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일지 (7) – 로잉머신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그동안 다른 관련 글들을 쓰다보니 운동에 대한 글이 좀 늦었습니다. 그동안 무산소 근력운동에 대해 나눴는데요. 이번에는 유산소운동에 대해 좀 쓰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당뇨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선생님이 일주일에 땀나게 150분인가 운동을 일주일에 3일 정도하라고 하신 것 같아요. 그 때 무슨 운동을 하라고 하시지는 않았는데 한국에서 대부분 보면 걷기 운동을 매일 한시간씩 하라고 하는 것 같아요.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일단 근력운동을 주로 하고요. 유산소운동은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는데 유산소 운동을 해도 시간이 너무 길면 안되요. 30분 이내이어야 합니다. 걷는 것은 사실 다리 운동은 좀 되지만 빨리 걸어야 하는데 아내와 함께 걷다보면 빨리 걷기가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걷는 건 저와 좀 안 맞는 것 같고 특히 겨울에 밤에 컴컴한 밤에 나가서 걷는다는게 몸이 우선 나가지지가 않습니다. 한동안은 수영을 했어요. 25m 10바퀴 쉬지 않고 돌아서 대략 500m 씩 한 것 같은데요. 수영은 자유형은 별로 운동이 안되는 것 같고요. 배영은 좀 되는데 시간이 꽤 걸려요. 그리고 Gym에 가서 샤워하고 수영하고 또 샤워하고 나면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자전거도 좀 타보기는 했는데 이것도 위험해서 저는 몇번 하다가 자전거는 쳐박아 뒀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겨우 하는 유산소 운동은 로잉머신 (Rowing Machine)이에요. 저의 집 지하에 Rowing Machine을 사놓고 하고 싶을 때 합니다. 보통 10분, 3세트 하는 것 같습니다.

로잉머신이 좋은 건요. 이게 전신운동이고 우리 몸 근육의 85%를 쓴다고 해요. 나머지 15%는 푸쉬업 (팔굽혀펴기)를 하면 채워져서 100%가 됩니다. 그러니까 로잉머신을 하고 푸쉬업을 함께 하면 온 몸 운동이 되는거죠.

로잉머신은 다리로 힘차게 미는게 먼저이고 다리를 쭉 뻗었을 때 팔근육과 등근육을 이용해서 코어를 유지한 자세로 당기게 됩니다. 그러고 다시 원상태로 팔이 먼저 들어가고 다리를 접어서 돌아가게 되는 것을 계속 반복하게 되죠. 이 운동이 좋은 것은 다리는 스쿼트하듯이 되고 등근육 운동도 되고 팔근육 운동도 되고요 사실 복근운동도 돼요. 여기에 푸쉬업을 하면 가슴운동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전신 근육운동도 하면서 유산소운동을 하는거죠.

Resistance를 1-10까지 바꿀 수 있는데요. 유산소운동을 하려면 가장 낮은 3정도로 놓고 천천히 당기는 식으로 오랜시간하면 유산소 운동 (지방 태우는 칼로리 운동)이 되는거구요. 강도를 7 이상으로 하면 근력운동 (무산소운동)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허리를 너무 움직이지 않아야 해요. 허리를 너무 움직이게 되면 허리에 무리가 가서 허리 부상 위험이 있습니다. 혹시 달리기나 Treadmill 하시다가 족저근막염 생기신 분도 로잉머신을 하시면 운동효과를 상당히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운동효과가 있냐하면요. 일년에 한번씩 실내 로잉머신 500m 월드컵 (World Rowing Indoor Championship) 같은게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코로나 전에 있었던 2020년 영상입니다.

로잉을 500m만 해도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당뇨인 여러분 오늘도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화이팅입니다.

커리어코칭 (4) – 워라벨이란 건 없다.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한동안 한국뉴스나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것을 보다보면 이상한 줄임말이 많이 나와서 한국말인데도 이해를 못하고 한참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 저와 같이 오래 사신 분들은 많이 경험을 하실 것 같아요. 그 중에 하나가 ‘워라벨‘이에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Work and Life Balance의 초성을 모아서 만든 신조어더라고요. 워가 워크에서 나온 것과 라가 라이프에서 나온 건 이해가 되는데 벨은 모르겠어요. 밸런스라고 읽는데 워라밸이 아니고 워라벨이더라고요. 이번 주제는 듣기에 따라 50대 꼰대아재의 얘기로 치부될걸 각오하고 씁니다.

먼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야할 것 같은데요. 요즘은 52시간 법을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제가 처음 직장 생활을 했을 때는 주5.5일 근무였어요. 2주에 한번씩 토요일 근무를 했었거든요. 제가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신약을 몇백개 만들어서 이제 쥐실험이 이틀인가 남았는데 몇개 화합물을 한번 더 Crystallization을 해서 건조를 해야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실험을 해야하는 날이 공휴일이었거든요. 저희 부장님이 공휴일인데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나가기 정말 싫었는데 한 11시쯤인가 나갔거든요. 그런데 벌써 부장님이 아침 일찍 나와서 제가 할 실험을 다 해 놓았더라고요. 그걸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 워라벨은 커녕 “회식만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하는게 더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일중독인지 모르지만요 저는 처음 직장 생활한 다음부터 지금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워라벨을 특별히 느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느 조직이든지 일을 열심히 하려면 워라벨은 당연히 없고요. 그렇지 않고 그냥 대강 일을 하려면 워라벨이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소문이 나서 회사를 나가도 결국 다음 잡을 못 잡더라고요. (미국 얘기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추천인이 되게 중요한데요. 본인이 추천인을 내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검증을 하지만 제가 Hiring Manager로 사람을 뽑으면서 보니까 서양애들은 저에게 와서 자기 아는 사람에게 들은 진짜 얘기를 들려줘서 인터뷰 다 좋았는데 안된 경우가 꽤 있었어요. 좀 무섭더라고요.

미국회사에서 워라벨이라고 제가 생각했던 건 이런것들이 있어요.

