리에게 바이오텍 회사라는 것의 최초의 시작인 Genentech의 회사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얘기한 책입니다. 개인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회사의 스토리입니다. 현재 Genentech은 스위스 Roche사에 합병되어 Roche/Genentech으로 보통 얘기하는데 여전히 좋은 신약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Moderna는 시작부터 Genentech을 항상 바탕에 두고 회사에 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Genentech도 시작은 해고된 어떤 Venture Capitalist의 집념과 의지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마치 Moderna가 Flagship Pioneering이라는 Venture Capital Firm의 수년간의 Incubating으로 만들어진 것과 유사하죠.

마지막으로 네번째 책은 “The Amgen Story” by Duncan – 현존하는 가장 큰 바이오텍이고 Amgen은 미국의 30개 대표기업을 모아둔 “Dow Jones Industrial Index”에 바이오텍 대표기업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Amgen은 제가 Moderna의 미래의 모습이 어떨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디딤돌이 되는 회사입니다. 최근에 은퇴를 하셨지만 Pandemic 동안 Moderna의 CFO 이셨던 David Meline도 Amgen의 오랜 베테랑이셨고 저희들에게 Moderna가 얼마나 커질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라고 Amgen의 경험을 빗대어 자주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4권의 참고문헌 혹은 안내서를 바탕으로 이제부터 제가 살아오게 된 Biotech 여정과 그 여정에서 만난 Moderna에서의 일들에 대해 오로지 공개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이 글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거인의 어깨에 기대어 저는 지금까지 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지금까지 얻은 경험들이 저의 Biotech 여정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고 감히 예상해 봅니다. 돌이켜보면 신기하게도 저는 매번 안락함에 안주하기 보다는 모험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고 새로운 신약 플랫폼의 발견 – 환자들이 평생 먹는 약이 아니라 환자들이 완치될 수 있는 신약 개발 플랫폼의 개발 – 을 위해 지금까지 커리어를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모험은 Pandemic이라는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시기에 Moderna와 Messenger RiboNucleic Acid (mRNA) 시대의 도래를 알릴 수 있는 큰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이런 과정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나거나 기획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었고 그 소명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말하는지는 이 글이 써 나가는 과정 중에서 조금씩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저에게는 어쩌면 필연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새로운 완치신약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서 제가 그랬던 것 처럼 모험에 뛰어든 많은 한국인 과학자들과 수많은 훌륭한 창업자들이 불철주야 연구실과 펀딩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저의 이 글이 미래를 단순히 예측하거나 어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해 나가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어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혹시 저의 어린 시절과 같은 갈바를 알지 못하는 어려움과 가난, 고통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저로서는 제가 쓰는 이 글의 수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저의 서문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Lexington의 한 서고에서 이 글을 바칩니다.

“In God We Trust in Our Future for All.”

내가 쓰는 나의 삶 (19) – The Next Chapter – 내 인생 계획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다니는 미국 교회는 Grace Chapel 이라고 하는 교회인데요 얼마전에도 제가 이 교회에 대한 저의 생각을 잠시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내가 쓰는 나의 삶 (17) – 중꺽마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은 Pastor Bryan Wilkerson 목사님이신데요 2000년부터 지금까지 23년간 저희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번주에 내년 5월까지 목회를 하시고 사임하신다는 발표를 하셨습니다.

제가 몇분의 담임목사님이 바뀌시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게 되었는데요 어떤 때에는 이와 같이 좋은 과정으로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분쟁과 혼돈의 과정으로 되기도 하더군요. 사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담임목사님이신 Pastor Bryan 목사님께서 많이 힘드셨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제 팬데믹이 끝나고 나니 사임을 결정하시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설교 중에 2000년에 우리교회에 오시기로 결정하시는 과정에서 이전 담임목사님이셨던 Gordon MacDonald 목사님과 통화해서 왜 교회를 사임하시는지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교회에 새로운 리더쉽이 세워져서 새로운 장 (The New Chapter)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ryan목사님께서 이번 사임을 결정하시고 다시 Gordon 목사님께 전화하시면서 23년전에 Gordon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자신이 하고 있더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1년여간 새로운 담임목사님을 청빙하고 세우는 리더쉽 변화과정을 겪게 될 것 같은데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되어지길 바랍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장 (The New Chapter)“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지금부터 몇년에 걸쳐 중요한 인생 이벤트가 있는데요.

