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때 유튜브를 정말 열심히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유튜브의 많은 내용이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쓰여진 것일뿐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닐까? 해서 요즘은 책을 주로 읽는 편입니다. 그래도 집에서 설겆이를 하거나 (싱크대에 그릇이 있는 걸 싫어해서 설겆이는 평생 제가 담당했어요.) 회사에서 차까지 이동하는 등의 시간 동안에만 유튜브를 듣는데 이 짧은 (?) 순간에 제 귀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에 몇번 방문하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제 블로그는 일반적인 블로그와 달리 특별한 주제가 없습니다. 사실 이 블로그의 주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 주제는 바로:
보스턴 임박사는 누구인가?
이거든요. 제가 블로그를 쓰게 된 동기는 사실 제 자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동기가 가장 컸어요. 본래는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게 맞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블로그를 시작하고 제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이나 꿈꾸는 것들을 적어 나가다 보니까 그게 꼭 한가지도 아니고 여러가지이고 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어서서 어떤 때에는 이 생각을 주로 하고 어떤 때에는 저런 생각을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거에요.
그래서 글의 순서도 들쭉날쭉하고 주제도 들쭉날쭉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저의 블로그에서 특정 주제를 원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답글을 주시거나 bostondrlim@gmail.com으로 이메일을 보내 주시면 참고해서 그 주제에 대해 좀더 집중은 해 보겠습니다.
버킷리스트는 사실 거의 다 채워졌다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한국에 한달간 휴가를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에 다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네요. 벌써 버킷리스트가 46개째가 되었습니다. 버킷리스트 중에서 지금까지 실제로 하고 있는것은 아래 다섯가지 정도가 되겠네요.
제가 살면서 딱 한번 연극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2달여를 연습해서 30분 짜리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방송에서도 개그우먼으로 일하셨고 당시에는 연극영화과 대학생이셨던 분이셨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던 것 같고 연습 때에는 많이 헤메었는데 막상 무대에서는 그런대로 괜찮게 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연극영화과 전공자에게 배웠기 때문에 당시 어떻게 연극을 하는지, 발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를 봐야 하는지 등을 잘 배운 것 같습니다.
당시 연극의 제목은 “끝없는 아리아“라는 작품입니다. 이 연기대본이 어떤 분의 사이트에 있군요.
이 연극에는 다섯명이 나오는데요 제가 했던 역은 “코터너스”라는 역이었습니다. 작품에서 연출가 역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인 저희들이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요 뜻도 모르고 연기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제 좀 인생을 살고 나니 좀 노인 역할이나 중년의 역할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연기나 배우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대신 영화에서 “엑스트라 배우“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어요. 엑스트라 배우도 모집을 하거든요. 그리고 시작하기도 좀 쉬운 면도 있고요. 대신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고요 연기라기 보다는 배경이라는 측면이 더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시작할 때 엑스트라 배우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죠.
송원수라는 배우님은 시니어가 되고 나서 배우가 된 분이십니다. 이 분이 이 버킷리스트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겠네요.
송원수씨는 2015년 10월,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에서 ‘방송인교육’을 받고, 현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배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물론 시니어모델도 겸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임권택 감독과 콤비를 이루는 정일성 촬영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70년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도 먹고사는 일이 더 급해서 배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이제 시니어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만의 세계를 갖게 되었다. 자신의 꿈의 세계를 현실에 활짝 펼쳐 보일 아주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송원수씨는 연기력이 좋다.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지런히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영화나 드라마에서 좋은 역할을 찾아내어 출연의 기회를 만들어가면서 여러 편의 독립영화 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장을 열심히 누비고 다닌 결과, 지금은 섭외가 많이 들어와 작품을 골라 가면서 출연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 덕분에 대사 비중도 점점 분량이 많아지고 있다. 다만, 작품이 겹쳐서 하나는 포기해야만 할 때, 작품이 좋으면 누구나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송원수씨도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을, 겹치는 바람에 포기 해야만 할 때는 안타깝다.