한번은 저희 회사 Senior VP였고 잘 나가고 있었는데요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런가 알아보니 그 분의 가족이 큰병에 걸린 거에요. 그래서 그 분이 몇년간 그 가족의 간호를 위해 일을 쉬고 간호를 하다가 나중에 그 가족분이 돌아가시고 다시 그 때 CEO와 같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서 일을 계속 하는 것을 봤어요. 저는 그 분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도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분처럼 할 생각이에요.

한번은 한국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이 말기암으로 위독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그런 프로젝트를 몇주안에 끝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직장상사 (Boss)에게 얘기했더니 당장 한국에 가고 필요한 만큼 Paid Vacation을 줄테니까 걱정말고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되니까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나가서 어머니 곁에서 거의 돌아가실 때까지 간호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가족에 대한 것을 미국회사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한국도 요즘 이렇겠죠?

그리고 Maternity Leave하고 Paternity Leave라고 엄마, 아빠 휴가가 있어요 출산휴가인데 원래 3개월이었다가 6개월로 바뀐 걸로 알아요. 이렇게 가족에 대한 것은 소중하게 생각해서 회사에서도 그것에 대해서는 Policy로 정해서 반드시 지키게 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는 중에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런 경우에는 그냥 문자 하나 보내고 휴가를 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물론 업무 Performance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일을 굉장히 많이 해야하죠. 아니면 동료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받아서 일을 마무리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이외에 다른 것으로 워라벨이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에요. 저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서 여름휴가를 거의 가본적이 없어요. 요즘에 이제야 좀 여름휴가도 가고 5년차 8년차 안식년 한달 휴가가 있어서 그런 휴가를 즐기기는 합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본인이 반드시 확실히 성공을 시켜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일단 제껴두고 일을 마무리해야 동료도 일을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작은 성공을 거둔 것과 소홀히 한 것은 시간의 힘 때문에 점점 격차를 만들어서 결국 큰 물결로 다가오게 됩니다. 저도 미국직장에서 서양인이든 동양인이든 동료를 사귈 때 그사람의 일 됨됨이를 보고요 서양인들도 일 됨됨이를 보고 사람을 사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직장을 옮기더라도 같이 오랫동안 고생하고 일한 동료들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기도 하고요. 모르겠에요. 제가 더 나이가 많아져서 쓸모가 없어질 때가 온다면 혹시 그 옛 동료들과의 관계도 끊어질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15년정도 미국 직장에서 경험한 것 포스닥 4년까지 합하면 19-20년째의 외국 생활에서 함께 연구하고 일했던 동료들과의 관계는 굉장히 질기게 어디에서 특히 제가 Layoff되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저를 지켜주는 큰 힘이 되곤 했어요.

그래서 결론은 워라벨은 없다고 여기고 일하라고 저는 여기에 적어봅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께서는 멍청한 꼰대질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너그러이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모두들 화이팅입니다.

커리어코칭 (3) – 미국 회사 vs 한국 회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쓴지 한 1-2주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아직 특별히 홍보하지도 않고 그냥 제 맘대로 일기 형식으로 적고 있습니다. 어차피 블로그로 소소하게 돈을 벌자는 생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알량한 지식을 좀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라서 큰 부담은 없지만 일단 어느 정도 글이 모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요. 나중에 글이 많이 모이면 책을 쓸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요.

제가 그동안 만난분들이나 온라인의 미국잡 관련 글들을 본 결과 미국회사 vs 한국회사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 벤처기업, 벤처캐피탈 회사를 다녀봤고 독일에서도 바이오텍 기업, 미국에서도 바이오텍 기업, 빅파마 경험한 측면이 있어서 이것에 대해 좀 얘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차이가 있지요. 제가 한국 회사를 다닌 것은 2002년까지가 전부이고 그 이후부터는 주로 외국 생활을 했으니까 저의 생각이 한국에 대해서는 2002년에 머물고 있다고는 봐야 합니다.

얘기하기 전에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요. 독일에 갔을 때 Bayer에서 은퇴한 화학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요 그 분은 Bayer Korea와 Bayer Indonesia 등을 만든 분이에요. 독일이 2차세계대전을 패망한 다음부터 Bayer에 다니다가 65세쯤 되서 정년퇴직을 했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독신인 여동생과 살고 계셨어요. 독신이었으니까 아시아에 근무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분께 제가 질문한 게 있었는데 “한국에 처음에 가실 때 정보가 없었을텐데 어떻게 정보를 얻고 오시게 되었느냐?”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분이 뜻밖에도 하멜의 표류기를 읽고 오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하멜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는 100년도 더 이전의 일인데 그 책이 도움이 되느냐? 그렇게 물었더니 그 분 말씀이 “사람의 생각과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책과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각과 관습은 크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면 제가 비록 한국에서 회사를 다닌 것이 지금부터 거의 20-30년전 일이더라도 그 기업문화나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더라 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일단 한국회사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볼께요.

저는 처음 대기업에서 5년, 벤처캐피탈 2년, 바이오텍 1년 근무했는데요. 대기업에서의 생활이 두 기간을 나뉩니다. 처음 2년은 신약개발을 하느라고 실험실 곁을 거의 벗어나지 못했어요.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잠자고 밥먹고 회사 가고 했습니다. 나머지 3년간은 새로운 정밀화학 프로젝트의 공정연구를 했는데 대기업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는 연구원이 주도해서 연구뿐만 아니라 생산 심지어 마케팅도 하고 사장실 임원보고도 연구원이 가서 직접 합니다. 거의 뭐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분위기인데 나름 재미는 있었지만 전문성을 키우지는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회사의 경우는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에 나를 맞추어가야 해요. 시간이 지나면 업무가 변하겠죠. 회사 상황이 바뀌고 시장 상황이 바뀌니까요. 또 회식이 지금은 많이 적어졌다고는 하던데 당시는 너무 많아서 일을 하는것보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러니 시간이 지날 수록 주량과 업무 폭은 넓어지는데 깊이는 생기지 않더라구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저의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어서 그 회사를 나와서 다른 회사에 갔을 때 쓸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사실 박사학위를 하려고 대기업을 퇴사해서 다시 다른 대기업에서 연락을 받았지만 저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더 전문성이 강해져야하는데 저는 그러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벤처캐피탈에서는 바이오 전문 심사와 투자를 했지만 당시의 한국 바이오텍의 수준이 글로벌 기준 혹은 제가 경험한 대기업 기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해서 기술투자라기 보다는 머니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사실 많이 실망했지요. 바이오 벤처기업은 기술벤처였기 때문에 기술투자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기술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국책연구비를 받는 연구정도에 그쳤고 벤처캐피탈에서 받은 투자도 신약개발에 투자되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엄청 실망했었지요.