2023년에는 첫째에 대한 모든 의무는 끝나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사가 여전히 성장가도에 있기 때문에 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시기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Consulting 1인 기업을 만들어서 활동을 시작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큰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서서히 대체할 수 있는 저만의 직업을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에요.

2028년에는 막내의 대학졸업이 있습니다. 이 때까지가 아마 가장 많이 돈이 들어가는 시기가 될 것 같고요. 이 시기까지 가능하면 현직장 또는 지금 수준 이상의 급여를 받는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5년정도의 기간이 되는군요. 저의 1인 기업이 이 시기까지 활발하게 될 수 있도록 마케팅을 잘 해 놓아야겠죠.

2030년에는 제가 SSN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됩니다. 62세이니까 70% 수령이 되는 시기이고요. 이 나이까지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을 현재로서는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 직장이나 아니면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한다고 가정해도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 때까지면 1인 기업이 결과를 내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1인 기업을 창직하고 7년여정도를 꾸준히 Consulting을 한다면 직장에서 버는 월급의 반 이상은 1인 기업에서 벌 수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모아둔 자산이 돈을 벌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2033년에는 제가 Medicare를 받을 수 있는 65세가 됩니다. 2030-2033년 사이에는 제가 풀타임보다는 파트타임으로 전환하면서 근로시간을 매년 주10시간 정도씩 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고 보다 의미있는 일에 투자하고 싶어요. 저의 1인기업이 이 시기에 일정한 수입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구요. 2030년부터 약 3년간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401(k)나 IRA를 조금씩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2034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창업가 (Entrepreneur)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수입에 따라 다르겠지만 67세 정도에 SSN 을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정도 지난 이 시기를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벌일 수 있는 시기로 생각을 하고 지금부터 차근 차근 준비하려고 해요.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정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으로서 해야할 저의 직분 (?)을 잘 감당하고 이제 제가 새로운 사람들과 일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저의 “새로운 장 (The New Chapter)“에 대한 나름의 계획입니다.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이 보는 사람에 따라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보다는 저 자신을 위한 계획표를 남긴다고 하고 싶습니다.

저의 롤모델인 “김민식 PD”님의 말씀을 여기에 남깁니다.

ChatGPT 시대에 나는 창의적인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경쟁이 적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강연에 시간을 많이 쏟으신다고 해요. 저도 “글로벌 바이오텍의 발전과 미래 희망”에 대해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싶어요.

내가 쓰는 나의 삶 (18) – 경제적 자유가 주는 4가지 “좋은” 것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반드시 Internet이나 Youtube에 있는 내용들이 사실이거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대략 요즘 MZ세대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경험을 토대로 Youtube에서 얘기되는 “FIRE (경제적 자유)“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특히 지금의 MZ세대들이 우리와 같은 Millenium 세대에 비해서는 더 많이 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저도 20여년전에 Venture Capitalist로 일을 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려운 가정환경을 조기에 극복하고 평생 ““로 살아야하는 생활을 벗어나 진정한 ““으로 살고 싶었거든요. 물론 당시에는 FIRE라는 개념도 없었고 갑이라든지 갑질이라든지 하는 등등의 단어도 없었지만 5년간 다녔던 대기업 생활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이 저를 아마도 이런 것에 일찍 눈 뜨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그 이전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아버지 회사의 부도와 대학교 1학년 봄에 겪었던 아파트에서 통채로 쫓겨났던 기억들 속에서 피부와 뼈속까지 느끼게 된 “슈퍼을”의 삶을 살기 시작했던 당시의 제가 이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슈퍼을의 삶은 저와 저의 가족들을 제가 대기업에 입사하고 수년이 지나기 까지 10년 넘게 괴롭혔습니다.

제가 겪은 “을”의 삶은 그렇더라구요. 계속해서 빚을 갚고 있고 “을”이 이자와 원금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갚고 있으면 갚을 수록 “갑”은 편안히 앉아서 “을”이 보내주는 원금과 이자를 받고 그것으로 또 다른 투자를 해서 자산을 불리고 있고 반면에 “을”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번 돈을 족족 “갑”에게 갖다 바치고 있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빨리 끊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절박함이 저에게는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느낀 감정은 아래의 그림이 잘 나타내 주고 있죠. 을은 결국 갑을 위해 평생 봉사하다가 일찍 생을 마감하는…뭐 이런거요.