사실 연극에 대해서는 제가 생각을 안 해 보고 있었는데요 시니어가 되어서 연극을 몇년간 해 봤던 친구가 제 얘기를 듣더니 “연극을 한번 해봐”라고 제안을 해 주어서 생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의 버킷 리스트로 써 놓고 미국이나 한국 혹은 어디서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으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버킷 리스트를 하려면 천년 이상 살아도 다 못할 지도 모르겠지만요…ㅎㅎ
오늘은 불금이네요.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일주일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저녁에 배우자와 함께 와인 한잔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번 주는 좀 쉽지 않았어요. 월요일에 회사가 2Q Quarterly Report를 했는데 보고 자체는 Analysts의 예상을 넘어 섰지만 올해 전체 매출 예상을 20-25% 정도 낮게 발표를 하는 바람에 월요일부터 이번 한주간 주가가 그만큼 떨어졌거든요. 저는 사실 노잼투자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을 쳐다 보지는 않는데 회사가 분기보고나 연말보고를 할 때에는 봅니다.
그런데 뭐 주식을 팔거나 한 것은 아니어서 특별히 손해가 난 것은 없는데요 그냥 기분이 손해가 난 것 같은 느낌은 나네요. ㅎㅎ
버킷리스트에는 제가 언젠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할 필요성 (?)이 느껴질 때를 위해서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저의 바램이나 꿈을 적어 놓고 있는데요 어젯밤 잠을 청하다가 이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A Capella
아카펠라의 “카펠라”라는 말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카펠라는 본래 교회에서 중세 때에 무반주로 부르던 형식을 말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아카펠라 그룹을 만들어서 몇차례 공연을 한 경험이 있는데요.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든 교회 아카펠라 그룹은 정말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팀이었어요. 고3때 함께 했던 친구들과 대학에 진학하면 전국을 순회하자고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재수를 한 친구도 있고 지방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사관학교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대학 진학을 포기한 친구도 있고 해서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켠이 아립니다.
오래 전에 제가 좋아하는 스웨덴의 아카펠라 그룹인 “The Real Group”의 노래를 올린 적이 있는데요. 기회가 되면 스웨덴의 레알 아카데미에서 배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많고 먹고 싶은 것 없는 신중년으로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Bucket List를 쓰면서 상상만 해도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이번 버킷 리스트는 어떤 일이나 취미 이런 것이 아니라 국제기구입니다.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전세계의 보건행정을 다루는 국제기구로서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등과 같은 저개발국의 질병과 기아를 방지하는 일을 많이 하는 기구입니다. 전세계의 공중보건을 담당하는 국제기구인 만큼 의사, 과학자 등이 중심이 되어 있는 기구이고 과학자인 저로서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기관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라고 하면 이 기구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어서 이곳에서 일을 하려면 제네바에 가야 하고요 제네바가 프랑스어권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할 수 있으면 좀 유리합니다.
“WHO에서 일하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사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백신개발을 하면서 저의 사고의 범위가 확장된 것이 큽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한국에 가서 연세대학교의 K-NIBRT라는 곳에서 세미나를 하고 왔는데 신기하게도 이번에 발표한 사람들이 WHO를 통해서 선발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에서 오신 분들이었죠.
그래서 이번에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WHO에서 언젠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꼭 취업 형태가 아니더라도 Volunteer 형태로도 일을 할 수는 있어요. 배우자와 이것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꼭 취업 형태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당장은 가는 것에 대해서는 Yes를 받지 못해서 일단은 기회가 올 때까지 버킷리스트로 남겨 놓으려고 합니다.
WHO와 무관하게 스위스가 물가가 높아서 살기 어렵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제가 스위스 바젤에 있는 회사에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직원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살면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기차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네바에서 일을 하더라도 프랑스 국경지대에서 살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WHO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의 저개발국가에 가야 할 일도 많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독일에 과거에 산 적이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있거나 거리낌은 없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가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런 일을 해야 할 비전이 있는지도 모르죠.