이제 미국회사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볼께요.

미국에서는 두군데를 다녔는데 처음 간곳은 나스닥에 있는 바이오텍이었고 7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지금 Moderna는 8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 간 회사는 저의 전공분야였어요. Moderna도 물론 저의 전공분야입니다. 처음 갈 때부터 저의 전공분야만 채용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전공이 아닌 분야에서는 입사 경쟁 자체가 되지 않죠. 회사에 입사해서도 저의 전공 분야인 Nucleoside 분야에서 거의 일을 했습니다. 둘다 바이오텍이었지만 달랐던 것은 연구비를 완전히 무섭게 신약개발에만 올인한다는 것이 한국과 달랐습니다. 처음 갔던 바이오텍의 경우는 처음에는 1년에 500억 정도씩 연구비로 지출을 했는데 나중에는 2,000억씩 연구비로 지출을 했습니다. 모든 미국 바이오텍은 2년치 펀딩을 받아서 그 돈을 2년간 연구비로 거의 지출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주식시장에서 2년치 투자펀딩을 받기도 하고 결과가 안 좋으면 투자펀딩을 못받게 되죠. Moderna의 경우는 투자 규모도 처음 들어갔을때부터 5,000억/연 이었고요. 이제 약 10년간 총 5조원 이상 연구비에 투자한 것 같아요. 기업 문화는 두 회사가 많이 달랐지만 두회사 공히 연구개발에 대한 것과 연구개발 속도에 대한 중요성은 엄청났던 것이 같습니다. 속도면에서는 둘다 유사해서 마치 한 회사를 다닌 느낌이랄까요? 저는 이런 빠른 속도를 엄청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바이오텍이 맞습니다. 급여는 연봉과 보너스가 있기는 하지만 저는 주식과 Stock Option, 그리고 RSU가 아주 중요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소위 대박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바이오텍의 연봉은 주식, Stock Option, RSU 그리고 ESPP를 합쳐서 게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희 회사의 주주에요. 그러니까 애사심이 당연히 크고 한국 회사에서나 미국 빅파마에서는 있을 수 없는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혁신 신약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만족감은 어디에 비할데가 없어요.

온라인 게시판에 보니까 미국 스타트업에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쓴 글을 많이 봅니다. 다 망한다. 일만 엄청 하고 돈도 별로 못 받고 혹사만 하다 부속품처럼 된다. 뭐 이런 글들이 주로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스타트업이 어디냐도 있겠지만 자기와 맞지 않으면 어디에 가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대기업에 가면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으니까 편안하죠.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는 분은 바이오텍에서 견디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봐요. 바이오텍은 기본적으로 비조직적이거든요. 무슨 미팅을 해서 그 결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그렇게 하는게 아니에요. 가설 – 테스트 – 결과 – 결과에 대한 공유와 해석 – 다시 가설 – 테스트 – 결과 – 적용 이런 식의 반복이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매순간 바뀔수 있죠. 바이오텍의 한달은 빅파마의 일년이라고 보셔도 무방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만큼 빨리 해야 경쟁이 되거나 이길 수 있으니까요.

미국회사에는 401(k)라는 개인연금이 있는데 회사에 따라 회사에서 매칭해 주는 것이 다르고 방식이 다릅니다. 이게 좀 중요한게 만약 성장하는 회사인데 연봉의 6%까지 100% 매칭을 해 주고 그 매칭도 주식으로 해 준다 그러면 그 401(k) 수익률은 지수함수적으로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ESPP, Stock Option, RSU 등도 얼마를 받느냐가 중요하구요. 저는 초봉이 정말 적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총액면에서 대기업에 가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저로서는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좀 많지 않은니까 이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저는 새로 시작하는 분들께 대담하게 모험을 선택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한국의 벤처캐피탈로의 모험을 했지만 그 모험이 저에게 득이 되었지 적어도 손해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고요. 독일이나 미국으로 오게된 것도 마찬가지로 큰 모험이었지만 저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빠른 속도의 일을 즐기지 못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대기업에 가시는 것이 저는 맞다고 봅니다. 물론 말이 쉽지 가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최근에 잡마켓이 좋아서 미국에서는 회사를 많이 옮겨 다니는 분위기에요. 저도 거의 매일 연락을 받고 요즘에는 아예 리쿠르터가 숫자를 대고 오더라고요. 그렇지만 과학자는 좀 진득하게 개발의 시간의 힘을 믿고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연구결과물이 임상에서 의미있는 데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가 하는 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동종 경쟁기업의 결과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동종업체의 경우에는 경쟁보다는 협력을 많이 하고 연구에 대해 공유도 많이 합니다. 잘못하면 함께 잘못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회사와 동종업체 바이오텍 및 대기업의 연구결과들을 계속 보면서 오랜기간 그 신약개발의 과정이 결실을 맺는 과정이 될때가지 진득하니 엉덩이를 붙이고 실험실에 박혀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회사 옮기면서 2,3만불 더 받고 직급 하나, 둘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대박이 그것을 다 상쇄하고 남습니다. 물론 쪽박도 있지만요.