그래서 더 절박했던 마음이 있었고 다행히도 어느 시기를 넘으면서 평생 적자의 삶은 분기점을 넘어 드디어 흑자의 삶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이런 삶이 시작되고부터 저에게 질문이 들기 시작하는거에요.

경제적 자유를 얻은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동안 열심히 돈을 벌고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애쓰다보니 어느새 나이가 들고 아무런 취미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저의 삶을 열심히 돈을 위해 갈아넣기만 하다 보니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더라는 거죠.

또 하나는 돈을 이제 벌기만 하면 되는가?인데요. 가만히 상황을 돌아보니 저는 그저 돈을 벌기만 할 뿐 쓰는 사람은 따로 있더군요.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이 돈을 쓰는 구조는 아닌거였던 겁니다. 이런 지경이라면 가계는 흑자가 되었을지 몰라도 저는 여전히 “을”인 상태였던 거죠.

그래서 그 때부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어떤 정신과 의사분의 글을 읽으면서 무력감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고요.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1)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 (2)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아무것이나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저의 감정을 솔직히 일기에 쏟아붓기 시작했죠. 일기를 쓰다보니 정말 감정에 쌓였던 묵은 생각들이 서서히 녹아져 가고 저 자신이 점점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 4개월쯤 지나서 다시 제가 쓴 일기들을 읽어봤죠.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제가 3, 4개월동안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고 있더라구요. 조금씩 표현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거의 천편일률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깨달았죠.

“머리에 들어가는 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빈곤하구나. 책을 읽어야 하는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 책을 읽거나 Youtube에 나오는 좋은 강연들을 책상에서 노트하며 읽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Youtube에서 독서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저에게 정말이지 크나큰 깨달음이었습니다. 현슴원님의 독서법입니다.

현승원님의 독서법은 이렇습니다.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거나 형광펜을 치면서 배우려는 자세로 읽어라.

한번만 읽지 말고 다 읽고 나면 다시 밑줄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라.

반복해라.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을 때까지.

마지막은 “반드시 배운대로 실천해라!”

이 독서법은 제가 그동안 해 온 독서법이 현학적이기만 할 뿐 전혀 창조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현타”해 준 것이었고 저는 이 분의 말씀대로 독서법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일기의 내용은 이제 독후감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결심을 심는 중요한 자료실이 되어가기 시작했죠.

이후 저는 중요한 일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것이죠! 바로 지금 쓰고 있는 이 블로그를 말이죠.”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게 뭘?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지만 블로그는 일기와 달리 “공유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블로그를 쓰면서 부터는 일기를 쓸 때보다 보다 더 솔직해 질 수 있게 되더군요. 그리고 검색할 수 없는 일기와 달리 블로그는 제가 메뉴에 잘 보관만 해 둔다면 언제든지 저의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찾아낼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저의 생각의 흐름들을 정리할 수 있고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블로그 공간은 그야말로 “나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맨처음에 블로그를 쓸 때에는 지금과 같은 글이 도배를 할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시작할 때 저는 “불가지론적 (Agnostic)”접근을 했거든요.

“그냥 아무것이나 생각나는대로 쓰자. 편집도 하지말고 그냥 쓰자. 3년만 꾸준히 쓰자. 가능하면 매일 글을 쓰자. 그러다 보면 블로그가 알아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무작정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제 꽤 오래 시간이 되어서 글이 300개에 이르게 되었어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스스로 느끼는 “경제적 자유 (Financial Freedom)”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깨닫게 된 경제적 자유는 4가지 “좋은”것을 하는 거에요.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에요.

지금도 자유와 이유, 버킷리스트 등을 쓰고 있지만요. 이런 도구들을 통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글을 쓰면 쓸수록 점점 선명해 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나에 대해서 말이죠. 좋아하는 일을 늘려가는 중이죠.

  • 블로그를 쓰는 걸 제가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블로그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 커리어코칭하는 걸 제가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커리어코칭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책을 읽는 걸 제가 좋아하죠. 그래서 밑줄 쫘악 쫘악 그어가며 책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등등등….