하루 이틀 비가 오더니 이제 보스턴 날씨도 제법 쌀쌀해 졌습니다. 한국은 지금 아마 많이 덥겠지만요 이곳 보스턴은 위도가 높기 때문에 여름이라도 아주 덥지는 않아요.
저는 인생 후기에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여기에 Bucket List를 쓰고 있는데요 제가 가진 취미 중에 그림에 대한 취미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아직까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취미인데요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도 갖고 싶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도슨트라고 그림이나 조각 등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분들이 자원봉사자인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직업이고 대신에 시간이 좀 자유롭습니다. 공부도 좀 해야 하고요. Certificate이나 석사학위 이상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할 수 있어서 인생2막이나 3막에 쉬면서 그림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이면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Museum studies라는 분야가 있는데요 박물관에 관련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전문분야입니다. 아니면 History of Art (예술역사)나 고고학 (Anthropology) 같은 공부를 하면 이런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PhD in Science를 가지고 있어서 때가 되면 석사학위로 예술 분야의 공부를 하면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미술사에 대해 공부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인상주의와 일본 유키요에에 대해 공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취미이면서 일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 될 것 같고요 그래서 오늘의 Bucket List는 도슨트로 제 나름의 바램을 적어 보았습니다.
회사에서 미팅을 하든지, 뉴스를 보든지, 책을 읽든지, 사람들과 대화를 하든지 간에 어느 순간 생각이 갑자기 스쳐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 생각을 잡으려고 재빨리 아이폰의 메모장에 스쳐간 생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오늘 적어 놓은 생각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 자신”과 “나에 대한 평가”가 괴리되면 나의 판단력은 흐려질 수 있다. 결과보다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그 결과에 이른 “과정”이 어떠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이 생각에 대해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점심시간에 어떤 은퇴자의 영상을 보던 중 갑자기 들었던 생각입니다. 그동안도 주로 한국의 은퇴자들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며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갑작스런 퇴직에 대해 생각을 해 보는데요 살면서 정리해고 (Layoff) 형태로 퇴직을 몇차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아주 갑작스런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퇴직은 언제든 쉽지 않습니다.
정리해고를 당하게 (?) 되면 먼저 서류를 받는 미팅을 하고 나서 자리에 가서 물건을 박스에 정리해서 자리를 떠나는 게 순서인데요 가장 최근에 받았던 정리해고가 벌써 10년전이니 다소 까마득한 마음을 갖지만 그 이후로 저는 회사에 제 책상을 만들어 놓지 않고 가방 하나에 컴퓨터와 필요한 노트 등을 넣고 다닙니다. 언제든지 나가야 되면 책상 정리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가방만 들고 나가려고요.
정리해고가 이렇게 힘든 과정이지만 정리해고를 맞게 되었을 때 한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 안에 있는 나”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나는 회사의 명성 (?)이나 후광 (?)에 의해 감춰진 면이 있습니다. 물론 회사 내에서 하는 업무에 아주 특화된 일을 하게 되지요. 회사 내에서는 어느 정도 위치도 있고 실적도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다가 퇴직을 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 하면 그 때에 비로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요 많은 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데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거의 새로운 나를 창조해야 하는 수준이 되지요. 그래서 저는 현재 회사를 10년 가량 다니고 있지만 언제든지 회사와 별개인 “나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려고 항상 생각하고 혹시 우리 회사나 다른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저의 회사 이름만 보고 저를 판단하려고 하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살면서 배워서 다른 회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이 됩니다.