다시 돌아가서 제가 벤처캐피탈로 일했던 2년간의 경험들을 돌아보면 제가 당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는 생각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지금 만약 벤처캐피탈이 되면 이제는 좀 다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인생은 언제든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여하튼 저는 좀 Bias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미국회사 특히 작은 회사에서 장기적인 자기 투자를 저는 좀 많이 추천하는 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의 대기업에 돌아가시려면 반드시 임원으로 가셔야하고 미국에서 실적을 쌓으면 그 기회도 적지 않게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거기에 매진한다면 좋은 결과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저는 믿고 응원합니다. 혹시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많이 있으실 수 있는데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 보스턴 임박사의 미국회사 vs 한국회사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BIOTECH (4) – Alnylam Pharmaceuticals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RNA하면 Alnylam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중에 말씀드릴 Ionis가 더 오래되기는 했지만 현재의 RNA Boom을 만드는데 기여한 Alnylam의 고생과 노고는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앞에 소개한 것은 Molecular Therapy 2011년에 Pfizer의 Arthur M. Krieg 박사가 2011년 당시 RNA interfernce (RNAi)라는 기술에 대한 당시의 진단이 ‘이제 RNAi는 죽었다’라는 인식이 강했던 데 대한 본인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Krieg박사는 본인 자신이 Pfizer의 RNAi 프로젝트를 오랜동안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애착이 강하기도 했겠지만 당시 RNAi는 거의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할 정도로 정말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사실 2006년만 해도 분위기가 꽤 괜찮았죠. 2006년 노벨 생리학상은 RNAi를 연구한 Craig Mello 박사와 Andrew Fire 박사가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Big Pharmaceuticals가 당시 Patent cliff로 수년째 Layoff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Small molecule 신약개발은 온갖 곳이 지뢰밭이어서 임상3상이 끝날때까지 정말이지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2000년 들어 Human Genome Project가 성공했고 RNAi는 20-25개 Nucleotide 염기서열만 특정하면 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흥분을 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RNAi는 반복적으로 특정 염기서열을 잘라내는 Mechanism이었고 핵 (Nucleus)에 들어가지 않고 원형질 (Cytoplasm)에서 모든 조작을 수행해서 mRNA의 특정 부분을 끊어내는 것이었거든요.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진 2006년 Nobel Prize in Physiology Winners Criag Mello 박사와 Andrew Fire 박사 (왼쪽부터)

그런데 2010-2014년의 기간동안 분위기는 완전히 반대로 흘러갑니다. Switzerland Basel에서 1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Novartis와 Roche가 먼저 일찌감치 RNAi분야에서 포기를 했고요. 다른 회사들도 차츰 손을 놓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Merck가 2014년 본래 Sirna Therapeutics에서 산 가격의 20% 이하의 가격인 헐값으로 RNAi IP를 전부 Alnylam으로 팔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RNAi를 한 인력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죠. Layoff나 자발적인 퇴직등의 이유로요.

문제는 두가지로 크게 압축이 되는데요.

  • 첫째는 Delivery가 문제였습니다. 생각보다 Delivery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고 RNA가 몸속에서 쉽게 분해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변형 (Modification)을 했다 하더라도 원하는 조직에서 원하는 mRNA를 자르기 전에 대부분은 분해가 되었고 이것은 오히려 독성의 문제를 파생하게 되었죠.
  • 둘째는 Off-target effect라는 독성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본래 이론적으로는 특정 부분만 선택적으로 끊을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유사한 부분도 끊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로서는 Whole genome sequencing도 초기 단계여서 이에 대한 연구도 그리 Data가 충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2008년 미국 Sub-prime mortgage 문제와 Leman Brothers 파산으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Job market이 매우 좋지 못해서 매년 대량 Layoff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2007년에 입사해서 매년 Layoff를 겪었는데 나가는 직원들도 힘들지만 남은 직원인 저와 같은 사람또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Novartis, Roche등의 기술은 Arrowhead Pharmaceuticals라는 RNAi 회사가 가져가게 되고 Merck의 기술은 Alnylam으로 이전이 되면서 RNAi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Alnylam도 몇차례의 대량 Layoff를 피할 수 없었죠. 사실 주식시장에서 RNAi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힘들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었거든요. 하지만 Big Pharmaceuticals의 구조조정으로 나오게 된 고급인력 (?)들이 Biotech으로 들어오고 특히 Big Pharmaceuticals 들이 Harvard, MIT등 좋은 대학들이 있는 Boston 지역으로 계속 밀려들게 되면서 Boston Biotech Ecosystem은 엄청난 활기를 얻게되었고 Funding 시장도 살아나면서 완전히 분위기는 쇄신하게 됩니다.

특히 Alnylam은 GalNac이라는 새로운 Bioconjugation을 통해 Hepatocyte delivery (간 전달) 체계가 확립되고 또한 그동안 RNA 분자 modification 기술도 점점 진화되어 점차 Commercial 가능한 약물들이 임상 3상으로 이전되게 됩니다.

다음에는 Alnylam의 기술적 진보와 Pipeline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모두들 Cheers!!

Is RNAi Dead?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129789/pdf/mt201194a.pdf

BIOTECH (3) – Ionis Pharmaceuticals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RNA Therapeutics의 시초라고 하면 Gilead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갑분싸 Gilead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원래 Gilead는 Antisense Oligonucleotide를 약물로 개발할 목적으로 1987년에 설립한 회사입니다. 초기 회사의 이름도 Oligogen (올리고젠)으로 Oligonucleotide를 약물로 만든다는 생각이 있었던 회사였죠. 이 회사는 본래 Venture Capitalist 였던 Michael L. Riordan이라는 의사가 Menlo Ventures라는 자신이 다니던 Venture Capital Company 로 부터 $2M의 펀딩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Gilead는 Genetic Code Blocker라고 당시 불렀던 Antisense의 Pioneer였고 초기에는 괜찮은 출발을 해서 1990년 부터 Glaxo와 공동연구를 진행하여 Antisense의 중요한 연구결과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1998년Glaxo는 연구계약을 종료하게 되었고 그 해 Antisense IP를 당시 Isis Pharmaceuticals (지금의 Ionis Pharmaceuticals)로 이전하면서 Ionis Pharmaceuticals가 1998년부터 Antisense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관련링크: https://www.gilead.com/news-and-press/press-room/press-releases/1998/12/isis-acquires-antisense-patent-and-technology-estate-from-gilead-sciences

그러니까 1987년부터 2022년 지금까지 35년이나 오랜기간 Ionis Pharmaceuticals가 이 분야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1998년에 Vitravene (Fomivirsen)이 AIDS 환자들의 CMV Retinitis 치료제로서 최초의 Antisense 약물로 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 약은 안과 약물로 기대를 받아 Novartis에서 판매를 했지만 이후 나온 HAART AIDS치료제의 효과가 좋아서 환자들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어 2002년 License를 철회하게 됩니다. Vitravene은 21-Nucleotide로 1st-Generation인 PS backbone을 가진 약물이었습니다.