둘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혼자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처음에는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이유가 바로 저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죠. 사람들을 만나고 제 소개를 하고 대화를 시작하고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모임에서 마음 맞는 분을 만나면 다시 링크드인 친구맺기를 하고 다시 따로 일대일로 만나기 시작했죠. 페이는 주로 제가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안”에는 제가 돈을 쓰는 것이 전혀 이상하거나 손해본다는 느낌이 없었죠.

셋째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에” 하는 것입니다.

자유란 저에게 있어서 공간이라기 보다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의 시간!!”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주로 저녁이 됩니다. 저녁시간에 주로 블로그를 쓴다거나 중요한 논문을 읽고 바이오텍 기술이나 스타트업을 분석하고요. 아니면 운동을 하거나 잠을 잡니다. 하하하.

넷째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 좋아하는 공간을 찾는 것이 저에게 중요했는데요. 다행히 몇년전에 이사한 저의 집에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나요. 물론 어떤 경우에 독립한 큰딸이 오면 제 방을 당분간 빌려주기도 하지만요. 그 공간은 엄연히 저만의 공간이죠.

아직 제가 좋아하는 도서관을 만나지 못했는데요. 시간을 들여서 제가 사는 시 이외에 좋은 도서관이 어디 있는지 알아볼 요량입니다. 책이 많이 있는 곳이면 좋겠고요. 젊은 사람이 많이 공부하는 그런 도서관이면 좋겠어요. 대학 도서관이면 더 좋을 것 같구요 아니면 공립 도서관도 좋아요.

최근에 찾은 좋아하는 공간은 저의 Gym인데요. “Life Time”이라고 합니다.

나의 운동일지 (13) – Gym을 가다

이 공간은 참 다양해요. 아직은 3층에 있는 Gym을 주로 이용하는데요. 제가 더 많은 시간을 저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아마 이곳에 있는 일하는 공간이나 Cafe, 식당, Philates나 Zoombar, Pickle ball Class, 농구장 등도 제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하나 찾은 곳은 그림을 좋아하는 제가 갈 수 있는 “Museum of Fine Arts“입니다.

그 이외에도 몇가지 공간이 더 있는데요. 작년에 한번 방문을 한 곳인데 “Hammond Castle Museum“이라고 Glouster, MA에 있는 개인 박물관인데요. Hammond라는 분은 2차대전때 엔지니어입니다. 이 분이 주파수 연구를 하신 분인데 2차대전때 잠수함에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발명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버신 분이에요. 그 분이 살던 집을 성처럼 만들어 놓았고요 이 공간에는 다양한 도면들이 있어서 한참을 봤습니다. Hammond의 책과 서재 등도 있어요. 함께 갔던 아내는 지루해 했지만요.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가에 위치해서 아주 좋더라구요.

제가 다니는 교회도 참 좋은 곳이에요. Grace Chapel이라고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이라는 책을 쓰신 Gorden MacDonald 목사님이 오래 시무하셨던 교회이고요 지금은 Bryan Wilkerson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십니다.

1948년에 5가정이 목사님 없이 시작한 교회이고요 5년이 지난 후에 목사님을 청빙하고 1959년에 지금의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주위의 어려운 교회들이 이 교회에 자기 교회를 내어놓는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5개의 지역에 캠퍼스가 있습니다. 사회 봉사와 선교를 열심히 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공간들을 계속 찾아가는게 아마 제가 해야할 일이겠죠?

정리하면 제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일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내가 좋아하는 시간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저의 삶이 비로서 “을”의 삶에서 “갑”의 삶으로 서서히 넘어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나도 축하해!!

내가 쓰는 나의 삶 (17) – 중꺽마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이게 나이 때문인지 계절 때문인지 아니면 기분탓인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요즘 업다운이 좀 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요 그냥 오늘 드는 생각을 쓴다면요.

뭔가 정체된 느낌?

이라고 일단 정의해 볼게요. 제 업다운에 대해서 더 나가기 전에 축구 얘기를 좀 해볼게요.

다른 건 몰라도 축구만은 대한민국 축구를 응원하는 1인으로서요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기적과 함께 그 전과 후로 나뉜다고 저는 생각해요.

2001년 이전의 대한민국 축구는 뭐랄까…무거워요….