세상에 연구원은 많이 있지만 각자가 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이 각자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박사학위를 받고 기업에 오기 전에 그런 방식이 만들어 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학위를 받기 훨씬 이전부터 살아오면서 채득한 방식일 수도 있고 여하튼 각자의 살아온 방식에 의해 이런 독특한 일하는 방식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의 일하는 방식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보다는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새로운 일자리에서 사고자 할 때 취업이 된다는 것이죠. 저는 그래서 인터뷰를 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를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저의 인터뷰를 구성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는 현재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남이 뭐라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내가 스스로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으로 일한 것과 그렇지 않고 다른 동료의 도움을 받은 것을 구분하고 가능하면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하고 부하직원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일이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 결과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저를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 어떤 과정으로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고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은 바이오텍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일 – 예를 들면 교회 사역을 한다든가, 가정을 돌보거나 등등 – 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저의 평생에 일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저에게 항상 남는 “나 자신의 독특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나 자신”과 “나에 대한 평가”의 괴리가 느껴질 때 그 평가를 내리는 상대방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 홀로 곰곰히 생각해 보며 “진짜 나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발견하고 그 “나 자신”에 집중하도록 저를 재촉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지금 회사에서도 10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네요. 언젠가 이 회사도 떠나서 또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는 바이오텍을 떠나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하거나 아니면 일보다는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할지도 모르죠.
오늘도 저는 “나 자신”의 “나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계발하며 성장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저희 세대는 어려서 부터 학교에서 항상 ‘개발 도상국’이니 ‘상위 중진국’이니 하는 말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의 중요한 사회 시스템도 선진화 되었지만 기업의 투자환경이나 생산성 환경이 크게 성장하여 선진국에 도달한 것을 미국에 사는 저보다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덜 피부로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 세계은행에서 “중진국 함정 (Middle Income Trap)”이라는 276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냈는데요
세계은행은 1일 ‘중진국 함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1200달러도 채 안 됐지만, 작년엔 3만3000달러에 육박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한국의 경제사는 높은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중소득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필독서’(required reading)”라며 “한국은 성장의 ‘슈퍼스타’(superstar)”라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1994년 고소득국 기준(GNI 1만3845달러)을 넘어섰다. 보고서에서 극복 사례로 함께 제시된 폴란드, 칠레와 비교해도 가파른 성장이다.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의 ‘3i’ 전략을 제시했다. 저소득국 단계에서 투자 촉진을 통해 성장을 시작하고 중진국 단계 이후에는 해외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낡은 제도와 관습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계은행의 조언이다. 그러면서 ‘3i’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소개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씨앗이 됐다고 분석했다. 금융·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고 시장 담합과 지배력 집중을 완화해 국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내용은 보고서의 내용을 잘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1994년은 김영삼 정부 때입니다. 그 때부터 한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를 통틀어 꾸준히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정부가 진보정권이어서 잃어버린 10년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한국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선진국의 리더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40년간 브라질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중국과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은 훨씬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고성장을 구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혁신성장을 주도하는 Venture Capital과 Private Equity가 선진국일수록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Venture Capital과 Private Equity가 성장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으로 이 보고서는 보고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 이전에 2007년에도 “동아시아의 르네상스 (An Eastasian Renaisance)”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는데요 이 당시 보고서에서는 동아시아 국가 – 특히 일본, 싱가폴, 한국 – 의 R&D 노력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VOO는 미국의 대표적인 500대 기업의 지수를 추종하는 ETF이기 때문에 너무 미국에 국한되는 지역적 리스크 (Home Country Bias) 가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미국 이외의 시장을 추종하는 인덱스 ETF들을 좀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래의 4개의 ETF들이 제가 투자하고 싶은 ETF 들인데요 그 중에서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 시장을 추종하는 VEA와 한국을 포함한 Emerging Markets을 추종하는 VWO가 눈길이 갑니다.