이후 2013년에 오랜 연구개발 끝에 2nd-Generation Antisense 약물인 Kynamro (Mipomersen)이 FDA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이 약물은 homozygous familial hypercholesterolemia 질환에 사용하는 약물이었으나 간독성과 심장독성이 심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Ionis Pharmaceuticals는 이러한 독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rd-Generation Antisense인 Spinraza와 Exondys-51을 FDA에서 승인받게 됩니다. 현재 Ionis Pharmaceuticals는 약물을 Licensing out하면서 주로 연구개발에만 전념하여 투자하는 Antisense platform technology 회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주로 Licensing Out에 의지하는 매출 특성상 폭발적 성장은 어려운 Business Model이라고 볼 수 있지만 Ionis Pharmaceuticals에서 Nucleoside의 변형 연구를 통한 Oligonucleotide therapeutics에 대한 기여는 향후 siRNA 및 mRNA 등 RNA Therapeutics의 발전에 기여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st-, 2nd- 3rd-Generation Antisense Oligonucleotide의 구조적 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도 성장이 진행중인 Ionis Pharmaceuticlas의 연구개발 동향을 계속 Update 하겠습니다. 오늘도 Cheers!! 입니다.

커리어코칭 (2) – LinkedIn 프로필 정리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요즘은 모두 Social Network을 하기 때문에 잡서치에 중요한 Linkedin Profile은 정말 잘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물론 레쥬메 (Resume)를 지원하는 회사에 보내지만 그 사람을 뽑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Google 검색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Linkedin이 가장 먼저 나오게 됩니다. 이 Linkedin의 내용과 Resume의 내용이 일치될 뿐만 아니라 Linkedin의 프로필 정리를 잘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사실 Linkedin과 Resume를 함께 정리를 하는 편이지만 레쥬메의 경우는 보다 더 상세하다고 하면 Linkedin은 전체적인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네트워킹을 Linkedin으로 해야 한다고 앞의 글에서 말씀드렸으니까 당연히 Linkedin 프로필이 중요한 것은 더할 나위가 없겠죠.

커리어코칭은 주로 처음 회사라는 곳을 지원하는 분들이 주된 고객이 될 것 같아서 처음 잡서치를 시작하는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일단 “Experience”부터 씁니다. 가장 최근의 것을 먼저 쓰고 그 이전 것을 그 다음에 그리고 가장 오래된 것을 가장 나중에 쓰게 되죠. 혹시 대학교 연구실에서 연구에 참여했거나 인턴이나 Co-op을 했으면 여기에 그 내용을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일단 인턴이나 Co-op을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 어떻게 해야할지 적어보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중요해요. 만약 저와 같이 Nucleoside Synthesis가 중점이라고 하면 Nucleoside Synthesis를 중심으로 Experience를 나열합니다.

Graduate Researcher 혹은 Graduate Student라고 쓸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는 석/박사 과정의 연구를 “Nucleoside Chemist”라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연구한 Graduate school이름이 있고 기간이 있죠.

이 아래에 이제 중요한 Accomplishment가 들어가야 합니다. 즉, 무엇을 새롭게 발견했느냐 혹은 연구했느냐 하는거죠. “Power word”를 써서 3-5줄 정도로 요약을 합니다. Power words는 아래에 있는 것 같은 단어로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Nucleoside Synthesis를 했는데 그 결과 새로운 반응을 찾았어요 어떤 조건과 함께, 그리고 그 Nucleoside의 새로운 Mode of action을 찾았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쓰는거죠.

  • Developed a nucleoside synthetic method to produce anti-cancer compounds.
  • Achieved in elucidating a new mode of action of the compound X by analyzing YYY data.

그렇게 하면 일단 가장 최근에 제가 다니고 있는 Graduate School에서 하는 일을 쓰게 되죠. 최근의 것은 시작한 날 – present로 표시를 하게 Linkedin에서 설정이 됩니다. 나중에 Resume에는 이것보다 좀더 자세히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Undergraduate에서도 연구를 한 것이 있으면 그것도 위의 것처럼 적으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관련된 것을 먼저 적고 그것과 조금 다른 일 (예를 들면 Pharmacology)은 아래쪽에 배치를 하는거죠.

그리고 나면 이제 “Education”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어떤 Graduate school을 다니는지, 어떤 Undergraduate school을 다녔는지를 적으면 됩니다. GPA는 적어도 되고 안 적어도 됩니다. Linkedin에서는요. Resume에서는 GPA가 있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일단 이 정도로만이라도 LInkedin 프로필이 만들어지면 좋은 것 같아요. 취미 같은 것도 쓰는 분이 있기는 한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쓰는게 좋은지..저는 쓰지 않습니다. 취미야 많지만요.

다 적고 났는데 뭔가 허술해 보인다 싶으면 “Sumary”를 좀 자세히 적으면 좋은 것 같습니다. 이 Summary에는 대략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겠죠.