지면 안되고 꼭 이겨야만 하는…축구? 그런데 그런 축구는 없죠 사실…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이 축구 선수의 일상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아무리 좋은 스트라이커도 골을 헤트트릭을 계속 하는 시즌이 있는가 하면 슬럼프로 거의 전시즌을 무득점으로 침묵하기도 하거든요.

이 때 떠오르는 사람이 “황선홍”님인데요. 정말 그 분이 느꼈을 부담감과 심적 어려움은 누구도 알지 못 할 거에요.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모습을 봐도 사람 자체가 진중한 분이더라구요. 그러니 혼자 끙끙 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런데 2002년을 기점으로 다른 느낌의 축구가 시작이 되기 시작했어요 (시작을 두번 썼네요)

음…뭐랄까…월드컵 4강을 이룬 이후부터는 좀더 쉽게 축구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말 하면 축구 선수한테는 돌 맞을 수 있겠지만…) 확실히 그 전의 세대보다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의 인상부터 달라요.

웃고 있고요 즐긴다는 느낌?아닌 느낌도 있고요. 경기를 많이 뛰든 적게 뛰든 경기장에 나오면 그 순간을 상당히 압축해서 사용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선수들은 그래도 당연히 무한한 압박감을 받고 있겠지만…

그래서 2002년 이후에 축구를 한 세대는 뭔가 자신만의 축구를 하기 시작한 세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훨씬 더 기대가 되는 것 같아요. 자신만의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누군가의 축구를 답습하지 않고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 창의성이 팀과 함께 가미되면 엄청난 에너지로 나올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이 분들이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축구를 했는가? 하지 못했는가?로 저는 축구를 보기 시작했고 다른 축구팬들도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해요.

지난번 월드컵에서 축구가 잘 안됐죠. 일찍 탈락을 했지만요.

그런데 그 때 “중꺽마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 나옵니다.

이 말이 곱씹어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분명히 지긴 졌는데 진 건 맞는데 마음만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 않는가? 정신력은 분명히 자신감으로 차있다는 느낌도 들고 아마 그 이유는 이 선수들이 자신들의 축구를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바로 이거에요….

자신만의 경기

다시 돌아와서 제 업다운을 얘기해 보자면요.

제가 요즘 고민하게 되는 것은 바로 “나만의 커리어는 무엇인가?“에요. 저는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나만의 커리어…..

얼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요 몇가지인데요.

내가 쓰는 나의 삶 (11) – Biotech Enabler

Bucket List (22) – 바이오텍 투자자

이런 글들을 쓰면서 “나만의 커리어 찾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나만의 커리어를 찾고 그 커리어에 맞는 경기를 매일 할 수 있게 된다면요 더 이상 승부는 중요하지 않고 진정한 “중꺽마”를 할 수 있게 되는거니까요.

“중꺽마”는 결국 이기게 되어 있어요. 이미 마음이 승리했거든요.

저자신에게 응원해 봅니다.

“음…잘하고 있어. 나만의 커리어를 찾고 그 커리어를 위해 뛰어보자…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야…”

커리어코칭 (29) – 스타트업 직원과 회사의 성장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바이오텍 스타트업에서 Fortune 500 회사가 되기까지 초고속 스피드로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 정말이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제가 회사 초기에 이런 생각까지는 했었어요.

“회사가 빠른 속도로 커져서 빅파마에 M&A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제가 들어간 스타트업은 저의 기대와 달리 (?) 너무나 엄청난 성장률을 보여서 IPO를 하고 2-3년만에 NASDAQ 100에 들어가고 Standard & Poor’s 500에 진입을 하더니 매출과 이익까지 받쳐줘서 Fortune 500에까지 진입을 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스타트업은 Legend가 되어 버렸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회사의 성장을 저와 함께 입사했던 동기 중에서 함께 성장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죠. 이에 대해 좋은 글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Early Startup Employees and Company Growth by Alex Kracov

여기에서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한 직원이 겪는 두가지 성장 곡선을 얘기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회사보다 직원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경우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케이스죠. 이렇게 하려면 자신을 엄청나게 갈아넣는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성장은 하지만 회사가 훨씬 가파르게 성장하는 경우입니다. 저의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성장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회사의 성장이 훨씬 빨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몇가지 성장을 위한 제안을 합니다.