IXUS (iShares Total International Stock ETF)
Expense ratio: 0.07%, Yield: 3.07%
VXUS (Vanguard Total International Stock ETF)
Expense ratio: 0.08%, Yield: 3.07%
VEA (Vanguard FTSE Developed Markets Index ETF)
Expense ratio: 0.06%, Yield: 3.38%
VWO (Vanguard Emerging Markets Stock Index ETF)
Expense ratio: 0.08%. Yield: 3.19%
나중에 미국시장은 VOO, 선진국 시장은 VEA, 그리고 때에 따라 Emerging Markets을 포함하고 싶으면 VWO를 넣거나 넣지 않거나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냥 (VOO+VEA) 조합이 가장 잘 헤징된 주식 포트폴리오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2010년부터 14년간 VOO (blue), VEA (black), VWO (red)를 비교해 보면 역시 VOO가 압도적인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로 VEA가 VWO에 비해 강세인 것을 알 수 있죠. 아직까지는 미국 중심의 시장이어서 아마도 VOO : VEA = 9 : 1 정도 비율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2024년 8월 8일은 우리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지 7년이 되는 날입니다. 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합니다. 오늘 어머니를 추모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일서 4장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번째 4장12절 말씀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본 적이 없지요.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어머니를 보내셨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저희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을 여전히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갑니다.
“만약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그러면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나 어머니께서 평소 애쓰시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형제 자매가 우애있게 살게 하시기 위해 힘든 생활 가운데에서도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생각하면 비록 어머니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는 안 계시고 천국에 계시지만 여전히 형제 자매를 돌보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올해에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큰이모와 큰이모의 큰아들 재원이, 셋째 이모부 그리고 막내이모네 큰딸 지예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 분들과 제가 만나고 오는 이유는 바로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고 생각해서 였습니다. 사실 어머니도 계시지 않은 이 때에 이 분들을 꼭 만나야 할 이유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저에게 “계속 만나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친정 식구들 뿐만 아니라 시댁 식구들에게도 잘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래서 올해에 큰어머니, 둘째 아들 용수처와 지윤이를 만나고 왔고 저는 따로 작은 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이것도 사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 댁은 도봉구에 있습니다. 큰이모댁은 남양주에 있습니다. 제가 거주하던 분당에서 가려면 거의 2시간 여를 가야 하더라고요. 대전에 다녀오는 것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고 가면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래도 가봐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서 찾아 뵈면 너무들 좋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들과 만나면서 어머니가 함께 계신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어른들과 옛날 얘기도 하고 최근 근황도 전하고 하면서도 어머니가 저와 함께 계신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어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저는 어머니가 저와 항상 함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행할 때 어머니가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서로 사랑하자.
끝으로 우리가 다시 실제로 어머니와 만날 약속의 말씀을 나누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7절 말씀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로 부터 사랑을 배워서 알고 그 사랑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래서 동기간에 하고 있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지막 심판날에 담대해 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사는 것이고 그 사랑의 삶이 바로 우리를 천국으로 담대히 들어가게 하는 영원한 삶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고 살게 되고 결국에 어머니를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어느덧 8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최근 몇일간의 보스턴 날씨는 정말 한증막 같았는데요 마침 오늘 오후에는 소나기가 쏴아 내려준 덕분에 날씨가 많이 시원해 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한달간 휴가를 다녀와서 일을 하는 중에 있는데요 다른 동료들은 이제부터 휴가를 가는 것 같더군요. 물론 7월에도 많이 휴가를 다녀왔지만 8월에 몇주간 휴가를 가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다들 휴가들 잘 지내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항상 저의 생각이나 글이 그러하듯이 ‘어떻게 사는게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매일 매일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쓰던 초반에는 조기은퇴 혹은 조기퇴직을 염두에 두고 글을 많이 썼는데 시간이 지나고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조기퇴직보다는 ‘일과 여유를 함께 하는 삶“으로 저의 삶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있는 동안 20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 동기가 고등학교 78회인데 그런 이유로 매년 7월 8일이면 정기모임을 하는데요 올해에는 마침 저의 휴가 기간과 겹치는 바람에 동창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40여명 정도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보니 다들 많이 바뀐 것 같더군요. 일단 10여명은 전혀 모르는 동기들이어서 특별히 얘기를 나누지 않았고요.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 함께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일을 그만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좀 변했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을 좀 받았구요.