  • PhD or ABD in Nucleoside Synthesis
  • Expertise in multi-step nucleoside synthesis and organometallic reactions
  • Proficient in NMR, HPLC, MS, GC
  • Strong communication skills in verbal and written English
  • Team-oriented, independent scientist

더 많이 쓰셔도 됩니다. 그런데 초점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장황하지 않은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Hiring Manager 입장에서 Linkedin을 확인하는 이유는 Gap year나 혹시 다른 점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입니다. 그러니까 Linkedin 프로필이 Resume와 일관된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은 저도 Linkedin을 통해서 연락이 주로 오기 때문에 Linkedin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당연히 만나야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점점더 Linkedin을 통해서 잡을 찾고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이렇게 프로필이 완성이 되셨으면 이제부터 조금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주위 분들에게 조언을 구해서 Resume는 경험이 많은 저같이 커리어코칭하는 사람에게 봐달라고 하면 상당히 잘 고쳐줍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이제 바이오텍이나 빅파마에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참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회사 연구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배울 것이 많은 세상입니다.

커리어코칭 (1) – 네트워킹은 LinkedIn에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저의 커리어코칭은 현재로서는 아래의 몇가지 목적으로 쓰기로 합니다.

  1. 미국에서 제약/바이오텍 기업에 취업하는 분들을 위한 정보를 나눕니다.
  2. 학부, 석사, 박사학위자를 위해 정보를 나눕니다.
  3. 통상 커리어코칭은 유료로 진행하지만 이 코너는 무료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단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바이오/제약 분야에서 직업을 찾거나 관련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공짜로 정보를 나누고자 합니다. 앞의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지금까지 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거치면서 얻은 것은 도움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제로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진솔하게 정보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번째 주제는 네트워킹 에 대한 것입니다. 온라인 게시판이나 주위의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네트워킹이 정말 중요하더라’하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물론 네트워킹을 많이 하면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겠지요.

문제는 네트워킹을 어디에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연(?)이 되겠지요? 좋은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분들은 그렇지 못한 분들에 비해 이 부분에서는 좀 나은 접근을 할 수 있으려나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정말 그 학연이 도움이 되는지요. 저도 학연이 괜찮은 편이라고는 생각을 하지만 글쎄요 화학과를 나온 제가 분자생물학과를 나온 후배님들께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말이죠.

그 다음 네트워킹 장소로는 어떤 모임이 되겠죠. 한번 네트워킹을 해볼까 해서 한국 제약/바이오 분야에 있는 분들을 만나러 갔다고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워낙 쑥맥이고 내성적이라 말도 원래 잘 걸지 않는 성격이에요. 원래 성격은 그런데 예전에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일을 할 때는 사람을 매일 계속 만나야 하거든요. 그래서 네트워킹 실력이 엄청 늘었어요. 아무하고나 얘기도 잘하고 친해지고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열심히 네트워킹 한 것이 별로 소용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역효과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KASBP (재미한인제약협회) 연례총회 컨퍼런스가 있었고 많은 젊은 학부생 여러분, 석/박사 학생분들 그리고 포스닥 분들을 뵈었어요. 그런데 가만 보면 보통 거의 비슷해요. 자기가 원래 알던 사람과 주로 얘기를 하고 끝나요. 물론 새로운 분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사실 그 만남이 오랜동안 이어지기는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에요. 어쩌면 우리 모두 오랜동안 만나지 않기로 하고 네트워킹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저의 보스가 새로 설립한 회사의 CSO로 가게되어 투자자들과 네트워킹 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분은 미국인이었는데 표현으로는 아주 돛데기 시장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서양 사람들 네트워킹 하는 자리에 가 본적이 한 두번씩은 있었을텐데요. 와인이나 맥주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얘기를 합니다. 3-5분 정도 얘기하다가 스윽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죠. 계속 그렇게 옮겨 다니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 미국에서 얘기하는 네트워킹입니다.

저는 이런 식의 네트워킹의 필요성에 대해서 좀 회의적인 사람이에요. 저같이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네트워킹 방식이기도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핀트가 맞지 않은 상태로 시간만 갈 것 같습니다.

처음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네트워킹을 할 때 “Linkedin”을 제대로 이용하면 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잡서치 (Job Search)를 할 때에는 아직 Linkedin은 없고 Indeed.com을 주로 이용했는데요. LInkedin의 장점은 그 회사의 본인이 관심있는 사람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첫 직장을 잡을 때 중요한 것은 가능하면 멀티 오퍼 (Multi-offer)를 갖는게 중요하다는 거에요. 한가지 잡을 얻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멀티 오퍼를 받느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그게 미국에서는 오히려 반대에요.

일단 한가지 오퍼를 받게 되면 다른 오퍼를 이끌어내기가 쉬워지고 더 좋은 오퍼를 얻기가 쉬워져요. 그래서 일단 큰 회사, 작은 회사, 정규직, 계약직 따지지 말고 먼저 오퍼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요 Linkedin이에서 Job을 일단 전미로 해서 자신이 사는 주만으로 국한시키지 말고 지원분야는 제한시키고 그 지원분야에서 여러 회사를 지원하면 됩니다.그러다가 컨트랙터 오퍼라도 받게 되면 인터뷰가 진행 중인 회사에 오퍼를 받았으니까 오퍼를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는거죠. 그렇게 하면 좀더 쉽게 첫 직장 오퍼를 멀티 오퍼를 받게 되고 그 중에서 오퍼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점 두가지는 아래와 같아요.

  1.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를 특정해서 전국적으로 Linkedin에서 검색한다.
  2. 정규직, 계약직, 스타트업, 대기업 따지지 말고 지원하여 먼저 폰 인터뷰를 얻는다.
  3. 어떤 곳이든지 오퍼를 받으면 폰 인터뷰까지 한 회사에는 알려서 오퍼를 보내달라고 한다.

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특별히 네트워킹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멀티 오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2군데, 보스턴 지역에서 1군데 총 3개 기업의 오퍼를 받았고 저는 보스턴에 있는 기업이 저의 전공과 가장 맞아떨여졌기 때문에 그 회사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상이 제가 생각하는 잡서치 네트워킹을 Linkedin으로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겨주시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화이팅입니다.

커리어 코칭을 시작하면서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감사에 대하여

몇주 있으면 Thanksgiving (추수감사절)이 되고 그러면 이제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매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 (Plymouth)에 정착해서 살게된 첫번째 연도를 감사하는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플리머스에는 한국 민속촌 처럼 초기 정착민들이 살았던 마을을 재생한 마을이 있습니다. 혹시 기회가 되시면 꼭 가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플리머스 정착촌 (Plymouth Plantation)이라고 합니다.