공부하라는 것이 그 중 하나이고요 멘토를 찾아서 계속 코칭을 받으라는 것이 두번째입니다.

저도 공부를 엄청나게 하고 있고요 중간 중간에 좋은 멘토가 계셨는데 이제 모두 더 좋은 곳으로 떠나서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금 보스도 좋은 멘토이긴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여러가지 조언을 듣고 있습니다.

결국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나이가 많아서 성장이 더뎌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기는 한데요 그것은 저의 자기기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요즘은 그런 생각보다는 성장을 위한 자기 계발에 더 치중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이렇게 놀라운 성장을 하면서 제가 받은 여러가지 축복도 있습니다.

우선 정말 좋은 동료들을 곁에 둘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축복이고요.

이 회사에 다닌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리고 오래 다녔다는 것 때문에도 인정(?)을 더 받는 느낌 (?) 이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상을 받게 된 것도 사실 오래 다니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것이죠.

BOSTONIAN (8) – American Chemical Society – Heroes of Chemistry Award

이 밖에도 다른 일도 있는데 그것은 다음에 구체화되면 다시 글을 쓰기로 하겠습니다.

요즘은 주로 논문, 책, 사람만나는 것 등등을 하면서 자신의 질적 성장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당장보다 보다 먼 미래를 위한 저만의 투자법이라고 할까요?

성장은 연속적이지 않고 퀀텀점프더라구요. 다음번 퀀텀점프가 어떤 식이 될지 기대가 큽니다.

지금도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자신을 갈아넣고 계신 모든 분들께 화이팅!! 외!쳐!봅!니!다!!

커리어코칭 (28) – 미국회사 입사동기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공채라는 제도가 없어서 입사동기라는 개념이 없는데요. 저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단 한명의 입사동기가 있습니다. 함께 회사를 들어와서 같이 3일간의 짧은 (?) 연수를 받았고요 같은 팀에 배치되었습니다. 본래는 2명이 더 있었지만 결국에는 이분과 제가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입사할 때는 각자 아이들의 나이가 어렸는데 이제는 시간이 꽤 흐르다보니 애들이 많이 컸죠. 오늘 회사에서 오랜만에 우연히 만나서 한참동안 그동안 있었던 얘기,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얘기, 애들 얘기 등등 시간 가는줄 모르고 얘기했네요.

싱글맘으로 어린 딸아이를 회사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느라고 참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일을 소홀히 하는 법은 없었습니다. 혹시 일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하더라고요. 이 얘기를 하는 즉슨 저도 그랬다는 뜻이겠죠?

이런 저런 일들이 참 많이 있었는데 이제 다들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아요. 오랜 친구는 또 다른 측면의 동기애가 있지요. 이 얘기 저 얘기 참 많이 하고 살았다는 생각도 있고 눈만 봐도 든든한 그런 관계랄까요?

아무것도 없다시피하던 바이오텍 스타트업에서 함께 참 웃지못할 일도 많았고요 그래도 이제 돌아와서 보면 참 끈질기게 잘 버텼던 것 같아요.

함께 오래 오래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 이 친구는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가고 저는 지금 건물에 남게 되기 때문에 몇달 있으면 더 만나기 어려워질 것 같네요.

오늘은 이런 저런 감정들이 생겨서 이렇게 글로 남겨 봅니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11) – 워렌버핏 가족의 선한 영향력과 Legacy

편지재단 (Letters Foundation, https://letters.foundation/)은 워렌버핏 (Warren Buffet)의 누나인 Doris Buffet (1928-2020)이 설립한 비영리재단입니다.

이 재단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짧은 동영상에 잘 나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여러가지 생활고로 어려운 분들이 편지를 보내면 워렌버핏의 누나인 Doris Buffet이 일일히 읽고 그에 대해 판단해서 Grant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이것이 알려지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Doris 혼자서 읽기에는 역부족일 정도의 편지들이 전세계에서 도착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편지를 읽는 자원봉사자 (Volunteers) 들을 모집합니다. 교육을 하고 편지를 읽고 후원 여부를 논의해서 결정하죠. 2020년 Doris Buffet은 92세의 일기로 오랜기간 앓던 치매로 부터 영면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자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계속해서 이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Doris Buffet의 자녀들입니다. 다들 밝죠?