“이제 동창회를 꼭 나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꼭 만나야 하는 친구들도 분명히 보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제 너무 변해 버려서 그리 만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과거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때에는 문과, 이과 친구들을 모두 볼 수 있어서 다양성 면에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친구들을 만나고 보니 사는 모습이 이제 많이 변한 걸 느끼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도 저에게 다가오길 어려워 하는 것 같고 저 또한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얘기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동창회가 지난 후에 모임에 나오지 않은 동창들을 따로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것도 결국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정말 누굴 더 만나고 누굴 더 이상 만나지 않을지에 대해 거의 마음에 결정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와 함께 공부한 카이스트 동창들과는 서로 사는 게 비슷비슷해서 그런지 너무 편했어요. 올해에는 몇명만 만났지만 작년에 대전에 가서 대전에 사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느낌이었거든요.
“아! 이런 친구들이 편한 것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친구 중에 가장 오랜 친구는 교회 친구들이에요. 어떤 친구들은 중학교 때부터 만났기 때문에 만난지 40년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제가 너무 혼자 말을 하는 느낌을 그동안 받았어요. 그래서 그게 저는 좀 아니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저보다 연배가 높은신 분의 유튜브를 통해서 “3분 Talk을 하면 좋더라….” 이런 말을 들어서 이번에 우기고 우겨서 3분톡을 했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았어요.
제가 말하는 시간을 확실히 크게 줄이기도 했고 그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서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다들 많은 일들이 있었더군요. 매년 한국에 들어오면 만나는데 그동안은 이런 얘기를 듣지 못하다가 올해에야 비로소 3분톡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나마 듣게 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 교회 친구들과의 만남은 정말 죽을 때까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친구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랄 뿐이죠.
그리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내가 있습니다. 제가 아내인 이 친구는 교회 선후배 사이로 만나게 되어 결혼까지 하고 살고 있는데요. 요즘들어 점점 가까워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아내가 하자고 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있고요 반대로 아내도 제가 하자고 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주는 것 같아요.
매주 한번씩 함께 골프 치고 매일 동네 한바퀴 걸으며 얘기하고 가끔 외식도 하고 어떤 때에는 미술관에서 그림이나 조각을 본다든가 콘서트홀에 가서 음악을 듣는 등 이런 저런 걸 함께 하는데 그 각각의 의미가 저에게 매우 크고 행복하게 다가옵니다. 아마 그래서 저에게 이것이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 소확행 – 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와 아내는 오랜 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저의 Full-time 일을 하는 나이를 65세로 정한 상태이고요. 저는 이 때까지 큰 무리없이 바이오텍에서 일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더 하고 싶으면 더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을 해요. –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친구들이 은퇴나이를 물어보던데 미국에는 은퇴연령, 즉 정년,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있는 임금피크제라고 50대 중반 이후 정년까지 매년 임금이 깍이는 일도 없고요. 모두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임금은 계속 올라갑니다. 제가 일을 잘 한다는 가정에서요. 그리고 정년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일하는 연령도 스스로 정합니다. 저의 보스가 65세이고 저의 팀에 70세 가까이 된 연구원이 계십니다. 아직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두분 다….
얼마 전에 미국 교회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다들 오랫동안 – 70대까지는 – 일을 할 생각이더군요. 그리고 한 친구가 최근에 회사에서 은퇴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의 나이가 92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플랭카드 주제가 “Finally Retire!”라고 하더군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저도 제자신이 “언제까지 일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해 봤는데 일단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65세로 아내와 약속 (?)을 했고요. 그 이후는 옵션입니다. 제가 현재 하는 바이오 연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66세 이후에도 일을 하리라 생각은 하는데 다만 일하는 형태가 주당 40시간/주5일 근무 형태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거죠. 최근 들어서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는 손을 잠시 놓았었는데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실험을 완전히 놓지는 말고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제 손으로 스스로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고자 합니다. 그래서 몇년 후의 미래가 잘되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가 가장 좋은 하루였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건강한 삶과 제 주위에 있는 진정한 친구들과의 교제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본래 주신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진정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