초기에 인디언들이 매우 호의적으로 청교도들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만약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모두 굶어죽거나 추위에 얼어죽었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커리어코칭을 하려는 이유

추수감사절을 떠올리면 저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도 꽤 오랜 시간을 살면서 박사학위도 받고 포스트닥 과정도 밟고 여러 좋은 회사에서 좋은 분들 혹은 아주 좋지는 않은 분들을 두루 만나면서 지금까지 왔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돌이켜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크리스찬입니다. 그러다보니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저에게 상당히 깊이 다가오고 또 이어서 한달 후에 있는 크리스마스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연말에는 일년간의 감사의 제목들을 기억하고 또 그 감사를 넘어서 나눔의 시간을 가져야 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하게 됩니다.

20대에 처음으로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을 때를 돌아보면 참 계획도 거창하고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50대가 되어서 돌아보니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저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도 결과적으로 옳은 길을 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KASBP (재미한인제약인협회) 정기연례회가 보스턴에서 11월 4일 – 5일 이틀에 걸쳐서 열려서 저도 이틀 양일간 참석을 했습니다. 물론 오래된 저의 선배님들도 뵙고 또 한국에서 오신 높은 분들을 뵙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고 또 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 한참 커리어를 찾아 나가시는 분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초롱초롱하고 활기찬 모습에서 귀하고 밝은 미래가 보였습니다.

다들 하버드, MIT 공과대학, 보스턴 대학, 보스턴 칼리지 등등 좋은 학교에서 공부나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지요. 한국인 뇌섹인들이 모두 모여있다고 보셔도 틀리지 않았을 거에요. 고등학교에서는 사회 생활을 위해 알아야 하는 어떤 기초적인 것을 거의 모두 망라해서 배운다면 대학교에서는 자신이 직업으로 아니면 취미로 할 전공 분야의 모든 분야를 배우게 되는거죠. 이제 가방끈이 길어지면 분야는 점점 세분화됩니다. 그래서 박사과정이나 포스닥 과정 정도까지 올라가면 분야는 마치 ‘전세계에서 나야나’ 같은 느낌이 들게 되죠. 마치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어떤 일을 내가 오랜동안 고생고생해서 한 것 같은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게 됩니다. 저도 Yale 대학교에서 포스닥을 할 때 그런 느낌이 많이 있었거든요. 처음 1,2 년은 연구를 해도 사실 결과를 얻기에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둘다 인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연구가 별다른 진척이 없더라구요. 논문도 간신히 하나 냈던 것 같은데 그것 가지고 어디에 내다 놓기도 부끄럽겠다 싶었습니다. 3년차 4년차 하니까 이제 연구가 좀 되기 시작해서 결과는 나오는데 오! 이제 좀 된다 싶으니까 미국인 친구들이 늑대처럼 제 연구 과제를 빼앗아 가는 거에요. 와! 정말 저는 그 때 인생 끝난 줄 알았습니다.

여하튼 어찌어찌해서 이제 경력도 차고 뭐 더 올라가 봤자 별로 기쁘지도 않고 오늘 당장 은퇴해도 그만, 아니지 그래도 일하면 더 좋다는 느낌(?) 등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게 저만 그런건 아니더라구요. 저보다 10년쯤 더 연배가 계신 선배님들도 그런 것을 느끼셨고 저는 이제 50 초년병으로 이제야 비로소 겪고 있는 것이더라구요.

이제부터는 뭘 하면 좋을까? 이런 생각을 좀 망상처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된 책들도 몇권 아마존에서 사서 읽어봤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커리어 코칭‘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주로는 HR이나 리쿠르터 하던 분들이 많이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인생 2막에 들어선 저같은 사람들이 인생 1막에서 어떤 커리어의 선상에 들어가야 하거나 커리어를 변경해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때 본인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아니면 좀 주제 넘지만 처방(?) – 조언이라 하기엔 좀 초라한 것 같아서 문제에 대한 처방이 맞는듯 합니다 – 같은 것을 좀 한다면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망상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대기업에도 다녀봤고 바이오 벤처기업도 다녀봤고 또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과학자에서 파이낸스 가이로 바꾼 경험도 있죠.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일해봤고 미국에서도 일해 봤죠. 그리고 회사를 키워서 – 제가 키운 건 아니지만 – 빅파마에 팔아보기도 했고 또 지금은 초창기부터 전혀 새로운 Modality인 mRNA라는 새로운 분야를 상용화까지 해 봤잖아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사실 그것 말고도 별거 별거 많이 해 봤어요. 잘 안되서 그렇죠.

한국과 미국에서 대학교수 지원도 해 보고 최종까지 가 보기도 했고요. 한의대 간다고 편입지원도 해 보고 변리사된다고 특허법 공부하고 시험도 보고 해 봤습니다. 물론 안됐으니까 지금 과학자로 살고 있죠.

어떤 교수님이 저의 이력서를 보시더니 그러시더라구요.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했어요?”

맞아요. 저는 호기심은 못 참는 성격이라 포기를 모르고 거의 다 해 보려고 기회만 되면 도전을 해 봤던 것 같아요. 성격에 역마살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3개 대륙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에서 일하면서 살아보고 뭐 저로서는 해볼만한 건 다 해 보지 않았나? 뭐 이런 생각을 살짝 하다가 또 요즘은 전혀 엉뚱한 것을 또 도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계속 뭔가를 이렇게 도전하면서 살 것 같아요. 이런 저의 엉뚱함이 혹시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뭐 그야말로 금상첨화겠죠. 오늘은 주저리 주저리 써 봤습니다. 다음부터는 좀더 하나씩 풀어서 써 내려가 봐야 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스턴 임박사 커리어코칭 서비스 소개

  • 방식: MS Team Meeting or In-Person Meeting (within Greater Boston)
  • 커리어코치: 보스턴 임박사
  • 상담자: 보스턴 임박사 커리어코칭을 받고자 하시는 분
  • 미팅 주제: 보스턴 임박사는 커리어 코치로서 고민 청취 및 조언을 드리고 상담자는 본인의 연구내용을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
  • 비용: 대학생, 대학원생, 포스닥에 한하여 (무료) – 심지어 식사나 커피를 사드릴 수 있슴.
  • 미팅주기: 1회/월 정도를 생각하고 있지만 상담자의 요청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커리어코칭 (1) – 네트워킹은 LinkedIn에서

커리어코칭 (2) – LinkedIn 프로필 정리

커리어코칭 (3) – 미국 회사 vs 한국 회사

커리어코칭 (4) – 워라벨이란 건 없다.