참고로 왼쪽에 보이는 아드님은 지금도 Boston Omaha라는 Holding Company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워렌버핏의 Berkshire Hathaway와 유사해서 꼬마 Berkshire Hathaway라는 별명이 있는 회사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Warren Buffet 가족들의 노력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롤모델입니다.

BIOTECH (53) – CRISPR-Cas 좋은 Review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최근 몇년간은 역시 CRISPR-Cas9으로 부터 시작된 다양한 CRISPR-Cas Series의 출현으로 정말이지 유전자 편집 (Gene Editing)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 기술이 유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항상 그렇듯 해결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지요.

이에 대해 최근에 Harvard Medical School의 Roberto Charlie교수님께서 좋은 Review를 Nature Communications 2023년 신년호에 써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이 Review를 올려드립니다.

Roberto Charlie교수님 연구실은 Harvard Medical School, Boston Children’s Hospital, Dana Farber Cancer Institute에 소속된 연구실로서 주로 Lymphoma를 비롯한 암연구를 하시고 계십니다.

저처럼 이 분야의 빠른 변화를 모두 쫓아가기 버거운 분들께 이런 좋은 Review를 찾는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영어 공부하기에도 좋고요.

BIOTECH (52) – Palleon Pharmaceuticals: Sialoglycan degradation platform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Carolyn R. Bertozzi교수가 창업한 회사인 Palleon Pharmaceuticals는 최초로 Checkpoint Glycoimmune Therapeutics를 개발하기 위해 2017년에 Boston 지역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2016년에 Bertozzi교수님은 “Precision Glycocalyx Edit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면역항암치료 방식을 PNAS에 보고했습니다.

Palleon Pharmaceuticals는 회사가 먼저 세워진 후에 CEO인 Jim Broderick이 Bertozzi교수님에게 전화를 해서 Business Model을 바꾼 것으로 아래 기사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Glycoscience fuels a new breed of cancer immunotherapy – C&EN 7/20/2019

아래 기사를 보면 좀더 자세한 얘기를 하고 있죠. CEO인 Jim Broderick이 GSK의 Venture Arm인 SR One에서 2015년부터 Entrepreneur-in-residence로 있으면서 설립을 했고 Stanford 대학교의 Bertozzi교수님과 영국의 Dundee University의 Paul Crocker교수님으로 부터 IP (Intellectual Properties) 를 인수해서 Glycoimmunology 회사를 만들었다고 되어 있네요. Series A로 $47.6M을 했는데요 Pfizer Ventures, Vertex Ventures HC, Takeda Ventures, AbbVie Ventures 등 SR One까지 5개의 Corporate Venture Capitals가 참여했습니다.

Startup Palleon has a sweet plan for cancer immunotherapy – FierceBiotech 10/4/2017

Palleon Pharmaceuticals Raises $47.6M in Series A Financing – Finsmes 10/4/2017

3년후에 Hedge Fund인 Matrix Capital Management Lead하에 $100M Series B를 했습니다.

Palleon Pharmaceuticals secures $100m in Series B funding – Pharmaceutical Technology 9/17/2020

Palleon Pharmaceuticals Raises $100 million Series B to Develop Drugs Targeting Glycan-Mediated Immune Regulation to Treat Cancer and Inflammatory Diseases – Business Wire 9/17/2020

이때와 맞추어 Bertozzi교수 연구실에서는 Nature Chemical Biology 2020년 12월에 In vivo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최근에 E-602 약물에 대한 임상1상 결과를 보고했는데요 30mg/kg까지 No dose-limiting toxicity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임상 2상을 할 수 있는 좋은 약물용량을 일단 확보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alleon unveils initial data from Phase l oncology therapy trial – Clinical Trials Arena 4/19/2023

임상2상 부터는 Keytruda나 Opdivo와 같은 Checkpoint inhibitor와 병용 임상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Update

2025년 현재 Palleon Pharmaceuticals의 신약 파이프라인입니다. E-602의 autoimmune disease 임상2상이 진행 중입니다. 2020년에 펀딩을 받은 후에 5년간 잠잠한데 E-602의 임상결과에 따라 추가 펀딩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E-602는 Shanghai Henlius Biotech, Inc. (2696.HK) 사와 공동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