커리어코칭 (5) – 효과 만점 네트워킹은

커리어코칭 (6) – 바이오텍 논문 네트워킹

커리어코칭 (7) – CV vs Resume

커리어코칭 (8) – 바이오텍 vs 빅파마

커리어코칭 (9) – Phone Interview

커리어코칭 (10) – On-Site Interview

커리어코칭 (11) – 시간의 시험을 견뎌야

커리어코칭 (12) – Performance Review

커리어코칭 (13) – 좋은 질문을 하는 과학자

커리어코칭 (14) – 교수 vs 기업연구원 vs 정부연구원

커리어코칭 (15) – 미국회사 vs 한국회사

커리어코칭 (16) – Merck의 투자 프리젠테이션으로 공부하는 법

커리어코칭 (17) – 미국내 탑 바이오 클러스터

커리어코칭 (18) – 영어는 얼마나 해야하나? 콩글리쉬의 우월성에 대하여

바이오텍 (19) – 생명과학 투자하기

커리어코칭을 원하시는 분은 BostonDrLim@gmail.com 으로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뇌섹남 패셔니스타 (1)

안녕하세요 보스턴 임박사입니다.

오늘은 뇌섹남의 패션에 대해 좀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과학자나 연구원은 어떤 옷을 입고 사는지 혹시 아시나요? 예전에 몇년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근무할 때에는 꼭 정장 수트를 입고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 때에는 수트발 좀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수트를 입지 않는 날에는 뭘 입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내가 사다 주는 옷 중에서 편한대로 맘대로 입었던 것 같습니다. 연구원으로 돌아와서 미국 바이오텍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제 수트는 입을 필요가 없으니 외모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 그냥 옷은 걸치면 그냥이라는 식으로 아내가 사다주는 옷을 대략 섞어서 입었습니다. 그렇게 꽤 지났는데 어느날 문득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그냥 쉽게 해결될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여러가지가 복합된 것이었고 상당히 장기적인 것이었죠. 그러다 보니 무기력감도 생기고 조금은 우울해지는 증상 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이 때쯤 당뇨 진단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그동안의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어느날이었는데 주위의 서양인들과 동양인들의 패션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인들은 정말 저와 같이 옷을 막 입는다는 느낌(?) – 어떤 사람은 마치 공산당 군복같은 옷을 입거나 동토의 추운 겨울에 자료화면에서 보던 털옷에 아주 동복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옷을 입는데 뭔가 매끈하고 맵시가 있다고 할까요? 뭐 그런 느낌이 나는거에요.

특히 높은 직급의 젊은 남자의 경우에는 정말 남자인 제가 보기에도 섹시해 보일 정도로 간지나게 입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셔츠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 때까지 저는 가로 줄무늬 혹은 세로 줄무늬의 알록달록한 셔츠를 입었는데 서양인들은 그보다는 단색이면서 심플한 셔츠를 입더라고요. 그 다음에는 바지를 봤는데 동양인들은 품이 넓고 불룩한 옷을 입고 사는 반면 서양인들은 몸매가 드러나게 착 달라붙는 옷을 입고 그 끝마무리도 신발 위에서 끝나게 입더라고요. 당연히 저를 포함한 동양인들은 바지 끝이 너무 길어서 신발 위에서 늘어진 형태였어요.

다음에는 신발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발도 색상이 다 있더라고요. 저는 그냥 그 때까지도 운동화나 진한 갈색 구두 비스무리한 신발을 입었는데 서양인들은 신발의 맵시도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패션에 대해서 좀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와 프랑스 파리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저는 파리 여행에서 사람들 옷입은 모습에 넋이 빠져서 사람 구경만 하고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회사에 무엇을 입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우울함도 걷히게 되었습니다.

BIOTECH (2) – Moderna

안녕하세요 Boston 임박사입니다.

저는 현재 Moderna에서 근 9년째 근무하고 있고 주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의 견해가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이 Blog는 투자를 권하거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회사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oderna 는 기존의 Modality와 달리 “Messenger Ribonucleic Acid (mRNA)”라는 새로운 Modality를 연구 개발하고 임상 연구과정을 통해 상용화시키는 것을 목적의 Biotech 입니다.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Drew Weissman 교수, Katalin Kariko 박사가 공동으로 연구한 Modified RNA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Flagship Pioneering Venture Capital Company의 전적인 지원으로 2012년에 미국 Cambridge에 설립되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Katalin Kariko박사와 Drew Weissman 교수의 mRNA가 어떻게 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Story를 짧게 소개한 것입니다.

이후 Moderna는 Flagship Pioneering의 Noubar Afeyan 박사와 Stephane Bancel CEO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후 2년이 지난 2014년에 Stephane Bancel 대표님이 mRNA의 중요한 연구결과와 미래에 대해 강의하신 중요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친절하게 mRNA가 약이 된다면 얻게될 많은 가능성에 대해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mRNA therapeutics 의 개발은 당시로서는 많은 의심과 편견의 눈으로 mRNA Therapeutics 가능성에 대해 언론이나 과학자들 사이에서 비춰졌는데요 그것은 Moderna에는 오히려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Source: https://www.genome.gov/about-genomics/fact-sheets/Understanding-COVID-19-mRNA-Vaccines

여하튼 이러한 많은 의구심과 편견된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또 다루겠습니다.